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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 (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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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서는 촉한 말기의 인물로, 위나라의 촉 침공 당시 부첨을 배신하고 항복하여 촉나라 멸망에 기여했다. 무흥독으로 재직하며 공을 세우지 못해 한중태수를 보좌하게 된 것에 앙심을 품고, 263년 종회가 촉을 침공했을 때 호열에게 항복했다. 이로 인해 양평관이 함락되고 부첨이 전사하면서 촉나라는 위나라에게 멸망했다. 이후 행적은 전해지지 않으며,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부첨을 배신한 인물로 묘사된다.

2. 생애

자치통감》에 따르면, 장서는 본래 무흥독(武興督)이라는 벼슬을 하였으나 지위에 걸맞은 일을 하지 못해 해임당하고 양평관을 지키던 부첨을 돕게 되자 이에 한을 품었다고 한다. 263년 촉나라 정벌에 나선 종회호열을 보내어 양평관(현재의 양안관) 입구를 공격해 오자, 장서는 부첨에게 위군과 맞서 싸울 것을 주장하였다. 부첨이 찬성하지 않자, 장서는 자신이 나가 싸우고 부첨이 성을 지켜 각자의 생각대로 싸우자고 했다.

결국 장서는 군사를 이끌고 출진했으나, 음평(陰平)에서 호열이 거느린 위군과 마주치자 싸우지 않고 항복하였다. 부첨은 장서가 위군과 싸우고 있을 것으로만 믿고 별다른 방비태세를 갖추지 않았는데, 위나라 군사가 공격해 오자 죽기로 싸웠으나 전사하고 양평관도 위군의 수중에 떨어졌다.

한편,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장서가 강유에게 발탁되어 부첨과 함께 우장군(右將軍)에 임명되었으며, 강유의 북벌에도 함께 나섰다고 묘사된다. 촉나라 국정을 농단하던 황호의 미움을 산 강유가 답중(沓中)으로 물러나면서 부첨과 함께 양평관을 지키게 되었다고 한다. 소설에서는 장서가 성을 지키다 부첨을 받아들이지 않아 죽게 한 것으로 묘사되며, 부첨의 절개를 칭찬하고 장서를 비판하는 시가 실려 있다.

2. 1. 촉나라 장수 시절

263년 종회호열을 보내 양평관(양안관)의 입구인 관구를 공격하자, 장서는 부첨에게 위군과 맞서 싸울 것을 주장하였다. 부첨이 찬성하지 않자, 장서는 자신이 나가 싸우고 부첨은 성을 지키자고 제안했다.

장서는 군사를 이끌고 출진했으나, 음평에서 호열이 거느린 위군과 마주치자 싸우지 않고 항복하였다. 부첨은 장서가 위군과 싸우고 있을 것으로만 믿고 방비하지 않았는데, 위나라 군사가 공격해 오자 전사하고 양평관도 함락되었다.

위나라 군대의 침공 이전, 장서는 한중군의 무흥독을 맡고 있었다. 그러나 업무 수행에 공적이 없어 직책을 교체당하고 한중태수를 보좌하게 되자, 이에 원한을 품었다.

염흥 원년(263년), 종회가 대군을 이끌고 촉나라를 침공해 왔다. 종회는 한성, 낙성을 포위하고, 호열을 시켜 양안관으로 진격하게 했다. 장서와 함께 양안관을 지키던 부첨은 성을 굳게 지키려 했으나, 장서는 부첨을 속여 군대를 이끌고 나가 호열에게 항복했다. 위나라 군대는 이 틈을 타 성을 습격하여 함락시켰고, 부첨은 전사했다. 양안관이 함락되면서 위나라 군대는 촉나라 깊숙이 침입하게 되었다.

2. 2. 위나라 침공과 배신

263년 종회호열을 보내 양평관(현재의 양안관) 입구를 공격하자, 장서는 부첨에게 위군과 맞서 싸울 것을 주장하였다. 부첨이 찬성하지 않자, 장서는 자신이 나가 싸우고 부첨은 성을 지키자고 제안했다.

결국 장서의 의견대로 군사를 이끌고 출진했으나, 음평에서 호열이 거느린 위군과 마주치자 싸우지 않고 항복하였다. 부첨은 장서가 위군과 싸우고 있을 것으로 믿고 방비하지 않았는데, 위나라 군사가 공격해 오자 전사하고 양평관도 함락되었다.

위나라 침공 이전, 장서는 한중군의 무흥독을 맡았으나, 업무에 공적이 없어 직책을 교체당하고 한중태수를 보좌하게 되었다. 장서는 이에 원한을 품었다.

염흥 원년(263년), 종회는 대군을 이끌고 촉나라를 침공, 한성과 낙성을 포위하고 호열을 양안관으로 진격시켰다. 장서는 양안관을 지키던 부첨을 속여 군대를 이끌고 나가 호열에게 항복했다. 위나라 군대는 이 틈을 타 성을 습격하여 함락시키고, 부첨은 전사했다. 양안관 함락으로 위나라 군대는 촉나라 깊숙이 침입하게 되었다.

위나라에 항복한 이후 장서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2. 3. 위나라 항복 이후

염흥 원년(263년), 위나라종회가 대군을 이끌고 촉한을 침공해 왔다. 종회는 한성, 낙성을 포위하고, 스스로 낙성을 공격하는 한편, 호열을 진군시켜 양안관으로 진격하게 했다. 장서와 함께 양안관을 지키고 있던 부첨은 성을 굳게 지키려 했으나, 장서는 부첨을 속여 군대를 이끌고 출격하여 호열에게 항복했다. 이 기회를 틈타 위나라 군대는 허를 찔러 성을 습격하여 함락시키고, 부첨은 전사했다. 양안관이 함락됨으로써, 위나라 군대는 깊숙이 촉나라 땅으로 침입하게 되었다.

위나라에 항복한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3. 평가

장서(張緖)는 부첨과 함께 강유에게 발탁되어 촉나라에서 활약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3. 1.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

長徐|장서중국어부첨과 함께 강유에게 발탁되었고, 촉나라 경요 원년(서기 258년)에 부첨과 같이 우장군(右將軍)에 임명되었다.[1] 강유가 북벌에 나섰을 때 대체로 부첨과 같이 나왔다.[1] 황호의 미움을 산 강유가 답중에 들어가면서 부첨과 함께 양평관을 지키도록 지시한 것으로 나와 있다.[1] 사서의 기록과 반대로 장서가 성을 지키다 부첨을 받아들이지 않아 죽게 한 것으로 나왔으며, 부첨이 절개를 지켜 죽은 것을 찬양하고 저항없이 항복한 장서를 비판하는 시가 실려 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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