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SS척탄병사단 니벨룽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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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38SS척탄병사단 니벨룽겐은 1945년 4월 바이에른주 바트 퇼츠에서 창설된 무장 친위대 사단이다. 제6SS산악사단 노르트, 제7SS 의용 산악사단 프린츠 오이겐, 제30무장SS척탄병사단(제1벨라루스) 등에서 차출된 병력과 국경 수비대, 친위대 호송 대대, 히틀러 유겐트 간부 등으로 구성되었다. 약 5,000명 규모로, 다하우를 거쳐 도나우 전선에서 미군에 저항했으며, 란츠후트를 거쳐 이사르강 방어선 구축, 이후 후퇴를 거듭하다가 1945년 5월 8일 라이트 임 빈클에서 미군에 항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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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SS척탄병사단 니벨룽겐 - [군대/부대]에 관한 문서 | |
---|---|
부대 정보 | |
명칭 | 제38SS척탄병사단 "니벨룽겐" |
약칭 | 니벨룽겐 |
표어 | 나의 명예는 충성 |
표어 (원어) | Meine Ehre heißt Treue |
![]() | |
연혁 | |
창설 | 1945년 3월 |
해체 | 1945년 5월 8일 |
규모 | |
병력 | 사단 |
인원 | 6,000명 |
소속 | |
국가 | 나치 독일 |
군종 | 무장친위대 |
병과 | 척탄병 |
상급 부대 | 제13SS군단 |
최종 상급 부대 | 제13SS군단 |
지휘관 | |
주요 지휘관 | 리하르트 슐체코센즈 |
전역 정보 | |
담당 지역 | 서부 전선 |
주요 전투 | 제2차 세계 대전 본토 방어 클라일스하임 전투(de) 뉘른베르크 전투 |
2. 역사
1945년 4월,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나치 독일은 바이에른주 바트 퇼츠의 SS 장교 학교 인원을 중심으로 제38SS척탄병사단 '니벨룽겐'을 급하게 창설했다. 다양한 기존 부대에서 차출된 병력과 히틀러 유겐트 등으로 보충되었으나, 실제 규모는 여단급에 미치지 못했다. 사단은 제대로 된 훈련 없이 4월 중순 제13SS군단에 배속되어 도나우강 전선에 투입되었다.
창설 직후부터 연합군의 공세에 밀려 후퇴를 거듭했으며, 도나우강과 이사르강 등지에서 방어선을 구축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4월 말에는 란츠후트 등지에서 미군과 교전 후 다시 후퇴했고, 모스부르크 안 데어 이자르에서 샤를마뉴 사단의 잔존 병력이 합류하기도 했다. 5월 초까지 바서부르크, 킴제 호수를 거쳐 트라운슈타인 방면으로 계속 밀려났고, 결국 1945년 5월 8일 라이트 임 빈클에서 미군에게 항복하며 짧은 역사를 마감했다.
2. 1. 편성
1945년 3월 27일, 제2차 세계 대전 말기 나치 독일은 바이에른주 바트 퇼츠에 위치한 SS 장교 학교(SS-Junkerschule)의 교직원과 생도들을 주축으로 새로운 무장친위대 사단 편성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학교 이름을 따 'SS 장교 학교 바트 퇼츠'(SS-Junkerschule Bad Tölzde)로 불렸으나, 곧 'SS 장교 학교 사단'(SS-Division Junkerschulede)으로 변경되었다. 최종적으로는 당시 학교 지휘관이었던 리하르트 슐체-코센스에 의해 게르만 신화의 니벨룽겐에서 이름을 따와 '''제38SS척탄병사단 니벨룽겐'''(38. SS-Grenadier-Division „Nibelungen“de)으로 명명되었다.사단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지만 실제 병력 규모는 약 6,000명으로 여단급에 해당했다. 부대는 라인강 상류 검은 숲 지역의 프라이부르크 근방에서 최종적으로 조직되었다.
핵심 인원은 바트 퇼츠 장교 학교 소속이었지만, 전쟁 말기 혼란 속에서 다양한 부대로부터 병력이 보충되었다. 주요 충원 병력은 다음과 같다.
출신 부대 | 내용 |
---|---|
제6SS산악사단 "노르트" | 병사 및 제38SS대전차대대 지휘관 차출 |
제7SS의용산악사단 "프린츠 오이겐" | 독일 민족으로 구성된 중대 및 제38장갑엽병대대 병력 차출 |
제30무장SS척탄병사단 (제1벨라루스) | 지휘관 차출 (SS 경찰 대대 지크링과 함께) |
SS "특별 임무" 장관 호위 대대 (Begleit-Battaillon Reichführer-SSde) | 1945년 4월 9일 편입 |
친위대 호송 대대 | 병력 차출 |
국경 경비대 (Zollgrenzschutzde) | 2개 대대 병력 |
히틀러 유겐트 | 지역 간부 및 멤버로 구성된 일부 대대 |
사단은 2개의 척탄병 연대를 기간으로 삼았다. 제95SS척탄병 연대는 SS 중령 마르쿠스 폴하버(Markus Faulhaber)가, 제96SS척탄병 연대는 SS 중령 발터 슈미트(Walter Schmidt)가 지휘했다. 두 연대 모두 SS 여단 니벨룽겐에서 이관된 부대였다. 제97SS척탄병 연대 편성을 시도했으나 2개 대대 규모에 그쳤다. 또한, 제38SS대전차대대는 1945년 4월 16일 노르트 사단의 제6SS대전차대대를 개편하여 편성했으며, 체코슬로바키아 베네쇼프의 SS 포병 훈련 연대를 개편한 제38SS포병 연대도 곧이어 합류했다. 제38장갑엽병대대는 프린츠 오이겐 사단에서 병력을, 노르트 사단에서 지휘관을 받아 편성되었고, 4월 15일에는 7.5 cm PaK 39 포를 장착한 헤처(Jagdpanzer 38(t)) 약 10대를 수령했다.
초대 사단장은 바트 퇼츠 장교 학교 교장이었던 리하르트 슐체-코센스 SS 상급대령이었으나, 4월 12일 마르틴 슈탕에(Martin Stange) SS 연대지도자로 교체되었다. (하인츠 라머딩과 카를 리터 폰 오버캄프도 지휘관으로 내정되었으나 실제로 부임하지는 않았다.)
2. 2. 전투
1945년 4월 17일, 사단은 가우뷔르템베르크-호엔촐레른의 티티제-노이슈타트를 거쳐 바이에른주 다하우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사단 부대는 제13SS군단에 배속되어 4월 21일 도나우강 전선으로 투입되었다. 부대는 4월 24일에 전투 준비를 완료하고 폴부르크에서 켈하임에 이르는 군단의 우익을 지원하며 미군과 대치했다.그러나 4월 22일, 미군이 오버팔츠의 노이마르크트 인 데어 오버팔츠를 점령하면서 사단은 도나우강 남쪽으로 밀려났다. 4월 26일 새로운 전선으로 철수했으며, 다음 날인 4월 27일까지 이 전선을 유지하다가 도나우강을 건너 후퇴했다. 이 과정에서 제26무장SS척탄병사단(제2헝가리)의 경포병 대대가 사단에 합류하여 전력을 보강했다.
4월 28일부터 29일까지 미군의 강력한 압박 속에서 사단은 란츠후트 방면으로 이동하며 이사르강을 따라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려 했다. 4월 30일에는 란츠후트에서 미국 제14기갑사단과 약 2시간 동안 치열한 시가전을 벌인 끝에 다시 철수해야 했다. 이후 모스부르크 안 데어 이자르에서는 제33SS무장척탄병사단 "샤를마뉴"의 훈련 보충 대대로 구성된 전투단이 합류했다.
5월 초, 사단은 이사르강과 인강 사이 지역에서 미국 제99보병사단과 제14기갑사단의 계속되는 압박을 받으며 후퇴를 거듭했다. 5월 1일에는 바서부르크, 5월 2일에는 킴제 호수, 5월 4일에는 오버보이젠을 거쳐 트라운슈타인까지 밀려났다. 사단은 5월 5일까지 저항을 이어갔으나, 결국 1945년 5월 8일 라이트 임 빈클에서 미군에게 항복했다.
3. 구성
사단은 1945년 3월 27일 바트 퇼츠(
사단으로 명명되었으나, 실제 규모는 약 6,000명 수준의 여단급이었다. 사단은 라인강 상류 슈바르츠발트 지방의 프라이부르크 근방에서 편성 작업을 진행했다.[1]
초기에는 장교 학교 인원으로 구성되었으나, 전쟁 말기 타 부대의 해체 및 재편 과정에서 병력이 충원되었다. 여기에는 1945년 4월 9일 배속된 SS "특별 임무" 친위대 국가지도자 호위대대(
초대 사단장은 바트 퇼츠 장교 학교의 사령관이었던 리하르트 슐체-코센스였으나, 4월 12일 마르틴 슈탕에(
사단의 주요 부대 구성은 다음과 같다.[1][2]
부대명 | 원어명 / 별칭 | 지휘관 / 출신 정보 | 비고 |
---|---|---|---|
사단 참모 | |||
제95SS척탄병연대 | SS 중령 마르쿠스 파울하버 | SS여단 니벨룽겐에서 이관 | |
제96SS척탄병연대 | SS 중령 발터 슈미트 | SS여단 니벨룽겐에서 이관 | |
제97SS척탄병연대 | 2개 대대 규모로 편성 시도 | ||
제38SS포병연대 | SS포병교도연대 전신 | [2] | |
제38SS장갑척탄병대대 | 제6SS산악사단 제6장갑척탄병대대 전신 병력: 프린츠 오이겐 사단 지휘관: 노르트 사단 | 헤처( 4월 17일~24일 괴츠 폰 베를리힝겐 사단 배속[2] | |
제38SS공병대대 | 실제 규모는 소대[2] | ||
제38SS대공포대대 | [2] | ||
제38SS통신대대 | 실제 규모는 소대[2] | ||
제38SS훈련보충대대 | [2] | ||
제38SS운영대대 | 사단 보급 부대 역할[2] | ||
SS경찰대대 지크링 | 제30SS무장척탄병사단 출신 지휘관 포함 | [2] | |
SS "특별 임무" 친위대 국가지도자 호위대대 | 1945년 4월 9일 배속 | ||
국경 경비대 대대 | 2개 대대 | ||
친위대 사령관 친위대 호위대대 | |||
히틀러 유겐트 대대 |
4. 지휘관
사단의 지휘관은 다음과 같다.
계급 | 이름 | 재임 기간 |
---|---|---|
SS대령 | 한스 켐핀 | 1945년 3월 1일 – 1945년 3월 27일 |
SS중령 | 리하르트 슐체-코센스 | 1945년 3월 27일 – 1945년 4월 12일 |
SS대령 | 마르틴 슈탕에 | 1945년 4월 12일 – 1945년 5월 8일 (항복) |
하인츠 라머딩 SS 중장과 카를 리터 폰 오버캄프 SS 소장도 지휘관으로 임명되었으나, 실제로 부임하지는 않았다.
5. 작전 지역
이 사단은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45년 4월부터 5월까지 독일 남부 지역에서 주로 활동했다.
1945년 4월 7일에 7개 대대 규모로 긴급 편성되었으며, 4월 24일에 전투 준비를 완료했다. 이후 도나우강 연안 전선을 방어하던 제13SS군단에 배치되어 미군과 대치했다. 사단은 폴부르크에서 켈하임에 이르는 군단 우익을 지원하는 임무를 맡았다.
4월 26일에는 새로운 전선으로 철수했고, 다음 날인 4월 27일까지 이 전선을 유지하다 도나우강 너머로 다시 철수했다. 이 과정에서 제26SS무장척탄병사단의 경포병 대대가 합류했다. 4월 28일부터 4월 29일까지 강력한 압박 속에서 이잘강을 건너기 위해 란츠후트 방면으로 이동했다.
4월 30일, 란츠후트에서 미국 제14기갑사단과 약 2시간 동안 시가전을 벌인 끝에 철수했다. 다음 날에는 이잘강과 인강 사이 지역으로 물러났으나, 미국 제99보병사단과 제14기갑사단의 압박을 계속 받았다. 이 시기 제33SS무장척탄병사단의 훈련 보충 대대로 구성된 전투단이 합류하기도 했다.
이후 사단은 계속해서 남쪽으로 철수했다. 5월 1일에는 바서부르크, 5월 2일에는 킴제 호수, 5월 4일에는 오버보이젠까지 밀려났다. 결국 5월 5일까지 저항하다 5월 8일에 미군에게 항복했다.
참조
[1]
웹사이트
Lexikon der Wehrmacht - SS-Grenadier-Divisionen
http://www.lexikon-d[...]
2021-04-25
[2]
서적
Mitcham
[3]
서적
Pettibone
[4]
웹인용
waffenss
http://www.waffen-ss[...]
[5]
웹인용
junkerschule
http://www.junkersch[...]
2016-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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