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책략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조선책략은 1880년 김홍집이 일본에서 가져와 고종에게 바친 책으로, 러시아의 남하 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외교 전략을 제시한다. 황준헌이 저술한 이 책은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맺고, 미국과 연결하는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 외교 노선을 통해 자강을 도모할 것을 주장했다. 조선책략은 보수 유생들의 반발과 개화파의 지지를 받으며,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에 영향을 미쳤다. 현재는 '일본해' 표기 문제와 관련하여 논란이 있으며, 일본 극우주의자들이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근거로 사용하기도 한다.
19세기 말, 조선은 서구 열강의 침략 위협과 동아시아 세력 구도의 변화라는 이중고에 직면했다.
(조선책략의 주요 내용 섹션은 하위 섹션에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별도의 내용을 추가하지 않는다.)
2. 조선책략의 배경
2. 1. 국제 정세
러시아는 서쪽 방면으로의 진출이 어려워지자, 동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러한 러시아의 남하 정책은 조선에 직접적인 위협으로 다가왔다.[2] 황준헌은 러시아가 일본으로부터 사할린을 획득하고, 청나라로부터 흑룡강 동쪽 지역을 얻었으며, 두만강 입구에 주둔하는 등 조선을 침략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그는 러시아가 아시아에서 세력을 확장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으며, 조선이 그 주요 목표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2]
이러한 국제 정세 속에서 황준헌은 조선이 생존하기 위한 전략으로 '친중국(親中國), 결일본(結日本), 연미국(聯美國)'을 제시했다. 즉, 청나라와 친하게 지내고, 일본과 관계를 맺고, 미국과 연결하여 스스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3]
3. 조선책략의 주요 내용
3. 1. 친중국(親中國)
황쭌센은 조선이 전통적인 우방인 중국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러시아를 제어할 나라로 중국이 가장 적당하며, 조선은 중국을 섬기기를 예전보다 더욱 힘써야 한다고 보았다.[4]
3. 2. 결일본(結日本)
황준헌은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조선의 안보에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일본이 조선과 가까운 이웃 국가이며, 일본이 땅을 잃으면 조선 또한 스스로를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언급했다.[1] 이는 일본이 조선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공유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위협에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인식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3. 3. 연미국(聯美國)
황쭌센은 미국과의 수교가 조선의 자주독립을 강화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이 서구 열강 중에서도 조선에 대한 침략 의도가 적으며, 조선의 근대화를 지원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보았다.[1] 황쭌센은 미국이 나라를 세운 시초가 영국의 혹독한 학정 때문이었기에, 아시아와 친하고 유럽과는 소원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조선이 미국과 수교하면 우방으로서 구원을 얻고 화를 풀 수 있다고 보았다.[1]
4. 조선책략의 의의와 영향
《조선책략》은 1880년 고종 17년에 김홍집이 수신사로 일본에 갔을 때 가져와 고종에게 바친 책이다.[5] 이 책은 보수적인 유생들에게는 영남 만인소 사건과 같은 심각한 반발을 유발했지만, 개화를 주장하는 새로운 세력들에게는 당시의 국제 정세를 알려주는 지표가 되었다. 또한 1882년 5월 22일 청나라의 주선으로 미국과 수교(《조미수호통상조약》)를 맺는 데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4. 1. 조선의 외교 정책 변화
1880년 고종 17년에 김홍집이 수신사로 일본에 갔을 때 《조선책략》을 가져와 고종에게 바쳤다.[5] 이 책은 보수적인 유생들에게 심각한 반발을 유발하여 1881년 〈영남 만인소 사건〉 등을 일으켰지만, 개화를 주장하는 새로운 세력들에게는 당시의 국제 정세를 알려주는 지표가 되었다. 1882년 5월 22일 청나라의 주선으로 미국과 수교(《조미수호통상조약》)를 맺는 데에도 《조선책략》이 큰 영향을 주었다.4. 2. 개화파와 위정척사파의 갈등
《조선책략》은 1880년 고종 17년에 김홍집이 수신사로 일본에 갔을 때 가져와 고종에게 바친 책이다.[5] 이 책은 조선의 보수적인 유생들에게 심각한 반발을 유발하여 1881년 영남 만인소 사건을 일으켰으며, 개화를 주장하는 새로운 세력들에게는 당시의 국제 정세를 알려주는 지표가 되었다.5. '일본해' 표기 논란
1880년 김홍집이 수신사로 일본에 갔을 때 가져온 《조선책략》에 나오는 "일본의 바다에서 종횡한다면(縱橫於日本海中)"의 '일본해'(日本海)라는 표현은 동해를 가리킨다.[6] 현재 일본 극우주의자들은 이를 근거로 한국인이 '일본해'라는 이름을 썼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조선책략》은 청나라 사람인 황준헌이 쓴 책이므로 이는 사실이 아니다.
참조
[1]
문서
수신사 일기
http://db.history.go[...]
[2]
문서
俄旣不能西略, 乃幡然變計, 欲肆其東封, 十餘年來, 得樺太洲於日本, 得黑龍江之東於中國, 又屯戍圖們江口, 據高屋建瓴之勢, 其經之營之, 不遺餘力者, 欲得志於亞細亞耳, 朝鮮一土, 實居亞細亞要衝, 爲形勝之所必爭, 朝鮮危則中東之勢日亟, 俄欲略地, 必自朝鮮始矣.
[3]
문서
何謂親中國, 東西北背俄, 連界者惟中國, 中國之地大物博, 據亞洲形勝, 故天下以爲能制俄者莫中國若, 而中國所愛之國, 又莫朝鮮若, 爲我藩屬, 己歷千年, 中國緩之以德, 懷之以恩, 未嘗有貪其土地人民之心, 此天下之所共信者也, 况我大淸, 龍興東土, 先定朝鮮而後伐明, 二百餘年, 字小以德, 事大以禮. 嗟夫, 俄爲遞狼秦, 力征經營, 三百餘年, 其始在歐羅巴, 繼在中亞細亞, 至於今日, 更在東亞細亞, 而朝鮮適承其弊, 然則策朝鮮今日之急務, 莫急於防俄, 防俄之策, 如之何, 曰親中國․結日本․聯美國, 以圖自强而己
[4]
문서
向者朝鮮有事, 中國, 必糜天下之餉, 竭天下之力以爭之, 秦西通例, 兩國爭戰, 局外之國, 中立其間, 不得偏助, 惟屬國則不在此例, 今日朝鮮之事中國, 當益加於舊, 務使天下之人曉然於朝鮮, 與我, 誼同一家, 大義己明, 聲援自壯, 俄人, 知其勢之不孤, 而稍存顧忌, 日人量其力之不足敵, 而可與連和, 期外釁潛消, 而國本益固矣, 故曰親中國
[5]
실록
수신사 김홍집이 일본에서 《조선책략》 1책을 증정하므로 가지고 귀국하다
http://sillok.histor[...]
고종실록
1880-09-08
[6]
웹사이트
Korean use the name of "Sea of Japan"
http://sites.google.[...]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