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란도니 공기총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지란도니 공기총은 1778년 바르톨로메우스 지란도니가 개발한 압축 공기식 연발 소총으로, 1779년 요제프 2세에 의해 오스트리아군에 채택되었다. 1780년부터 1815년경까지 오스트리아-터키 전쟁 등에서 사용되었으며, 당시 머스킷보다 긴 유효 사거리와 속사성, 연기 및 발사음이 적은 장점을 가졌다. 22발들이 관형 탄창과 수동 장전 방식을 특징으로 하며, 분리 가능한 에어 탱크를 사용하여 30~50발 발사가 가능했다. 루이스 앤드 클라크 탐험대가 사용했으며, 유럽 각국과 일본에도 영향을 미쳤다. 현대에는 이 총의 기술적 특징과 역사적 중요성이 평가받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공기총 - 10미터 공기소총
10미터 공기 소총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4.5mm 구경의 공기 소총으로 10m 거리의 표적을 사격하는 경기이며, 본선과 결선을 거쳐 소수점 단위까지 채점되는 결선 사격을 통해 순위를 결정하고, 시대에 따라 규칙과 장비가 변화해왔다. - 공기총 - 10미터 공기권총
10미터 공기권총은 10m 거리에서 공기총으로 표적을 사격하는 스포츠 사격 종목으로, 올림픽 정식 종목이며 국제사격연맹 규정에 따라 관리되고 전자 채점 시스템을 사용한다. - 이탈리아의 발명품 - 라디오
라디오는 전파를 이용해 음성 정보를 무선으로 송수신하는 기술 및 장치로, 아날로그 방송에서 디지털 방송과 인터넷 라디오 등으로 발전했으며, 방송, 통신, 위치 측정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주파수 대역과 변조 방식에 따라 구분되며 국제적으로 주파수 관리를 받는다. - 이탈리아의 발명품 - 율리우스력
율리우스력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제정한 역법으로, 365일의 평년과 366일의 윤년으로 구성되며, 태양년과의 오차로 인해 그레고리력으로 대체되었으나, 현재는 일부 지역에서 사용된다.
지란도니 공기총 | |
---|---|
일반 정보 | |
![]() | |
종류 | 공기총 |
원산지 | 신성 로마 제국 |
설계자 | 바르톨로메오 지란도니 |
설계 시기 | 1779년 또는 1780년 |
사용 기간 | 1780년–1816년 |
사용 국가 | 오스트리아 제국 |
제원 | |
무게 | 4.5 kg |
길이 | 120 cm |
탄약 | 구형 탄환 |
구경 | 11.7 mm 또는 13 mm |
탄환 무게 | 11.7 mm 구경: 9.48 g, 13 mm 구경: 13.06 g |
탄속 | 약 152 m/s |
에너지 | 159 J |
급탄 방식 | 20/21발 탄창 또는 호퍼 |
조준기 | 철제 조준기 |
생산 정보 | |
생산량 | 1,300정 |
2. 역사
지란도니 공기총은 문헌에 따라 유효 사정거리가 114~137m(125~150야드)로 기록되어 있으며, 당시 머스킷의 유효 사거리(50~90m)보다 길었다. 더 장거리를 기록한 예도 있다. 총구에서 발사될 때의 에너지는 약 159J(줄)로, 소구경 .22LR의 175J과 비교해도 충분히 살상 가능한 수준이었다. 군용에서 퇴역한 후에는 민간에 사냥총으로 판매되기도 했다.
총신 내부는 7~8조 강선이 일반적이던 당시 소총과 달리 12조의 강선(라이플링)이 새겨져 있었다. 총 본체 우측면에는 22발들이 관형 탄창(튜브형 매거진)이 있었고, 각주형 크로스볼트(후미)를 좌우로 슬라이드하는 수동 장전 장치로 구형 탄환을 후장식으로 장전할 수 있었다. 관형 탄창 앞쪽에는 슬라이드 덮개가 달린 탄환 장전구가 있었고, 오른쪽에는 크로스볼트를 왼쪽으로 밀기 위한 판 스프링이 있었다.
크로스볼트 앞쪽에는 탄환 수납을 위한 움푹 들어간 곳(약실)과 좁은 기도가 있었다. 크로스볼트 왼쪽 면을 손가락으로 눌러 오른쪽으로 슬라이드시키면 움푹 들어간 곳에 탄환이 수납되고, 손가락을 떼면 판 스프링 탄성으로 자동으로 왼쪽으로 슬라이드하여 움푹 들어간 곳과 기도가 총신 및 에어 탱크와 직선으로 정렬된다. 이때 관형 탄창 출구는 크로스볼트에 의해 막힌다.
관형 탄창 내부에는 송탄 스프링이 없어서 총구를 위로 향하게 한 상태에서 중력을 이용해 탄환을 움푹 들어간 곳에 떨어뜨려 장전했다. (중력식 탄창)
관형 탄창 뒤쪽에는 매치락이나 플린트락과 유사한 해머가 있었지만, 이는 내부 기구 작동용이며 타격용은 아니었다. 해머를 들어올리고 방아쇠를 당기면 해머가 떨어지면서 내부 기구가 작동, 에어 탱크 밸브가 순간적으로 열려 압축 공기가 기도를 통해 탄환을 밀어내 발사한다.
2. 1. 개발 배경 및 오스트리아 제국군 채택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요제프 2세는 혁신적인 것을 좋아하여, 1778년 남부 티롤의 시계 제작자 바르톨로메우스 지란도니가 만든 압축 공기식 연발 소총 시제품을 1779년에 채택했다.[1] 한때 운용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레오폴트 2세와 프란츠 2세에 의해 다시 운용되어 1780년부터 1815년경까지 오스트리아군에서 사용되었고, 1787년부터의 오스트리아-터키 전쟁에도 투입되었다.지란도니 공기총은 폭발이나 연소 연기가 없고 발사음이 작다는 장점이 있었다. 또한 점화 기구가 노출된 총에 비해 우천 시 등 물기에 강했고, 탄창을 가지고 있어 당시의 전장식 단발총에 비해 공기가 있는 동안에는 속사성이 크게 우수했다.
개머리판을 겸한 분리 가능한(나사식) 에어 탱크(공기 저장조)는 약 30발~50발의 발사가 가능했지만, 분리된 에어 탱크를 채우기 위해서는 (수동 펌프로 자전거 타이어에 공기를 넣는 것처럼) 약 1,500회의 수동 압축(펌핑)이 필요했다. 그 후, 왜건 탑재형 압축기가 준비되었다. 용량 1리터로 풀 충전 상태에서 54~67기압이 되는 에어 탱크는 리벳으로 고정되고 땜납으로 밀봉된 얇은 철판으로 만들어져 당시 기술로는 제조가 매우 어려웠고 항상 공급이 부족했다. 이 에어 탱크는 총 생산수 1,500정의 총 본체에 대해 4,500개 제조되었다. 게다가 이 총은 매우 섬세하여 에어 탱크의 작은 손상으로 공기 누출이 발생하여 작동 불능이 되었다. 또한 당시의 다른 병기와는 크게 달랐으며, 사용하려면 광범위한 훈련이 필요했다.
2. 2. 루이스 앤드 클라크 탐험대
루이스 앤드 클라크 탐험대는 탐험대에서 만난 거의 모든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에게 이 소총을 시연하기 위해 사용했다.[1][2] 일부 학자들은 메리웨더 루이스가 휴대했던 공기총이 지란도니가 아니라 필라델피아의 아이자야 루켄스가 만든 루켄스라고 주장했다.[3] 그러나 토마스 로드니 대령은 1803년 9월 8일에 "루이스 선장의 바지선을 방문했다. 그는 우리에게 공기총을 보여주었는데, 한 번의 장전으로 22번 발사했다."라고 기록했다.[4] 루켄스의 알려진 모든 공기총은 단발식 전장식 소총이었고 연발식은 아니었으므로, 루이스의 총이 당시 유일한 연발식 공기총인 지란도니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루이스는 일기에 공기총을 구입했다고 적었지만, 언제 어디서 구입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5] 루이스는 다양한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에게 시연하기 위해 공기총을 최소 16번 발사했다. 1806년 1월 24일, 루이스는 "내 공기총도 그들을 매우 놀라게 한다. 그들은 화약 없이 그렇게 자주 발사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고, 그것이 훌륭한 약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썼다.[6][7]루이스 앤드 클라크 탐험대는 거래 거점에서 화약 보급이 필요 없는 이 소총을 사용하여 원정을 수행했고, 원정 중에 만난 아메리카 원주민의 거의 모든 부족을 대상으로 시연을 했다.
2. 3. 일본으로의 전래
1778년 남부 티롤의 시계 제작자 바르톨로메우스 지란도니가 만든 지란도니 공기총은 실용화된 후 유럽 각국으로 퍼져나갔다. 일본에는 네덜란드를 통해 전해졌으며, 1819년 구니토모의 철포 대장장이인 구니토모 잇칸사이에 의해 일본 최초의 국산 공기총이 제작되었다.3. 구조 및 성능
1788년 당시 규정에 따르면, 각 사수는 지란도니 소총과 함께 세 개의 압축 공기 저장소(두 개는 예비용, 하나는 소총에 부착), 청소 막대, 수동 펌프, 납 국자, 그리고 100개의 납 탄환(실린더에 1개, 소총 내장 탄창에 19개, 나머지 80개는 4개의 주석 튜브에 보관)을 휴대해야 했다. 소총에 부착되지 않은 장비는 특수 가죽 배낭에 보관했으며, 저장소의 가죽 개스킷을 촉촉하게 유지하여 밀봉 상태를 유지하고 누출을 방지했다.[11]
지란도니 공기총은 완전히 충전된 공기 저장소로 약 30발을 발사할 수 있었고, 탄환은 약 약 114.30m(약 114m)까지 유효 사거리를 가졌다. 공기 저장소가 비워지면서 위력은 감소했다.[12] 유효 사정거리는 125~150야드(114~137m)로 기록되어 있으며, 당시 머스킷의 유효 사거리(50~90m)보다 길었다. 총구 발사 에너지는 약 159J(줄)로, 소구경 .22LR(175J)과 비교해도 충분히 살상 가능한 수준이었다. 폭발이나 연소 연기가 없고 발사음이 작았으며, 점화 기구가 노출된 총에 비해 우천 시에 강했다. 탄창을 갖춰 전장식 단발총보다 속사성이 우수했고, 군용 퇴역 후에는 민간에 사냥총으로 판매되기도 했다.
개머리판을 겸한 분리형(나사식) 에어 탱크(공기 저장조)는 약 30~50발 발사가 가능했지만, 에어 탱크를 채우려면 약 1,500회의 수동 압축(펌핑)이 필요했다. 이후 왜건 탑재형 압축기가 준비되었다. 용량 1리터, 풀 충전 시 54~67기압인 에어 탱크는 리벳으로 고정하고 땜납으로 밀봉한 얇은 철판으로 만들어져 제조가 어려웠고, 항상 공급이 부족했다. 총 생산량 1,500정에 대해 에어 탱크는 4,500개가 제조되었다. 이 총은 섬세하여 에어 탱크 손상 시 공기 누출로 작동 불능이 되기 쉬웠고, 사용에 광범위한 훈련이 필요했다.
3. 1. 작동 원리
이 총은 약 1.22m(약 1.2m) 길이에 약 4.54kg(약 4.5kg)의 무게로, 당시 보병 머스킷과 거의 같은 크기와 무게였다. .46 또는 .51 구경의 탄환을 발사했으며, 20발을 장전할 수 있는 튜브형 스프링 방식의 탄창을 가지고 있었다.[10][8][9] 일부는 중력식 탄창을 사용하기도 했다. 화약과 탄환을 장전하기 위해 사수가 일어서야 했던 동시대의 전장식 머스킷과는 달리, 이 총은 누운 상태에서도 가로 챔버 바를 포구에서 당겨 탄창에서 탄환을 공급하고, 스프링의 도움을 받아 다시 원래 위치로 되돌려 탄환을 재장전할 수 있었다.[10]총신 내부는 당시 소총이 7~8조인 것에 비해 12조의 라이플링이 새겨져 있었다. 각주형의 크로스볼트(후미)가 좌우로 슬라이드하는 것만으로 구형 탄환을 장전(후장식)할 수 있는 수동 장전 장치가 달린 22발들이 관형 탄창(튜브형 매거진)을 총 본체 우측면에 갖추고 있었다. 관형 탄창의 앞쪽에는 슬라이드 덮개가 달린 탄환 장전구가 있었다. 관형 탄창의 오른쪽에 크로스볼트를 왼쪽으로 밀어넣기 위한 판 스프링이 있었다.
크로스볼트에는 앞쪽에 탄환을 수납하기 위한 움푹 들어간 곳(약실에 상당)과 그 뒤에 좁은 기도가 있어, 위에서 보면 움푹 들어간 곳을 관형 탄창의 출구 위치에 맞추도록 크로스볼트의 왼쪽 면을 손가락으로 눌러 오른쪽으로 슬라이드시켜 움푹 들어간 곳에 탄환이 수납되면 손가락을 떼면 관형 탄창 오른쪽의 판 스프링의 탄성에 의해 자동으로 왼쪽으로 슬라이드하여 움푹 들어간 곳과 기도가 총신과 에어 탱크에 직선으로 정렬되도록 원래 위치로 돌아간다. 정위치에서는 관형 탄창의 출구가 크로스볼트에 의해 막혀 있다.
관형 탄창 내부에는 탄환을 뒤로 밀어내는 스프링(송탄 기구)이 없으므로, 총구를 위로 향하게 한 상태에서 중력을 이용하여 탄환을 움푹 들어간 곳에 떨어뜨려 장전 작업을 한다. 따라서 중력식 탄창(그래비티 매거진)이라고도 불린다.
관형 탄창의 뒤쪽에 매치락 총이나 플린트락 총과 유사한 해머를 갖추고 있지만, 내부 기구를 작동시키기 위한 것이며 타격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해머를 들어올리고 방아쇠를 당기면 해머가 떨어지고 내부 기구가 작동하여 순간적으로 에어 탱크의 밸브가 열려 압축 공기가 기도를 통과하여 움푹 들어간 탄환을 밀어내 발사한다.
클럽 모양의 개머리판은 공기 저장소 역활을 했다. 지란도니 공기총은 완전히 충전된 공기 저장소로 유용한 압력에서 30발을 발사할 수 있었다. 이 탄환은 완전히 충전된 공기 저장소에서 약 약 114.30m(약 114m)까지 유효했다. 공기 저장소가 비워지면서 위력이 감소했다.[12]
3. 2. 성능 및 특징
이 총은 약 1.22m 길이에 약 4.54kg 무게로, 당시 보병 머스킷과 거의 같은 크기와 무게였다. .46 또는 .51 구경의 탄환을 발사했으며, 20발을 장전할 수 있는 튜브형 스프링 방식의 탄창을 가지고 있었다.[10][8][9] 일부 무기들은 중력식 탄창을 사용하기도 했다. 화약과 탄환을 장전하기 위해 사수가 일어서야 했던 동시대의 전장식 머스킷과는 달리, 이 총은 누운 상태에서도 가로 챔버 바를 포구에서 당겨 탄창에서 탄환을 공급하고, 스프링의 도움을 받아 다시 원래 위치로 되돌릴 수 있어 탄환을 재장전할 수 있었다.[10]1788년의 당시 규정에 따르면, 각 사수는 이 소총, 세 개의 압축 공기 저장소 (두 개의 예비 및 하나는 소총에 부착), 청소 막대, 수동 펌프, 납 국자 및 100개의 납 탄환 (실린더에 1개, 소총 내장 탄창에 19개, 나머지 80개는 4개의 주석 튜브에 보관)을 갖춰야 했다. 소총에 부착되지 않은 장비는 특수 가죽 배낭에 보관되었다. 또한, 좋은 밀봉을 유지하고 누출을 방지하기 위해 저장소의 가죽 개스킷을 촉촉하게 유지해야 했다.[11]
공기 저장소는 클럽 모양의 개머리판에 있었다. 지란도니 공기총은 완전히 충전된 공기 저장소로 유용한 압력에서 30발을 발사할 수 있었다. 이 탄환은 완전히 충전된 공기 저장소에서 약 약 114.30m까지 유효했다. 공기 저장소가 비워지면서 위력이 감소했다.[12]
많은 문헌에는 지란도니 공기총의 유효 사정거리가 125~150야드(114~137m)로 기록되어 있으며(참고로 당시 머스킷의 유효 사거리는 50~90m 이하였다), 더 장거리를 기록한 예도 있다. 총구에서 발사될 때의 에너지는 약 159J(줄)로, 소구경 .22LR의 175J과 비교해도 나쁘지 않은 수치이며, 충분히 살상 가능했다. 폭발이나 연소 연기가 없고, 발사음이 작다는 장점도 있었다. 또한 점화 기구가 노출된 총에 비해 우천 시 등 물기에 강하다는 장점도 있었다. 탄창을 가지고 있어 당시의 전장식 단발총에 비해 공기가 있는 동안에는 속사성이 크게 우수했다.
총신 내부는 당시 소총이 7~8조인 것에 비해 12조의 라이플링이 새겨져 있었다. 각주형의 크로스볼트(후미)가 좌우로 슬라이드하는 것만으로 구형 탄환을 장전(후장식)할 수 있는 수동 장전 장치가 달린 22발들이 관형 탄창(튜브형 매거진)을 총 본체 우측면에 갖추고 있었다. 관형 탄창 앞쪽에는 슬라이드 덮개가 달린 탄환 장전구가 있었다. 관형 탄창 오른쪽에 크로스볼트를 왼쪽으로 밀어넣기 위한 판 스프링이 있었다.
크로스볼트에는 앞쪽에 탄환을 수납하기 위한 움푹 들어간 곳(약실에 상당)과 그 뒤에 좁은 기도가 있어, 위에서 보면 움푹 들어간 곳을 관형 탄창의 출구 위치에 맞추도록 크로스볼트의 왼쪽 면을 손가락으로 눌러 오른쪽으로 슬라이드시켜 움푹 들어간 곳에 탄환이 수납되면 손가락을 떼면 관형 탄창 오른쪽의 판 스프링의 탄성에 의해 자동으로 왼쪽으로 슬라이드하여 움푹 들어간 곳과 기도가 총신과 에어 탱크에 직선으로 정렬되도록 원래 위치로 돌아간다. 정위치에서는 관형 탄창의 출구가 크로스볼트에 의해 막혀 있다.
관형 탄창 내부에는 탄환을 뒤로 밀어내는 스프링(송탄 기구)이 없으므로, 총구를 위로 향하게 한 상태에서 중력을 이용하여 탄환을 움푹 들어간 곳에 떨어뜨려 장전 작업을 한다. 따라서 중력식 탄창(그래비티 매거진)이라고도 불린다.
관형 탄창 뒤쪽에 매치락 총이나 플린트락 총과 유사한 해머를 갖추고 있지만, 내부 기구를 작동시키기 위한 것이며 타격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해머를 들어올리고 방아쇠를 당기면 해머가 떨어지고 내부 기구가 작동하여 순간적으로 에어 탱크의 밸브가 열려 압축 공기가 기도를 통과하여 움푹 들어간 탄환을 밀어내 발사한다.
개머리판을 겸한 분리 가능한(나사식) 에어 탱크(공기 저장조)는 약 30발~50발의 발사가 가능했지만, 분리된 에어 탱크를 채우기 위해서는(수동 펌프로 자전거 타이어에 공기를 넣는 것처럼) 약 1,500회의 수동 압축(펌핑)이 필요했다. 그 후, 왜건 탑재형 압축기가 준비되었다. 용량 1리터로 풀 충전 상태에서 54~67기압이 되는 에어 탱크는 리벳으로 고정되고 땜납으로 밀봉된 얇은 철판으로 만들어져 당시 기술로는 제조가 매우 어려웠고 항상 공급이 부족했다. 이 에어 탱크는 총 생산수 1,500정의 총 본체에 대해 4,500개 제조되었다. 게다가 이 총은 매우 섬세하여 에어 탱크의 작은 손상으로 공기 누출이 발생하여 작동 불능이 되었다. 또한 당시의 다른 병기와는 크게 달랐으며, 사용하려면 광범위한 훈련이 필요했다.
참조
[1]
웹사이트
The firearms of the Lewis and Clark Expedition
http://www.westernex[...]
2005-03-12
[2]
Youtube
Girardoni air rifle as used by Lewis and Clark. A National Firearms Museum Treasure Gun.
https://www.youtube.[...]
[3]
서적
Weapons of the Lewis and Clark Expedition
The Arthur H. Clark Co.
2012
[4]
서적
A Journey Through the West: Thomas Rodney's 1803 Journal from Delaware to the Mississippi Territory
Ohio University Press
1997
[5]
서적
Weapons of the Lewis and Clark Expedition
The Arthur H. Clark Co.
2012
[6]
서적
The Jpurnals of the Lewis and Clark Expedition
University of Nebraska Press
[7]
서적
Weapons of the Lewis and Clark Expedition
The Arthur H. Clark Co.
2012
[8]
문서
[9]
문서
Die Entwicklung der Handfeuerwaffen im österreichischen Heere
1896
[10]
서적
Repeating and Multi-Fire Weapons: A History from the Zhuge Crossbow Through the AK-47
https://books.google[...]
2018-04-04
[11]
문서
[12]
문서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