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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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최의는 고려 무신정권 시기 인물로, 최충헌의 증손자이자 최우의 손자이며, 아버지 최항의 뒤를 이어 무신정권을 계승했으나, 1258년 김인준, 유경 등에 의해 살해당하며 최씨 무신 정권은 종말을 맞이했다. 그는 1255년 전중내급사로 임명되었고, 1257년 아버지 최항 사후 교정별감이 되어 정방 정치를 인수했다. 집권 초기에는 민심을 얻기 위해 노력했으나, 측근들의 참소와 부패한 행위로 인해 백성들의 지지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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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의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최의 |
한자 표기 | 崔竩 |
로마자 표기 | Choe Ui |
직위 | |
직위명 | 고려의 교정별감 |
임기 시작 | 1257년 |
임기 종료 | 1258년 |
전임 | 최항 |
후임 | 김준 |
개인 정보 | |
출생 | 1233년 |
사망 | 1258년, 강화도 |
배우자 | 이씨 부인 |
아버지 | 최항 |
정치 | |
정치 체제 | 고려 |
군주 | 고종 |
군사 경력 | |
소속 | 고려군 |
참전 | 고려-몽골 전쟁 |
가문 | |
가문 | 우봉 최씨 |
기타 정보 | |
종교 | 불교 |
2. 생애
1233년에 태어난 최의는 아버지가 승려였고, 수려한 외모와 조용한 태도를 지녔으며 과묵하고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노비였으나, 최항의 정실 부인이 자녀를 낳지 못해 가문을 이을 후계자로 선택되었다. 그는 젊은 시절 예기(芮起)에게 시와 서예를, 권위(權韙)와 임익(任翊)에게 정치를, 정세신(鄭世臣)에게 의례를 배웠다.
1255년(고종 42년)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 궁중 관료)로 임명되었다. 1257년 아버지 최항이 죽자 선인열(宣仁烈), 유능(柳能) 등이 그를 보호하며 아버지의 권력을 계승하도록 도왔다. 그 결과, 국왕은 그를 차장군(借將軍)으로 임명하고 교정별감 칭호를 물려주도록 허락했다.
최의는 민심을 얻기 위해 창고를 열어 굶주린 백성들에게 구호 물품을 제공하고, 왕실 창고에 2,570석의 쌀을 기증했다. 또한 흉작으로 인해 관리와 일반 백성들에게 구호 물품을 제공하기 위해 자신의 창고를 열었다. 같은 해 우부승선(右副承宣)으로 임명되었다.
처음에는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노비의 아들이라는 낮은 신분 때문에 고위 관리들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다. 또한, 초기 통치의 선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1258년, 변식(邊軾)과 안홍민(安洪敏)을 강화수획사(江華收獲使)로 임명해 약탈을 자행하게 했고, 노비 이공주(李公柱)에게 낭장(郎將) 직위를 부여하는 등 부패한 행위를 저질렀다. 현명한 학자들을 무시하고 최양백(崔良伯)과 유능(柳能)과 같은 경박한 측근들만을 신뢰했으며, 기근 발생 시 구호 물품을 제공하지 못해 백성의 지지를 잃었다.
결국, 1258년 김준(金俊), 임연(林衍), 유경(柳璥)이 쿠데타를 일으켜 그를 살해했다. 이는 4대에 걸쳐 약 60년 동안 지속된 최씨 무신 정권의 종말을 알렸다.
2. 1. 생애 초기
최항이 승려로 있을 때 송서(宋壻)의 여종과 정을 통해 최의를 낳았다. 아버지 최항은 어려서 승려가 되었으나, 할아버지 최우에게 정실에게서 자식이 없어 승려에서 환속되었다. 그런데 아버지 최항 역시 정실에게 자식이 없어 송서의 여종에게서 얻은 그를 후계자로 삼았다.[1]최항이 적자가 없어 최의를 후사로 삼고 경림사(景淋師) 예기(芮記)가 시와 서예를, 권위(權韙)·임익(任翊) 등이 정치를, 정세신(鄭世臣)이 예절을 가르치게 하였다.[1] 1233년에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승려였다. 수려한 외모, 조용한 태도, 과묵한 성격으로 알려졌으며, 매우 수줍음이 많았다. 어머니는 노비였지만, 최항의 적실 부인이 자녀를 낳지 못했기에 가문을 잇는 후계자로 선택되었다. 젊은 시절 예기(芮起)에게 시와 서예를, 권위(權韙)와 임익(任翊)에게 정치를, 정세신(鄭世臣)에게 의례를 배웠다.
1255년(고종 42년) 전중내급사(殿中內給事)로 임명되었다.
2. 2. 집권과 몰락
1257년 아버지 최항이 죽자 교정별감이 되어 정방 정치를 인수했다. 추밀원부사 판이병부 어사대사(樞密院副使判吏兵部御使臺使)로 임명했으나 사양했다.[1]연안의 주택과 정평궁(靖平宮)을 왕부(王府)에 바쳤으며, 재산 가운데 쌀 2천 5백 70여 섬을 내장원(內莊院)에, 포백유밀(布帛油蜜)을 대부시(大府寺)에 바치고, 흉년에 창고를 풀어 권무(權務)·대정(隊正)·근장(近仗), 좌우위(左右衛) 및 신호위(神虎衛) 등의 교위(校尉) 이하와 방리(坊里)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1] 추밀원부사를 또 사양하고 우부승선이 되어 장군 변식(邊軾) 등으로 강화수획사(江華收獲使)를 삼아 약탈을 자행케 하였고, 노비에게 벼슬을 주는 특례를 만든 아버지 최항의 본을 따서 노비 이공주(李公柱)에게 낭장의 벼슬을 주었다.[1]
현량한 선비를 잘 대우하지 않고 경박한 유능(柳能)·최양백(崔良伯) 등과 사귀고 그들의 참소를 듣고 살육을 함부로 하여 나날이 비난이 높아갔다.[1]
1258년 대사성 유경, 낭장 김인준(金仁俊), 별장 차송우(車松祐) 등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국정을 고종에게 돌리니 최씨의 60년 정권이 이에서 끝났다.[1]
3. 가족 관계
4. 기타
2012년 MBC 드라마 《무신》에서 이도영이 최의 역을 연기했고, 백종민은 아역을 연기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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