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안군
1. 개요
연안군은 황해남도 동남부에 위치하며 개성시와 가깝다. 연백평야가 펼쳐져 있으며, 염전이 발달했다. 고구려 시대에는 동음홀로 불렸으며, 고려 시대에는 연안부로 개칭되었다. 1413년 연안도호부가 설치되어 황해도에 이관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연백군에 통합되었다가, 1952년 북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연안군이 설치되어 현재에 이른다. 현재 1읍, 1노동자구, 27개 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연안읍에는 연안성이 있다. 배천선을 통해 철도 수송을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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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
| 도 | 황해남도 |
| 군청 소재지 | 연안읍 |
| 종류 | 군 |
|---|---|
| 읍 | 1개 |
| 구 | 1개 |
| 리 | 27개 |
| 면적 | 479.37km² |
|---|
| 총 인구 (2008년) | 158,845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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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군 -
오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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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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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악기)
공은 금속으로 제작된 타악기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의식, 신호, 음악 연주 등에 사용되며, 형태와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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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회의
국무회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의장으로, 예산, 법률안, 외교, 군사 등 국정 현안을 심의하는 중요한 기관이며,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으로 구성되고, 정례회의는 매주 1회, 임시회의는 필요에 따라 소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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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악기)
공은 금속으로 제작된 타악기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의식, 신호, 음악 연주 등에 사용되며, 형태와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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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회의
국무회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의장으로, 예산, 법률안, 외교, 군사 등 국정 현안을 심의하는 중요한 기관이며,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으로 구성되고, 정례회의는 매주 1회, 임시회의는 필요에 따라 소집된다.
2. 지리
황해남도 동남부에서 남쪽으로 황해를 바라보는 곳에 위치한다. 개성시와 가까우며 동쪽으로 배천군을 지나면 개성시이다. 북쪽은 봉천군, 서쪽은 청단군이다.
연백평야가 펼쳐진 평지이다. 군의 중앙부와 남부가 경기만으로 돌출해 있으며, 염전이 발달해 있다.
동쪽으로는 백천군, 서쪽으로는 청단군, 북쪽으로는 봉천군과 접한다.
3. 역사
연안은 본래 고구려 때 동음홀(冬音忽) 또는 시염성(鼓?城)으로 불리다가, 신라 때 해고군(海皐郡)으로 고쳐졌다. 고려 초에는 염주(鹽州)로 개칭되었고, 이후 영응(永膺)·석주(碩州)를 거쳐 충렬왕 때 온주목(溫州牧)으로 승격되었다. 충선왕 때 연안부(延安府)가 되었다. 조선 태종 13년(1413)에는 도호부가 설치되고 경기도에서 황해도로 이관되었다. 1895년에는 연안군이 되었다가, 1914년 일제강점기에 배천군과 평산군의 일부를 합하여 연백군으로 개칭되었다. 1935년 연안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광복 후, 38선을 경계로 미군과 소련군이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면서 연백군은 남북으로 분단되었다. 남한 지역은 벽성군의 일부 지역을 흡수하여 경기도 연백군으로, 북한 지역은 일부 지역을 상실한 채 유지되었다.
한국 전쟁 중인 1952년 12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연백군은 연안군과 배천군으로 분리되었다. 이때 연안군은 용도면, 괘궁면, 호남면, 봉서면, 해성면, 송봉면의 전역과 목단면, 호동면, 봉북면, 해룡면, 연안면의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만들어졌다. 1954년에는 황해남도에 편입되었다.
3.1. 연표
* 고려 : 염주로 불렸다.
* 1413년 : 연안도호부가 설치되었다.
* 1895년 : 해주부 연안군(23부제)이 되었다.
* 1914년 4월 1일 : 일제의 군면 통폐합에 따라 황해도 백천군과 합쳐져 연백군의 일부가 되었다.
* 1952년 12월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군면리 통폐합에 따라 황해도 남연백군 용도면, 호남면, 봉서면, 해성면, 송봉면, 연안면, 해룡면, 괘궁면 및 호동면, 봉북면의 각 일부, 연백군 괘궁면, 목단면을 가지고 연안군을 설치하였다. 연안군에 연안읍, 자양리, 소정리, 호남리, 나진포리, 개안리, 장곡리, 용호리, 해월리, 소아리, 고포리, 봉덕리, 아현리, 창덕리, 도남리, 천태리, 발산리, 부흥리, 풍천리, 정촌리, 와룡리, 청화리, 호서리, 화양리, 신양리, 해남리, 흥산리, 청정리가 설치되었다.(1읍 27리)
* 1954년 10월 : 황해도가 분할됨에 따라, 황해남도 연안군이 되었다.(1읍 27리)
* 1956년 9월 : 정촌리의 일부가 분리되어 오현리가, 호서리와 호남리의 각 일부가 합병되어 송호리가, 청정리의 일부가 분리되어 심평리가 각각 설치되었다.(1읍 30리)
* 1958년 6월 : 해남리의 일부가 분리되어 염전 노동자구가 설치되었다.(1읍 1노동자구 30리)
* 1974년 5월 : 흥산리, 심평리, 청정리가 청단군에 편입되었다.(1읍 1노동자구 27리)
* 1991년 11월 : 고포리가 동산리로 개칭되었다.(1읍 1노동자구 27리)
4. 행정 구역
연안군은 1개의 읍, 1개의 노동자구, 27개의 리로 구성되어 있다.
4.1. 연안읍 (延安邑)
연안읍(延安邑, Yŏnan-ŭp)은 연안군의 동쪽에 위치한 읍이다. 1952년에 읍으로 형성되었으며 연안군의 행정 중심지이다. 연안읍에는 식료품, 직물, 도자기 공장과 집단 농장이 있다. 연안읍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보 제85호인 연안성이 있다.
4.2. 염전로동자구 (鹽田勞動者區)
연안군 남쪽 해안에 위치한 노동자구로, 염전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 이 지역은 소금 생산을 전문으로 한다. 한국 전쟁 이전에는 대한민국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북한에 편입된 후 대한민국의 소금 생산에 타격을 주었다.
4.3. 리 (里)
연안군은 1읍(연안읍(延安邑)), 1구(염전로동자구(鹽田勞動者區))와 27개 리로 구성되어 있다.
| 리(里) 이름 | 설명 |
|---|---|
| 아현리(雅峴里) | 의현리와 탁용리의 일부를 병합하여 형성되었으며, 아름다움을 뜻하는 아(雅) 자가 더해졌다. 산악 지형이며 수양산맥의 일부이다. |
| 장곡리(長谷里) | 1914년 연백군에 리(里)로 형성되었다. 긴 계곡 때문에 장곡(長谷)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
| 자양리(紫陽里) | 붉은 흙과 햇볕이 잘 드는 땅에서 유래하여 명명되었다. |
| 정촌리(鼎村里) | 정 생산으로 인해 명명되었다. |
| 송호리(松湖里) | 송야리와 호남리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
| 창덕리(氅德里) | 선비들이 창의(氅衣)를 입고 덕(德)을 과시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
| 청화리(淸華里) | 정개리와 청화동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
| 천태리(天台里) | 높은 산을 의미하는 '천태(Chontae)'라는 용어에서 유래되었다. |
| 해남리(海南里) | 봉대산이 있다. |
| 해월리(海月里) | 해월산에서 이름을 따왔다. 한국 전쟁 이후에 형성된 호두나무 숲이 있다. |
| 호남리(湖南里) | 남대지 연못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
| 호서리(湖西里) | 남대지 연못 서쪽에 위치해 있다. |
| 화양리(華陽里) | 햇볕이 잘 드는 토지 때문에 명명되었다. |
| 개안리(開安里) | 두 물줄기 안에 위치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
| 오현리(梧玄里) | 오성리와 현죽리에서 이름을 따왔다. |
| 발산리(鉢山里) | 밥그릇을 닮아 붙여진 발산에서 이름을 따왔다. |
| 봉덕리(鳳悳里) | 봉덕사(鳳悳寺)의 '봉(鳳)'과 덕산(德山)의 '덕(悳)'을 따서 이름 지어졌다. 밤과 감으로 유명하다. |
| 부흥리(富興里) | 부토리와 흥군리를 합병하여 형성되었다. 쌀로 유명하다. |
| 풍천리(楓川里) | 단풍나무와 강으로 인해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
| 라진포리(羅津浦里) | 항구 때문에 이와 같이 이름 붙여졌다. |
| 룡호리(龍虎里) | 용각산(Yonggak mountain)과 범뫼(Tiger mound)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옹기를 생산한다. |
| 신양리(新陽里) | 일신리와 초양리가 합쳐져 형성되었다. |
| 소아리(小雅里) | 소현리와 아현리를 합쳐 형성된 리(里)이다. 청동기 시대 거울이 발견되었다. 골몰과 재몰 마을이 위치해 있다. 얼음이 발견되는 빙석동이 이곳에 위치해 있다. |
| 소정리(素井里) | 이 지역에 위치한 우물을 따서 명명된 리(里)이다. |
| 도남리(桃南里) | 과거 토성리의 하위 행정 구역이었고 평산군 남쪽에 위치해 있어 이와 같이 명명되었다.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은 도남리 제12작업반의 집단농장 지역의 농업 생산 성과에 관한 기사를 보도했다. |
| 동산리(東山里) | 동쪽에 있는 산 때문에 그렇게 이름 붙여진 리(里)이다. 원래 고포리로 불렸으나 1991년에 현재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
| 와룡리(臥龍里) | 원래 송청면의 일부였으나 와룡산(용이 엎드린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 아래의 마을이라 하여 현재의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들판으로 유명하며, 와룡 집단농장이 이곳에 위치해 있다. 1897년 미국 감리교 선교사 H.G. 존스가 선교 캠프로 사용했던 지역인 나무골이 이곳에 위치해 있었다. 현재 이 지역에는 현지 지도 모습을 묘사한 북한 선전 모자이크 벽화 "언제나 인민을 위한 길에 함께 계시며"가 전시되어 있다. 삼종구지개라는 강과 함께 삼종구지 연못이 와룡리 서쪽에 위치해 있다. 돌봉산은 와룡리 남쪽에 위치해 있다. 이 리(里)에는 소나무로 유명한 솔발말이라는 마을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