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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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카날은 1957년에 개봉한 안제이 바이다 감독의 폴란드 영화로, 1944년 바르샤바 봉기 말기에 독일군을 피해 지하 수로를 통해 이동하려는 폴란드 저항군 부대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겪는 인물들의 고뇌와 좌절을 통해 폴란드 영웅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시하며, 단테의 신곡과 같은 지옥 묘사와 비교되기도 한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으며, 2019년 칸 영화제에서 복원된 버전이 상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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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날 (영화) - [영화]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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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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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안제이 바이다 |
각본 | 예지 스테판 스타빈스키 |
출연 | 테레사 이제에프스카 타데우시 얀차르 비엔치스와프 글린스키 타데우시 그비아즈도프스키 스타니스와프 미쿨스키 에밀 카레비치 마치에이 마치에예프스키 블라데크 셰이발 테레사 베레조프스카 |
촬영 | 예지 립만 |
음악 | 얀 크렌츠 |
제작사 | KADR 니폰 시네마 코퍼레이션 (NCC) = 닛카츠 도요 영화 (1979년 상영 당시) |
개봉일 | 1957년 4월 20일 (폴란드) |
상영 시간 | 95분 |
언어 | 폴란드어 |
제작 | |
제작 국가 | 폴란드 |
관련 정보 | |
칸 영화제 | 칸 영화제: 카날 |
2. 줄거리
1944년 9월, 바르샤바 봉기 막바지에 몰린 폴란드 국내군 저항군 부대가 독일군을 피해 지하 수로를 통해 도시 중심부로 이동하려 한다. 자드라 중위가 이끄는 부대는 바르샤바 남부 모코투프 구역에서 하수도를 통해 퇴각하라는 명령을 받는다.[8]
부상당한 코랍과 그를 돕는 데이지를 포함한 대원들은 어둡고 좁은 지하 수로에서 길을 잃는다. 공포와 절망 속에서 일부는 정신을 잃거나 죽음을 맞이하는 등 극한 상황에 놓인다. 데이지와 코랍은 강으로 이어지는 출구를 찾지만 쇠창살로 막혀 좌절하고, 몬드리와 할린카, 미하우 역시 길을 잃고 헤매다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자드라와 쿨라, 스묵워는 다른 출구를 찾지만 함정이었고, 스묵워는 목숨을 잃는다. 자드라는 쿨라의 거짓말을 알고 그를 쏜 뒤, 병사들을 찾기 위해 다시 하수도로 내려간다.[8]
2. 1. 주요 등장인물
- 비엔치스와프 글린스키 - 자드라 중위 역: 부대를 이끄는 책임감 강한 인물이다.
- 타데우시 얀차르 - "코라브" (야체크) 역: 젊은 사관후보생으로, 부상당한 상태로 데이지의 도움을 받는다.
- 테레사 이제프스카 - "스토크로트카" (데이지) 역: 코랍을 돕는 여성 대원으로, 그에게 사랑을 느낀다.
- 에밀 카레비치 - "몬드리" (현명한) 중위 역: 부관 중위로, 할린카와 사랑에 빠지지만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36]
- 테레사 베레조프스카 - 할린카 역: 몬드리 중위와 사랑에 빠지는 메신저 소녀이다.
- 블라덱 시발 - 미하우 (작곡가) 역: 아내와 아이를 찾기 위해 지하 수로에 들어선다.
- 타데우시 그비아즈도프스키 - 쿨라 (탄환) 상사 역: 자드라 중위에게 거짓말을 하고 부대를 버린 후 죄책감에 시달린다.
- 스타니스와프 미쿨스키 - "스무크워" (날씬이) 역
- 마체이 마체예프스키 - "구스타프" 역
- 얀 엔글레르트 - 제필 역
2. 2. 상세 줄거리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44년 바르샤바. 폴란드 국내군의 바르샤바 봉기는 독일군의 무자비한 공격으로 궁지에 몰려 비참한 최종 단계에 이르렀다.자드라 중위가 이끄는 중대는 지하 하수도를 통해 시 중심부로 이동하여 활동을 계속하려 한다. 그러나 대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일부는 발광하거나 공포심을 견디지 못하고 맨홀 밖으로 나가 독일군에게 사살당한다.
부상당한 코랍과 그를 돕던 데이지는 출구를 찾았지만, 강으로 흘러드는 수로였다. 자드라와 두 명의 대원은 목적한 출구를 찾았지만, 쇠창살과 폭약이 설치되어 있었다.
2. 2. 1. 바르샤바 봉기, 그리고 지하로의 퇴각
1944년 9월 25일, 바르샤바 봉기 마지막 날, 중위 자드라는 43명의 병사와 민간인으로 구성된 부대를 이끌고 바르샤바 남부의 고립된 모코투프 구역 폐허 속 새로운 위치로 이동한다.적에게 포위된 자드라는 하수도를 통해 도시 중심부로 퇴각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동할 수 있는 사람은 27명으로 줄었고, 그들은 오물을 헤치며 나아간다.
자드라는 안내자 데이지에게 코랍을 돕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데이지는 다른 사람들은 충분히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드라는 동의하지만, 두 사람은 점점 더 뒤쳐진다. 빌차 거리의 지정된 출구에 도착했을 때, 코랍은 위로 경사진 터널을 올라갈 힘이 없어 잠시 쉬고, 반대편 벽에 있는 그래피티를 발견하지만 제대로 알아볼 수 없다. 데이지는 "나는 야넥을 사랑해"라고 쓰여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 이름은 코랍의 첫 이름인 야첵이다. 데이지는 강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결정하고, 강은 불과 짧은 거리에 있으며 코랍이 멈추지 못하게 한다. 마침내 햇빛을 보지만, 코랍은 반쯤 눈이 멀고 힘이 다 떨어진 상태였다. 그는 출구가 쇠창살로 막혀 있다는 것을 볼 수 없었다.[8] 데이지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며 코랍에게 키스하고 잠시 쉴 수 있다고 말한다.
주요 그룹은 잠시 자드라를 따르지만, 데이지가 없으면 길을 잃는다. 자드라가 잠깐 휴식을 취한 후 쿨라 상사에게 나머지 병사들에게 앞으로 가라고 명령하자, 그들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쿨라는 거짓말을 하며 자드라가 계속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그들을 따르고 있다고 말한다. 결국, 자드라와 쿨라를 따라가는 남은 병사는 정비공 스묵워 뿐이다.
한편, 몬드리, 할린카, 미하우도 길을 잃는다. 미하우는 정신을 잃고 오카리나를 연주하며 떠돈다. 막다른 길에 이르자 몬드리는 살아야 할 사람이 있다고 외친다. 할린카가 누구냐고 묻자, 몬드리는 아내와 아이가 있다고 말한다. 할린카는 손전등을 끄라고 요청한 다음, 스스로 총을 쏜다. 몬드리는 출구를 찾지만, 하수도에서 나오자마자 독일군 병사에게 무장 해제당하고, 같은 맨홀을 통해 나온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안뜰에 배치된다. 절망한 그는 이미 처형된 다른 사람들의 시체 옆에 무릎을 꿇는다.
자드라, 쿨라, 스묵워는 빌차 거리의 출구를 놓치지만 다른 출구를 찾는다. 그러나 그곳은 함정이었다. 스묵워는 두 개의 독일 수류탄을 해체하지만, 세 번째 수류탄에 의해 사망한다. 자드라와 쿨라는 하수도에서 나와 폐허가 된 도시의 버려진 지역에 있는 자신들을 발견한다. 자드라가 쿨라에게 나머지 병사들을 데려오라고 말하자, 쿨라는 거짓말을 했고 오래전에 그들을 버려두었다고 시인한다. 격분한 자드라는 쿨라를 쏘고 마지못해 하수도로 다시 내려가 자신의 병사들을 찾는다.
2. 2. 2. 지하 수로에서의 혼란과 절망
1944년 9월 25일, 바르샤바 봉기 마지막 날, 중위 자드라가 이끄는 43명의 병사와 민간인 부대는 바르샤바 남부 모코투프 구역에서 하수도를 통해 도시 중심부로 퇴각하라는 명령을 받는다.[8] 이동 가능한 인원은 27명으로 줄었고, 이들은 오물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주요 그룹은 안내자 데이지가 없어서 길을 잃는다. 몬드리, 할린카, 미하우도 길을 잃고, 미하우는 정신을 잃고 오카리나를 연주한다. 막다른 길에서 몬드리는 아내와 아이가 있다고 말하며 살아야 한다고 외치지만, 할린카는 스스로 총을 쏴 목숨을 끊는다. 몬드리는 출구를 찾지만, 하수도에서 나오자마자 독일군에게 무장 해제되고 처형당한다.
부상당한 코랍과 그를 돕던 데이지는 강으로 이어지는 출구를 찾지만 쇠창살로 막혀 있었다.[8] 데이지는 코랍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코랍은 반쯤 눈이 먼 상태에서 절망한다.
자드라, 쿨라, 스묵워는 다른 출구를 찾지만, 그곳은 함정이었다. 스묵워는 수류탄에 의해 사망하고, 자드라와 쿨라는 하수도에서 나와 폐허가 된 도시의 버려진 지역에 도착한다. 자드라는 쿨라에게 나머지 병사들을 데려오라고 하지만, 쿨라는 거짓말을 실토한다. 격분한 자드라는 쿨라를 쏘고 하수도로 다시 내려간다.
2. 2. 3. 엇갈리는 운명
1944년 바르샤바 봉기 막바지, 중위 자드라가 이끄는 부대는 나치 독일에 포위되어 모코투프 구역에서 고립된다. 이들은 하수도를 통해 도시 중심부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는다.[8]작곡가 미하우는 독일군에게 점령당하고 있는 도시의 다른 지역에 있는 아내와 아이에게 간신히 전화하지만, 독일군이 들이닥치면서 전화는 끊어진다. 23세의 사관후보생 코랍은 부관 중위 몬드리와 메신저 소녀 할린카가 함께 있는 것을 목격한다. 코랍은 골리앗 무선조종 지뢰를 해체하다 부상을 입는다.[8]
코랍을 포함, 이동 가능 인원은 27명으로 줄고, 이들은 오물 속을 헤치며 하수도로 들어간다. 자드라는 안내자 데이지에게 코랍을 돕게 하고, 나머지는 길을 찾도록 한다. 그러나 코랍과 데이지는 뒤처진다. 빌차 거리 출구에 도착했지만, 코랍은 터널을 올라갈 힘이 없어 쉰다. 데이지는 강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코랍을 재촉한다. 마침내 햇빛을 보지만, 출구는 쇠창살로 막혀 있었다. 데이지는 코랍에게 감정을 고백하고 키스한다.[8]
주요 그룹은 자드라를 따르지만, 데이지가 없어 길을 잃는다. 쿨라 상사는 자드라에게 거짓으로 병사들이 따라오고 있다고 말한다. 결국 자드라, 쿨라, 정비공 스묵워만 남는다. 한편, 몬드리, 할린카, 미하우도 길을 잃는다. 미하우는 정신을 잃고 오카리나를 연주하며 떠돈다. 막다른 길에서 몬드리는 아내와 아이가 있다고 말하며 살아야 한다고 외친다. 할린카는 총으로 자살한다. 몬드리는 출구를 찾지만, 나오자마자 독일군에게 체포되어 처형당한다.[8]
자드라, 쿨라, 스묵워는 빌차 거리 출구를 놓치고 다른 출구를 찾지만, 함정이었다. 스묵워는 수류탄에 의해 사망한다. 자드라와 쿨라는 하수도에서 나와 폐허가 된 도시에 도착한다. 자드라는 쿨라에게 나머지 병사들을 데려오라 하지만, 쿨라는 거짓말을 시인한다. 격분한 자드라는 쿨라를 쏘고 하수도로 돌아간다.[8]
2. 2. 4. 희망과 좌절의 끝
1944년 9월 25일, 바르샤바 봉기 마지막 날, 중위 자드라가 이끄는 부대는 바르샤바 남부 모코투프 구역에서 하수도를 통해 도시 중심부로 퇴각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부상당한 코랍과 그를 돕는 데이지는 뒤처지고, 강으로 이어지는 출구에 도달하지만 쇠창살에 막힌다.[8]주요 그룹도 데이지가 없어 길을 잃고, 몬드리와 할린카, 미하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하우는 정신을 잃고, 할린카는 자살한다. 몬드리는 출구를 찾지만 독일군에게 체포되어 처형당한다.
자드라, 쿨라, 스묵워는 다른 출구를 찾지만 함정이었고, 스묵워는 사망한다. 자드라는 쿨라의 거짓말을 알고 그를 쏘고 다시 하수도로 내려간다.
제2차 세계 대전 말, 바르샤바 봉기는 독일군의 공격으로 궁지에 몰리고, 자드라 중대는 하수도를 통해 탈출을 시도하지만 뿔뿔이 흩어져 대부분 좌절하거나 죽음을 맞이한다.
3. 등장인물
영화 카날의 등장인물은 다음과 같다.
- 테레사 이제프스카 - "스토크로트카" (데이지) 역
- 타데우시 얀차르 - "코라브" (야체크) 역
- 비엔치스와프 글린스키 - 자드라 중위 역
- 타데우시 그비아즈도프스키 - 쿨라 (탄환) 상사 역
- 스타니스와프 미쿨스키 - "스무크워" (날씬이) 역
- 에밀 카레비치 - "몬드리" (현명한) 중위 역[36]
- 마체이 마체예프스키 - "구스타프" 역
- 블라데크 셰이발 - 미하우 (작곡가) 역 (블라디스와프 셰이발로 표기)
- 테레사 베레조프스카 - 할린카 역
- 콜라브: 타데우시 얀차르 (木原正二郎|키하라 쇼지로일본어 더빙)
- 데이지: 테레사 이제프스카 (永山愛子|나가야마 아이코일본어 더빙)
- 자드라 중위: 빈체슬라프 글린스키 (山本耕一|야마모토 코이치일본어 더빙)
- 마드리 중위: 에밀 카레비치 (山本学|야마모토 가쿠일본어 더빙)[36]
- 할리나: 테레사 베레조프스카 (三木弘子|미키 히로코일본어 더빙)
- 미하우 (작곡가): 블라덱 시발
- 제필: 얀 엥겔레르트
1967년 12월 9일 (토) NHK 종합에서 14:10~16:00에 첫 더빙 방송이 되었다. 이후 1975년 3월 25일 (화) TV 도쿄 12 채널의 『낮의 로드쇼』에서 재더빙 방송이 되었다.
3. 1. 주연
- 테레사 이제프스카 - "스토크로트카" (데이지) 역
- 타데우시 얀차르 - "코라브" (야체크) 역
- 비엔치스와프 글린스키 - 자드라 중위 역
- 타데우시 그비아즈도프스키 - 쿨라 (탄환) 상사 역
- 스타니스와프 미쿨스키 - "스무크워" (날씬이) 역
- 에밀 카레비치 - "몬드리" (현명한) 중위 역
- 마체이 마체예프스키 - "구스타프" 역
- 블라데크 셰이발 - 미하우 (작곡가) 역 (블라디스와프 셰이발로 표기)
- 테레사 베레조프스카 - 할린카 역
- 콜라브: 타데우시 얀차르 (더빙: 木原正二郎|키하라 쇼지로일본어)
- 데이지: 테레사 이제프스카 (더빙: 永山愛子|나가야마 아이코일본어)
- 자드라 중위: 빈체슬라프 글린스키 (더빙: 山本耕一|야마모토 코이치일본어)
- 마드리 중위: 에밀 카레비치 (더빙: 山本学|야마모토 가쿠일본어)[36]
- 할리나: 테레사 베레조프스카 (더빙: 三木弘子|미키 히로코일본어)
- 미하우 (작곡가): 블라덱 시발
- 제필: 얀 엥겔레르트
3. 2. 조연
- 타데우즈 그위아즈도스키
- 블라덱 쉐이벌
- 얀 엔글레르트
- 애덤 포리코브스키
- 블라디스로브 코발스키
- 테레사 이제프스카 - "스토크로트카" (데이지) 역
- 타데우시 얀차르 - "코라브" (야체크) 역
- 비엔치스와프 글린스키 - 자드라 중위 역
- 타데우시 그비아즈도프스키 - 쿨라 (탄환) 상사 역
- 스타니스와프 미쿨스키 - "스무크워" (날씬이) 역
- 에밀 카레비치 - "몬드리" (현명한) 중위 역[36]
- 마체이 마체예프스키 - "구스타프" 역
- 블라데크 셰이발 - 미하우 (작곡가) 역
- 테레사 베레조프스카 - 할린카 역
- 콜라브: 타데우시 얀차르
- 데이지: 테레사 이제프스카
- 자드라 중위: 빈체슬라프 글린스키
- 마드리 중위: 에밀 카레비치
- 할리나: 테레사 베레조프스카
- 미하우 (작곡가): 블라덱 시발
- 제필: 얀 엥겔레르트
4. 제작진
5. 제작 배경 및 개봉
예지 스테판 스타빈스키는 1944년 8월 바르샤바 봉기 당시 아르미아 크라요바(폴란드 지하 저항군 국내군) 장교로서 하수구에서 살아남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와 각본을 썼다.[9] 영화는 폴란드 우치에 있는 Wytwornia Filmow Fabularnych (극영화 스튜디오)에서 제스포우 필모비 "카르"에 의해 제작되었으며,[10] 1957년 4월 20일 바르샤바에서 초연되었다.[11]
5. 1. 제작 배경
예지 스테판 스타빈스키가 이야기와 각본을 썼다. 그는 1944년 8월 바르샤바 봉기 당시 아르미아 크라요바(폴란드 지하 저항군 국내군) 장교로서 하수구에서 살아남았다.[9]이 영화는 폴란드 우치에 있는 Wytwornia Filmow Fabularnych (극영화 스튜디오)에서 제스포우 필모비 "카르"에 의해 제작되었으며,[10] 1957년 4월 20일 바르샤바에서 초연되었다.[11]
5. 2. 개봉 및 평가
예지 스테판 스타빈스키가 이야기와 각본을 썼다. 그는 1944년 8월 바르샤바 봉기 당시 아르미아 크라요바(폴란드 지하 저항군 국내군) 장교로서 하수구에서 살아남았다.[9]이 영화는 폴란드 우치에 있는 Wytwornia Filmow Fabularnych (극영화 스튜디오)에서 제스포우 필모비 "카르"에 의해 제작되었다.[10]
''카날''은 1957년 4월 20일 바르샤바에서 초연되었다.[11] ''하수도''는 바이다에게 1957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안겨주었다.[12] 이 영화는 전작인 ''세대''를 특징짓는 노골적인 공산주의 선전이 거의 없다. 이 영화는 요제프 스탈린의 죽음 이후 볼레스와프 비에루트의 스탈린주의 정권이 몰락한 후에 개봉되었다.
2019년 4월, 복원된 영화 버전이 2019년 칸 영화제의 칸 클래식 섹션에서 상영작으로 선정되었다.[13] 바이다의 데뷔작인 《세대》(1955)는 신중한 비평을 받았지만, 《하수도》는 폴란드인들 사이에서 작품의 장점에 대한 광범위한 논란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도노타 니미츠와 스테판 스타인버그는 "이 영화는 폴란드에서 호의적인 반응을 얻지 못했다. 시궁창과 배설물에 뒤덮인 봉기의 영웅들의 헛된 죽음은 국가의 순교자들에 대한 이상화된 모습과 일치하지 않았다."[14]라고 언급했다. 평론가 레온 부코는 《Dziennik polski》에서 "이 모든 바르샤바, 이 모든 봉기는 역사의 오물 속에서 뒹굴고 있다..."[15]라고 불평했다.
알렉산데르 야치키에비츠(pl)는 《Trybuna Ludu》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아마도 《하수도》는 역사, 우리 자신, 그리고 한 세대에 대한 진실을 말하기 시작하는 작품이 될 것이다. 어쩌면 경고로서의 예술, 정화의 예술, 죽음의 영웅주의를 넘어선 삶의 영웅주의의 승리임을 증명할 것이다."[16]
전기 작가 볼레슬라프 미하우에크는 야치키에비츠가 영화의 회의적인 부분, 즉 바르샤바 봉기의 전설과의 대결에 중점을 두었으며, 대체로 이것이 평론가들이 《하수도》를 폴란드 영화의 이정표로 칭송한 방식이라고 덧붙인다.[17]
로튼 토마토에서 이 영화는 8개 리뷰를 기반으로 100%의 긍정적 평가를 받았으며, 가중 평균 평점은 8.1/10이다.[18]
6. 주제 및 분석
《카날》은 전후 폴란드에서 가장 민감한 주제 중 하나인 바르샤바 봉기를 다룬 영화이다.[24][25] 이 영화는 폴란드 국내군 저항군 소부대의 비극적인 운명을 "훌륭하게" 극화했다.[26]
1950년대 중반까지 폴란드인들 사이에서는 바르샤바 봉기에 대해 두 가지 상반된 인식이 존재했다. 하나는 조국을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 죽은 젊은 순교자들에 대한 낭만적인 이미지였고, 다른 하나는 애국자들을 헛된 희생으로 몰아넣은 지휘부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었다.[30]
안제이 바이다 감독은 《카날》에서 이러한 두 가지 관점을 통합하려 시도했다.[31][32] 폴란드 평론가 크시슈토프 테오도르 토플리츠(pl)는 《카날》에 대해 "봉기에 대한 '변명'도, 무자비한 비판도 아닌, 중간에 멈춘 영화"라고 평가했다.[33]
전기 작가 볼레스와프 미할레크는 "바이다의 바르샤바 봉기에 대한 처리와 하수구를 통한 퇴각은 명확하고 의도적인 역사적, 사회적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덧붙였다.[29]
로튼 토마토에서 이 영화는 8개 리뷰를 기반으로 100%의 긍정적 평가를 받았으며, 가중 평균 평점은 8.1/10이다.[18]
6. 1. 폴란드 영웅주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
안제이 바이다 감독의 데뷔작인 《세대》(1955)는 신중한 비평을 받았지만, 《카날》은 폴란드인들 사이에서 작품의 장점에 대한 광범위한 논란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도노타 니미츠와 스테판 스타인버그는 "이 영화는 폴란드에서 호의적인 반응을 얻지 못했다. 시궁창과 배설물에 뒤덮인 봉기의 영웅들의 헛된 죽음은 국가의 순교자들에 대한 이상화된 모습과 일치하지 않았다."[14]라고 언급했다. 평론가 레온 부코는 《Dziennik polski》에서 "이 모든 바르샤바, 이 모든 봉기는 역사의 오물 속에서 뒹굴고 있다..."[15]라고 불평했다.알렉산데르 야치키에비츠(pl)는 《Trybuna Ludu》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 아마도 《하수도》는 역사, 우리 자신, 그리고 한 세대에 대한 진실을 말하기 시작하는 작품이 될 것이다. 어쩌면 경고로서의 예술, 정화의 예술, 죽음의 영웅주의를 넘어선 삶의 영웅주의의 승리임을 증명할 것이다."[16]
전기 작가 볼레슬라프 미하우에크는 야치키에비츠가 영화의 회의적인 부분, 즉 바르샤바 봉기의 전설과의 대결에 중점을 두었으며, 대체로 이것이 평론가들이 《카날》을 폴란드 영화의 이정표로 칭송한 방식이라고 덧붙인다.[17]
《카날》의 주요 주제 중 하나는 "폴란드 영웅주의"이며, 폴란드인들이 역사적으로 "절망만큼이나 헛된 용감한 행위"를 하는 경향이 있다는 개념이다.[19] 바이다는 처음에 폴란드 역사에서 기념되었지만 반 자살적인 기병 돌격, 즉 나폴레옹 시대의 사모시에라 전투, 제1차 세계 대전의 로키트나 돌격, 그리고 1939년 독일 전차에 대한 전설적인 크로얀티 돌격 등을 언급하는 것을 고려했다. 이는 크레딧 전에 나오는 시퀀스에서 제시될 예정이었지만, 결국 포기되었다.[20]
볼레스와프 미하우에크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 여기에는 "폴란드 영웅주의"에 대한 명확한 언급, "폴란드성"에 대한 암묵적인 비판, 정치적, 사회적 상식의 부족, 불균형적으로 높은 희생에 대한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따르면, 국가의 역사는 어리석음의 긴 연쇄였습니다.[21]
"낭만주의와 영웅주의"의 역사적 발현은 전후 폴란드에서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간주되었고 "이성"과 "정치적 상식"에 대한 호소에 의해 도전받았다. 이러한 정치적 노출에도 불구하고, 바이다의 낭만적이고 감각적인 스타일은 《카날》의 등장인물들에게 "영웅적인 측면"을 부여한다.[22]
6. 2. 낭만주의와 이성의 대립
바이다는 처음에 폴란드 역사에서 기념되었지만 반자살적인 기병 돌격, 즉 나폴레옹 시대의 사모시에라 전투, 제1차 세계 대전의 로키트나 돌격, 그리고 1939년 독일 전차에 대한 전설적인 크로얀티 돌격 등을 언급하는 것을 고려했다. 이는 크레딧 전에 나오는 시퀀스에서 제시될 예정이었지만, 결국 포기되었다.[20]전기 작가 볼레스와프 미하우에크는 "낭만주의와 영웅주의"의 역사적 발현은 전후 폴란드에서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간주되었고 "이성"과 "정치적 상식"에 대한 호소에 의해 도전받았다고 언급한다. 이러한 정치적 노출에도 불구하고, 바이다의 낭만적이고 감각적인 스타일은 ''카날''의 등장인물들에게 "영웅적인 측면"을 부여한다.[22]
6. 3. 단테의 신곡과의 비교
''카날''의 주요 주제 중 하나는 "폴란드 영웅주의"이며, 폴란드인들이 역사적으로 "절망만큼이나 헛된 용감한 행위"를 하는 경향이 있다는 개념이다.[19] 바이다는 처음에 폴란드 역사에서 기념되었지만 반 자살적인 기병 돌격, 즉 나폴레옹 시대의 사모시에라 전투, 제1차 세계 대전의 로키트나 돌격, 그리고 1939년 독일 전차에 대한 전설적인 크로얀티 돌격 등을 언급하는 것을 고려했다. 이는 크레딧 전에 나오는 시퀀스에서 제시될 예정이었지만, 결국 포기되었다.[20]전기 작가 볼레스와프 미하우에크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여기에는 "폴란드 영웅주의"에 대한 명확한 언급, "폴란드성"에 대한 암묵적인 비판, 정치적, 사회적 상식의 부족, 불균형적으로 높은 희생에 대한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따르면, 국가의 역사는 어리석음의 긴 연쇄였습니다."[21]
"낭만주의와 영웅주의"의 역사적 발현은 전후 폴란드에서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간주되었고 "이성"과 "정치적 상식"에 대한 호소에 의해 도전받았다. 이러한 정치적 노출에도 불구하고, 바이다의 낭만적이고 감각적인 스타일은 ''카날''의 등장인물들에게 "영웅적인 측면"을 부여한다.[22]
하수도로의 하강은 단테 알리기에리의 지옥에서 저주받은 영혼의 묘사와 비교되었으며, 바이다도 이를 인정했다. 전기 작가 볼레스와프 미하우에크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카날''은 절망, 씁쓸함, 체념의 거의 끊이지 않는 분위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전체 구조는 탈출구가 없고, 희망이 없고, 구원의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단테와 마찬가지로, 고통의 좁아지는 고리만 있을 뿐입니다.[23]
7. 정치적 평가
바이다의 데뷔작인 《세대》(1955)는 신중한 비평을 받았지만, 《카날》은 폴란드인들 사이에서 작품의 장점에 대한 광범위한 논란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도노타 니미츠와 스테판 스타인버그는 "이 영화는 폴란드에서 호의적인 반응을 얻지 못했다. 시궁창과 배설물에 뒤덮인 봉기의 영웅들의 헛된 죽음은 국가의 순교자들에 대한 이상화된 모습과 일치하지 않았다."[14]라고 언급했다. 평론가 레온 부코는 《Dziennik polski》에서 "이 모든 바르샤바, 이 모든 봉기는 역사의 오물 속에서 뒹굴고 있다..."[15]라고 불평했다.
알렉산데르 야치키에비츠(pl)는 《Trybuna Ludu》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 아마도 《하수도》는 역사, 우리 자신, 그리고 한 세대에 대한 진실을 말하기 시작하는 작품이 될 것이다. 어쩌면 경고로서의 예술, 정화의 예술, 죽음의 영웅주의를 넘어선 삶의 영웅주의의 승리임을 증명할 것이다."[16]
전기 작가 볼레슬라프 미하우에크는 야치키에비츠가 영화의 회의적인 부분, 즉 바르샤바 봉기의 전설과의 대결에 중점을 두었으며, 대체로 이것이 평론가들이 《카날》을 폴란드 영화의 이정표로 칭송한 방식이라고 덧붙인다.[17]
역사적 주제인 『카날』에서 바이다는 전후 폴란드에서 가장 정치적이고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 중 하나를 다루었다. 그의 전쟁 3부작의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카날』은 "폴란드 현대 역사와 정치의 복잡성을 묘사하려는 정직하고 가치 있는 시도"였다.[24][25] 이 영화는 폴란드 국내군 저항군 소부대의 남녀의 비극적인 운명을 "훌륭하게" 극화했다.[26] 전기 작가 볼레스와프 미할레크는 다음과 같은 배경을 제공한다.
> 문제의 사건들은 논란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1944년 8월 1일 봉기는 런던에 있는 망명 정부와 합의하여 국내군 지도부에 의해 명령되었지만, 접근하는 소련군의 지휘부와 명확한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소련 전선에서 교착 상태에 이르렀을 때, [나치에 의해] 반란군을 상대로 소모전이 시작되었다… 점차 무자비한 독일군의 공격으로 반란군은 모코투프로 철수하게 되었다. 두 달간의 전투 후, 국내군 사령부는 항복했다,,, 봉기에 대한 대가는 수십만 명의 사망자와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의 집의 멸망이었다.[27][28]
미할레크는 "바이다의 바르샤바 봉기에 대한 처리와 하수구를 통한 퇴각은 명확하고 의도적인 역사적, 사회적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덧붙였다.[29]
1950년대 중반까지, 폴란드인들 사이에는 이 사건에 대해 두 가지 기본적인 인식이 자리 잡았다. 하나는 고국을 지키다 죽은 용감한 젊은 순교자들에 대한 대중적인 낭만적인 이미지였다. 다른 하나는 남자와 여자 애국자들을 멸망할 운명의 노력에 투입한 고위 지휘부의 동기의 순수성에 대한 공식적인 회의론이었다.[30]
이러한 이중적인 사회적 관점에 대응하여, 바이다는 『카날』에서 이것들을 통합하려 했다.[31][32] 폴란드 평론가 크시슈토프 테오도르 토플리츠(pl)는 『카날』의 등장인물들의 대조적인 "영웅적인 차원"과 1944년 봉기에 대한 "잠재적인 회의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 "이 주제에 접근하는 모든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바이다는 어떤 압력에 굴복했다. 한편으로는 봉기에 대한 '변명'을 하지 않으려는 합리적인 압력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봉기에 대한 무자비한 비판을 하지 않으려는 감정적인 압력이 있었다. 영화는 중간에 멈췄다.[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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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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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mtz and Steinberg, 2016: “Controversy surrounded Wajda’s attitude towards national symbols and heroes…Wajda was widely criticized by some for accommodating himself to the Stalinist reg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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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1979年上映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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放映当時の表記は“山本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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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JLEPSZE FILMY HISTORYCZNE ANDRZEJA WAJDY
https://web.archive.[...]
2020-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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