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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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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쿠부시는 1944년 바르샤바 봉기 당시 폴란드 국내군이 제작한 장갑차이다. 쉐보레 157 트럭 섀시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며, 8명에서 12명의 병력을 수송하고 소련제 기관총 등으로 무장했다. 8월 22일에 제작이 완료되어 바르샤바 대학교 공격에 투입되었으나 실패했고, 이후 손상되어 버려졌다. 전쟁 후 복원되어 폴란드 육군 박물관에 전시되었으며, 2004년에는 실물 크기의 복제품이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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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부시
개요
폴란드 육군 박물관에 있는 오리지널 쿠부시 차량
폴란드 육군 박물관에 있는 오리지널 쿠부시 차량
유형즉제 전투 차량
원산지제2 폴란드 공화국
차량 여부
제원
전체 길이6.09 m
전체 폭2.17 m
전체 높이2.52 m
승무원 수8-12명
장갑5-8 mm
주 무장DP28 경기관총 × 1
엔진시보레 3.6l / 6기통
출력78 HP
현가 장치 및 구동장륜

2. 역사

바르샤바 봉기 시작 1주일 후인 1944년 8월 8일에 쿠부시의 제작이 시작되었다. 제작은 바르샤바 포비슬레 지구에 있는 스타니스와프 콰트코프스키 소유의 자동차 수리점에서 이루어졌으며, 탐카 거리와 토피엘 거리의 모퉁이에 위치해 있었다. 차량의 주 엔지니어는 왈레리안 비엘레츠키 (가명 ''얀'')였으며, 종이에 설계도가 준비되지 않은 채 모든 제작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이루어졌다. 쿠부시는 전쟁 전 폴란드에서 Lilpop, Rau i Loewenstein사에 의해 라이센스 생산된 민간용 쉐보레 157 트럭의 섀시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섀시에는 승무원 보호를 위해 강철판이 부착되었고, 이는 강철 프레임에 볼트로 고정된 후 용접되었다. 이 장갑차는 8명에서 12명의 병사를 수송할 수 있었고, 소련제 DP-27 기관총, 지하 제작 K 패턴 화염방사기, 수류탄 및 병사들의 개인 화기로 무장했다. 쿠부시라는 이름은 8월 초에 사망했고 ''쿠부시''라는 가명을 사용한 제작자 중 한 명의 아내인 ''글로부스''를 기리기 위해 지어졌으며, 이 이름은 폴란드어로 "작은 야곱"을 의미하지만, 곰돌이 푸의 폴란드어 이름이기도 하다.

8월 22일에 제작이 완료되어, 제작 결정부터 차량을 국내군 부대에 넘겨주기까지 단 13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완성된 쿠부시는 즉시 바르샤바 봉기에 투입되어 "비드라" 기계화 부대에 배속되었다. 8월 23일, "회색 늑대"라는 이름의 노획된 Sd.Kfz.251/3 Ausf.D와 함께, 베르마흐트에 의해 군사 주둔지로 변모한 바르샤바 대학교의 본관에서 실패한 공격에 참여했다. 같은 공격이 2주 후인 9월 2일에 반복되었다. 두 번째 공격에서 쿠부시는 경미한 피해를 입었지만, 폴란드 점령 지역으로 성공적으로 철수했지만, 수리되지 못했고, 9월 6일 오콜니크 거리에서 버려졌다.[6]

원래의 쿠부시는 전쟁에서 살아남았고, 1945년에 독일군에 의해 약탈당한 후 폴란드 육군 박물관으로 견인되어 첫 번째 전시물 중 하나가 되었으며, 그곳에서 복원되어 전시되었다. 현재까지 그곳에 보존되어 있다. 2004년에 율리우시 시우진스키가 실물 크기의 작동 가능한 복제품을 제작했으며, 2009년 현재 바르샤바 봉기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봉기 당시 쿠부시의 승무원 중 한 명은 후에 저명한 언론인이자 과학 소설 작가가 된 크시슈토프 보룬이었다.

2. 1. 개발 배경

바르샤바 봉기 시작 1주일 후인 1944년 8월 8일에 쿠부시의 제작이 시작되었다. 제작은 바르샤바 포비슬레 지구에 있는 스타니스와프 콰트코프스키 소유의 자동차 수리점에서 이루어졌으며, 탐카 거리와 토피엘 거리의 모퉁이에 위치해 있었다.[2] 주 엔지니어는 왈레리안 비엘레츠키(''얀'')였으며, 종이에 설계도가 준비되지 않은 채 모든 제작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이루어졌다. 쿠부시는 전쟁 전 폴란드에서 Lilpop, Rau i Loewenstein사에 의해 라이센스 생산된 민간용 쉐보레 157 트럭의 섀시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2] 섀시에는 승무원 보호를 위해 강철판이 부착되었고, 이는 강철 프레임에 볼트로 고정된 후 용접되었다.

쿠부시는 바르샤바 시 포비슐레 지구(Powiśle, 바르샤바 시 중앙구(Śródmieście: 슈로돔시에)의 남부)의 폴란드 국내군 부대 "크리바르(Krybar)"에 의해 제작되었다. 그 목적은 강력한 나치 독일군이 틀어박혀 포비슐레 지구와 시 중심과의 연락을 차단하고 있는 바르샤바 대학교에 공격을 가함에 있어 10명 내외의 병사를 태워 대학교 부지까지 수송하는 것이었으며, 이를 위해서는 대학교 정문에 설치된 화점으로부터의 총격에 견딜 필요가 있었다.

제작은 1944년 8월 10일에 시작되었다.[2] 기반이 된 것은 시내 발전소가 보유하고 있던 시보레 모델 157[2]로, 원래는 목탄 자동차 사양이었으나, 장갑차로 개조하는 과정에서 휘발유 연료로 되돌려졌다. 여기에 구할 수 있는 잡다한 재료로 장갑이 덧대어졌다.

원래 인원의 승하차를 위해 후부에 메인 해치가 설치될 예정이었지만, 얇은 장갑판으로 방어력을 얻기 위해 이중 장갑으로 되어 해치의 구조가 어려워진 점, 피탄 경사를 위해 경사진 면의 해치는 무게가 더해져 개폐에 지장이 생긴 점, 그러한 기술적 과제를 해결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점 등으로 인해 실현되지 못하고, 섀시 프레임 외측 좌우의 바닥면에 설치된 비상 탈출용 해치가 유일한 출입구가 되었다. 그러나 무기를 휴대 한 채로 좁은 바닥 밑을 통과하여 승하차하는 것은 어려웠고, 이는 쿠부시의 큰 약점이 되었다[3]

제작 팀을 이끈 것은, 전전 PZL에서 일했던 요제프 페르니크(코드네임 "그로부스")였으며, 그는 8월 초에 마리엔슈타트 지구에서 포비슐레 지구로 옮겨왔다. 의사였던 그의 아내는 마리엔슈타트에서 소사(燒死)했고, 7세 아들은 중상을 입었다. 제작 중인 장갑차는 그의 아내의 코드네임에 따라 "쿠부시"라고 명명되었다[4]。쿠부시는 원래 남성명인 야쿠프(Jakub)의 애칭이며, 또한, 전부터 폴란드에서 널리 사랑받던 A. A. 밀른의 아동 소설 "곰돌이 푸"의 폴란드 이름이기도 하다(Kubuś Puchatek).

제작된 쿠부시에는 공격 대원 중 한 명이기도 했던 스타니스와프 코프프 사관후보생(코드네임 "마라슈(화가)")의 손에 의해 위장 도색이 칠해졌다.

쿠부시의 제작은 8월 23일 공격 당일까지 계속되었다.

2. 2. 제작 과정

바르샤바 봉기 시작 1주일 후인 1944년 8월 8일에 쿠부시의 제작이 시작되었다. 제작은 바르샤바 포비슬레 지구에 있는 스타니스와프 콰트코프스키 소유의 자동차 수리점에서 이루어졌으며, 탐카 거리와 토피엘 거리의 모퉁이에 위치해 있었다.[2] 주 엔지니어는 왈레리안 비엘레츠키(''얀'' 가명)였으며, 모든 제작은 설계도 없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이루어졌다. 쿠부시는 전쟁 전 폴란드에서 Lilpop, Rau i Loewenstein사에 의해 라이센스 생산된 민간용 쉐보레 157 트럭의 섀시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섀시에는 승무원 보호를 위해 강철판이 부착되었고, 이는 강철 프레임에 볼트로 고정된 후 용접되었다.[3]

쿠부시라는 이름은 8월 초에 사망했고 ''쿠부시''라는 가명을 사용한 제작자 중 한 명의 아내인 ''글로부스''를 기리기 위해 지어졌으며, 이 이름은 폴란드어로 "작은 야곱"을 의미하지만, 곰돌이 푸의 폴란드어 이름이기도 하다.[4]

제작 결정부터 차량을 국내군 부대에 넘겨주기까지 단 13일밖에 걸리지 않았으며, 8월 22일에 완료되었다.

2. 3. 실전 투입

바르샤바 봉기 시작 1주일 후인 1944년 8월 8일에 제작된 쿠부시는 즉시 실전에 투입되었다. "비드라" 기계화 부대에 배속된 쿠부시는 8월 23일, "회색 늑대"라는 별명을 가진 노획된 Sd.Kfz.251/3 Ausf.D와 함께 바르샤바 대학교 본관 공격에 참여했다.[5] 이 공격은 실패했지만, 독일군에게 폴란드 국내군의 저항 능력을 과시하고 국내군 부대의 사기를 높이는 역할을 했다.

9월 2일, 쿠부시는 다시 한번 바르샤바 대학교 공격에 참여했으나, 독일군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또다시 철수해야 했다. 이후 쿠부시는 수리되지 못하고 9월 6일 오콜니크 거리에 버려졌다.[6]

첫 번째 공격 당시 쿠부시에는 지휘관 "미슈(테디베어)" 타데우시 제린스키 사관후보 군조, 운전병 "아나스타시아" 피야우코프스키 군조, 그리고 10명의 병력이 탑승했다.[5] 공격 도중 쿠부시는 일시적으로 엔진 고장을 일으키고 가로등과 충돌하는 등 위기를 겪었지만, 간신히 극복하고 후퇴했다. 이후 쿠부시는 기관총 마운트와 방패를 장착하고, 조종수의 시야 확보를 위해 시찰구를 넓히고 방탄 유리를 설치하는 개조를 받았다.[5]

두 번째 공격 이후, 포비슬레 지역의 독일군 압박이 거세지면서 "크리발" 부대는 시내 중심부로 철수하게 되었고, 쿠부시는 바리케이드 문제로 인해 이송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버려졌다. 9월 6일, 쿠부시는 엔진 부품이 제거된 채 오크르니크 거리의 공원에 유기되었다.[6]

3. 전후

쿠부시는 전쟁에서 살아남았고, 1945년 독일군에 의해 약탈당한 후 폴란드 육군 박물관으로 견인되어 첫 번째 전시물 중 하나가 되었으며, 그곳에서 복원되어 전시되었다. 현재까지 그곳에 보존되어 있다.[7] 바르샤바 봉기 당시 쿠부시의 승무원 중 한 명은 후에 저명한 언론인이자 과학 소설 작가가 된 크시슈토프 보룬이었다.

2004년 바르샤바 봉기 60주년을 기념하여 바르샤바 봉기 박물관이 개관하였고, 기념 사업으로 쿠부시의 복제 제작이 기획되었다. 골동차량 애호가인 율리우스 시우진스키가 콘테스트에서 권리를 얻어 실제 제작에 착수했다. 복제 차량의 기반 차량으로는 치수가 유사한 폴란드산 스타 25 트럭이 선택되었으며, 약 50000PLN을 들여 개조 및 장갑 차체 제작이 이루어졌다.[8] 복제품 제작 시 관광객의 승하차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차체에 해치를 신설하는 안도 있었지만,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았다.[9]

thumb

완성된 복제 쿠부시는 바르샤바 봉기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자가 주행이 가능하고 폴란드 육군 박물관의 실차와 마찬가지로 각종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1959년에 쿠부시는 폴란드 육군 박물관으로 이송되었고, 1967년에는 손상된 섀시를 전후 소련 설계 트럭인 GAZ-51 '루블린'(폴란드의 루블린에서 라이센스 생산되었다)을 사용하여 보수했으며, 이후 자가 주행이 가능하도록 복원되었다.[7]

4. 한국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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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 쿠부시 복제 차량

바르샤바 봉기 60주년인 2004년바르샤바 봉기 박물관이 개관하면서 기념 사업으로 쿠부시의 복제 차량 제작이 기획되었다. 골동차량 애호가인 율리우스 시우진스키가 복제 제작을 맡았으며, 치수가 유사한 폴란드산 Star 25 트럭을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약 50000PLN를 들여 개조 및 장갑 차체 제작이 이루어졌다.[8] 관광객의 승하차를 쉽게 하기 위해 차체에 해치를 만드는 방안도 고려되었으나,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았다.[9] 완성된 복제 차량은 바르샤바 봉기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자가 주행이 가능하여 폴란드 육군 박물관의 실차와 함께 여러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참조

[1] 웹사이트 Plan deorbitacji pierwszej generacji satelitów Iridium http://www.kosmonaut[...] 2015-07-19
[2] 문서
[3] 서적 1994
[4] 서적 1994
[5] 서적 1994
[6] 서적 1994
[7] 간행물 Mirage HOBBY 1:35 Kubuś組立説明書解説文
[8] 뉴스 Kubuś jak nowy https://um.warszawa.[...] ワルシャワ市HP 2004-07-08
[9] 뉴스 Kubuś bis https://www.1944.pl/[...] ワルシャワ蜂起博物館HP 2005-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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