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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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태합은 고대에는 섭정이나 태정대신의 존칭이었으며, 섭정이나 관백이 적자에게 지위를 물려준 후 불리는 칭호로 사용되었다. 특히,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관백 직을 양위한 후에도 태합으로 불렸으며, 그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굳어지기도 했다. 근대 이후에는 이토 히로부미와 같이 입신출세한 인물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또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을 통틀어 『태합기』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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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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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설명 | 태합(太閤)은 일본에서 간파쿠의 직을 세습하던 고셋케를 제외한 사람이 간파쿠에서 물러난 후 받는 칭호이다. |
유래 | 중국 주나라의 태공망에서 유래했다. |
대상 |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요토미 히데쓰구 |
상세 내용 | |
태합의 의미 | 원래 태합은 중국에서 주나라를 세운 강태공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
일본에서의 사용 | 일본에서는 섭정인 셋쇼와 관백인 간파쿠에서 물러난 사람을 높여 부르는 칭호로 사용되었다. |
태합의 종류 | 선정태합(禅定太閤): 출가하여 법명을 받은 태합.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해당된다. 대납언태합(大納言太閤): 대납언을 지낸 태합. 무위대납언태합(無位大納言太閤): 종1위에 오르지 못한 태합. 도요토미 히데쓰구가 해당된다. |
존칭 | 태합을 높여 부를 때는 태합전하(太閤殿下)라고 한다. |
같이 보기 | 태합입지전 |
2. 연혁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양자인 히데쓰구에게 관백을 물려준 후에도 관례에 따라 태합(太閤)으로 불렸다. 히데요시 사후에도 태합은 주로 히데요시를 지칭했으며, 태합검지와 같은 단어를 구성하기도 했다. "대사는 홍법에게 빼앗기고, 태합은 히데요시에게 빼앗긴다"라는 격언까지 생겨났다. 특히 히데요시를 지칭할 때는 '''도요 태합'''(豊太閤)이라고 불렀다.
에도 시대에는 섭관을 아들 이치조 미치카에게 물려준 이치조 카네카가 태합으로 불렸다. 안세이 3년 12월 9일 (1857년 1월 4일), 관백을 사임하고 분가인 쿠죠 히사타다에게 물려준 타카츠카사 마사미치가 고메이 천황의 칙지를 받아 태합 칭호를 받은 것이 마지막 사례이다.
메이지 유신으로 태정관제가 폐지되어 섭정·관백이 없어지면서 태합이라는 말도 사라질 뻔했다. 그러나 백성 신분에서 초대 내각총리대신이 된 후 원로로서 메이지 시대를 이끈 이토 히로부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닮은 호색한이라는 점 때문에 '''지금의 태합'''(今太閤)이라고 불렸다. 전후에는 고등 교육 학력 없이 내각총리대신이 된 다나카 가쿠에이도 지금의 태합으로 불렸다.
이처럼 "지금의 태합"은 가난한 환경에서 입신출세하여 큰 권력을 쥔 사람을 가리키는 대명사가 되었다. 미키 부키치, 한큐 전철의 고바야시 이치조, 마쓰시타 전기의 마쓰시타 고노스케, 다이에이의 나가타 마사카즈 등도 지금의 태합으로 불렸고, 요시모토 흥업의 요시모토 세이는 여(女)지금의 태합으로 불렸다.
2. 1. 고대
고대에는 섭정·태정대신 현직자를 가리키는 존칭이었다. 『서궁기』나 『좌경기』에는 재직 중인 섭정이 태합을 칭한 기술이 있으며, "관백 태합"으로 불렸다.섭정·관백을 적자에게 양위한 자가 "태합"으로 불리는 예는 헤이안 시대부터 있었다. 예를 들어 후지와라노 미치나가는 고이치조 천황의 섭정을 아들 요리미치에게 양위하고, 이어서 임명된 태정대신 직도 사임한 후에는 "태합"으로 불렸다[1]. 가마쿠라 시대의 관백 니조 요시자네는 동생 이치조 사네쓰네에게 관백의 지위를 양위한 후 계속해서 내람에 임명되었기 때문에 "태합"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2]. 마찬가지로 무로마치 시대의 니조 요시모토는 13년에 걸쳐 관백을 역임하고 사직한 직후 내람 선지를 받아 태합을 칭했다[3].
2. 2. 섭정·관백 양위 후 칭호
고대에는 섭정·태정대신 현직자를 가리키는 존칭이었다. 『서궁기』나 『좌경기』에는 재직 중인 섭정이 태합을 칭한 기술이 있으며, "관백 태합"으로 불렸다.섭정·관백을 적자에게 양위한 자가 "태합"으로 불리는 예는 헤이안 시대부터 있었다. 예를 들어 후지와라노 미치나가는 고이치조 천황의 섭정을 아들 요리미치에게 양위하고, 이어서 임명된 태정대신 직도 사임한 후에는 "태합"으로 불렸다[1]. 가마쿠라 시대의 관백 니조 요시자네는 동생 이치조 사네쓰네에게 관백의 지위를 양위한 후 계속해서 내람에 임명되었기 때문에 "태합"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2]. 마찬가지로 무로마치 시대의 니조 요시모토는 13년에 걸쳐 관백을 역임하고 사직한 직후 내람 선지를 받아 태합을 칭했다[3].
2. 3.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태합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양자인 히데쓰구에게 관백을 물려준 후에도 관례에 따라 태합(太閤)으로 불렸지만, 히데요시의 사후에도 태합이라고 하면 히데요시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태합검지와 같은 단어를 구성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대사는 홍법에게 빼앗기고, 태합은 히데요시에게 빼앗긴다"라는 격언까지 생겨났다. 특히 히데요시를 지칭하는 것을 강조할 때는 '''도요 태합'''(豊太閤)이라고 불렀다.그 후의 에도 시대에도, 섭관을 아들인 이치조 미치카에게 물려준 이치조 카네카는 태합으로 불렸다. 안세이 3년 12월 9일 (1857년 1월 4일)에, 관백을 사임한 후 (후임은 분가인 쿠죠 히사타다)에도 내람으로 남았던 타카츠카사 마사미치가 고메이 천황의 칙지를 받아 태합의 칭호를 받은 것이 태합의 마지막 사례가 된다.
2. 4. 에도 시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히데쓰구에게 관백을 물려준 후에도 관례에 따라 태합(太閤)으로 불렸지만, 히데요시 사후에도 태합이라고 하면 히데요시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태합검지와 같은 단어를 구성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대사는 홍법에게 빼앗기고, 태합은 히데요시에게 빼앗긴다"라는 격언까지 생겨났다. 특히 히데요시를 지칭하는 것을 강조할 때는 '''도요 태합'''(豊太閤)이라고 불렀다.[1]그 후의 에도 시대에도, 섭관을 아들인 이치조 미치카에게 물려준 이치조 카네카는 태합으로 불렸다.[1] 안세이 3년 12월 9일 (1857년 1월 4일)에, 관백을 사임한 후 (후임은 분가인 쿠죠 히사타다)에도 내람으로 남았던 타카츠카사 마사미치가 고메이 천황의 칙지를 받아 태합의 칭호를 받은 것이 태합의 마지막 사례가 된다.[1]
2. 5. 지금의 태합(今太閤)
메이지 유신으로 기존의 태정관제가 폐지되어 섭정과 관백이 없어지면서, 태합이라는 말도 결국 과거의 것이 될 뻔했다. 그러나 백성 신분에서 초대 내각총리대신까지 오른 뒤에도 원로로서 메이지 시대를 이끌었고, 호색가라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가진 이토 히로부미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본떠 '''지금의 태합'''(今太閤)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또한 전후에는 고등 교육 학력을 갖추지 않고 내각총리대신까지 오른 다나카 가쿠에이도 지금의 태합이라고 불리게 되었다.이처럼 "지금의 태합"은 가난한 환경에서 입신출세하여 큰 권력을 쥔 사람의 대명사로 사용되게 되었으며, 이 외에도 보수 정치인 미키 부키치, 한큐 전철의 고바야시 이치조, 마쓰시타 전기의 마쓰시타 고노스케, 다이에이의 나가타 마사카즈 등도 지금의 태합으로 불렸다. 요시모토 흥업의 요시모토 세이는 여(女)지금의 태합이라고 불렸다.
3. 태합기(太閤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들을 통틀어 『태합기』라고 부른다.[4] 다만, 조루리나 가부키 등 연극에서는 "태합"이라는 관직명을 "대공"으로 바꾸어 『대공기』라는 제목으로 하는 작품도 있다.[4]
참조
[1]
서적
小右記
불명
[2]
서적
五代帝王物語
[3]
논문
二条良基の除目説(下) : 摂関家説の伝授をめぐって
https://koara.lib.ke[...]
慶應義塾大学国文学研究室
1995-12
[4]
논문
国会図書館蔵『絵本武勇大功記』の翻刻と解題
https://kokubunken.r[...]
国文学研究資料館
20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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