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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루 시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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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테루 시마다는 1905년 일본 이바라키현 미토시에서 태어난 일본계 미국인 배우이다. 1920년대 미국으로 이주하여 연기 경력을 시작했으며, 1930년대부터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강제 수용소에 수용되기도 했으며, 전후 할리우드로 복귀하여 다양한 영화와 TV 드라마에 출연했다. 특히 1967년 영화 《007 두 번 산다》에서 스펙터의 일원인 오사토 화학 사장 역으로 출연하여 이름을 알렸다. 1988년 사망했으며, 그의 대표작으로는 《도쿄 조》, 《산호해 전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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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루 시마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출생명시마다 아키라
로마자 표기Shimada Akira
다른 이름시마다 테루
한자 표기島田 輝 (시마다 테루), 島田 明 (시마다 아키라)
출생일1905년 11월 17일
출생지일본 이바라키현미토시
사망일1988년 6월 19일
사망지미국 캘리포니아주로스앤젤레스 엔시노
국적일본 (출생 시), 미국 (1954년 이후)
직업배우
활동 기간1932년 - 1975년
1967년 영화 《007 두 번 산다》에서의 시마다 테루
1967년 영화 《007 두 번 산다》에서의 시마다 테루
출연 작품
영화《미스터 모토 테이크 어 베케이션》 (1939)
《밤의 종착역》 (1957)
지상 최대의 작전》 (1962)
007 두 번 산다》 (1967)
텔레비전《나는 스파이》 (1967)

2. 초기 생애

테루 시마다는 1905년 일본 이바라키현 미토시에서 '''시마다 아키라'''(島田明)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예술가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연예인들의 이야기에 매료되었고, 영화를 보며 배우의 꿈을 키웠다. 특히, 일본 출신 배우 하야카와 셋슈가 출연한 할리우드 영화를 보고 미국 이민을 결심했다.

1924년 3월, 시마다는 학생 비자로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으나,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대학교를 2년간 다녔지만 배우가 되려는 꿈은 변함이 없었고, 대학을 중퇴한 후에도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미국에 머물렀다. 그라나다 극장에서 청소부로 일하며 연기 수업을 받았고, 이후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여 호텔 직원과 일본어 신문 인쇄공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3. 경력

3. 1. 1930년대: 초기 활동

시마다는 1929년 Hale Hamilton의 연극 ''Dear Me''의 로스앤젤레스 공연에서 집사 역할로 처음 전문 연기를 시작했다. 그는 Katherine Hamil의 스튜디오에서 연기 수업을 들었고, 이후 일본에 관한 단막극인 ''The Flower of Edo''의 학생 공연에 출연했다. 1931년 6월에는 Melchior Lengyel의 연극 ''The Typhoon''의 장면을 공연하며 클래스 쇼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미국 영화 산업이 유성 영화로 전환되면서, 시마다는 영어와 스피치 수업을 들으며 집사, 정원사, 점원, 식기 세척기 등 잡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Irving Cummings가 감독한 ''The Night Club Lady''(1932)에서 단역으로 영화에 처음 출연했다. 얼마 후 Cecil B. DeMille의 오디션을 보았고, ''Four Frightened People''(1934)에서 원주민 가이드 역할로 하와이 촬영에 참여했다.

DeMille과의 작업 후, 시마다는 주로 크레딧에 오르지 않는 역할들을 맡았다. 1934년 영화 ''찰리 찬의 용기''에서 무술가로 캐스팅되었고, ''미드나잇 클럽''에서는 보석 도둑 갱단의 일원으로, ''공공의 영웅 ﹟1''에서는 갱스터 하수인 역할을 연기했다. 클로데트 콜베르와 루이스 비버스가 출연한 ''인생의 모방'' (1934)과 메이 웨스트의 영화 ''클론다이크 애니''(1936)에도 잠시 출연했다.

''중국의 등불에 기름을'' (1935)에서 코믹한 찻집 주인으로 첫 주연을 맡았고, ''좀비의 반란''(1936)에서 하인 역할을 맡았다. 같은 해 ''화이트 레지온''에서 노구치 히데요를 모델로 한 노기 박사 역을 맡아 진지한 연기를 선보였다. 1939년 스릴러 ''미스터 모토의 마지막 경고''에서 피터 로리가 연기한 미스터 모토를 사칭하는 미끼 역할을 연기했다.

3. 2. 제2차 세계 대전과 강제 수용

진주만 공습 이후, 테루 시마다는 행정명령 9066에 의해 1942년 5월, 애리조나주 포스톤 전쟁 강제 수용소로 이송되었다.[1] 30대 중반에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배우 경력이 있던 그는 수용소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포스톤 드라마 길드의 제작 감독으로 임명되어 수용소 생활을 묘사한 스킷과 코미디, 연극 "포스토네즈"를 쓰고 연출했다.[1]

시마다는 수용소 내 극장 건설을 주도했으나, 화재로 소실되었다.[1] 이후, 미국 적십자사의 지원을 받아 수영장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수영 강습과 물 축제를 열었다.[1] 지역 사회 활동 코디네이터와 블록 리더로 선출되어 수용소 사람들의 복지에 기여했다.[1]

전쟁 중 할리우드에서 일본인 악역 캐릭터가 많이 등장했지만, 대부분 다른 인종 배우들이 연기했다.[1]

3. 3. 전후 활동 (1945년~1970년대)

1945년 여름, 시마다는 포스턴 전쟁 강제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는 동안 20세기 폭스의 전쟁 선전 영화 ''필리핀의 미국 게릴라''에 캐스팅되었으나, 일본의 항복으로 프로젝트가 무기한 보류되었다. 이후 뉴욕으로 이주하여 펄 S. 벅이 후원하는 중국 극단의 연극 ''첫 번째 아내''에 출연, 2년간 미국 전역을 순회 공연했다. 1946년 뉴올리언스 공연에서는 그의 연기가 "지적으로, 다소 경직되게 묘사되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1949년, 험프리 보가트가 설립한 산타나 프로덕션의 영화 《도쿄 조》에 캐스팅되어 할리우드로 복귀했다. 시마다는 이 영화에서 보가트의 옛 친구이자 파트너인 이토 역을 맡았는데, 원래 작은 역할이었으나 영화 작업이 진행되면서 비중이 커졌다. 그는 이 영화에서 보가트와 우호적인 유도 시합을 벌여 그를 이기는 장면으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도쿄 조》 이후, 시마다는 《세 명은 고향으로 돌아왔다(Three Came Home)》에서 잔혹한 일본군 장교 역, 《밀수업자의 섬(Smuggler's Island)》에서 사악한 중국 정크선의 선장 역을 맡는 등 악역을 주로 연기했다. 《도코리 다리(The Bridges at Toko-Ri)》에서는 일본식 목욕탕에 가족과 함께 등장하는 단역으로 출연했고, 《대나무집(House of Bamboo)》 (1955)에서는 야마구치 요시코가 맡은 배역의 삼촌 역을 연기했다. 《8월의 차집》 (1956) 오디션에 참가했으나 말론 브란도에게 배역을 뺏기기도 했다.

1959년, 《산호해 전투》에서 강직한 일본 해군 장교 모리 사령관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그는 고문 대신 심리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포로에게서 정보를 얻으려는 인물로, 희생자에게 동정심을 보이면서도 의무와 충성심을 지키는 복합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같은 해, 《도쿄 애프터 다크(Tokyo After Dark)》에서는 맹인 스승이자 코토 명인 센세이 역을 맡아 긍정적인 역할도 소화했다.

1960년대에는 주로 TV 드라마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로레타 영 쇼(The Loretta Young Show)》의 "진주", "무고한 음모" 에피소드에 출연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지구 속 여행''에도 출연했다. 영화에서는 제임스 클래블의 《달콤하고 씁쓸하게》 (1962년 촬영, 1967년 개봉), 캐리 그랜트의 마지막 작품인 《걸어라, 멈추지 마라》 (1966)에 출연했다. 엑스포 67에서는 "나의 정원 일본"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을 맡기도 했다.

1967년, 제임스 본드 영화 《007 두 번 산다》에서 스펙터의 일원인 오사토 화학 사장 역을 맡아 대표작을 남겼다. 그는 본드(숀 코너리)에게 "담배는 끊으시는 게 좋겠소. 폐에 아주 안 좋소."라는 대사를 남겼으며, 촬영을 위해 প্রায় 50년 만에 고국인 일본을 방문했다. 이후 《아이 스파이》, 《매닉스》, 《하와이 파이브-O》 등 인기 TV 시리즈에 출연했다.

4. 은퇴와 죽음

시마다는 70대에 은퇴하여 로스앤젤레스 엔시노에 거주했다. 그는 아파트 단지를 매입하고 임대하여 생계를 유지했다. 1988년 6월 19일 엔시노 자택에서 사망했으며, 로스앤젤레스의 할리우드 힐스에 있는 Forest Lawn 묘지에 묻혔다.

5. 개인사

시마다는 결혼하지 않았다. 1940년에 발급받은 징병 카드에 그는 안나 스나이더를 "가족"으로 기재했다. 1954년에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으며, 1970년부터 사회 보장 혜택을 받기 시작했다.

6. 출연 작품

007 두번 산다(1967년) - 미스터 오사토 역

뛰지말고 걸어라(1966년) - 쿠라와 씨

0011 나폴레옹 솔로 - 지옥특파(1966년) - 싱목 대통령

배트맨(1966년) - 일본 대표 (크레딧 없음)

게이샤 보이(1958년) - 오사카와, 일본 형사 (크레딧 없음)

페리 메이슨(1957년)

델리케이트 딜리퀀트(1957년) - 토고의 일본어 통역관 (크레딧 없음)

전송가(1957년) - 한국 관리

대나무집(1955년) - 나가야 (크레딧 없음)

더 스노우 크리처(1954년) - 수브라

원한의 도곡리 다리(1954년) - 일본인 아버지 (크레딧 없음)

우주 전쟁(1953년) - 일본 외교관 (크레딧 없음)

도쿄 조(1949년) - 이토

데이 멧 인 봄베이(1941년) - 일본 육군 대령 (크레딧 없음)

오일 포 더 램프 오브 차이나(1935년) - 찻집 주인 (크레딧 없음)

''워싱턴 가면극''(1932) - 일본 고위 관리 (크레딧 없음)

''나이트클럽 레이디''(1932) - 이토 무라 (크레딧 없음)

''백악관의 가브리엘''(1933) - 부채 회의의 일본 해군 제독 (크레딧 없음)

''미드나잇 클럽'' (1933) - 니시 (크레딧 없음)

''네 명의 공포에 질린 사람들''(1934) - 원주민

''허영의 살인''(1934) - 코토 (크레딧 없음)

''찰리 찬의 용기''(1934) - 유술가

''인생 모방''(1934) - 팬케이크 가게의 일본인 손님 (크레딧 없음)

''보더타운''(1935) - 법대 졸업생 (크레딧 없음)

''그들에게 맡겨라''(1935) - 중국인 하인 (크레딧 없음)

''공공 영웅 #1''(1935) - 샘 - 소니의 일본인 하인 (크레딧 없음)

''중국의 등불을 위한 기름''(1935) - 찻집 주인 (크레딧 없음)

''수잔의 사건''(1935) - 도박사 (크레딧 없음)

''좀비의 반란''(1936) - 부나

''백색 군단''(1936) - 노기 박사

''미스터 모토의 최후의 경고''(1939) - 가짜 미스터 모토 (크레딧 없음)

''그들은 봄베이에서 만났다''(1941) - 일본 육군 대령 (크레딧 없음)

''용의 씨앗''(1944) - 마을 주민 (크레딧 없음)

''도쿄 조''(1949) - 이토

''응급 결혼''(1950) - 호 (크레딧 없음)

''우주 전쟁''(1953) - 일본 외교관 (크레딧 없음)

''눈 괴물''(1954) - 수브라

''도코리 다리''(1954) - 일본인 아버지 (크레딧 없음)

''대나무의 집''(1955) - 나가야 (크레딧 없음)

''해군 아내''(1956) - 요시다 시장

''전투 찬가''(1957) - 한국 관리

''섬세한 불량배''(1957) - 토고의 일본어 통역관 (크레딧 없음)

''조용히, 깊이 잠수하라''(1958) - 일본 잠수함 사령관 (크레딧 없음)

''게이샤 보이''(1958) - 오사카와, 일본 형사 (크레딧 없음)

''어둠 속의 도쿄'' (1959) - 센세이

''산호해 전투''(1959) - 모리 사령관

''가장 엉뚱한 군함''(1961) - 사마다 소령

''수평 중위''(1962) - 쇼의 사회자 (크레딧 없음)

''상''(1963) - 일본 특파원 (크레딧 없음)

''킹 랫''(1965) - 일본 장군

''스파이, 너무 많다''(1966) - 싱목 대통령

''걸어가지 말고 뛰어라''(1966) - 쿠라와 씨

''배트맨''(1966) - 일본 대표 (크레딧 없음)

''007 두 번 산다''(1967) - 오사토 씨

''달콤하고 쓰라린''(1967) - 토미 히라타


  • 하디 보이즈: 중국 정크의 미스터리 (1967) - 판 씨

''어느 길로 갈 것인가?''(1970) - 일본 해군 장교 (크레딧 없음)

6. 1. 영화

테루 시마다는 여러 영화에 출연했다. 1935년 영화 오일 포 더 램프 오브 차이나에서 테이어 하우스 오너 역을 맡았고, 1949년 영화 도쿄 조에서는 이토 역을 연기했다. 1953년에는 우주 전쟁에 출연했다. 1954년에는 원한의 도곡리 다리에 출연했다.

1955년 대나무집, 1957년 전송가와 델리케이트 딜리퀀트, 페리 메이슨, 1958년 게이샤 보이에 출연했다.

1966년에는 0011 나폴레옹 솔로 - 지옥특파, 배트맨, 뛰지말고 걸어라에 출연했다. 1967년에는 007 두 번 산다에서 미스터 오사토 역을 연기했다.

참조

[1] 웹사이트 Japanese American Internee Data File: Teru Shimada https://aad.archive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2019-08-17
[2] 웹사이트 National Archives: Teru Shimada http://aad.archives.[...] 2013-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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