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 (1976년 영화)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파랑새는 1976년에 개봉한 영화로, 가난한 남매 마이틸과 틸틸이 빛의 여왕의 인도를 받아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린다. 엘리자베스 테일러, 제인 폰다, 아바 가드너 등 유명 배우들이 출연했으며, 소련과 공동 제작되었다. 영화는 1979년 TBS를 통해 한국어 더빙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그러나 제작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었고, 비평가들로부터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촬영한 영화 - 레토 (영화)
1981년 레닌그라드를 배경으로 19세의 빅토르 최, 26세의 마이크 나우멘코, 그리고 마이크의 여자친구 나타샤 나우멘코의 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2018년 러시아 영화 레토는, 레닌그라드 록 클럽을 중심으로 빅토르 최의 성장과 키노의 첫 앨범 녹음 과정을 보여주며 칸 영화제 사운드트랙 상을 수상했으나 역사적 사실 왜곡 논란을 겪었다. -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촬영한 영화 - 6번 칸
6번 칸은 핀란드 여성 라우라와 러시아 광부 료하가 기차를 타고 이동하며 겪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 새를 소재로 한 영화 - 새 (영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새》는 다프네 듀 모리에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샌프란시스코 사교계 여성이 한 남자를 방문하면서 불가사의하게 발생하는 새들의 공격을 묘사하는 심리적 공포 영화이며, 긴장감 넘치는 연출과 모호한 결말, 그리고 촬영 당시 논란으로 주목받았고, 개봉 당시 엇갈린 평가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 고전적인 공포 영화로 인정받고 있다. - 새를 소재로 한 영화 - 갈매기의 꿈 (1973년 영화)
리처드 바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갈매기의 꿈》은 홀 바틀렛 감독이 연출하고, 나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무리의 멘토가 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닐 다이아몬드가 영화 음악을 맡아 그래미상과 골든 글로브상을 수상했으나, 영화 내용에 대한 이견으로 원작자와 음악가가 각각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 조지 큐커 감독 영화 - 필라델피아 스토리
필립 배리의 연극을 영화화한 《필라델피아 스토리》는 캐서린 헵번, 캐리 그랜트, 제임스 스튜어트 주연, 조지 큐커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결혼을 앞둔 상류층 여성이 전 남편과 잡지 기자 사이에서 진정한 사랑을 찾는 이야기이며 아카데미 각본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미국 국립 영화 등록부에 등재되었다. - 조지 큐커 감독 영화 - 스타 탄생 (1954년 영화)
조지 큐커 감독의 영화 《스타 탄생》은 주디 갈랜드와 제임스 메이슨 주연의 뮤지컬 드라마로, 한물간 남자 스타와 떠오르는 여자 스타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1937년 영화의 리메이크 작품이며, 아카데미상 후보 지명 및 골든 글로브 남녀 주연상을 수상했다.
파랑새 (1976년 영화) - [영화]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원작 | 모리스 메테를링크의 희곡 《파랑새》(1908) |
장르 | 모험, 드라마, 가족 |
언어 | 영어, 러시아어 |
제작 | |
감독 | 조지 큐커 |
제작자 | 폴 마스랜스키 |
각본 | 휴 화이트모어, 알프레드 헤이스, 알렉세이 카플레르 |
스토리 | 이리나 골로반, 이리나 타르사노바 |
음악 | 어윈 코스털, 안드레이 페트로프 |
촬영 | 요나스 그리시우스, 프레디 영 |
편집 | 스탠포드 C. 앨런, 타티야나 샤피로 |
제작사 | 렌필름 |
배급사 | 20세기 폭스 |
제작 총지휘 | 에드워드 루이스 |
출연 | |
주연 | 엘리자베스 테일러, 제인 폰다, 시실리 타이슨, 윌 기어, 토드 루킨랜드, 나데즈다 파블로바, 에바 가드너 |
개봉 및 상영 정보 | |
개봉일 | 1976년 4월 5일 |
상영 시간 | 99분 |
국가 | 미국, 소련 |
흥행 | |
제작비 | 1200만 달러 |
흥행 수익 | 미국/캐나다 350만 달러 |
2. 줄거리
마이틸과 그의 남동생 틸틸은 가난한 아이들로, 빛의 여왕의 인도를 받아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나선다. 여왕은 그들에게 마법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모자를 주는데, 이 모자는 살아있는 것과 무생물을 포함한 모든 것들의 영혼을 불러낼 수 있게 한다.
그들의 여정에는 개의 의인화, 고양이의 의인화, 물, 설탕, 빵, 우유, 불이 동행한다. 그들은 과거와 미래의 왕국, 밤과 사치의 왕국을 방문하며 각 장소에서 더 많은 지혜를 흡수한다. 마침내 그들은 그들이 찾고 있던 파랑새가 바로 자기들 뒷마당에 있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3. 출연진
1979년 11월 19일 TBS 『월요 로드쇼』에서 한국어 더빙이 방영되었다.
배역 | 배우 |
---|---|
빛의 여왕/어머니/마녀/모성애 | 엘리자베스 테일러 |
밤 | 제인 폰다 |
사치 | 아바 가드너 |
티레트(고양이) | 시실리 타이슨 |
시간의 아버지 | 로버트 모리 |
아버지 | 레오니트 네베돔스키 |
떡갈나무 | 해리 앤드루스 |
틸틸 | 토드 루킨랜드 |
미틸 | 패시 켄싯 |
할아버지 | 윌 기어 |
할머니 | 모나 워시번 |
타일로(개) | 조지 콜 |
빵 | 리처드 피어슨 |
설탕 | 게오르기 비친 |
우유 | 마가리타 테레호바 |
물 | 발렌티나 가니발로바 |
불 | 예브게니 시체르바코프 |
파랑새 | 나데즈다 파블로바 |
작은 파란 형 | 그랜트 바즈들리 |
광대 | 올레크 포포프 |
3. 1. 주연
- 엘리자베스 테일러 - 빛의 여왕/어머니/마녀/모성애
- 제인 폰다 - 밤
- 아바 가드너 - 사치
- 시실리 타이슨 - 티레트(고양이)
- 로버트 모리 - 시간의 아버지
- 레오니트 네베돔스키 - 아버지
- 해리 앤드루스 - 떡갈나무
- 토드 루킨랜드 - 틸틸
- 패시 켄싯 - 미틸
- 윌 기어 - 할아버지
- 모나 워시번 - 할머니
- 조지 콜 - 타일로(개)
- 리처드 피어슨 - 빵
- 게오르기 비친 - 설탕
- 마가리타 테레호바 - 우유
- 발렌티나 가니발로바 - 물
- 예브게니 시체르바코프 - 불
- 나데즈다 파블로바 - 파랑새
- 그랜트 바즈들리 - 작은 파란 형
- 올레크 포포프 - 광대
3. 2. 조연
- 윌 기어 - 할아버지
- 팻시 켄싯 - 미틸
- 토드 루킨랜드 - 틸틸
- 로버트 몰리 - 시간의 아버지
- 엘리자베스 테일러 - 빛의 여왕/어머니/마녀/모성애
- 시실리 타이슨 - 티레트(고양이)
- 모나 워쉬 - 할머니
- 제인 폰다 - 밤
- 아바 가드너 - 사치
- 레오니트 네베돔스키 - 아버지
- 해리 앤드루스 - 떡갈나무
- 조지 콜 - 타일로(개)
- 리처드 피어슨 - 빵
- 게오르기 비친 - 설탕
- 마가리타 테레호바 - 우유
- 발렌티나 가니발로바 - 물
- 예브게니 시체르바코프 - 불
- 나데즈다 파블로바 - 파랑새
- 그랜트 바즈들리 - 작은 파란 형
- 올레크 포포프 - 광대
3. 3. 한국어 더빙 (TBS, 1979년)
1979년 11월 19일 TBS 『월요 로드쇼』에서 한국어 더빙이 방영되었다.배역 | 배우 |
---|---|
빛의 여왕/어머니/마녀/모성애 | 엘리자베스 테일러 |
밤 | 제인 폰다 |
사치 | 아바 가드너 |
티레트(고양이) | 시실리 타이슨 |
시간의 아버지 | 로버트 모리 |
아버지 | 레오니트 네베돔스키 |
떡갈나무 | 해리 앤드루스 |
틸틸 | 토드 루킨랜드 |
미틸 | 패시 켄싯 |
할아버지 | 윌 기어 |
할머니 | 모나 워시번 |
타일로(개) | 조지 콜 |
빵 | 리처드 피어슨 |
설탕 | 게오르기 비친 |
우유 | 마가리타 테레호바 |
물 | 발렌티나 가니발로바 |
불 | 예브게니 시체르바코프 |
파랑새 | 나데즈다 파블로바 |
작은 파란 형 | 그랜트 바즈들리 |
광대 | 올레크 포포프 |
4. 제작 과정
에드워드 루이스는 1968년 영화 ''파랑새''의 판권을 확보하고 타워 인터내셔널과 함께 영국의 문화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소련과의 공동 제작을 추진하려 했다.[2] 1974년, 루이스는 렌필름과 합의하여 알프레드 헤이즈와 알렉세이 카플러가 공동 집필하는 국제 공동 제작을 진행했다. 처음에 아서 펜을 감독으로 고용했지만, 소련 당국은 그를 "너무 자유주의적"이라고 판단하여 조지 큐커가 "비정치적"인 미국인 감독으로 고용되었다.[2] 루이스는 말론 브란도를 배역에 캐스팅하겠다는 약속으로 소련 스튜디오가 영화를 공동 제작하도록 설득했지만,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 캐서린 헵번과 셜리 맥클레인은 처음에 출연하기로 계약했지만,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모두 제작에서 하차했다.[2]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데이비드 보위에게 영화 출연을 제안했지만 그는 거절했다.[3]
영화는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에서 로케이션 촬영되었다. 작업 및 생활 환경은 원시적인 수준이었고, 비러시아인 배우들은 혹독한 날씨와 대부분 먹을 수 없는 음식에 대처하기 어려워했다. 원래 틸로 역으로 캐스팅된 제임스 코코는 빵과 버터만 소화할 수 있었고, 결국 담낭 발작을 일으켜 교체되었으며,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촬영 내내 아메바증으로 고통받았다. 테일러는 데일리 필름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런던으로 날아가 소비에트 리투아니아 출신 촬영 감독인 요나스 그리치우스를 교체할 것을 요구했는데, 그는 컬러 영화 촬영 경험이 부족했다. 테일러의 모든 장면은 후반 작업에서 다시 촬영되었다.[2] 그리치우스는 제2팀의 일원이 되었고 프레디 영이 촬영 감독이 되었다. 영어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제작진 간의 의사 소통은 거의 불가능했고, 조지 큐커는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애처롭게 수화에 의존했다.[4] 큐커에 따르면, 제인 폰다는 "도착했을 때는 우울했지만 곧 편안해졌다."[4] 그는 시실리 타이슨과 더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녀가 촬영장에서 부두교 주문을 걸어 제작을 망치려 했다고 비난했다.[5]
이러한 문제로 인해 제작이 한 달이나 지연되자, 20세기 폭스는 루이스 대신 폴 마슬란스키를 프로듀서로 교체했는데, 그는 ''붉은 텐트''에서 소련에서 영화를 촬영한 경험이 있었고 러시아어를 할 줄 알았다. 주요 촬영은 1975년 1월 20일부터 8월 11일까지 진행되었다.[2] 테일러는 자신의 역할에 필요한 추가 의상을 구입하는 데 8,000달러를 지출했다.
4. 1. 감독 및 캐스팅
에드워드 루이스는 1968년 영화 ''파랑새''의 판권을 확보하고 타워 인터내셔널과 함께 영국의 문화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소련과의 공동 제작을 추진하려 했다.[2] 1974년, 루이스는 알프레드 헤이즈와 알렉세이 카플러가 공동 집필하는 국제 공동 제작을 위해 렌필름과 합의에 도달했다.[2] 루이스는 처음에 아서 펜을 감독으로 고용했지만, 소련 당국은 그를 "너무 자유주의적"이라고 판단했고, 그 타협안으로 조지 큐커가 "비정치적"인 미국인 감독으로 고용되었다.[2] 루이스는 말론 브란도를 배역에 캐스팅하겠다는 약속으로 소련 스튜디오가 영화를 공동 제작하도록 설득했지만,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2] 캐서린 헵번과 셜리 맥클레인은 처음에 출연하기로 계약했지만,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모두 제작에서 하차했다.[2]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데이비드 보위에게 영화 출연을 제안했지만 그는 거절했다.[3]원래 틸로 역으로 캐스팅된 제임스 코코는 빵과 버터만 소화할 수 있었고, 결국 담낭 발작을 일으켜 교체해야 했다.[2]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촬영 내내 아메바증으로 고통받았다.[2] 첫 주에 촬영된 데일리 필름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본 테일러는 런던으로 날아가 소비에트 리투아니아 출신 촬영 감독인 요나스 그리치우스를 교체할 것을 요구했는데, 그는 컬러 영화 촬영 경험이 부족했다.[2] 테일러의 모든 장면은 후반 작업에서 다시 촬영되었다.[2] 그리치우스는 제2팀의 일원이 되었고 프레디 영이 촬영 감독이 되었다. 영어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제작진 간의 의사 소통은 거의 불가능했고, 조지 큐커는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애처롭게 수화에 의존했다.[4] 큐커에 따르면, 제인 폰다는 "도착했을 때는 우울했지만 곧 편안해졌다."[4] 그는 시실리 타이슨과 더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녀가 촬영장에서 부두교 주문을 걸어 제작을 망치려 했다고 비난했다.[5] 이러한 문제로 인해 제작이 한 달이나 지연되자, 20세기 폭스는 루이스 대신 폴 마슬란스키를 프로듀서로 교체했는데, 그는 ''붉은 텐트''에서 소련에서 영화를 촬영한 경험이 있었고 러시아어를 할 줄 알았다.[2]
4. 2. 촬영
에드워드 루이스는 1968년 영화 ''파랑새''의 판권을 확보하고 타워 인터내셔널과 함께 영국의 문화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소련과의 공동 제작을 추진하려 했다.[2] 1974년, 루이스는 렌필름과 합의하여 알프레드 헤이즈와 알렉세이 카플러가 공동 집필하는 국제 공동 제작을 진행했다. 처음에 아서 펜을 감독으로 고용했지만, 소련 당국은 그를 "너무 자유주의적"이라고 판단하여 조지 큐커가 "비정치적"인 미국인 감독으로 고용되었다.[2] 말론 브란도를 배역에 캐스팅하겠다는 약속으로 소련 스튜디오가 영화를 공동 제작하도록 설득했지만,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 캐서린 헵번과 셜리 맥클레인은 처음에 출연하기로 계약했지만,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모두 제작에서 하차했다.[2]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데이비드 보위에게 영화 출연을 제안했지만 그는 거절했다.[3]영화는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에서 로케이션 촬영되었다. 작업 및 생활 환경은 원시적인 수준이었고, 비러시아인 배우들은 혹독한 날씨와 대부분 먹을 수 없는 음식에 대처하기 어려워했다. 제임스 코코는 빵과 버터만 소화할 수 있었고, 담낭 발작을 일으켜 교체되었으며,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촬영 내내 아메바증으로 고통받았다. 테일러는 데일리 필름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런던으로 날아가 소비에트 리투아니아 출신 촬영 감독인 요나스 그리치우스를 교체할 것을 요구했는데, 그는 컬러 영화 촬영 경험이 부족했다. 테일러의 모든 장면은 후반 작업에서 다시 촬영되었다.[2] 그리치우스는 제2팀의 일원이 되었고 프레디 영이 촬영 감독이 되었다. 영어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제작진 간의 의사 소통은 거의 불가능했고, 조지 큐커는 수화에 의존했다. 큐커에 따르면, 제인 폰다는 "도착했을 때는 우울했지만 곧 편안해졌다."[4] 그는 시실리 타이슨과 더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녀가 촬영장에서 부두교 주문을 걸어 제작을 망치려 했다고 비난했다.[5]
제작이 한 달이나 지연되자, 20세기 폭스는 루이스 대신 폴 마슬란스키를 프로듀서로 교체했는데, 그는 ''붉은 텐트''에서 소련에서 영화를 촬영한 경험이 있었고 러시아어를 할 줄 알았다. 주요 촬영은 1975년 1월 20일부터 8월 11일까지 진행되었다.[2] 테일러는 자신의 역할에 필요한 추가 의상을 구입하는 데 8,000달러를 지출했다.
4. 3. 촬영 감독 교체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데일리 필름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 후, 컬러 영화 촬영 경험이 부족했던 소비에트 리투아니아 출신 촬영 감독 요나스 그리치우스를 교체할 것을 요구했다.[2] 결국 테일러의 모든 장면은 후반 작업에서 다시 촬영되었으며,[2] 그리치우스는 제2팀의 일원이 되었고 프레디 영이 촬영 감독을 맡게 되었다.4. 4. 제작 지연 및 프로듀서 교체
에드워드 루이스는 1968년 영화 ''파랑새''의 판권을 확보하고 타워 인터내셔널과 함께 영국의 문화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소련과의 공동 제작을 추진하려 했다.[2] 1974년, 루이스는 알프레드 헤이즈와 알렉세이 카플러가 공동 집필하는 국제 공동 제작을 위해 렌필름과 합의에 도달했다. 루이스는 처음에 아서 펜을 감독으로 고용했지만, 소련 당국은 그를 "너무 자유주의적"이라고 판단했고, 그 타협안으로 조지 큐커가 "비정치적"인 미국인 감독으로 고용되었다.[2] 루이스는 말론 브란도를 배역에 캐스팅하겠다는 약속으로 소련 스튜디오가 영화를 공동 제작하도록 설득했지만, 이는 실현되지 않았다.[2] 캐서린 헵번과 셜리 맥클레인은 처음에 출연하기로 계약했지만,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모두 제작에서 하차했다.[2]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데이비드 보위에게 영화 출연을 제안했지만 그는 거절했다.[3]이 영화는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에서 로케이션 촬영되었다. 때때로 작업 및 생활 환경은 원시적인 수준이었고, 비러시아인 배우들은 혹독한 날씨와 대부분 먹을 수 없는 음식에 대처하기 어려워했다.[2] 제임스 코코는 빵과 버터만 소화할 수 있었고, 결국 담낭 발작을 일으켜 교체해야 했으며,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촬영 내내 아메바증으로 고통받았다. 첫 주에 촬영된 데일리 필름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본 테일러는 런던으로 날아가 소비에트 리투아니아 출신 촬영 감독인 요나스 그리치우스를 교체할 것을 요구했는데, 그는 컬러 영화 촬영 경험이 부족했다. 테일러의 모든 장면은 후반 작업에서 다시 촬영되었다.[2] 그리치우스는 제2팀의 일원이 되었고 프레디 영이 촬영 감독이 되었다. 영어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제작진 간의 의사 소통은 거의 불가능했고, 조지 큐커는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애처롭게 수화에 의존했다.[2] 큐커에 따르면, 제인 폰다는 "도착했을 때는 우울했지만 곧 편안해졌다."[4] 그는 시실리 타이슨과 더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녀가 촬영장에서 부두교 주문을 걸어 제작을 망치려 했다고 비난했다.[5] 이러한 문제로 인해 제작이 한 달이나 지연되자, 20세기 폭스는 루이스 대신 폴 마슬란스키를 프로듀서로 교체했는데, 그는 ''붉은 텐트''에서 소련에서 영화를 촬영한 경험이 있었고 러시아어를 할 줄 알았다.[2] 주요 촬영은 1975년 1월 20일부터 8월 11일까지 진행되었다.[2] 테일러는 자신의 역할에 필요한 추가 의상을 구입하는 데 8,000달러를 지출했다.
5. 평가
이 영화는 1976년 5월 5일 존 F. 케네디 공연 예술 센터에서 워싱턴 D.C.에서 초연되었다.[2]
뉴욕 타임스의 빈센트 캔비는 이 영화를 "경쟁하고 싶어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두 편의 영화"라고 묘사하며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모두가 예의를 차리고 타협을 받아들여 효과적으로 무력화되었다. 이 영화 중 하나는 물컵으로 나중에 사용할 수 있는 병에 든 가공 치즈와 같은 무미건조한 미국 영화다. 다른 하나는 희미하게 러시아 영화이지만 훌륭하지 않은 세트를 제외하고는 실제 러시아 캐릭터가 없다. 마치 볼쇼이 오페라의 마지막 순회 공연에서 남은 물건처럼 보인다."[6] 또한 "구경거리를 위한 구경거리는 더 이상 이 나라에서 유행하지 않는다"라며, "'파랑새'를 동기 부여하는 낭만적인 생각들은 대부분의 미국 아이들을, 영화를 보러 갈지도 모르는 노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혼수 상태에서 시작하여 무장 반란으로 끝나는 반사회적 상태로 보낼 만큼 충분하다"고 혹평했다.[6] 큐커 감독에 대해서는 "친선 대사 역할을 하는 것보다 연출할 기회가 적었던 것 같다"고 평가했으며, 영어를 사용하는 배우들과 소련 배우들 모두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6]
''버라이어티''는 "아무도 그것을 비웃지는 않을 것이다(그것은 훌륭하다) 하지만 아무도 강하게 감동받지는 않을 것이다(그것은 나쁘다)"라고 썼다.[7]
''타임 아웃 뉴욕(Time Out New York)''은 이 영화를 "매우 보행자적이고 끔찍하게 화려한 메테를링크의 섬세한 판타지"라고 불렀고, "큐커가 연출했다고는 일요일 한 달 동안 결코 믿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8]
시카고 트리뷴의 진 시스켈은 이 영화에 별 4개 중 1개를 주며, 제작 문제점이 "화면에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에 대해서는 "빛의 정령을 연기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못생겨 보인다"고 혹평했으며, 출연진의 러시아인들과 두 주연 아이들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9]
5. 1. 비평
이 영화는 1976년 5월 5일 존 F. 케네디 공연 예술 센터에서 워싱턴 D.C.에서 초연되었다.[2] 뉴욕 타임스의 빈센트 캔비는 이 영화를 "경쟁하고 싶어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두 편의 영화"라고 묘사하며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모두가 예의를 차리고 타협을 받아들여 효과적으로 무력화되었다. 이 영화 중 하나는 물컵으로 나중에 사용할 수 있는 병에 든 가공 치즈와 같은 무미건조한 미국 영화다. 다른 하나는 희미하게 러시아 영화이지만 훌륭하지 않은 세트를 제외하고는 실제 러시아 캐릭터가 없다. 마치 볼쇼이 오페라의 마지막 순회 공연에서 남은 물건처럼 보인다."[6] 또한 "구경거리를 위한 구경거리는 더 이상 이 나라에서 유행하지 않는다"라며, "'파랑새'를 동기 부여하는 낭만적인 생각들은 대부분의 미국 아이들을, 영화를 보러 갈지도 모르는 노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혼수 상태에서 시작하여 무장 반란으로 끝나는 반사회적 상태로 보낼 만큼 충분하다"고 혹평했다.[6] 큐커 감독에 대해서는 "친선 대사 역할을 하는 것보다 연출할 기회가 적었던 것 같다"고 평가했으며, 영어를 사용하는 배우들과 소련 배우들 모두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6]''버라이어티''는 "아무도 그것을 비웃지는 않을 것이다(그것은 훌륭하다) 하지만 아무도 강하게 감동받지는 않을 것이다(그것은 나쁘다)"라고 썼다.[7] ''타임 아웃 뉴욕''은 이 영화를 "매우 보행자적이고 끔찍하게 화려한 메테를링크의 섬세한 판타지"라고 불렀고, "큐커가 연출했다고는 일요일 한 달 동안 결코 믿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8] 시카고 트리뷴의 진 시스켈은 이 영화에 별 4개 중 1개를 주며, 제작 문제점이 "화면에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에 대해서는 "빛의 정령을 연기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못생겨 보인다"고 혹평했으며, 출연진의 러시아인들과 두 주연 아이들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9]
5. 2. 수상 및 후보
이 영화는 새턴상 판타지 영화 작품상 후보에 올랐지만, 《구멍들》에 밀려 수상에 실패했다.6. 참고 문헌
wikitext
7. 각주
wikitable
각주 |
---|
내용 없음 |
참조
[1]
서적
Twentieth Century Fox: A Corporate and Financial History (The Scarecrow Filmmakers Series)
Scarecrow Press
1989
[2]
웹사이트
The Blue Bird
https://catalog.afi.[...]
2021-11-12
[3]
서적
David Bowie: A Life
Crown Archetype
2017
[4]
뉴스
Out of Cukor's Nest, a 'Bird' of Love and Faith
1975-10-26
[5]
서적
George Cukor: A Double Life
St. Martin's Press
1991
[6]
웹사이트
New York Times review
https://movies.nytim[...]
2011-07-28
[7]
웹사이트
Variety review
https://archive.toda[...]
[8]
웹사이트
Time Out New York review
https://archive.toda[...]
[9]
뉴스
'Won Ton Ton' can't save bad script
https://www.newspape[...]
1976-05-31
[10]
서적
Twentieth Century Fox: A Corporate and Financial History (The Scarecrow Filmmakers Series)
Scarecrow Press
1989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