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라 다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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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플로라 다니카(Flora Danica)는 1753년 코펜하겐 식물원 교수 G. C. 외더에 의해 제안되어 1883년 완간된 덴마크의 식물 도감이다.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등 북대서양 지역의 식물을 망라하여 총 3,240개의 구리 판화로 구성되었다. 플로라 다니카는 식물 삽화의 기준을 세웠으며, 삽화 도안을 활용한 식기 세트가 제작되어 덴마크 왕실에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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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로라 다니카 | |
|---|---|
| 플로라 다니카 | |
![]() | |
| 종류 | 도감 |
| 언어 | 라틴어, 덴마크어, 독일어, 프랑스어 |
| 주제 | 식물 |
| 발행 국가 | 덴마크 |
| 발행 시작 | 1761년 |
| 발행 종료 | 1883년 |
| 총 권수 | 51권 |
| 주요 인물 | |
| 게오르크 크리스토프 오더 | 편집자 (1761–1771) |
| 마르틴 바할 | 편집자 (1777–1778) |
| 오토 프리드리히 뮐러 | 편집자 (1778–1782) |
| 크리스티안 프리즈 | 편집자 (1782–1788) |
| 옌스 빌켄스 혼네만 | 편집자 (1788–1816) |
| 시몬 나탄 엘리아스 | 편집자 (1817–1859) |
| 요한 뷔로 | 편집자 (1859–1883) |
| 프란츠 미하엘 레겔 | 삽화가 |
| 요한 크리스티안 바이어 | 삽화가 |
| 야콥 스트룀너 | 삽화가 |
| 상세 정보 | |
| 플로라 다니카 (Flora Danica) | '덴마크의 식물'이라는 의미 |
| 목적 | 덴마크 왕국에 자생하는 모든 식물을 망라적으로 도해하여 설명하는 것 |
| 포함 국가 | 덴마크 노르웨이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올덴부르크 백국 페로 제도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
2. 역사
''플로라 다니카''는 1753년 코펜하겐 식물원의 식물학 교수였던 G. C. 외더에 의해 제안되어 1883년에 완간된 식물 도감이다. 총 51개의 본책과 3개의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3,240개의 구리 판화가 포함되어 있다.[1]
원래는 덴마크 국왕의 왕령지, 즉 덴마크,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올덴부르크-델멘호르스트,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페로 제도, 그린란드 등 북대서양의 부속 영토에 서식하는 모든 식물(선태식물, 지의류, 균류 포함)을 다루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출판 기간 동안 영토 변화로 인해 내용이 변경되었다. 1814년 덴마크-노르웨이 이중 군주제가 폐지되면서 노르웨이 식물은 거의 포함되지 않았고, 1864년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 공국이 할양된 후에도 비슷한 변화가 있었다. 19세기 중반 스칸디나비즘 시대에 코펜하겐에서 열린 노르디스케 나투르포르스케르모데(Nordiske Naturforskermøde)에서 ''플로라 다니카''를 스칸디나비아 작품으로 만들자는 제안에 따라, 나머지 노르웨이 식물과 스웨덴에서만 발견되는 주요 식물을 포함하는 세 개의 보충본이 발행되었다.[1]
초기 10권(총 600개 판화)의 삽화는 뉘른베르크 출신의 숙련된 조각가 미하엘 뢰슬러(1705–1777)와 그의 아들 마틴 뢰슬러(1727–1782)가 제작했다. 뢰슬러 부자는 1755년 코펜하겐으로 이주하여 평생 그곳에 머물렀으며, 그들의 삽화는 ''플로라 다니카''에서 최고로 여겨지며 식물 삽화의 기준을 세웠다.[1] 이후 삽화는 오토 프리드리히 뮐러의 형제인 요한 크리스티안 토르남과 크리스티안 F. 뮐러, 그리고 요한 테오도어 바이어가 담당했다.[2]
''플로라 다니카''의 편집 및 출판 과정은 다음과 같다.
| 연도 | 권호 | 도판 | |
|---|---|---|---|
| 게오르크 크리스티안 외데르(Georg Christian Oeder) | 1761–1771 | 1–10 | 1–600 |
| O.F. 뮐러(Otto Friedrich Müller) | 1775–1782 | 11–15 | 601–900 |
| 마틴 발(Martin Vahl) | 1787–1799 | 16–21 | 901–1260 |
| J.W. 호르네만(Jens Wilken Hornemann) | 1806–1840 | 22–39 | 1261–2340 |
| S. 드레예르(Salomon Drejer), J. F. 쇼우(Joakim Frederik Schouw) 및 옌스 발(Jens Vahl) | 1843 | 40 | 2341–2400 |
| F. 리브만(Frederik Michael Liebmann) | 1845–1853 | 41–43 & Suppl. 1 | 2401–2580 & S1-60 |
| 야페투스 스테엔스트루프(Japetus Steenstrup) 및 요한 랑게(Johan Lange) | 1858 | 44 | 2581–2640 |
| 요한 랑게(Johan Lange) | 1861–1883 | 45–51 & Suppl. 2–3 | 2641–3060 & S61-180 |
2. 1. 제작 배경 및 초기 과정
''플로라 다니카''(Flora Danica)는 1753년 코펜하겐 식물원의 식물학 교수였던 G. C. 외더에 의해 제안되었으며, 123년 후인 1883년에 완간되었다. 전체 작업은 51개의 부분과 3개의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3,240개의 구리 판화가 포함되어 있다.[1]원래 계획은 덴마크 국왕의 왕령지, 즉 덴마크,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올덴부르크-델멘호르스트 및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 페로 제도, 그린란드를 포함한 북대서양의 부속 영토에 서식하는 선태식물, 지의류, 균류를 포함한 모든 식물을 다루는 것이었다. 그러나 출판 기간 동안 영토 변화로 인해 변경이 이루어졌다. 덴마크-노르웨이의 이중 군주제가 폐지된 1814년 이후, 노르웨이 식물은 거의 포함되지 않았으며,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 공국이 할양된 1864년 이후에도 비슷한 변화가 있었다. 19세기 중반 스칸디나비즘 시대에 코펜하겐에서 열린 노르디스케 나투르포르스케르모데(Nordiske Naturforskermøde)는 플로라 다니카를 스칸디나비아 작품으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따라서 나머지 노르웨이 식물과 스웨덴에서만 발견되는 더 중요한 식물을 포함하는 세 개의 보충본이 발행되었다.[1]
외더는 제안된 플로라의 대상 지역을 광범위하게 여행했다. 삽화는 뉘른베르크 출신의 숙련된 조각가인 미하엘 뢰슬러(1705–1777)와 외더와 함께 현장 답사를 통해 식물을 그린 그의 아들 마틴 뢰슬러(1727–1782)가 제작했다.[1] 처음 10권은 총 600개의 판화로 출판되었다. 뢰슬러 부자는 삽화를 제작하기 위해 1755년 코펜하겐으로 이주하여 평생 그곳에 머물렀으며, 미하엘은 구리 조각가가 되었다. 그들의 삽화는 플로라 다니카에서 최고로 여겨지며 식물 삽화의 기준을 세웠다.
후기 삽화가로는 12권에서 21권까지는 식물학 편집자인 오토 프리드리히 뮐러의 형제인 요한 크리스티안 토르남(1822–1908)과 크리스티안 F. 뮐러(1748–1814)가, 22권에서 46권까지는 요한 테오도어 바이어(1782–1873)가 담당하여 약 1500개의 판화를 제작했다.[2]
2. 2. 삽화 제작
G. C. 외더는 제안된 플로라의 대상 지역을 광범위하게 여행했다. 삽화는 뉘른베르크 출신의 숙련된 조각가인 미하엘 뢰슬러(1705–1777)와 외더와 함께 현장 답사를 통해 식물을 그린 그의 아들 마틴 뢰슬러(1727–1782)가 제작했다.[1]처음 10권은 총 600개의 판화로 출판되었다. 삽화를 제작하기 위해 뢰슬러 부자는 1755년 코펜하겐으로 이주하여 평생 그곳에 머물렀으며, 미하엘은 구리 조각가가 되었다. 그들의 삽화는 《플로라 다니카》에서 최고로 여겨지며 식물 삽화의 기준을 세웠다. 후기 삽화가로는 12권에서 21권까지는 식물학 편집자인 오토 프리드리히 뮐러의 형제인 요한 크리스티안 토르남(1822–1908)과 크리스티안 F. 뮐러(1748–1814)가, 22권에서 46권까지는 요한 테오도어 바이어(1782–1873)가 담당하여 약 1500개의 판화를 제작했다.[2]
2. 3. 출판 과정 및 편집자
G. C. 외더는 1753년 코펜하겐 대학교 식물원의 식물학 교수 시절 ''플로라 다니카''를 제안했으며, 1883년에 123년 만에 완간되었다. 전체 51개의 부분과 3개의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3,240개의 구리 판화가 포함되어 있다.[1]처음에는 덴마크 국왕의 왕령지, 즉 덴마크,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올덴부르크-델멘호르스트 및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 페로 제도, 그린란드를 포함한 북대서양의 부속 영토에 서식하는 모든 식물(선태식물, 지의류, 균류 포함)을 다루려고 했다. 그러나 출판 기간 동안 영토 변화로 인해 변경되었다. 1814년 덴마크-노르웨이 이중 군주제가 폐지된 후 노르웨이 식물은 거의 포함되지 않았고, 1864년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 공국이 할양된 후에도 비슷하게 바뀌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스칸디나비즘 시대에 코펜하겐에서 열린 노르디스케 나투르포르스케르모데(Nordiske Naturforskermøde)에서 플로라 다니카를 스칸디나비아 작품으로 만들자는 제안이 있었다. 그래서 나머지 노르웨이 식물과 스웨덴에서만 발견되는 더 중요한 식물을 포함하는 세 개의 보충본이 발행되었다.
외더는 제안된 플로라의 대상 지역을 광범위하게 여행했다. 삽화는 뉘른베르크 출신의 숙련된 조각가인 미하엘 뢰슬러(1705–1777)와 그의 아들 마틴 뢰슬러(1727–1782)가 제작했는데, 이들은 외더와 함께 현장 답사를 통해 식물을 그렸다.[1]
처음 10권은 총 600개의 판화로 출판되었다. 뢰슬러 부자는 삽화를 제작하기 위해 1755년 코펜하겐으로 이주하여 평생 그곳에 머물렀으며, 미하엘은 구리 조각가가 되었다. 그들의 삽화는 플로라 다니카에서 최고로 평가받으며 식물 삽화의 기준을 세웠다. 후기 삽화가로는 12권에서 21권까지는 식물학 편집자인 오토 프리드리히 뮐러의 형제인 요한 크리스티안 토르남(1822–1908)과 크리스티안 F. 뮐러(1748–1814)가, 22권에서 46권까지는 요한 테오도어 바이어(1782–1873)가 담당하여 약 1500개의 판화를 제작했다.[2]
| 연도 | 권호 | 도판 | |
|---|---|---|---|
| 게오르크 크리스티안 외데르(Georg Christian Oeder) | 1761–1771 | 1–10 | 1–600 |
| O.F. 뮐러(Otto Friedrich Müller) | 1775–1782 | 11–15 | 601–900 |
| 마틴 발(Martin Vahl) | 1787–1799 | 16–21 | 901–1260 |
| J.W. 호르네만(Jens Wilken Hornemann) | 1806–1840 | 22–39 | 1261–2340 |
| S. 드레예르(Salomon Drejer), J. F. 쇼우(Joakim Frederik Schouw) 및 옌스 발(Jens Vahl) | 1843 | 40 | 2341–2400 |
| F. 리브만(Frederik Michael Liebmann) | 1845–1853 | 41–43 & Suppl. 1 | 2401–2580 & S1-60 |
| 야페투스 스테엔스트루프(Japetus Steenstrup) 및 요한 랑게(Johan Lange) | 1858 | 44 | 2581–2640 |
| 요한 랑게(Johan Lange) | 1861–1883 | 45–51 & Suppl. 2–3 | 2641–3060 & S61-180 |
3. 플로라 다니카 식기 세트
1790년 덴마크의 프레데리크 6세 왕세자는 ''플로라 다니카''의 도판을 본떠 만든 식기 세트를 주문했다. 이 식기 세트는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 여제에게 선물할 예정이었으나, 예카테리나 2세가 1796년에 사망하면서 전달되지 못했다. 이 식기 세트는 덴마크 왕실에서 특별한 행사에 사용되며, 로얄 코펜하겐에서 복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현재 오리지널 식기 세트는 크리스티안보르 궁전, 아말리엔보르 궁전, 로센보르 궁전에 전시되어 있다.
3. 1. 제작 배경 및 역사
1790년 덴마크의 프레데리크 6세 왕세자는 ''플로라 다니카'' 도판을 본떠 만든 식기 세트를 주문했다. 이 식기 세트는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 여제에게 선물할 예정이었으나, 예카테리나 2세가 1796년에 사망하면서 전달되지 못했다. 현재 이 식기 세트는 크리스티안보르 궁전, 아말리엔보르 궁전, 로센보르 궁전에 전시되어 있다.
이 식기 세트는 덴마크 왕실에서 특별한 행사에 여전히 사용되고 있으며(최근 사용은 1980년과 2022년), 로얄 코펜하겐에서 복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3. 2. 현대의 플로라 다니카
1790년 덴마크의 프레데리크 6세 왕세자는 ''플로라 다니카''의 판을 정확하게 복사하여 장식한 식기 세트를 주문했다. 이 식기 세트는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 여제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제작되었으나, 예카테리나 2세는 1796년에 사망하여 이 식기 세트를 받지 못했다. 현재 이 식기 세트는 크리스티안보르 궁전, 아말리엔보르 궁전, 로센보르 궁전에 전시되어 있다.
이 식기 세트는 덴마크 왕실에서 특별한 행사에 여전히 사용되고 있으며(최근 사용은 1980년과 2022년), 이 세트의 복제품은 로얄 코펜하겐 도자기 공장에서 판매한다.
참조
[1]
논문
G.C. Oeder's conflict with Linnaeus and the implementation of taxonomic and nomenclatural ideas in the monumental Flora Danica project (1761–1883)
https://www.research[...]
[2]
논문
Fungi in floras, 1600–1800: Illustrated mushroom books, part 1
https://www.huntbota[...]
Hunt Institute for Botanical Documentation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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