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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택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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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하택신회는 당나라 시대의 승려로, 선종의 남종을 옹호하며 북종을 비판한 인물이다. 그는 혜능의 제자로서 북종의 점진적 깨달음 대신 돈오를 강조하며, 혜능을 선종의 6조로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하택신회는 안사의 난 때 향수전을 징수하여 국가 재정에 기여했으나, 사후에는 홍주종에 밀려 하택종이 쇠퇴했다. 그의 사상은 한국 불교에 영향을 미쳐 지눌이 돈오점수 사상을 수용하는 등 한국 선불교의 발전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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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택신회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혜능의 제자 신회
이름혜택 신회 (菏澤 神會)
출생 연도684년
사망 연도758년
출생지샹양
국적당나라
종교불교
종파선종
스승대감 혜능
속성진종대사(真宗大師), 선종 제7조(禅宗第七祖)
주요 사찰뤄양 하택사(洛陽 荷沢寺)
기타 저서『보리달마남종정시비론(菩提達摩南宗定是非論)』
생애
활동 시기당나라
주요 활동선종 발전, 혜능의 정통 계승 주장
주요 사상
돈오사상돈오(頓悟)를 통한 깨달음 강조
무념사상망념을 없애는 수행 강조
기타
영향선종 발전에 큰 영향

2. 생애

신회(神會)는 샹양에서 고(高)씨 성으로 태어났다.[3] 어릴 적에 오경노자장자의 철학을 배웠고,[2] 14세에 혜능의 제자가 되었다.

북종을 비판하며 저술과 강연 활동을 했고,[3] 뤄양으로 북상하여 북종의 가르침에 반대하는 공개 강연을 펼쳤다. 과격한 언행으로 뤄양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760년 좌선 중에 사망했으며, 묘은 용문 석굴에 있다.[3] 저서로는 《현종기(顯宗記)》가 있다.

신회는 형주에서 북종신수를 따르다가, 광둥성 사오관 시 조계로 옮겨 남종의 혜능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혜능 사후 남양으로 북상하여 북종 승려들과 논쟁하며 신수를 비판했다.

2. 1. 혜능과의 만남

혜능은 하택신회를 높게 평가하지 않은 듯하다. 하루는 하택신회가 혜능을 찾아와 절을 올렸다. 혜능은 하택신회에게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하택신회는 조계에서 왔다고 하였다. 혜능이 조계의 뜻하는 바가 뭐냐고 묻자, 하택신회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몸을 흔들기만 했다.[51]

그러자 혜능은 하택신회에게 말하기를 아직도 기와쪽이 막혀서 쓸모가 없다고 말했다. 하택신회가 물러나지 않고, 큰 스님께서는 요즘 사람들에게 진짜 금(깨달음)을 주시지 않으시냐고 물었다. 혜능이 말하기를 그대에게 준다한들 어디에 쓰겠냐고 말해버렸다.[52]

몇몇 현존하는 이야기들은 혜능과 신회 사이의 만남을 전하고 있다. 한 이야기에서 혜능은 그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에게 머리도 꼬리도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이름도 없고 묘사할 수도 없다. 앞도 뒤도 없다. 너희 중 누구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자가 있느냐?"

신회가 대답했다. "그것은 만물의 근원입니다. 그것은 선회의 불성입니다."

혜능이 대답했다. "나는 그것은 이름도 없고 묘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네가 불성의 근원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그러자 선회는 절을 하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지만, 혜능은 이내 선포했다. "만약 이 어린이가 미래에 절의 주지가 된다면, 우리 종파의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제자들을 반드시 배출할 것이다."

신회는 이후 장안으로 가서 수계를 받았다.[3]

2. 2. 뤄양 하택사

745년 (천보 4년), 신회는 뤄양의 하택사(荷澤寺)로 옮겨가 '하택신회'로 불리게 되었다.[1] 그는 뤄양에서 『보리달마남종정시비론(菩提達磨南宗定是非論)』 등을 저술하며 북종선 비판을 이어갔다.[1]

2. 3. 안사의 난과 향수전

안사의 난이 일어나자, 하택신회는 백성들에게 승적을 팔아 병역을 면제해 주고, 여기서 얻은 재정으로 국가 재정을 보충했다.[46] 난이 평정된 후, 당나라 숙종은 하택사를 건립하여 하택신회가 머물도록 하고 극진히 대접했다.[47]

2. 4. 몰락과 재평가

육조혜능이 오늘날과 같은 위치를 가지게 된 데에는 하택신회가 큰 역할을 했다. 당나라 덕종은 하택신회를 7대 선사로 공인했고, 이는 곧 스승인 혜능이 6대 조사로 공인된 것을 의미한다.[45] 안사의 난이 일어나자, 하택신회는 병역 기피를 원하는 백성들에게 승려 자격을 팔아 국가 재정을 지원했다.[46] 난이 평정된 후, 당나라 숙종은 하택사를 건립하여 하택신회가 머물도록 하고 극진히 대접했다.[47]

그러나 마조도일의 홍주종이 남종선의 주류로 떠오르면서, 하택신회의 하택종은 지식만 추구하는 무리로 폄하되었다.[48] 결국 하택종은 홍주종에 밀려 7조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홍주종은 마조도일의 스승인 남악회양을 7조로 모셨다.[49]

신회는 758년(건원 원년)에 하택사에서 입적했으며, 숙종으로부터 "'''진종대사'''"라는 시호를 받고 선종의 "'''칠조'''"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의 사후, 하택종은 급격히 쇠퇴하였고, 혜능의 또 다른 제자인 남악회양마조도일의 홍주종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신회가 경계했던 북종과 마찬가지로 단절되었다. 관련 문헌도 흩어져 전해지지 않았다.

20세기에 들어, 둔황에서 발견된 대량의 사본 속에 신회의 저작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졌고, 북종 문헌과 함께 신회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또한, 낙양 교외에서 발견된 신회의 묘지를 토대로 기존의 전기가 수정되었다.

3. 북종선 비판

신회신수 계열의 북종선을 '점진적 깨달음'(漸悟)을 주장하는 가르침으로 비판하고, 혜능의 남종선이 '단박에 깨닫는'(頓悟) 가르침이라고 주장했다.[39][40]

신회는 형주에서 신수를 따르다가 조계 (사오관 시 취장 구)로 옮겨 혜능의 제자가 되었다. 혜능 사후, 남양으로 가서 북종선 승려들과 논쟁을 벌였다.[4]

745년 (천보 4년), 뤄양 하택사로 옮긴 후에도, 『보리달마남종정시비론』 등을 저술하며 북종 비판을 이어갔다. 과격한 언행으로 뤄양에서 쫓겨나기도 했지만, 755년 (천보 14년) 안록산의 난 때 향수전(香水錢)이라는 수계 제도를 건의하여 숙종의 신임을 얻었다. 이 공으로 하택사로 돌아왔으며, 향수전은 북송 이후 매첩 제도의 기원이 되었다.

3. 1. 활대 대운사 논쟁

732년, 활대(현 하남성 안양시 활현)의 대운사에서 열린 무차대회에서 신회는 수만 명이 모인 가운데 북종선 승려들을 돈점(頓漸) 논쟁에서 압도하고, 혜능달마의 정통 후계자로 선포했다.[43][44] 신회는 신수의 종파를 비난하기 위해 '북종(北宗)'이라는 용어를 만들었으며, 신수가 혜능으로부터 육조(六祖)의 지위를 찬탈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혜능이 선종(禪宗)의 초조(初祖)인 달마의 가사(袈裟)를 소유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3. 2. '북종' 용어 사용

신회는 신수의 선풍을 비판하기 위해 '북종'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39] 그는 신수가 혜능의 지위를 찬탈하려 했다고 주장하며, 혜능이 달마의 가사(袈裟)를 소유한 정통 후계자임을 강조했다.[4]

3. 3. 역사적 분석

일부 학자들은 신회의 북종선 비판이 과장되었거나 조작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하인리히 듀물린은 신회를 '부도덕하다'고 평가했고, 우이 하쿠주는 그에게 '도덕적 비난과 관용 부족'의 특징이 있다고 지적했다.[5]

필립 얌폴스키와 같은 학자들은 그의 제자 중 한 명이 혜능을 숭배하고 신수를 비하하면서 "돈오"를 찬양하는 육조단경을 썼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학자들은 "조사"라는 개념과 달마의 가사를 소유하는 것이 이 사람을 나타내는 지표가 된 것은 신회의 비난 결과로 생겨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육조단경에 따르면 혜능 자신은 가사를 전수하지 않았으며, 그를 대체할 "조사"를 지정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의 스승 홍인처럼 그는 선을 가르치기 위해 나아간 많은 제자들이 있었다.

필립 얌폴스키는 금강경이 능가경이 아니라 달마와 그의 제자들의 가장 중요한 경전이라는 신회의 주장은 "순전한 조작"이라고 썼다.

4. 사상

하택신회는 혜능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많은 승려와 조정 관료들에게 돈법(頓法)을 전파했다.[40] 그는 남종선은 돈(頓)이라 단박에 깨닫지만, 북종선은 점(漸)이라 점진적으로 깨달아 오래 걸린다고 비판했다.

신회는 마음을 얼어붙게 하여 선정에 들고, 마음을 고정하여 순수함을 관하고, 마음을 활성화하여 외부를 비추고, 마음을 집중하여 내면을 깨닫는 북종선의 수행 방식을 비판했다.[9] 보리, 열반, , 순수, 또는 삼매를 잡으려는 의도를 활성화하는 것은 모두 잘못된 마음이라고 보았다.[10]

신회는 "비밀 가르침"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는 "다른 스승들이 이 가르침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설명하지 않고 비밀로 합니다. 나는 완전히 다릅니다. 많은 사람이든 적은 사람이든, 나는 항상 모든 사람에게 그것을 설명합니다. [...] 과거 부처님들의 가르침은 모두 팔부중을 향했고, 개인적인 가르침이나 비밀 가르침은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28]

4. 1. 돈오와 점수

신회는 혜능의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이어받아 돈오점수(頓悟漸修)를 주장했다. 이는 불성을 단박에 깨닫고, 이후 점진적인 수행을 통해 번뇌를 끊고 해탈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41]

4. 2. 무념(無念)과 무주심(無住心)

신회는 참된 무념(無念)이란 의도를 갖지 않고 마음을 활성화하지 않는 것이라고 가르쳤다.[11] 그는 무주심(無住心)을 근본적인 고요함과 연결시켰다.[20] 본체-작용의 관점에서 보면, 고요함은 본체이고, "이 빈 고요함의 본체를 기반으로, 자연스럽게 근본적인 지혜가 존재하며, 앎이 그것의 비춤의 작용"이라고 보았다.[21] 신회에게 고요함이 본체인 반면, 마음의 빈 고요함을 아는 것은 작용이다.[22] 그는 "무주심은 자성(本自性寂)의 근본적인 고요함이다. 앎은 작용이다. 고요함은 비춤의 본체이고, 비춤은 고요함의 작용이다."라고 하였다.[23] 이는 선정(禪定)과 지혜(智慧)가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23]

신회는 육조단경의 가르침을 인용하여 "들어가고 나오는 것이 있다면 이것은 위대한 삼매가 아니다."라고 하며, 선정에 들고 나오는 것은 여전히 조건적이며 잘못된 마음을 초월하지 못한 것이라고 하였다.[14] 그는 잘못된 마음이 활성화되어 생각이 "멀리 그리고 가까이" 방황하게 된다면, 마음을 다시 선정으로 되돌리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마음을 밖으로 나가게 하는 것은 병이고, 그것을 다시 선정으로 되돌리는 것 역시 병이다. 밖으로 나가게 하는 것과 다시 되돌리는 것 모두 병이다."라고 하였다.[16] 대신, 생각이 일어나는 즉시 그 생각에 "알아차림의 빛을 비추기"만 한다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알아차림의 빛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하였다.[17]

신회는 "무주심은 고요함이고, 고요함의 본체는 선정이라고 불린다. 이 본체를 기반으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지혜(zhi 智), 즉 본질적으로 고요한 본체를 알 수 있는 것은 혜(hui 慧)라고 불린다. 이것이 선정과 지혜의 동일성이다. 경전은 '고요함을 기반으로 비춤을 활성화하라'고 말하며, 여기서의 의미는 동일하다."라고 설명한다. 또한 "무주심은 앎을 초월하지 않고, 앎은 무주심을 초월하지 않는다. 만약 마음의 무주심을 안다면, 알아야 할 다른 것은 없다."라고 덧붙였다.[25]

4. 3. 선정(禪定)과 지혜(智慧)

신회는 선정(禪定)과 지혜(智慧)가 본질적으로 하나라고 보았다. 그는 무주심(無住心), 즉 머무름이 없는 마음이 곧 고요함(선정)이며, 이러한 고요함을 아는 것이 지혜라고 설명했다.[20] [21] [22]

신회는 본체-작용의 관점에서 고요함을 본체로, "이 빈 고요함의 본체를 기반으로, 자연스럽게 근본적인 지혜가 존재하며, 앎이 그것의 비춤의 작용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21] 즉, 고요함이 본체라면, 마음의 빈 고요함을 아는 것이 작용이라는 것이다.[22]

그는 "무주심은 자성(本自性寂)의 근본적인 고요함이다. 앎은 작용이다. 고요함은 비춤의 본체이고, 비춤은 고요함의 작용이다"라고 말했다.[23] 이는 선정과 지혜가 다르지 않음을 의미한다.

신회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선정과 지혜의 동일성을 강조했다.

> 무주심은 고요함이고, 고요함의 본체는 선정이라고 불린다. 이 본체를 기반으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지혜(智), 즉 본질적으로 고요한 본체를 알 수 있는 것은 혜(慧)라고 불린다. 이것이 선정과 지혜의 동일성이다. 경전은 "고요함을 기반으로 비춤을 활성화하라"고 말하며, 여기서의 의미는 동일하다. 무주심은 앎을 초월하지 않고, 앎은 무주심을 초월하지 않는다. 만약 마음의 무주심을 안다면, 알아야 할 다른 것은 없다. 열반경은 "선정이 크고 지혜가 적으면 무지를 증가시킨다. 지혜가 크고 선정은 적으면 그릇된 견해를 증가시킨다. 선정과 지혜가 동일하면 '불성을 본다'고 한다."[25]

신회는 삼매와 반야를 번갈아 수행하는 것도 비판했다.[26]

4. 4. 좌선(坐禪)에 대한 비판

신회는 육체적인 좌선 수행이 필요하다고 가르치지 않았다. 그는 '앉음'은 생각이 활성화되지 않는 것이고, '참선'은 근본적인 본성을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신회는 사람들에게 몸은 앉아 있고 마음은 선정에 머물도록 가르치지 않았다.[27]

신회는 마음을 얼어붙게 하여 선정에 들고, 마음을 고정하여 순수함을 관하고, 마음을 활성화하여 외부를 비추고, 마음을 집중하여 내면을 깨닫는 북종의 수행을 비판했다.[9] 그는 충원과의 대화에서 혜능과 신슈의 가르침이 다르다고 설명하면서, 보리, 열반, , 순수, 또는 삼매를 잡으려는 의도를 활성화하는 것은 모두 잘못된 마음이라고 하였다.[8][10]

신회는 참된 무념은 의도를 갖지 않고 마음을 활성화하지 않는 것이라고 가르쳤다.[11] 그는 무주심을 근본적인 고요함과 연결시키며,[20] 본체-작용의 틀을 통해 고요함을 본체와 동일시하고 "이 빈 고요함의 본체를 기반으로, 자연스럽게 근본적인 지혜가 존재하며, 앎이 그것의 비춤의 작용이라고 한다"고 말했다.[21] 즉, 고요함이 본체인 반면, 마음의 빈 고요함을 아는 것은 작용이라는 것이다.[22]

신회는 "무주심은 자성(ben zixing ji 本自性寂)의 근본적인 고요함이다. 앎은 작용이다. 고요함은 비춤의 본체이고, 비춤은 고요함의 작용이다."라고 말하며,[23] 이것은 선정과 지혜의 동일성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그는 경전을 인용하며 "선정이 크고 지혜가 적으면 무지를 증가시킨다. 지혜가 크고 선정은 적으면 그릇된 견해를 증가시킨다. 선정과 지혜가 동일하면 '불성을 본다'고 한다."라고 하였다.[25]

5. 영향

하택신회는 육조혜능이 선종에서 높은 지위를 얻는 데 큰 역할을 했다.[1] 그의 돈오점수(頓悟漸修) 사상은 중국 선종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홍주종을 비롯한 여러 선종 종파에 계승되었다.

5. 1. 하택종의 쇠퇴와 홍주종의 부상

마조도일의 홍주종이 남종선의 주류로 떠오르면서, 하택신회의 하택종은 잔머리나 굴리는 지해종도(知解宗徒)로 폄하되었다.[48] 지해종도란 깨달음이 아니라 지식의 이해만 쫓는 무리를 말한다. 결국 하택신회의 하택종은 마조도일의 홍주종에 밀려 7조 자리를 지키지 못했고, 홍주종은 빈 7조 자리에 마조도일의 스승인 남악회양을 모셨다.[49]

신회는 758년에 하택사에서 사망하였고, 숙종으로부터 "'''진종대사'''"라는 대사호를 받았으며, 선종 "'''칠조'''"로 인정받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의 사후, 그의 계통인 하택종은 급격히 쇠퇴하였고, 남악회양 - 마조도일의 계통인 홍주종이 급속도로 세력을 확대하였기 때문에, 신회가 눈엣가시로 여겼던 북종과 마찬가지로 끊어지게 되었다.

혜능 자신의 계보인 하택종은 아마도 845년의 회창의 폐불 시기에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혜능이 강조한 "점진적인" 깨달음과 "돈오" 깨달음의 구분은 중국 선종의 특징이 되었다. 마조 도일은 그의 홍주종이 선종의 특징이 되었으며, "돈오" 접근법을 초기에 중요하게 채택했다.

5. 2. 한국 불교에 미친 영향

육조혜능이 오늘날과 같은 지위를 가지기까지는 하택신회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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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간행물 The Hsie Tsung Chi Reidel Publishing Company
[3] 서적 Zen's Chinese heritage: the masters and their teachings Wisdom Publications
[4] 웹사이트 菩提达摩南宗定是非论 http://www.shaolin.o[...]
[5] 서적 Zen Buddhism: A History, India & China https://archive.org/[...] Macmillan Publishing
[6] 서적 Studies in East Asian Buddhism The Kuroda Institute, University of Hawaii Press
[7] 서적 The Northern School and the Formation of Early Ch’an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8] 서적 Zen Evangelist: Shenhui, Sudden Enlightenment, and the Southern School of Chan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9] 서적 Zen Evangelist: Shenhui, Sudden Enlightenment, and the Southern School of Chan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0] 서적 Zen Evangelist: Shenhui, Sudden Enlightenment, and the Southern School of Chan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1] 서적 Zen Evangelist: Shenhui, Sudden Enlightenment, and the Southern School of Chan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2] 서적 Zen Evangelist: Shenhui, Sudden Enlightenment, and the Southern School of Chan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3] 서적 Zen Evangelist: Shenhui, Sudden Enlightenment, and the Southern School of Chan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4] 서적 Zen Evangelist: Shenhui, Sudden Enlightenment, and the Southern School of Chan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5] 서적 The Platform Sutra of the Sixth Patriarch Bukkyō Dendō Kyōkai and Numata Center for Buddhist Translation and Research
[16] 서적 Zen Evangelist: Shenhui, Sudden Enlightenment, and the Southern School of Chan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7] 서적 Zen Evangelist: Shenhui, Sudden Enlightenment, and the Southern School of Chan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8] 서적 Zen Evangelist: Shenhui, Sudden Enlightenment, and the Southern School of Chan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 서적 Zen Evangelist: Shenhui, Sudden Enlightenment, and the Southern School of Chan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 서적 Zen Evangelist: Shenhui, Sudden Enlightenment, and the Southern School of Chan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21] 서적 Zen Evangelist: Shenhui, Sudden Enlightenment, and the Southern School of Chan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22] 서적 Zen Evangelist: Shenhui, Sudden Enlightenment, and the Southern School of Chan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23] 서적 Zen Evangelist: Shenhui, Sudden Enlightenment, and the Southern School of Chan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24] 서적 Yongming Yanshou’s Conception of Chan in the Zongjing Lu: A Special Transmission within the Scriptures Oxford University Press
[25] 서적 Zen Evangelist: Shenhui, Sudden Enlightenment, and the Southern School of Chan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26] 간행물 The Sermon of Shen-hui
[27] 서적 Zen Evangelist: Shenhui, Sudden Enlightenment, and the Southern School of Chan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28] 서적 Zen Evangelist: Shenhui, Sudden Enlightenment, and the Southern School of Chan Buddhism University of Hawaii Press
[29] 서적 Zongmi on Chan Columbia University Press
[30] 서적 The Platform Sutra of the Sixth Patriarch Bukkyō Dendō Kyōkai and Numata Center for Buddhist Translation and Research
[31] 서적 Sayings and Doings of Pai-chang Center Public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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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웹인용 〈17〉 ① 하택신회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23-09-24
[48] 웹인용 하택신회 선사 ‘공인’…홍주종 득세로 잊혀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23-09-20
[49] 웹인용 중국 남종 천하 이끈 하택종 종조 http://www.beopbo.co[...] 법보신문 2023-09-20
[50] 웹인용 중국 남종 천하 이끈 하택종 종조 http://www.beopbo.co[...] 법보신문 2023-09-20
[51] 웹인용 남종선의 거장 행사스님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23-09-18
[52] 웹인용 남종선의 거장 행사스님 http://www.ibulgyo.c[...] 불교신문 2023-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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