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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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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음은 위만조선 시기 정치에 참여한 인물이다. 그는 위만조선이 전한의 공격을 받자 노인, 왕협 등과 함께 우거왕을 버리고 전한에 항복했다. 한음은 낙랑 한씨 출신으로, 위만조선 지역의 유력 가문이었으며 연에서 이주해 온 한족으로 추정된다. 전한에 투항한 후 척저후에 봉해졌으나 자손 없이 사망했다. 그의 투항은 배신으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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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 - [인물]에 관한 문서
인물 정보
한글한음
한자韓陰
로마자 표기Han Eum
기타 이름한도
다른 한글 표기한도
다른 한자 표기韓陶
개요
설명한음(韓陰) 또는 한도(韓陶)는 고조선의 대신이다.
생애
활동 시기우거왕 재위 기간
주요 활동조선상 역임
말년기원전 89년에 사망
가족 관계 (추정)
본관 (추정)낙랑
기타적자(荻苴)라는 인물이 등장

2. 위만조선에서의 활동

한음은 위만조선의 정치를 담당했다.[6] 기원전 109년부터 기원전 108년까지 전한이 위만조선을 공격해오자, 조선상 노인, 장군 왕협 등과 함께 조선왕 우거를 버리고 항복했다.[8] 항복 후, 전한으로부터 척저후에 봉해졌지만, 자손 없이 19년 만에 사망했다.[9]

다케다 사치오는 노인과 한음은 조선의 '상', 왕협은 조선의 '장군'이며, 각각 문사와 무사를 분담했던 것으로 보았다. 또한 왕·한 두 성씨가 보이는데, 이들은 유력한 망명자, 또는 망명자와 관련된 인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6] 미카미 시즈오는 한음의 성씨인 을 근거로, 주인인 조선왕 우거와 마찬가지로 중국계 인물임을 지적했다.[7]

한음이 속한 낙랑 한씨는 위만조선 지역의 "대성"(그 땅의 호족, 대가)이며,[10] 연에서 이민해 온 한인이다.[11]

2. 1. 위만조선의 정치 참여

한나라조선을 점령하는데 협조한 한음(韓陰) 혹은 한도(韓陶)는 발해 지역에 봉해져 적저후(荻苴侯)가 되었다.[6] 우거왕의 아들 장항(長降)은 기후(幾侯)에, 왕협(王唊)은 평주후(平州侯)에, 이계상(尼谿相) 삼(參)은 홰청후(澅淸侯)에, 노인(路人)의 아들 최(最)는 온양후(溫陽侯) 또는 날양후(涅陽侯)에 봉해졌다. 한도는 적지후에 봉해진 지 19년 후에 죽었다.

다케다 사치오는 "노인과 한음은 조선의 '상', 왕협은 조선의 '장군'이며, 각각 문사(文事)와 무사(武事)를 분담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중 왕·한 두 성씨가 보인다. 그들은 유력한 망명자, 또는 망명자와 관련된 인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6] 미카미 시즈오는 한음의 ""이라는 성씨로부터 주인인 조선왕 우거와 마찬가지로 중국계 인물임을 지적하고 있다.[7]

기원전 109년부터 기원전 108년, 전한이 위만조선을 토벌하기 위해 공격해오자, 조선상 노인, 장군 왕협 등과 함께 조선왕 우거를 남겨둔 채 항복했다.[8] 항복 후, 전한으로부터 척저후에 봉해졌지만, 자손이 없이 19년 만에 사망했다.[9]

한음이 속한 낙랑 한씨는 위만조선 지역의 "대성"(그 땅의 호족, 대가)이며,[10] 연에서 이민해 온 한인이다.[11]

2. 2. 한나라와의 전쟁과 투항

기원전 109년부터 기원전 108년까지 전한위만조선을 공격해오자, 한음은 노인, 왕협 등과 함께 우거왕을 버리고 한나라에 투항하였다.[8] 한음은 투항 후 전한으로부터 척저후에 봉해졌지만, 19년 만에 자손 없이 사망했다.[9]

3. 한나라 투항 이후

한음은 위만조선의 정치를 담당했던 인물로, 기원전 109년부터 기원전 108년에 걸쳐 전한이 위만조선을 공격해오자, 조선상 노인, 장군 왕협 등과 함께 조선왕 우거를 떠나 항복했다.[8]

다케다 사치오는 노인과 한음은 조선의 '상', 왕협은 조선의 '장군'으로 각각 문무를 분담했으며, 이들 중 왕·한 두 성씨는 유력한 망명자 또는 그와 관련된 인물로 보았다.[6] 미카미 시즈오는 한음의 성씨가 ""인 점을 들어 조선왕 우거와 마찬가지로 중국계 인물이라고 지적했다.[7]

낙랑 한씨는 위만조선 지역의 "대성"(그 땅의 호족, 대가)이자[10], 연에서 이민해 온 한인이었다.[11]

3. 1. 한나라의 위만조선 점령 협조

한음은 우거왕의 아들 장항과 함께 한나라에 투항한 인물이다. 한나라위만조선 점령에 협조하여 발해 지역에 봉해져 적저후(荻苴侯)가 되었다.[6]

기원전 109년부터 기원전 108년까지 전한이 위만조선을 공격해 오자, 한음은 조선상 노인, 장군 왕협 등과 함께 조선왕 우거를 떠나 항복하였다.[8] 항복 후, 전한으로부터 척저후에 봉해졌지만, 자손 없이 19년 만에 사망했다.[9]

우거왕의 아들 장항은 기후(幾侯)에, 한음(韓陰) 혹은 한도(韓陶)는 적저후(荻苴侯)에, 왕협은 평주후(平州侯)에, 이계상 삼(參)은 홰청후(澅淸侯)에, 노인(路人)의 아들 최(最)는 온양후(溫陽侯) 또는 날양후(涅陽侯)에 봉해졌다.

3. 2. 적저후로서의 생애

한음은 우거왕의 아들 장항과 함께 한나라에 투항한 인물이다. 한나라는 한음이 조선 점령에 협조한 대가로 발해 지역에 봉분을 주고 적저후(荻苴侯)로 봉했다.[6] 한음은 적저후에 봉해진 지 19년 만에 사망하였다.[9] 후사가 없어 봉국은 폐지되었다.[9]

4. 출신 배경과 정체성

다케다 사치오는 노인과 한음은 조선의 '상', 왕협은 조선의 '장군'으로 각각 문무(文武)를 담당한 것으로 보았다. 그는 왕·한 두 성씨가 유력한 망명자 또는 망명자와 관련된 인물이라고 추정했다.[6] 미카미 시즈오는 한음이 씨라는 점을 들어 조선왕 우거와 마찬가지로 중국계 인물로 보았다.[7] 한음은 위만조선에서 정치를 담당했다.[6]

4. 1. 중국계 망명자 후손

다케다 사치오는 "노인과 한음은 조선의 '상', 왕협은 조선의 '장군'이며, 각각 문사(文事)와 무사(武事)를 분담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중 왕·한 두 성씨가 보인다. 그들은 유력한 망명자, 또는 망명자와 관련된 인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6]。미카미 시즈오도 한음의 ""이라는 성씨를 통해, 주인인 조선왕 우거와 마찬가지로 중국계 인물임을 지적하고 있다[7]

한음이 속한 낙랑 한씨는 위만조선 지역의 "대성"(그 땅의 호족, 대가)이며[10], 연에서 이민해 온 한인이다[11]

4. 2. 낙랑 한씨(樂浪 韓氏)

韓陰중국어위만조선 지역의 유력 가문인 낙랑 한씨 출신이다.[10] 낙랑 한씨는 연나라에서 이민해 온 한인으로,[11] 위만조선 지역에서 대성(大姓)으로 불리며 호족, 대가(大家)로 성장하였다.[10] 다케다 사치오는 노인과 한음은 조선의 '상', 왕협은 조선의 '장군'이며, 각각 문사(文事)와 무사(武事)를 분담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중 왕, 한 두 성씨가 보이며, 이들은 유력한 망명자 또는 망명자와 관련된 인물로 추정된다고 언급했다.[6] 미카미 시즈오도 한음의 ''이라는 성씨로부터 주인인 조선왕 우거와 마찬가지로 중국계 인물임을 지적했다.[7]

5. 평가

한음의 투항은 동족을 배신하고 외세에 협력했다는 비판과, 당시 위만조선의 상황과 국제 정세를 고려할 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평가가 엇갈린다.

기원전 109년부터 기원전 108년까지 전한이 위만조선을 공격했을 때, 한음은 조선상 노인, 장군 왕협 등과 함께 조선왕 우거를 떠나 항복했다.[8] 이들은 중국에서 망명해 온 인물이거나 그와 관련된 인물들로 추정된다.[6] 항복 후 한음은 전한으로부터 척저후에 봉해졌지만, 자손 없이 19년 만에 사망했다.[9]

다케다 사치오는 노인과 한음은 각각 문사와 무사를 담당했으며, 이들이 유력한 망명자이거나 망명자와 관련된 인물로 추정했다.[6] 미카미 시즈오는 한음의 ''이라는 성씨를 통해 조선왕 우거와 마찬가지로 중국계 인물임을 지적했다.[7]

낙랑 한씨는 위만조선 지역의 "대성"(그 땅의 호족, 대가)이며,[10] 연에서 이민해 온 한인이다.[11]

5. 1. 배신과 협력의 엇갈린 시선

한음의 투항은 동족을 배신하고 외세에 협력한 행위로 볼 수 있다. 이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비판받을 수 있지만, 당시 위만조선의 상황과 국제 정세를 고려할 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평가도 있다.

기원전 109년부터 기원전 108년까지 전한이 위만조선을 공격해오자, 한음은 조선상 노인, 장군 왕협 등과 함께 조선왕 우거를 남겨둔 채 항복했다.[8] 이들은 중국에서 망명해 온 인물이거나 그와 관련된 인물들로 추정된다.[6] 항복 후, 한음은 전한으로부터 척저후에 봉해졌지만, 자손 없이 19년 만에 사망했다.[9]

다케다 사치오는 노인과 한음은 조선의 '상', 왕협은 조선의 '장군'으로 각각 문사와 무사를 담당했으며, 그중 왕·한 두 성씨가 보이는데, 이들은 유력한 망명자이거나 망명자와 관련된 인물로 추정했다.[6] 미카미 시즈오는 한음의 ''이라는 성씨를 통해 주인인 조선왕 우거와 마찬가지로 중국계 인물임을 지적했다.[7]

한음이 속한 낙랑 한씨는 위만조선 지역의 "대성"(그 땅의 호족, 대가)이며,[10] 연에서 이민해 온 한인이다.[11]

참조

[1] 간행물
[2] 간행물
[3] 간행물
[4] 간행물
[5] 간행물
[6] 간행물 1997
[7] 서적 漢書>朝鮮傳>古朝鮮>左將軍이 이미 두 군대를 합병한 뒤 http://db.history.go[...] 국사편찬위원회
[8] 간행물 1997
[9] 간행물 1997
[10] 논문 위만조선과 낙랑의 성씨 http://kiss.kstudy.c[...] 2020
[11] 뉴스 東北亞古代的移民與王權發展:以樂浪郡成立為中心 http://www.his.ncku.[...] 국립성공대학 2009-06
[12] 문서 《한서》에는 한도, 《사기》에는 한음이라고 표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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