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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카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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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혼카와교는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를 흐르는 혼카와 강에 놓인 다리이다. 16세기 말, 모리 데루모토가 히로시마성을 정비할 당시 건설된 '네코야바시'가 그 기원이며, 에도 시대에는 산요도의 일부였다. 메이지 시대에 국도로 지정되었고, 1897년 강철 트러스교로 교체되었다. 1945년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로 심하게 파괴되었지만, 전후 재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2021년 토목 학회 선정 토목 유산으로 인정되었다. 주변에는 피폭 건물, 평화공원 등이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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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카와교 - [지명]에 관한 문서
지도 정보
교량 정보
명칭혼카와 교
원어 명칭本川橋
위치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나카구
좌안나카지마정
우안사카이정
횡단 대상오타강수계구 오타강
용도도로교
노선명히로시마시도 주2구 2호선
관리자히로시마시
설계자 (상부 공사)혼다 이사무 (히로시마현 토목부) 등
설계자 (하부 공사)불명
시공자불명
착공불명
준공 (상부 공사)1949년
준공 (하부 공사)1897년 11월
개통불명
폐쇄불명
형식불명
재료강교
전체 길이73.2m
폭원 : 6.6m (6.7m, 8.5m)
높이불명
거더 하 높이불명
최대 경간 길이불명
기타 정보
혼카와 교
나카지마정에서 촬영

2. 역사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모리 데루모토히로시마성 아래를 정비할 때, 후추 마쓰자키 하치만궁 다나모리를 맡았던 가토 구로에몬 가네치카가 이 지역에 "네코야"라는 상점을 열고 자비로 목교를 건설했는데, 이것이 혼카와교의 시작이라고 전해진다. 당시 다리 이름은 "네코야바시"였으며, 네코야는 거상으로 이 지역에서 번영을 누려 다리뿐만 아니라 강과 마을에도 그 이름이 붙게 되었고, 현재도 네코야마치로 남아 있다.

히로시마시 공개 자료에 따르면, 덴쇼 연간 (1573년~1592년)경 히로시마성을 정비할 때 다리가 놓였다. 모리 씨 시대 또는 후쿠시마 씨 시대에 산요도(사이코쿠 가이도)를 성 아래로 끌어들였고, 이 다리는 사이코쿠 가이도 선상 다리가 되었다. 번정 시대에는 방범상 이유로 다리 가설이 제한되었으며, 이 다리는 혼카와에 유일하게 가설된 사이코쿠 가이도 선상 다리였다.

메이지 시대에 국도의 다리가 되었으며, 1877년(메이지 10년)부터 1894년(메이지 27년) 사이에 "혼카와 다리"로 개명된 것으로 보인다. 1897년(메이지 30년) 11월 트러스교(보우스트링 트러스)로 교체되었다. 히로시마 최초의 강철 다리였으며, 당시 히로시마의 번화가였던 나카지마정과 도매상가·사카이정을 잇는 주요 도로에 가설된 다리였고, 그 희소성 때문에 관광 명소가 되었다.

다이쇼 시대까지 혼카와 다리 길은 국도였지만, 쇼와 초기에 아이오이 거리(아이오이 다리)가 새로운 국도로 정비되었다. 태평양 전쟁 당시 금속류 회수령에 의해 시내 다리의 강철 난간은 철거되었지만, 이 다리에서 강철 부재가 철거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1945년(쇼와 20년) 8월 6일 원자 폭탄 피폭으로 일부 손상되었으나, 같은 해 9월 마쿠라자키 태풍과 10월 아쿠네 태풍에 의한 수해로 완전히 낙교했다. 이후 판자를 건너놓은 임시 다리가 가설되었다. 전후 물자 부족 상황에서도 교통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가장 먼저 재건이 결정, 1949년(쇼와 24년) 남은 교각을 이용하여 다시 가설되었다. 그 후, 여러 번 보수 보전 공사를 실시하면서 현재까지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2021년(레이와 3년) 토목 학회 선정 토목 유산으로 인정되었다.

2. 1. 초기 역사 (16세기 말 ~ 19세기 말)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모리 데루모토히로시마성 아래를 정비할 때, 후추 마쓰자키 하치만궁 다나모리를 맡았던 가토 구로에몬 가네치카가 이 지역에 "네코야"라는 상점을 열었다. 네코야가 자비로 목교를 건설한 것이 이 다리의 시작이라고 전해진다. 구로에몬은 12명의 자녀와 함께 다리 건너기를 했다고 한다. 당시 다리 이름은 "네코야바시"였으며, 네코야는 거상으로 이 지역에서 번영을 누려 다리뿐만 아니라 강과 마을에도 그 이름이 붙게 되었고, 현재도 네코야마치로 남아 있다.

히로시마시 공개 자료에 따르면, 덴쇼 연간 (1573년~1592년)경 히로시마성을 정비할 때 다리가 놓였다.

  • 덴쇼 17년(1589년) 3월, 데루모토는 현지 조사를 했고, 덴쇼 18년(1590년) 말에 히로시마성이 거의 준공되었다.
  • 모리 씨 시대 히로시마성 그림 '게이슈 히로시마성 마을 분할 지도'에는 (사이코쿠 가이도 선상) 사루코하시, 교바시, 모토야스바시는 그려져 있지만 네코야바시(혼카와교)는 없다. 이 점과 에도 시대 후기 지지 '지신집' 기재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사이코쿠 가이도는 모리 씨 다음으로 입봉한 후쿠시마 마사노리 번정 시대, 에도 시대 초기에 성립했다는 설이 있다.
  • 게이초 원년(1596년) '모리 씨 봉행인 연서 서장'에는 분로쿠의 역 때문에 나고야성으로 향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지나가기 때문에 (사이코쿠 가이도 선상) 고이바시와 "히로시마 중의 작은 다리" 수리를 명령받았다는 내용이 있다. 이를 통해 사이코쿠 가이도 원형은 모리 씨 시대,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 형성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상을 종합하면, 모리 씨 시대 또는 후쿠시마 씨 시대에 산요도(사이코쿠 가이도)를 성 아래로 끌어들였고, 이 다리는 사이코쿠 가이도 선상 다리가 되었다.

번정 시대에는 방범상 이유로 다리 가설이 제한되었으며, 이 다리는 혼카와에 유일하게 가설된 사이코쿠 가이도 선상 다리였다. 이 지역은 당시 섬이었던 에바 항구에서 운반된 짐의 중계 지점이었고, 서쪽 끝 사이코쿠 가이도 선상에 있는 사카이마치는 도매상가로 번성했다. 현재도 남아 있는 간기에서 짐을 하역했다.

히로시마번은 오타가와 수계 치수에 힘썼지만, 홍수는 끊이지 않았다. 기록에 남아 있는 것으로는 간세이 8년(1796년) 성 아래에서 발생한 대홍수로 현재 나카지마 마을이 침수되었고 네코야바시도 붕괴되었다.

2. 2. 근대 이후 (19세기 말 ~ 현재)

메이지 시대에 국도의 다리가 되었으며, 1877년(메이지 10년)부터 1894년(메이지 27년) 사이에 "혼카와 다리"로 개명된 것으로 보인다.

1897년(메이지 30년) 11월 트러스교(보우스트링 트러스)로 교체되었다. 길이 72.7m, 폭 7.27m이며, 공사비는 약 43570JPY이었다. (34428JPY라고도 한다)

히로시마 최초의 강철 다리였으며, 당시 히로시마의 번화가였던 나카지마정과 도매상가·사카이정을 잇는 주요 도로에 가설된 다리였고, 그 희소성 때문에 관광 명소가 되었다. 쇼와 시대에 팔리던 히로시마 명과 "혼카와 만주"는 이 다리 완공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근대에는 창고 군이 늘어섰으며, 서쪽 끝 교차로에는 1913년(다이쇼 2년) 히로시마 상업 은행의 본점이 신축 이전했다.

다이쇼 시대까지 혼카와 다리 길은 국도였지만, 쇼와 초기에 아이오이 거리(아이오이 다리)가 새로운 국도로 정비되었다. 태평양 전쟁 당시 금속류 회수령에 의해 시내 다리의 강철 난간은 철거되었지만, 이 다리에서 강철 부재가 철거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1945년(쇼와 20년) 8월 6일 원자 폭탄 피폭. 폭심지에서 약 250m에 위치했다. 폭풍에 의해 일부 거더가 교대에서 벗어나 통행이 불가능했다. 당시 부설되어 있던 수도관은 절단되어 급수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직후, 군과 구원대에 의해 임시 수리가 이루어졌다.

그 후, 같은 해 9월 마쿠라자키 태풍에 의해 더욱 손상되었고, 같은 해 10월 아쿠네 태풍에 의한 수해로 완전히 낙교했다.

이후 판자를 건너놓은 임시 다리가 가설되었다. 전후 물자 부족 상황에서도 교통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가장 먼저 재건이 결정, 1949년(쇼와 24년) 남은 교각을 이용하여 다시 가설되었다. 그 부재에는 공습으로 괴멸 상태가 된 구 미쓰 해군 공창의 폐재를 사용하고 있다.

그 후, 여러 번 보수 보전 공사를 실시하면서 현재까지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2021년(레이와 3년) 토목 학회 선정 토목 유산으로 인정되었다.

3. 주변 환경

혼카와 다리의 교각은 피폭 건물이며, 그 아래에는 모리 데루모토의 섬 공사로 만들어진 석조 구조물이 남아 있다. 다리 상류에는 모토야스 강의 분기점과 아이오이 다리가 있고, 하류에는 니시헤이와 대교가 있다.

다리 서쪽은 마스이가타의 흔적이 남아 있어, 니시즈메 교차로에서 직진할 수 없는 ㄱ자 모양이다. 니시즈메 남쪽에는 상야등이 있고, 주변 호안에는 간기(雁木) 구조의 양장(揚場)이나 배를 매는 돌기둥, 선박의 조장(燥場)도 남아 있다[1]。 니시즈메 남쪽에는 피폭 건물인 혼카와 공중 화장실이 있다. 니시즈메 북쪽에는 과거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있었다. 이곳은 1945년 이우가 피폭으로 최후를 맞이한 곳이기도 하다. 길을 따라 서쪽으로 가면 히로덴 도바시 정류장이 있고, 더 가면 덴마 다리에 도착한다.

다리 동쪽 둑 일대는 평화공원이다. 북쪽에는 동쪽 강변용과 교각과의 연결 부분에 있던 노면용 돌이 남아 있는데, 이것도 피폭 유구이다. 2003년 다리 보수 때 제거되어 이 자리에 기념물로 놓여 있다. 『이 세상의 한 구석에』에 등장한 간기는 이 다리의 동쪽 둑 부근에 있었지만, 현재는 형태가 다르다. 동쪽으로 길을 따라 가면 모토야스 다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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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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