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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페름네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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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히페름네스트라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다나오스의 딸이자 린케우스의 아내이다. 다나오스와 아이귑토스의 갈등 속에서 남편 린케우스를 살려 아바스를 낳았으며, 이후 재판에서 승리하여 린케우스와 결혼 생활을 이어갔다. 파우사니아스는 히페름네스트라와 린케우스의 봉화 이야기가 아르고스에서 열리는 봉화제의 유래라고 설명한다. 또한 테스티오스의 딸로서 암피아라오스를 낳았다는 설도 있다. 히페름네스트라는 오비디우스, 제프리 초서, 프란체스코 카발리 등 다양한 예술 작품의 소재로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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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페름네스트라
기본 정보
히페름네스트라와 린케우스를 묘사한 조반니 다 산 조반니의 프레스코화
히페름네스트라와 린케우스를 묘사한 조반니 다 산 조반니의 프레스코화
그리스어Ὑπερμνήστρα
로마자 표기Hypermnēstra
다른 이름Ὺπερμήστρα (Hypermēstrā)
암피테아
암피메돈테
가족 관계
아버지다나오스
어머니이름 미상 (다나오스의 아내)
배우자린케우스
자녀아바스
신화적 정보
주요 이야기다나오스의 딸들 중 유일하게 남편을 살려줌
린케우스와의 결혼
아바스의 어머니
특징다나이드 중 유일하게 아버지의 명령을 거부

2. 다나오스의 딸

히페름네스트라는 아르고스의 왕 다나오스와 엘레판티스 사이에서 태어난 50명의 딸들(다나에스) 중 장녀이다. 고르고포네와 자매지간이며, 아이귑토스의 아들 린케우스와 결혼하여 아들 아바스를 낳았다.[5][6][7]

2. 1. 다나오스와 아이귑토스의 갈등

이집트 왕 벨로스의 쌍둥이 형제인 다나오스와 아이귑토스는 왕권을 두고 다투었다. 다나오스는 아이귑토스의 50명의 아들들을 두려워하여 아르고스로 도망쳐 그곳의 왕이 되었다. 그러나 아이귑토스의 아들들은 아르고스로 와 화해를 요청하며 다나오스의 50명의 딸들과의 결혼을 제안했다.[5] 다나오스는 이를 믿지 않았지만, 딸들의 결혼에 동의하고 그녀들에게 단검을 주며 남편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2. 2. 히페름네스트라의 선택

아이귑토스의 쌍둥이 형제이자 히페름네스트라의 아버지인 다나오스는 아이귑토스가 자신의 아들 50명과 다나이드의 결혼을 요구하자 불만을 품고 딸들과 함께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아르고스로 도망갔다. 그곳은 펠라스고스(젤라노르)가 다스리고 있었다. 아이귑토스와 그의 아들들이 다나이데스를 데려가기 위해 도착하자, 다나오스는 아르고스인들이 전투로 고통받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을 넘겨주었다. 그러나 다나오스는 딸들에게 단검을 건네며 결혼 첫날밤에 남편을 죽이라고 명령했다.[9] 히페름네스트라의 49명의 자매들은 그 지시를 따랐지만, 남편 린케우스[2]가 순결을 유지하려는 히페름네스트라의 소원을 존중했기 때문에 히페름네스트라는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5] 오비디우스에 따르면 히페름네스트라는 잠든 린케우스를 여러 번 단검으로 죽이려 했지만 할 수 없었고, 날이 밝기 전에 린케우스를 깨워 도망치게 했다.[9]

다나오스는 이 불복종에 분노하여 히페름네스트라를 아르고스 법정에 넘겼다. 그러나 아프로디테가 개입하여 히페름네스트라를 구했다. 히페름네스트라는 다나오스에 의해 고소되었지만 재판에서 승리했고,[10] 다나오스도 결국 두 사람의 결혼을 인정했다.[5] 린케우스는 나중에 형제들의 죽음에 대한 복수로 다나오스를 죽였다. 히페름네스트라와 린케우스의 아들 아바스는 다나오스 왕조의 첫 번째 왕이 되었다.

파우사니아스에 따르면 매년 아르고스에서 열린 봉화제는 히페름네스트라와 린케우스의 이야기에 유래한다. 히페름네스트라는 린케우스와 도망칠 때 서로의 안전을 봉화로 알리기로 약속했다. 린케우스는 뤼르케이아까지 도망갔을 때 봉화를 올렸고, 히페름네스트라도 안전해지자 아르고스의 아크로폴리스의 라리사에서 봉화를 올려 알렸다. 봉화제는 이것에 기인하여 시작되었다고 한다.[11]

2. 3. 봉화제의 유래

파우사니아스에 따르면 매년 아르고스에서 열린 봉화제는 히페름네스트라와 린케우스의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히페름네스트라는 린케우스를 도망시킬 때 서로의 안전을 봉화로 알리기로 약속했다. 린케우스는 뤼르케이아까지 도망갔을 때 봉화를 올렸고, 히페름네스트라도 안전해지자 아르고스의 아크로폴리스 라리사에서 봉화를 올려 알렸다. 봉화제는 이것에서 기인했다고 한다.[11]

3. 테스티오스의 딸

테스티오스와 에우리테미스의 딸로, 알타이아, 레다, 이피클로스, 에우히포스, 프렉시포스, 에우리필로스와 형제이다.[12] 오이클레스와의 사이에서 암피아라오스를 낳았다.[13][14][15][16] 하지만 암피아라오스는 아폴론의 아들이라고도 한다.[14]

일설에는 히페름네스트라는 테스피오스의 딸이며, 오이클레스와의 사이에서 이피아네이라, 폴리보이아, 암피아라오스를 낳았다고 한다.[17] 이는 아버지 테스티오스의 이름이 테스피오스와 혼동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18]

4. 계보

다음은 다나오스의 딸 히페름네스트라와 테스티오스의 딸 히페름네스트라의 가계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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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메로스아카이아인그리스 신화 속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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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히페름네스트라'''는 아르고스의 왕 다나오스의 50명의 딸들(다나에스) 중 장녀이다. 어머니는 엘레판티스이며, 고르고포네와 자매이다.[5] 이집트 왕 아이귑토스와 아르기피에의 아들 린케우스 사이에서 아바스를 낳았다.[5][6][7]

이집트 왕 벨로스의 쌍둥이 형제 다나오스와 아이귑토스는 왕권을 두고 다투었고, 다나오스는 아이귑토스의 50명의 아들들을 두려워하여 아르고스로 도망쳐 그곳에서 왕이 되었다. 그러나 아이귑토스의 아들들은 아르고스로 와 화해를 요청하며 다나오스의 50명의 딸들과 결혼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다나오스는 이를 믿지 않았기에 동의했지만, 딸들의 결혼 상대가 결정되자 그녀들에게 단검을 건네 남편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이 때문에 다른 딸들은 첫날밤에 잠든 남편을 죽였지만, 히페름네스트라만은 남편인 린케우스가 자신의 처녀성을 지켜주었기에[5] 자신의 판단으로[8] 린케우스를 도왔다. 이 때문에 히페름네스트라는 투옥되었다.[5]

오비디우스에 따르면 히페름네스트라는 잠든 린케우스를 여러 번 단검으로 죽이려 했지만 할 수 없었고, 날이 밝기 전에 린케우스를 깨워 도망치게 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다나오스가 시체를 세는 과정에서 그 사실이 드러나 시내를 끌려 다닌 끝에 투옥되었다.[9]

그 후 히페름네스트라는 다나오스에 의해 다시 고소되었지만 재판에서 승리했다.[10] 그리하여 다나오스도 마침내 두 사람의 결혼을 인정했다.[5]

파우사니아스에 따르면 매년 아르고스에서 열린 봉화제는 히페름네스트라와 린케우스의 이야기에 유래한다. 히페름네스트라는 린케우스를 도망칠 때 서로의 안전을 봉화로 알리기로 약속했다. 그리하여 린케우스는 뤼르케이아까지 도망갔을 때 봉화를 올렸고, 히페름네스트라도 안전해지자 아르고스의 아크로폴리스의 라리사에서 봉화를 올려 알렸다. 봉화제는 이것에 기인하여 시작되었다고 한다.[11]


5. 문화적 묘사

오비디우스는 히페름네스트라가 린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으며, 이는 그의 ''헤로이데스''에 실려 있다.[3]

제프리 초서는 ''히페름네스트라의 전설''을 썼다.[4]

프란체스코 카발리는 1658년 6월 12일 피렌체에서 초연된 축제 오페라 ''히페르메스트라''를 썼다.

샤를-위베르 제르베는 1716년 11월 3일 파리 오페라에서 초연된 오페라 ''히페름네스트르''를 작곡했다.

이그나츠 홀츠바우어는 요한 레오폴트 판 겔렌이 독일어 대본을 쓴 '히페름네스트라'라는 독일어 오페라를 작곡했으며, 이 오페라는 1741년 비엔나에서 공연되었다.

안토니오 살리에리는 1784년 프랑수아-루이 간 르 블랑 드 룰레와 루이-테오도르 드 추디가 프랑스어 대본을 쓴 오페라 ''레 다나이드''를 작곡하여 파리에서 초연했다.

존 웹스터의 비극 '백귀'에서 음모를 꾸미는 고급 창녀 플라미네오의 대사에서 히페름네스트라가 언급된다.

"…여자를 믿어? 절대, 절대…우리는 작은 즐거움을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맡기고, 여자가 매매 증서를 만든다. 남자가 결혼을 하다니! 자신의 주인과 남편을 구한 한 명의 히페름네스트라 때문에, 그녀의 자매 49명이 모두 하룻밤 사이에 남편의 목을 베었다."

참조

[1] 웹사이트 Apollodorus 2.1.5 https://www.perseus.[...]
[2] 서적 Dictionary of Greek and Roman Geography (volume II) https://books.google[...] Walton and Maberly
[3] 문서 Heroides 14
[4] 논문 A Curious Error?: Geoffrey Chaucer’s Legend of Hypermnestra, The Chaucer Review, Vol 36, Number 1, 2001 http://muse.jhu.edu/[...] 2013-05-02
[5] 문서 アポロドーロス、2巻1・5
[6] 문서 ヒュギーヌス、273話
[7] 문서 パウサニアス、10巻35・1
[8] 시 ネメア祝勝歌 第10歌6行
[9] 문서 名婦の書簡 14
[10] 문서 パウサニアス、2巻21・1
[11] 문서 パウサニアス、2巻25・4
[12] 문서 アポロドーロス、1巻7・10
[13] 문서 ヘーシオドス断片22(オクシュリンコス・パピュルス)
[14] 문서 ヒュギーヌス、70話
[15] 문서 ヒュギーヌス、73話
[16] 문서 ヒュギーヌス、250話
[17] 문서 シケリアのディオドロス、4巻68・5
[18] 서적 ギリシア・ローマ神話辞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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