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혼의 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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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히혼의 수치는 1982년 FIFA 월드컵 조별 리그에서 서독과 오스트리아의 경기에서 발생한 논란을 가리킨다. 알제리가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 전에 탈락이 결정된 상황에서, 서독이 1-0으로 오스트리아를 이기면서 서독과 오스트리아가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고 알제리가 탈락하게 되었다. 이 경기에서 양 팀이 소극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승부 조작 의혹이 제기되었고, '히혼의 수치'라는 오명을 얻었다. 이 사건은 FIFA의 미온적인 대처와 스포츠 정신 훼손에 대한 비판을 불러일으켰으며, 이후 국제 대회의 조별 리그 최종전 동시 진행 규정 도입의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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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혼의 수치 | |
---|---|
경기 정보 | |
경기 제목 | 서독 대 오스트리아 |
다른 제목 | 히혼의 수치 히혼의 스캔들 수치스러운 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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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 1982년 FIFA 월드컵 |
경기 결과 | |
팀 1 | 서독 |
팀 1 협회 | 독일 축구 연맹 |
팀 1 득점 | 1 |
팀 2 | 오스트리아 |
팀 2 협회 | 오스트리아 축구 연맹 |
팀 2 득점 | 0 |
세부 정보 | 두 팀 모두 2라운드 진출, 알제리는 골 득실차로 1982년 FIFA 월드컵에서 탈락 |
경기 상세 정보 | |
날짜 | 1982년 6월 25일 |
경기장 | 엘 몰리논 |
도시 | 히혼 |
심판 | 밥 밸런타인 (스코틀랜드) |
관중 수 | 41,000명 |
기타 정보 | |
별칭 | 히혼의 수치 (, , ) 히혼의 불가침 조약 () |
관련 정보 | 오스트리아 셔츠/키트 월드컵 1978 및 1982 |
참고 | Death or Glory The Dark History of the World Cu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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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경기 전 상황
1982년 FIFA 월드컵 2조는 알제리, 오스트리아, 서독, 칠레로 구성되었다. 알제리는 조별 리그 1차전에서 서독을 2-1로 꺾는 이변을 일으켰으나, 오스트리아에 0-2로 패배 후 칠레를 3-2로 이기며 2승 1패(승점 4점)를 기록, 조 2위에 올랐다. 당시 규정으로는 승리 시 승점 2점, 무승부 시 1점을 획득하며, 승점이 같을 경우 골득실 차로 순위를 결정했다. 알제리의 최종전 다음 날, 서독과 오스트리아의 경기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두 팀은 2라운드 진출에 필요한 경우의 수를 이미 알고 있었다.
2. 1. 2조 중간 순위
wikitext팀 | 경기 | 승 | 무 | 패 | 득 | 실 | 차 | 승점 | 결과 |
---|---|---|---|---|---|---|---|---|---|
Österreich|오스트리아de | 2 | 2 | 0 | 0 | 3 | 0 | +3 | 4 | 1경기 남음 |
الجزائر|알제리ar | 3 | 2 | 0 | 1 | 5 | 5 | 0 | 4 | 미정 (경기 완료) |
Bundesrepublik Deutschland|서독de | 2 | 1 | 0 | 1 | 5 | 3 | +2 | 2 | 1경기 남음 |
Chile|칠레es (탈) | 3 | 0 | 0 | 3 | 3 | 8 | −5 | 0 | 탈락 |
'''(탈)''': 탈락 확정
알제리는 1차전에서 서독에게 2-1의 충격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대회를 시작하였고, FIFA 월드컵에서 유럽 팀을 이긴 첫 아프리카 팀이 되었다.[4] 이후, 알제리는 오스트리아에게 0-2로 패한 뒤, 칠레와의 최종전에서 3-2 승리를 거두었다.
알제리는 서독과 오스트리아 간의 경기 하루 전에 치름에 따라, 두 유럽 팀은 이미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의 수가 나왔다. 서독은 오스트리아와 함께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기 위해 1골 혹은 2골 차의 승리가 필요했다. 서독이 4골 차 이상의 승리를 거둘 경우, 서독과 알제리가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고 오스트리아가 탈락하게 될 것이었다.
2. 2. 알제리의 선전과 2라운드 진출 좌절
알제리는 1차전에서 서독을 2-1로 이기는 이변을 연출하며, FIFA 월드컵에서 유럽 팀을 이긴 최초의 아프리카 팀이 되었다.[4] 이는 1966년 FIFA 월드컵에서 북한이 이탈리아를 이긴 이후 "가장 큰 월드컵 이변"이자 "월드컵 역사상 가장 큰 충격 중 하나"로 묘사되었다.[5] 이후 알제리는 오스트리아에 0-2로 패했지만, 칠레와의 최종전에서 3-2 승리를 거두었다. 알제리의 칠레전 승리는 월드컵에서 두 번 승리한 최초의 아프리카 또는 아랍 팀이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5]알제리가 최종전을 치른 날은 서독이 오스트리아와 경기하기 하루 전이었기 때문에, 두 유럽 팀은 다음 라운드 진출을 위해 필요한 결과를 알고 있었다. 당시 규정에 따르면 승리 시 승점 2점, 무승부 시 승점 1점을 획득하며, 승점 동률 시 골득실 우선으로 순위를 가렸다.
팀 | 경기 수 | 승 | 무 | 패 | 득점 | 실점 | 득실차 | 승점 | 2차 리그 진출 여부 |
---|---|---|---|---|---|---|---|---|---|
오스트리아 | 2 | 2 | 0 | 0 | 3 | 0 | +3 | 4 | 남은 경기 1경기 |
알제리 | 3 | 2 | 0 | 1 | 5 | 5 | 0 | 4 | 미정(경기 완료) |
서독 | 2 | 1 | 0 | 1 | 5 | 3 | +2 | 2 | 남은 경기 1경기 |
칠레 | 3 | 0 | 0 | 3 | 3 | 8 | −5 | 0 | 탈락 |
■: 2차 리그 진출 / ■: 탈락 |
알제리의 운명은 최종전의 1위 오스트리아와 3위 서독의 경기 결과에 달려 있었다. 서독이 1골 또는 2골 차이로 승리하면 서독과 오스트리아가 모두 진출하고, 서독이 4골 차 이상으로 승리하면 서독과 알제리가 진출하는 상황이었다.
2. 3. 서독과 오스트리아의 경우의 수
알제리는 1차전에서 서독을 2-1로 꺾는 이변을 일으키며 월드컵에서 유럽 팀을 이긴 최초의 아프리카 팀이 되었다.[4][5] 이후 알제리는 오스트리아에 0-2로 패했지만, 칠레와의 최종전에서 3-2로 승리했다.[5]알제리가 최종전을 치른 날은 서독과 오스트리아가 경기하기 하루 전이었기 때문에, 두 유럽 팀은 다음 라운드 진출을 위해 필요한 결과를 알고 있었다. 서독이 1골 또는 2골 차로 승리하면 골득실에 따라 서독과 오스트리아가 모두 진출하게 된다. 서독이 4골 이상 차로 승리하면 서독과 알제리가 진출한다.
팀 | 경기 | 승 | 무 | 패 | 득 | 실 | 차 | 점 | 결과 |
---|---|---|---|---|---|---|---|---|---|
2 | 2 | 0 | 0 | 3 | 0 | +3 | 4 | 1경기 남음 | |
3 | 2 | 0 | 1 | 5 | 5 | 0 | 4 | 경기 완료 | |
2 | 1 | 0 | 1 | 5 | 3 | +2 | 2 | 1경기 남음 | |
3 | 0 | 0 | 3 | 3 | 8 | -5 | 0 | 탈락 |
요약하자면 서독은 1-2점 차로 승리하면 서독과 오스트리아가 동반 진출하고, 서독이 4점 차 이상 승리하면 서독과 알제리가 진출하는 상황이었다. 오스트리아는 무승부만 기록해도 조 1위로 2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었지만, 소극적인 경기 운영으로 일관했다.
3. 경기 내용
서독 오스트리아 포지션 번호 선수 비고 포지션 번호 선수 비고 GK 1 하랄트 슈마허(Harald Schumacher) GK 1 프리드리히 콘실리아(Friedrich Koncilia) SW 15 울리 슈틸리케(Uli Stielike) DF 2 베르트 클라우스(Bernd Krauss) RB 20 만프레트 칼츠(Manfred Kaltz) DF 3 에리히 오버마이어(Erich Obermayer) CB 4 카를하인츠 페르스터(Karl-Heinz Förster) DF 4 요제프 데게오르기(Josef Degeorgi) LB 2 한스-페터 브리겔(Hans-Peter Briegel) DF 5 브루노 페차이(Bruno Pezzey) CM 3 파울 브라이트너(Paul Breitner) MF 6 롤란트 하텐베르거(Roland Hattenberger) CM 6 볼프강 드레믈러(Wolfgang Dremmler) FW 7 발터 샤하너(Walter Schachner) CM 14 펠릭스 마가트(Felix Magath) MF 8 헬베르트 프로하스카(Herbert Prohaska) RF 11 카를하인츠 루메니게(Karl-Heinz Rummenigge) FW 9 한스 크랑클(Hans Krankl) CF 9 호르스트 루베슈(Horst Hrubesch) MF 10 라인하르트 힌터마이어(Reinhard Hintermaier) LF 7 피에르 리트바르스키(Pierre Littbarski) DF 19 헤리베르트 베버(Heribert Weber) 교체 선수 교체 선수 GK 22 아이케 임멜(Eike Immel) GK 22 클라우스 린덴베르거(Klaus Lindenberger) DF 5 베른트 페르스터(Bernd Förster) DF 12 안톤 피힐러(Anton Pichler) MF 18 로타어 마테우스(Lothar Matthäus) DF 13 막스 하그마이어(Max Hagmayr) FW 8 클라우스 피셔(Klaus Fischer) MF 14 에른스트 바우마이스터(Ernst Baumeister) FW 13 우베 라인더스(Uwe Reinders) FW 20 쿠르트 베르츨(Kurt Welzl) 감독 감독 유프 데어발(Jupp Derwall) 펠릭스 라츠케(Felix Latzke) & 게오르크 슈미트(Georg Schmidt)
1982년 FIFA 월드컵 조별 리그 2조 마지막 경기에서 전반 10분 루베슈의 골로 서독이 앞서나갔다. 이후 양 팀은 서로 공을 주고받는 시늉만 하는 등, 골키퍼에게 공을 계속 돌려주거나, 상대 진영으로 롱패스를 하는 등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했다. 남은 80분 동안 양 팀 모두 거의 득점을 시도하지 않았다.[2]
경기는 모든 시청자와 관중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독일 공영방송 연합(ARD)의 해설가 에베르하르트 슈타니에크는 해설을 거부했고, 오스트리아의 해설가 로베르트 제거는 TV 시청자들에게 전원을 끄라고 권할 정도였다. 분노한 알제리 팬들은 선수들에게 지폐를 던져 항의했다. 심지어 자국의 국기를 불태워 항의하는 서독 팬들까지 등장했다.[23][24]
3. 1. 경기 초반 흐루베슈의 선제골
1982년 FIFA 월드컵 조별 리그 2조 마지막 경기에서, 경기 시작 10분 만에 서독의 호르스트 흐루베슈가 선제골을 기록했다.[2] 흐루베슈는 왼쪽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받아 골로 연결시켰다. 득점 이후, 공을 소유한 팀은 상대 선수가 공 근처로 접근하기 전까지 자기 진영에서 선수들끼리 공을 주고받았고, 이후 골키퍼에게 다시 패스했다. 상대 진영으로 길게 공을 보내는 경우는 드물었고,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3. 2. 소극적인 경기 운영과 무의미한 시간 끌기
1982년 FIFA 월드컵 조별 리그 2조 마지막 경기에서 호르스트 흐루베슈가 득점한 이후, 서독과 오스트리아 양 팀 선수들은 사실상 경기를 포기했다. 공을 잡은 팀은 자기 진영에서 상대 선수가 접근할 때까지 공을 돌리다가 골키퍼에게 다시 패스했다. 상대 진영으로 롱패스를 남발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남은 80분 동안 득점을 위한 시도는 거의 없었다. 서독의 볼프강 드렘러, 오스트리아의 발터 샤흐너 등 일부 선수들만이 적극적으로 플레이를 시도했으나, 전반적인 분위기를 바꾸지는 못했다.[2] 이들 외에 다른 선수들은 고의든 아니든 소극적인 경기 운영에 가담했으며, 이 때문에 진검승부를 원했던 드렘러와 샤흐너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23][24]
3. 3. 관중들과 언론의 비판
경기는 모든 시청자와 관중들의 비판을 받았다. 서독 ARD의 해설가 에베르하르트 슈타녜크는 한때 경기 해설을 거부하기도 하였다. 오스트리아의 로베르트 제거 해설가는 경기력에 한탄하며 텔레비전을 끌 것을 권유하였다. 이와 비슷하게, 많은 관중들은 경기력에 만족하지 못하였으며, 선수들에게 혐오감을 표출하였다. 스페인 관중들은 “나가라, 나가라”(Fuera, fuera), “알제리, 알제리”(Argelia, Argelia), “키스해라, 키스해라”(Que se besen, que se besen), “정당하게, 정당하게”(Sporting, sporting)와 같은 구호를 외쳤고, 분노한 알제리 축구 팬들은 선수들에게 지폐를 흔들며 항의했다.
경기는 1978년 FIFA 월드컵에서 오스트리아가 서독을 이긴 경기(코르도바의 기적)와 같은 화끈한 모습을 기대했던 서독과 오스트리아 팬들 사이에서도 지탄을 받았다. 서독의 한 축구 팬은 경기장에 난입해 자국의 국기를 항의 표시로 소각하기도 하였다.[2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