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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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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제 김씨는 신라 경순왕의 후손인 김천서를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김천서는 고려 명종 때 문하시중을 지냈으며, 김정걸은 고려 말 조선 초 경주 김씨, 문화 류씨, 신평 이씨 가문의 가신으로 활동하다가 조선 태종 때 김제군에 봉해졌다. 김정걸의 후손들이 김제를 본관으로 하여 김제 김씨를 이루었고, 조선 시대에는 진묵대사 김일옥이, 현대에는 언론인 김강정이 주요 인물로 알려져 있다.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5,220명이 김제 김씨 성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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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김씨 - [성씨/가문]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관향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시조김천서(金天瑞)
중시조김정걸(金正傑)
집성촌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주요 인물김병두, 김부날, 김병익, 김일옥, 김형렬, 김강정
2000년 인구5,220명

2. 역사

김제 김씨의 시조 '''김천서'''(金天瑞)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대안군 김은열의 서얼 현손으로, 고려 명종 때인 1184년(명종 14년) 문하시중을 지냈으며, 1188년(명종 18년)에 '''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에 봉해졌다. 1191년(명종 21년) 관직에서 은퇴한 후 1196년(명종 26년) 김제에 정착하였다.[1]

김천서의 7세손 '''김정걸'''(金正傑, 1356년(공민왕 5년)생~1429년(세종 11년)졸.)은 공양왕 말기인 1391년(공양왕 2년) 경주 김씨계림군 김균의 가신(家臣)이었다. 김균은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1392년(태조 원년) 개국삼등공신에 책록되었다. 김정걸은 이후 문화 류씨유양 아들들의 글선생, 신평 이씨이첨의 집사 등을 지내며 10년간 세 집안의 가신 생활을 했다.

전라도 김제 출신인 김정걸은 개경한성 생활을 거친 유생으로, 1402년(태종 2년) 태종에 의해 '''김제군'''(金堤君)에 봉해졌다. 이후 김정걸의 자녀들 중 장남은 한성에 정착하고 차남은 전라도 김제에 남으면서 후손들이 김정걸을 중시조로 삼고 본관을 김제로 하여 김제 김씨의 세계를 이어왔다.

2. 1. 시조 및 관향

김제 김씨의 시조(始祖) '''김천서'''(金天瑞)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대안군 김은열의 서얼 현손으로, 고려 명종 때인 1184년(명종 14년) 문하시중을 지냈으며, 1188년(명종 18년)에 '''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에 봉해졌다. 1191년(명종 21년) 관직에서 은퇴한 후 1196년(명종 26년) 김제에 정착하였다.[1]

김천서의 7세손 '''김정걸'''(金正傑, 1356년(공민왕 5년)생~1429년(세종 11년)졸.)은 공양왕 말기인 1391년(공양왕 2년) 경주 김씨계림군 김균의 가신(家臣)이었다. 김균은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1392년(태조 원년) 개국삼등공신에 책록되기도 하였다. 김정걸은 이후 문화 류씨유양 아들들의 글선생, 신평 이씨이첨의 집사 등을 지내며 10년간 세 집안의 가신 생활을 했다.

전라도 김제 출신인 김정걸은 개경한성 생활을 거친 유생으로, 1402년(태종 2년) 태종에 의해 '''김제군'''(金堤君)에 봉해졌다. 이후 김정걸의 자녀들 중 장남은 한성에 정착하고 차남은 전라도 김제에 남으면서 후손들이 김정걸을 중시조로 삼고 본관을 김제로 하여 김제 김씨의 세계를 이어왔다.

2. 1. 1. 시조 김천서

'''김천서'''(金天瑞)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대안군 김은열(大安君 金殷說)의 서얼 현손이다. 고려 명종 때인 1184년(명종 14년) 문하시중을 지냈으며, 1188년(명종 18년)에 '''월성부원군'''(月城府院君)에 봉해졌다. 1191년(명종 21년) 관직에서 은퇴한 후 1196년(명종 26년) 김제에 정착하였다.[1]

2. 2. 고려 말 조선 초

김제 김씨 시조 김천서(金天瑞)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인 대안군 김은열의 서얼 현손(4대손)으로, 1184년(고려 명종 14년) 문하시중을 역임하고 1188년(명종 18년) 월성부원군에 봉해졌다.[1] 1191년(명종 21년) 은퇴 후 1196년(명종 26년) 김제에 정착하였다.[1]

약 200여 년 후, 김천서의 7세손 김정걸(金正傑, 1356년(고려 공민왕 5년)생~1429년(세종 11년)졸.)은 경주 김씨 계림군 김균을 섬겼다. 조선 건국 이후 김균이 개국공신에 오르자 김정걸은 그의 가신이 되었다. 이후 문화 류씨 유양 아들들의 글선생, 신평 이씨 이첨의 가내 집사를 역임했다. 김정걸은 전라도 김제 출신으로 개경한성에서 생활했다. 1402년(태종 2년) 태종은 김정걸을 '''김제군'''(金堤君)에 봉했다.[1] 이후 김정걸의 후손들은 김제를 본관으로 삼아 김제 김씨의 세계를 이었다.

2. 2. 1. 김정걸의 가계와 초기 활동

김정걸(金正傑, 1356년(공민왕 5년)생~1429년(세종 11년)졸.)은 경주 김씨 계림군 김균(鷄林君 金稛, 1341년생~1398년졸)의 가신(家臣)이었다.[1] 김균이 개국삼등공신(開國三等功臣)에 책록되면서, 1391년(공양왕 2년)부터 1394년(태조 2년)까지 3년 동안 김균의 가내 내신(家內 內臣)을 지냈다.

이후 1394년(태조 2년)부터 2년간 문화 유씨 유양(柳亮, 1354년생~1416년졸)의 아들들인 유근(柳謹)과 유경생(柳京生) 형제의 문사(文師, 글스승)를 지냈다.[1]

1396년(태조 4년)부터 1401년(태종 1년)까지 5년간 신평 이씨 이첨 (李詹, 1345년생~1405년졸)의 가내 집사(家內 執事)를 맡았다.[1]

2. 2. 2. 조선 개국과 김정걸

김정걸(金正傑, 1356년(공민왕 5년)생~1429년(세종 11년)졸.)은 조선 개국 공신인 계림군 김균(1341년생~1398년졸)을 섬겼다. 김균은 1392년(태조 원년) 개국삼등공신(開國三等功臣)에 책록되었고,[1] 김정걸은 1391년부터 1394년까지 그의 가신(家臣)으로 있었다.

이후 김정걸은 문화 류씨 유양(1354년생~1416년졸)의 차남과 삼남인 유근과 유경생 형제의 글선생을 2년간(1394~1396) 맡았고, 신평 이씨 이첨(1345년생~1405년졸)의 가내 집사(1396~1401)를 5년 동안 맡았다. 이로써 김정걸은 1391년부터 1401년까지 경주 김씨, 문화 류씨, 신평 이씨 세 집안의 가신으로 있었다.

전라도 김제 출신인 김정걸은 개경에서 3년(1390~1393), 한성에서 10년(1393~1403) 생활을 한 유생이었다. 1402년(태종 2년) 태종은 그를 '''김제군'''(金堤君)에 봉했다.[1] 김정걸의 장남 김병두(1373년(공민왕 22년)생~1435년(세종 17년)졸.)는 아버지를 따라 한성부에 정착했고, 차남 김부날(1377년(우왕 3년)생~1446년(세종 28년)졸.)은 고향 전라도 김제에 남았다. 이후 후손들은 김정걸을 중시조로 삼고 본관을 김제로 하여 김제 김씨의 세계를 이어왔다.[1]

2. 3. 조선시대

조선시대 김제 김씨는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이름한자생몰년주요 활동
김구[1]金坵? ~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1388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1424년 형조참의, 1429년 경기도관찰사를 역임했다.
김겸[2]金謙? ~ ?조선 전기의 문신. 1429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1455년 집현전 직제학, 1459년 사헌부 집의를 역임했다.
김유金紐? ~ ?조선 전기의 문신. 1438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1467년 이조참의, 1471년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했다.
김계희金係熙1521년 ~ 1581년조선 중기의 문신. 1546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1575년 대사간, 1580년 이조참판을 역임했다.
김시보金時1555년 ~ 1618년조선 중기의 문신. 1583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1604년 호조참의, 1617년 경기도관찰사를 역임했다.
김시걸金時傑1563년 ~ 1626년조선 중기의 문신. 1589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1617년 대사간, 1624년 이조참판을 역임했다.
김시양金時1581년 ~ 1643년조선 중기의 문신. 1605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1636년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했다.
김홍욱金弘郁1602년 ~ 1654년조선 중기의 문신. 1624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1646년 대사간, 1653년 이조참판을 역임했다.
김두욱金斗郁1610년 ~ 1660년조선 중기의 문신. 1636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1654년 대사간, 1659년 이조참판을 역임했다.
김만기金萬基1633년 ~ 1687년조선 중기의 문신. 1653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1671년 대사헌, 1683년 우의정을 역임했다. 숙종의 장인이다.
김만중金萬重1637년 ~ 1692년조선 중기의 문신, 소설가. 1665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1687년 대제학을 역임했다. 소설 《구운몽》, 《사씨남정기》 등을 저술했다.
김수항金壽恒1629년 ~ 1689년조선 중기의 문신. 1651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1672년 좌의정, 1675년 영의정을 역임했다.
김수흥金壽興1626년 ~ 1690년조선 중기의 문신. 1649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1674년 우의정, 1685년 좌의정을 역임했다.
김익훈金益勳1619년 ~ 1689년조선 중기의 무신. 1653년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1674년 훈련대장, 1680년 총융사를 역임했다.
김석주金錫冑1634년 ~ 1684년조선 중기의 문신. 1658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1680년 우의정, 1682년 좌의정을 역임했다.


3. 주요 인물

3. 1. 역사 속 인물

3. 2. 현대 인물

'''김강정'''(金康正, 1943~2021): MBC 뉴스 보도 기자 출신으로, 제2대 iMBC 대표이사 사장(재임: 2001년 8월 9일~2002년 3월 18일)을 지낸 언론인이다.[2]

4. 인구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김제 김씨는 1,594가구, 5,220명이다.

참조

[1] 문서 1196년 고려 시대 수도 개경을 떠난 후 전라도 김제 정착
[2] 문서 1562년(조선 명종 17년)에 조선 전라도 김제 생으로, 아버지 김병익(金炳瀷)과 어머니 함열 남궁씨(咸悅 南宮氏) 사이에서 2남 3녀(5남매) 중 막내(차남)로 출생하여 1565년(조선 명종 20년)에 아버지를 여의고 1568년(조선 선조 1년)에 불교 승려로 출가 후 1612년(조선 광해군 4년)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전라도 완주 대원사(완주군)(全羅道 完州 大院寺)에서 머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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