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시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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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다카시마성은 일본 나가노현 스와시에 위치한 성으로, 1575년까지 다케다 씨족이 통치했으며 이후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거쳐 스와 씨족이 지배했다. 1875년 해체되었으나, 1970년에 천수각 등 일부가 재건되었고, 2017년에는 속 일본 100명성으로 선정되었다. 현재는 다카시마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석벽과 해자가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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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시마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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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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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다카시마성 (高島城) |
별칭 | 스와의 떠오르는 성 (諏訪の浮城, Suwa-no-uki-shiro) 시마자키성 (島崎城, Shimazaki-jō) |
유형 | 평지성 |
위치 | 나가노현스와시 |
좌표 | 36°2′23.25″N 138°6′43.27″E |
완공 | 1592년 |
건설자 | 히데노 다카요시 (日根野高吉) |
사용 시기 | 에도 시대 |
철거 | 1875년 |
현재 상태 | 부분적으로 재건 |
공개 여부 | 공개 |
역사 | |
건설 시작 | 분로쿠 원년 (1592년) |
건설자 | 히네노 다카요시 |
주요 개보수 | 스와 다다즈미 |
주요 가문 | 히네노 씨, 스와 씨 |
폐성 | 메이지 8년 (1875년) |
구조 | |
구조 | 연곽식 평성 |
천수 구조 | 독립식 망루형 3중 5층 (1598년 건축, 비현존) |
재건 천수 | 1970년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복원 |
잔존 | 석벽, 해자, 문 |
재건 | 천수, 망루, 문, 담 |
문화재 지정 | |
문화재 | 스와시 지정 사적 |
추가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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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오다 노부나가가 이 지역을 자신의 장군 중 한 명인 가와지리 히데타카에게 배정했다. 노부나가가 혼노지의 변에서 암살된 후, 이 영토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통치를 받게 되었고, 그는 히노 타카요시를 스와 번의 다이묘로 임명했다. 히노 타카요시는 성의 완전한 재건을 시작했으며, 그의 아들 히노 요시아키라가 이를 완성했다. 1601년 히노 씨족은 다른 곳으로 이주되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다시 스와 씨족에게 번이 돌아갔다. 스와 씨족은 메이지 유신까지 성을 계속 지배했다.
1582년 3월, 다케다 씨 멸망 후, 가이국과 시나노 스와 군은 오다 씨의 가신인 가와지리 히데타카가 영유했으며, 스와 군에는 히데타카의 가신인 유게 주조가 배치되었다. 같은 해 6월 혼노지의 변에 따른 "덴쇼 임오의 난" 이후, 스와 요리타다는 평성인 '''가네코성'''(스와시 나카스)을 축조하여 새로운 거점으로 삼았다.[1]
2. 1. 중세 시대
스와 호수 주변 지역은 적어도 초기 헤이안 시대부터 스와 씨족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러나 센고쿠 시대에 다케다 신겐에게 정복당했으며, 이 지역은 그의 영토에 병합되었다. 1575년 나가시노 전투에서 다케다 씨족이 패배하고 멸망할 때까지 다카시마성은 여러 다케다 장군(시작은 이타가키 노부카타)이 통치했다.중세 시대, 스와 군의 영주였던 스와 씨는 현재의 스와 다카시마 성 북쪽에 위치한 차우스 산에 다카시마 성(차우스 산 성)을 축조하여 거성으로 삼았다. 스와 씨가 멸망한 후, 스와 군에는 다케다 가의 가신인 이타가키 노부카타가 현재의 지노시에 소재한 우에하라 성에 배치되어 스와 군사(군대)가 되었다.[1]
덴분 17년(1548년) 우에다하라 전투에서 노부카타가 전사했고, 덴분 18년(1549년) 정월 나가사카 도라후사가 스와 성의 성주 대리가 되어 다카시마 성에 입성했다. 『고하쿠사이키』에 따르면, 다카시마 성은 아시가루 다이쇼인 야마모토 간스케에 의해 개수되었다고 한다. 다카시마 성의 성주 대리는 도라후사의 뒤를 이어 요시다 노부오・이치카와 마사후사가 맡았고, 덴쇼 3년(1575년) 5월 21일 나가시노 전투에서 마사후사가 전사하자 이마후쿠 마사카즈가 맡게 되었다. 다카시마 성은 다케다 씨에 의한 스와 군 지배의 거점이 되었다.[1]
2. 2. 근세 (에도 시대)
1590년 스와 요리타다가 무사시 국 나라나시로 전봉되고, 히네노 다카요시가 자우스 산에 있던 옛 다카시마 성에 입성했다.[1] 1592년 히네노 다카요시는 현재 위치에 새로운 다카시마 성을 축성하기 시작했다.[1] 1598년 다카시마 성이 완공되었다.[1]1601년 히네노 가문은 시모쓰케 국 미부 번으로 전봉되었고, 후다이 다이묘인 스와 요리미즈가 2만 7천 석으로 입봉하여 다시 스와 가문의 영지가 되었다.[1] 에도 시대 동안 스와 번의 번청이자 번주의 거처였다.[1] 1786년 석벽 등이 보수되었다.[1]
간에이 3년 (1626년)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여섯째 아들 마쓰다이라 다다테루가 유배되어 성에 감금되기도 했다.
2. 3. 근현대 (메이지 시대 이후)
1871년(메이지 4년) 폐번치현에 따라 다카시마현이 설치되어 현청사로 사용되었다.[1] 1875년 (메이지 8년) 천수각을 포함한 대부분의 건물이 해체되거나 매각되었다.[1]1876년 (메이지 9년) 다카시마 공원으로 정비되어 일반에 공개되었고, 1900년 (메이지 33년) 스와 고코쿠 신사가 세워졌다.
1970년 (쇼와 45년) 천수, 망루, 문, 담 등이 복원되었다.[1]
2017년 (헤이세이 29년) 4월 6일, 속 일본 100명성 (130번)으로 선정되었다.[3]
3. 구조
다카시마성은 연곽식 평성이다. 한때는 스와호로 돌출된 수성으로 "스와의 부성(浮城)"이라고 불렸지만, 에도 시대 초기에 스와호의 간척이 이루어져 수성의 면모는 사라졌다. 부성이란 이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 3대 호성 중 하나로 꼽힌다.
3. 1. 배치

다카시마성은 원래 스와호로 뻗어 있는 반도에 건설되었으며, 호수 자체가 해자 역할을 했다. 이는 해안을 마주보는 면만 튼튼한 성벽을 갖추면 됨을 의미했다. 혼마루는 다리로 니노마루와 산노마루와 연결되었으며, 해안을 향한 오테몬(정문)을 갖춘 코로모노나미 구루와(본진)가 있었다. 에도 시대 동안 스와호의 퇴적 작용이 증가하면서 성은 육지로 둘러싸이게 되었고, 현재 부지는 현대적인 스와시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1]
오늘날 이 지역은 공원이다. 해자의 북쪽과 동쪽 면만 보존되어 있다. 1970년에 일부 성 구조가 재건되었지만 역사적으로 정확하지 않다.[1]
3. 2. 건축
히네노 다카요시는 돌담으로 8동의 망루, 6동의 문, 3중 천수각 등을 세워 근세 성곽의 모습을 갖추었다. 하지만 다카시마성이 있던 곳은 지반이 약했기 때문에 목재를 뗏목 형태로 짜서 그 위에 돌을 쌓는 등 당시 최첨단 기술이 사용되었다. 그럼에도 돌담이 쉽게 손상되어 여러 차례 보수 공사를 할 필요가 있었다고 한다.[3] 1592년(분로쿠 원년)부터 1598년 (게이초 3년)까지 7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성을 쌓았기 때문에 무리한 공사였을 것으로 보이며, 현지에서는 "가혹한 노역에 시달렸다", "가네코성의 석재를 전부 가져온 것 외에도 묘석, 석불도 사용했다(전용)" 등의 전승이 남아있다.[3]히네노 다카요시는 1592년 (분로쿠 원년)부터 1598년 (게이초 3년)에 걸쳐, 현재의 땅인 스와호반의 다카시마 촌에 새로운 성을 축조했다. 그 과정에서 현재 거주하던 마을 사람들을 이주시켰으며, 어업권이나 부역 면제권 등의 특권을 주는 대신 오와다로 이주하게 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밑에서 토목 공사를 경험한 히네노 다카요시는 오다-도요토미 계열의 성곽으로 축성하여 돌담을 쌓고 천수각도 올렸다. 동시에 우에하라성 주변에 있던 상공업자들을 이주시켜, 가미스와 숙 건설을 시작했다.
1786년 (텐메이 6년)에는 돌담 등의 보수가 이루어졌다.
; 천수각
과거 천수각은 독립식 망루형 3중 5층으로, 메이지 시대 초기에 촬영된 사진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초층을 입모양의 큰 지붕으로 하고 2층의 망루를 얹은 형태였으며, 2층의 동서 면에 입모양 박공 돌출 창, 3층에는 남북 면에 화두창을 가진 맞배지붕 박공 돌출 창과 동서 면에 외고란 연이 설치되었다. 각 곳에 화두창이 사용되었으며, 지붕은 기와가 아닌 노송나무 얇은 판을 얹는 감나무 껍질 지붕이었다.
현재의 복원 천수각은 창문의 크기나 위치 등 세부 사항이 다르며, 지붕에는 구리판이 덮여 있고, 내부는 자료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이며, 시공은 구마가이구미이다.
4. 현황
스와호의 퇴적 작용 증가로 성은 육지로 둘러싸이게 되었고, 현재 부지는 현대 스와시 중심부에 있다. 현재 이 지역은 공원으로, 해자의 북쪽과 동쪽 면만 보존되어 있다. 1970년에 성의 일부 구조가 재건되었지만 역사적으로 정확하지는 않다. 2017년에 속 일본 100명성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1]
4. 1. 다카시마 공원
메이지 8년(1875년) 천수를 포함한 대부분의 건물이 해체, 매각되어 한동안 성에는 석벽과 해자만 남아 있었다. 현재 니노마루(二の丸)와 산노마루(三の丸)는 택지로 조성되었고, 혼마루(本丸)에는 천수, 망루, 문, 담이 복원되어 '''다카시마 공원'''(高島公園)으로 정비되었다.[1] 혼마루의 석축과 북쪽 및 동쪽의 해자가 남아 있다.산노마루에 있던 성문은 혼마루로 이전되었으며, 어느 문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온천사(温泉寺) 및 정광사(浄光寺)의 산문으로 각각 이전되어 현존한다. 노무대(能舞台)는 온천사 본당의 일부로 이전되었다.
4. 2. 이축 건물
산노마루에 있던 성문이 혼마루로 이축되었으며, 어느 곳에 있었던 문인지는 모르지만, 오센지 및 조코지에 각각 이축되었다.[1] 또, 노 무대가 오센지 본당의 일부로 이축되었다.[1]5. 교통
참조
[1]
웹사이트
続日本100名城
http://jokaku.jp/jap[...]
日本城郭協会
2019-07-25
[2]
서적
角川日本地名大辞典 20 長野県
諏訪藩
1834
[3]
문서
"続日本100名城」発表。"
http://jokaku.jp/wp-[...]
[4]
웹사이트
Yoko Kodaira Web site – 小平 陽子
https://yokokodai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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