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스 사파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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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데니스 사파테는 은퇴한 미국의 야구 선수로, 1999년 길버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01년 밀워키 브루어스에 지명되었다. 2006년 메이저 리그에 데뷔하여 볼티모어 오리올스 등에서 활약했으며, 2010년에는 일본 프로 야구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계약했다. 2011년부터 일본에서 활동하며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고, 2013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를 거쳐 2014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3년 연속 최다 세이브를 기록하며 일본 프로 야구 MVP를 수상했다. 2021년 은퇴했으며, 일본 프로 야구 통산 234세이브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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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사파테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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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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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데니스 스콧 사파테 |
원어 이름 | Dennis Sarfate |
출생지 | 뉴욕주 뉴욕시 퀸스구 |
생년월일 | 1981년 4월 9일 |
신장 | 193cm |
체중 | 102kg |
포지션 | 투수 |
투구 | 우투 |
타석 | 우타 |
선수 경력 | |
대학교 | 애리조나 주립 대학교 |
프로 입단 년도 | 2001년 |
드래프트 순위 | MLB 드래프트 9라운드 (전체 268위) |
MLB 데뷔 | 2006년 9월 3일, 밀워키 브루어스 |
NPB 데뷔 | 2011년 4월 14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 |
최종 출장 | NPB / 2018년 4월 15일 |
소속팀 | 밀워키 브루어스 (2006년) 휴스턴 애스트로스 (2007년) 볼티모어 오리올스 (2008년 ~ 2009년) 히로시마 도요 카프 (2011년 ~ 2012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2013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4년 ~ 2021년) |
수상 | |
NPB 올스타 | 3회 (2011년, 2014년, 2016년) |
일본 시리즈 우승 | 5회 (2014년, 2015년, 2017년-2019년) |
퍼시픽 리그 MVP | 2017년 |
일본 시리즈 MVP | 2017년 |
쇼리키 마쓰타로 상 | 2017년 |
퍼시픽 리그 세이브왕 | 3회 (2015년, 2016년, 2017년) |
연봉 정보 | |
연봉 | 400만 달러 (2016년, 2016년부터 3년 계약) |
MLB 통계 | |
승패 | 5승 4패 |
평균자책점 | 4.53 |
탈삼진 | 131 |
최종 소속팀 (MLB) | 볼티모어 오리올스 |
최종 년도 (MLB) | 2009년 |
NPB 통계 | |
승패 | 27승 20패 |
평균자책점 | 1.57 |
탈삼진 | 574 |
세이브 | 234 |
최종 소속팀 (NPB)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최종 년도 (NPB) | 2018년 |
2. 선수 경력
사파테는 1999년 애리조나주 길버트에 있는 길버트 고등학교(Gilbert High School)를 졸업했다.[1] 그 해 시니어 해에 10승 2패, 평균자책점 1.75, 81이닝 110탈삼진을 기록하며 올아메리카 선수로 선정되었고, 퍼스트 팀 올스테이트에 이름을 올렸다.[1] 또한 1999년에는 ''스코츠데일 트리뷴'' 올해의 투수로 선정되었다.[2]
텍사스 레인저스는 1999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 15라운드(전체 465순위)에서 사파테를 지명했지만,[2][3] 계약하지 않았다. 이후 사파테는 애리조나 주립 대학교에 입학하여 스포츠 심리학을 전공했고, 2001년에는 챈들러-길버트 커뮤니티 칼리지에 다녔다.[1]
밀워키 브루어스는 2001년 2001년 MLB 드래프트 9라운드(전체 268위)에서 사파테를 지명했다.[4] 챈들러-길버트 커뮤니티 칼리지 재학 중이던 2001년, MLB 드래프트에서 밀워키 브루어스로부터 9라운드(전체 268위) 지명을 받아 6월 18일에 계약을 맺었다.
2003년, 싱글 A 벨로이트 스내퍼스에서 미드웨스트 리그를 위해 투구하면서 26번의 선발 등판에서 12승 2패, 2.84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139.2이닝 동안 140개의 탈삼진(리그 2위)을 기록했다.[5]
2006년 9월 3일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경기에서 메이저 데뷔했다. 등번호는 45였다. 그는 플로리다 말린스를 상대로 1.1이닝 무실점 동안 3명의 타자를 삼진으로 잡으며 메이저 리그 데뷔를 했다.[6] 사파테는 브루어스를 위해 8경기에 등판하여 4.32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8.1이닝 동안 11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7]
; 첫 기록
- 첫 등판: 2006년 9월 3일, 마이애미 말린스(플로리다 말린스) 7차전 (아메리칸 패밀리 필드(밀러 파크)), 8회 초 3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하여 1⅓이닝 무실점
- 첫 탈삼진: 동일 경기, 8회 초 조쉬 윌링햄으로부터 헛스윙 삼진
2007년 9월 11일, 브루어스는 현금을 받고 사파테를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트레이드했다.[7] 사파테는 프로 경력을 선발 투수로 시작했지만, 2007년에는 구원 투수로 활약했다. 휴스턴에서 등번호 '''59'''번을 달고 7번의 구원 등판을 기록했고, 1승 0패, 평균자책점 1.08, 8.1이닝 동안 14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8] 같은 달 26일 신시내티 레즈와의 경기에서 메이저 리그 개인 최고 속도인 159km/h를 기록했고, 메이저 리그 첫 승리도 거두었다.
; 첫 기록
- 첫 홀드: 2007년 9월 15일, 피츠버그 파이리츠 14차전 (미닛 메이드 파크), 7회 초 4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하여 1이닝 무실점
- 첫 승리: 2007년 9월 26일, 신시내티 레즈 14차전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 파크), 7회 말 3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하여 2이닝 무실점
2007년 12월 12일,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데니스 사파테를 지명 타자/좌익수 루크 스콧, 투수 매트 앨버스, 트로이 패튼, 3루수 마이클 코스탄조와 함께 유격수 미겔 테하다와 트레이드하여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보냈다.[9]

사파테는 2008년에도 구원 투수로 시작했다. 2008년 7월 28일, 그는 오리올스의 선발 로테이션으로 이동했다.[10] 그는 15⅔ 이닝 동안 18실점을 기록하며 0승 2패를 기록한 지 불과 4번의 선발 등판 후 불펜으로 복귀했다. 전반적으로 57경기에서 4승 3패, 평균자책점 4.74, 79.2이닝에서 85탈삼진을 기록했다.[8] 2008년, 등번호를 밀워키 브루어스 시절의 '''45'''로 되돌렸다. 4월에 자택에서 아내가 닫으려던 문 모서리에 오른쪽 어깨를 부딪혀 쇄골이 골절되었지만[40], 이를 숨기면서 ("구단에는 보고했지만, 언론에 공표하지 않았을 뿐") 등판을 계속했고[41], 수술을 받은 9월까지 4선발을 포함한 57경기에 등판했다.
; 첫 기록
- 첫 선발 등판: 2008년 7월 30일, 뉴욕 양키스 12차전 (양키 스타디움), 4이닝 5실점으로 패전 투수
2009년에는 5월에 발병한 오른손 혈행 장애의 영향도 있어[42], 메이저 리그에서의 등판은 20경기, 마이너 리그에서의 등판도 14경기에 그쳤다. 사파테는 2009년 오리올스의 불펜에서 시작했지만, 8경기에서 평균자책점 6.39를 기록한 후 5월에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11] 그는 9월에 복귀하여 훨씬 나은 투구를 보이며 12번의 구원 등판에서 평균자책점 3.48을 기록했다. 전반적으로 그는 20번의 구원 등판에서 0승 1패, 평균자책점 5.09, 23이닝에서 20탈삼진을 기록했다.[8]
2010년에는 메이저 리그 등판은 없었지만, AAA급 노포크 타이즈에서 47경기에 등판하여 2승 2패 20세이브, 방어율 2.73의 성적을 남겼다. 사파테는 트리플 A 노퍽 타이즈에서 투구하며 47경기에서 2승 2패, 20세이브(인터내셔널 리그 7위)와 평균자책점 2.73을 기록했고, 56이닝 동안 72개의 삼진을 잡았다.[5] 그는 마이너리그 조직 올스타로 선정되었다.[12] 오프인 11월 6일에 FA가 되었다.
2021년 11월 30일, 현역 은퇴가 발표되었다[63]。
현역 은퇴 후에는 미국 애리조나주 자택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며, 4명의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승마를 배우는 딸의 등하굣길을 돕고 말 돌보기 등을 하며, 다른 일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편, 몸이 굳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훈련은 계속하고 있다. 또한, 소프트뱅크로부터 오퍼가 있다면, 외국인 스카우트나 외국인 어드바이저적인 존재로서 힘이 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64]。
2. 1. 아마추어 경력
사파테는 1999년 애리조나주 길버트에 있는 길버트 고등학교(Gilbert High School)를 졸업했다.[1] 그 해 시니어 해에 10승 2패, 평균자책점 1.75, 81이닝 110탈삼진을 기록하며 올아메리카 선수로 선정되었고, 퍼스트 팀 올스테이트에 이름을 올렸다.[1] 또한 1999년에는 ''스코츠데일 트리뷴'' 올해의 투수로 선정되었다.[2]텍사스 레인저스는 1999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 15라운드(전체 465순위)에서 사파테를 지명했지만,[2][3] 계약하지 않았다. 이후 사파테는 애리조나 주립 대학교에 입학하여 스포츠 심리학을 전공했고, 2001년에는 챈들러-길버트 커뮤니티 칼리지에 다녔다.[1]
2. 2. 메이저 리그 경력
밀워키 브루어스는 2001년 2001년 MLB 드래프트 9라운드(전체 268위)에서 사파테를 지명했다.[4] 2003년, 싱글 A 벨로이트 스내퍼스에서 미드웨스트 리그를 위해 투구하면서 26번의 선발 등판에서 12승 2패, 2.84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139.2이닝 동안 140개의 탈삼진(리그 2위)을 기록했다.[5]2006년 9월 3일 플로리다 말린스를 상대로 1.1이닝 무실점 동안 3명의 타자를 삼진으로 잡으며 메이저 리그 데뷔를 했다.[6] 사파테는 브루어스를 위해 8경기에 등판하여 4.32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8.1이닝 동안 11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7]
챈들러-길버트 커뮤니티 칼리지 재학 중이던 2001년, MLB 드래프트에서 밀워키 브루어스로부터 9라운드(전체 268위) 지명을 받아 6월 18일에 계약을 맺었다.
2006년 9월 3일 마이애미 말린스와의 경기에서 메이저 데뷔했다. 등번호는 45였다.
; 첫 기록
- 첫 등판: 2006년 9월 3일, 마이애미 말린스(플로리다 말린스) 7차전 (아메리칸 패밀리 필드(밀러 파크)), 8회 초 3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하여 1⅓이닝 무실점
- 첫 탈삼진: 동일 경기, 8회 초 조쉬 윌링햄으로부터 헛스윙 삼진
2007년 9월 11일, 브루어스는 현금을 받고 사파테를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트레이드했다.[7] 사파테는 프로 경력을 선발 투수로 시작했지만, 2007년에는 구원 투수로 활약했다. 휴스턴에서 등번호 '''59'''번을 달고 7번의 구원 등판을 기록했고, 1승 0패, 평균자책점 1.08, 8.1이닝 동안 14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8] 같은 달 26일 신시내티 레즈와의 경기에서 메이저 리그 개인 최고 속도인 159km/h를 기록했고, 메이저 리그 첫 승리도 거두었다.
; 첫 기록
- 첫 홀드: 2007년 9월 15일, 피츠버그 파이리츠 14차전 (미닛 메이드 파크), 7회 초 4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하여 1이닝 무실점
- 첫 승리: 2007년 9월 26일, 신시내티 레즈 14차전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 파크), 7회 말 3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하여 2이닝 무실점
2007년 12월 12일,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데니스 사파테를 지명 타자/좌익수 루크 스콧, 투수 매트 앨버스, 트로이 패튼, 3루수 마이클 코스탄조와 함께 유격수 미겔 테하다와 트레이드하여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보냈다.[9]
사파테는 2008년에도 구원 투수로 시작했다. 2008년 7월 28일, 그는 오리올스의 선발 로테이션으로 이동했다.[10] 그는 15⅔ 이닝 동안 18실점을 기록하며 0승 2패를 기록한 지 불과 4번의 선발 등판 후 불펜으로 복귀했다. 전반적으로 57경기에서 4승 3패, 평균자책점 4.74, 79.2이닝에서 85탈삼진을 기록했다.[8] 2008년, 등번호를 밀워키 브루어스 시절의 '''45'''로 되돌렸다. 4월에 자택에서 아내가 닫으려던 문 모서리에 오른쪽 어깨를 부딪혀 쇄골이 골절되었지만[40], 이를 숨기면서 ("구단에는 보고했지만, 언론에 공표하지 않았을 뿐") 등판을 계속했고[41], 수술을 받은 9월까지 4선발을 포함한 57경기에 등판했다.
; 첫 기록
- 첫 선발 등판: 2008년 7월 30일, 뉴욕 양키스 12차전 (양키 스타디움), 4이닝 5실점으로 패전 투수
2009년에는 5월에 발병한 오른손 혈행 장애의 영향도 있어[42], 메이저 리그에서의 등판은 20경기, 마이너 리그에서의 등판도 14경기에 그쳤다. 사파테는 2009년 오리올스의 불펜에서 시작했지만, 8경기에서 평균자책점 6.39를 기록한 후 5월에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11] 그는 9월에 복귀하여 훨씬 나은 투구를 보이며 12번의 구원 등판에서 평균자책점 3.48을 기록했다. 전반적으로 그는 20번의 구원 등판에서 0승 1패, 평균자책점 5.09, 23이닝에서 20탈삼진을 기록했다.[8]
2010년에는 메이저 리그 등판은 없었지만, AAA급 노포크 타이즈에서 47경기에 등판하여 2승 2패 20세이브, 방어율 2.73의 성적을 남겼다. 사파테는 트리플 A 노퍽 타이즈에서 투구하며 47경기에서 2승 2패, 20세이브(인터내셔널 리그 7위)와 평균자책점 2.73을 기록했고, 56이닝 동안 72개의 삼진을 잡았다.[5] 그는 마이너리그 조직 올스타로 선정되었다.[12] 오프인 11월 6일에 FA가 되었다.
2. 2. 1. 밀워키 브루어스
밀워키 브루어스는 2001년 2001년 MLB 드래프트 9라운드(전체 268위)에서 사파테를 지명했다.[4] 2003년, 싱글 A 벨로이트 스내퍼스에서 미드웨스트 리그를 위해 투구하면서 26번의 선발 등판에서 12승 2패, 2.84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139.2이닝 동안 140개의 탈삼진(리그 2위)을 기록했다.[5]그는 2006년 9월 3일에 플로리다 말린스를 상대로 1.1이닝 무실점 동안 3명의 타자를 삼진으로 잡으며 메이저 리그 데뷔를 했다.[6] 사파테는 브루어스를 위해 8경기에 등판하여 4.32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8.1이닝 동안 11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7]
챈들러-길버트 커뮤니티 칼리지 재학 중이던 2001년, MLB 드래프트에서 밀워키 브루어스로부터 9라운드(전체 268위) 지명을 받아 6월 18일에 계약을 맺었다.
2006년 9월 3일 플로리다 말린스와의 경기에서 메이저 데뷔했다. 등번호는 45였다.
2. 2. 2. 휴스턴 애스트로스
2007년 9월 11일, 브루어스는 현금을 받고 사파테를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트레이드했다.[7] 사파테는 프로 경력을 선발 투수로 시작했지만, 2007년에는 구원 투수로 활약했다. 휴스턴에서 등번호 '''59'''번을 달고 7번의 구원 등판을 기록했고, 1승 0패, 평균자책점 1.08, 8.1이닝 동안 14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8] 같은 달 26일 신시내티 레즈와의 경기에서 메이저 리그 개인 최고 속도인 159km/h를 기록했고, 메이저 리그 첫 승리도 거두었다.2. 2. 3. 볼티모어 오리올스
2007년 12월 12일,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데니스 사파테를 지명 타자/좌익수 루크 스콧, 투수 매트 앨버스, 트로이 패튼, 3루수 마이클 코스탄조와 함께 유격수 미겔 테하다와 트레이드하여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보냈다.[9]사파테는 2008년에도 구원 투수로 시작했다. 2008년 7월 28일, 그는 오리올스의 선발 로테이션으로 이동했다.[10] 그는 15⅔ 이닝 동안 18실점을 기록하며 0승 2패를 기록한 지 불과 4번의 선발 등판 후 불펜으로 복귀했다. 전반적으로 57경기에서 4승 3패, 평균자책점 4.74, 79.2이닝에서 85탈삼진을 기록했다.[8] 2008년, 등번호를 밀워키 브루어스 시절의 '''45'''로 되돌렸다. 4월에 자택에서 아내가 닫으려던 문 모서리에 오른쪽 어깨를 부딪혀 쇄골이 골절되었지만[40], 이를 숨기면서 ("구단에는 보고했지만, 언론에 공표하지 않았을 뿐") 등판을 계속했고[41], 수술을 받은 9월까지 4선발을 포함한 57경기에 등판했다.
2009년에는 5월에 발병한 오른손 혈행 장애의 영향도 있어[42], 메이저 리그에서의 등판은 20경기, 마이너 리그에서의 등판도 14경기에 그쳤다. 사파테는 2009년 오리올스의 불펜에서 시작했지만, 8경기에서 평균자책점 6.39를 기록한 후 5월에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11] 그는 9월에 복귀하여 훨씬 나은 투구를 보이며 12번의 구원 등판에서 평균자책점 3.48을 기록했다. 전반적으로 그는 20번의 구원 등판에서 0승 1패, 평균자책점 5.09, 23이닝에서 20탈삼진을 기록했다.[8]
2010년에는 메이저 리그 등판은 없었지만, AAA급 노포크 타이즈에서 47경기에 등판하여 2승 2패 20세이브, 방어율 2.73의 성적을 남겼다. 사파테는 트리플 A 노퍽 타이즈에서 투구하며 47경기에서 2승 2패, 20세이브(인터내셔널 리그 7위)와 평균자책점 2.73을 기록했고, 56이닝 동안 72개의 삼진을 잡았다.[5] 그는 마이너리그 조직 올스타로 선정되었다.[12] 오프인 11월 6일에 FA가 되었다.
2. 3. 일본 프로 야구 경력
2. 3. 1. 히로시마 도요 카프
2010년 오프에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계약했다. 등번호는 '''58'''이 되었다.2011년은 마무리 투수로 기용되었다. 올스타전 이후 리그 1위인 22세이브를 기록하는 활약을 보였고, 7월 30일 주니치 드래건스전에서는 외국인 투수 구단 최다 기록을 경신하는 25세이브를 올렸다[43]。하지만 9월 9일 주니치전에서 복부에 통증을 느껴 1회 1실점으로 마운드를 내려와 패전 투수가 되었고, 이후 사타구니 탈장 진단을 받고 등록 말소되어 그대로 시즌을 마쳤다[44]。최종적으로는 57경기에 등판하여 1승 3패 35세이브, 평균자책점 1.34, WHIP 0.92의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2011년 일본 센트럴 리그의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계약했고,[13] 빠르게 일본 야구 최고의 마무리 투수 중 한 명이 되었다.[14] 2011년 올스타에 선정되었다.[15] 57경기에서 1승 3패, 35세이브(일본 센트럴 리그 2위), 평균자책점 1.34를 기록했다.[16][5]
2012년은 초반에는 마무리 투수로 기용되었지만, 이후 그 해에 입단한 캠 미코라요와 교체되어 셋업으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47경기에서 2승 5패, 9세이브(리그 9위), 평균자책점 2.90을 기록했다.[5][17] 오프에 보류 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어 자유 계약 공시되었다.
2. 3. 2.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그는 2013년에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에서 한 시즌을 보냈다.[18] 사파테는 58경기(7위)에서 9승 1패, 10세이브(일본 퍼시픽 리그 7위), 1.87의 평균자책점(8위)을 기록했다.[5][19]2012년 12월 14일에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와 계약을 맺었다.[45] 등번호는 '''26'''번이다.
에는 시즌 초반에는 셋업 투수를 맡았지만, 시즌 중반에는 부진했던 오이시 타츠야를 대신하여 마무리 투수로 보직을 변경했다. 시즌 후반에는 선발 투수였던 와쿠이 히데아키가 마무리 투수로 전향하면서 셋업 투수로 복귀했다. 시즌 통산으로는 일본 진출 후 최다인 9승을 기록했다. 그러나 시즌 종료 후 잔류 의사를 보이지 않았고[46], 12월 2일에 자유 계약 선수로 공시되었다.
2. 3. 3.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3년 12월 17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계약을 맺었다.[47] 등번호는 '''58'''번이다.2014년 5월 20일 히로시마전 (후쿠오카 야후오크! 돔)에서 NPB 사상 3번째로 12개 전 구단으로부터 세이브를 달성했다.[48] 8월 12일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에서 NPB 사상 최초로 양 리그 30세이브를 달성했다.[49] 64경기에 등판하여 37세이브, 탈삼진율 12.64를 기록하며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일본 시리즈에서는 4경기에 등판하여 1승 2세이브로 우수 선수상을 수상하며 일본 제일에 기여했다. 2014년 올스타에 선정되었다.[20] 이 시즌 그는 7승 1패, 37세이브(일본 퍼시픽 리그 2위), 1.05의 평균자책점(3위)을 기록했다.[5][21]
2015년에도 개막부터 세이브를 계속 올렸고, 8월 9일에 퍼시픽 리그 신기록인 29이닝 연속 삼진을 기록했다. 최종적으로는 전년에 히라노 요시히사가 세운 40세이브의 퍼시픽 리그 기록을 경신하는 41세이브를 올려, 본인 처음으로 최다 세이브 타이틀을 획득했다. 2015년 일본 시리즈에서도 세이브를 기록하며 호크스가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22] 이 시즌 그는 5승 1패, 41세이브(리그 1위), 1.11의 평균자책점(4위)을 기록했다.[5][23]
2016년에는 동점 상황에서 등판하면 실점하는 패턴이 두드러져, 동점 시 등판만으로 자기자신 최악인 7패를 기록했다.[50]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소한 리드 상황에서의 안정감은 발군으로, 자신이 세운 퍼시픽 리그 기록 2개를 경신하는 43세이브를 올려 2년 연속 최다 세이브를 획득했다. 2016년 올스타에 선정되었다.[25] 이 시즌 그는 0승 7패, 1.88의 평균자책점(리그 7위)을 기록했다.[5][26]
2017년 4월 2일 지바 롯데 마린스전 (후쿠오카 야후오크! 돔)에서 NPB 통산 178번째 세이브를 올려, 마크 크룬의 통산 177세이브를 넘어, 외국인 투수 최다 세이브 기록을 경신했다. 7월 5일 오릭스 버팔로스전에서 외국인 투수 사상 최초로 통산 200세이브를 달성했다. 9월 2일 라쿠텐전에서 일본 프로 야구 타이기록인 시즌 46세이브[51], 9월 5일 오릭스 버팔로스전에서 일본 프로 야구 신기록인 시즌 47세이브를 기록했고[52], 오승환의 아시아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9월 10일 롯데전에서 50세이브[53], 최종적으로는 54세이브까지 늘렸으며, 세이브 실패도 겨우 1회뿐이었다 (8월 5일 세이부전, 4점 리드 무사 만루에서 등판하여 4실점[54]). 일본 시리즈에서는 2, 3차전에서 세이브를 올렸고, 6차전에서는 9회부터 3이닝을 던져, 11회말 끝내기 승리를 이끌어 일본 제일에 기여했다. 구원 등판만으로 1982년의 히가시오 오사무 이후 35년 만, 외국인 투수로는 1964년의 조 스탄카 이후 53년 만에 일본 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또한, 외국 출신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쇼리키 마쓰타로 상에 선정되었다.[55] 게다가, 정규 시즌 최우수 선수상도 획득하여, 외국인 선수로서는 블라디미르 발렌틴 이후 4년 만이자 17번째 (18번째), 퍼시픽 리그의 외국인 선수로서는 알렉스 카브레라 이후 15년 만이자 8번째, 외국인 투수로는 궈 타이위안 이후 26년 만이자 4번째, 구원 투수로는 아사오 타쿠야 이후 6년 만이자 5번째 (6번째), 호크스의 외국인 선수로서는 스탄카 이후 53년 만이자 2번째 수상이었다. 또한, 시즌과 일본 시리즈 MVP를 동시에 수상한 것은 마쓰이 히데키 이후 17년 만이자 15번째, 호크스에서는 스기우라 타다시, 스탄카에 이어 3번째 영예였다.[56] 시즌·시리즈 MVP와 쇼리키 상 3개를 같은 해에 수상한 것은 이시이 타케히로, 마쓰이에 이어 사상 3번째이다. 최우수 선수 발표는 NPB AWARDS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시상식 참석을 위해 방일했다.[57]
2018년, 개막 직후 엉덩이 관절 통증을 호소하여 4월 18일에 출장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고, 검사를 위해 미국으로 귀국했다.[58] 같은 달에 콜로라도 주의 병원에서 오른쪽 고관절 관절경적 관절순 봉합술을 받았다.[59] 그해 중으로 전열에 복귀하지 못하고, 6경기 1승 5세이브로 시즌을 마쳤다.
2019년에는 시범 경기에서 이탈 이후의 실전 등판을 기대했지만, 직구가 140km/h대로 떨어지는 등 재활 후라는 점도 있어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로 끝나 개막 1군 진입에는 실패했다. 실전 등판의 전망이 보이지 않아, 6월 3일에 고관절 수술의 경과 관찰을 위해 귀국했다.[60] 이로 인해, 이 해의 1군 등판은 없었다.
2020년, 전년의 고관절 부상이 악화되어 8월 6일에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귀국했다.[61] 10월 19일, 14일에 "오른쪽 고관절, 퇴행성 고관절증의 인공 고관절 치환술"을 받은 것이 발표되었다.[62] 상기 부상으로 인해 2년 연속 등판이 없어, 시즌을 마쳤다.
2021년, 3년 계약의 마지막 해가 되었지만, 전년의 고관절 수술의 재활 때문에, 등판은 물론이고, 미국에 체류한 채로 일본에 오지도 않았다.[63]
3. 선수로서의 특징
장신에서 바로 내려 꽂는 오버스로 투구 폼으로, 투구 비율의 8할 가까이를 차지하는 평균 구속 94mph(약 151km/h), 최고 구속 100mph(약 161km/h, 미국에서의 최고 구속은 99mph, 일본에서의 최고 구속은 159km/h[65])의 강속구가 최대 무기이며, 종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나 커브, 체인지업도 던진다[66][67]。MLB 시절에는 제구에 어려움을 겪어 탈삼진은 많았지만, 볼넷이 실점으로 이어지는 패턴이 많았고, 2008년에는 피안타율 .218로 양호한 수준이었던 반면, 평균자책점은 기준 이하를 기록했다.
히로시마 이적 후 제구가 향상되었고, 2011년에는 2.37의 볼넷/9이닝 비율을 기록했으며, 같은 해 시즌 중반부터는 포크볼도 익혔다[68]。
4. 개인사 및 사회 활동
데니스 사파테는 뉴욕 퀸스에서 데니스 사파테와 린다 윌리엄스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두 명의 여동생, 자이메와 제니퍼가 있다.[1] 2007년 애스트로스 시절 예수의 존재에 관심을 갖게 된 이후 독실한 크리스천이 되었다. 본인 말에 따르면 "그 이후, 내 인생이 극적으로 변했다"라고 하며, 스포츠 신문 인터뷰에서도 "그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던지고 있다", "일본인들에게도 예수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소속되었던 제이슨 스탠리지와 함께 "신의 말씀을 전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자신의 공식 Twitter 자기소개에서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 일본의 야구 선수!(Christ Follower! baseball player in Japan!)"라고 크리스천임을 강조하고 있다.[69]
인공 임신 중절에 반대하며(프로라이프), 중절에 대한 비판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70][71] 인공 임신 중절에 반대하는 정치 단체 'Red State Reform' 및 'Action For Life'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있으며,[72] 'Action For Life' 단체에서는 2020년부터 대표를 맡아 집회에서 연설을 했다.[73]
2019년 7월 9일, FIFA 월드컵에서 우승한 메건 라피노가 미국 대통령이었던 도널드 트럼프를 비판한 것에 대해, 사파테는 "그렇게 미국이 싫으면, 나가! 아무도 안 막아"라고 트위터상에서 공격했다.[74][75][76]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투수였던 스콧 매티슨도 영어로 "찬성이네. 다른 데 가서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면 좋겠어"라고 찬동했다(후에 삭제).[75][77]
이 발언 3일 후, 사파테는 해당 발언에 대해 "의도치 않게, 제 트윗이 차별적으로 느껴졌다면 사과드립니다."라고 일본어로 말했다. 또한 "저는, 매우 좋아하는 일본에서, 모국에 긍지를 가지고 일하고 있으며, 그 어느 나라의 험담도 한 적이 없습니다. 대표팀 주장은, 더욱이 그 나라에 경의를 표해주길 바란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미국도, 국가도 국기도 싫다면, 미국 외에도 플레이할 곳은 많이 있고, 아무도 그것을 금지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표현이 공격적이고 불쾌하게 느껴졌다면 죄송합니다."라고 덧붙였다.[78][79]
5. 수상 및 타이틀 경력
5. 1. 일본 프로 야구 (NPB)
데니스 사파테는 일본 프로 야구에서 활동하며 여러 기록을 세웠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연속 최다 세이브를 기록했으며, 이는 다케다 히사와 함께 퍼시픽 리그 타이 기록이다. 2017년에는 MVP를 수상했다.또한, 퍼시픽 리그 연맹 특별 표창을 2회(2015년, 2016년) 수상했는데, 2015년에는 퍼시픽 리그 신기록인 41세이브와 43이닝 연속 탈삼진을 달성했고, 2016년에는 퍼시픽 리그 신기록인 시즌 43세이브를 달성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2017년에는 시즌 54세이브라는 프로 야구 신기록을 세워 커미셔너 특별 표창(특별상)을 받았다.
쇼리키 마쓰타로상을 2017년에 수상했는데, 이는 외국인 선수로는 최초의 수상이었다. 월간 MVP는 2016년 5월과 2017년 8월, 두 차례 투수 부문에서 수상했다. 2011년 7월에는 JA전농 Go・Go상 구원상을 받았다.
일본 시리즈에서는 2017년에 MVP, 2014년에 우수 선수상을 각각 한 차례씩 수상했다.
5. 2. 개인 기록 (NPB)
- 첫 등판 · 첫 세이브 : 2011년 4월 14일, 대 한신 타이거스 3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9회말 2번째로 구원 등판·마무리, 1이닝 1실점[80]
- 첫 탈삼진 : 상동, 9회말 맷 머턴으로부터
- 첫 승리 : 2011년 5월 14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5차전(MAZDA Zoom-Zoom 스타디움 히로시마) 9회초에 6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마무리, 1이닝 무실점[80]
- 첫 홀드 : 2011년 8월 28일, 대 요미우리 자이언츠 18차전(MAZDA Zoom-Zoom 스타디움 히로시마), 9회초 2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 1이닝 무실점[80]
- 통산 100세이브 : 2015년 5월 4일, 대 지바 롯데 마린스 7차전(후쿠오카 야후오쿠! 돔), 9회초 3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마무리, 1이닝 무실점 ※역대 26번째(외국인 선수로는 4번째)[80]
- 통산 200세이브 : 2017년 7월 5일, 대 오릭스 버펄로스 13차전(후쿠오카 야후오쿠! 돔), 9회초 6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마무리, 1이닝 무실점 ※역대 6번째(외국인 선수로는 최초)[80]
- 첫 타석 : 2012년 8월 25일, 대 한신 타이거스 18차전(MAZDA Zoom-Zoom 스타디움 히로시마), 6회말 청카이웬으로부터 삼진[80]
- 12 구단에서 세이브 : 2014년 5월 20일, 대 히로시마 도요 카프 1차전(후쿠오카 야후 오쿠! 돔), 9회초 3번째로 투수로 구원 등판·마무리 1이닝 무실점 ※역대 3번째(외국인 선수로는 2번째)[80]
- * 히로시마를 제외한 11개 구단으로부터 구원승을 거두었으며, 구원승만으로 전 구단 승리를 눈앞에 둔 것은 사상 처음이다.
- 양대 리그 30세이브 ※ 최초[80]
- 시즌 54세이브 : 2017년 ※ 아시아 기록, 일본 기록, 퍼시픽 리그 기록, 외국인 선수 기록[80]
- * 같은 해의 62 경기 완료는 역대 4위, 구단 기록이다.
- 4년 연속 5회의 35세이브 이상 ※모두 이와세 히토키 (7년 연속 8회)에 이은 역대 2위이다.
- * 37세이브 이상으로 한정하면 4년 연속은 역대 최장이다.
- 3년 연속 40세이브 (2015 - 2017년) ※이와세와 타이기록인 NPB 최장, 3도는 이와세 (5도)에 이은 역대 2위이다.
- * 이 3시즌 동안, 퍼시픽 리그 세이브 기록을 3위까지 독점. 그 외에 퍼시픽 리그에서 40세이브는 히라노 요시히사 (2014년)뿐 (2021년 현재)
- 통산 234세이브 ※외국인 기록, 역대 5위 (2021년 현재)[80]
- 통산 335경기 완료 ※외국인 기록, 역대 10위 (2021년 현재)[80]
- 43이닝 연속 탈삼진: 2015년 5월 8일 - 같은 해 9월 1일 ※일본 기록[81][82]
- 올스타전 출장 : 3회(2011년, 2014년, 2016년)[80]
6. 상세 정보
6. 1. 연도별 투수 성적
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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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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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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