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보르기니 우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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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람보르기니 우라코는 마르첼로 간디니가 디자인하고 람보르기니가 생산한 2+2 쿠페 스포츠카이다. 1970년 토리노 오토 쇼에서 프로토타입으로 공개되었으며,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람보르기니의 재정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포르쉐 911 등과 경쟁할 목적으로 개발했다. 1972년 생산을 시작했지만, 초기 V8 엔진의 신뢰성 문제와 생산 자동화 실패로 인한 높은 가격으로 판매 부진을 겪었다. 1979년 단종되었으며, P200, P250, P300 등 다양한 모델이 출시되었다. 우라코는 람보르기니 실루엣과 잘파 등 후속 모델에 디자인 및 기술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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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르기니 우라코 - [자동차]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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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사 | 람보르기니 |
다른 이름 | 우라코 |
생산 기간 | 1972년 – 1979년 |
생산 대수 | 791대 |
조립 장소 | 이탈리아, 산타가타 볼로냐 |
디자이너 | 마르첼로 간디니, 그루포 베르토네 |
차종 | 스포츠카 |
차체 스타일 | 2+2 쿠페 |
플랫폼 | 해당 없음 |
관련 차종 | 람보르기니 실루엣 람보르기니 잘파 람보르기니 에스파다 |
엔진 배치 | 가로 미드 엔진, 후륜 구동 |
변속기 | 5단 수동 |
휠베이스 | 2,450 mm |
전장 | 4,250 mm |
전폭 | 1,760 mm |
전고 | 1,160 mm |
중량 | 1,250 - 1,300 kg |
후속 차종 | 람보르기니 실루엣 |
엔진 | |
종류 | 람보르기니 V8 (P200) 람보르기니 L240 V8 (P250 & P111) 람보르기니 V8 (P300) |
모델별 정보 | |
P200 엔진 | 1,995cc V8 |
P200 최고 출력 | 182마력/7,500rpm |
P200 최대 토크 | 18.0kgm/3,800rpm |
P250, P250S, P111 엔진 | 2,463cc V8 |
P250, P250S, P111 최고 출력 | 220마력/7,500rpm |
P250, P250S, P111 최대 토크 | 23.0kgm/5,750rpm |
P300, Rally 엔진 | 2,997cc V8 |
P300 최고 출력 | 250마력/6,500rpm |
P300 최대 토크 | 42.0kgm/2,800rpm |
2. 역사
람보르기니 우라코는 1970년 토리노 오토 쇼에서 프로토타입으로 처음 공개되었다.[3] 람보르기니 미우라와 같은 최고급 스포츠카가 아닌, 페라리 디노, 마세라티 메라크, 포르쉐 911의 대안으로 더 저렴하게 제작되었다.[3]
1972년 P250으로 생산이 시작되었고, 1973년에 P250S로 개정되었다. 우라코 S는 완전 가죽 실내 장식, 틴트 파워 윈도우, 선택 사양인 메탈릭 페인트가 추가되었다. 배기 가스 제어 장치가 없는 차량은 새로운 웨버 40 DCNF 기화기를 받았다. 1974년에 출시된 P300은 3리터 엔진, 체인 구동 방식, 듀얼 오버헤드 캠, 개정된 실린더 헤드를 특징으로 했다.
미국 시장을 위한 우라코 P111(P250 Tipo 111)은 21대가 생산되었다. 이 차량들은 미국 규정 준수를 위해 더 큰 전면 범퍼와 배기 가스 제어 장치를 갖추었고, 마력이 감소했다. 우라코의 약 10%는 RHD, 나머지는 LHD 모델이었다. P200은 이탈리아 내수 시장을 위한 모델로, 2리터 이상 엔진 차량에 부과되는 38%의 세금을 피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람보르기니 실루엣과 람보르기니 잘파는 우라코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2. 1. 개발 배경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람보르기니 미우라와 같은 최고급 스포츠카 대신, 포르쉐 911, 디노 208/308GT4, 마세라티 메라크 등과 경쟁할 수 있는 2+2 스포츠카 시장 진출을 통해 회사의 재정 상황을 개선하고자 했다.[3][5][6]이를 위해 람보르기니의 엔지니어 파올로 스탄자니에게 차체 설계를, 베르토네에 재직 중이던 마르첼로 간디니에게 익스테리어 디자인을 맡겼다.[2][6] 엔진은 V형 8기통으로, 크랭크 축 위에 기어 박스를 배치하고 디퍼렌셜을 사이에 둔 지아코사 레이아웃으로 길게 배치하여 횡치했으며, +2 좌석 공간을 확보하면서 휠베이스를 2450mm로 짧게 줄였다. 섀시는 압연 강판을 용접한 패브리케이트 구조로, 강판제 보디에도 응력을 가하는 세미 모노코크이다.
람보르기니는 최신 컴퓨터 기술을 도입하여 우라코 생산을 자동화하고 연간 2,000대를 생산할 계획이었지만, 막대한 초기 투자 비용과 당시 트랙터 판매 부진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이로 인해 생산 비용이 증가하고 판매 가격도 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2. 2. 디자인
마르첼로 간디니가 베르토네에서 일할 당시 디자인한 2+2 쿠페이다.[2] 엔진은 V형 8기통으로, 크랭크축 위에 기어 박스를 배치하고 디퍼렌셜을 사이에 둔 지아코사 레이아웃을 통해 길게 배치하여 횡치했다. +2 좌석 공간을 확보하면서도 휠베이스를 2450mm로 짧게 줄였다. 섀시는 압연 강판을 용접한 패브리케이트 구조로, 강판제 보디에도 응력을 가하는 세미 모노코크 방식을 사용했다.
인테리어는 실내 폭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가로로 긴 미터 패널이 특징적이다. 중앙에는 경고등, 양옆에는 각종 보조 미터 3개씩, 맨 양쪽에는 타코미터(좌측)와 속도계(우측)가 일렬로 배치되어 있으며, 깊이가 있는 스티어링 휠이 장착되어 있다.
2. 3. 생산 및 단종
람보르기니는 우라코 생산에 최신 컴퓨터 기술을 도입하여 자동화를 시도하고 연간 2,000대를 생산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막대한 초기 투자 비용과 당시 트랙터 판매 부진으로 인해 이 계획은 무산되었다.[5] 그 결과, 생산 비용이 증가하고 판매 가격도 상승할 수밖에 없었다.1972년 가을부터 생산이 시작되어 1973년에 판매가 시작되었지만, 판매 실적은 저조했다. 새로 개발된 V8 엔진은 신뢰성이 낮았는데, 특히 크랭크축과 드라이브 벨트(타이밍 벨트) 파손이 심각한 문제였다.[6] 이 문제가 발생하면 최소한 실린더 헤드가 손상되고, 최악의 경우에는 엔진 자체가 파괴되었다.
1974년에는 연간 500대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미국에서도 판매를 시작했지만 주문량은 적었다. 1979년까지 총 791대의 우라코가 생산되고 단종되었다.
모델명 | 생산 대수 | 엔진 |
---|---|---|
우라코 P200 | 77대 | 2리터 V8 엔진 |
우라코 P250 | 520대 | 2.5리터 V8 엔진 |
우라코 P300 | 190대 | 3리터 V8 엔진 |
람보르기니 우라코는 초기에는 2리터 싱글 오버헤드 캠(SOHC) 크로스플레인 V8 엔진을 탑재했다.[4] 이후 2.5리터 및 3리터 V8 엔진은 듀얼 오버헤드 캠(DOHC)을 사용했다.
이후 우라코의 차체와 3.5리터 V8 엔진을 기반으로 2인승 오픈카(타르가 탑)인 실루엣과 잘파가 계승되었다.
3. 모델 및 파생 모델
모델 엔진 배기량 보어 x 스트로크 압축비 최대 출력 최대 토크 0–100 km/h 최고 속도 생산 대수 P200 V8 OHC 16V 1,994 cc 77.4 mm x 53 mm 8.6:1 182PS @ 7,500 rpm 176Nm @ 3,800 rpm 7.2 초 215km/h 66 P250 V8 OHC 16V 2,463 cc 86 mm x 53 mm 10.5:1 220PS @ 7,500 rpm 220Nm @ 3,750 rpm 6.9 초 240km/h 520 P300 V8 DOHC 16V 2,996 cc 86 mm x 64.5 mm 10.5:1 250PS @ 7,500 rpm 265Nm @ 3,500 rpm 5.6 초 260km/h 190
P111은 미국의 규제에 맞춘 북미 시장용 모델이었다. P250의 엔진에 에어펌프와 서멀 리액터 등을 장착하여 당시 미국의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를 통과했지만, 이로 인해 최고 출력은 180PS로 억제되었다.[7] 또한 큰 5마일 범퍼와 사이드 마커를 장착해야 했다.
3. 1. P250
P250은 V형 8기통 SOHC 엔진을 탑재했으며, 보어×스트로크는 φ86.0mm × 53mm, 배기량은 2,463cc이다. 티포 L240형 엔진은 압축비 10.5로 220PS/7,500rpm, 23kgm/5,750rpm의 성능을 냈다. 최고 시속은 220km/h, 0-100km/h 가속 시간은 6.2초로 발표되었으나, 실제 엔진 출력은 180PS 정도였다고 한다. 프론트 보닛 위에는 두 개의 에어 아웃렛 개구부가 있으며, 총 520대가 생산되었다.[4]
1973년에 출시된 P250S는 파워 윈도우 등을 장착했지만, 엔진이나 서스펜션 등 주요 부분은 P250과 동일하다.
3. 2. P250S
파워 윈도우 등의 편의 장비가 추가되었다. 엔진이나 서스펜션 등 주요 부분은 P250과 동일하다.[7]
3. 3. P300
P300은 1975년 4월에 출시되었다. 엔진은 V형 8기통 DOHC로, 보어 φ86.0mm × 스트로크 64.5mm, 2,997cc이다. 압축비는 9.2이며 250PS/7,500rpm의 성능을 냈다. 최고 속도는 265km/h로 발표되었다.[4] 캠 드라이브는 체인화되었으며, 트랜스미션도 강화되었다.
프론트 보닛 위의 에어 아웃렛 슬릿은 6개이다. 프론트 라디에이터 개구부는 P250보다 아래쪽으로 확대되었다. 생산 대수는 190대이다.[4]
3. 4. P200
P200은 2,000cc 이상의 차량에 엄격한 부가가치세가 부과되는 이탈리아 내수용 모델이다. 엔진은 V형 8기통 SOHC, 보어 φ77.4mm × 스트로크 53mm, 1,995cc로, 182PS/7,500rpm, 18kgm/3,800rpm의 성능을 낸다. 0-100km/h 가속에는 7.2초가 걸린다. 총 66대가 생산되었다.
3. 5. P111
P111은 미국의 규제에 맞춘 북미 시장용 모델이다. P250의 엔진에 에어 펌프, 써멀 리액터 등을 장착하여 당시 미국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를 통과했으며, 이로 인해 최고 출력은 180PS로 억제되었다.[7] 또한 큰 5마일 범퍼와 사이드 마커를 장착했다. 총 21대가 판매되었다.
3. 6. 랠리 (Rally)
봅 월레스가 1973년 가을부터 연말에 걸쳐 그룹 5 규정에 맞춰 시험 제작한 레이스용 차량이다.[8] 트윈 캠화된 2,997cc의 엔진은 후에 '''P300'''이나 실루엣에 탑재되었다.[9]
4. 디자인 및 특징
람보르기니 우라코는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포르쉐 911, 디노 208/308GT4, 마세라티 메라크 등 "2+2" 스포츠카 시장을 겨냥하여 개발한 모델이다. 실내 디자인은 가로로 긴 미터 패널이 특징이며, 중앙 경고등, 양옆 보조 미터, 타코미터(좌측)와 속도계(우측)가 일렬로 배치되어 있고, 깊이 있는 스티어링 휠을 장착했다.[6]
섀시는 압연 강판 용접 패브리케이트 구조로, 강판제 보디에도 응력을 가하는 세미 모노코크 방식이다.[6]
4. 1. 외관 디자인
마르첼로 간디니가 익스테리어 디자인을 담당했다.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포르쉐 911, 디노 208/308GT4, 마세라티 메라크 등 "2+2" 스포츠카 시장 진출을 노렸고, 람보르기니의 엔지니어 파올로 스탄자니에게 차체 설계를 맡겼다.[5][6] V형 8기통 엔진은 크랭크 축 위에 기어 박스를 배치하고 디퍼렌셜을 사이에 둔 지아코사 레이아웃으로 길게 배치하여 횡치했으며, +2 좌석 공간을 확보하면서 휠베이스를 2450mm로 짧게 줄였다.4. 2. 실내 디자인
실내 폭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가로로 긴 미터 패널이 특징적이며, 중앙에 경고등, 그 양옆으로 각종 보조 미터 3개씩, 맨 양쪽에 타코미터(좌측)와 속도계(우측)가 일렬로 배치되어 있으며, 깊이가 있는 스티어링 휠이 장착되어 있다.[6]4. 3. 섀시 및 구조
섀시는 압연 강판을 용접한 패브리케이트 구조로, 강판제 보디에도 응력을 가하는 세미 모노코크이다.[6]5. 제원 및 성능
우라코는 초기에는 2리터 싱글 오버헤드 캠 크로스플레인 V8 엔진을 탑재했다.[4] 이후 2.5리터 및 3리터 V8 엔진은 듀얼 오버헤드 캠을 사용했다.
모델 | 엔진 | 배기량 | 보어 x 스트로크 | 압축비 | 최대 출력 | 최대 토크 | 0–100 km/h (0-62 mph) | 최고 속도 | 생산 대수 |
---|---|---|---|---|---|---|---|---|---|
P200 | V8 OHC 16V | 1,994 cc | 77.4 mm x 53 mm | 8.6:1 | 182PS @ 7,500 rpm | 176Nm @ 3,800 rpm | 7.2 초 | 215km/h | 66 |
P250 | V8 OHC 16V | 2,463 cc | 86 mm x 53 mm | 10.5:1 | 220PS @ 7,500 rpm | 220Nm @ 3,750 rpm | 6.9 초 | 240km/h | 520 |
P300 | V8 DOHC 16V | 2,996 cc | 86 mm x 64.5 mm | 10.5:1 | 250PS @ 7,500 rpm | 265Nm @ 3,500 rpm | 5.6 초 | 260km/h | 190 |
6. 텔레비전 출연
2005년 4월 12일, 영국의 TV 프로그램 탑기어에 우라코가 페라리 디노, 마세라티 메락과 함께 경쟁 차종으로 출연했다. 해당 방송분은 글로 설명하기 어려우므로 직접 동영상을 보는 것이 좋다.[https://www.youtube.com/watch?v=nxhmD12qWCQ] 제임스 메이는 10,000 파운드를 주고 람보르기니 우라코를 구매했는데, "자동차에 전기 부품이 큰 문제를 일으켰다"고 말하며 견인차에 싣고 등장했다. 다른 출연자들과 시내 주행 중 우라코는 결국 고장이 나 견인차에 다시 실리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다른 차들도 상태가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방송 중 제임스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이건 키트 카(자동차 주인이 직접 조립하는 자동차. 영국의 TVR이 유명하다)가 아니라 람보르기니야"라고 말했고, 잠시 후 "정신 나간 놈"이라고 나지막히 덧붙였다.[10]
7. 평가 및 영향
람보르기니의 창업주 페루치오 람보르기니는 회사의 재정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포르쉐 911, 디노 208/308GT4, 마세라티 메라크 등 "2+2" 스포츠카 시장 진출을 노렸다.[5] 파올로 스탄자니가 차체 설계를, 베르토네 소속 마르첼로 간디니가 익스테리어 디자인을 담당했다.[6]
1970년 토리노 오토쇼(''Turin Auto Show'')에서 발표되어 많은 주문을 받았으나, 생산 자동화를 위한 초기 투자가 무산되면서 생산 비용이 증가했고, 이는 판매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1973년에 판매가 시작되었지만, 신형 V8 엔진의 신뢰성 문제와 맞물려 판매는 부진했다. 1974년에는 연간 500대를 생산하고 미국 시장에도 진출했지만, 주문량은 적었다.
7. 1. 부정적 평가
우라코는 신형 V8 엔진의 신뢰성이 낮았는데, 특히 크랭크축과 드라이브 벨트(타이밍 벨트) 파손이 심각했다. 이 문제가 발생하면 최소 실린더 헤드가 손상되고, 최악의 경우 엔진 전체가 파괴되었다.[5] 생산 자동화를 위한 초기 투자가 무산되면서 생산 비용이 증가했고, 이는 판매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판매 부진을 초래했다.[6] 결국 1979년까지 총 791대 생산에 그치고 생산이 중단되었다.7. 2. 후대 모델에 미친 영향
우라코의 차체와 3.5리터 V8 엔진은 후에 2인승 오픈카(타르가 탑)인 실루엣과 잘파로 계승되었다.[5]참조
[1]
간행물
Sant'Agata Bolognese to Zaragoza, the Heming-Way
http://www.motortren[...]
2013-02
[2]
서적
The Book of the Lamborghini Urraco
https://books.google[...]
Veloce Publishing
2012-02-08
[3]
간행물
Three small exotic GTs
http://www.ferrarida[...]
2014-09-26
[4]
웹사이트
Lamborghini Makes a Mean-Sounding V-8 Too
https://www.roadandt[...]
2023-10-06
[5]
서적
CAR MAGAZINE 445 2015年7月号
ネコ・パブリッシング
[6]
웹사이트
スーパーカーグラフ - ランボルギーニ・ウラッコ
http://www.motormaga[...]
モーターマガジン社
[7]
서적
ランボルギーニ
ネコ・パブリッシング
[8]
서적
スーパーカークラシックス
ネコ・パブリッシング
[9]
서적
ランボルギーニ・プロトタイプ・コンプリートファイル
ネコ・パブリッシング
[10]
웹인용
Top Gear - Episode Archive - Series 7
http://www.bbc.co.uk[...]
BBC
2009-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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