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슐리외급 전함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리슐리외급 전함은 프랑스 해군이 건조한 전함으로, 1930년대 독일 및 이탈리아 전함에 대응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됭케르크급 전함의 설계를 기반으로,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의 제한 내에서 380mm 또는 406mm 주포 8문을 장착하도록 설계되었으며, MACK 구조와 강력한 방어력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2차 세계 대전 중 리슐리외는 다카르 해전, 장 바르는 카사블랑카 해전에 참여했으며, 클레망소는 독일군에 나포, 가스코뉴는 미기공되었다. 리슐리외와 장 바르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완공되어 운용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프랑스의 해군 함정 - 라파예트급 호위함
라파예트급 호위함은 프랑스 해군이 운용하는 스텔스 호위함으로, 스텔스 기술을 적용해 레이더 단면적을 최소화했으며, 프랑스 해군 외에 여러 국가에 수출되어 각국의 요구사항에 맞춰modified 되었다. - 프랑스의 해군 함정 - 프랑스 브리그 바일란테 (1793)
프랑스 브리그 바일란테 (1793)는 1793년부터 1796년까지 활동한 프랑스 해군의 브리그로, 호송대 호위 임무를 수행하다가 1796년 영국 해군과의 교전에서 파괴되었다. - 전함 함급 - 비토리오 베네토급 전함
비토리오 베네토급 전함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 해군이 운용한 고속전함으로, 강력한 화력과 방어력을 갖추기 위해 38.1cm 주포와 풀리에세식 수뢰 방어 시스템을 채용했다. - 전함 함급 - 야마토급 전함
야마토급 전함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해군이 건조한 가장 큰 규모와 강력한 무장을 갖춘 전함으로, 46cm 주포 9문과 두꺼운 장갑을 탑재하여 해군 기술의 정점을 보여주었으나 항공전 시대로 인해 활약이 제한적이었으며, 야마토, 무사시 2척과 시나노 1척만이 완성되었다.
리슐리외급 전함 - [배(Ship)]에 관한 문서 | |
---|---|
함급 개요 | |
함급명 | 리슐리외급 전함 |
건조 국가 | 프랑스 |
운용 국가 | 프랑스 해군 |
이전 함급 | 됭케르크급 |
이후 함급 (계획) | 알자스급 |
파생 함급 | 가스코뉴급 |
건조 기간 | 1935년–1955년 |
취역 기간 | 1940년–1970년 |
계획 척수 | 4척 |
완공 척수 | 2척 |
폐기 척수 | 2척 |
취소 척수 | 2척 |
설계 제원 | |
함종 | 고속전함 |
배수량 | 표준: 만재: |
길이 | o/a |
흘수 | 만재: |
동력 | 6 × 강제 순환 보일러 |
추진 | 4 × 파슨스 기어 터빈 4 × 스크류 |
항속 거리 | at |
승조원 | 1,569명 |
무장 (설계) | |
주포 | 8 × 380 mm (15 in) 포 |
부포 | 9 × 포 |
대공포 | 12 × 대공포 8 × 대공포 24 × 기관총 |
항공기 | 4 × 루아르 130 수상기 |
항공기 시설 | 2 × 사출기 |
장갑 (설계) | |
무장 (리슐리외, 1943년 개장) | |
주포 | 8 × 380 mm 포 |
부포 | 9 × 152 mm 포 |
대공포 | 12 × 100 mm 대공포 56 × 보포스 대공포 48 × 얼리콘 대공포 |
레이더 (리슐리외, 1943년 개장) | |
레이더 | SF 수상 탐색 레이더 SA-2 대공 레이더 |
제원 (장 바르트, 완공 시) | |
배수량 | 정상: 만재: |
승조원 | 2,220명 |
레이더 (장 바르트, 완공 시) | |
레이더 | 1 × DRBV 11 대공/수상 1 × DRBV 20 대공 레이더 1 × DRBV 30 항해 레이더 1 × DRBC 10A 사격 통제 (FC) 레이더 6 × ACAE FC 레이더 5 × DRBC 30B FC 레이더 |
무장 (장 바르트, 완공 시) | |
주포 | 8 × 380 mm 포 |
부포 | 9 × 152 mm 포 |
대공포 | 12 × 100 mm 대공포 28 × 대공포 |
함선 목록 | |
함선 | 리슐리외 장 바르트 |
2. 설계
됭케르크급 전함의 설계를 확대 발전시킨 리슐리외급 전함은 4연장 주포탑 2기를 선수에 집중 배치하는 방식을 채택하여 화력 집중과 방어 효율을 높였다. 주포탑 사이에는 보조 기계실을 배치하여 주포탑 피격 시 피해 확대를 막는 구조를 채택했다.[1]
1930년대 중반, 이탈리아가 381mm 주포를 탑재한 비토리오 베네토급 전함 건조를 시작하고, 독일이 비스마르크급 전함 건조를 시작하면서, 프랑스 해군은 됭케르크급의 확대 발전형인 리슐리외급 설계를 추진했다.
초기 설계에서는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의 제한에 따라 35,000톤 배수량과 380mm 또는 406mm 주포 8문을 장착하는 방안이 검토되었다. 해군 참모총장 조르주 뒤랑-비엘은 됭케르크급 전함의 설계를 확대하는 방식을 선호했으며, 최종적으로 됭케르크급과 유사한 ''프로젝트 1''이 채택되었다.
설계안 | 주포 배치 | 특징 | 비고 |
---|---|---|---|
프로젝트 1 | 선수 4연장 포탑 2기 | 됭케르크급 확대, 최종 채택 | |
프로젝트 2 | 선수 2연장 포탑 1기, 3연장 포탑 2기 | 넬슨급 전함 기반 | |
프로젝트 3 | 선수 4연장 포탑 1기, 2연장 포탑 2기 | 넬슨급 전함 기반 | |
프로젝트 4 | 선수 3연장 포탑 3기 | 넬슨급 전함 기반 | |
프로젝트 5, 5 bis | 전후 함교 사이 4연장 포탑 2기 | 빈센초 데 페오 제안, 사격 범위 제한 | 과중량, 기각 |
''프로젝트 1'' 채택 이후, 부포의 중량 문제 해결을 위해 "Sural"(''suralimenté'' [가압 연소]의 약자)로 지정된 새로운 유형의 보일러를 채택했다. 이 보일러는 보일러실을 3개에서 2개로 줄여 기계실 공간을 단축시켰고, 이는 장갑 벨트로 보호해야 하는 선체 길이를 5m 줄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또한, 프랑스 해군은 세계 최초로 후루(Mast)와 연돌(Stack)의 기능을 합체시킨 MACK을 도입하여 상부 구조물의 소형화에 기여했다.
2. 1. 됭케르크급 전함의 영향
됭케르크급 전함 건조로 근대 전함을 획득한 프랑스는 이탈리아가 구식 초드레드노트급 전함 4척을 근대화 개장함과 동시에 15인치 포를 탑재한 고속 전함 건조를 시작하고, 나치 독일도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에 이어 비스마르크급 전함 건조에 착수하자 됭케르크급의 확대 발전형인 리슐리외급을 설계, 건조하기 시작했다.
함의 형태는 됭케르크급과 마찬가지로 4연장 주포탑 2기를 함 앞부분에 집중 배치하고, 포탑 사이에 보조 기계실을 배치하여 주포탑 피탄 손상 시 피해 확대를 막는 구조를 채택하였다. 또한 됭케르크급 운용 경험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점을 개선하였다.
- 부포의 양용포를 폐지하고, 대함정용 포와 고사포를 구분하였다.
- 수상기 격납고가 부포의 사계를 좁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포 배치를 변경하였다.
이외에도, 훗날 각국에서 보급된 후 마스트(Mast)와 굴뚝(Stack)의 기능을 합체시킨 MACK을 선구적으로 도입하였다. 주포 구경은 "1931년형 정 33cm(52구경) 포"에서 발전하여 "1935년형 정 38cm(45구경) 포"로 확대되었다.
2. 2. 이탈리아와 독일 전함의 영향
1930년대 중반, 이탈리아는 381mm 주포를 탑재한 비토리오 베네토급 전함 건조를 시작했고, 독일은 비스마르크급 전함 건조를 시작했다. 이 두 전함은 프랑스 해군이 됭케르크급 전함의 확대 발전형인 리슐리외급 전함을 설계하고 건조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2. 3. 주포 배치
380mm/45 Mle 1935 주포를 4연장 포탑에 담아 2기를 선수에 집중 배치한 것이 리슐리외급 전함의 특징이다. 4연장 포탑을 앞뒤로 간격을 두고 배치하여 포탑 사이에 보조 기계실을 배치함으로써 주포탑 피격 시 피해 확대를 방지하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포탑은 격벽으로 두 개의 포실로 나누어져 있어, 단일 피격으로 포탑 전체가 무력화되는 위험을 줄였다. 주포는 최대 35도까지 올려 41500m까지 사격할 수 있었고, -5도까지 내릴 수 있었다. 장전은 어떤 각도에서도 가능했지만, 강력한 추진 장약으로 인해 발사 속도는 분당 1.3발로 느린 편이었다.[1]2. 4. 부포 및 대공포
리슐리외급은 부포로 됭케르크급 전함에서 사용된 양용포를 폐지하고, 대신 라 가리소니엘급 경순양함에 채택된 "1935년형 15.2cm(55구경)포"를 3연장 포탑에 탑재하여 함미에 삼각형 모양으로 배치했다.[1] 이 포는 54~58.8kg의 포탄을 최대 45도 각도로 26,960m까지 발사할 수 있었으며, +75도에서 -8.5도까지, 장전 각도는 -5도에서 +15도 사이에서 조절 가능했다.[1] 포탑의 선회 각도는 중앙 포탑이 좌우 175도, 현측 포탑이 좌우 150도였으며, 발사 속도는 분당 5~8발이었다.[1]대공포로는 "1930년형 10cm(45구경) 고사포"를 연장 포가에 장착하여 양舷에 3기씩 총 6기 12문을 배치했다.[1] 이 포는 13.5kg의 포탄을 45도 각도로 15,900m, 14.2kg의 대공 유탄을 최대 80도 각도로 10,000m 고도까지 발사할 수 있었다.[1] 좌우 80도까지 선회 가능하고, +80도에서 -10도까지 부앙이 가능했으며, 발사 속도는 분당 10발이었다.[1]
초기 설계에는 37mm(50구경) 기관포 8문과 13.2mm(50구경) 기관총 32정을 장비할 계획이었으나,[1] 1943년 완공 시에는 보포스 40mm(56구경) 기관포 64문으로 교체되었고, 1944년에는 영국에서 40mm 단장 기관포 9문과 엘리콘 20mm(70구경) 단장 기총 41정을 추가했다.[1]
2. 5. MACK 구조
프랑스 해군은 후루(Mast)와 연돌(Stack)의 기능을 합체시킨 MACK을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MACK 구조는 단면이 상자 모양인 연돌의 중앙부터 위쪽 45도로 경사시킨 연돌 상부에 견시대 위에 설치된 후부 측거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MACK 구조는 상부 구조물의 소형화에 기여했으며, 이는 피탄 면적 감소와 중량 절감에 도움이 되었다.2. 6. 방어
4연장포탑 채용으로 절약된 중량을 방어력 강화에 투자하여, 현측 장갑은 열강 신형 전함 중에서도 두꺼운 편인 330mm 장갑을 선체 안쪽에 15도 경사로 설치했다. 방어 범위는 수선 상부 3.3m에서 수선 하부 2m까지 넓은 범위였다.수평 방어는 주갑판 장갑과 부포 탄약고 윗면이 150mm, 주포 화약고 윗면에는 170mm 장갑을 사용했고, 기관 구역 윗면에는 40mm의 파편 방어 장갑을 추가했다. 수선하 구획 안에는 액체층이나 공기층 외에 에보나이트 무스라는 탄력성 충전재를 넣어 어뢰 피격 시 충격파와 수압을 흡수하여 피해를 줄이고자 했다.
3. 무장
리슐리외급 전함의 주포는 됭케르크급 전함에도 사용된 4연장 포탑에 장착된 "1935년형 38cm(45구경)포"이다.[1] 이 포는 884kg의 포탄을 초속 785m/s로 발사하여 최대 35도 각도에서 41700m까지 도달시킬 수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추축국 해군 중에서는 야마토급 전함을 제외하면 이 포탄을 막아낼 수 있는 전함이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1] 주포신의 각도 조절 및 포탑 회전, 포탄 장전 등은 주로 전력을 사용했고, 보조적으로 인력을 활용했다. 어느 각도에서든 장전이 가능한 자유각 장전 방식을 채택했으며, 발사 속도는 분당 2.2발이었다.[1]
부포는 경순양함 에밀 베르탱 (라 갈리소니에르급 경순양함)의 주포로도 채택된 "1935년형 15.2cm(55구경)포"이다. 3연장 포탑에 수납되었으며, 54~58.8kg의 포탄을 최대 45도 각도에서 26,960m까지 발사할 수 있었다. 포탑의 최대 앙각은 75도, 최대 부각은 8.5도였고, 장전 각도는 -5도에서 +15도 사이였다. 주포신의 각도, 포탑 회전, 포탄 적재 및 장전은 주로 전력으로, 보조적으로 인력을 사용했다. 발사 속도는 분당 5~8발이었다. 초기 설계에서는 함교 양현에 부포탑 2기를 배치할 예정이었으나, 대공 화력 강화를 위해 1930년형 10cm(50구경) 고각포로 대체되었다.
대공포는 초기에 1930년형 10cm(45구경) 고사포를 연장 포가로 6기 장착했다. 이 포는 13.5kg 포탄을 최대 15,900m, 14.2kg 대공유탄을 최대 고도 10,000m까지 발사할 수 있었다. 포의 회전 및 상하각 조절은 전력과 인력으로 가능했고, 발사 속도는 분당 10발이었다. 근접 대공 방어를 위해 1925년형 호치키스 37mm(50구경) 기관포 4기(8문)와 1929년형 13.2mm(50구경) 기관총 16기(32정)를 장비했다. 1943년 미국에서 개장 공사를 받으면서 대공 무장이 크게 강화되었다. 기존 대공포 대신 보포스 40mm(56구경) 기관포 16기(64문)가 4연장 포가로 설치되었고, 1944년에는 에리콘 20mm(70구경) 기관포 41정이 추가되었다.
3. 1. 주포
리슐리외급 전함의 주포는 새로 설계된 "1935년형 38cm(45구경)포"이다. 이 포는 됭케르크급 전함에도 사용된 4연장 포탑에 장착되었다. 884kg의 포탄을 초속 785m/s로 발사하여 최대 앙각 35도에서 41700m까지 도달시킬 수 있었다.[1]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추축국 해군 중에서는 야마토급 전함을 제외하면 이 포탄을 막아낼 수 있는 전함이 없을 정도로 강력한 화력이었다.[1]주포신의 앙각 및 부각, 포탑 선회, 포탄 장전 등은 주로 전력을 사용했고, 보조적으로 인력을 활용했다. 어느 각도에서든 장전이 가능한 자유각 장전 방식을 채택했으며, 발사 속도는 분당 2.2발이었다.[1]
3. 1. 1. 주포탑
리슐리외급 전함의 주포는 4연장 포탑에 8문의 380mm/45 Mle 1935 주포를 탑재했다.[1] 이 포탑은 선수에 2기가 집중 배치되었다.[1] 포탑은 내부가 격벽으로 분리된 두 개의 포실로 나뉘어 있어, 한쪽 포탑이 피격되더라도 다른 쪽 포탑은 정상 작동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1] 포탑의 설계는 생 샴몽사가 담당했으며, 이 회사가 개발한 ''덩케르크'' 포탑을 사용했다.[1]포탑은 최대 35도까지 앙각(위로 올림)이 가능하여 최대 41500m의 사거리를 가졌고, -5도까지 하강(아래로 내림)할 수 있었다.[1] 장전은 어떤 각도에서도 가능했지만, 강력한 추진제 장약 때문에 발사 속도는 분당 1.3발로 비교적 느렸다.[1]
3. 2. 부포
부포는 경순양함 에밀 베르탱 (라 갈리소니에르급 경순양함)의 주포로도 채택된 "1935년형 15.2cm(55구경)포"이다. 이 포는 3연장 포탑에 수납되었으며, 무게 54~58.8kg의 포탄을 최대 앙각 45도에서 26,960m까지 발사할 수 있었다. 앙각은 75도, 부각은 8.5도까지 가능하며, 장전 각도는 부각 5도에서 앙각 15도 사이였다. 선회 각도는 선체 수미선 방향을 0도로 할 때 중앙부 포탑이 좌우 175도, 현측 포탑은 좌우 150도였다. 주포신의 앙각, 포탑 선회, 포탄 양탄 및 장전은 주로 전력으로, 보조적으로 인력을 사용했다. 발사 속도는 분당 5~8발이었다.
초기 설계에서는 함교 양현에 부포탑 2기를 배치할 예정이었으나, 대공 화력 강화를 위해 1930년형 10cm(50구경) 고각포로 대체되었다.
3. 3. 대공포
리슐리외급 전함은 초기에 1930년형 10cm(45구경) 고사포를 연장 포가로 6기 장착했다. 이 포는 13.5kg 포탄을 최대 15,900m, 14.2kg 대공유탄을 최대 고도 10,000m까지 발사할 수 있었다. 포의 선회 및 부앙(상하각 조절)은 전력과 인력으로 가능했고, 발사 속도는 분당 10발이었다.또한, 근접 대공 방어를 위해 1925년형 호치키스 37mm(50구경) 기관포 4기(8문)와 1929년형 13.2mm(50구경) 기관총 16기(32정)를 장비했다.
1943년 미국에서 개장 공사를 받으면서 대공 무장이 크게 강화되었다. 기존 대공포 대신 보포스 40mm(56구경) 기관포 16기(64문)가 4연장 포가로 설치되었고, 1944년에는 에리콘 20mm(70구경) 기관포 41정이 추가되었다.
4. 기관
기관 배치는 프랑스 근대 전함 전통의 시프트 배치를 따랐다.[1] 인돌-슬라식 중유 전소식 수관 보일러 6기와 파슨스식 기어드 터빈 4기 4축을 조합하여 최대 출력 150,000hp, 계획 속력 30노트로 설계되었다. 10노트 속력으로 10,000해리, 20노트 속력으로 7,750해리를 항해할 수 있었다.[1]
5. 운용
1935년 건조가 시작된 리슐리외는 1940년 프랑스 공방전에서 독일이 승리하기 직전에 완공되었으나, 대부분의 대공포를 장착하지 못한 상태였다.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의 다카르로 이동한 리슐리외는 비시 프랑스 해군 소속으로 영국 해군과 교전(다카르 해전)했고, 이후 자유 프랑스 해군에 편입되어 미국에서 개장을 받고 영국 본토 함대와 극동 함대에서 활동했다.[1]
1936년 건조가 시작된 장 바르는 1940년 프랑스 항복 당시 주포탑 1기만 완성된 상태로 카사블랑카로 피신했다. 토치 작전 중 미국 해군 매사추세츠와 교전하여 피해를 입고 좌초되었으나, 종전 후 프랑스로 귀환하여 완공되었다.
1938년 계획된 3번함 클레망소는 1939년 기공했지만 1940년 브레스트 항에서 독일군에 나포되어 1944년 연합군에 격침되었다. 4번함 가스코뉴는 설계되었으나 기공되지 못했다.
함선 | 건조 | 기공 | 진수 | 취역 및 운명 |
---|---|---|---|---|
리슐리외 | 브레스트 해군 군수창 | 1935년 10월 22일 | 1939년 1월 17일 | 1940년 7월 15일 (비시 프랑스) 1943년 10월 10일 (자유 프랑스군) |
장 바르 | 샹티에 드 팡에트, 생나제르 | 1936년 12월 12일 | 1940년 3월 6일 | 1955년 5월 1일 |
클레망소 | 브레스트 해군 군수창 | 1939년 1월 17일 | — | 건조 중 독일군에 나포, 1944년 격침 |
가스코뉴 | 샹티에 드 팡에트, 생나제르 | — | — | 미기공 |
5. 1. 제2차 세계 대전
1935년 건조가 시작된 리슐리외는 1940년 프랑스 공방전에서 독일이 승리하기 직전에 완공되었으나, 대부분의 대공포를 장착하지 못한 상태였다. 프랑스의 통제를 유지하기 위해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의 다카르로 이동한 리슐리외는 비시 프랑스 해군 소속으로 영국 해군과 교전(다카르 해전)했고, 이후 자유 프랑스 해군에 편입되어 미국에서 개장을 받고 영국 본토 함대와 극동 함대에서 활동했다.[1]1936년 건조가 시작된 장 바르는 1940년 프랑스 항복 당시 주포탑 1기만 완성된 상태로 카사블랑카로 피신했다. 토치 작전 중 미국 해군 매사추세츠와 교전하여 피해를 입고 좌초되었으나, 종전 후 프랑스로 귀환하여 완공되었다.
1938년 계획함인 3번함 클레망소는 1939년 기공했지만 1940년 브레스트 항에서 독일군에 나포되어 1944년 연합군에 격침되었다. 4번함 가스코뉴는 설계되었으나 기공되지 못했다.
함선 | 건조 | 기공 | 진수 | 취역 및 운명 |
---|---|---|---|---|
리슐리외 | 브레스트 해군 군수창 | 1935년 10월 22일 | 1939년 1월 17일 | 1940년 7월 15일 (비시 프랑스) 1943년 10월 10일 (자유 프랑스군) |
장 바르 | 샹티에 드 팡에트, 생나제르 | 1936년 12월 12일 | 1940년 3월 6일 | 1955년 5월 1일 |
클레망소 | 브레스트 해군 군수창 | 1939년 1월 17일 | — | 건조 중 독일군에 나포, 1944년 격침 |
가스코뉴 | 샹티에 드 팡에트, 생나제르 | — | — | 미기공 |
5. 1. 1. 다카르 해전
1940년 9월, 리슐리외는 다카르에서 영국 함대와 교전했다. 완전하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영국 함대를 격퇴했지만, 주포 고장과 소드피시 뇌격기들의 공격으로 피해를 입었다. 바르함(HMS Barham)과 리졸루션(HMS Resolution) 두 척의 영국 전함이 장거리에서 공격했지만, 리슐리외와 인근 해안 포대의 포격으로 영국군을 격퇴했고, 프랑스 잠수함 Bévéziers|베베지에프랑스어가 ''리졸루션''에 어뢰를 명중시켜 큰 피해를 입히면서 영국군은 철수했다. 리슐리외는 이 전투에서 주포 3문이 불량 포탄으로 폭발하는 피해를 입었다.
5. 1. 2. 자유 프랑스 해군
1942년 11월 연합군의 북아프리카 침공 이후 프랑스 해외 제국의 상당 부분이 이탈하면서, ''리슐리외''는 자유 프랑스의 통제를 받게 되었다.[1] ''리슐리외''는 영구적인 수리와 현대화를 위해 미국으로 보내졌으며, 56문의 40mm 보포스포와 48문의 20mm 오리콘 기관포를 포함하여 최신 미국 및 영국 표준으로 함선을 업그레이드했다. 그러나 미 해군은 프랑스와 최첨단 레이더를 공유하는 것을 거부했다.[1] 점검 및 현대화를 완료한 후, 1944년 초에 영국 본국 함대에서 복무했다. 그곳에서 ''리슐리외''는 소련으로 향하는 호송선단을 위협하는 독일 전함 티르피츠에 대항하는 부대의 일부로 복무했다. 독일 함대가 항구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 ''리슐리외''는 아무런 작전도 수행하지 않았으며,[1] 이는 연료 부족으로 인한 것이었다.[1]
1944년 4월, ''리슐리외''는 인도양에서 일본에 대한 작전을 위해 동부 함대를 강화하기 위해 이동했다. 여기에는 점령된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일본 시설을 공격하는 영국 및 미국 항공모함을 호위하는 것과 주포에서 과도한 포탄 분산 문제를 드러낸 여러 포격 작전이 포함되었다. 이 기간 동안 ''리슐리외''는 콕핏 작전, 트랜섬 작전, 페달 작전, 크림슨 작전에 참여했다.[1] 1944년 말에 ''리슐리외''는 보다 진보된 레이더 세트 설치를 포함한 정비를 위해 프랑스로 돌아갔다. 1945년 1월에 인도양으로 돌아와 선피시 작전, 비숍 작전, 듀크덤 작전을 포함한 해당 지역에서의 추가 작전을 수행했으며, 후자는 5월에 일본 중순양함과 구축함을 매복하여 파괴하려는 시도로 말라카 해협 해전으로 이어졌다. ''리슐리외''는 다른 함선에 의해 격침되기 전에 일본 함선과 교전하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1] 이후 ''리슐리외''는 또 다른 정비를 위해 남아프리카로 갔고, 1945년 8월 중순에 이 작업이 완료되었을 때 일본이 항복하여 전쟁이 끝났다.[1]
5. 2. 전후
1940년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할 당시, 2번함 장 바르는 미완성 상태로 카사블랑카로 피신했다.[1] 횃불 작전 중 미국 해군과 교전했으나, 큰 피해를 입고 좌초되었다.[1] 종전 후 프랑스로 돌아와 1955년에 완공되었으며, 수에즈 위기에 참여하기도 했다.[1] 1970년에 퇴역하여 고철로 판매되었다.[1]카사블랑카에 있는 동안, 프랑스는 제한된 기반 시설과 부품 부족에도 불구하고 장 바르를 전투 준비 상태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1] 임시 사격 통제 장치가 설치되었고, 해안 관측 지점을 이용해 주포 표적을 삼각 측량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었다.[1] 대공 무장도 강화되었고, 1942년에는 레이더가 장착되었다.[1]
1942년 11월, 횃불 작전이 개시되자 장 바르는 미 전함 매사추세츠 및 중순양함과 포격전을 벌였다.[1] ''매사추세츠''의 406mm 포탄에 여러 차례 피격되었으나, 주포는 계속 작동했다.[1] 다음날, 미국 급강하 폭격기의 공습으로 두 발의 폭탄을 맞고 심하게 파손되어 얕은 항구에 선미로 침몰했지만, 함포는 계속 사용할 수 있었다.[1]
연합국 측으로 전향한 후, 프랑스는 미국에서 장 바르를 완성시키려 했으나, 미 해군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1] 결국 장 바르는 카사블랑카에서 수리되었고, 1943년 9월까지 선체 손상이 복구되어 지중해에서 훈련함으로 사용되었다.[1]
1945년, 장 바르를 항공모함으로 개조하거나 전함으로 완성하는 방안이 논의되었고, 결국 전함으로 완성하는 결정이 내려졌다.[1] 1955년에 정식으로 현역에 투입되었고, 1956년 수에즈 위기에서 프랑스의 개입에 참여하여 포트사이드에 4발의 포격을 가했다.[1] 1957년 예비역으로 감축되어 1961년까지 병영선으로 사용되었고, 1970년 프랑스 해군 목록에서 삭제되어 고철로 판매되었다.[1]
6. 동형함
함명 | 기공 | 진수 | 취역 | 비고 |
---|---|---|---|---|
리슐리외 | ||||
장 바르 | ||||
클레망소 | ||||
가스코뉴 | 개량형 리슐리외급, 미기공 |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