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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엘 라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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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누엘 라쿤자는 1731년 칠레 산티아고에서 태어난 예수회 사제로, 종말론과 성경 예언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을 제시했다. 그는 스페인에서 예수회 추방령으로 인해 이탈리아로 망명하여 저술 활동을 시작했으며, 주요 저서인 《영광과 위엄으로 오시는 메시아》를 통해 자신의 사상을 널리 알렸다. 라쿤자는 '시대의 종말'과 '세상의 종말'을 구분하고, 적그리스도를 가톨릭 교회 내의 배교 세력으로 해석하는 등 당시의 주류적 견해와는 다른 독창적인 종말론을 펼쳤다. 그의 사상은 에드워드 어빙과 존 넬슨 다비 등에게 영향을 미쳐 미래주의 종말론 발전에 기여했으며, 개신교 종말론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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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엘 라쿤자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19세기 예술가 알렉산더가 그린 라쿤자
19세기 예술가 알렉산더가 그린 라쿤자의 모습
이름마누엘 라쿤자
직업사제
종교예수회 사제
알려진 이유성경 예언 해석가
출생과 사망
출생일1731년 7월 19일
출생지칠레 산티아고
사망일1801년 6월 18일경
사망지이몰라, 치살피나 공화국

2. 생애

마누엘 라쿤자는 1731년 칠레 산티아고에서 카를로스 데 라쿤자 지아우리스와 호세파 디아스 두란의 아들로 태어났다.[1] 그의 아버지는 리마와 칠레 사이의 식민지 무역에 종사했던 부유한 상인이었다.[1] 1747년, 라쿤자는 예수회에 입회하여 1766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는 칠레 수도에 있는 :es:Universidad Pontificia Colegio Máximo de San Miguel에서 문법 교사로 봉사하며 설교가로 명성을 얻었다.

이후 라쿤자는 신학과 성경 연구에 몰두하여 천년설적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초기 아이디어는 "익명의 천년기"라는 소책자로 출판되어 부에노스 아이레스 등지에서 논쟁을 일으켰고, 종교 재판에 의해 금지되기도 했다.

1790년, 라쿤자는 주요 저서인 "영광과 위엄 속의 메시아의 강림"(La venida del Mesías en gloria y majestad) 3권을 완성했다. 그는 스페인 궁정의 승인을 얻고자 노력했으나 실패했고, 책은 필사본 형태로 유포되었다.[2]

2. 1. 예수회 추방과 망명

1767년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3세는 스페인과 남아메리카를 포함한 그 소유지에서 예수회를 추방했다.[1] 이 사건은 라쿤자의 삶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처음에는 스페인 카디스로, 그 다음에는 이탈리아 중부 볼로냐 근처의 이몰라로 망명하여 다른 칠레 예수회원들과 함께 피난처를 찾았다. 카를로스 3세는 예수회원이 자기 변호나 이 조치에 대한 비판을 쓰면 연간 100 피아스터의 보조금을 철회하겠다고 위협했다.[1]

라쿤자의 망명 생활은 다음 교황인 클레멘스 14세가 예수회가 미사나 기타 성사를 집전하는 것을 금지하는 칙서 Dominus ac Redemptor를 발행하면서 더욱 어려워졌다.[1] 게다가 칠레에 있는 그의 가족은 어려움을 겪었고 라쿤자가 의존했던 송금은 점점 더 줄어들었다.

이 기간 동안 라쿤자는 교회 교부들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를 시작했고, 그 다음에는 성경 예언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1779년 이후에는 연구를 성경에만 제한했다.[2]

다른 망명 예수회원들과 5년 동안 공동 생활을 한 후, 라쿤자는 이몰라 외곽의 한 집으로 은퇴하여 혼자 살았다. 이 기간 동안 그의 예수회 동료 중 일부는 그를 "세상에서 은퇴하고, 검소한 생활 방식, 인간의 삶에 필요한 편안함조차도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끊임없는 연구에 전념함으로써 모든 사람의 존경과 감탄을 받았다"고 묘사했다.[3]

1773년 라쿤자는 교황이 교황령과 소위 "성 베드로의 유산"을 위협하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영토 양보를 대가로 예수회 조직을 해산하는 교황 칙서 "Dominus ac Redemptor"에 의해 또 다른 타격을 입었다. 따라서 칙령에 의해 라쿤자는 세속 신분으로 강등되었다.[1]

2. 2. 사망

라쿤자는 1801년 이몰라 근처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13] 그의 죽음에 대한 정확한 날짜와 원인은 불확실하며, 당시에는 70대 사제가 고독한 산책 중 자연사한 것으로 추정되었다.[13]

3. 주요 사상

라쿤자는 그의 저서에서 종말론과 성경 예언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을 제시했다. 그는 세상의 종말에 지구가 불에 타 소멸될 것이라는 일반적인 가르침에 반대하며, 가톨릭 성경에 있는 외경(Apocryphal)의 구절을 인용하여 세상은 멸망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라쿤자는 성경의 "시대의 종말"과 "세상의 종말"이 서로 다른 두 시점을 의미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시대의 종말"을 그리스도의 오심과 지상 왕국 시작으로 끝맺음될 인간 역사의 한 국면의 종말로 이해했다.

라쿤자에 따르면, "주의 날" 전에 가톨릭 교회 내에 배교가 있을 것이며, 이는 교회를 그가 적그리스도로 명명한 일반적인 체계의 일부로 만들 것이라고 믿었다. 이는 교회들 사이의 교리적 "타락"이 발생하여 도덕적 배교로 이어질 것이라는 의미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적그리스도는 "같은 정신으로 생동하는 많은 개인들로 구성된 도덕적인 반기독교적 몸"으로 구성될 것이라고 하였다.

라쿤자는 적그리스도가 유대인이 될 것이라는 당시의 일반적인 견해를 소개했다. 이 견해는 16세기 후반 예수회 회원인 프란시스코 리베라에 의해 처음 형성되었지만, 개신교인들은 이를 완전히 거부했다.

3. 1. 시대의 종말과 세상의 종말

라쿤자는 "시대의 종말"과 "세상의 종말"이라는 두 가지 개념을 구분했다.[6] 그는 "시대의 종말"을 인간 역사의 한 국면이 끝나는 시점으로 보았는데, 이때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지상에서 왕국을 시작한다고 믿었다. 이 시기에 살아있는 사람들은 심판을 받고, 유대인들은 개종하며, 정의와 평화가 천 년 동안 지속되는 새로운 사회가 세워질 것이라고 주장했다.[6]

라쿤자는 "시대의 종말"을 "주의 날"이라고도 칭하며, 이는 주님이 이 시대를 완성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 날 직후에 주님의 날, 즉 미래의 시대가 온다고 보았다. 이 시대는 하나님의 왕국, 의와 평화, 사랑이 가득하며, 온 세상의 모든 민족, 부족, 가족들이 동일한 믿음, 예배, 법률과 관습을 공유하고 언어의 통일성을 이루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6] 그는 자신의 저서 ''위엄과 영광 속에 오시는 메시아''(The Coming of the Messiah in Glory and Majesty영어)에서 "시대의 종말 이후"에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에게로 개종할 것이라고 말했다.[6]

반면 "세상의 종말"은 죽은 자들의 부활과 최후의 심판으로 특징지어진다고 보았다. 이 사건은 그리스도의 평화로운 지상 왕국이 천 년 동안 이어진 후에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이때 용이 풀려나 민족들을 다시 미혹하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를 "불못"에 던져 소멸시킬 것이라고 말했다(계 20:9,10).[6] 그 후, 요한계시록 22장 11절에 묘사된 대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두 번째 죽음"이라 불리는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지며, 이때 하늘과 땅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심판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6]

라쿤자는 요한계시록 20장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부활한 성도들이 예루살렘에서 온 세상을 천 년 동안 통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천 년(또는 원한다면 백만 년) 동안 의로움과 선함이 지속된 후에 세상이 다시 타락하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6]

3. 2. 적그리스도에 대한 해석

라쿤자는 적그리스도를 특정 개인이 아니라, 가톨릭 교회 내의 배교 세력으로 보았다. 그는 "주의 날" 전에 가톨릭 교회 안에 배교가 발생하여, 교회가 적그리스도로 불리는 체계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7] 이는 교회들 간의 교리적 "타락"으로 인해 도덕적 배교가 일어날 것이라는 의미였다. 라쿤자는 적그리스도를 "같은 정신으로 움직이는 많은 개인들로 구성된 도덕적인 반(反)기독교적 몸"[7]이라고 설명하며, 이들은 "일곱 개의 거짓 종교가 그리스도의 몸과 그리스도 자신을 대적하여 전쟁을 벌이기 위해 연합"[7]할 것이라고 보았다.

라쿤자는 자신의 저서 《영광과 위엄으로 오시는 메시아》에서 당시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견해와 자신의 견해를 비교했다. 당시 보편적인 견해는 적그리스도를 강력한 왕이나 군주로 보았으며, 유대인, 특히 단 지파에서 기원할 것이라고 여겼다. 또한 적그리스도가 스스로 메시아인 척하며,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온 세상을 지배하며, 심지어 스스로 신이라고 주장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견해는 16세기 후반 예수회 회원인 프란시스코 리베라에 의해 처음 형성되었는데, 라쿤자는 자신의 견해와 리베라의 견해를 모두 제시하여, 개신교에 예수회원들의 적그리스도에 대한 두 가지 견해를 효과적으로 알렸다.[8]

3. 3. 천년왕국설

라쿤자는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 후 이 땅에서 천 년 동안 정의와 평화가 가득한 왕국이 세워질 것이라고 믿었다.[6]

라쿤자는 성경에 나오는 "시대의 종말"과 "세상의 종말"이라는 표현이 서로 다른 두 시기를 가리킨다고 생각했다. 그는 "시대의 종말" 또는 "주의 날"을 인간 역사의 한 부분이 끝나고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왕국을 세우는 시기로 이해했다. 이 시기에 살아있는 사람들은 심판을 받고 유대인들은 기독교로 개종하며, 그 후 정의와 평화가 천 년 동안 지속되는 새로운 사회가 건설될 것이라고 보았다.[6]

라쿤자는 성경에서 거의 모든 곳에서 이 위대한 사건(시대의 종말)과 함께 현재 지구의 종말, 즉 인간의 날의 종말을 언급하고 있으며, 님께서는 이 시대를 완성이라고 부르신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날 직후에 주님의 날, 즉 미래의 시대, 하나님의 왕국, 의와 평화, 사랑, 동일한 믿음, 동일한 예배, 동일한 법률과 관습, 온 세상의 모든 민족, 부족, 가족 간의 언어 통일성이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발견할 것이라고 하였다.

"세상의 종말"은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고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지는 때를 의미하지만, 이 사건은 그리스도의 평화로운 지상 왕국이 천 년 동안 이어진 후에 일어날 것이라고 라쿤자는 주장했다. 이때 사탄이 풀려나 사람들을 다시 속이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사탄과 그를 따르는 자들을 멸망시킨다(요한계시록 20:9,10). 그 후, 요한계시록 22장 11절에 묘사된 대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두 번째 죽음"이라고 불리는 "최후의 심판, 궁극적인 선고"가 내려진다.

라쿤자는 요한계시록 20장을 글자 그대로 해석해야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부활한 모든 성도들이 실제로 예루살렘에서 온 세상을 천 년 동안 다스려야 한다고 말했다.

4. 《영광과 위엄으로 오시는 메시아》

《영광과 위엄으로 오시는 메시아》는 마누엘 라쿤자의 주저로, 그의 종말론과 성경 예언 해석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출판과 동시에 논란의 중심에 섰으며,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4. 1. 출판과 금서 처분

종교 재판소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La venida del Mesías en gloria y majestad"는 1810년 또는 1811년 카디스에서 유대교식 필명인 랍비 후안 호사팟 벤-에즈라(Rabbi Juan Josaphat ben-Ezra)로 비밀리에 인쇄되었다.[4] 1812년 스페인에서 두 번째 판이 인쇄되었으며, 마누엘 벨그라노 장군의 자금 지원을 받아 1816년 런던에서 스페인어 세 번째 판이 출판되었다.[4] 같은 해 이 책은 스페인 법원에 고발되었고, 1819년 1월 15일 스페인 종교 재판소는 이 책의 유통 금지를 명령했다. 1821/1822년 멕시코, 1825년 파리, 1826년 런던에서 추가 판이 인쇄되었다.

1824년 9월 교황 레오 12세는 이 책을 금서 목록에 올렸다. 이 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라쿤자의 사상이 보수적이고 활동적인 성직자들 사이에서 미치는 영향에 특히 우려를 표명했다. 1824년 마드리드에서 출판된 라쿤자의 책을 비난하는 소책자에는 "이 작품이 야기할 수 있는 유혹으로부터 대중을 보호하기 위한 관찰"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4. 2. 다양한 언어로의 번역

La venida del Mesías en gloria y majestades (영광과 위엄으로 오시는 메시아)는 1810년 또는 1811년 카디스에서 랍비 후안 호사팟 벤-에즈라(Rabbi Juan Josaphat ben-Ezra)라는 유대교식 필명으로 비밀리에 처음 인쇄되었다.[4] 1812년 스페인에서 두 번째 판이 인쇄되었고, 마누엘 벨그라노 장군의 자금 지원을 받아 1816년 런던에서 스페인어 세 번째 판이 출판되었다.[4] 이후 1821/1822년 멕시코, 1825년 파리, 1826년 런던에서 추가 판이 인쇄되었다.

장로교에서 제명된 후 가톨릭 사도 교회를 설립한 에드워드 어빙 목사는 런던에서 출판된 라쿤자의 작품을 접하게 되었다. 그는 스페인어를 배워 1826년 여름을 이 작품을 영어로 번역하는 데 보냈다. 1827년 그의 2권짜리 번역본은 "Majesty and Glory로 오시는 메시아"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5]

5. 영향과 평가

라쿤자의 사상은 그의 생전에는 가톨릭 교회로부터 이단으로 간주되었으나, 사후 개신교, 특히 미래주의 종말론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1767년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3세에 의해 예수회가 추방되면서 이탈리아 이몰라로 망명해야 했다.[1] 1773년 교황 클레멘스 14세가 교황 칙서 Dominus ac Redemptor를 통해 예수회를 해산시키면서, 라쿤자는 세속 신분으로 강등되었다.[3] 이러한 사건들은 그가 종말론적 관점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5. 1. 개신교 종말론에 미친 영향

라쿤자의 저작은 런던에서 출판된 후, 장로교에서 제명되고 가톨릭 사도 교회를 설립한 에드워드 어빙 목사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어빙은 라쿤자의 작품에 깊이 감명을 받아 1826년 여름을 이 작품을 영어로 번역하는 데 보냈다. 1827년 그의 2권짜리 번역본은 "Majesty and Glory로 오시는 메시아"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5]

어빙의 번역은 개신교 종말론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당시 개신교도들 사이에서는 역사주의적 해석이 주류였다. 마르틴 루터, 존 녹스, 로저 윌리엄스, 찰스 웨슬리, 아이작 뉴턴 등 종교개혁 시기부터 17세기까지 역사주의는 널리 받아들여졌다.[9] 역사주의자들은 예언적 계시가 주로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며, 다니엘서는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까지, 요한계시록은 서기 1세기부터 그리스도의 재림까지의 교회 역사를 개략적으로 보여준다고 믿었다.[9]

반면, 라쿤자의 미래주의적 해석은 요한계시록에 묘사된 대부분의 사건이 불확실한 미래에 일어날 것이라고 가르쳤다. 특히,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미래의 사건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역사주의와 큰 차이를 보였다.[9] 역사주의자들은 적그리스도를 교황청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했다. 마르틴 루터는 데살로니가후서 2장 3-4절을 인용하며 교황을 "죄의 사람", "멸망의 아들"로 묘사했다.[12]

라쿤자의 사상은 반종교개혁 과정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가 적그리스도라는 비판을 벗어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예수회 신부들은 라쿤자의 미래주의적 해석을 통해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미래로 미루고, 종교개혁의 역사적 의미를 약화시키려 했다.[14]

라쿤자의 시스템은 어빙을 거쳐 존 넬슨 다비에게 전해져 미래주의세대주의의 기초를 형성했다. 다비는 라쿤자의 사상을 발전시켜 문자적 해석을 강조하는 신학 체계를 구축했다.[23] 다비는 파워스코트 컨퍼런스에서 어빙을 처음 만났는데, 이 컨퍼런스는 어빙의 영향을 받은 레이디 파워스코트가 후원한 모임이었다.[24]

세대주의는 20세기 초 C.I. 스코필드의 ''스코필드 성경''을 통해 개신교 교회에 널리 퍼졌다. 스코필드 성경은 전천년설과 미래주의적 해석을 담은 주석을 삽입하여 근본주의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27]

라쿤자, 어빙, 다비, 스코필드로 이어지는 미래주의적 해석은 종교개혁 시기부터 개신교교황에게 적용했던 적그리스도에 대한 비판을 약화시키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5. 2. 가톨릭 교회와의 관계

마누엘 라쿤자는 1747년 예수회에 입회하여 1766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1] 그러나 1767년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3세가 예수회를 추방하면서, 라쿤자는 이탈리아 이몰라로 망명해야 했다.[1]

1773년 교황 클레멘스 14세는 교황 칙서 Dominus ac Redemptor를 발표하여 예수회를 해산시켰다.[3] 이로 인해 라쿤자는 세속 신분으로 강등되었다.[3]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라쿤자가 종말론적 관점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익명의 천년기"라는 소책자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প্রকাশ했는데, 이는 남아메리카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종교 재판에 의해 금지되었다.[2]

라쿤자는 자신의 주 저서인 "영광과 위엄 속의 메시아의 강림"을 통해 가톨릭 교회의 주류적 견해와 다른 자신만의 신학적 입장을 확립했다.

6. 비판과 논쟁

라쿤자의 종말론 해석은 다양한 비판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참조

[1] 문서 Lacunza: el Milenarista 2009-07-28
[2] 간행물 Lacunza, Manuel de 1976
[3] 문서
[4] 웹사이트 Biographical note https://manus.iccu.s[...] 2017-12-18
[5] 문서 Edward Irving, an Ecclesiastical and Literary Biography William Freeman, London 1854
[6] 웹사이트 The Coming of Messiah in Glory and Majesty by Manuel Lacunza http://www.birthpang[...] 2017-12-18
[7] 서적 End-Timers: Three Thousand Years of Waiting for Judgment Day https://books.google[...] ABC-CLIO 2011-08-31
[8] 서적 Prophetic Faith of our Fathers Vol 3 https://books.google[...] Review and Herald Pub Assoc
[9] 서적 God Is Calling! https://books.google[...] Page Publishing Inc 2015-05-07
[10] 기타
[11] 서적 Daniel Pure and Simple https://books.google[...] BookBaby 2013-11-07
[12] 서적 Samtliche Werke
[13] 서적 Solving the Mystery of Babylon the Great https://books.google[...] Great Mountain Publishing 2011-03-11
[14] 서적 Death of the Church Victorious https://books.google[...] Sovereign Grace Publishers 2002-09
[15] 서적 Solving the Mystery of Babylon the Great https://books.google[...] 2011-03-11
[16] 문서 Observations on Daniel
[17] 서적 Against heresies
[18] 서적 Ante-Nicene Christian Library https://archive.org/[...] T&T Clark 1869
[19] 서적 Ante-Nicene Christian Library https://archive.org/[...] T&T Clark 1869
[20] 서적 Death of the Church Victorious https://books.google[...] Sovereign Grace Publishers 2002-09
[21] 서적 Prophetic Faith of our Fathers, Vol. III Review and Herald
[22] 서적 The Prophetic Faith of our Fathers, Vol. III Review and Herald
[23] 서적 Death of the Church Victorious https://books.google[...] Sovereign Grace Publishers 2002-06
[24] 서적 Death of the Church Victorious https://books.google[...] Sovereign Grace Publishers 2002-06
[25] 서적 Death of the Church Victorious https://books.google[...] Sovereign Grace Publishers 2002-06
[26] 서적 Death of the Church Victorious https://books.google[...] Sovereign Grace Publishers 2002-06
[27] 문서 College Press Pub 2001
[28] 문서 The Final Prophecy of Jesus' Wipf and Stock Publishers' 2007-06
[29] 서적 Death of the Church Victorious https://books.google[...] Sovereign Grace Publishers 2002-06
[30] 문서 "Cartas del Padre Manuel Lacunza" 1914
[31] 문서 "Cartas del Padre Manuel Lacunza" 1914
[32] 문서 The Great Tribulation – Past or Future? Kregel Academic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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