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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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아즈마는 "오염"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용어로, 부패한 물질에서 나오는 유독한 증기 또는 안개로 질병을 유발한다고 여겨졌던 이론이다.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는 환경이 질병에 미치는 영향을 기록했고, 로마의 비트루비우스는 늪지대에서 발생하는 미아즈마의 위험성을 언급했다. 중세 시대에는 늪지대와 빈민가에서 발생하는 미아즈마가 질병을 퍼뜨린다고 믿었으며, 19세기에는 공중 보건 개혁과 위생 개선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세균과 바이러스의 발견으로 미아즈마 이론은 부정되었고, 현재는 동종요법에서 모든 질병의 원인으로 여겨지는 마이아즘이라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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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즈마 | |
---|---|
질병 이론 | |
다른 이름 | 악취 이론 전염 이론 (역사적 의미) |
역사적 맥락 | |
설명 | 질병이 썩어가는 유기물에서 나오는 "나쁜 공기"인 미아즈마에 의해 발생한다고 믿는 이론임. |
기원 | 고대 |
주요 옹호자 | 히포크라테스 갈레노스 장바티스트 반 헬몬트 테오필루스 보네 조르조 바글리비 존 프링글 요한 야콥 비프퍼 프란체스코 토르티 존 스노 (초기)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
몰락 | 세균 이론의 발전으로 대체됨. |
관련 개념 | |
관련 질병 | 콜레라 흑사병 말라리아 |
관련 용어 | 장기 |
2. 어원
‘미아즈마’(μίασμα|미아스마grc)라는 말의 어원은 “오염”이라는 의미의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하였다. 중세 이탈리아어로 “나쁜 공기”라는 의미를 가진 말라리아와도 어원의 유사성이 있다.[7]
물질이 부패하며 발생하는 미아즈마로 인해 전염병이 돈다는 주장은[46] 주로 전염병과 관련하여 사용된 학설이다. 19세기 초반 일부 학자들은 이 학설을 이용하여 음식 냄새만 맡고도 살이 찔 수 있다는 등의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47]
3. 역사
물질 부패로 악취가 나는 곳은 병원균이 번식하고 전염병이 창궐하기 때문에 당시에는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세균의 존재를 몰랐던 당시에 질병 원인을 병원균이 아닌 악취로 규정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잘못된 이론이었다. 1880년 이후 미아즈마 학설은 미생물 이론으로 대체되며 학계에서 완전히 폐기되었다. 하지만 질병을 막기 위해 악취를 제거해야 한다는 인식은 도시 환경미화에 노력을 기울이는 등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17세기 영국의 토머스 시드넘은 미아즈마가 일으키는 질병으로 천연두, 이질, 패혈증, 페스트 등을 꼽았다. 그는 미아즈마가 지구 내부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19세기 미국의 존 고리는 공기 중 미아즈마 제거를 위해 빙랭식 에어컨을 발명, 병원에 도입했다. '나쁜 물'이나 '나쁜 공기'가 질병 원인이라는 생각은 원인과 결과만 보면 크게 틀리지 않아 공중 보건에서 성과를 거두었다.
고대 로마의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는 미아즈마가 기체가 아닌 미소 동물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면 진실을 말한 셈이다. 그러나 이 생각은 미아즈마 학설의 주류가 되지 못했다. 16세기 이탈리아의 지롤라모 프라카스토로는 질병 전염 원인이 미소 생물인 'contagium vivim(생체 접촉체)'과의 접촉(콘타기온)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contagium vivim' 정체가 미지수라는 점을 제외하면 현재 병원체 이해와 다르지 않았다. 1674년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이 미생물을 발견하자, 미생물이 'contagium vivim'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루이 파스퇴르는 세균에 의한 발효, 부패 연구 결과, 'contagium vivim' 정체는 세균이라는 설을 주장했다.
1876년 로베르트 코흐가 탄저병 병원체로 추정된 탄저균이 실제 병원체임을 실험으로 증명했다. 이후 감염증 병원체가 발견되면서 미아즈마는 부정되었다.
미아즈마 학설은 세균, 바이러스 발견으로 부정되고 학계에서 폐기되었지만, 비위생적 환경과 질병 상관관계를 알려 공중보건 개혁, 청결 중시 문화, 영국 1840년대, 1850년대 공중보건법(Public Health Acts) 입법에 기여했다.[57] 이 법규로 국가는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업계 위생, 청결을 법으로 의무화, 감사, 수사 권한을 갖게 되었다. 영국 제도 개선은 1865년 미국에 알려져 미국 제도 개선에도 영향을 주었다.[58]
19세기 위생개혁 중 영국 도시공학자 조셉 바잘젯(Joseph Bazalgette, 1819-1891) 업적이 중요하다. 런던 도시위원회 치프 엔지니어였던 바잘젯은 대악취(the Great Stink) 사건으로 악취 문제가 대두되자 종합적 하수도망 구축을 지시받고 상수, 하수를 시스템적으로 분리했다. 런던 주민들은 개선된 식수를 사용, 수인성 전염병 발병률이 줄었다. 1866년 화이트채플(Whitechapel)에서 콜레라가 발병했지만, 바잘젯 시스템 미도입 지역이라 새 시스템 효율성을 증명했다.[47]
3. 1. 고대
히포크라테스는 기원전 5세기 또는 4세기에 환경이 인간 질병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9]
기원전 1세기에 로마의 건축 작가 비트루비우스는 도시 방문 시 악취가 나는 늪지대에서 발생하는 미아즈마(nebula|네불라la)의 잠재적 영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10]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는 질병이 "나쁜 토지", "나쁜 물", "나쁜 공기" 등에 의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나쁜 공기", 즉 미아즈마는 "나쁜 물", 즉 늪이나 습지에서 발생하여, 인간이 이를 들이마시면 체액의 균형이 깨져 병에 걸린다고 보았다. 또한, 이렇게 병에 걸린 인간도 미아즈마를 발생시켜 주변 사람들을 감염시킨다고 한다.
미아즈마 설은 질병의 원인이 저주나 재앙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물리적인 외인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진보적인 관점이었다. 말라리아를 매개하는 모기는 "나쁜 물"에서 번식하므로, "나쁜 물" 근처에 있으면 말라리아에 걸리기 쉽다는 것은 사실이며, 이것으로부터 추론하고 일반화한 생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중국에서도 늦어도 당나라 시대에는 "나쁜 물"이 미아즈마(말라리아)의 원인으로 인식되었던 것으로 보인다(한유의 「好収我骨瘴江辺」 등).
3. 2. 중세 및 근대
1613년 크라쿠프에서 발간된 책은 “나쁜 공기”의 예방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사람들은 미아즈마를 독성을 머금은 수증기라고 믿었으며, 질병을 일으키는 성분이 작게 분해되어 습기 형태를 띤다고 생각했다. 당시 학계에서는 질병이 오염된 물, 악취 나는 공기, 더러운 위생 상태 등 수증기가 발생하는 환경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미아즈마의 유해 여부는 악취로 판별했으며, 사람 간 직접 전염이 아닌 미아즈마 수증기 영향권 내에서 전염된다고 믿었다.
1850년대 학계에서는 런던과 파리에서 유행하던 콜레라의 원인을 미아즈마로 꼽았다. 윌리엄 파(William Farr)는 콜레라가 공기로 전염되며 템스강 유역에 ‘미아즈마’가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템스강 유역은 생활하수가 그대로 흘러들어 악취가 심했기에 틀린 주장은 아니었다.[47] 콜레라 창궐 당시 널리 받아들여진 미아즈마 학설은 존 스노가 ‘콜레라는 물로 전염된다’고 주장하면서 빛을 잃었다. 콜레라는 물로만 전염되지 않지만, 역학조사를 통한 존 스노의 주장은 미아즈마 학설보다 근거 있었고, 일부 사실로 밝혀지며 학계에서 의심받기 시작했다. 존 스노는 ‘역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미아즈마 학설 탓에 악취 제거에만 집중하던 런던은 인분과 오물을 템즈강에 유입시키는 등 잘못된 대처로 런던 소호 지역과 콜레라 발병 지역에서 대처가 늦어졌다.
크림 전쟁의 간호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미아즈마 학설 신봉자로, 병원 내 냄새 제거와 위생 개선에 힘썼다.[48][49][50] 1860년 저서 《노동자 계층 간호 참고서》에서 환자가 실내에서도 바깥 공기처럼 신선한 공기를 마시도록 권장했다.[51] 나이팅게일의 노력은 잘못된 학설에 근거했지만, 병원 내 청결 유지, 위생 개선, 원내감염 예방에 기여했고, 현대 병원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19세기 초 유럽에서는 경고문에 ‘유해한 안개’(unhealthy fog)라 표현되며 위험하게 간주되었는데, 안개가 생기면 미아즈마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미아즈마는 안개나 연기처럼 기류로 이동, 바람으로 확산되며, 공기 자체가 감염된다고 믿었다.[52] 당시 사람들은 미아즈마가 대기 환경과 공기 성질을 변화시키는 신비로운 존재라고 생각했다.
발효병 이론에 따라 미아즈마는 토양에서 올라와 질병을 퍼트린다고 생각했다. 썩어가는 초목과 더러운 물(늪, 슾지, 도시 빈민가 등)에서 비롯된다고 믿었다. 허약하거나 병약한 사람들은 밤공기(미아즈마의 이명)를 꺼려 밖에 나가지 않고 문을 닫았다. 발효병 이론 영향으로 찬 공기가 병을 옮긴다는 속설이 있어 찬 공기를 두려워했다. 밤공기 공포는 난방, 환기 장치 발달과 말라리아 확산에 모기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알려지며 사라졌다.[53]
19세기 이전 서구권에서는 밤공기를 유해하게 보았다. 19세기 동안 의학계는 질병 확산 원인에 대해 전염론(신체 접촉으로 전염)과 미아즈마론(공기 중 미아즈마로 전염)으로 나뉘었다. 토머스 사우스우드 스미스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대표적 미아즈마론자였다. 전염론과 미아즈마론 모두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세균 이론에 따르면 질병에 따라 직접 접촉, 공기 전염 모두 가능하다.[54]
위생공학자들은 미아즈마 학설을 설득력 있게 보았다. 콜레라 등 전염병이 습하고 악취 나는 곳에서 창궐하는 이유를 미아즈마 학설로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병원균은 습하고 비위생적인 곳에서 번식하고 악취가 나기 마련이라 그럴듯했지만, 악취를 질병 원인으로 규정하여 틀렸다. 에드윈 채드윅(Edwin Chadwick)은 ‘모든 냄새는 질병’이라며 위생처리 시스템 개혁으로 대도시 사망률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채드윅은 콜레라와 장티푸스 유행이 도시화와 관련 있다며, 가정과 연결된 독립적 하수처리시스템 도입을 강조했다. 영국 왕립통계학회 보고서를 인용, 19세기 초 도시화와 함께 질병, 사망률 증가를 증거로 제시했다.[55] 채드윅은 미아즈마 학설을 배경으로 주장했지만, 위생환경 개선에 기여했다. 배수 시스템을 도입해 하수구 악취 역류를 차단, 상수도와 차단하여 콜레라 발병 감소에 기여했고, 일시적으로 미아즈마 학설을 뒷받침했다.[56]
1850년대 영국 의사 존 스노(John Snow)가 콜레라, 장티푸스 유행이 오염된 식수원과 관련 있음을 발견, 미아즈마 학설은 폐기 수순을 밟았다. 1854년 콜레라 대유행 당시 존 스노는 런던 소호 지역 콜레라 발병률 통계로 환자 대다수가 브로드 가 펌프에서 식수를 길어 쓰는 것을 알아냈고, 오염된 물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펌프 손잡이 제거 후 콜레라 발병이 감소했다. 1857년 《영국 의학 저널》에 콜레라 환자 발병 원인이 인간 폐기물, 배설물로 오염된 식수임을 주장했다. 깨끗한 상류 식수 사용자의 콜레라 발병률이 하류 사용자보다 낮다는 통계를 제시했다. 존 스노 연구는 해로운 공기가 아닌 오염된 물이 콜레라 원인이라는 가설을 뒷받침했지만, 검증위원회는 미아즈마 학설을 뒤집을 정도는 아니라며 일축했다. 식수회사와 지자체가 템스강 등 오염된 물을 공중 우물로 끌어와 수원지 변경, 정화 시스템 도입이 비용 부담이 커 식수업계 이해관계와 대치되어 개혁까지 오래 걸렸다.[55]
3. 3. 중국
중국에서 미아즈마(瘴氣; 다른 이름 瘴毒|장독중국어, 瘴癘|장려중국어)는 고대 중국의 지방지 및 문학 작품에서 널리 사용된 오래된 질병 개념이다. 미아즈마는 중국 문화에서 여러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미아즈마에 대한 대부분의 설명은 이를 일종의 질병, 혹은 독가스로 언급한다.
고대 중국인들은 미아즈마가 중국 남부 지역의 환경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미아즈마는 중국 남부 산간 지역의 열기, 습기, 탁한 공기에 의해 발생한다고 여겨졌다. 그들은 곤충의 배설물이 공기, 안개, 물을 오염시키고, 원시림이 미아즈마가 발생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한다고 생각했다.[16]
고대 여행가, 군인, 또는 지방 관리(대부분 문인)들의 미아즈마 현상에 대한 묘사에는 항상 안개, 스모그, 먼지, 가스 또는 지질학적 가스 배출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미아즈마는 감기, 유행성 독감, 열사병, 말라리아, 또는 이질과 같은 많은 질병을 일으킨다고 여겨졌다. 중국의 의학 역사에서 말라리아는 시대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또한, 질병의 원인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대 중국에서는 중독 및 앵무새열도 미아즈마라고 불렀다.[16]
수나라(581–618 CE) 시대의 의사 조원방은 그의 저서 ''병원후론''(On Pathogen and Syndromes, )에서 미아즈마를 언급했다. 그는 중국 남부의 미아즈마가 중국 북부의 장티푸스와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견해에 따르면, 미아즈마는 말라리아 및 이질과는 달랐다. 그의 저서에서 그는 이질에 대한 내용을 다른 장에서, 말라리아에 대한 내용을 별도의 장에서 다루었다. 그는 또한 미아즈마가 다양한 질병을 유발한다고 주장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적절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했다.[16]
미아즈마의 개념은 여러 단계를 거쳐 발전했다. 첫째, 서진(266–420) 이전에는 미아즈마의 개념이 점차 형성되었으며, 적어도 동한 시대에는 미아즈마에 대한 묘사가 없었다. 동진 시대에 많은 수의 북부 사람들이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미아즈마는 문인과 귀족들에 의해 인식되었다. 수나라와 당나라 이후, 지방 관리로 파견된 학자-관료들은 미아즈마를 기록하고 조사했다. 그 결과, 정부는 전염병 지역에 의사를 파견하여 질병을 연구하고 환자를 치료함으로써 미아즈마의 심각한 사례와 원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에는 각 지방지에서 서로 다른 지역의 미아즈마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17]
그러나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에는 중국 남부가 고도로 발달했다. 환경이 급격히 변화했고, 19세기 이후 서양 과학과 의학 지식이 중국에 도입되면서 사람들은 질병을 구별하고 대처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중국 의학의 발전으로 인해 미아즈마의 개념은 점차 사라졌다.[18]
남중국의 끔찍한 미아즈마 질병은 진-한 왕조 이후 관리들을 유배 보내고 죄수를 유배하는 주요 장소가 되었다. 예를 들어, 당나라의 시인 한유는 자신의 시 ''가는 길''([http://zh.wikisource.org/wiki/%E5%B7%A6%E9%81%B7%E8%87%B3%E8%97%8D%E9%97%9C%E7%A4%BA%E5%A7%AA%E5%AD%AB%E6%B9%98])[19]에서 조주로 유배된 후 그를 배웅하러 온 조카에게 글을 썼다.
"독성 공기와 가스"가 있는 남부 지역에 대한 만연한 믿음과 지배적인 공포는 역사적 문서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미아즈마에 감염된 남부에 대한 비슷한 주제와 감정은 초기 중국 시와 기록에 자주 반영된다. 당시 대부분의 학자들은 남부의 지질 환경이 인구 구성과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데 동의했다. 많은 역사 기록은 여성들이 미아즈마 감염에 덜 취약했으며, 사망률이 남부, 특히 남성에게서 훨씬 더 높았음을 보여준다. 이는 농업 생산의 원동력이었던 남성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농업 경작과 남부 경제에 영향을 미쳤다. 남송 시대의 지방 관리였던 주거비는 자신의 논문 ''영남에서 온 답장''에서 "... 남자들은 키가 작고 구릿빛 피부를 가지고 있는 반면, 여자들은 통통하고 거의 병에 걸리지 않았다,"[20]고 광시 지역의 많은 여성 인구에 대해 언급했다.
이러한 내재된 환경적 위협은 다른 지역으로부터의 이민을 막았다. 따라서 습하고 무더운 남부의 개발은 초기 중국 역사 대부분 동안 왕조의 정치 권력이 있던 북부보다 훨씬 느렸다.[21]
3. 4. 인도
인도에도 미아즈마 이론이 있었다. 감비르가 최초의 항미아즈마 적용 사례로 여겨진다. 이 감비르나무(Uncaria gambir)는 인도 남부와 스리랑카에서 발견된다.[22]
4. 미아즈마 이론에 대한 비판
19세기 말까지 유럽과 중국에서 널리 받아들여졌던 미아즈마 이론은 1880년 이후 미생물 이론으로 대체되며 학계에서 완전히 폐기되었다.[46] 이 이론은 물질이 부패하며 발생하는 미아즈마로 인해 전염병이 발생한다는 주장으로,[46] 당시에는 세균의 존재를 알지 못해 질병의 원인을 악취로 규정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잘못된 이론이었다.
1850년대 런던과 파리에서 유행하던 콜레라의 원인으로 미아즈마를 지목한 윌리엄 파(William Farr)는 콜레라가 공기를 통해 전염되며 템스강 유역에 미아즈마가 있다고 주장했다.[47] 그러나 '콜레라는 물을 통해 전염된다'는 존 스노의 주장이 나오면서 미아즈마 이론은 의심받기 시작했다. 존 스노는 역학조사를 통해 이 주장을 뒷받침했고, 훗날 '역학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다.
크림 전쟁의 간호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역시 미아즈마 이론을 믿고 병원 내 냄새 제거와 위생 개선에 힘썼다.[48][49][50] 비록 잘못된 이론에 근거했지만, 그녀의 노력은 병원 내 청결 유지와 원내감염 예방에 기여했다.
19세기 초 유럽에서는 '유해한 안개'를 미아즈마의 존재를 강하게 시사하는 것으로 보았다. 미아즈마는 바람을 통해 확산되며 공기 자체를 변화시킨다고 믿었다.[52] 발효병 이론에 따라 미아즈마는 썩어가는 초목과 더러운 물에서 비롯된다고 믿었으며, 밤공기를 피하는 풍습도 있었다. 이러한 밤공기에 대한 공포는 난방시설과 환기장치의 발달, 말라리아와 모기의 연관성이 밝혀지면서 사라졌다.[53]
위생공학자들은 미아즈마 이론이 전염병 발생을 설명하는 데 설득력이 있다고 보았다. 에드윈 채드윅은 '모든 냄새는 질병'이라 주장하며 위생처리 시스템 개혁을 강조했다. 비록 미아즈마 이론에 기반했지만, 그의 주장은 이후 위생환경 개선에 기여했다.
1850년대 존 스노는 콜레라와 장티푸스 유행이 오염된 식수원과 관련 있음을 발견하여 미아즈마 이론 폐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1854년 콜레라 대유행 당시 런던 소호 지역의 발병률 통계를 분석하여 오염된 펌프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제거하여 콜레라 발병을 감소시켰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당시 경제적 요인과 맞물려 식수업계의 저항에 부딪혀 즉각적인 개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55]
미아즈마 이론은 세균과 바이러스의 발견으로 부정되었지만, 비위생적인 환경과 질병의 상관관계를 알리고 공중보건 개혁을 이끌어냈다. 영국에서는 1840년대와 1850년대에 걸쳐 공중보건법이 입법되었고,[57] 이는 1865년 미국에도 영향을 주었다.[58]
5. 세균 이론으로의 대체
19세기 말까지 유럽과 중국에서 널리 받아들여졌던 미아즈마 학설은 1880년 이후 미생물 이론(특정 질병의 발병 원인은 특정한 미생물에 있다는 이론)으로 대체되며 학계에서 완전히 폐기되었다.[46]
1850년대 영국의 의사 존 스노는 콜레라와 장티푸스 유행이 오염된 식수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55] 1854년 런던 소호(Soho) 지역의 콜레라 대유행 당시, 존 스노는 환자들의 주거지와 공통점을 추적하여 대다수가 브로드 가(Broad Street)의 펌프에서 식수를 길어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해당 펌프의 오염된 물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펌프 손잡이를 제거하도록 하였고, 그 결과 콜레라 발병이 크게 감소했다.[55] 1857년에는 《영국 의학 저널》(British Medical Journal)에 콜레라 환자 대부분이 인간의 폐기물과 배설물로 오염된 식수를 마셨다는 논문을 기고했다.[55] 그는 상류의 깨끗한 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콜레라 발병률이 하류 쪽 물을 사용하는 사람들보다 현저히 낮다는 통계자료를 제시했다.[55]
그러나 검증위원회는 존 스노의 발견이 미아즈마 학설을 뒤집을 만큼 의미있다고 보지 않았다.[55] 또한, 당시 많은 식수회사와 지자체가 템스강 등 오염된 물을 공중 우물로 끌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수원지를 바꾸거나 정화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비용 부담이 커서 식수업계의 이해관계와 대립했다.[55]
미아즈마 학설은 세균과 바이러스의 발견으로 부정되었지만, 비위생적인 환경과 질병의 상관관계를 알리는 데 기여했다. 이는 공중보건 개혁으로 이어져 1840년대와 1850년대에 걸쳐 영국의 공중보건법(Public Health Acts) 입법에 영향을 주었다.[57] 이 법으로 국가는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업계의 위생과 청결을 법으로 의무화하고 감사와 수사 권한을 갖게 되었다. 영국의 제도 개선은 1865년 미국에도 영향을 주었다.[58]
세균과 질병의 상관관계는 일찍부터 알려졌지만, 19세기 후반까지 정설로 취급되지 않았다. 존 스노는 질병이 오염된 물 속의 독성 물질이나 병적 물질(morbid material)을 통해 퍼진다고 주장했다.[61] 1854년 런던 브로드 가의 콜레라 발병 건에서도 같은 주장을 했다.[62] 그러나 당시 이탈리아 학계에서는 미아즈마 학설이 정설이었기에, 필리포 파치니가 같은 해 발견한 간균(바킬루스)은 무시당했다.
1876년 로베르트 코흐가 탄저병을 일으키는 탄저균을 발견하면서 미아즈마 학설은 확실하게 폐기되었다.[63] 루이 파스퇴르는 1860년부터 1864년까지 세균과 질병 간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실험을 통해 산욕열의 병리를 발견하고[64] 분만 전후에 붕산을 이용한 세균 소독법을 제안했다.
고대 로마의 바로는 미아즈마가 기체가 아니라 미세한 동물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를 가리킨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16세기 이탈리아의 지롤라모 프라카스토로는 질병이 전염되는 원인이 미세한 생물인 "contagium vivim(생체 접촉체)"과의 접촉(콘타기온)이라고 주장했다. 1674년 안토니 판 레이우엔훅이 미생물을 발견하자, 미생물이 "contagium vivim"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루이 파스퇴르는 세균에 의한 발효와 부패를 연구한 결과, "contagium vivim"의 정체가 세균이라는 설을 주장했다. 1876년 로베르트 코흐가 탄저균이 탄저병의 병원체임을 실험으로 증명한 후, 감염증의 병원체가 잇달아 발견되면서 미아즈마는 부정되었다.
6. 미아즈마 이론의 영향
미아즈마 이론은 물질이 부패하며 발생하는 나쁜 공기, 즉 미아즈마로 인해 전염병이 발생한다는 학설이다.[46] 19세기 초반에는 이 학설을 바탕으로 음식 냄새만 맡아도 살이 찔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올 정도였다.[47]
물질이 부패하여 악취가 나는 곳은 주로 병원균이 번식하고 전염병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이 이론이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세균의 존재를 몰랐던 당시에는 질병의 원인을 병원균이 아닌 악취로 보았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잘못된 이론이었다.
1880년 이후 미아즈마 이론은 미생물 이론으로 대체되며 완전히 학계에서 폐기되었다. 하지만 질병을 막기 위해 악취를 제거해야 한다는 인식은 도시 환경 미화에 기여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기도 했다.
1613년 크라쿠프에서 발간된 책에서는 “나쁜 공기”의 예방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당시 사람들은 미아즈마를 독성을 가진 수증기 형태로, 질병을 일으키는 성분이 습기와 함께 퍼져 나간다고 믿었다. 오염된 물, 악취, 더러운 위생 상태 등이 미아즈마 발생의 원인으로 여겨졌으며, 악취 유무로 유해성을 판단했다. 또한, 미아즈마는 사람 간 직접 전염이 아니라, 같은 미아즈마 수증기의 영향권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염된다고 믿었다.
발효병 이론에 따라, 썩어가는 초목과 더러운 물(늪, 슾지, 도시 빈민가 등)에서 미아즈마가 발생한다고 믿었다. 허약하거나 병약한 사람들은 밤공기(미아즈마의 다른 이름)를 마시는 것을 꺼려 외출을 삼가고 문을 닫아 두었다. 찬 공기가 병을 옮긴다는 속설 때문에 찬 공기도 두려워했다. 밤공기에 대한 공포는 난방 시설과 환기 장치의 발달, 그리고 말라리아 확산에 모기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점차 사라졌다.[53]
19세기 이전 서구권에서는 밤공기가 유해하다고 여겼다. 19세기 동안 의학계에서는 질병 확산의 원인에 대해 전염론과 미아즈마론 두 가지 견해가 대립했다. 전염론자들은 신체 접촉을 통해 질병이 전염된다고 주장한 반면, 미아즈마론자들은 질병이 미아즈마 형태로 공기 중에 존재하여 신체 접촉 없이도 전염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토머스 사우스우드 스미스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대표적인 미아즈마론자였다.
결과적으로 전염론과 미아즈마론 모두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현대의 세균 이론에 따르면, 질병에 따라 직접 접촉 또는 공기를 통한 전염이 모두 가능하다.[54]
콜레라 창궐 당시 널리 퍼져 있던 미아즈마 학설은 존 스노가 ‘콜레라는 물을 통해 전염된다’는 주장을 내놓으면서 빛을 잃기 시작했다. 존 스노는 역학 조사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고, 이는 미아즈마 학설보다 훨씬 설득력 있었다. 결국 존 스노의 주장은 부분적으로 사실로 밝혀졌고, 미아즈마 학설은 학계에서 점차 의심받게 되었다. 존 스노는 이 업적으로 훗날 ‘역학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다.
하지만 미아즈마 학설 때문에 당시 런던에서는 인분과 오물을 템스강에 그대로 버리는 등 잘못된 전염병 대처를 하기도 했다. 그 결과 런던 소호 지역을 비롯한 콜레라 발병 지역에서 콜레라에 대한 대처가 늦어졌다.
1854년 콜레라 대유행 당시 존 스노는 런던 소호 지역의 콜레라 발병률 통계를 분석하여 환자 대다수가 브로드 가(Broad Street)의 펌프에서 식수를 길어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는 해당 펌프에서 나오는 오염된 물을 콜레라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지자체를 설득하여 펌프 손잡이를 제거했다. 그 결과 해당 지역의 콜레라 발병률이 크게 감소했다.
1857년, 존 스노는 《영국 의학 저널》(British Medical Journal)에 콜레라 환자 대부분이 인간 폐기물과 배설물로 오염된 식수로 인해 발병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깨끗한 상류 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콜레라 발병률이 하류 물을 사용하는 사람들보다 현저히 낮다는 통계 자료를 제시했다.
존 스노의 연구는 콜레라 유행의 원인이 오염된 물이라는 가설을 뒷받침했지만, 검증 위원회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당시 많은 식수 회사와 지자체가 템스강 등 오염된 물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원지를 바꾸거나 정화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었다. 이러한 경제적 요인 때문에 식수 업계의 개혁은 오랜 시간이 걸렸다.[55]
6. 1. 공중 보건 및 위생 개혁
19세기 초, 유럽 지역에서는 경고문 등에서 ‘유해한 안개’(unhealthy fog)라 표현되며 미아즈마를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당시에는 안개가 생기면 해당 지역에 미아즈마가 존재한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한다고 보았다.[52] 미아즈마는 안개나 연기처럼 기류에 의해 이동하며 바람을 통해 확산되며, 단순히 공기 중을 떠다니는 것이 아니라 공기 자체를 바꾸어버린다고 생각했다. 마치 사람이 질병에 감염되듯이 대기 환경 자체가 감염된다고 믿은 것이다.[52]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미아즈마가 대기 환경과 공기의 성질 자체를 완전히 변화시키는 신비로운 존재라고 생각했다.1850년대 당시 학계에서는 런던과 파리에서 유행하던 콜레라의 원인으로 미아즈마를 꼽았다. 미아즈마 학설의 신봉자였던 윌리엄 파(William Farr)는 콜레라가 공기를 통해 전염되며 템스강 유역에 엄청난 ‘미아즈마’가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템스강 유역은 생활하수가 그대로 흘러들어가며 위생이 나쁜 탓에 악취가 심하였으므로 아예 틀린 주장은 아니었다.[47]
크림 전쟁의 유명한 간호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역시 당시 정설처럼 받아들여지던 미아즈마 학설의 신봉자였다. 나이팅게일은 이에 따라 병원 내의 냄새 제거와 위생 개선에 힘썼다.[48][49][50] 그녀는 저서 《노동자 계층 간호 참고서》(Notes on Nursing for the Labouring Classes, 1860년)에서 환자가 실내에서도 바깥 공기와 같은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도록 실내 환경을 유지할 것을 권장하였다.[51]
19세기 초반 당시 영국의 공업화된 도시들의 생활 환경은 매우 비위생적이었다. 그러한 공업 도시들의 인구 증가 속도는 도시 인프라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맨체스터 지역의 인구는 겨우 10년 만에 2배로 증가하였고 이는 엄청난 폐기물의 증가로 이어졌다.[55] 위생공학자들의 시각에서 미아즈마 학설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것이었다. 콜레라 등의 전염병이 습하고 악취가 나는 곳에서 창궐하는 이유가, 미아즈마 학설로는 그럴듯하게 해명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위생공학 개혁에 선구자적 역할을 했던 에드윈 채드윅(Edwin Chadwick)은 ‘모든 냄새는 질병’이라고 주장하며 위생 처리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하여 높아져만 가는 대도시 사망률을 낮춰야 한다고 역설했다. 채드윅은 콜레라와 장티푸스의 유행은 도시화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각 가정과 직접 연결된 새롭고도 독립적인 하수 처리 시스템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채드윅은 영국 왕립통계학회(Royal Statistical Society)의 보고서를 인용하여 19세기 초 급격한 도시화의 진행과 함께 질병률과 사망률이 극적인 증가 추이를 보이고 있음을 증거로 내세웠다.[55]
미아즈마 학설은 비위생적인 환경(그리고 이러한 환경에서 비롯되는 악취)과 질병의 상관관계에 있어서는 매우 일관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위생적으로 환경을 개선하면 질병이 줄어든다는 주장 자체는 현대에도 틀린 말이 아니다.
미아즈마 학설은 세균과 바이러스의 발견으로 전면 부정당하고 학계에서 완전히 폐기되었지만, 비위생적인 환경과 질병과의 상관관계를 세간에 알리는 것에는 큰 기여를 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공중 보건 개혁으로 이어졌고 질병 예방을 위해서 청결을 중시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며, 이어 영국에서는 1840년대와 1850년대에 걸쳐 공중보건법(Public Health Acts)을 입법하게 된다.[57]
19세기에 이루어진 많은 위생 개혁 중에서도, 영국의 도시 공학자 조셉 바잘젯(Joseph Bazalgette, 1819-1891)의 업적이 가져온 변화를 주요한 개혁으로 들 수 있다. 바잘젯은 당시 런던 도시 위원회(Metropolitan Board of Works)의 수석 엔지니어였는데, 당시 의회는 대악취(the Great Stink) 사건으로 대두된 악취 문제 때문에 바잘젯에게 종합적인 하수도망 구축을 지시하였고 바잘젯은 곧바로 런던의 상수와 하수를 시스템적으로 분리한다. 이후 런던 주민들은 개선된 식수를 활용할 수 있었고 각종 수인성 전염병의 발병률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6. 2. 농업
미아즈마 학설은 틀렸지만 도시의 질병 예방에는 어느 정도 기여했다. 하지만 원인을 잘못 파악했기 때문에 농업계에서 인분을 안전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59] 당시에는 도시에서 발생한 인분을 모아 주변 지역의 농업에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미아즈마 학설이 폐기되고 학계가 제대로 된 질병 원인을 찾으면서 인분을 무차별적으로 사용하는 관행은 사라졌다. 19세기 유럽 각 도시에 하수도망을 이용한 인분 처리 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이러한 모습은 점차 사라졌다.19세기 위생 개혁은 도시 정착지에서 질병을 억제하는 데는 기여했지만, 농업에서 배설물을 재사용하는 적절한 방식을 채택하지는 못했다.[30] 도시 정착지에서 인간의 배설물을 수집하여 주변 농경지에서 재사용하는 관행은 19세기 주요 도시에서 흔했다.[31] 오늘날에는 위생적인 방식으로 배설물을 재사용하는 생태 위생이 장려되고 있다.
6. 3. 화장(장례) 논란
19세기 공중보건에서 화장은 미아즈마 학설의 관점에서 논란이 되었다. 미아즈마 학설은 썩는 물질에서 발생하는 공기 중의 독성이 질병을 퍼트린다는 주장이었고, 시체가 썩는 것도 예외가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후 미아즈마 학설이 부정되면서 화장 논란도 사라지게 되었다.[60] [32]7. 현대의 '미아즈마'
동종요법에서는 장기(miasma)에서 파생된 개념인 마이아즘(miasm)이 모든 질병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가타카나 표기로는 영어식 발음인 "마이아즘"의 변형[1]이며, 간혹 미아즈마라고도 한다. 다만 마이아즘은 인간에게 내재하는 병인으로 간주되어, 외부에서 작용하는 병인인 장기와는 크게 의미가 다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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