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크주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바스크 주는 1979년 자치법령으로 설립된 스페인의 자치 지방이다. 알라바, 비스카이아, 기푸스코아 3개 주로 구성되며, 바스크어와 스페인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빌바오, 비토리아-가스테이즈, 산 세바스티안을 주요 도시로 하며, 1인당 GDP가 높고 제조업, 금융, 에너지 산업이 발달했다. 바스크 민족주의 운동과 분리 독립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바스크 자치 정부는 독자적인 권한을 행사한다. 바스크 요리, 스포츠 등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바스크주 - 바스크어
바스크어(에우스카라)는 서유럽의 유일한 비인도유럽어족 언어로서,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로마 시대 아키타니아어와의 연관성이 제기되며, 스페인과 프랑스에 걸쳐 사용되고 부활 운동을 거쳤으나, 능격-대격 체계와 복잡한 동사 활용을 특징으로 하는 고립어이다. - 글로벌세계대백과를 인용한 문서/{{{분류 - 공 (악기)
공은 금속으로 제작된 타악기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의식, 신호, 음악 연주 등에 사용되며, 형태와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 글로벌세계대백과를 인용한 문서/{{{분류 - 국무회의
국무회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의장으로, 예산, 법률안, 외교, 군사 등 국정 현안을 심의하는 중요한 기관이며,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으로 구성되고, 정례회의는 매주 1회, 임시회의는 필요에 따라 소집된다. - 글로벌세계대백과를 인용한 문서/{{{분류2 - 공 (악기)
공은 금속으로 제작된 타악기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의식, 신호, 음악 연주 등에 사용되며, 형태와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 글로벌세계대백과를 인용한 문서/{{{분류2 - 국무회의
국무회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의장으로, 예산, 법률안, 외교, 군사 등 국정 현안을 심의하는 중요한 기관이며,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으로 구성되고, 정례회의는 매주 1회, 임시회의는 필요에 따라 소집된다.
바스크주 - [지명]에 관한 문서 | |
---|---|
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 | |
국가 | 스페인 |
자치 공동체 | 바스크 자치 공동체 |
공식 명칭 | 바스크 자치 공동체 (Comunidad Autónoma del País Vasco, Euskal Autonomia Erkidegoa) |
토착어 명칭 | Euskadi (에우스카디), País Vasco (파이스 바스코) |
별칭 | Euskal Herria (에우스칼 에리아) |
위치 | 스페인 |
수도 | 비토리아-가스테이스 |
최대 도시 | 빌바오 |
구성 | 알라바 주 비스카야 주 기푸스코아 주 |
인구 | 2,222,164명 (2023년) |
인구 순위 | 7위 (스페인 내) |
면적 | 7,234 km² |
면적 순위 | 14위 (스페인 내) |
인구 밀도 | auto |
주민 | 바스크인(euskaldun, euskal herritar, vasco (남), vasca (여)) |
HDI (2021년) | 0.932 (매우 높음, 스페인 내 2위) |
ISO 3166-2 | ES-PV |
지역 번호 | +34 94- |
웹사이트 | 바스크 정부 웹사이트 |
정치 | |
정부 형태 | 입헌 군주제 하의 자치 정부 |
자치 법규 | 바스크 자치 법규(1979년 10월 25일) |
정부 수반 | 렌다카리 (Lehendakari) |
현 정부 수반 | 이마놀 프라달레스 |
주요 정당 | 바스크 민족주의당(EAJ/PNV) |
의회 | 바스크 의회 |
스페인 하원 의석 | 18석 (총 350석) |
스페인 상원 의석 | 15석 (총 266석) |
공용어 | 바스크어, 스페인어 |
경제 | |
GDP (총액, 2022년) | 793억 5천만 유로 |
GDP (1인당, 2022년) | 35,832 유로 |
통화 | 유로 (EUR) |
상징 | |
국가 | Eusko Abendaren Ereserkia(바스크 민족의 찬가) |
2. 역사
1979년 자치법령으로 바스크 주가 설립되었다. 1936년 10월 5일 자치법령 발표로 1930년대 바스크 분리주의 운동은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이듬해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이를 탄압하면서 과격파들은 스페인 중앙정부에 맞서 테러 활동을 벌였다.[11]
바스크 자치 조약은 스페인 정부와 역대 바스크 지방 정부 간의 재협상을 통해 수십 년 동안 점진적으로 권한이 이양되어 효과적으로 시행되었으나, 여전히 많은 권한 이양이 남아있어 격렬한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2003년, 집권 바스크 민족주의자당 (PNV)은 이바레체 계획을 통해 조약 수정을 제안했으나, 스페인 하원에서 부결되었다.
첫 자치 내각 이후, 바스크 민족주의자당은 2009–2012년 파치 로페스 (PSE-PSOE)가 이끈 기간을 제외하고 바스크 자치 공동체에서 집권했다. 현재 바스크 총리는 이리고 우르쿨루이며, 역시 바스크 민족주의자당 소속이다. ETA의 2011년 휴전에도 불구하고, 2018년 이 자치 공동체는 서유럽에서 인구 100명당 경찰관 수가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2004년 스페인 총리 사파테로와 합의한 대로, 우르쿨루는 에르차이나스의 수를 늘릴 계획인 반면, 스페인 PP 내무부는 스페인 경찰 병력의 철수를 거부하고 있다.[44][45]
1975년부터 1985년까지 바스크 주의 국내총생산은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1985년에는 비스카이아 현에서 26%, 기푸스코아 현에서 22%라는 높은 실업률을 기록했다. 바스크 주는 중공업 중심의 산업 구조와 석유 의존 사회에서 전환을 꾀했고, 1990년 걸프 위기로 인한 유가 급등의 영향도 비교적 적었다. 1990년경 3차 산업 종사자 비율이 취업 인구의 50%를 넘어섰고, 2002년 경제 성장률은 유럽 연합(EU) 평균을 웃돌았으며 실업률은 8.3%까지 회복했다. 공업 도시였던 빌바오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개관으로 상징되는 문화 산업 도시로 부활했다.[82]
바스크 민족과 자유 (ETA)는 스페인의 민주화 이후에도 테러를 계속했고, 바스크 경제 회복 이후 테러 극복이 최대 현안이 되었다. ETA는 2002년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정권에 의해 비합법화되었고, 2004년 마드리드 열차 폭탄 테러 발생 후 스페인 사회노동당(PSOE)이 집권 여당으로 복귀하는 계기가 되었다.[94] ETA는 1968년 무력 투쟁 시작 이후 800명 이상을 살해했고, 여러 차례 휴전을 선언하고 스페인 정부와 협상했지만, 번번이 파기하고 무력 투쟁을 재개했다. 2000년대 후반 이후 스페인 당국에 의해 450명 이상의 조직원이 체포되어 약화된 것으로 알려졌으며,[95] 2011년 다시 휴전을 선언했다.[97]
2. 1. 초기 역사
1936년 10월 5일 자치법령 발표로 1930년대에 격렬했던 바스크 분리주의 운동이 일단락되었다.[11] 그러나 1979년 자치법령으로 다시 설립되기 전까지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바스크 분리주의 운동을 탄압하면서 이 운동의 과격파들은 스페인 중앙정부에 대항해 테러 활동을 전개했다.[11]에브로 강 유역의 탁 트인 들판과 포도원으로 둘러싸여 구심점이 되는 작은 공동체들에 인구가 집중되었다. 한편 피레네산맥에서는 개인농장인 카세리오를 중심으로 인구가 넓게 분산되었는데, 이 농장들은 산악지역의 작은 농지에서 집약적인 재배를 했다. 19세기 중반 이후 이 지역의 급격한 공업화로 피레네산맥의 전통적 거주지역이 해체되었으며, 그 결과 오지의 거주지보다는 산세바스티안이나 빌바오 같은 해안도시들이 성장했다.[11]
바스크어로 '바스크의 조국과 자유'라는 뜻의 ETA(Euzkadi Ta Azkatasuna)는 급진적인 바스크 분리주의 단체로서 테러 활동을 통해 바스크 지방분권주의가 스페인 중앙 정권을 약화시키는 가장 큰 세력이 되었다.[11] 프랑코 사후 자치정부를 갖춘 바스크 지방이 수립되고 ETA의 테러 행위도 잦아들었으나 바스크 분리주의가 완전히 종식되지는 않았다.[11]
게르니카 조약의 전신은 알라바, 기푸스코아, 비즈카이 자치 조약으로, 1936년 10월에 비즈카이에서만 시행되었으나, 스페인 내전이 이미 격렬하게 진행 중이었고, 스페인 국민군이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자동적으로 폐지되었다.[11]
1978년 스페인 헌법과 자치 공동체 시스템 이전에는 이 세 지역이 스페인어로 ''Provincias Vascongadas'' (1833년 이후)로 알려졌다.[11] 새로운 자치 공동체의 정치 구조는 게르니카 조약에 정의되어 있으며, 이는 1979년 10월 25일에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과반수의 지지를 얻었다. 현재 이는 세계에서 가장 분권화된 지역 중 하나이며, 이와 관련하여 ''The Economist''는 이를 "''유럽 내 다른 어떤 지역보다 더 많은 자치권을 가지고 있다''"[12]고 묘사했다.
바스크 민족주의자들은 1978년 스페인 헌법 국민투표에서 스페인 헌법의 제한과 관련하여, 이 지역에서 과반수의 찬성표를 얻었지만 투표율이 저조했음을 지적한다. 바스크 자치 정부가 헌법에 대한 어떠한 의견도 반영되지 않은 채 강요되었다는 이유로 기권을 지지했기 때문에, 기권율이 가장 높았다.[13] 또한, 이 국민투표에서 반대표가 스페인 나머지 지역보다 바스크 지역에서 더 높았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많은 바스크인들은 자신들이 지지하지 않은 헌법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믿고 있다.[13]
2. 2. 스페인 제2공화국과 프랑코 시대
1930년대에 바스크 분리주의 운동이 이 지역에서 격렬하게 일어났는데, 이 소요는 1936년 10월 5일의 자치법령 발표로 끝났다.[11] 이듬해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바스크 분리주의 운동을 탄압하기 시작하자 이 운동의 과격파들은 스페인 중앙정부에 대항해 테러 활동을 전개했다.[11]스페인 내전 중인 1936년 10월 1일, 발렌시아로 이전된 공화국 의회에서 바스크 자치 헌장이 성립하고, 바스크 자치법이 공포되어 바스크 자치 정부가 수립되었다.[67][68][69] 그러나 이 시점에서 나바라 현과 알라바 현의 일부는 반란군 측에 있었고, 공화국 측의 영역이 된 것은 비스카이아 현 전역과 기푸스코아 현의 일부뿐이었다.[67][68][69] 10월 7일에는 현재 바스크 자치주의 전신인 바스크 자치 정부가 발족했고, 호세 안토니오 아기레가 초대 렌다카리(수상)에 취임했다.[69][70] 바스크 군 경찰이나 바스크 대학을 창설하는 등 자치를 행했지만, 스페인 내전에서 반란군의 지원을 받은 나치 독일군에 의한 게르니카 폭격 등이 행해졌고, 바스크 자치 정부는 지배 영역을 모두 잃고 망명 정부가 되었다.[71]
바스크 망명 정부는 바르셀로나, 파리, 뉴욕으로 거점을 옮겼고, 자치 헌장이 무효가 된 바스크 지방에서는 바스크어 문화와 이에 연결된 상징적 행위가 억압되었다.[72][73][74] 스페인 내전은 반란군을 이끈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승리로 끝났고, 제2차 세계 대전 후 1950년대 초에는 국제 연합과 미국이 잇따라 프랑코 정권과의 협력 체제를 구축했다. 나치를 연상시키는 바스크 민족주의는 서유럽 여러 나라에서 외면받았다.[73][75] 이 때문에 1952년에는 지하 조직 EKIN이 결성되었고, 1959년에는 바스크 조국과 자유(ETA)로 발전했다.[76][77]
프랑코 사후 자치정부를 갖춘 바스크 지방이 수립되고 ETA의 테러 행위도 잦아들었으나 바스크 분리주의가 완전히 종식되지는 않았다.[11]
2. 3. 민주화 이후
1979년 자치법령으로 바스크 주가 설립되었다. 1930년대에 바스크 분리주의 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났는데, 1936년 10월 5일 자치법령 발표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바스크 분리주의 운동을 탄압하면서, 과격파들은 스페인 중앙정부에 맞서 테러 활동을 벌였다.[11]에브로 강 유역은 탁 트인 들판과 포도원으로 둘러싸여 작은 공동체들에 인구가 집중되어 있다. 반면 피레네 산맥에서는 카세리오라는 개인 농장을 중심으로 인구가 넓게 분산되어 있다. 19세기 중반 이후 급격한 공업화로 피레네 산맥의 전통적 거주 지역이 해체되면서, 산세바스티안이나 빌바오 같은 해안 도시들이 성장했다. 인구밀도는 해안 지역에서 가장 높아, 바스크 지방 인구의 4/5 정도가 빌바오와 그 교외 지역에 몰려 있다.[12]
바스크어로 '바스크의 조국과 자유'라는 뜻의 ETA(Euzkadi Ta Azkatasuna)는 테러 활동을 통해 바스크 지방분권주의를 스페인 중앙 정권을 약화시키는 가장 큰 세력으로 만들었다. 프랑코 사후 자치정부를 갖춘 바스크 지방이 수립되고 ETA의 테러 행위도 잦아들었으나, 바스크 분리주의가 완전히 종식된 것은 아니었다.[13]
1978년 스페인 헌법과 자치 공동체 시스템 이전에는 이 세 지역이 1833년 이후 스페인어로 ''Provincias Vascongadas''로 알려졌다. 새로운 자치 공동체의 정치 구조는 게르니카 조약에 정의되어 있으며, 1979년 10월 25일 국민투표에서 과반수의 지지를 얻었다. 현재 바스크 주는 세계에서 가장 분권화된 지역 중 하나이며, ''The Economist''는 "유럽 내 다른 어떤 지역보다 더 많은 자치권을 가지고 있다"라고 평가했다.[14]
바스크 민족주의자들은 1978년 스페인 헌법 국민투표에서 스페인 헌법에 대한 제한과 관련하여, 바스크 지역에서 과반수의 찬성표를 얻었지만 투표율이 저조했음을 지적한다. 바스크 자치 정부가 헌법에 대한 어떠한 의견도 반영되지 않은 채 강요되었다는 이유로 기권을 지지했기 때문에, 기권율이 가장 높았다. 또한, 이 국민투표에서 반대표가 스페인 나머지 지역보다 바스크 지역에서 더 높았다. 많은 바스크인들은 자신들이 지지하지 않은 헌법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믿고 있다.[15]
바스크 자치 조약은 유기적인 법이지만, 스페인 정부와 역대 바스크 지방 정부 간의 재협상에 따라 수십 년 동안 점진적으로 권한이 이양되어 효과적으로 시행되었으며, 여전히 많은 권한 이양이 남아있어 격렬한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2003년, 집권 바스크 민족주의자당 (PNV)은 이바레체 계획을 통해 조약 수정을 제안했다. 이바레체 법안은 바스크 의회에서 절대 다수의 찬성으로 통과되었지만, 스페인 헌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오랜 법적 이의 제기를 받았고, 결국 극복되었다. 스페인의 양대 정당 (PSOE, PP)은 스페인 의회 (마드리드 Cortes Generales)에서 이 계획에 대한 논의를 봉쇄했고, 2005년 1월 스페인 의회에서 압도적인 다수의 반대로 토론이 거부되었다.
첫 자치 내각 이후, 바스크 민족주의자당은 2009–2012년 파치 로페스 (PSE-PSOE)가 이끈 기간을 제외하고 바스크 자치 공동체에서 집권했다. 현재 바스크 총리는 이리고 우르쿨루이며, 역시 바스크 민족주의자당 소속이다. ETA의 2011년 휴전에도 불구하고, 이 자치 공동체는 2018년 서유럽에서 인구 100명당 경찰관 수가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2004년 스페인 총리 사파테로와 합의한 대로, 우르쿨루는 에르차이나스의 수를 늘릴 계획인 반면, 스페인 PP 내무부는 자치 의회의 대다수 정치 세력이 요구하는 스페인 경찰 병력의 철수를 거부하고 있으며, 심지어 미래에 가르디아 시빌의 증가를 언급하고 있다.[44][45]
1978년 국민투표를 통해 1978년 스페인 헌법 (현행 헌법)이 제정되었지만, 헌법에는 스페인 국가의 불가분 일체성이 명기되었고, 바스크인은 "민족을 구성하기에 이르지 못하는 민족체"로 규정되었다. 이 때문에 바스크 민족주의 온건파인 바스크 민족주의당 (PNV)은 주민들에게 투표 거부를 호소했고, 바스크 민족주의 급진 좌파는 헌법 부인을 호소했다. 투표율이 45%에 머문 바스크 지역은 스페인 국내에서 가장 기권율이 높았고, 찬성표는 투표 중 불과 69%에 불과했으며, 기권자·무기입표·반대표의 합계는 65.4%에 달했다.[85][86][87]
1978년 스페인 헌법은 자치주 설치를 인정하여 1979년 바스크 자치 헌장이 스페인 국회에서 승인된 후 바스크 지방 주민 투표에서도 승인되어, 알라바, 비즈카이아, 기푸스코아의 역사적 3개 지역의 자치 조직으로서 바스크 주가 발족했다.[88][89] 3개 현의 현 경계는 1833년 이전의 전통적인 경계 구분을 거의 그대로 따랐다.[90] 1980년 바스크 주 의회 의원 선거가 실시되어 바스크 민족주의당이 제1당이 되었고, 카를로스 가라이코에체아가 바스크 주 정부의 초대 총리로 선출되었다.[89]

1975년부터 1985년까지 바스크 주의 국내총생산은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1985년에는 비스카이아 현에서 26%, 기푸스코아 현에서 22%라는 높은 실업률을 기록했다. 바스크 주는 중공업 중심의 산업 구조와 석유 의존 사회에서 전환을 꾀했고, 1990년 걸프 위기로 인한 유가 급등의 영향도 비교적 적었다. 1990년경 3차 산업 종사자 비율이 취업 인구의 50%를 넘어섰고, 2002년 경제 성장률은 유럽 연합(EU) 평균을 웃도는 1.8%, 실업률은 8.3%까지 회복했다. 3개 현의 현도 교외에는 공업 단지가 설치되어 기업이 유치되었고, 공업 도시였던 빌바오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개관으로 상징되는 문화 산업 도시로 부활했다.[82]
바스크 민족과 자유 (ETA)는 스페인의 민주화 이후에도 테러를 계속했고, 바스크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되자 테러 극복이 최대 현안이 되었다. ETA의 정치 부문은 HB(인민 통합), 에리 바타스나(EH, 우리 바스크 인민), 바타스나 등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항상 어느 정도의 지지를 얻었지만, 2002년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정권에 의해 비합법화되자 활동 거점을 프랑스령 바스크로 옮겼다. 2004년 이슬람 극단주의에 의한 마드리드 열차 폭탄 테러가 발생했지만, 스페인 집권 여당인 국민당(PP)이 ETA의 소행이라고 즉단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었고, 스페인 사회노동당(PSOE)이 집권 여당으로 복귀하는 계기가 되었다.[94] ETA는 1968년 무력 투쟁 시작 이후 800명 이상을 살해했고, 1989년, 1996년, 1998년 9월, 2006년 3월, 2010년 휴전 또는 정전을 선언하고 스페인 정부와 협상했지만, 번번이 단기간에 파기하고 무력 투쟁을 재개했다. 2000년대 후반 이후 스페인 당국에 의해 450명 이상의 조직원이 체포되어 군사적, 정치적으로 약화된 것으로 알려졌다.[95] BBC는 ETA와 스페인 정부 간의 충돌을 "유럽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라고 표현했지만,[96] ETA는 2011년 다시 휴전을 선언했다.[97]
2003년 바스크 주 총리 후안 호세 이바레체는 게르니카 헌장 개정안(Ibarretxe Plan영어)을 자치주 의회에 제출했다. 이 개정안은 바스크 지방을 스페인 연방 국가를 구성하는 하나의 국가처럼 위치시키고 있었고, 1년 이상의 논의를 거쳐 바스크 주 의회가 승인했지만, 스페인의 불가분 일체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로 스페인 하원에서 부결되었다.[94]
3. 지리
바스크주는 바스크 산맥을 기준으로 크게 세 지역으로 나뉜다. 아이즈코리 산괴(1551m)가 최고봉이다.
- 북부 (대서양 연안): 네르비온 강, 우롤라 강 등 짧은 강들이 비스케이 만으로 흐르며, 해안은 절벽과 작은 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 중간부 (알라바 분지): 비토리아-가스테이즈가 위치한 고원 지대로, 강들은 남쪽으로 흘러 에브로강으로 합류한다.
- 남부 (에브로 평원): 리오하 와인 생산지로 유명하다.
비스케이 만의 비다소아 강 하구에 위치한 Plaiaundi 생태 공원은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해안 습지이다.[4]
바스크 산맥은 기후를 구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북부 계곡은 해양성 기후로 연중 습하고 온화하며, 평균 강수량은 약 1200mm이다. 중앙 지역은 대륙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여름은 따뜻하고 건조하며 겨울은 춥고 눈이 많이 내린다. 에브로 계곡은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로 겨울은 춥고 건조하며 여름은 매우 덥고 건조하다.
3. 1. 지형
역사적으로 바스크 지방은 북동쪽에서 피레네산맥에 의해 스페인령 바스크 지역과 바스크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프랑스령 바스크 지역으로 나뉘며, 서쪽에서 칸타브리아산맥에 의해 바스크 지방과 산탄데르주가 나뉜다. 남쪽으로는 피레네산맥이 에브로강 유역, 카스티야주의 부르고스, 로그로뇨로 이어지며, 동쪽으로는 나바레주와 접한다. 비스카야와 기푸스코아에 있는 산들은 매우 들쭉날쭉하며 강들은 길이가 짧고 물살이 빨라 산을 지나면서 가파른 골짜기를 형성한다. 연평균 강우량은 1,200mm에 달하는데, 산세바스티안시 주변에서는 1,500mm가 넘지만 에브로강 유역에서는 750mm를 넘지 않는다. 동부는 강우량이 비교적 풍부하고 고른 북대서양 기후의 영향을 받으며, 남부의 알라바 산간분지는 아(亞)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을 받는다.바스크 지방은 서쪽으로 칸타브리아, 부르고스 주와 접하고, 북쪽으로는 비스케이 만, 동쪽으로는 프랑스 (누벨아키텐)와 나바라, 남쪽으로는 라리오하 (에브로 강)와 접한다. 이 지역은 두 개의 평행한 바스크 산맥으로 정의되는 세 개의 뚜렷한 지역으로 나뉜다. 주요 산맥은 대서양과 지중해 유역 사이의 분수계를 형성한다. 이 산맥의 최고점은 아이즈코리 산괴(1551m)에 있다. 세 지역은 다음과 같다.
- '''북부(대서양 연안):''' 바스크 산맥에서 비스케이 만으로 흘러드는 네르비온 강, 우롤라 강, 오리아 강, 우르메아 강, 비다소아 강 등의 소하천이 내륙부에 작은 분지를 형성하고 있다. 해안부는 리아스식 해안이 이어져 높은 절벽과 작은 만으로 구성되어 있어 천연의 양항을 품고 있다.[46] 모래 해변은 적고[47], 레케이티오나 산 세바스티안 등 일부에 한정된다. 빌바오 아브라 만, 빌바오 강 하구, 우르다이바이 하구, 프랑스와의 국경을 형성하는 칭구디 만 등의 지형이 특징이다.
- '''중간부(알라바 분지):''' 두 개의 산맥 사이의 지역은 알라바 분지라고 불리는 고원이 있으며, 알라바 분지의 중앙부에는 주도 비토리아-가스테이스가 위치하고 있다. 하천은 산지나 분지에서 에브로 강을 향해 흘러, 주요 하천에는 사도라 강과 바야스 강 등이 있다. 북부와 중간부 사이에는 바스크 산맥의 일부인 고르베아 산지와 우르키야 산지가 가로놓여 있으며, 알라바 주와 기푸스코아 주의 현경에는 바스크 주의 최고봉인 아이스코리 산(1,551m)이 있다.
- '''남부(에브로 평원):''' 남부의 에브로 강 유역은 리오하 알라베사라고 불리며, 라 리오하 주나 아라곤 주 등과 지중해 연안적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포도 생산이 활발한 리오하 지방은 라 리오하 주뿐만 아니라 알라바 주에도 걸쳐 있으며, 이 지역에서 수확한 포도로부터 리오하 와인으로 알려진 적포도주가 제조되고 있다.[49]
기푸스코아 주의 스마이아, 데바, 무투리쿠 일대의 칸타브리아 해의 해안은 유네스코 세계 지질 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48]
'''Plaiaundi 생태 공원'''은 비스케이 만의 비다소아 강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24헥타르 규모의 해안 습지이다. Plaiaundi는 다양한 종류의 식물(방문객들은 주로 봄에 관람한다)과 동물(조류의 이동 습성 때문에 망원경을 든 방문객들이 연중 방문한다)로 구성되어 있다.[4]
3. 2. 기후
바스크 산맥은 대서양과 지중해로 흘러드는 강들을 가르는 분수령이며, 바스크 산맥을 경계로 바스크주의 기후는 명확하게 구분된다. 비스카이아 현이나 기푸스코아 현 북부의 계곡, 알라바 현의 아야라 계곡 등은 에스파냐 베르데(스페인 북부 대서양 연안 지역)의 일부이며, 만(灣) 지역은 서안 해양성 기후(CfB)이다.[50][51] 일년 내내 습도가 높고, 지내기 좋은 기온이다. 연간 강수량은 약 1,200mm이며, 이베리아 반도 내에서 가장 강수량이 많은 지역이다.[50][52]바스크 산맥은 분수령을 형성하며 바스크 지방의 뚜렷한 기후 구역을 구분한다.
비스카이, 기푸스코아, 그리고 알라바의 아얄라 계곡에 위치한 북부 계곡은 녹색 스페인에 속하며, 여기에는 일년 내내 습한 날씨와 온화한 기온을 특징으로 하는 해양성 기후가 우세하다. 평균 강수량은 약 1200mm이다.
중앙 지역은 대륙성 기후의 영향을 더 많이 받지만, 북부 해양성 기후의 정도는 다양하다. 이로 인해 따뜻하고 건조한 여름과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이 나타난다.
에브로 계곡은 순수한 대륙성 기후를 보인다. 겨울은 춥고 건조하며, 여름은 매우 덥고 건조하며, 강수량은 봄과 가을에 최고조에 달한다. 그러나 해양과 인접해 있기 때문에 바스크 지방의 에브로 지역은 내륙 지역에 비해 온화하다.
빌바오의 하루 일조 시간은 최장 기록인 7월이 6.06시간, 최단 기록인 12월이 2.51시간이다.[53] 연간 일조 시간은 1,584시간이며, 에스파냐 베르데를 제외한 스페인의 다른 지역의 절반 정도, 북유럽의 런던(영국)이나 바르샤바(폴란드) 등과 비슷한 수준이다. 중앙부의 알라바 분지는 대륙성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지만, 북부의 해양성 기후도 섞여 건조하고 따뜻한 하계와 춥고 강설이 있는 동계를 가져온다. 남부의 에브로 계곡은 순수한 대륙성 기후이며, 동계는 춥고 건조하며, 하계는 매우 따뜻하고 건조하다. 강수량은 춘계와 추계가 최고조에 달하지만, 희소하고 불규칙적이며, 연간 300mm 정도의 적은 양이다.
4. 행정 구역
바스크 주는 알라바 도, 비스카이아 도, 기푸스코아 도의 3개 도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도의 도청 소재지는 비토리아-가스테이스, 빌바오, 산 세바스티안이다.[54] 1979년 자치주 발족 후, 총 252개의 무니시피오(기초 자치 단체) 중 187개의 무니시피오가 자치 단체명 개명을 실시했다.[54] 대부분은 스페인어 이름을 바스크어 이름으로 개명한 것이지만, 두 언어의 명칭을 하이픈으로 연결하거나 슬래시로 나눈 자치 단체도 있다.[55]
분류 | 한국어[56] | 공식 명칭 | 카스티야어 표기[57] | 바스크어 표기[57] |
---|---|---|---|---|
주명 | 바스크 주 | País Vasco 또는 Euskadi | Euskadi 또는 Euskal Herria | |
도명 | 알라바 도 | Álava / Araba | Álava | Araba |
비스카이아 도 | Bizkaia | Vizcaya | Bizkaia | |
기푸스코아 도 | Guipúzcoa | Guipúzcoa | Gipuzkoa | |
도청 소재지 명칭 | 비토리아-가스테이스 | Vitoria-Gasteiz[58] | Vitoria | Gasteiz |
빌바오 | Bilbao | Bilbao | Bilbo | |
산 세바스티안 | Donostia / San Sebastián[58] | San Sebastián | Donostia |
# | 자치 단체 | 도명 | 인구[59] |
---|---|---|---|
1 | 빌바오 | 비스카이아 도 | 349,356명 |
2 | 비토리아-가스테이스 | 알라바 도 | 241,386명 |
3 | 산 세바스티안 | 기푸스코아 도 | 186,500명 |
4 | 바라칼도 | 비스카이아 도 | 100,502명 |
5 | 게초 | 비스카이아 도 | 79,839명 |
6 | 이룬 | 기푸스코아 도 | 61,113명 |
7 | 포르투갈레테 | 비스카이아 도 | 47,756명 |
8 | 산투르치 | 비스카이아 도 | 47,129명 |
9 | 바사우리 | 비스카이아 도 | 41,971명 |
10 | 에렌테리아 | 기푸스코아 도 | 39,324명 |
바스크 주는 트레비뇨 (카스티야 이 레온 주 · 부르고스 주)와 바예데비야베르데 (칸타브리아 주)라는 두 개의 다른 주의 월경지를 가지고 있다.
5. 인구
바스크 자치 공동체의 인구는 215만 5,546명이며, 이 중 거의 절반이 빌바오 광역권에 거주한다. 그레이터 빌바오로 널리 알려진 빌바오는 바라칼도, 게초, 포르투갈레테, 산투르치, 바사우리 등 인구가 많은 10개 도시 중 6곳을 포함한다.
바스크 지방 인구의 28.2%는 이 지역 밖에서 태어났으며, 이는 바스크 인구 통계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다.[6] 20세기 동안 이민의 대부분은 갈리시아 또는 카스티야 이 레온과 같은 스페인의 다른 지역에서 유입되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이 인구의 상당수가 출생지로 돌아갔고, 현재 바스크 지방으로의 이민은 주로 남아메리카에서 오고 있다.
2018년 기준으로 바스크 지방에는 151,519명의 외국인이 있었으며, 이는 인구의 7%를 차지한다. 국적별 외국인 인구는 다음과 같다.[6]
국적 | 인구 |
---|---|
21,995 | |
18,410 | |
8,096 | |
7,245 | |
6,487 | |
6,229 | |
6,172 | |
5,752 | |
5,684 | |
5,104 | |
기타 | 61,588 |
로마 가톨릭은 바스크 지방에서 가장 큰 종교이다. 2019년, 스스로 로마 가톨릭 신자라고 밝힌 바스크인의 비율은 60%였으며, 바스크는 스페인에서 가장 세속화된 공동체 중 하나로 24.6%는 무종교이며, 12.3%는 무신론자였다.
19세기 말,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인구가 크게 증가하여 1877년 45만 명에서 1900년에는 60만 명이 되었다.[61] 20세기에는 스페인의 다른 지역, 특히 갈리시아 지방과 카스티야 이 레온 지방 출신 이주민들이 많이 유입되었다. 1950년대 이후 고도 경제 성장기에는 많은 노동자가 유입되어 1950년 104만 명이었던 인구가 1975년에는 약 2배인 207만 명에 달했다.[79] 1970년대 중반 이후 기술자 및 숙련 노동자가 대량으로 유출되어 1975년부터 1991년까지 13만 명 이상의 사회적 감소를 기록했다.[82] 20세기 말에는 상당수의 인구가 스페인 국내의 출신지로 돌아갔지만, 반대로 남아메리카 등 국외로부터의 이민은 증가하고 있다.[60] 스페인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점차 감소하고 있으며,[62] 급속하게 저출산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호세 아란다 아스나르에 따르면, 바스크 주 인구의 30%는 지역 밖에서 태어났으며, 40%는 바스크인 부모를 두지 않았다.[63]
바스크 3개 주의 인구[61][64] | ||||||||
---|---|---|---|---|---|---|---|---|
연도 | 1857 | 1877 | 1900 | 1920 | 1940 | 1960 | 1981 | 2001 |
인구 | 413,470 | 450,699 | 602,204 | 783,125 | 948,096 | 1,358,707 | 2,141,809 | 2,082,587 |
5. 1. 주요 도시
순위 | 도시 | 도 | 인구 |
---|---|---|---|
1 | 빌바오 | 비스카이아 | 351,629 |
2 | 비토리아-가스테이즈 | 알라바 | 245,036 |
3 | 산세바스티안 | 기푸스코아 | 186,409 |
4 | 바라칼도 | 비스카이아 | 100,369 |
5 | 게초 | 비스카이아 | 80,026 |
6 | 이룬 | 기푸스코아 | 61,102 |
7 | 포르투갈레테 | 비스카이아 | 47,756 |
8 | 산투르치 | 비스카이아 | 47,129 |
9 | 바사우리 | 비스카이아 | 41,971 |
10 | 에렌테리아 | 기푸스코아 | 39,324 |
11 | 레이오아 | 비스카이아 | 30,626 |
12 | 갈다카오 | 비스카이아 | 29,130 |
13 | 세스타오 | 비스카이아 | 28,831 |
14 | 두랑고 | 비스카이아 | 28,618 |
15 | 에이바르 | 기푸스코아 | 27,507 |
16 | 에란디오 | 비스카이아 | 24,326 |
17 | 사라우츠 | 기푸스코아 | 22,650 |
18 | 몬드라곤 | 기푸스코아 | 22,027 |
19 | 에르나니 | 기푸스코아 | 19,284 |
20 | 요디오 | 알라바 | 18,498 |
바스크 주의 인구는 약 215만 명으로, 스페인 자치주 내 순위는 7위이며 스페인 전체 인구의 4.9%를 차지한다. 바스크 주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자치체는 빌바오이며, 주 인구의 절반인 약 100만 명이 빌바오 도시권에 거주한다. 인구 상위 10개 자치체 중 6개 자치체(빌바오, 바라칼도, 게초, 포르투갈레테, 산투르치, 바사우리)가 빌바오 도시권에 속한다. 바스크 주 인구의 28.2%는 바스크 주 밖에서 태어났다.[60]
6. 언어
바스크 주의 공용어는 바스크어와 스페인어(카스티야어) 두 언어이다. 국민 국가 성립 과정에서 스페인 정부는 바스크인과 그 언어적 정체성을 억제하려 시도했다.[128] 스페인의 민주화 이행기인 1975년경에는 바스크 7개 지역에서 160개의 이카스트라[129]가 34,000명의 학생을 안게 되었다.[130]
바스크어 화자는 거의 모두 카스티야어 또는 프랑스어와 이중 언어 구사자이다.[133] 많은 자치체에서 바스크어 화자와 카스티야어·프랑스어 화자가 혼재하고 있으며, 주민 모두가 바스크어 화자인 자치체는 거의 없다.[133]
6. 1. 바스크어 현황
바스크어와 스페인어는 바스크주 자치 공동체의 모든 영토에서 공용어이다. 현대 자치 공동체의 바스크어 사용 지역은 나바라와 프랑스령 바스크 지방의 동쪽에서 사용되는 바스크어의 더 넓은 맥락에 맞춰져 있다. 바스크어는 지난 9세기 동안 점진적인 영토 축소를 경험했고,[8] 프랑코 시대 스페인의 언어 정책 등으로 인해 20세기 대부분 동안 사회언어학적 지위가 매우 심각하게 악화되었다. 1982년 바스크 자치주 자치 헌장이 제정된 이후, 바스크어 학교와 새로운 교육 시스템 덕분에 이러한 감소 추세는 점차 반전되었다. 바스크어는 기푸스코아, 중앙 및 동부 비스카이, 알라바 북쪽 가장자리에서 강한 존재감을 보였으며, 서부 비스카이와 알라바의 나머지 지역에서 대부분의 바스크어 사용자는 제2 언어 사용자이다.연도 | 바스크어 구사자 (16세 이상) | 수동적 구사자 | 바스크어 못함 | 비고 |
---|---|---|---|---|
2006년 | 30.1% | 18.3% | 51.5% | [9] |
2016년 | 33.9% | 19.1% | 47% | |
2021년 | 36.2% | 18.6% | 45.3% | [10] |
바스크어 사용 비율은 기푸스코아에서 가장 높았고, 알라바에서 가장 낮았다. 2001년에서 2021년 사이의 조사에서 바스크어 구사자 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바스크어 사용 비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16~24세였으며, 65세 이상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바스크 주의 공용어는 바스크어와 스페인어(카스티야어) 두 언어이다. 스페인 1978년 헌법 제3조에서는 카스티야어를 국가 공용어로 정하고 있지만, 동시에 타 언어도 자치주 내의 공용어가 될 가능성을 명기하고 있다.[131] 1979년의 게르니카 헌장에서는 바스크 주의 고유 언어로서 바스크어를 선정하고, 카스티야어와 2개의 언어 공동 공용 체제를 구축했다.[131] 바스크 주 정부 문화성 언어 정책국이 언어 정책을 주도하고, 에우스칼차인데아(바스크어 아카데미)가 자문 기관으로 지정되었다.[131] 1982년에는 바스크어 사용 정상화 기본법이 발효되어 3가지 언어 교육 모델이 도입되었다.[130] 바스크어는 유럽 연합(EU) 기관 내에서도 제한적으로 사용이 인정되고 있으며, 2011년에는 스페인 국회 상원에서도 사용이 인정되었다.[131]
2012년 시점에서는 거의 100%의 학생들이 초등학교에서 어떤 형태의 바스크어 교육을 받고 있다.[130] 기푸스코아 도의 대부분 지역, 비스카이아 도의 중부와 동부, 알라바 도의 북단에서 바스크어는 강한 존재감을 보이고 있지만, 비스카이아 도 서부, 알라바 도의 대부분에 존재하는 바스크어 화자는 카스티야어에 이은 제2 언어로서 바스크어를 사용하고 있다.
7. 정치
1979년 스페인 국회에서 Statute of Autonomy of the Basque Country영어(바스크 자치 헌장)이 승인되고 바스크 지방 주민투표에서도 승인되어, 알라바, 비스카이, 기푸스코아 3개 지역의 자치 조직인 바스크 주가 발족했다.[88][89] 1930년대에 바스크 독립을 요구하는 분리주의 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났으나, 1936년 10월 5일 자치법령 발표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바스크 분리주의 운동을 탄압하면서, 과격파들은 스페인 중앙정부에 대항해 테러 활동을 전개했다.[44]
급진적인 바스크 분리주의 단체인 ETA(Euzkadi Ta Azkatasuna)는 바스크어로 '바스크의 조국과 자유'라는 뜻으로, 테러 활동을 통해 바스크 지방분권주의가 스페인 중앙 정권을 약화시키는 가장 큰 세력이 되게 하였다. 프랑코 사후 자치정부를 갖춘 바스크 지방이 수립되고 ETA의 테러 행위도 잦아들었으나, 바스크 분리주의가 완전히 종식된 것은 아니었다.[44]
ETA의 영구적 휴전(2010~2011년)은 새로운 정부 동맹의 가능성을 열었고, EH 빌두의 선거 성공과 정부 기구로의 부상(기푸스코아, 수도 산 세바스티안, 2011~2015년)을 가능하게 했다. 2012년 바스크 의회 선거에서 PNV은 다수 득표를 얻었고, 그 뒤를 좌익 민족주의 연합 EH 빌두 (에우스코 알카르타수나, 소르투, 알테르나티바)가 이었다.
2016년 바스크 자치 지역 선거에서는 헝 의회가 초래되었다. 바스크 민족주의 정당(PNV와 EH 빌두)이 의회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주요 스페인 정당인 PP와 PSOE의 지부가 의석의 24%를, 포데모스 – 아할 두구가 11석(전체의 14.66%)을 차지했다. 그러나 주도 정당 PNV는 PSE와 전통적인 동맹을 갱신하여 정부를 구성했다.
2017년 카탈루냐 독립 주민투표 위기 동안, 바스크 의회는 카탈루냐 독립 주민투표에 대한 지지와 지원을 표명하고, 투표나 '민주주의'에 대한 스페인 정부의 입장에 대해 비난했다. 이 지역의 바스크인들은 투표를 지지하는 것 외에도 추가적인 자치 정부(43.5%)를 선호했으며, 독립과 현재의 '현상 유지'가 두 번째와 세 번째 옵션(22.6%와 18.9%)으로 나타났다.
2016년 자치 지역 의회는 1978년부터 1999년까지의 기간을 포괄하는 경찰 학대 행위를 통과시켰다. 이는 검찰에 의해 이의가 제기된 후 곧 폐지되었으며, 거의 모든 경찰 및 민간 경비대 노조의 항소도 있었다. 새로 취임한 스페인 총리 페드로 산체스는 그 내용의 변경을 대가로 법률에 대한 검찰의 봉쇄를 해제하기로 동의했다.
스페인의 우익 정당인 복스, PP 및 시우다다노스는 2019년 11월 총선에서 이 자치 지역에서 스페인 의회에 18명 중 1명의 국회의원을 보냈는데, 이는 전체 스페인 결과에서 그들의 부상과 중요한 존재감과 대조를 이룬다.
7. 1. 바스크 자치 정부
1979년 자치법령으로 설립되었다. 바스크 지방의 행정부는 임기 5년의 총리와 3개 주에서 각각 같은 수로 선출된 대표 의원들로 이루어진 의회로 구성된다. 1930년대에 바스크 분리주의 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났으나, 1936년 10월 5일 자치법령 발표로 일단락되었다. 이듬해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바스크 분리주의 운동을 탄압하면서 과격파들은 스페인 중앙정부에 대항해 테러 활동을 전개했다.[16]
현재 법률은 자치 공동체를 세 개 구성 지방의 연합으로 규정한다. 이 서부 바스크 지역들은 1199~1200년 카스티야 침공 이후에도 자체 법률과 기관에 따라 자치 통치를 유지했다. 새로운 왕은 바스크 및 피레네 지역에 널리 퍼져 있던 관습법에서 파생된 제도적 시스템을 유지했다. 나바라와 유사한 이 제한된 자치 정부는 1839년에 부분적으로 폐지되었고, 1876년에는 세금 징수와 여러 행정적 특권에 대한 합의를 대가로 완전히 폐지되었다. 이는 다시 프랑코에 의해 기푸스코아와 비스카이에 대해 중단되었지만, 1978년 스페인 헌법에 의해 복원되었다.
프랑코 사후 1978년 스페인 헌법은 역사적 권리를 인정하고 중앙집권주의와 다양한 민족 정체성(바스크, 카탈루냐, 갈리시아) 간의 오랜 갈등에 대한 타협을 시도했다. 집권 UCD의 수아레스와 PNV 간의 협상을 통해 바스크 자치 규약이 제정되었으며, 제1조는 바스크 민족(Euskal Herria)이 바스크 자치 공동체의 형태로 제도적 인격을 갖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제2조는 알라바, 비스카이, 기푸스코아, 그리고 나바라로 구성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실질적인 권한(과세 등)이 부여된 지방 의회("포랄 지방 의회")가 복원되었지만, 나바라는 바스크 정치 과정에서 분리되었다. 스페인의 민족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 방식은 결국 스페인 내 모든 지역(예: 카스티야 이 레온, 카탈루냐, 발렌시아 공동체 등)에 자치 행정부와 의회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조항을 통해 확산되었으며, 바스크, 카탈루냐, 갈리시아는 역사적 특수성을 인정받았다.
바스크 지방은 여전히 각 지역에서 세금을 징수하지만, 스페인 및 유럽 정부의 결정 권한은 제한적이다. 이 복잡한 시스템 하에서, "디푸타시오네스 포랄레스"(바스크어: Foru Aldundiak)는 각 지방의 대부분을 관리하지만 바스크 정부(스페인어: Gobierno Vasco, 바스크어: Eusko Jaurlaritza)에 의해 조정된다. 자치 공동체는 자체 경찰력(에르차인차), 바스크 교육 시스템 및 보건 시스템을 통제하며, 바스크 라디오/TV 방송국을 소유하고 있다. 이러한 권한과 게르니카 규약에 인정된 일부 권한은 1980년 이후 코르테스 제네랄레스에 의해 게르니카 규약에 따라 자치 공동체로 이전되었다.[17][18] 바스크 의회와 정부의 소재지는 비토리아-가스테이즈에 있으며, 이곳은 "사실상" 수도이지만, 바스크 자치 공동체는 "법적으로" 수도가 없다.[19][20]
의회는 세 지방 각각에서 25명의 대표로 구성된다. 바스크 의회는 일반적인 의회 절차에 따라 정부를 구성하는 레헨다카리(바스크 자치 공동체 대통령)를 선출한다. 2020년까지 2009~2012년을 제외하고, 모든 "레헨다카리"(1937년과 망명 기간 동안의 레헨다카리 포함)는 1978년 이후 바스크 민족주의자당(Euzko Alderdi Jeltzalea)(온건하고 기독교 민주주의자)의 구성원이었다. 1982년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바스크 민족주의자들은 이념적으로 ETA에 더 가까웠으며 바스크 의회에 출석을 거부했고, 이는 의회에서 중요한 분열을 야기했다. 현재 바스크 정부는 이ñ이고 우르쿨루(PNV)가 이끌고 있다.
정당 | 의석 수 |
---|---|
PNV | 27 |
EH 빌두 | 27 |
PSE | 12 |
PP | 7 |
수마르 | 1 |
복스 | 1 |
이 조례는 바스크인에 대해 다루고 행정적 틀을 제공하며, 인접한 나바라가 원할 경우 서부 3개 주에 합류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제공한다. 바스크 자치 정부는 수년 동안 나바라의 문장이 포함된 "라우라크 바트"를 상징으로 사용했다. 나바라 정부는 이에 항의했고, 법원은 그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후 바스크 자치 정부는 이를 빈 빨간색 필드로 대체했다.
1978년 국민투표를 통해 1978년 스페인 헌법 (현행 헌법)이 제정되었지만, 헌법에는 스페인 국가의 불가분 일체성이 명기되었고, 바스크인은 "민족을 구성하기에 이르지 못하는 민족체"로 규정되었다.[85] 이 때문에 바스크 민족주의 온건파인 바스크 민족주의당(PNV)은 주 주민에게 투표 거부를 호소했고, 바스크 민족주의 급진 좌파는 헌법 부인을 호소했다.[85] 바스크 지역은 투표율이 45%에 머물러 스페인 국내에서 가장 기권율이 높았고,[86] 찬성표는 투표 중 불과 69%에 불과했으며,[85] 기권자·무기입표·반대표의 합계는 65.4%에 달했다.[87]
1979년 스페인 국회에서 Statute of Autonomy of the Basque Country영어(바스크 자치 헌장)이 승인되고 바스크 지방 주민투표에서도 승인되어, 알라바, 비스카이아, 기푸스코아 3개 지역의 자치 조직인 바스크 주가 발족했다.[88][89] 3개 현의 경계는 1833년 이전의 전통적인 경계 구분을 거의 그대로 답습했다.[90] 1978년 스페인 헌법은 푸에로 등 각 지역의 역사적 권리를 인정하여, 바스크 주는 교육·경찰·후생 등의 분야에서 대폭적인 자치권이 인정되었다.[91] 오늘날 바스크 주는 세계에서 가장 지방 분권화가 진전된 지역 중 하나로, 『이코노미스트』지는 "유럽 어디보다 높은 자율성을 가진다"고 평가했다.[92] 나바라 주는 바스크 주에 포함되지 않았고, 헌법에 따라 나바라 주의 의사에 따라 통합이 가능했지만, 1982년 단독으로 나바라 주로 승격되었다.[88][93] 1980년 바스크 주 의회 의원 선거에서 바스크 민족주의당이 제1당이 되었고, 카를로스 가라이코에체아가 바스크 주 정부 초대 총리(바스크 자치 정부 시대 포함 제3대)로 선출되었다.[89]
1978년 헌법은 각 지역의 "역사적 권리"를 인정하여 중앙 집권 체제와 다른 지역 정체성(바스크, 카탈루냐, 갈리시아)과의 타협을 시도했다. 카스티야 이 레온 주, 발렌시아 주 등 스페인의 모든 지역에 자치 행정 및 주 의회가 부여되었으며, 바스크 주, 카탈루냐 주, 갈리시아 주는 역사적 특이성을 인정받았다. 바스크 주는 각 지역의 징세권을 가지지만, 그 의사 결정은 스페인과 유럽 연합(EU)에 의해 제한된다. 스페인 국회에서 승인된 게르니카 헌장한국어(바스크 자치 헌장)은 스페인 국가의 전관 사항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치를 인정하며, 바스크 주는 자치주 경찰(에르찬차), 독자적인 교육 제도, 재정 자유 재량권 등을 가진다.[88][98][99] 스페인의 17개 자치주 중 15개 자치주에서는 중앙 정부가 징수한 세금의 일부를 각 자치주에 분배하지만, 바스크 주와 나바라 주는 각 현에 징세권이 있으며, 그 일부가 분담금으로 스페인 국고에 납부된다.[100] 이 고도의 재정상 자유 재량권에 대해 인근 자치주들의 불만이 있으며, 유럽 연합도 연루된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100] 바스크 주 의회와 바스크 주 정부가 위치한 비토리아-가스테이스가 사실상의 주도이지만, 게르니카 헌장에서는 공식적인 주도를 정하지 않았다.[42] 바스크 주 의회에서 선출된 렌다카리(바스크 주 총리[101])는 취임 후 게르니카 오크 나무 아래에서 선서를 하고, 그 옆에 있는 Casa de Juntas de Guernicaes[102]에서 취임식을 거행한다.[103]
7. 2. 바스크 자치 의회
바스크 의회는 알라바, 비스카이, 기푸스코아 3개 지방에서 각각 25명씩 선출된 대표로 구성된다.[16] 바스크 의회는 일반적인 의회 절차에 따라 정부를 구성하는 레헨다카리(바스크 자치 공동체 대통령)를 선출한다. 2009~2012년을 제외하고 1937년 이후 모든 "레헨다카리"는 바스크 민족주의자당(Euzko Alderdi Jeltzalea)(온건 기독교 민주주의)의 구성원이었다.[17][18] 1982년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바타수나는 ETA와 가까워 바스크 의회 출석을 거부했고, 이는 의회에서 중요한 분열을 야기했다. 현재 바스크 정부는 이ñ이고 우르쿨루(PNV)가 이끌고 있다.- PNV (27석)
- EH 빌두 (27석)
- PSE (12석)
- PP (7석)
- 수마르 (1석)
- 복스 (1석)

바스크 자치구 의회는 3개 도에서 직접 선거로 각각 25명씩 선출된 총 75명의 의원으로 구성된다.[106] 알라바 도와 비스카야 도 사이에는 약 4배의 인구 차이가 있어, 1표의 가치가 문제가 되고 있다.[106] 1980년 제1회 바스크 자치구 의회 선거에서 바스크 민족주의당(EAJ=PNV)은 25석을 획득하여 단독 집권당이 되었고, 초대 레헨다카리(수상)에는 카를로스 가라이코에체아가 취임했다.[88] 바스크 조국과 자유(ETA)의 정치 부문인 에리 바타스나(HB, 바타스나의 전신)와 Euskadiko Ezkerra (EE)를 포함하여 42석을 바스크 민족주의 정당이 차지했고, 비바스크 민족주의 정당인 바스크 사회당(PSE) (스페인 사회노동당의 바스크 지부)은 9석, 국민연합(AP) (사회노동당과 함께 스페인의 양대 정당)은 6석을 획득하는 데 그쳤다.[88] 1984년 자치구 의회 선거에서는 의석수가 각 도에서 25명씩 총 75석으로 증가했고, 바스크 민족주의 세력은 70%에 가까운 득표를 얻어 다시 바스크 민족주의당이 단독 집권당이 되었지만, 내부 분열의 조짐을 보였다.[88] 가라이코에체아와 하비에르 아르살루스의 대립으로 1984년 12월에는 가라이코에체아에 대한 불신임 결의가 채택되어 호세 안토니오 알단사가 후임으로 취임했다. 가라이코에체아는 바스크 민족주의당에서 탈퇴하여 Eusko Alkartasuna (EA)를 결성하고 바스크 국가 독립을 표방했다.[88] 1986년 자치구 의회 선거에서 득표수 1위는 바스크 민족주의당이었지만, 바스크 연대에 표가 흘러 의석수가 지난 선거의 절반 정도로 줄었고, 의석수는 바스크 사회당(19석)에 미치지 못하게 되자 바스크 민족주의당은 바스크 사회당과 연립하여 정권을 담당했다.[104] 1990년 자치구 의회 선거에서는 바스크 민족주의당이 바스크 연대의 지지표를 되찾아 제1당으로 복귀했고, 바스크 연대나 바스크 좌익과 연립하여 정권을 담당했다.[104] 바스크 사회당의 지지표는 국민당(PP)으로 흘러갔고, 에리 바타스나는 과거 최대 득표율을 얻었다.[94]
1994년 자치구 의회 선거에서는 바스크 민족주의당, 바스크 연대, 바스크 사회당이, 1998년 자치구 의회 선거에서는 바스크 민족주의당과 바스크 연대가 연립하여 정권을 담당했다.[94] 1982년부터 1998년까지 ETA와 가까운 에리 바타스나와 후계인 바스크 시민(바타스나의 전신)은 바스크 자치구 의회 출석을 거부했지만, 1998년 이후 3년간은 집권당이 바스크 시민의 의회 내 지원을 얻어 의회 내 과반수에 도달했다.[94] 2001년 자치구 의회 선거에서는 바스크 민족주의 정당의 득표율이 과거 최저인 53%가 되었지만, 바스크 민족주의당은 바스크 연대와 통합 좌익(IU)과 연립하여 의회 내 과반수를 유지했다.[94] 2001년 9월 9·11 테러는 세계적인 반테러리즘 흐름을 일으켰고, ETA와 관련 깊은 바타스나는 국민당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정권에 의해 비합법화되었다.[94]
2005년 선거에서는 바스크 민족주의당, 바스크 연대, 통합 좌익이 연립하여 정권을 담당했다.[104] 2009년 자치구 의회 선거에서는 득표율·의석수 모두 바스크 민족주의당이 제1당이었지만, 바스크 사회당과 국민당이 결속하여 의회 내 과반수를 확보했고, 바스크 사회당 파치 로페스가 사상 처음으로 바스크 민족주의당 이외에서 수상으로 취임했다. 2012년 자치구 의회 선거에서는 바스크 민족주의당이 제1당이 되었고, 바스크 연대를 중심으로 하는 정당 연합인 EH 빌두가 21석을 획득하여 제2당으로 약진했다.[105] 바스크 민족주의당 이리고 유르쿨루가 수상이 되어, 수상 자리가 다시 바스크 민족주의당으로 돌아왔다.
바스크 주 정부 수반 (레헨다카리) | ||
---|---|---|
재임 기간 | 이름 | 출신 정당 |
1980-1985 | 카를로스 가라이코에체아 | 바스크 민족주의당 (PNV) |
1985-1999 | 호세 안토니오 알단사 가로 | 바스크 민족주의당 (PNV) |
1999-2009 | 후안 호세 이바레체 | 바스크 민족주의당 (PNV) |
2009-2012 | 파치 로페스 | 바스크 사회당 (PSE-PSOE) |
2012- | 이리고 유르쿨루 | 바스크 민족주의당 (PNV) |
7. 3. 바스크 민족주의와 분리 독립 운동
1930년대에 바스크 분리주의 운동이 이 지역에서 격렬하게 일어났으나, 1936년 10월 5일 자치법령 발표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바스크 분리주의 운동을 탄압하면서, 과격파들은 스페인 중앙정부에 대항해 테러 활동을 전개했다.[44]급진적인 바스크 분리주의 단체인 ETA(Euzkadi Ta Azkatasuna/에테아)는 바스크어로 '바스크의 조국과 자유'라는 뜻으로, 테러 활동을 통해 바스크 지방분권주의가 스페인 중앙 정권을 약화시키는 가장 큰 세력이 되게 하였다. 프랑코 사후 자치정부를 갖춘 바스크 지방이 수립되고 ETA의 테러 행위도 잦아들었으나, 바스크 분리주의가 완전히 종식된 것은 아니었다.[44] 바스크 독립도 참고.
ETA의 영구적 휴전(2010~2011년)은 새로운 정부 동맹의 가능성을 열었고, EH 빌두의 선거 성공과 정부 기구로의 부상(기푸스코아, 수도 산 세바스티안, 2011~2015년)을 가능하게 했다. 2012년 바스크 의회 선거에서 바스크 민족주의당(PNV)은 다수 득표를 얻었고, 그 뒤를 좌익 민족주의 연합 EH 빌두 (에우스코 알카르타수나, 소르투, 알테르나티바)가 이었다.
2016년 바스크 자치 지역 선거에서는 헝 의회가 초래되었다. 바스크 민족주의 정당(PNV와 EH 빌두)이 의회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주요 스페인 정당인 PP와 PSOE의 지부가 의석의 24%를, 포데모스 – 아할 두구가 11석(전체의 14.66%)을 차지했다. 그러나 주도 정당 PNV는 PSE와 전통적인 동맹을 갱신하여 정부를 구성했다.
2017년 카탈루냐 독립 주민투표 위기 동안, 바스크 의회는 카탈루냐 독립 주민투표에 대한 지지와 지원을 표명하고, 투표나 '민주주의'에 대한 스페인 정부의 입장에 대해 비난했다. 이 지역의 바스크인들은 투표를 지지하는 것 외에도 추가적인 자치 정부(43.5%)를 선호했으며, 독립과 현재의 '현상 유지'가 두 번째와 세 번째 옵션(22.6%와 18.9%)으로 나타났다.
2016년 자치 지역 의회는 1978년부터 1999년까지의 기간을 포괄하는 경찰 학대 행위를 통과시켰다. 이는 검찰에 의해 이의가 제기된 후 곧 폐지되었으며, 거의 모든 경찰 및 민간 경비대 노조의 항소도 있었다. 새로 취임한 스페인 총리 페드로 산체스는 그 내용의 변경을 대가로 법률에 대한 검찰의 봉쇄를 해제하기로 동의했다.
스페인의 우익 정당인 복스, PP 및 시우다다노스는 2019년 11월 총선에서 이 자치 지역에서 스페인 의회에 18명 중 1명의 국회의원을 보냈는데, 이는 전체 스페인 결과에서 그들의 부상과 중요한 존재감과 대조를 이룬다.
8. 경제
바스크 자치 지방은 1인당 생산량과 경제 생산성이 스페인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다. 2019년에는 GDP의 0.3%에 해당하는 공공 재정 흑자를 기록했다.[28]
1975년부터 1985년까지 바스크 주의 국내총생산은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1985년에는 비스카이아 현에서 26%, 기푸스코아 현에서 22%라는 높은 실업률을 기록했다.[82] 바스크 주는 중공업 중심의 산업 구조에서 벗어나 전환을 꾀했고, 1990년 걸프 위기로 인한 유가 급등의 영향도 비교적 적게 받았다.[82] 1990년경에는 3차 산업 종사자 비율이 취업 인구의 50%를 넘어섰고, 2002년의 경제 성장률은 유럽 연합(EU) 평균을 웃도는 1.8%, 실업률은 8.3%까지 회복했다.[82] 3개 현의 현도 교외에는 공업 단지가 설치되어 기업이 유치되었고, 공업 도시였던 빌바오는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개관으로 상징되는 문화 산업 도시로 부활했다.[82]
바스크 민족과 자유(ETA)는 스페인의 민주화 이후에도 테러를 지속했고, 바스크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되자 테러 극복이 중요한 현안이 되었다. ETA의 정치 부문은 여러 이름을 거쳐 활동했지만, 2002년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정권에 의해 비합법화되자 활동 거점을 프랑스령 바스크로 옮겼다. ETA는 1968년 무력 투쟁 시작 이후 800명 이상을 살해했고, 여러 차례 휴전 및 정전을 선언하고 스페인 정부와 협상했지만, 번번이 파기하고 무력 투쟁을 재개했다. 2000년대 후반 이후에는 스페인 당국에 의해 450명 이상의 멤버가 체포되어 군사적, 정치적으로 약화된 것으로 알려졌다.[95] BBC는 ETA와 스페인 정부와의 충돌을 "유럽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라고 표현했지만,[96] ETA는 2011년에 다시 휴전을 선언했다.[97]
2003년 바스크 주 총리 후안 호세 이바레체는 게르니카 헌장 개정안(Ibarretxe Plan|이바레체 플랜영어)을 자치주 의회에 제출했다. 이 개정안은 바스크 지방을 스페인 연방 국가를 구성하는 하나의 국가처럼 위치시키려 했으나, 스페인 하원에서 부결되었다.[94]
풍력 발전 산업이 활발하며, 재생 가능 에너지 분야에서 일본의 후쿠시마현과 협력 관계에 있다.[119]
8. 1. 주요 산업
바스크 자치 지방은 1인당 생산량에서 스페인 1위를 차지하며, 경제 생산성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2016년 기준 1인당 국내 총생산(GDP)은 (구매력 평가 기준) 유럽 연합보다 22%, 스페인 평균보다 30% 높은 34,400유로였다.[26]전통적으로 바스크 지역의 산업은 철광석 자원을 바탕으로 한 철강 및 조선업이 중심이었다. 빌바오 강어귀는 19세기와 20세기 전반 에우스타디(바스크)의 산업 혁명 중심지였으나, 1970년대와 1980년대 경제 위기를 겪으며 쇠퇴하고 서비스 부문과 신기술이 발전했다.[111]
오늘날 바스크 지방 경제의 주요 산업 부문은 다음과 같다:
바스크 지방의 주요 기업은 다음과 같다:
- BBVA: 세계 최대 금융 기관 중 하나이자 스페인에서 두 번째로 큰 은행[29]
- 이베르드롤라: 다국적 에너지 회사[29] (두 회사 모두 빌바오에 본사)
- 몬드라곤 협동조합: 세계 최대 협동 조합[29]
- CAF: 철도 차량 제조업체[29]
- Gamesa: 세계 두 번째로 큰 풍력 터빈 제조업체[29]
2015년 실업률이 가장 낮은 스페인 자치 지방 10개 지자체 중 8개가 바스크 지방에 있었으며, 아라스테, 포르투갈레테, 바라칼도 등이 대표적이다.[30] 바스크 자치 지방은 경제 위기 회복력 면에서 스페인의 다른 지역보다 높이 평가받는다.[31]
2013년 바스크 지방은 여러 지표에서 스페인을 능가했지만, 경제 전반의 수치는 가변적이었다. 스페인은 관광 및 서비스 부문에 의존하여 계절적 변동이 큰 반면, 바스크 지방은 산업에 집중하여 중장기적인 성과를 보인다. 2017년 마지막 분기 바스크 자치 지방의 실업률은 11.1%였다.[32] 이는 나바라 다음으로 스페인에서 두 번째로 낮은 수치이며, EU 평균(10.8%)보다 약간 높지만,[33] 스페인 전체 실업률(약 16.55%)보다는 낮았다.[34]
연도 | 2006 |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
실업률 (%) | 6.9% | 5.9% | 8.5% | 12.1% | 11.0% | 13.2% | 16.6% | 16.6% | 16.6% | 12.9% | 12.3% | 10.6% | 9.6% | 9.1% |
2017년 바스크 자치 지방은 3.0%의 GDP 증가를 기록하여 스페인 증가율 3.1%에 근접했다. 2013년 마지막 분기 바스크 자치 지방의 공공 부채는 GDP의 13.00% (1인당 3,753유로)였으며,[36] 스페인 전체 93.90% (1인당 20,383유로)와 비교된다.[37]
바스크 정부 및 정당 지도자들은 2011년부터 스페인 정부의 긴축 조치가 산업 및 무역, 특히 수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바스크 관료들은 에코핀에 나바라와 함께 정회원으로 참여하여 바스크의 이익을 옹호할 것을 주장해 왔다.
8. 2. 주요 기업
바스크 자치 지방은 1인당 생산량과 경제 생산성이 스페인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다. 2016년 기준 1인당 국내 총생산(GDP)은 (구매력 평가 기준) 유럽 연합보다 22%, 스페인 평균보다 30% 높은 34,400유로였다.[26]전통적으로 바스크 지역의 산업은 철광석 자원을 바탕으로 한 철강 및 조선업이 중심이었다. 19세기와 20세기 전반에 걸쳐 빌바오 강어귀는 산업 혁명의 중심지였으나, 1970년대와 1980년대의 경제 위기를 겪으며 쇠퇴하고 서비스 부문과 신기술이 발전했다.
오늘날 바스크 지방 경제의 가장 강력한 산업 부문은 제조 부문, 항공 및 물류, 금융 및 에너지이다. 특히, 비스카이와 기푸스코아 계곡에는 제조 부문이, 비토리아-가스테이츠에는 항공 및 물류 산업이, 빌바오에는 금융 및 에너지 산업이 발달해 있다.
바스크 지방의 주요 기업은 다음과 같다:
- BBVA: 세계 최대 금융 기관 중 하나이자 스페인에서 두 번째로 큰 은행 (본사: 빌바오)
- 이베르드롤라: 다국적 에너지 회사 (본사: 빌바오)
- 몬드라곤 협동조합: 세계 최대 협동 조합
- CAF: 철도 차량 제조업체
- Gamesa: 세계 두 번째로 큰 풍력 터빈 제조업체.[29]
2015년에는 실업률이 가장 낮은 스페인 자치 지방의 10개 지자체 중 8개가 바스크 지방에 속했으며, 아라스테, 포르투갈레테, 바라칼도와 같은 제조업 기반 도시들이 두드러졌다.[30]
2013년 바스크 지방은 여러 경제 지표에서 스페인 평균을 웃돌았지만, 관광 및 서비스 부문에 의존하는 스페인 경제와 달리 산업에 집중하여 중장기적인 성과를 보인다. 2017년 마지막 분기, 바스크 지방의 실업률은 11.1%로[32] (기푸스코아 8.43%), 나바라 다음으로 스페인에서 두 번째로 낮았다. 이는 EU 평균(10.8%)보다 약간 높지만,[33] 스페인 전체 실업률(약 16.55%)보다는 낮은 수치이다.[34]
연도 | 2006 |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2017 | 2018 | 2019 |
---|---|---|---|---|---|---|---|---|---|---|---|---|---|---|
실업률 (%) | 6.9% | 5.9% | 8.5% | 12.1% | 11.0% | 13.2% | 16.6% | 16.6% | 16.6% | 12.9% | 12.3% | 10.6% | 9.6% | 9.1% |
2017년 바스크 자치 지방은 3.0%의 GDP 증가를 기록하며 스페인 증가율 3.1%에 근접했다. 2013년 마지막 분기 바스크 자치 지방의 공공 부채는 GDP의 13.00%로, 1인당 3,753유로였으며,[36] 스페인 전체 93.90%, 1인당 20,383유로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37]
바스크 정부와 정치 지도자들은 2011년부터 스페인 정부의 긴축 조치가 산업 및 무역, 특히 수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우려를 표명해왔다.
9. 문화
바스크 요리는 바스크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며, 특히 핀초를 맛보기 위한 관광이 활발하다. 산 세바스티안은 "음식의 평균 품질"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기도 한다.[39]
바스크 시골 스포츠는 바스크어로 'Herri Kirolak'이라고 불리며, 바스크인의 전통적인 생활 방식에 기반을 둔 스포츠이다. 바스크 펠로타는 리얼 테니스와 스쿼시를 포함하는 유럽 게임의 바스크 버전이다.
바스크 지방은 축구 클럽 아틀레틱 빌바오의 연고지이며, 이 클럽은 바스크 출신 선수만 고용하는 정책으로 유명하다. 레알 마드리드 및 FC 바르셀로나와 함께 1부 리그에서 강등된 적이 없는 클럽 중 하나이다.[40] 산 세바스티안의 레알 소시에다드와 바스크 더비를 치른다.
안도니 수비사레타는 라 리가 최다 출전 기록을 가진 유명 바스크 축구 선수이다. 사비 알론소는 월드컵과 유럽 챔피언십을 모두 우승한 바스크 선수이다.
자전거 경주는 바스크 지방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이며, 아브라함 올라노는 부엘타 아 에스파냐와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투르 드 바스크와 클라시카 데 산 세바스티안 같은 자전거 경주 대회가 이 지역에서 열린다.
9. 1. 요리
바스크 요리는 바스크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다. 요리사 페란 아드리아는 산 세바스티안을 "음식의 평균 품질 면에서, 우연히 들어간 어떤 곳에서든 얻을 수 있는 면에서, 어쩌면 세계 최고일 것이다."라고 평가했다.[39] 가장 인기 있는 요리는 해산물, 생선(예: 마르미타코), 그리고 바에서 먹는 핑거 푸드인 핀초이다.1970년대 후안 마리 아르작, 페드로 수비하나 등 바스크 출신 요리사들은 프랑스의 누벨 퀴진 원리를 스페인에 도입하며 요리 혁명을 이끌었다.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3개를 받은 최초의 스페인 레스토랑은 마드리드에 위치한 바스크 레스토랑 ''잘라카인''이었다. 오늘날 바스크 지방은 카탈루냐와 함께 미슐랭 가이드에서 가장 많은 별을 보유한 스페인 지역이며, 국내외 미식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목적지이다. 후안 마리아 아르작(''아르작'' 레스토랑), 마르틴 베라사테기(''베라사테기'' 레스토랑), 페드로 수비하나(''아켈라레'' 요리사), 에네코 아차(''아수르멘디'' 레스토랑) 등 4개 레스토랑이 최고 등급인 별 3개를 받았다.
해안 도시 산 세바스티안에는 요리 및 영양 분야 고등 교육 및 연구 기관인 바스크 요리 센터가 있다.
바스크 음식, 특히 핀초는 바스크 지방 관광의 주요 이유 중 하나이다. 바스크 버전의 펍 크롤인 "''ir de pintxos''" 또는 ''치키테오''는 인기 있는 사교 활동이며, 일반적으로 더 품위 있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1967년 바스크 출신 요리사 루이스 이리사르는 기푸스코아도 사라우츠에 스페인 세 번째 요리 학교를 개교했고, 1992년 산세바스티안에도 요리 학교를 열었다. 이 학교는 그의 이름을 따 현재 스페인 최고 요리 학교로 불린다.[141] 산세바스티안 출신 요리사 카를로스 아르기냐노는 1990년대 이후 엔터테인먼트성을 중시한 요리 프로그램 사회를 맡아 스페인 요리사 지위 향상에 기여했다.[142] 1999년 산세바스티안에서 세계 최초 요리 학회가 개최된 이후 스페인 각지에 요리 학회가 발족했다.[143] 2011년 몬드라곤 대학교 식품 과학부 연구 기관이자 유럽 최초 식품 과학 4년제 대학인 바스크 컬리너리 센터(바스크 요리 센터)가 개설되었다.[144]
9. 2. 스포츠
바스크 시골 스포츠는 바스크어로 'Herri Kirolak'이라고 불리며, 바스크인의 전통적인 생활 방식에 뿌리를 둔 스포츠 경기의 일종이다. 예를 들어 바스크 펠로타는 리얼 테니스와 스쿼시를 포함하는 유럽 게임의 바스크 버전이다. 스페인 또는 프랑스 팀에서 뛰는 바스크 선수들은 국제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바스크 지방은 축구, 농구, 사이클 등이 활발하다. 축구 클럽으로는 빌바오의 아틀레틱 빌바오(전국 리그 우승 8회·전국 컵 우승 24회), 산세바스티안의 레알 소시에다드(리그 우승 2회·컵 우승 2회), 비토리아-가스테이스의 데포르티보 알라베스 등의 클럽이 있으며, 모두 라리가에 소속되어 있다.[138] 아틀레틱 빌바오는 바스크 지방에서 태어나거나 훈련받은 선수만 고용하는 엄격한 칸테라 정책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와 함께 1부 리그에서 강등된 적이 없는 3개 클럽 중 하나이다.[40] 레알 소시에다드 역시 한때 바스크인만으로 선수단을 구성했지만, 1989년 이후 스페인 타 지역 출신 선수나 스페인 국외 출신 선수를 영입하고 있다. 프랑코가 사망하고 스페인이 민주화 이행기에 있던 1980년대 초에는 이 두 클럽이 4시즌 동안 라리가 타이틀을 독점했다.[138]
바스크 자치구 출신 유명 축구 선수로는 스페인 대표팀 최다 출장 기록을 보유했던 안도니 수비사레타, 2010 FIFA 월드컵 우승 멤버였던 사비 알론소 등이 있다. 역대 가장 유명한 바스크 축구 선수로는 안도니 수비사레타가 있는데, 그는 라 리가에서 622경기에 출전하여 최다 출전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6개의 리그 우승과 유럽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다. 오늘날 가장 잘 알려진 바스크 축구 선수는 2번의 UEFA 유럽 선수권 대회와 1번의 월드컵 우승자인 사비 알론소로, 레알 소시에다드, 리버풀, 레알 마드리드,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었지만 2017년에 은퇴했다. 다른 주목할 만한 바스크 선수로는 미켈 아르테타, 아시에르 이야라멘디, 안도니 이라올라, 아리츠 아두리스, 사비 프리토 및 안데르 에레라 등이 있다. 아틀레틱과 레알 소시에다드 모두 스페인 리그에서 우승했으며, 1980년대 초반에 대회를 지배했는데, 바스크 클럽이 마지막으로 우승한 타이틀은 아틀레틱의 1984년 타이틀이다.
국제 수준에서 바스크 선수들은 내전 이전 스페인 대표팀에서 특히 두각을 나타냈으며, 1928년 올림픽의 모든 선수와 1920년 올림픽 및 1934년 월드컵 대표팀의 대다수가 이 지역 출신이었다. 바스크 국가대표 축구팀이라는 비공식 '국가' 대표팀이 있는데, 간헐적으로 친선 경기를 치르며, 그 선수단은 나바라와 프랑스 바스크 지방을 포함한 더 넓은 지역에서 선수를 선발한다.
농구 클럽으로는 비토리아-가스테이스의 사스키 바스코니아(리그 우승 1회·컵 우승 5회), 빌바오의 CB 빌바오 베리, 산세바스티안의 기푸스코아 바스케트 클럽 등이 있으며, 모두 리가 ACB에 소속되어 있다.
사이클 팀으로는 한때 UCI 프로팀의 에우스칼텔 에우스카디가 존재했으며, 베이징 올림픽 개인 도로 금메달리스트인 사무엘 산체스 등이 소속되어 있었지만, 자금난으로 인해 2013년에 해산했다.[139] 에우스칼텔은 "바스크인의, 바스크인에 의한, 바스크인을 위한 팀"이었으며, 2012년까지 소속 선수를 바스크 지방 출신이거나 바스크 지방에서 아마추어 시절을 보낸 선수로 한정했다.[139][140]
자전거 경주는 바스크 지방에서 인기 있는 스포츠이다. 아브라함 올라노는 부엘타 아 에스파냐와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UCI 월드 투어 팀은 바스크 지방에서 시작되었다.[41] 또한 이전에 카세 데 에파르뉴로 알려졌던 Movistar 팀은 미겔 인두라인이 포함된 '''바네스토''' 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지역에는 투르 드 바스크 스테이지 레이스와 클라시카 데 산 세바스티안 원데이 레이스가 있다. 에우스칼텔 에우스카디 팀도 2014년에 해체될 때까지 월드 투어의 일부였다. 이는 비공식 바스크 국가대표팀이었으며 바스크 정부의 부분적인 지원을 받았다. 이 팀의 선수들은 바스크인이거나 최소한 바스크 사이클 문화에서 성장했으며, 팀의 전 멤버들은 매년 7월에 열리는 투르 드 프랑스와 9월에 열리는 부엘타 아 에스파냐에서 강력한 경쟁자였다. 팀 리더로는 이반 마요, 하이마르 수벨디아, 사무엘 산체스, 다비드 에체바리아, 이고르 안톤, 미켈 란다 및 미켈 니에베와 같은 선수들이 있었다. 이 팀은 2020년에 Euskaltel이 후원을 복원하면서 UCI 프로팀 수준에서 부활했다.
9. 3. 바스크 전통 스포츠
바스크 시골 스포츠는 바스크어로 'Herri Kirolak'이라고 불리며, 바스크인의 전통적인 생활 방식에 뿌리를 둔 스포츠 경기이다. 예를 들어 바스크 펠로타는 리얼 테니스와 스쿼시를 포함하는 유럽 게임의 바스크 버전이다. 스페인 또는 프랑스 팀에서 뛰는 바스크 선수들은 국제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바스크 지방은 축구 챔피언이었던 빌바오의 아틀레틱 클럽의 연고지이다. 아틀레틱 빌바오는 바스크 지방에서 태어나거나 훈련받은 선수만 고용하는 정책을 가지고 있다. 이 클럽은 레알 마드리드 및 FC 바르셀로나와 함께 1부 리그에서 한 번도 강등되지 않은 기록을 공유하고 있다.[40]
산 세바스티안의 레알 소시에다드는 아틀레틱과 바스크 더비를 펼친다. 사비 알론소는 레알 소시에다드에서 뛰었으며, 월드컵과 유럽 챔피언십을 모두 우승한 유일한 바스크 선수이다. 이 지역에는 라 리가 클럽인 SD 에이바르와 데포르티보 알라베스도 있다.
역대 가장 유명한 바스크 축구 선수로는 안도니 수비사레타가 있는데, 라 리가에서 622경기에 출전하여 최다 출전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6개의 리그 우승과 유럽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다. 오늘날 가장 잘 알려진 바스크 축구 선수로는 2번의 UEFA 유럽 선수권 대회와 1번의 월드컵 우승자인 사비 알론소가 있다. 아틀레틱과 레알 소시에다드 모두 스페인 리그에서 우승했으며, 1980년대 초반에 대회를 지배했는데, 바스크 클럽이 마지막으로 우승한 타이틀은 아틀레틱의 1984년 타이틀이다.
바스크 자치구에서는 축구, 농구, 사이클 등이 활발하다. 축구 클럽으로는 빌바오의 아틀레틱 빌바오(전국 리그 우승 8회·전국 컵 우승 24회), 산 세바스티안의 레알 소시에다드(리그 우승 2회·컵 우승 2회), 비토리아-가스테이스의 데포르티보 알라베스 등이 있으며, 모두 라리가에 소속되어 있다. 아틀레틱 빌바오는 바스크인만으로 선수단을 구성하는 것이 특징이며,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와 함께 1부 리그에서 강등된 적이 없는 3개 클럽 중 하나이다.[138]
농구 클럽으로는 비토리아-가스테이스의 사스키 바스코니아(리그 우승 1회·컵 우승 5회), 빌바오의 CB 빌바오 베리, 산 세바스티안의 기푸스코아 바스케트 클럽 등이 있으며, 모두 리가 ACB에 소속되어 있다.
참조
[1]
웹사이트
Contabilidad Regional de España
https://ine.es/prens[...]
[2]
웹사이트
Sub-national HDI - Area Database - Global Data Lab
https://hdi.globalda[...]
2023-07-01
[3]
논문
'The Basque Ulster': Navarre and the Basque Autonomy Question under the Spanish Second Republic
1974-09
[4]
웹사이트
Plaiaundi Ecology Park {{!}} Plans to know the Basque Country {{!}} Tourism E…
http://tourism.euska[...]
2013-02-22
[5]
웹사이트
El 28,2% de la población que vive en el País Vasco ha nacido fuera | País Vasco
http://www.elmundo.e[...]
elmundo.es
2010-04-26
[6]
웹사이트
Población extranjera por Nacionalidad, comunidades, Sexo Año.
https://www.ine.es/j[...]
Instituto Nacional de Estadística
2019-04-05
[7]
웹사이트
Macrobarómetro de octubre 2019, Banco de datos - Document 'Población con derecho a voto en elecciones generales y residente en España, País Vasco (aut.)
http://www.cis.es/ci[...]
2019-10
[8]
웹사이트
El largo camino del euskera
http://www.euskaltza[...]
Euskaltzaindia
2013-07-03
[9]
간행물
IV. Inkesta Soziolinguistikoa
Gobierno Vasco, Servicio Central de Publicaciones del Gobierno Vasco
2008
[10]
웹사이트
The Basque Language Gains Speakers, but No Surge in Usage – Basque Tribune
https://basquetribun[...]
[11]
서적
Euskal Herria Kartografian eta Testigantza Historikoetan
Euskal Editorea SL
[12]
웹사이트
Spain and its regions | Autonomy games
http://www.economist[...]
Economist.com
2007-09-20
[13]
웹사이트
Archivo de Resultados Electorales
http://www9.euskadi.[...]
.euskadi.net
2010-04-26
[14]
뉴스
El lugar más vigilado de Europa Occidental quiere más policías
http://www.publico.e[...]
2018-01-19
[15]
뉴스
Bildu pide menor presencia policial en Euskadi
http://www.publico.e[...]
2018-01-19
[16]
뉴스
El pueblo vasco se constituye en comunidad autónoma
http://elpais.com/di[...]
1979-07-18
[17]
웹사이트
The Statute of Autonomy of the Basque Country
http://www.basquecou[...]
2013-07-08
[18]
웹사이트
Statute of Autonomy of the Basque Country
http://www.boe.es/bu[...]
1978-12-18
[19]
뉴스
Azkuna: "Vitoria no es la capital de Euskadi"
http://www.elcorreo.[...]
2010-03-12
[20]
뉴스
Vitoria no será capital por ley, por ahora
http://www.elcorreo.[...]
2010-05-11
[21]
뉴스
El Parlamento Vasco muestra su apoyo al referéndum catalán
http://www.eitb.eus/[...]
2017-09-28
[22]
뉴스
La sociedad vasca empatiza con Cataluña, pero no aplicaría su modelo
http://www.eitb.eus/[...]
2017-10-09
[23]
뉴스
Batalla jurídica por la ley vasca de víctimas policiales
https://www.eldiario[...]
2018-07-31
[24]
웹사이트
Hauteskunde Orokorrak, 2019 A10. Emaitzak {{!}} EiTB Hauteskunde Orokorrak
https://www.eitb.eus[...]
2019-11-11
[25]
웹사이트
PP País Vasco {{!}} El PNV pierde un diputado en Bizkaia en favor del Partido Popular
https://www.lasexta.[...]
2019-11-13
[26]
웹사이트
PIB per cápita (PPC) por país y año (EU 28=100). 2005-2016
http://www.eustat.eu[...]
2018-01-31
[27]
웹사이트
Regional GDP - Eurostat
http://ec.europa.eu/[...]
2018-01-31
[28]
웹사이트
La economía de la CAV crecerá por encima del 2 % en 2019
https://www.eitb.eus[...]
2019-07-24
[29]
뉴스
Siemens Gamesa seeks second wind by targeting bigger markets
https://uk.reuters.c[...]
2018-04-12
[30]
뉴스
Euskadi es la comunidad que mejor ha resistido la crisis
http://www.eitb.eus/[...]
2015-04-13
[31]
뉴스
Ocho de las diez localidades menos afectadas son vascas
http://economia.elpa[...]
2015-04-13
[32]
웹사이트
Short-term statistical products
http://en.eustat.eus[...]
2018-01-31
[33]
웹사이트
Unemployment statistics - Statistics Explained
http://ec.europa.eu/[...]
2018-01-31
[34]
웹사이트
Tasas de actividad, paro y empleo por provincia (3996)
http://www.ine.es/ja[...]
2018-01-31
[35]
웹사이트
Regional Unemployment by NUTS2 Region
https://ec.europa.eu[...]
[36]
웹사이트
Deuda Pública del País Vasco
http://www.datosmacr[...]
2014-04-23
[37]
웹사이트
Deuda Pública de España
http://www.datosmacr[...]
2014-04-23
[38]
웹사이트
Passenger Traffic, Aircraft Movements and Cargo at Spanish Airports, 2016
http://www.aena.es/c[...]
[39]
뉴스
Is San Sebastián the best place to eat in Europe?
https://www.theguard[...]
2010-09-09
[40]
뉴스
Athletic Bilbao: How a proud Basque team is resisting globalization
http://www.spiegel.d[...]
Der Spiegel
2015-05-19
[41]
뉴스
2009 Riders and teams Database - Cyclingnews.com
http://www.cyclingne[...]
2009-08-14
[42]
뉴스
Azkuna: "Vitoria no es la capital de Euskadi"
http://www.elcorreo.[...]
2010-09-09
[43]
뉴스
Vitoria no será capital por ley, por ahora
http://www.elcorreo.[...]
2010-09-09
[44]
서적
萩尾ほか(2012)、pp.24-28
[45]
서적
バスク語のエリア(Herria)は必ずしも「国家」のニュアンスを持たないことから、ひらがなの「くに」を当てている。出典は関ほか(2008)、p.397。
[46]
서적
萩尾ほか(2012)、pp.49-53「海バスク」
[47]
서적
アリエール(1992)、p.15
[48]
웹사이트
BASQUE COAST UNESCO GLOBAL GEOPARK (Spain)
https://en.unesco.or[...]
2022-10-20
[49]
서적
萩尾ほか(2012)、pp.281-283
[50]
서적
大泉光一(1993)、p.16
[51]
서적
大泉陽一(2007)、p.2
[52]
서적
大泉陽一(2007)、p.3
[53]
웹사이트
Standard Climate Values. Bilbao Aeropuerto
http://www.aemet.es/[...]
2014-10-20
[54]
서적
石井(2013)、p.42
[55]
서적
石井(2011)、pp.45-46
[56]
문서
ここでは日本における慣用表記を考慮した名称を記載している。バスク州はバスク自治州と表記されることも多く、ビトリア=ガステイスはビトリア単独で表記されることも多い。
[57]
서적
関ほか(2008)、pp.340-343
[58]
서적
石井(2013)
[59]
문서
2013年のスペイン国立統計局(INE)の調査による。
[60]
웹사이트
El 28,2% de la población que vive en el País Vasco ha nacido fuera
http://www.elmundo.e[...]
2010-04-26
[61]
서적
関ほか(2008)、pp.357-360
[62]
서적
碇(2008)、p.40
[63]
논문
"La mezcla del pueblo vasco", ''Empiria: Revista de metodología de ciencias sociales'', ISSN 1139-5737, Nº 1, 1998, page. 121–180.
[64]
문서
1979年からバスク州を構成する3県の合計人口。
[65]
서적
Euskal Herria Kartografian eta Testigantza Historikoetan
Euskal Editorea SL
[66]
서적
川成ほか(2013)、p.196
[67]
서적
大泉陽一(2007)、p.30
[68]
서적
大泉光一(1993)、p.47
[69]
서적
立石ほか(2002)、p.170
[70]
서적
関ほか(2008)、pp.373-376
[71]
서적
大泉光一
[72]
서적
関ほか
[73]
서적
立石ほか
[74]
서적
関ほか
[75]
서적
関ほか
[76]
서적
立石ほか
[77]
서적
大泉光一
[78]
서적
渡部
[79]
서적
関ほか
[80]
서적
立石ほか
[81]
서적
渡部
[82]
서적
関ほか
[83]
서적
立石ほか
[84]
서적
渡部
[85]
서적
関ほか
[86]
웹사이트
Archivo de Resultados Electorales
http://www9.euskadi.[...]
Euskadi.net
2010-04-26
[87]
서적
大泉光一
[88]
서적
関ほか
[89]
서적
立石ほか
[90]
서적
関ほか
[91]
서적
大泉陽一
[92]
웹사이트
Spain and its regions | Autonomy games
http://www.economist[...]
エコノミスト
2010-04-26
[93]
서적
立石ほか
[94]
서적
関ほか
[95]
웹사이트
"バスク祖国と自由"(ETA)
https://www.moj.go.j[...]
公安調査庁
2014-10-10
[96]
뉴스
Eyewitness: ETA's shadowy leaders
http://news.bbc.co.u[...]
BBCニュース
2010-11-01
[97]
뉴스
Basque group Eta says armed campaign is over
http://www.bbc.co.uk[...]
BBCニュース
2011-10-20
[98]
웹사이트
The Statute of Autonomy of the Basque Country
http://www.basquecou[...]
2013-07-08
[99]
웹사이트
Statute of Autonomy of the Basque Country
http://www.boe.es/bu[...]
2013-07-08
[100]
서적
萩尾ほか
[101]
문서
[102]
문서
[103]
서적
萩尾ほか
[104]
서적
関ほか
[105]
뉴스
スペイン地方選、与党1勝1敗 緊縮策、続く綱渡り
https://www.nikkei.c[...]
2020-03-28
[106]
서적
萩尾ほか(2012)
[107]
서적
萩尾ほか(2012)
[108]
웹사이트
UPN recuerda a Chivite que dejó muy claro que la Transitoria Cuarta no tenía sentido
http://www.diarioden[...]
2012-03-06
[109]
서적
萩尾ほか(2012)
[110]
서적
萩尾ほか(2012)
[111]
서적
碇(2008)
[112]
뉴스
Betting for the future
http://www.bizkaiata[...]
2014-10-20
[113]
웹사이트
スペインの国土政策事情
https://www.mlit.go.[...]
2014-11-07
[114]
웹사이트
Spanish regional accounts
http://www.ine.es/en[...]
2014-11-07
[115]
웹사이트
GDP per capita by province in the Basque Autonomous Community, 1980-2009(a)
http://www.eustat.es[...]
2010-12-08
[116]
웹사이트
Paro en España
http://elpais.com/el[...]
2012-07-27
[117]
웹사이트
Deuda Pública del País Vasco
http://www.datosmacr[...]
2014-04-23
[118]
웹사이트
Deuda Pública de España
http://www.datosmacr[...]
2014-04-23
[119]
웹사이트
バスク・エネルギー・クラスター(BEC)とエネルギー・エージェンシーふくしま(EAF)との連携覚書の締結
https://www.pref.fuk[...]
福島県
2020-03-28
[120]
뉴스
Bilbao
http://www.urbanrail[...]
2014-10-20
[121]
뉴스
EIB lends €1bn for Basque Y high speed network - Railway Gazette
http://www.railwayga[...]
2012-06-28
[122]
뉴스
How to Arrive
http://www.euskoguid[...]
2014-10-20
[123]
뉴스
TRÁFICO DE PASAJEROS, OPERACIONES Y CARGA EN LOS AEROPUERTOS ESPAÑOLES 2012
http://www.aena-aero[...]
2012
[124]
웹사이트
サン・セバスティアン空港ページ
https://www.aena.es/[...]
Aena公式サイト
2023-02-22
[125]
뉴스
Foronda, el caso del 'mejor' aeropuerto vasco
http://www.elmundo.e[...]
2014-08-24
[126]
웹사이트
Port of Bilbao - Review and History
http://www.worldport[...]
2014-11-05
[127]
뉴스
Ferry Service to Portsmouth
http://www.bilbaopor[...]
2014-10-20
[128]
서적
El Libro Negro del Euskera
Ttarttalo
1998
[129]
문서
バスク語で初等教育・中等教育を行う学校。1960年頃に非合法的に運営が開始され、民主化後の1993年には約40%のイカストラが公立学校に編入、その他は私立学校として存続した。
[130]
서적
萩尾ほか(2012)
[131]
서적
萩尾ほか(2012)
[132]
서적
IV. Inkesta Soziolinguistikoa
Gobierno Vasco, Servicio Central de Publicaciones del Gobierno Vasco
2008
[133]
서적
萩尾ほか(2012)
[134]
문서
デウストはその後ビルバオと合併し、現在ではビルバオを構成する8区のうちの一つである。
[135]
웹사이트
History and Mission
http://www.deusto.es[...]
デウスト大学
2014-11-05
[136]
웹사이트
What is MU?
http://www.mondragon[...]
モンドラゴン大学
2014-11-05
[137]
서적
萩尾ほか(2012)
[138]
서적
萩尾ほか(2012)
[139]
뉴스
スポンサー探しが頓挫 スペインのエウスカルテルが19年間の歴史に幕
http://www.cyclowire[...]
cyclo wired
2013-08-20
[140]
뉴스
オレンジ集団終焉の時、さらばエウスカルテル・エウスカディ
http://www.cyclingti[...]
Cycling Time
2013-08-23
[141]
서적
高城
[142]
서적
高城
[143]
서적
高城
[144]
서적
高城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