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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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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세운상가는 일제강점기 소개공지였던 부지에 1960년대 후반 조성된 대규모 상가 건물이다. 1967년 현대상가 준공을 시작으로 전자제품 상가로 발전하며 전성기를 누렸으나, 강남 개발과 용산전자상가 조성 등으로 쇠퇴했다. 이후 철거 및 공원화 계획이 추진되었으나, 2011년 박원순 시장의 '보존형 개발' 발표 이후 리모델링을 거쳐 2017년 재개장하여 청년 창업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세운상가는 김수근의 설계로 건축되었으나, 설계와 다른 모습으로 건설되었고, 3층 보행로 단절 등의 문제점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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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
개요
세운상가
세운상가의 전경
로마자 표기Se-un Sang-ga
한글 표기세운상가
한자 표기世運商街
종류상업 시설
위치서울특별시 종로구 청계천로 159
상세 정보
개장1968년
설계자김수근
규모지상 17층, 지하 2층
면적135,480m²
특징주상복합 건물
역사
건설 배경서울의 근대화와 도시 재개발 계획의 일환
주요 기능전자상가, 주거 시설
과거한때 한국 전자 산업의 중심지였으나 1990년대 이후 쇠퇴
현재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재활성화 시도
논란 및 비판
도시 계획적 문제점청계천 주변 지역의 단절, 도시 경관 훼손
사회적 문제성인 비디오 판매 등 불법적인 상업 행위
철거 논의과거 철거 및 재개발 논의가 있었으나 보존 결정
참고 자료
관련 기사'세운상가'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 - 한겨레, 2004년 11월 16일
음란물 판매상, 사업 유지에 어려움 겪어 - 조선일보, 2003년 12월 11일

2. 역사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소이탄을 이용한 폭격에 대비하기 위해 일본은 주요 도시에 소개공지 사업을 시작했다. 1945년 4월부터 6월까지 경성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 소개공지대가 지정되었는데, 종묘 앞에서 필동까지의 현 세운상가 지대가 그중 하나였다. 그러나 일본의 패전으로 소개공지 조성 작업은 중단되었다.[7]

한국 전쟁 이후, 집을 잃은 사람들과 월남민들이 소개공지에 판잣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고, 사창가도 들어섰다. 1950년대부터 1968년까지 이 일대는 사창굴의 중심지였다.[8] 1952년 이곳은 도시계획 상 광로로 지정되었으나, 실제로 도로가 건설되지는 않았다.

1966년 김현옥서울특별시장으로 부임하면서 이 지역의 정비 사업이 본격화되었다. 김현옥 시장은 이 지역의 심각한 실태를 보고받고, 무허가 건물을 철거하고 대규모 상가 건물을 짓기로 계획했다.[9] 정부는 도로용지로 지정된 것을 이유로 반대했지만, 김현옥 시장은 '세계의 기운이 이곳으로 모이라'는 뜻으로 상가 이름을 세운(世運) 상가로 결정하고, 1966년 9월 8일 기공식을 거행했다.[10] 결국 정부도 이 지역을 재개발지구로 고시했다.[11]

1967년 7월 26일 현대상가를 시작으로 세운상가가 준공되었다.[13] 상층부 아파트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는 등 당시 최고급 주거 시설로 인기를 끌었으나, 1970년대 후반 강남 개발과 함께 인기가 시들해졌다.[14]

세운상가는 개인용 컴퓨터가 발전하던 1980년대에 전성기를 맞이하여, 8비트, 16비트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거래의 중심지가 되었다. 1987년 저작권법 도입 이전에는 소프트웨어 복사가 성행하기도 했다.[16] 그러나 용산전자상가가 조성되면서 전자제품 상권이 이전되고, 찾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15]

1995년부터 세운상가를 철거하고 공원화하려는 계획이 발표되었으나, 보상비 문제와 IMF 외환 위기, 인터넷 거래 활성화 등으로 철거는 미루어지고 상가는 더욱 쇠락해 갔다.[17] 2003년 청계천 복원 사업으로 청계천 주변 상권이 정비되면서, 세운상가 일대 상권은 더욱 쇠락했다.

2006년 오세훈 시장은 세운상가 철거와 공원화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2008년 현대상가부터 철거가 시작되었다.[15] 그러나 2011년 박원순 시장은 세운상가를 보존하고 리모델링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변경했다.[15]

2017년 9월 19일, 세운상가는 리모델링을 거쳐 재개장되었다. 청년 창업·벤처기업과 기술 장인들의 협업을 통해 도심 제조업의 전진기지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15]

2. 1. 소개공지 조성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폭격기를 활용한 무차별 폭격에 대한 대비가 중요해졌다. 특히 소이탄은 화재에 취약한 목조 건물이 많았던 일본에 큰 위협이었다.[6]

1945년 3월 10일 도쿄 대공습 이후, 일본은 폭격에 대비하기 위해 건물 대신 공터를 조성하는 소개공지 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은 식민지였던 한반도에도 시행되어 1945년 4월부터 6월까지 경성, 부산, 평양, 대전, 대구 등 주요 도시에 소개공지 또는 소개공지대가 지정되었다. 경성부 내 소개공지대 중 하나가 종묘 앞에서 필동까지 너비 50m, 길이 1180m의 현 세운상가 지대였다. 제2차 소개작업이 시작되었으나 일본의 패전으로 중단되었다.[7]

한국 전쟁 이후, 소개공지에는 집을 잃은 이재민과 월남민들이 판잣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고, 사창가도 들어섰다. 1950년대부터 1968년까지 이 일대는 속칭 종삼(鐘三) 또는 서종삼이라 불리는 사창굴의 중심지였다.[8] 1952년 이곳은 도시계획 상 광로로 지정되었으나, 실제로 도로가 건설되지는 않았다.

2. 2. 개발

1966년 김현옥서울특별시장으로 부임하였다. 김현옥 시장은 부임 전 중구청 산업과 상공계장 이을삼으로부터 이 지역의 심각한 실태를 보고받았다. 이에 도시계획과에 지구 정리방안 작성을 지시하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다.[9] 이 지역 정비사업은 종로구중구에 분담되어 있었으나, 시청 소관으로 이전되어 김현옥 시장이 직접 지휘하게 되었다. 김 시장은 1966년 7월 초 종로구·중구 양 구청장에게 무허가 건물 철거를 지시했고, 8월까지 철거작업을 완료했다.[9]

서울시는 이 지역에 대규모 상가 건물을 짓기로 계획했지만, 정부는 도로용지로 지정된 것을 이유로 상가 건설을 반대했다. 그러나 청계천에 인접한 현재의 아세아전자상가 위치에서 9월 8일 기공식이 거행되었다. 김현옥은 기공식에서 '세계의 기운이 이곳으로 모이라'는 뜻으로 상가 이름을 세운(世運) 상가로 결정했다.[10] 결국 정부도 이 지역을 재개발지구로 고시했다.[11]

1966년 11월 26일, 세운상가가 지어질 소개공지 좌우측에 도로명이 부여되었다. '대한극장앞(중구 충무로4가 125)~종묘동측(종로구 훈정동 93)' 구간은 '''번영동로'''(繁榮東路), '대한극장앞(중구 충무로4가 125)~종묘서측(종로구 훈정동 85)' 구간은 '''번영서로'''(繁榮西路)로 지정되었다.[12] 이 도로명은 1984년 11월 7일 폐지되었다.

2. 3. 준공과 운영

1968년 11월 삼풍상가를 시찰하는 박정희 대통령과 김현옥 서울시장


세운상가 중 현대상가는 1967년 7월 26일 최초로 준공되었다. 서울시는 점포 2천 개, 호텔 915개를 수용하는 맘모스 상가아파트를 건설하기 위해 동양 최대 규모인 시멘트 87만 부대, 목재 143만 사이, 철근 7천t의 자재가 들어갔다고 자랑하면서, 서울의 상가 중심지가 종로 - 명동 - 소공동 - 무교동에 이어 이 곳으로 옮겨올 것이라고 예상했다.[13] 상층부에 건설된 아파트의 인기도 대단해서, 사회 저명인사들이 다투어 입주했고, 시공 때부터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1971년 한강맨션이 건설되기 전까지 세인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14] 그러나 1970년대 후반부터 강남이 개발되고 서울 곳곳에 새로운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세운상가 아파트 입주자들은 그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하기 시작했다. 상가를 찾는 발길도 뜸해지면서 1979년에는 재개발 계획이 처음으로 추진되기도 했다.[15]

세운상가는 서울의 유일무이한 종합 가전제품 상가로도 발전했다. 특히 1980년대 말 개인용 컴퓨터의 발전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한국의 8비트와 이후 16비트 컴퓨터, 그리고 소프트웨어 대부분이 세운상가에서 거래되었다. 1987년 저작권법이 도입되기 전 한동안 소프트웨어를 복사하는 복사점이 성행했다. 세운상가 사람들이 모이면 미사일이나 잠수함도 만들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16] 이후 1987년 정부가 용산역 서부청과물시장을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용산전자상가를 조성해 세운상가의 전자상을 이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실제로도 많은 수가 이전하였고, 일부는 이에 반발하고 그 자리를 지켰지만 세운상가를 찾는 사람은 더욱 줄어들었다.[15]

2. 4. 쇠퇴와 철거 계획

국민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강남 개발과 도심 정비가 이루어지면서, 상가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공원을 조성하자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서울시에서도 1995년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세운상가를 철거하고 그 부지를 공원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17] 하지만 막대한 보상비 문제로 철거는 계속 미루어졌다. 그 사이 세운상가는 IMF 외환 위기, 2000년대 초 인터넷 거래 활성화 등의 위기를 겪으며 더욱 쇠락해 갔다.[15]

2003년 청계천 복원 사업이 진행되면서 청계천 주변 상가의 대규모 정비가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청계천을 떠나게 된 상인들은 송파구가든파이브로 이전하였고, 이 일대 상권은 더욱 쇠락하게 되었다. 청계천 복원 과정에서 종로세운상가와 청계상가를 잇던 공중 보행데크가 철거되었고, 뒤이어 을지로를 지나던 보행데크도 철거되어 3층의 보행통로는 네 조각이 났다.

2006년 취임한 오세훈 시장은 세운상가의 철거와 일대의 공원화를 공약으로 발표했다. 상가는 상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08년 12월 17일 북쪽에 있는 현대상가부터 철거가 시작되었고, 세운전자상가는 '세운초록띠공원'이라는 이름의 공원으로 재탄생했다. 2010년 청계천 남쪽의 청계상가 철거에 들어가 2012년까지는 퇴계로까지의 모든 상가를 철거할 계획이었으나, 금융위기의 여파로 철거되지 않았다.[15] 현대상가 이외는 기존의 철거 계획이 백지화됨에 따라 도시재생을 진행하는 방안이 마련되어, 영업을 정상화하게 되었다.

2011년 취임한 박원순 시장은 2014년 세운상가를 철거하지 않고 리모델링하는 '보존형 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후 3년여간의 공사를 거쳐 2017년 9월 19일, 세운상가가 정식 재개장되었다. 리모델링된 세운상가에는 청년 창업·벤처기업이 입주하고, 이들이 30∼40년간 상가에서 활동한 기술 장인들과 협업하도록 해 도심 제조업의 전진기지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15]

2. 5. 도시재생과 재개장

중구는 2006년에 960m 높이에 220층 규모의 투어 금융 허브 센터 건설 계획을 제안했지만,[3] 서울 중심부의 높이 제한[5]으로 인해 이 프로젝트는 중단되었다.[4]

3. 건축

김수근이 세운상가 설계를 맡았다. 현대건설, 대림산업, 삼풍건설산업, 풍전산업, 신성공업, 진양종합건설 등 6개 기업이 참여하여 북쪽부터 차례대로 현대상가(현 종로세운상가), 아세아상가, 청계상가, 대림상가, 삼풍상가(현 삼풍넥서스빌딩), 풍전호텔(현 HOTEL PJ), 신성상가, 진양상가를 건설했다.

3. 1. 설계

김수근이 세운상가의 설계를 맡았다. 건물 1층은 자동차 통로와 주차 공간으로 사용하고, 3층에는 인공 데크를 만들어 주변에 상가를 배치하여 보행자와 차량의 동선을 분리했다. 종묘에서 필동 사이 1km 구간은 보행자 통로를 연결하여 입체화했다. 또한 상가 위층 아파트 부분에는 유리로 덮는 아트리움 공간을 도입하는 설계도 진행되었다.[18]

이러한 설계에 따라 이 지역 개발이 활성화되었고, 현대건설, 대림산업, 삼풍건설산업, 풍전산업, 신성공업, 진양종합건설 등 6개 기업이 참여했다. 이들 기업은 북쪽부터 차례대로 현대상가(현 종로세운상가), 아세아상가, 청계상가, 대림상가, 삼풍상가(현 삼풍넥서스빌딩), 풍전호텔(현 HOTEL PJ), 신성상가, 진양상가를 건설했다.

3. 2. 건설

상가 건설 결과는 설계와 많이 달랐다. 3층에 있다던 공중보행도로는 동서 두 줄로 가다가 을지로를 건널 때 잠깐 한 줄이 되고, 을지로를 건넌 뒤 다시 두 줄이 되었다가 마른내길에서 끊어졌다. 마른내길이 이어지지 못하자 1km에 이르는 공중보도도 중간에 끊겨 버린 것이다. 건물에 유리덮개를 설치하는 것도 실현되지 않아 서울시내에서 투박하고 위압감을 주는 건물로 변해 버렸다. 철저히 보차도 분리를 하겠다던 당초의 계획과 달리 지상 1층에도 보행자가 다니게 되어 3층의 보행자 도로는 그 의미를 상실했고, 상가 내에 공공시설을 설치하고 옥상에는 인공정원을 두겠다는 계획도 무산되었다.[19] 설계자 중 한 명이었던 윤승중은 1994년에 밝힌 회고에서 자신들은 상가의 기본설계만 하고 세부 설계는 담당하지 않았으며, 시공 주체가 서울시여야 했는데 8개의 기업군으로 분할되어 기업의 논리에 의해 계획이 변경되었고, 당시 시대가 자신들의 계획에 따라오지 못했다는 점을 들었다. 윤승중은 이 회고에서 계획이 10년만 더 늦게 착수되었어도 이상이 실현되었을 것이라고 밝혔다.[20]

3. 3. 문제점

세운상가 건설 결과는 당초 설계와 많이 달랐다. 3층에 설치될 예정이었던 공중보행도로는 을지로를 건널 때 잠깐 한 줄이 되었다가 마른내길에서 끊어졌다. 이로 인해 1km에 이르는 공중보도는 중간에 끊겨 버렸다. 건물 유리덮개 설치도 무산되어, 세운상가는 투박하고 위압적인 건물로 인식되었다.[19]

당초 계획과 달리 지상 1층에도 보행자가 다니게 되면서 3층 보행자 도로는 의미를 상실했고, 상가 내 공공시설 설치 및 옥상 인공정원 조성 계획도 무산되었다.[19]

설계자 중 한 명이었던 윤승중은 1994년 회고에서, 자신들은 기본설계만 담당했고 세부 설계는 서울시가 아닌 8개 기업군에 의해 변경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시대 상황이 계획을 따라오지 못했으며, 10년만 늦게 착수되었어도 이상이 실현되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20]

4. 논란

(이전 출력이 없으므로, 수정할 내용이 없습니다. 원본 소스, 요약 등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주시면 '세운상가' 문서의 '논란' 섹션에 대한 위키텍스트를 작성해드리겠습니다.)

5. 기타 정보

세운상가는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하며, 상점마다 운영 시간이 다를 수 있다. 일요일과 공휴일은 휴무이다. 세운상가 주소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계천로 159 (03194)이다. 종로3가역 1, 3, 5호선을 이용해 방문할 수 있다.

6. 갤러리

대림상가 간판


세운상가 전경

참조

[1] 간행물 Don't Repeat Mistake of 'Se'un Sangga' http://www.hani.co.k[...] 2004-11-16
[2] 간행물 Porn Vendors Finding it Hard to Keep Things Up http://english.chosu[...] 2003-12-11
[3] 웹사이트 "세운상가에 150층 친환경 빌딩" http://news.naver.co[...]
[4] 웹사이트 "[전국 마천루 건축 붐] 세운상가에 220층 … 용산 역세권에 140층 … '구름이 발밑에'" http://www.hankyung.[...] 2007-02-21
[5] 웹사이트 "세운상가에 150층 친환경 빌딩" http://news.naver.co[...]
[6] 서적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1 한울
[7] 서적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1 한울
[8] 서적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1 한울
[9] 서적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1 한울
[10] 서적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1 한울
[11] 간행물 서울도시계획재개발지구설정 http://contents.arch[...] 건설부고시 1966-10-17
[12] 간행물 서울특별시고시 제1093호 http://event.seoul.g[...] 1966-11-30
[13] 뉴스 서울에 또 하나의 名物 世運商街아파트 http://dna.naver.com[...] 동아일보 1967-07-26
[14] 서적 금강개발산업20년사
[15] 웹사이트 http://m.news.naver.[...]
[16] 저널 40년 전통 세운상가 ‘철거 별곡’ http://weekly.donga.[...]
[17] 뉴스 세운상가 부지 公園化 확정 http://dna.naver.com[...] 동아일보 1995-02-04
[18] 저널 서울市 不良地區再開發의 一例 : 宗廟-南山·三街-四街地區
[19] 서적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1 한울
[20] 저널 특집 - 주상복합건축 : 세운상가 아파트 이야기 http://www.dbpia.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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