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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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자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성인이 되었음을 나타내기 위해 본명 외에 사용하던 이름이다. 중국에서 유래하여 한국, 베트남, 일본 등에서 사용되었으며, 남자는 20세에, 여자는 혼인할 때 자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자는 본명과 함께 사용되었으며, 동년배나 아랫사람은 자로 불렀다. 자는 본명의 의미를 보충하거나 확장하는 방식으로 지어졌으며, 존칭이나 출생 순서를 나타내는 글자가 사용되기도 했다. 20세기 이후 자를 사용하는 문화는 점차 쇠퇴하여 현대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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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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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언어 | 중국어 |
문자 종류 | 한자 |
뜻 | 글자 |
용법 | 성인이 된 후에 사용하는 이름 본명 외에 사용하는 이름 일종의 별명 |
상세 정보 | |
정의 | 동아시아에서 성인이 된 남자가 가지는 이름. 자(字)는 보통 스승이나 어른이 지어주는 이름으로, 본명과는 별도로 사용됨. 현대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음. |
기원 | 주나라 시대의 관례에서 유래 |
목적 | 본명을 함부로 부르지 않도록 하기 위함. 존경의 의미를 담아 자를 사용. |
사용 시기 | 성인이 된 후 관례를 치를 때 자를 받음. 스승이나 존경하는 사람이 자를 지어줌. |
구성 | 보통 두 글자로 이루어짐. 본명의 의미와 관련된 글자를 사용. 이름에 대한 설명을 담기도 함. |
다른 이름과의 관계 | 명(名):본래 이름 (부모가 지어줌). 자(字):성인이 된 후 사용하는 이름. 호(號):스스로 짓거나 다른 사람이 지어주는 별호. |
한국 | 한국에서는 조선시대 양반들이 사용 |
일본 | 일본에서는 아자나(일본어: 字 (あざな))라고 불림 |
2. 역사
역사적으로 중국에서는 개인에게 고유한 이름으로 성씨(씨), 휘(이름), 자의 세 가지 요소를 사용했다. 예기 곡례편에는 "남자는 스무 살에 관을 쓰고 자를 가졌고, 여자는 열다섯 살에 간자시를 하고 자를 가졌다"는 기록이 있다.[7] 성년이 된 사람을 부를 때는 원칙적으로 자를 사용했다.
일본에서는 대부분의 중국인이 "성-휘" 조합으로 알려져 있지만, 민자건(휘는 손), 오자서(휘는 원), 항우(휘는 적), 제갈공명(휘는 량), 사마중달(휘는 의), 원언도(휘는 탐), 백낙천(휘는 거이), 장개석(휘는 중정) 등 "성-자"로 불리는 예외적인 인물도 있다.
휘는 함부로 사용되는 것을 꺼렸기 때문에, 동시대 사람에게는 친족이나 주군 등 특정 윗사람만이 휘를 사용했고, 그 외의 사람이 휘를 부르는 것은 매우 무례한 행동으로 여겨졌다. 반대로, 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자를 부르는 것은 존경의 표현이었다. 삼국지연의 번역본에서 유비가 제갈량을 "공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종종 보이지만, 관우, 장비를 각각 운장, 익덕이라고 부르는 것은 거의 없다. 겸손한 태도로, 본인은 자신의 휘로 자칭하고, 자를 자칭하지 않았다.
주로 자만으로 불리고 휘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을 '''이자행'''("이자행어세"의 약자)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명나라 정승 양사기의 "사기"는 자이며, 휘는 "우"이지만, "양우"라고 불리는 일은 거의 없다.
관직에 취임한 인물은 관직명으로 부르는 것이 우선시되었다(제갈량이라면 "제갈승상"). 그 외에 임지에서 부르기도 했다(유종원이라면 "유유주"). 이 경우 존경의 호칭은 성+공(장소라면 "장공")이다. 친밀한 사이가 아니면 자로 부르는 것은 휘만큼은 아니지만 다소 무례한 행동으로 여겨졌다.
자는 휘를 부르지 않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므로, 상대방에게 "유-비-현덕"과 같이 성·휘·자를 연결하여 부르는 일은 없다. 그러나 문서에서 인물의 정보를 표시하는 경우 "적관·성·휘·자"를 병렬하는 관례가 있었다. 예를 들어 『한서』 권72에는 "낭야에 또 기순왕사 있고, 제에는 즉 설방자용, 태원에는 즉 순월신중..."이라는 기술이 있으며, 사고주에서 "그 사람의 본토 및 성, 명, 자를 병렬하는 것이니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 외에도 조비의 "전론논문"의 "지금의 문인, 노국'''공융문거''', 광릉'''진림공장''', 산양'''왕찬중선'''..."과 『삼국지』 "제갈량전"의 "박릉 최주평, 영천'''서서원직'''" 등이 있다.
2. 1. 기원과 변천
자는 원래 중국에서 유래한 풍습으로, 예기에 따르면 남자는 20세에 성년례를 치르면서 자를 받았고, 여자는 혼인할 때 자를 받았다.[1] 초기에는 한 글자로 된 자가 많았으나, 진나라 이후로는 두 글자로 된 자가 일반화되었다.[1] 자는 본명(휘)과 함께 사용되었으며, 동년배나 아랫사람은 자로 상대를 불렀다. 반면 윗사람이나 친족은 본명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3]북제의 안지추는 이름의 목적이 한 사람을 다른 사람과 구별하는 것이라면, 자는 그 사람의 도덕적 품성을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는 그 사람의 이름의 의미와 관련이 있었으며, 그 관계는 동의어, 관련 사안, 또는 드물지만 반의어 관계였다. 예를 들어 장제스의 이름()과 자()는 모두 주역 16괘인 "예(豫)"에서 따온 것이다.[4]
또한 남자를 존경하는 칭호인 "자(子)"()를 이음절 수의 첫 번째 글자로 사용하기도 했다. 공손교의 자는 자산()이었고, 두보의 자는 자미()였다.
집안 형제들 중 출생 순서를 나타내는 글자를 첫 번째 글자로 사용하기도 했는데, 공자(이름: )는 중니()라는 자를 받았는데, 여기서 첫 번째 글자 "중(仲)"은 그가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음을 나타낸다. 첫째는 "백(伯)"(), 둘째는 "중(仲)"(), 셋째는 "숙(叔)"(), 넷째는 "계(季)"()를 사용했다. 손견 장군의 네 아들은 손책 (), 손권 (), 손이 ()와 손광 ()이었다.[5]
20세기 이후, 자를 사용하는 문화는 점차 쇠퇴하여 현대 중국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20세기 이전에 한국, 베트남, 그리고 일본도 자를 사용했다. 이 관습은 청나라가 중국을 정복한 후 일부 몽골인과 만주족에 의해서도 채택되었다.
역사적으로 중국인은 개인에게 특유한 이름으로서 '''성씨'''(씨)와 '''휘'''(이름)와 '''자'''의 세 가지 요소를 가졌다. 『예기』곡례편에 "남자는 스무 살에 관을 쓰고 자를 가졌다", "여자는 열다섯 살에 간자시를 하고 자를 가졌다"고 하였다.[7]
주로 자만으로 불리고, 휘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을 '''이자행'''("이자행어세"의 약자)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명대(明代)의 정승 양사기의 "사기"는 자이며, 휘는 "우"이지만, "양우"라고 불리는 일은 거의 없다.
3. 자를 짓는 방법
자는 본명(휘)의 의미와 관련된 글자를 사용하거나, 출생 순서를 나타내는 글자를 사용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어졌다.
진나라 이전에는 한 글자였으나, 진나라 이후 20세기까지는 대부분 두 글자로 이루어졌다.[1] 남성은 성년례를 치른 후, 즉 20세가 되면 자를 받았다.[1] 예기에 따르면, 성인이 된 남자를 이름(휘)으로 부르는 것은 동년배 간에 무례한 행동으로 여겨졌다.[3] 따라서 이름은 윗사람이 부를 때 사용하고, 자는 동년배가 공식적인 자리나 글에서 서로를 부를 때 사용했다.
자를 짓는 방법 중 하나는 남자를 존경하는 칭호인 '자(子)'()를 첫 글자로 사용하는 것이었다.
3. 1. 본명과의 연관성
자는 종종 본명(휘)의 의미를 보충하거나 확장하는 방식으로 지어졌다. 경전이나 고사에서 유래한 글자를 사용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조조의 자 '맹덕(孟德)'은 『순자』의 '부시지위덕조(夫是之謂德操)'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1]다음은 본명과 자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몇 가지 예시이다.
- 휘와 동의어인 글자를 사용한 예
- 반고(맹견) - 고(固)와 견(堅)은 동의어이다.
- 제갈량(공명) - 량(亮)과 명(明)은 동의어이다.
- 문천상(송서) - 상(祥)과 서(瑞)는 동의어이다.
- 휘와 반대 의미의 글자를 사용한 예
- 조쇠(자여) - 쇠(衰)와 여(余)는 반의어이다.
- 여몽(자명) - 몽(蒙)과 명(明)은 반의어이다.
- 주희(원회) - 희(熹)와 회(晦)는 반의어이다.
- 역경에 근거를 둔 예
- 조운(자룡) - 『역경』 건괘의 '동성상응(同聲相應)하고, 동기상구(同氣相求)한다. 운(雲)은 룡(龍)을 따르고, 풍(風)은 호(虎)를 따른다. (략) 즉 각기 기류(類)를 따른다'라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자(子)'는 남자의 존칭이다.
- 고인에 연유한 예
- 사마상여(장경) - 인상여에서 취했다.
- 전예(국양) - 예양에서 취했다.
- 염약거(백시) - 백시를 지은 응거에서 취했다.
- 기타 관련성이 있는 예
- 곽회(백제) - 회수, 제수는 하천의 이름이다.
- 악비(붕거) - 붕새가 날아오르는 것에서 유래했다.
두목(목지), 호적(적지)처럼 휘와 자에 같은 글자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며, 사마덕문(덕문), 곽자이(자이), 사마도자(도자), 맹호연(호연)처럼 휘와 자가 완전히 같은 예도 있다. 왕유(마힐)의 경우처럼 휘와 자를 연결하면 유마힐(비말라키르티)이라는 불교 경전 속 인물의 이름이 되는 특이한 경우도 있다.
3. 2. 출생 순서
집안에서 형제들의 출생 순서를 나타내는 글자를 자의 첫 글자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름이 공구()인 공자에게는 중니()라는 자가 주어졌는데, 여기서 첫 번째 글자 "중(仲)"은 그가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음을 나타낸다.[5]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글자는 첫째는 "백(伯)"(), 둘째는 "중(仲)"(), 셋째는 "숙(叔)"(), 넷째는 "계(季)"()인데, 가족에게 아들이 셋 이상인 경우 막내를 지칭하는 용어였다.[5] 손견 장군의 네 아들은 손책(, Bófú), 손권(, Zhòngmóu), 손익(, Shūbì), 손광(, Jìzuǒ)이었다.[5]항렬자의 예는 다음과 같다.
형제/자매 수 | 첫째 | 둘째 | 셋째 | 넷째 | 다섯째 | 여섯째 | 일곱째 | 여덟째 |
---|---|---|---|---|---|---|---|---|
두 형제(자매) | 백(맹·원·장) | 중 | ||||||
세 형제(자매) | 백(맹·원·장) | 중 | 계(치) | |||||
네 형제(자매) | 백(맹·원·장) | 중 | 숙 | 계(치) | ||||
다섯 형제(자매) | 백(맹·원·장) | 중 | 숙 | 계(치) | 유(치) | |||
여덟 형제(자매) | 백(맹·원·장) | 중 | 숙 | 계(치) | 현 | 혜 | 아 | 유(치) |
예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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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 기타
공손교(자산)처럼 남자를 존경하는 칭호인 '자(子)'()를 붙이기도 했다.[1] 드물게 두목(목지)처럼 본명과 같은 글자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4. 자의 사용
는 전통적으로 20세가 되면 중국 남성에게 주어지는 이름으로, 성년례를 기념하는 의미였다. 결혼할 때 여성에게 주어지기도 했다.[1] 예기에 따르면, 남자가 성인이 된 후 동년배가 그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었다.[3] 따라서 이름은 자신과 윗사람을 위해 남겨두고, 자는 동년배가 공식적인 자리나 글에서 서로를 지칭할 때 사용했다.
일반적으로 진나라 이전의 자는 한 글자였으며, 진나라부터 20세기까지는 대부분 두 글자로 이루어졌다.[1] 자는 종종 그 사람의 이름의 의미와 관련이 있었으며, 그 관계는 동의어, 관련 사안, 또는 드물지만 반의어 관계였다. 예를 들어, 장제스의 이름(, 로마자 표기 Chung-cheng)과 자(, 로마자 표기 Kai-shek)는 모두 주역 16괘인 "예(豫)"에서 따온 것이다.[4]
자를 짓는 또 다른 방법은 남자를 존경하는 칭호인 동음이의자 "자(子)"()를 이음절 자의 첫 번째 글자로 사용하는 것이다. 공손교의 자는 이었고, 두보의 자는 였다. 또한 자신의 집안에서 형제들 중 출생 순서를 나타내는 글자를 첫 번째 글자로 사용하여 자를 짓는 것도 일반적이었다. 이름이 인 공자에게는 라는 자가 주어졌는데, 여기서 첫 번째 글자 "중(仲)"은 그가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음을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글자는 첫째는 "백(伯)"(), 둘째는 "중(仲)"(), 셋째는 "숙(叔)"(), 넷째는 "계(季)"()인데, 가족에게 아들이 셋 이상인 경우 막내를 지칭하는 용어였다. 손견 장군의 네 아들은 손책 (, Bófú), 손권 (, Zhòngmóu), 손이 (, Shūbì), 손광 (, Jìzuǒ)이었다.[5]
20세기 이전에 한화된 한국, 베트남, 일본 사람들도 그들의 자로 불렸다.
4. 1. 호칭
성인이 된 사람은 주로 자로 불렸다. 친족이나 윗사람은 본명(휘)을 사용했고, 동년배 사이에서는 자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3] 공식적인 자리나 글에서는 자를 사용하는 것이 예의였다.[1]예를 들어 제갈량의 경우, '제갈'은 성, '량'은 휘이며, 자는 '공명'이다. 휘는 함부로 사용되지 않았고, 주로 친족이나 주군 등 윗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휘를 부르는 것은 매우 무례한 행동으로 여겨졌다.[7] 반대로 윗사람이 자로 부르는 것은 존경의 표현이었다.
주로 자만으로 불리고 휘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경우를 '이자행'(이자행어세의 약자)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명나라 정승 양사기의 '사기'는 자이며, 휘는 '우'이지만, '양우'라고 불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인물이 관직에 있을 때는 관직명으로 부르는 것이 우선시되었다. (제갈량이라면 '제갈승상') 그 외에 임지명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라면 '유유주')
상대방에게 "유비현덕"과 같이 성·휘·자를 연결하여 부르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문서에서 인물의 정보를 표시하는 경우 "적관·성·휘·자"를 병렬하는 관례가 있었다.
출가한 승려는 법명 외에 '법자'라는 자를 가지는 경우가 있었다. 이 경우 법자·법명의 순서로 나열하는 독특한 표기가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임제 의현은 '의현'이 법명이고 '임제'가 법자이다.
4. 2. 현대 사회에서의 자
현대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 국가에서는 자를 사용하는 문화가 거의 사라졌다.[1] 다만, 역사적 인물이나 문학 작품 속에서는 여전히 자가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5. 주요 인물의 자
- 이순신: 여해(汝諧) - 조선 중기의 장군으로, 임진왜란에서 큰 공을 세웠다.[7]
- 이황: 경호(景浩) -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로, 퇴계라는 호로 더 잘 알려져 있다.[7]
- 이이: 숙헌(叔獻) -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이자 정치가로, 율곡이라는 호로 더 잘 알려져 있다.[7]
- 김구: 백범(白凡) -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을 역임한 독립운동가.[7]
- 안중근: 응칠(應七) - 대한제국 말기의 독립운동가로,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7]
- 윤봉길: 매헌(梅軒) -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로,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폭탄 투척 의거를 일으켰다.[7]
참조
[1]
서적
Chinese History: A New Manual
Harvard University Asia Center
2018
[2]
웹사이트
Names of Persons and Titles of Rulers
http://www.chinaknow[...]
[3]
서적
Lǐjì
[4]
웹사이트
Language Log » Sun Yat-sen, Chiang Kai-shek, Mao Zedong
https://languagelog.[...]
2024-08-05
[5]
서적
(孫破虜吳夫人,吳主權母也。 ... 與弟景居。 ... 生四男一女。) Sanguozhi vol. 50.
[6]
서적
A Good Son is Sad If He Hears the Name of His Father: The Tabooing of Names in China as a Way of Implementing Social Values
Routledge
2017
[7]
문서
禮記 曲禮上(礼記 曲礼上) l.28
s:禮記/曲禮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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