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기사》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후고 폰 호프만슈탈과 협력하여 작곡한 오페라이다. 1911년 드레스덴에서 초연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18세기 빈을 배경으로 귀족 사회의 몰락과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그린다. 원수 부인, 옥타비안, 옥스 남작 등 매력적인 등장인물과 왈츠를 비롯한 아름다운 음악, 특히 '장미의 기사 삼중창'과 '장미의 기사 왈츠'는 이 작품의 백미로 꼽힌다.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중 가장 인기 있는 작품 중 하나이며, 1926년에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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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오페라 - 푸른 수염의 성 바르토크가 발라주 대본으로 작곡한 1막 오페라 《푸른 수염의 성》은 푸른 수염과 그의 아내 유디트가 7개의 문이 있는 성에서 겪는 심리적 갈등을 상징적으로 다룬다.
《장미의 기사》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후고 폰 호프만슈탈이 협력하여 만든 오페라이다. 1909년 초부터 1910년까지 작곡되었으며, 처음에는 가벼운 희극으로 만들려고 했으나, 두 사람이 논의한 끝에 지금의 형태로 완성되었다.[6]
"장미의 기사"라는 제목은 약혼 신청을 할 때 은 장미꽃을 전달하는 사람을 뜻하는데, 이는 실제 풍습이 아니라 호프만슈탈이 만들어낸 것이다.[6]
음악적으로는 모차르트 오페라를 목표로 했으며, 마리아 테레지아 시대 빈을 배경으로 로코코 양식을 담았다. 《피가로의 결혼》과 비슷한 줄거리를 가지며, 이전 작품인 《살로메》나 《엘렉트라》와는 다르게 친근하고 쉬운 음악으로 쓰였다. 바그너처럼 극적인 노래 대신 모차르트처럼 서정적인 노래를 사용했다.[6]
이 오페라는 약 3시간 20분 길이의 큰 작품으로, 귀족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코미디이지만 연주하기는 어렵다. 주요 등장인물 4명 중 3명은 1막에, 1명은 2막에 나오며, 3막에서 모두 모여 이야기가 끝난다. 발레는 없고, 합창도 큰 역할은 없다.
슈트라우스는 이탈리아 오페라를 싫어하는 마음을 작품에 담았다. 악당 발차키 외에는 테너 역할이 거의 없고, 악당 두 명은 이탈리아 사람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는 합스부르크 제국이 북부 이탈리아를 다스렸던 당시 상황을 보여준다.
2. 1. 작곡 배경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1899년 베를린에서 후고 폰 호프만슈탈을 처음 만났다. 이후 슈트라우스는 호프만슈탈의 희곡 ''엘렉트라''(1903)에 깊은 인상을 받아, 이를 오페라로 각색하여 1909년 1월 25일에 초연했다.[6] 이 과정에서 그들은 좀 더 희극적인 분위기의 새로운 프로젝트에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슈트라우스가 호프만슈탈의 희극 ''크리스티나의 귀향''을 거절하고, 몰리에르의 희곡들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호프만슈탈은 바이마르에서 하리 그라프 케슬러를 방문했다.[6] 1909년 2월 며칠 동안, 호프만슈탈과 케슬러는 케슬러가 파리에서 본 1907년 오페레타, 극작가 루이 아르튀스와 작곡가 클로드 테라스의 ''L'Ingénu libertin''에서 영감을 얻어 시나리오를 초안했다.[7]
슈트라우스는 줄거리 개요를 승인했고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었다. 1909년 2월에서 3월 사이에 1막의 대본이 쓰여졌고, 5월에 음악이 완성되었다. 여름 동안 슈트라우스는 2막을 작곡하면서, 호프만슈탈과 협력하여 더 많은 코미디와 반전을 추가했다. 1910년 봄까지 첫 두 막이 인쇄되었고 호프만슈탈은 대본을 완성했다. 슈트라우스는 1910년 9월 26일에 마지막 막을 완성했다.[6]
이처럼 『장미의 기사』는 슈트라우스와 호프만슈탈 두 거장의 수년간에 걸친 풍요로운 작품의 실질적인 첫 번째 공동 작업이 되었다. 작곡은 1909년 초부터 1910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당초 호프만슈탈의 발안으로 남장을 한 여성 가수를 기용한 가벼운 희극적인 작품으로 계획되었지만, 두 사람의 방대한 왕복 서신을 중심으로 한 논의 끝에 최종적으로 현재의 형태로 정리되었다.
2. 2. 초연과 평가
1911년1월 26일, 드레스덴 궁정 가극장(젬퍼 오페라)에서 에른스트 폰 슈흐의 지휘로 초연되었다.[9] 게오르크 트라와 막스 라인하르트가 연출을 맡았다. 마르가레테 짐스는 마르샬린 역을 맡아 경력의 정점을 찍었고,[9] 미니 나스트는 조피 역, 에바 폰 데어 오스텐은 옥타비안 역을 맡았다.
초연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티켓은 거의 즉시 매진되었고, 극장 측에 상당한 재정적 이익을 안겨주었다. 빈에서는 드레스덴까지 관객들을 위한 특별 열차가 운행될 정도였다.[22]
일부 비평가들은 슈트라우스가 시대착오적인 왈츠 음악을 사용한 것에 대해 비판했지만,[4] 대중은 열광적으로 오페라를 받아들였다. ''장미의 기사''는 슈트라우스 생전에 그의 가장 인기 있는 오페라가 되었으며, 오늘날에도 오페라 레퍼토리의 주요 작품으로 남아있다.[4]
초연 이후 두 달 안에 이탈리아어로 번역되어 라 스칼라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툴리오 세라핀이 지휘를 맡았고, 루크레치아 보리가 옥타비안, 이네스 마리아 페라리스가 소피, 파벨 루디카르가 옥스 역을 맡았다. 오스트리아 초연은 1911년4월 8일 프란츠 샬크의 지휘로 빈 궁정 오페라에서 이루어졌으며, 루시 바이트가 마르샬린, 셀마 쿠르츠를 대신하여 거트루드 푀르스텔이 소피, 마리 구트하일-쇼더가 옥타비안, 리하르트 마이어가 옥스 역을 맡았다.
1913년1월 29일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영국 초연을 가졌다. 토마스 비첨이 지휘를 맡았고, 마르가레테 지엠스가 마르샬린, 캐롤라인 해처드가 소피 역을 맡았다. 미국 초연은 이듬해 1913년12월 9일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알프레드 헤르츠의 지휘로 이루어졌다. 프리다 헴펠이 마르샬린, 마르가레테 아른트-오버가 옥타비안, 안나 케이스가 소피 역을 맡았다.
오늘날 《장미의 기사》는 슈트라우스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독일어권 주요 가극단과 음악 축제에서 가장 중요한 레퍼토리 중 하나로 꼽힌다. 대작이면서 가수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수준 높은 공연은 쉽지 않지만, 여러 가극단들이 의욕적으로 공연하며, 음반과 영상 자료도 많이 남아있다.
2. 3. 한국 초연 및 기타 공연
한국 초연은 1956년 10월 30일, 히비야 공회당에서 만프레트 구릿 지휘, 도쿄 필하모니 교향악단 등의 연주로 이루어졌다.[22] 2001년 다카라즈카 가극단은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 개관 기념 공연으로 《장미의 기사》를 대폭 편곡하여 상연했다.[22]2023년, 국립오페라단은 《장미의 기사》를 공연하여 18세기 로코코 시대를 재현한 무대와 의상으로 호평을 받았다.[22]
합스부르크 제국의 영화가 한창이던 시절, 젊은 옥타비안 백작과 베르덴베르크 원수 부인은 은밀한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1] 원수 부인의 남편은 사냥으로 자리를 비우는 날이 많았고, 이날도 옥타비안과 원수 부인은 왕녀의 방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1]
아침 식사를 하던 중, 옥타비안은 원수 부인이 남편의 꿈을 꾸었다는 말에 질투를 느낀다.[1]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고, 원수 부인의 사촌인 옥스 남작이 방문한 것을 알게 된다.[1] 옥타비안은 재빨리 하녀로 변장하여 '마리안델'이라는 가명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한다.[1]
옥스 남작은 파니날의 딸과의 결혼을 앞두고, 약혼 예물을 전달할 '장미의 기사'를 추천해 달라며, 결혼 재산 분배를 위한 공증인 소개도 요청한다.[1] 원수 부인은 옥타비안의 초상화를 보여주며 그를 '장미의 기사'로 추천하고, 옥스 남작은 마리안델에게 추파를 던진다.[1]
여러 알현객들이 원수 부인을 찾아오고, 그중에는 이탈리아에서 온 가수도 있었다.[1] 그는 원수 부인을 위해 세레나데를 부른다.[1]
혼자 남은 원수 부인은 세월의 흐름과 젊음의 덧없음을 느끼며, 옥타비안이 자신을 떠날 것이라는 예감에 슬퍼한다.[1] 옥타비안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 맹세하지만, 원수 부인은 그를 돌려보낸다.[1]
며칠 후, 파니날의 저택에서 '장미의 기사' 옥타비안과 옥스 남작의 약혼녀 조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옥타비안은 은 장미를 조피에게 건네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러나 옥스 남작의 무례한 행동에 조피는 실망하고, 옥타비안은 분노한다. 조피는 옥타비안에게 도움을 청하고, 두 사람은 사랑을 확인한다.
옥스 남작의 하수인이 된 발차키와 안니나가 두 사람의 밀회를 목격하고, 옥스 남작에게 알린다. 옥타비안은 조피가 남작과의 결혼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지만, 옥스 남작은 무시한다. 결국 옥타비안과 옥스 남작은 결투를 벌이고, 옥스 남작은 팔에 가벼운 상처를 입는다. 조피는 아버지에게 결혼을 거부하지만, 파니날은 딸을 윽박지른다.
옥스 남작은 마리안델(옥타비안)에게서 밀회 편지를 받고 기뻐하며 왈츠를 부른다.
빈의 한 여관에서 옥타비안은 옥스 남작을 골탕 먹이기 위한 계략을 꾸민다. 마리안델로 변장한 옥타비안, 옥스 남작, 안니나,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등장하며 소동이 벌어진다. 원수 부인이 나타나 상황을 정리하고, 옥스 남작의 약혼은 파기된다.
원수 부인은 옥타비안을 조피에게 보내며 두 사람의 사랑을 인정한다. 세 사람은 복잡한 심경을 노래하고, 원수 부인은 쓸쓸히 물러난다. 조피와 옥타비안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오페라는 막을 내린다.
윌리엄 호가스의 ''백작 부인의 아침 조회''(약 1744년), 원수 부인의 아침 접견에 영감을 줌
원수 부인과 젊은 연인 옥타비안은 사랑을 나누고 있다.[1] 옥타비안은 원수 부인을 '캥캥'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애교를 부리고, 원수 부인은 17세 연인의 애교를 귀여워한다.[1] 아침 식사를 함께 하지만, 원수 부인이 남편의 꿈을 꾸었다는 말에 옥타비안은 질투심을 느낀다.[1]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자, 원수 부인의 사촌인 옥스 남작이 방문한 것을 알게 된다.[1] 옥타비안은 하녀로 변장하여 '마리안델'이라는 가명으로 옥스 남작을 맞이한다.[1]
옥스 남작은 파니날의 딸과 결혼을 앞두고, 약혼 예물을 전달할 '장미의 기사'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한다.[1] 또한 결혼 재산 분배를 위한 공증인 소개도 요청한다.[1] 원수 부인은 옥타비안의 초상화를 보여주며 그를 '장미의 기사'로 추천하고, 옥스는 하녀로 변장한 옥타비안에게 추파를 던진다.[1]
옥스 남작이 물러간 후, 원수 부인은 여러 사람들을 접견한다.[1] 3명의 고아들, 공증인, 요리사, 모자 장수, 동물 장수, 이탈리아 가수[1] 등이 찾아와 각자의 용무를 말한다. 이탈리아 가수는 원수 부인을 위해 세레나데를 부른다.[1]
접견이 끝나고 혼자 남은 원수 부인은 자신의 젊음이 시들어가는 것을 슬퍼하며, 옥타비안이 자신을 떠날 것이라고 예감한다.[1] 옥타비안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 맹세하지만, 원수 부인은 그를 돌려보낸다.[1]
4. 2. 제2막
델리아 라인하르트(1923년경 옥타비안 역)
제1막으로부터 며칠 후, 빈 시내의 파니날 가 객실.
"장미의 기사"와 약혼자인 옥스 남작이 처음 방문하는 당일 아침, 약혼자가 될 조피와 아버지 파니날은 안절부절못한다. 조피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신에게 기도한다. 장미의 기사가 도착하기 전에 약혼자를 맞이하러 가야 하는 파니날이 출발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밖이 소란스러워지고 로플라노 백작(옥타비안)의 도착을 알린다. 사절 행렬에 이끌려 순백의 의상을 입은 옥타비안이 등장한다.
긴장한 옥타비안은 은 장미를 조피에게 건네고 연설을 하고, 조피도 어색하게 답례한다(은 장미 헌정 장면). 의식이 끝나자 비로소 마음을 연 조피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시작한다. 옥타비안은 한눈에 조피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이상한 감정을 억누를 수 없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옥스 남작이 하인들과 함께 등장한다. 옥스의 무례한 행동에 조피는 놀라고, 옥타비안도 분개한다. 파니날이 옥스 남작을 별실로 안내하고 다른 사람들도 따르지만, 조피와 옥타비안은 남는다. 레르히에나우가의 하인이 술에 취해 파니날가의 하녀들을 쫓아다니는 소동이 일어나, 파니날가의 하인들이 모두 자리를 떠난다. 둘만 남게 되자, 조피는 옥타비안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는 두 사람을 지키겠다고 선언한다. 조피는 감격하고 두 사람은 껴안는다.
그때 제1막에서 옥스 남작의 하수인이 된 발차키와 안니나가 나타나 두 사람을 떼어놓고 큰 소리를 질러 옥스 남작을 부른다. 옥스 남작이 등장하자, 조피를 대신하여 옥타비안이 조피의 마음을 전하려고 하지만, 옥스 남작은 그를 얕보고 상대하지 않는다. 조피가 옥스 남작과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지만, 옥스 남작은 무시하고 그녀를 데려가려고 하므로, 옥타비안은 칼을 뽑는다. 옥스 남작은 하인을 부르지만, 옥타비안에게 겁을 먹고 물러선다. 옥스 남작은 칼을 뽑아 응전하지만, 팔꿈치를 찔리고 비명을 지른다. 옥타비안을 멀리서 에워싸고 말만 호기로운 레르히에나우가의 하인이 소란을 피우는 곳에 파니날이 등장하여, 일어난 일에 경악한다. 의사가 옥스 남작을 치료하기 시작한다. 옥타비안이 소란을 사과하고 퇴장하고, 조피는 아버지에게 남작과의 결혼을 그만두도록 간청하지만 파니날은 들어주지 않고 그녀를 질책한다. 파니날은 조피를 물러나게 하고, 치료가 끝난 옥스 남작에게 사과하고 술을 대접한다.
침착함을 되찾은 옥스 남작은 술기운에 코를 골며 노래를 부른다. 안니나가 등장하여 옥스 남작 앞으로 온 편지를 가져온다. 옥스 남작이 그것을 읽으니, 마리안델로부터 만나고 싶다는 편지이다. 옥타비안의 계략이지만, 옥스 남작은 의기양양해져 왈츠에 맞춰 노래한다. 사례를 요구하는 안니나를 무시하여 화를 내며 떠나게 한다. 옥스 남작은 "내가 없으면 매일 쓸쓸해. 내가 있으면 밤도 짧아"라고 노래하며 퇴장하고 막이 내려간다.
4. 3. 제3막
빈의 한 여관에서 옥타비안은 옥스 남작을 골탕 먹이기 위한 계략을 꾸민다. 발차키와 안니나는 옥타비안을 도와 옥스 남작을 놀라게 할 장치를 준비한다. 마리안델로 변장한 옥타비안이 등장하고, 곧이어 옥스 남작과 마리안델이 나타난다. 옥스는 마리안델을 유혹하려 하지만, 그녀는 순박한 시골 처녀 연기를 하며 상황을 모면한다.
이윽고 장치가 작동하고, 옥스는 혼란에 빠진다. 안니나가 나타나 옥스를 남편이라 부르고, 아이들이 "아빠!"를 외치며 옥스에게 매달린다. 옥스는 경찰을 부르고, 경찰은 옥스의 신분을 의심한다. 옥스는 마리안델이 자신의 약혼녀 소피 파니날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그때 파니날이 등장하여 마리안델이 자신의 딸이 아니라고 밝힌다.
갑자기 원수 부인이 도착하여 상황을 정리한다. 원수 부인은 옥스에게 속임수였다고 설명하고, 소피는 옥스에게 약혼이 취소되었음을 알린다. 옥타비안이 나타나고, 원수 부인은 옥타비안, 발차키, 안니나 등이 옥스의 약혼을 깨기 위해 "가면극"을 벌였다고 확인한다. 옥스는 옥타비안과 원수 부인의 관계를 파악하려 하지만, 원수 부인의 위엄에 눌려 굴욕적으로 퇴장한다.
원수 부인, 소피, 옥타비안이 남겨지고, 원수 부인은 옥타비안을 소피에게 보내며 두 사람의 사랑을 인정한다. 그녀는 소피에게 자신을 소개하며, 두려워했던 날이 왔음을 말한다. (삼중창: "마리 테레제!" / "약속했지") 원수 부인은 쓸쓸히 물러나고, 소피와 옥타비안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짧지만 황홀한 사랑의 이중창("꿈이야" / "느껴봐")을 부른다. 오페라는 모하메드가 소피의 손수건을 주워들고 달려나가는 것으로 끝난다.
5. 음악적 특징
Der Rosenkavalierde의 음악은 모차르트 오페라를 목표로 하여, 이전 작품인 살로메나 엘렉트라에서 보여준 전위적인 화성이나 격렬한 오케스트레이션은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경쾌하고 투명한 음색을 중심으로 친근하고 평이한 스타일로 작곡되었다. 성악 파트 또한 바그너의 드라마틱한 스타일에서 벗어나 모차르트처럼 서정적인 창법을 사용한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빈의 비엔나 왈츠가 곳곳에 등장하는데, 이는 시대 설정과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대중에게는 큰 호평을 받았으며, 특히 옥스 남작의 왈츠는 독립적으로 연주되기도 한다. 이 오페라는 장대하고 연주하기 어려워 상연이나 녹음 시 관습적으로 일부가 생략되기도 하는데, 이는 작곡가 슈트라우스 자신도 인정하였다. 또한, 대부분의 곡이 중창으로 이루어져 있고 아리아는 거의 없으며, 테너는 악당 발차키 외에는 제1막에서 조롱당하는 역할로만 등장하는 등, 슈트라우스의 이탈리아 오페라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
제목
설명
관현악 모음곡
1945년에 출판되었으며, 지휘자 아르투르 로진스키가 편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곡을 교향시처럼 재구성한 단일 곡 형태이다.
장미의 기사 왈츠
제2막 후반, 옥스 남작이 술을 마시며 기분을 푸는 장면에서 나오는 음악이다. 요제프 슈트라우스의 왈츠 디나미덴을 바탕으로 작곡되었다. 슈트라우스는 이 왈츠에 대해 "빈의 쾌활한 천재를 떠올리지 않고 작곡하는 것이 가능했을까?"라고 언급했다.
판토마임
제3막 초반, 옥타비안이 옥스 남작을 골탕 먹이기 위해 여관에서 준비하는 장면에서 연주된다. 대사 없이 경쾌한 곡조에 맞춰 판토마임으로 진행된다.
5. 1. 주요 아리아 및 중창
"Die Zeit, die ist ein sonderbar' Ding" (원수 부인)
"Di rigori armato il seno" (이탈리아인 가수)
장미 수여의 듀엣 "Mir ist die Ehre widerfahren" (옥타비안과 소피)
마지막 듀엣 "Ist ein Traum / Spür' nur dich" (옥타비안과 소피)
원수 부인의 독백 "Die Zeit, die ist ein sonderbar' Ding"은 제1막에서 혼자가 된 원수 부인이 젊은 시절과 피할 수 없는 노쇠에 대한 슬픔, 시간의 흐름, 그리고 옥타비안과의 이별을 예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곡은 원수 부인 역을 맡은 가수가 관객을 사로잡는 중요한 부분이며, 리사이틀에서 독립적으로 연주되기도 한다.
옥타비안이 소피에게 은 장미 조화를 건네는 장면에서 연주되는 "Mir ist die Ehre widerfahren"은 우아하고 섬세한 음악에 맞춰 약혼 신청을 하는 장면이다. 이후 두 사람의 이중창이 이어지는데, 결혼의 기쁨을 노래하는 소피와 그녀에게 끌려 연정을 품기 시작한 옥타비안의 심리가 미묘한 음악적 차이로 표현된다.
『장미의 기사 삼중창』으로 알려진 "Marie Theres'! / Hab' mir's gelobt"는 옥타비안, 소피, 원수 부인이 각자의 생각을 노래하는 곡이다. 옥타비안은 소피에게 푹 빠져 있지만 원수 부인에게 미련이 남아 혼란스러워하고, 소피는 옥타비안과 원수 부인의 관계를 알고 상처받는다. 원수 부인은 젊은 두 사람을 축복하며 물러설 결심을 한다. 이 장면은 특히 원수 부인 역의 가수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6. 악기 편성
구분
악기 편성
Holzblasinstrumente|목관악기de
플루트 3개 (3번은 피콜로 겸함), 오보에 2개, 잉글리시 호른 (3번 오보에 겸함), 클라리넷 3개 (3번은 D조 및 E♭조 클라리넷 겸함), 바셋 호른 (B♭조 및 A조 베이스 클라리넷 겸함), 바순 3개 (3번은 콘트라바순 겸함)[16]
슈트라우스는 호프만스탈과 이미 『엘렉트라』에서 공동 작업을 했지만, 이는 기존 희곡에 곡을 붙인 것이었다. 따라서 『장미의 기사』는 두 사람의 실질적인 첫 번째 공동 작업이라 할 수 있다.[4] 1909년 초부터 1910년에 걸쳐 작곡되었으며, 초기에는 남장 여성 가수를 기용한 가벼운 희극으로 기획되었으나, 논의 끝에 현재의 형태로 완성되었다.[4]
"장미의 기사"는 빈 귀족의 약혼 신청 의식에서 유래한 것으로, 약혼의 증표로 은 장미꽃을 전달하는 사자를 의미한다.[4] 이는 호프만스탈의 창작 설정이다.[4]
음악적으로는 모차르트 오페라를 목표로, 마리아 테레지아 시대 빈을 배경으로 로코코 양식의 유희와 진실을 담아냈다.[5] 『피가로의 결혼』과 유사한 줄거리를 가지며, 이전 작품들과 달리 평이한 작풍과 서정적인 창법을 사용했다.[5]
전체 연주 시간은 약 3시간 20분으로, 3막으로 구성된 대규모 오페라이다.[6] 주요 등장인물 4명 중 3명은 1막, 1명은 2막에 등장하며, 3막에서 모두 모여 이야기가 완결된다.[6]발레는 제외되었고, 합창의 역할은 크지 않다.[6]
슈트라우스는 이탈리아 오페라를 혐오하였는데, 이는 작품에서 악당 발차키 외 테너의 비중이 낮은 점, 두 악당이 이탈리아인으로 설정된 점 등에서 드러난다.[7] 이는 합스부르크 제국이 북부 이탈리아를 지배했던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7]
7. 1. 사회적 배경
1740년대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통치 시기, 오스트리아빈은 합스부르크 제국의 황금기를 누리고 있었다. 귀족 사회는 화려함과 사치를 즐겼지만, 그 이면에는 위선, 허영, 그리고 변화하는 시대에 대한 불안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귀족들은 젊은 애인을 두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장미의 기사》는 이러한 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귀족 사회의 몰락과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암시한다. '장미의 기사'라는 제목은 빈의 귀족이 약혼 신청 의식 때 세우는 사자를 말하며, 약혼의 증표로 은 장미꽃을 전달하는 풍습에서 유래했다.[4] 이는 실제로는 호프만스탈의 창작이지만, 당시 귀족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는 설정이다.[4]
음악적으로는 모차르트 오페라를 지향하여, 로코코 시대의 빈을 배경으로 유희와 진실을 대조시킨 작품으로 완성되었다.[5] 줄거리는 피가로의 결혼과 유사하며, 살로메나 엘렉트라와는 달리 친근하고 평이한 작풍으로 쓰였다.[5] 성악 파트도 바그너의 드라마틱한 창법에서 벗어나 모차르트처럼 서정적인 창법을 사용했다.[5]
이 오페라는 합스부르크 제국이 동유럽과 북부 이탈리아로 지배를 넓힌 결과, 이탈리아를 포함한 비독일계 귀족의 일부가 독일식 명칭으로 오스트리아 궁정에 출사했던 당시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7]
7. 2. 여성의 심리 묘사
Fürstin Werdenbergde 원수 부인은 젊음과 아름다움을 잃어가는 것에 대한 불안과 체념을 느끼는 동시에, 옥타비안과의 사랑을 통해 삶의 활력을 되찾는 복합적인 인물이다. 원수 부인은 17세의 어린 옥타비안과의 관계에서 언젠가 자신을 떠나갈 것이라는 불안감을 느낀다.[1] 이러한 불안함은 1막에서 옥타비안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자신의 늙어감에 대해 한탄하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1]
조피는 순종적인 딸에서 벗어나 자신의 사랑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여성으로 성장한다.[2] 이러한 여성 인물들의 심리 묘사는 당대 여성 관객들에게 큰 공감을 얻었으며,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7. 3. 풍자와 해학
오페라 《장미의 기사》에서 옥스 남작은 구시대 귀족 사회의 허영과 위선을 대표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의 어리석고 탐욕스러운 행동은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예를 들어, 옥스 남작은 원수부인의 침실에서 하녀로 변장한 옥타비안에게 추파를 던지고, 약혼녀 조피에게 무례하게 행동하는 등 엽색 행각을 벌인다. 이러한 옥스 남작의 모습은 당시 귀족 사회의 부도덕함을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이탈리아 가수, 공증인, 음모가 발차키와 안니나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여 당대 사회의 여러 군상을 드러낸다. 특히, 이탈리아 가수가 부르는 세레나데는 독일권 오페라와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여 극에 재미를 더한다.
슈트라우스는 이러한 풍자와 해학을 통해 귀족 사회의 몰락을 더욱 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옥스 남작을 비롯한 여러 인물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몰락해가는 귀족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변화의 흐름을 암시한다.
8. 관련 작품 및 영향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이전에 엘렉트라에서 후고 폰 호프만슈탈과 협업했지만, 이는 이미 상연된 희곡에 슈트라우스가 곡을 붙인 것이었다. 따라서 《장미의 기사》는 두 거장의 실질적인 첫 번째 공동 작업이었다. 이들은 이후에도 《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 《그림자 없는 여인》 등 여러 작품을 함께 작업하며 오페라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23]
《장미의 기사》는 오페라뿐만 아니라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다양한 예술 장르에 영감을 주었다. 1926년에는 슈트라우스 자신이 무성 영화 반주 음악용으로 편곡한 영화 음악 "장미의 기사"(작품 정리 번호 TrV 227b)도 있다. 1956년10월 30일 히비야 공회당에서 만프레트 구릿 지휘, 도쿄 필하모니 교향악단 등에 의해 일본 초연이 이루어졌다.[23]다카라즈카 가극단은 2001년 새롭게 문을 연 도쿄 다카라즈카 극장 개장을 기념하여 츠키구미에 의해 대폭 편곡하여 상연하기도 했다.[24][25]
1944년에 슈트라우스 자신이 제1막과 제2막의 소재로 편찬한 "왈츠 제1번"(프란츠 트레너에 의한 작품 정리 번호 TrV 227c)과, 1934년에 제3막 소재를 편찬한 "왈츠 제2번"(TrV 227a)이 있다. 현재 널리 연주되는 1945년 출판 "모음곡"(TrV 227d)은 지휘자 아르투르 로진스키 편으로 전해지지만, 슈트라우스의 관여 정도 등, 성립 상황은 확실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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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문서
総譜5頁参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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