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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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16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는 1992년 7월 26일에 실시되었으며, 유권자 수는 93,254,025명이었다. 선거는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를 혼합한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투표율은 전국구 50.70%, 지역구 50.72%를 기록했다. 선거 결과, 자민당은 제1당을 유지했으나 과반수 확보에는 실패했고, 일본신당이 약진했다. 선거 이후 PKO 협력법을 둘러싼 여야 간 대립이 심화되었고, 1년 뒤 자민당은 중의원 선거에서 과반수를 잃고 55년 체제가 붕괴되었다.
1992년 7월 26일에 실시된 제16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는 미야자와 내각 출범 이후 첫 국정 선거였다. 사가와 급편 사건 등의 영향으로 내각 지지율이 저조한 가운데, PKO 협력법이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으며, 신당 일본의 의석 확보 여부도 주목받았다.
2. 선거 정보
2. 1. 투표율
구분 | 투표율 | 남성 | 여성 |
---|---|---|---|
전국구 | 50.70% | 50.56% | 50.84% |
지역구 | 50.72% | 50.57% | 50.86% |
전국구 및 지역구 투표율은 모두 50.7%대로 지난 선거에 비해 크게 하락했다. 총 유권자 수는 93,254,025명이었다.
2. 2. 선거 제도
이번 제16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는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를 혼합한 형태로 치러졌다. 선거구에서는 76명, 비례대표로는 50명, 총 126명의 의원을 선출했다. 사이타마현 선거구에서는 비개선 의석의 결원 보충으로 1석이 추가되어 총 3석을 선출했다.각 선거구별 개선 수는 다음과 같다.
선거구 | 개선 수 |
---|---|
홋카이도 | 4 |
아오모리 | 1 |
이와테 | 1 |
미야기 | 1 |
아키타 | 1 |
야마가타 | 1 |
후쿠시마 | 2 |
이바라키 | 2 |
토치기 | 2 |
군마 | 2 |
사이타마 | 3 |
지바 | 2 |
도쿄 | 4 |
가나가와 | 2 |
니가타 | 2 |
토야마 | 1 |
이시카와 | 1 |
후쿠이 | 1 |
야마나시 | 1 |
나가노 | 2 |
기후 | 1 |
시즈오카 | 2 |
아이치 | 3 |
미에 | 1 |
시가 | 1 |
교토 | 2 |
오사카 | 3 |
효고 | 3 |
나라 | 1 |
와카야마 | 1 |
돗토리 | 1 |
시마네 | 1 |
오카야마 | 2 |
히로시마 | 2 |
야마구치 | 1 |
도쿠시마 | 1 |
가가와 | 1 |
에히메 | 1 |
고치 | 1 |
후쿠오카 | 3 |
사가 | 1 |
나가사키 | 1 |
쿠마모토 | 2 |
오이타 | 1 |
미야자키 | 1 |
가고시마 | 2 |
오키나와 | 1 |
미야자와 내각 출범 이후 처음 치러진 국정 선거였다. 자민당은 지난 참의원 선거에서 36석을 얻는 데 그쳐 참패했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제1당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주요 관심사였다.[1][2] 아베 후미오 전 홋카이도 개발청 장관 체포와 사가와 급편 사건 등의 영향으로 내각 지지율이 20~30%대로 저조했지만, 국제연합 평화유지활동 등에 대한 협력에 관한 법률(PKO 협력법) 통과 직후 치러진 선거에서 자민당은 의석을 회복하며 제1당을 유지했다. 그러나 참의원 과반수 확보에는 실패했다.
선거는 비밀투표로 진행되었으며, 유권자는 선거구 후보자와 비례대표 정당에 각각 투표하는 2표제를 채택했다. 선거권은 만 20세 이상, 피선거권은 만 30세 이상의 일본 국민에게 주어졌다.
3. 선거 결과
일본사회당은 PKO 협력법에 대한 반대 입장을 고수하면서 공명당, 민사당 등과의 선거 협력에 어려움을 겪어 의석이 크게 줄었다. 특히 도쿄도 선거구에서는 PKO 협력법 찬성 후보 추천 문제로 당내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히로시마현 선거구에서는 사회당 좌파를 중심으로 “헌법수호·히로시마의 회”가 결성되어, 후에 신사회당 위원장이 되는 쿠리하라 킨코를 지지하여 당선시켰다.
공명당은 의석을 늘렸으며, 일본공산당과 민사당은 의석이 줄었다. 한편, 창당 직후 일본신당은 4석을 얻으며 돌풍을 일으켰으나, 연합의 회는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했다.
이번 선거 결과는 약 1년 후 자민당이 중의원에서 단독 과반수를 잃고 일본신당 대표 호소카와 모리히로를 수상으로 하는 내각이 성립되면서 야당으로 전락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38년간 지속된 55년 체제는 붕괴되었다.정당 전국구 득표수 지역구 득표수 비개선 의석 획득 의석 총합 의석 증감 자유민주당 14,961,199 19,711,047 39 67 106 -3 일본사회당 7,981,726 5,846,238 49 22 71 +5 공명당 6,415,503 3,550,060 10 14 24 +4 일본신당 3,617,247 - 0 4 4 신설 일본공산당 3,532,956 4,817,001 5 6 11 -3 사회민주당 2,255,423 1,039,980 3 4 7 -1 스포츠평화당 1,375,791 - 1 1 2 +1 다이니인 클럽 1,321,639 - 1 1 2 0 민주개혁당 - 4,399,684 12 0 12 0 기타 정당 3,921,722 1,573,400 2 2 4 - 무소속 - 4,445,795 3 5 8 -7 결원 - - 0 1 1 - 무효 1,900,566 1,913,874 - - - - 총합 - - 125 127 252 0 선거인 수 93,254,025 93,254,025 - - - - 3. 1. 정당별 획득 의석
정당명 | 개선 의석 | 비개선 의석 | 합계 |
---|---|---|---|
여당 | 68 | 39 | 107 |
자유민주당 | 68 | 39 | 107 |
야당 | 58 | 87 | 145 |
일본사회당 | 22 | 49 | 71 |
공명당 | 14 | 10 | 24 |
일본공산당 | 6 | 5 | 11 |
민사당 | 4 | 5 | 9 |
일본신당 | 4 | 0 | 4 |
연합의 회 | 0 | 11 | 11 |
제2원클럽 | 1 | 1 | 2 |
스포츠평화당 | 1 | 1 | 2 |
오키나와 사회대중당 | 1 | 0 | 1 |
기타 | 1 | 0 | 1 |
무소속 | 4 | 5 | 9 |
합계 | 126 | 126 | 252 |
미야자와 내각 출범 후 첫 국정 선거였다. 자민당은 지난 선거에서 36석으로 참패하며 의석수가 크게 줄었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제1당 유지 여부가 주요 관심사였다. 아베 후미오 전 홋카이도 개발청 장관 체포 및 사가와 급편 사건 등의 영향으로 내각 지지율이 20~30%대로 저조했지만, PKO 협력법 통과 직후 치러진 선거에서 자민당은 68석을 얻어 제1당을 유지했다. 그러나 참의원 과반수 확보에는 실패했다.
일본사회당은 PKO 협력법에 대한 반대 입장을 고수하면서 공명당, 민사당 등과의 선거 협력에 어려움을 겪어 22석으로 크게 후퇴했다. 특히 도쿄도 선거구에서는 PKO 협력법 찬성 후보 추천 문제로 당내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히로시마현 선거구에서는 신사회당 위원장이 되는 쿠리하라 킨코가 당선되었다.
공명당은 14석, 일본공산당은 6석, 민사당은 4석을 획득했다. 한편, 창당 직후 일본신당은 4석을 얻으며 돌풍을 일으켰으나, 연합의 회는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했다.
이 선거로부터 약 1년 후, 자민당은 중의원에서 단독 과반수를 잃고 일본신당 대표 호소카와 모리히로를 수상으로 하는 내각이 성립되면서 야당으로 전락, 38년간 지속된 55년 체제는 붕괴되었다.
3. 2. 주요 정당 및 정치인
정당명 | 대표 | 주요 직책 | 비고 |
---|---|---|---|
자유민주당 | 미야자와 기이치 | 총재: 미야자와 기이치 | 당내 파벌 갈등과 각종 스캔들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보수층 결집에 성공하며 제1당을 유지함. |
일본사회당 | 다나베 마코토 | 위원장: 다나베 마코토 | 국제연합 평화유지활동 등에 대한 협력에 관한 법률(PKO 협력법) 찬반 논쟁 속에서 당내 분열이 심화되며 참패함. |
공명당 | 이시다 코시로 | 위원장: 이시다 코시로 | 안정적인 지지 기반을 바탕으로 의석을 늘림. |
일본공산당 | 미야모토 겐지 | 의장: 미야모토 겐지 | 소련 붕괴 이후 이념적 도전에 직면하며 고전함. |
민사당 | 오우치 케이고 | 위원장: 오우치 케이고 | PKO 협력법 찬성 입장을 취하며 일본사회당과의 연대가 약화됨. |
일본신당 | 호소카와 모리히로 | 대표: 호소카와 모리히로 | 신선한 이미지와 개혁 기치를 내걸며 젊은 층의 지지를 얻음. |
스포츠평화당 | 안토니오 이노키 | 대표: 안토니오 이노키 | |
제2원클럽 | 아오시마 유키오 | 대표: 아오시마 유키오 | |
사회민주연합 | |||
연합의회 | 호시카와 야스마쓰 | 대표: 호시카와 야스마쓰 | |
기타 정당 | |||
오키나와사회대중당, 노인복지당, 연금당, 신자유당, 바람의 모임, 모터신당, 희망 (정당), 발명정치, 전일본드라이버즈클럽, 국민신당 (국민신당과는 다른 단체), 국민당 (일본), 진보자유연합, 환경당, 교육당, 평민당, 중소기업생활당, 일본세토시당, 일본국민정치연합, 일본아이즈당, 문화포럼, 「개성론」의 UFO당, 국제정치연합, 표현의 자유당, 잡민당, 헤이세이개신당, 프리워크유니온, 지구위신당, 정사공단태평회, 세계정령회, 대일본성류사 |
4. 선거 이후
자민당은 69석을 획득하여 제1당을 유지했지만, 참의원 단독 과반수 확보에는 실패했다.[1] 한편, 일본사회당은 의석이 크게 줄었고, 지난 참의원 선거에서 약진했던 연합의 회는 한 명도 당선시키지 못했다.[1]
PKO 협력법을 둘러싸고 여야 간 대립이 격화되면서, 사회당과 공명당, 민사당 간의 선거 협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1] 도쿄도 선거구에서는 PKO 협력법 찬성을 내세운 모리타 켄사쿠가 사회당, 민사당 등의 추천을 받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사회당 좌파 지지자들은 우치다 마사토시를 지지했다.[1] 히로시마현 선거구에서도 연합의 회에 반발한 사회당 좌파를 중심으로 "헌법수호·히로시마의 회"가 결성되어 쿠리하라 킨코를 당선시켰다.[1]
이 선거로부터 약 1년 후, 자민당은 중의원에서 단독 과반수를 잃고 신당 일본 대표 호소카와 모리히로를 수상으로 하는 내각이 성립되면서 야당으로 전락했다.[1] 이로써 38년간 지속된 55년 체제는 붕괴되었다.[1]
참조
[1]
웹아카이브
Table 13: Persons Elected and Votes Polled by Political Parties - Ordinary Elections for the House of Councillors (1947–2004)
http://www.stat.go.j[...]
2011-03-23
[2]
웹사이트
27-11 Allotted Number, Candidates, Eligible Voters as of Election Day, Voters and Voting Percentages of Ordinary Elections for the House of Councillors (1947-2004)
http://www.stat.go.j[...]
[3]
기타
[4]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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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国立国会図書館デジタルコレクション|[...]
マドラ出版
1992-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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