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국 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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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주한 미국 대사관은 대한민국과 미국의 외교 관계를 대표하는 기관으로, 1883년 서울에 처음 설치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폐쇄되었다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다시 설립되었으며, 현재는 서울 종로구에 위치해 있다. 대사관은 관리과, 경제과, 영사과 등 다양한 부서를 두고 있으며, 미국 시민 서비스, 비자 발급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주한 미국 대사관은 한국 정치와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시위와 관련된 논란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2022년에는 용산기지로 대사관 이전이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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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국 대사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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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공식 명칭 | 주한 미국 대사관 |
한국어 명칭 | 주한미국대사관 |
한자 명칭 | 駐韓美國大使館 |
로마자 표기 | Ju Han Miguk Daesagwan |
일본어 명칭 | 駐韓アメリカ合衆国大使館 |
영어 명칭 | Embassy of the United States in Seoul |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대로 188 |
웹사이트 | 주한 미국 대사관 웹사이트 |
![]() | |
개관 | |
개관일 | 1949년 |
관할 지역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대전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 광주광역시 경기도 강원특별자치도 충청남도 충청북도 전라남도 전라북도 |
대표 | |
대사 | 필립 골드버그 |
상급 기관 | |
상급 기관 | 미국 국무부 |
산하 기관 | |
산하 기관 | 주부산 미국 영사관 |
2. 역사
미국은 1870년대 후반부터 대한민국과 외교 관계를 맺어왔다. 19세기 말, 청나라의 세력이 약해지고 일본 제국의 세력이 커지면서, 조선은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1883년, 조선에 첫 번째 미국 공사가 서울에 도착하여 덕수궁 인근에서 공사관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된 후, 서울의 미국 공사관은 폐쇄되었다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연합군이 일본을 패배시킨 후에야 다시 설립되었다. 1948년부터 미국 대사관은 임대 건물인 호텔에서 운영되었다.
2. 1. 초기 역사 (1882년 ~ 1910년)

1883년, 조선에 첫 번째 미국 공사가 서울에 도착하면서 공사관이 운영되기 시작했다. 초기 공사관은 공사 관저에서 운영되었는데, 이 관저는 1888년 한국 왕족이 미국에 제공한 별장으로 덕수궁 바로 뒤에 위치했다.[1] 이 부지는 현재도 미국 정부 소유이며, 미국 대사의 공식 관저인 해비브 하우스가 있다. 해비브 하우스는 1974년에 한옥(전통 한국식 주택)으로 지어졌으며, 필립 찰스 해비브 대사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1]
2. 2. 일제강점기와 광복 (1910년 ~ 1948년)
일본 제국이 청일 전쟁(1895년)과 러일 전쟁(1905년)에서 승리하며 강대국으로 부상하였다. 1910년 대한제국은 일본의 지배하에 들어가면서 독립을 잃었고, 한일 병합 조약 체결 후 서울의 미국 공사관은 폐쇄되었다.[1]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연합군이 일본을 패배시킨 후에야 미국 대사관은 한국에 다시 설립되었다. 미국과 소련은 일본으로부터 한국을 장악했다. 미국은 남한 서울에 미군정을 수립했고, 소련은 북한 평양에 정부를 수립했다. 미국은 1948년 서울 정부를 승인했다.
2. 3. 한국전쟁과 그 이후 (1950년 ~ 현재)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남한을 침공하면서 한국 전쟁이 시작되었고, 서울 주재 미국 대사관은 긴급히 대피했다. 6월 말까지 서울은 북한군에 함락되었다. 공관은 같은 해 9월 26일 유엔군으로 활동하던 미 해병대에 의해 탈환되었으나,[2][3] 1951년 초 중국 인민지원군과 북한군에 다시 함락되었다.
1951년 4월 유엔군은 서울을 완전히 탈환했다. 한국 전쟁은 1953년 7월 교착 상태로 종전되었고, 미국 대사관은 다시 문을 열었다. 주한 미국 대사관은 한국 전쟁 종전 이후 서울에서 계속 운영되어 왔다.
현재의 대사관 건물은 1962년에 건설되었으며, 처음에는 미국 국제개발처(USAID) 사무실이었다. 몇 년 후, 이 건물은 미국 대사관에 넘겨졌다. 대사관 건물 북쪽에 동시에 건설된 거의 똑같은 자매 건물은 한때 서울의 USAID 사무실이었지만, 대한민국 정부에 넘겨져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사관 건물은 서울 중심부, 종로구에 위치해 있다. 경복궁으로 향하는 주요 도로변에 있으며, 여러 주요 한국 정부 기관 건물 바로 옆에 있다. 건설 당시 이 건물은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 중 하나였고 비교적 현대적이었다.
새로운 대사관 건물 건설 시도는 1980년경부터 계획되어 왔지만, 여러 문제로 오랫동안 지연되었다. 1986년 미국은 미국 대사관저 근처의 경기여자고등학교 부지를 매입했으나, 지역 주민 단체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현재 계획은 미국 육군이 용산기지를 이전하면서 남겨지는 땅에 새로운 대사관 건물을 건설하는 것이다.
부산에 있던 미국 영사관은 1999년에 폐쇄되었으나, 2007년 부산에 미국 현지 사무소(American Presence Post)가 설립되었다. 2016년에는 사무소가 정식 영사관으로 승격되었다. 부산 영사관은 상업용 사무 건물에 위치하며, 한 명의 외교관과 몇몇 현지 직원들이 주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지역사회 봉사 활동을 점차 확대하고 있으나, 비자 발급 부서는 없으며, 모든 비자 발급 관련 업무는 서울 주재 미국 대사관에 의뢰하고 있다.
3. 구조 및 기능
주한 미국 대사관은 다양한 부서와 기관으로 구성되어 폭넓은 외교 업무를 수행한다.
주한 미국 대사관은 북한의 끊임없는 위협, 주한 미군 주둔, 그리고 한국의 미국에 대한 외교적 존중과 같은 문제들로 인해 한국 정치에서 전통적으로 중요하고 두드러진 역할을 해왔다.
주한 미국 대사관은 서울에서 열리는 시위의 중심이 되고 있다. 미국이 한국에 주둔하는 것과 관련된 논란이 발생할 때마다 주한 미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가 거의 예외 없이 발생한다. 여러 개의 한국 전경 중대가 항상 주한 미국 대사관 앞에 배치되어 있다. 1990년대에는 한국에 있던 다른 미국 외교 공관들이 폐쇄되었고, 1999년 초 부산 영사관이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3. 1. 주요 부서
- '''관리과'''
- '''커뮤니티연락관실 (CLO)'''
- '''재무관리센터 (FMC)'''
- '''총무실 (GSO)'''
- '''의무실 (HU)'''
- '''인력관리실 (HRO)'''
- '''정보관리실 (IMO)'''
- '''농무부'''
- 농무과 (AGAFF)
- 농업무역관 (ATO)
- 동식물검역소 (APHIS)
- '''영사과'''
- '''상무부'''
- '''국토안보수사국 (HSI)'''
- '''경제과'''
- '''공공외교과'''
- '''국방무관실'''
- '''마약단속국 (DEA)'''
- '''국토안보부'''
- 세관국경보호청
- 이민국 (DHS-CIS)
- '''주한미합동군사업무단'''
- '''정치과'''
- '''지역보안담당관실'''
- '''지역조사과'''
3. 2. 영사 서비스
영사과는 미국 시민과와 비자과로 나누어 업무를 처리한다. 주한 미국 대사관은 두 서비스 모두 보안상 전화 예약이 불가능하며, 반드시 이메일을 통해 연락하여 문의해야 한다.미국 시민과는 주한 미국 대사관 홈페이지에서 직접 신청을 받으며, 미국 여권 발급 및 해외 출생 신고 등 미국 시민권 관련 업무를 담당한다. 전화 서비스는 제공하지 않으나, 미국 시민권자의 긴급 상황에는 예외적으로 전화 및 영사 직접 통화가 가능하다.[1]
비자과는 DS-160 신청서를 온라인으로 작성한 후 미국 비자 센터를 통해 대사관 방문을 예약하고, 인터뷰를 거쳐 영사에게 비자를 발급받는 절차로 운영된다.[1]
4. 논란 및 사건/사고
주한 미국 대사관은 한국 사회에서 여러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특히 한미 관계, 주한미군 주둔, 북한 문제 등과 관련된 시위 및 집회의 주요 대상이 되어왔으며, 대사관 및 공관을 대상으로 한 공격도 발생했다.
4. 1. 시위 및 집회
주한 미국 대사관은 한미 관계, 주한미군 주둔, 북한 문제 등과 관련하여 시위 및 집회의 주요 대상이 되어 왔다. 미국이 한국에 주둔하는 것과 관련된 논란이 발생할 때마다 주한 미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가 거의 예외 없이 발생한다. 여러 개의 한국 전경 중대가 항상 주한 미국 대사관 앞에 배치되어 있다.주한 일본 대사관[4]과 달리, 오랫동안 주한 미국 대사관 주변의 집회나 시위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1조 4항」을 근거로 경찰이 반경 100m 이내의 개최를 철저히 금지해왔다. 그러나 2016년 12월, 시민단체가 제기한 미국 대사관 앞 집회 금지 통고 처분 취소 소송에서 법원이 시민단체의 주장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후 금지 수준이 완화되어 대사관 앞에서 합법적인 집회 및 시위 활동이 허용되는 길이 열렸다.[5]
4. 2. 대사관 및 공관 공격
2019년 6월 25일, 40대 남성이 부탄가스를 싣고 렌터카를 몰고 주한 미국 대사관에 돌진하여 정문과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종로경찰서는 이 남성을 특수재물손괴 혐의로 체포했다.[6]2019년 10월 18일, 주한 미국 대사관저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친북한 단체 회원 17명이 사다리를 이용하여 대사관저 담장을 넘어 침입하여 대사관저 건물 현관 앞을 점거했다. 당시 대사와 가족은 외출 중이어서 무사했다.[7]
5. 대사관 이전
현재 대사관 건물은 1962년에 건설되었으며, 처음에는 미국 국제개발처(USAID) 사무실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현재 대사관 건물은 노후화와 공간 부족으로 인해 대사관의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1980년경부터 새로운 대사관 건물 건설이 계획되었으나, 미국 의회의 자금 문제, 대한민국 정부와의 협상 실패, 적절한 부지 선정 문제 등으로 인해 오랫동안 지연되었다. 1986년 미국은 경기여자고등학교 부지를 매입했지만, 지역 주민 단체들의 반대로 건설이 무산되었다. 이들은 해당 부지에 건설하면 매장된 고고학적 증거를 훼손하고, 근처 덕수궁을 가리며, 이웃의 미관을 해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는 미국 육군이 용산기지를 이전하면서 남겨지는 땅에 새로운 대사관 건물을 건설하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현재 부지는 외교부가 소유하고 있지만, 원래는 공식적인 대사관 이전 부지가 결정될 때까지 임시 장소로 사용될 예정이었다. 2005년부터 양국 정부는 대사관 이전 사업을 추진해 왔으며, 2021년에 주한미군 용산기지(USAG Yongsan) 터로 이전하는 것이 공식적으로 결정되었다. 용산기지는 2022년 10월 용산기지(Camp Humphreys)로 이전이 완료되었다.[8]
6. 역대 대사
7. 접근성
주한 미국 대사관은 서울 중심부에 위치하여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하다.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과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도보로 접근할 수 있다.
참조
[1]
웹사이트
Photo Gallery 2007 | Embassy of the United States Seoul Korea
http://seoul.usembas[...]
[2]
웹사이트
50 years later, a former marine grapples with questions of murder-and an elusive search for the truth - ''U.S. News & World Report''
https://web.archive.[...]
2017-08-27
[3]
웹사이트
50 years later, a former marine grapples with questions of murder-and an elusive search for the truth - ''U.S. News & World Report''
https://web.archive.[...]
2010-04-04
[4]
웹사이트
慰安婦像も盛り込み 韓国は国定教科書問題でも“反日”を手軽に利用する
https://www.sankei.c[...]
産経ニュース
2019-06-28
[5]
웹사이트
“韓国初”のアメリカ大使館前合法集会、平和的に終了
http://japan.hani.co[...]
ハンギョレ
2019-06-28
[6]
웹사이트
在韓米国大使館への車突進 外交部が懸念表明
http://www.chosunonl[...]
朝鮮日報
2019-06-28
[7]
웹사이트
米大使公邸に親北大学生団体が乱入、韓国警察は傍観
http://www.chosunonl[...]
朝鮮日報
2019-10-19
[8]
웹사이트
【コラム】半世紀かかって建設が正式決定した在韓米国大使館
https://s.japanese.j[...]
中央日報
2023-09-06
[9]
논문
1948~50년 주한미대사관의 설치와 정무활동
서울대학교 대학원
20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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