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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포 사격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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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함포 사격 지원은 함선이 직접 목표물을 공격하거나, 포병 관측병이 사격을 조정하여 정확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초기에는 해안 포격이 시작되었고, 1차,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기술이 발전하여 상륙 작전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대에는 미사일의 발전으로 함포 사격의 역할이 축소되는 듯했으나, 저강도 분쟁이나 무장 조직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미국 해군과 해병대는 함포 지원의 역할을 놓고 논쟁을 벌여왔으며, 훈련을 통해 함포 사격 능력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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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포 사격 지원
개요
유형함포를 사용한 화력 지원
목표육상 목표 제압, 아군 상륙 작전 지원
방법함포 사격으로 적 방어 시설 파괴, 적 병력 제압, 아군 기동 지원
역사제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등 다양한 전쟁에서 활용됨
현대적 변화정밀 유도 포탄, 사거리 연장 기술, 디지털 사격 통제 시스템 발전으로 정확도와 효율성 향상
장점
원거리 타격 능력해상에서 육상 목표를 장거리에서 타격 가능
지속적인 화력 지원필요에 따라 지속적인 화력 지원 제공
심리적 효과적에게 심리적인 압박감을 주어 전투 의지를 약화시킴
단점
기상 조건 영향기상 조건에 따라 사격 정확도 저하 가능성
제한적인 목표 식별육상 목표 식별 및 정확한 타격 어려움
민간인 피해 우려오발 사고로 인한 민간인 피해 발생 가능성
관련 기술
사격 통제 시스템함포 사격 정확도 향상을 위한 시스템
레이더목표 탐지 및 추적
통신 시스템함선과 육상 부대 간의 통신
주요 활용 사례
제2차 세계 대전태평양 전쟁에서 미 해군의 함포 사격 지원
한국 전쟁인천 상륙 작전에서 함포 사격 지원
베트남 전쟁미 해군의 함포 사격 지원
미래 전망
발전 방향정밀 유도 포탄, 사거리 연장 기술, 무인 시스템 활용 증가 예상
중요성미래 전장에서도 중요한 화력 지원 수단으로 지속적인 발전 전망

2. 전술

함포 사격 지원은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함선이 목표물을 직접 보거나 (레이다 사용을 통해) 공격하는 직접 사격과 포병 관측병이 사격을 조정하여 정확도를 높이는 간접 사격이 있다.

함포 사격대에 있을 때 함선은 육지 방향에서 레이다에 탐지되지 않도록 낮게 비행하는 항공기나 예측 가능하고 일정한(회피하지 않는) 항로로 인해 잠수함의 공격에 특히 취약해진다.

3. 역사

초기 해안 포격은 1347년 칼레 포위전에서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3세가 밤바드 등 포병을 탑재한 선박을 배치하면서 시작되었다.[2] 17세기에는 폭탄선이 해안 포격 목적으로 사용되었다.[3] 18세기에는 부유포대가 고안되었으며, 지브롤터 대포위전과 나폴레옹 전쟁에서 사용되었다.

Marshal Ney는 단일 포탑이 우현으로 향해 있다(1915)


의 선미 모습, 18인치 포가 쿼터덱에 고정되어 우현을 향하고 있다(1918년 11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영국 해군은 다르다넬스 해협/갈리폴리, 살로니카 전선, 벨기에 해안 등에서 함포 사격을 적극 활용했다.[4] 에게해에서는 해안 방어 시설 공격이 어려웠지만, 벨기에 해안에서는 모니터를 사용하여 독일군 목표물을 포격했다. 영국 해군은 항공 관측, 야간 함포 사격, 간접 사격 기술을 발전시켰고, 1918년에는 자이로 방향 조절 장치(GDT)를 통해 항해 중에도 간접 사격이 가능하게 되었다.

1917년 6월 30일 진수된 제1차 세계 대전 시대의 미국 해군 전함 가 1945년 4월 1일 오키나와에서 일본군 방어 시설에 포격을 가하는 모습.


제2차 세계 대전은 함포 사격의 절정기였다. 휴대용 무전기와 중계망 발달로 전방 관측병이 목표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5] 전함, 순양함, 구축함이 해안 시설을 포격했으며, 노르망디 상륙 작전, 오키나와 전투 등 주요 상륙 작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6][7]

한국 전쟁에서는 한국 반도의 해안선을 따라 전투가 벌어지면서 함포 사격이 중요했다. 특히, "열차 파괴자" 순찰대는 북한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10]

베트남 전쟁에서 미 해군은 함포 사격 지원 부대를 운용하여 남베트남 해안을 순찰하며 즉각적인 지원을 제공했다.[10] 레바논 다국적군 작전, 걸프 전쟁에서도 함포 사격이 활용되었다.

21세기에도 리비아 내전, 소말리아 바르갈 전투 등에서 함포 사격이 사용되었다.[11]

3. 1. 주요 함포 사격 사례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해군 함포 사격은 주로 영국 해군이 맡았으며, 다르다넬스 해협/갈리폴리, 살로니카 전선, 벨기에 해안 등에서 활약했다.[4]

에게해에서 적 해안 방어 시설(요새, 해안 포대 등)은 비교적 단순했지만, 갈리폴리 반도에서는 해군의 저각 사격 포가 목표물을 공격하기 어려웠다. 요새 윤곽은 언덕과 섞여 식별이 어려웠고, 포는 작은 목표물이었다. 고원 지대에 있는 이동식 곡사포는 더 큰 문제였는데, 높은 위치에 있어 해군 함포 사격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4]

영국 해군은 벨기에 해안을 따라 독일 제국군 목표물에 함포 사격을 가할 때, 특수 설계된 선박인 모니터를 사용했다. 이들은 퇴역한 전함에서 가져온 강력한 무장을 탑재했고, 넓은 선폭과 얕은 흘수를 가져 해안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었지만, 속도가 느려 해상 전투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두 척의 에는 BL 18-inch Mk I naval gun이 장착되었는데, 이는 영국 해군이 사용한 가장 큰 포였다.

독일 제국은 오스텐데와 제브뤼게 항구를 방어하기 위해 광범위하고 잘 갖춰진 포대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항구들은 U보트 작전에 중요했기 때문에 영국 해군 모니터에 의해 자주 함포 사격을 받았다.

영국 해군은 효과적인 함포 사격을 위해 기술과 기법을 발전시켰다. 항공기에 의한 관측/수정을 개선하고, 야간 함포 사격을 실험했으며, 간접 사격을 채택했다. 1918년 여름, 모니터에는 자이로 방향 조절 장치(GDT)가 장착되어 함선이 항해 중에도 간접 함포 사격을 수행할 수 있게 했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해군 함포 사격의 기반을 마련한 중요한 발전이었다.

1919년부터 1939년까지 영국 해군 전함/순양전함과 신규 건조 순양함에는 해군 군사 통제 테이블과 GDT 장비가 장착되었고, 1930년대 초부터 "실탄" 함포 사격 훈련을 수행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시기 주요 함포 사격 지원 사례는 다음과 같다:

  • 「엠덴」에 의한 영국령 마드라스 포격 (1914년: 독일 제국 해군)
  • 칭다오 전투 (1914년: 일본 제국 해군)
  • 갈리폴리 전투 (1915년: 영국 해군, 프랑스 해군)

니콜라예프스크 사건 (1920년: 중화민국 해군)

완 현 사건 (1926년: 영국 해군)

난징 사건 (1927년: 영국 해군·미국 해군)

간접 포격은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절정에 달했다. 휴대용 무전기와 정교한 중계망 덕분에 전방 관측병이 목표 정보를 전송하고, 병력 상륙 후 거의 즉각적인 정확도 보고서를 제공할 수 있었다. 전함, 순양함 (상륙 지원 순양함 포함)[5] 및 구축함은 해안 시설을 맹렬하게 포격했다. 구식 전함은 종종 떠다니는 포좌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당시 비교적 원시적인 사격 통제 컴퓨터와 레이더의 특성, 해군 포격의 빠른 속도를 고려할 때, 정확도는 지정된 관측 항공기에 의존했다.[6] 관측 수상기는 시칠리아 침공 동안 육상 기반 전투기에 취약하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스핏파이어를 조종했다.[7]

해결책은 더 긴 포격 기간을 통해 목표 지역을 화력으로 포화시키는 것이었다. 태평양 전쟁에서는 고립된 섬 요새의 방어자들은 언젠가는 침략을 예상했기 때문에 이것이 덜 중요했다. 일본군은 1942년 10월 과달카날의 헨더슨 비행장에서 미국 해병대를 포격하여 경미한 피해를 입혔다.[8][9] 포격 기간은 보통 유럽 전선에서 더 짧았는데, 기습이 더 중요했고, 육상 증원이 더 가능했으며, 배의 대포는 정적인 요새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이동하는 방어자의 움직임에 대응했기 때문이다.

해군 포격은 내륙으로 32km까지 도달할 수 있었고 종종 육상 기반 포병을 보완하는 데 사용되었다. 노르망디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지만, 처음에는 기습적인 특성으로 인해 대서양 방벽 방어를 충분히 약화시키지 못했다.

  • 바 작전 (1940년: 프랑스 해군)
  • 글로그 작전 (1941년: 영국 해군)
  • 웨이크 섬 전투 (1941년: 일본 제국 해군)
  • 미국 본토 포격 (1942년): 일본 제국 해군)
  • 과달카날 전투 (1942년: 미국 해군)
  • 헨더슨 비행장 함포 사격 (1942년: 일본 제국 해군)
  • 허스키 작전, 아발란치 작전 (1943년): 영국 해군, 미국 해군)
  • 노르망디 상륙 작전 (1944년): 영국 해군, 미국 해군)
  • 이오지마 전투 (1945년): 미국 해군)
  • 오키나와 전투 (1945년: 미국 해군)
  • 당시 일본 본토에 대한 함포 사격
  • * 가마이시 함포 사격 (1945년 7월 14일: 미국 해군. 8월 9일: 미국 해군, 영국 해군)
  • * 무로란 함포 사격 (1945년 7월 15일: 미국 해군)
  • * 히타치 함포 사격 (1945년 7월 17일: 미국 해군, 영국 해군)
  • * 하마마츠 함포 사격 (1945년 7월 29일: 미국 해군,

한국 전쟁에서 함포 사격 지원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 반도의 해안을 따라 전투가 많이 벌어졌기 때문에 이러한 유형의 지원에 이상적이었다. 전함 뉴저지와 경순양함 벨파스트가 수많은 경순양함과 구축함과 함께 막대한 지원을 제공했다. 특히 "열차 파괴자(Trainbuster)" 순찰대가 있었는데, 정찰기를 이용하여 북한의 보급 열차, 철도 교량 및 터널을 파괴했다.[10]

인천 상륙 작전 (1950년 : 미국 해군, 대한민국 해군)[10]

포클랜드 전쟁 (1982년 : 아르헨티나 해군·영국 해군)[14]

걸프 전쟁 (1991년 : 미국 해군)[14]에서는 전함 미주리와 위스콘신는 유프라테스 삼각주에 있는 이라크 목표물을 향해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과 주포를 발사했다. 이것은 전쟁 중 전함 포의 마지막 발사였으며, 드론 항공기를 처음 사용한 사례이기도 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022년 : 러시아 연방 해군 흑해 함대아조프해 연안의 우크라이나 영토에 실시)[14]

3. 1. 1. 제1차 세계 대전 이전

3. 1. 2. 제1차 세계 대전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해군 함포 사격의 주된 실무자는 영국 해군(RN)이었으며, 영국 해군 함정이 육상 목표물을 향해 사격한 주요 전장은 에게해다르다넬스 해협/갈리폴리, 그리고 이후에는 살로니카 전선—와 벨기에 해안을 따라 위치해 있었다.[4]

에게해에서 적의 해안 방어 시설(요새, 해안 포대 등)은 상당히 단순했다. 그러나 갈리폴리 반도에서는 해군의 저각 사격 포가 이러한 목표물을 공격하는 것이 여전히 어려웠다. 여기에서 요새의 윤곽은 언덕과 섞여 식별이 어려웠고, 포는 작은 목표물이었다. 고원 지대에 있는 이동식 곡사포는 더 큰 문제를 야기했는데, 이는 더 높은 위치에 있었고, 시야에서 완전히 가려져 해군 함포 사격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4]

영국 해군 함정이 벨기에 해안을 따라 독일 제국군 목표물을 함포 사격하는 경우, 1915년 가을부터 1918년 10월 적군 철수까지 상황은 완전히 달랐다. 이 역할을 위해 영국 해군은 종종 모니터라고 알려진 특수 설계된 선박을 사용했다. 이들은 크기에 비해 극도로 강력한 무장을 탑재했는데, 종종 퇴역한 전함에서 가져온 단일 포탑이었다. 안정성을 위해 설계된 넓은 선폭의 선체와 해안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도록 얕은 흘수를 가진 이 선박들은 속도가 느려 해상 전투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두 척의 에는 BL 18-inch Mk I naval gun이 장착되었는데, 이는 영국 해군이 사용한 가장 큰 포였다.

독일 제국은 해안, 특히 오스텐데와 제브뤼게 항구를 방어하기 위해 광범위하고 잘 갖춰진, 그리고 잘 조직된 포대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항구와 항구를 브뤼헤에 연결하는 운하는 북해와 영국 해협에서 U보트 작전에 매우 중요했고, 그 때문에 도버와 덩케르크에서 작전하는 영국 해군 모니터에 의해 자주 함포 사격을 받았다.

영국 해군은 독일군 방어에 맞서 효과적인 함포 사격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기법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켰다. 처음에는 항공기에 의한 관측/수정을 개선(다르다넬스/갈리폴리 작전 동안의 초기 노력을 따른 후), 그 다음에는 야간 함포 사격을 실험하고, 낮과 밤 사격의 표준으로 간접 사격(함선이 몇 마일 내륙에 있을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목표물을 정확하게 공격할 수 있음)을 채택했다.

1918년 여름, 모니터에는 자이로 방향 조절 장치(GDT)가 장착되었는데, 이는 효과적으로 방향 조절 장치에 자이로 안정 인공 시선을 제공하여 함선이 항해 중에도 간접 함포 사격을 수행할 수 있게 했다. 이는 영국 해군과 미국 해군이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수행한 해군 함포 사격의 확고한 기반을 마련한 매우 중요한 발전이었다.

1919년부터 1939년까지 모든 영국 해군 전함/순양전함과 모든 신규 건조 순양함에는 해군 군사 통제 테이블과 GDT 장비가 장착되었으며, 1930년대 초부터(아마 그 이전부터) 각 임무에서 한 번씩 "실탄" 함포 사격 훈련을 수행해야 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시기 주요 함포 사격 지원 사례는 다음과 같다:

  • 「엠덴」에 의한 영국령 마드라스 포격 (1914년: 독일 제국 해군)
  • 칭다오 전투 (1914년: 일본 제국 해군)
  • 갈리폴리 전투 (1915년: 영국 해군, 프랑스 해군)

3. 1. 3. 전간기

니콜라예프스크 사건 (1920년: 중화민국 해군)

완 현 사건 (1926년: 영국 해군)

난징 사건 (1927년: 영국 해군·미국 해군)

3. 1. 4. 제2차 세계 대전



간접 포격은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절정에 달했는데, 이는 휴대용 무전기 시스템과 정교한 중계망의 사용으로 전방 관측병이 목표 정보를 전송하고 병력이 상륙한 후 거의 즉각적인 정확도 보고서를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함, 순양함 (상륙 지원 순양함 포함)[5] 및 구축함은 해안 시설을 맹렬하게 포격했는데, 때로는 며칠 동안이나 요새를 파괴하고 방어 병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였다. 다른 배와의 전투에 부적합한 구식 전함은 종종 이 목적을 위해 떠다니는 포좌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시대의 비교적 원시적인 사격 통제 컴퓨터와 레이더의 특성, 그리고 해군 포격의 빠른 속도를 고려할 때, 정확도는 병력이 상륙하여 배에 보고서를 무선으로 보낼 수 있을 때까지 지정된 관측 항공기에 의존했다.[6] 관측 수상기는 시칠리아 침공 동안 육상 기반 전투기에 취약하다는 것이 증명되었고, 따라서 포격 관측병들은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스핏파이어를 조종했다.[7]

해결책은 더 긴 포격 기간—경우에 따라 최대 2주—을 통해 행운의 몇 발이 의도된 목표물을 파괴할 때까지 목표 지역을 화력으로 포화시키는 것이었다. 이것은 상륙 공격이 임박했음을 적에게 경고했다. 태평양 전쟁에서는 고립된 섬 요새의 방어자들은 언젠가는 침략을 예상하고 이미 사용 가능한 모든 전투 자원을 투입했기 때문에 이것이 덜 중요했다. 일본군은 해안 포격에 전함을 딱 한 번 사용했는데, 1942년 10월 두 척의 전함이 과달카날의 헨더슨 비행장에서 미국 해병대를 포격하여 경미한 피해를 입혔다.[8][9] 포격 기간은 보통 유럽 전선에서 더 짧았는데, 이는 기습이 더 자주 중요했고, 육상 증원이 훨씬 더 가능했으며, 배의 대포는 정적인 요새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이동하는 방어자의 움직임에 대응했기 때문이다.

해군 포격은 내륙으로 20 mi (32 km)까지 도달할 수 있었고 종종 육상 기반 포병을 보완하는 데 사용되었다. 해군 포격은 노르망디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지만, 처음에는 상륙의 기습적인 특성으로 인해 대서양 방벽 방어를 충분히 약화시킬 수 있는 장기간의 포격이 방해받았다.

  • 바 작전 (1940년: 프랑스 해군)
  • 글로그 작전 (1941년: 영국 해군)
  • 웨이크 섬 전투 (1941년: 일본 제국 해군)
  • 미국 본토 포격 (1942년: 일본 제국 해군)
  • 과달카날 전투 (1942년: 미국 해군)
  • 헨더슨 비행장 함포 사격 (1942년: 일본 제국 해군)
  • 허스키 작전, 아발란치 작전 (1943년: 영국 해군, 미국 해군)
  • 노르망디 상륙 작전 (1944년: 영국 해군, 미국 해군)
  • 이오지마 전투 (1945년: 미국 해군)
  • 오키나와 전투 (1945년: 미국 해군)
  • 당시 일본 본토에 대한 함포 사격
  • * 가마이시 함포 사격 (1945년 7월 14일: 미국 해군. 8월 9일: 미국 해군, 영국 해군)
  • * 무로란 함포 사격 (1945년 7월 15일: 미국 해군)
  • * 히타치 함포 사격 (1945년 7월 17일: 미국 해군, 영국 해군)
  • * 하마마츠 함포 사격 (1945년 7월 29일: 미국 해군,

3. 1. 5.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한국 전쟁에서 함포 사격 지원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 분쟁은 한국 반도의 해안을 따라 전투가 많이 벌어졌기 때문에 이러한 유형의 지원에 이상적이었다. 전함 뉴저지와 경순양함 벨파스트가 수많은 경순양함과 구축함과 함께 막대한 지원을 제공했다. 특히 "열차 파괴자(Trainbuster)" 순찰대가 있었는데, 정찰기를 이용하여 북한의 보급 열차, 철도 교량 및 터널을 파괴했다.[10]

인천 상륙 작전 (1950년 : 미국 해군, 대한민국 해군)[10]

포클랜드 전쟁 (1982년 : 아르헨티나 해군·영국 해군)[14]

걸프 전쟁 (1991년 : 미국 해군)[14]에서는 전함 미주리와 위스콘신는 유프라테스 삼각주에 있는 이라크 목표물을 향해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과 주포를 발사했다. 이것은 전쟁 중 전함 포의 마지막 발사였으며, 목표물을 관측하고 사격 수정 지시를 내리기 위해 드론 항공기를 처음 사용한 사례이기도 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022년 : 러시아 연방 해군 흑해 함대아조프해 연안의 우크라이나 영토에 실시)[14]

4. 현대의 함포 사격

현대에는 각종 미사일의 발전으로 지대함 미사일에 의한 연안 방어, 순항 미사일이라는 공격 수단을 획득하여 수상 전투함에 의한 함포 사격은 종언을 맞이하는 듯 했다.[13] 그러나 1982년포클랜드 전쟁에서 상륙 부대 지원을 위해 함포 사격이 몇 차례 행해졌고, 그 전훈을 받아들여 영국 해군은 함포를 탑재하지 않았던 22형 프리깃 후기 건조함에 114mm 포를 탑재했다.[13]

미 해군은 베트남 전쟁에서 지상 부대 지원을 위해 함포 사격을 실시했고, 걸프 전쟁에서도 아이오와급 전함 2척이 양동의 의미를 포함해 쿠웨이트 연안에 함포 사격을 실시했다.[13] 걸프 전쟁에서는 유인기 또는 RQ-2 파이오니어에 의한 탄착 관측 지원을 받아 약 3주에 걸쳐 총 1,102발의 16인치포탄을 발사했다.[13]

현대 함정(특히 서방 해군 함정)이 보유한 127mm 함포의 사거리는 통상 포탄으로는 30km 정도이지만,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 후기 건조함(DDG-81 이후)은 로켓 모터를 사용해 사거리를 100km 이상으로 연장하는 대지 공격용 유도 포탄(ERGM)을 사용할 수 있는 Mk45 Mod4 5인치 (127mm) 포를 탑재하고 있다. 2016년에 취역한 줌왈트급 미사일 구축함에는 신형 155mm 포가 탑재되어 유도 포탄을 사용함으로써 정밀한 장거리 사격을 할 수 있게 되어, 함포 사격의 정밀성이 향상되었다.[13] 로켓 보조 추진탄을 사용한 경우, 사거리는 약 137km, 반수 명중권(CEP)는 수십 미터 이내가 되며, 동시 탄착 능력도 갖춘 계획이었지만,[13] AGS 155mm 포용 LRLAP(장사정 대지 공격탄)는 줌왈트급 자체 건조가 3척으로 중단되어 가격이 상승했기 때문에 초기 조달 150발로 조달이 중단되었다.

이처럼 함포가 부활의 조짐을 보이는 배경에는 저강도 분쟁이나 무장 조직에 대항하기 위해 저렴하고 과도한 파괴력을 갖지 않는 함포의 존재 의의가 재평가받게 된 최근의 풍조가 있다. 미사일 기술 발전으로 인해 당초 저비용 무기였던 미사일이 고가 무기가 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회귀로 여겨진다.

5. 일본의 철도 건설과 함포 사격

메이지 시대의 일본의 철도 개업 전후, 해안가보다 내륙을 경유하는 철도의 건설을 우선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 원인에 대해 "함포 사격을 우려하여 일본 육군이 내륙으로 노선을 변경했다"고 지적되는 경우가 있지만, 실제로는 당시에는 해운이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고, 오히려 내륙부의 수송 개선이 급선무였던 것, 또한, 해안부는 당시의 기술로 건설이 곤란한 곳이 많았던 것이 주된 원인으로 여겨진다.[17]

야츠시로역 이남의 가고시마 본선은 먼저 현재의 히사츠선 루트로 건설되었으며, 도쿄·교토를 잇는 간선도, 당초에는 도카이도 루트가 아닌 나카센도 루트로 계획되었다.

산인 본선을 건설할 때에는, 해안 바로 옆에 아마베 교량이라는 함포 사격에 취약한 구조물을 설치했다. 이는 러일 전쟁 이후라는 시대였기 때문에, 동해 측에는 적이 오지 않는다는 전제였던 것으로 보인다.[18]

이후, 쇼와 시대에 들어, 도카이도 본선이 하마나 호 부근에서 불통이 되었을 경우에 대비하여, 하마나 호의 북쪽을 우회하는 루트로서 후타마타 선이 건설되었다.

6. 미국의 함포 지원 논쟁

미국 내에서는 해군 함포 지원이 전쟁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오랜 논쟁이 있었다. 이 논쟁은 마지막 두 척의 전함이 해군 선박 등록부에서 제거되면서 더욱 긴급해졌다.

해병대는 포병 부대가 각 대대에 여러 명의 해군 함포 연락 장교(NGLO)를 두어 상륙 작전을 위해 해군과 긴밀한 연락을 유지한다. NGLO는 해안 화력 통제반을 담당하며, 화력 통제 센터에서 다른 연락 장교들과 협력하여 함포 사격을 근접 항공 지원, 박격포, 곡사포와 조율한다.

해병대는 3개의 현역 (제1, 제2, 제5) 및 3개의 예비 (제3, 제4, 제6) 항공 해군 함포 연락 중대(ANGLICO) 부대를 유지한다. ANGLICO 대원들은 해군 함포 사격과 같이 고유의 화력 지원 능력이 부족한 미국 및 외국 전투 부대에 일시적으로 배속된다.

20세기 초중반의 대구경 함포를 장착한 함정들은 모두 퇴역했다. 마지막 미국 전함 미주리함은 1992년 3월 31일에 퇴역했으며, 이로 인해 미국 해군에서 줌왈트급 구축함에 155 mm (6.1 인치) 차세대 함포 시스템이 도입되기 전까지 127mm보다 큰 함포는 어떤 현역 군함에도 없었다.

7. 해군 함포 지원 훈련

NATO군의 포병 관측 장교와 전방 항공 통제관들은 해상 함포 사격을 요청하고 조정하는 기본 사항을 배운다. 통제 원리는 육상 폭격과 해상 폭격 모두에서 매우 유사하다. 해안 사격 통제반은 야전 작전에 참여하며, 종종 해병대 포병 포대와 함께 모의 해상 함포 지원을 제공한다. 해병대 관측병이 있다면, 해상 함포 사격 훈련을 받는 함정에 사격 임무를 요청하여 양측 모두 기술을 연마할 기회를 제공한다. 현대 작전에서 해상 함포 사격의 한 가지 용도는 근접 항공 지원을 위한 적 방공망 제압을 제공하는 것이다. 적절한 시기에 발사되는 일제 사격은 출격을 위한 엄호 사격을 제공하고, 적군과 포대가 대공전 무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막는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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