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다 다케오 내각 (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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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쿠다 다케오 내각 (개조)는 1977년 11월 28일 발족한 일본의 내각으로, 일본 적군에 의한 일본항공 472편 납치 사건으로 인한 법무대신 교체를 계기로 개조되었다. 주요 각료로는 후쿠다 다케오(내각총리대신), 세토야마 미쓰오(법무대신), 소노다 스나오(외무대신), 무라야마 다쓰오(대장대신) 등이 있었다. 이 내각은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중의원 해산을 검토했으나, 당내 반대로 무산되었고, 선거에서 후쿠다 총리가 패배하면서 헌정 사상 여당 당수 선거 패배로 퇴진한 유일한 내각이 되었다. 주요 사건으로는 1978년 신도쿄 국제공항 개항, 중일평화우호조약 조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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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다 다케오 내각은 후쿠다 다케오가 내각총리대신으로 임명되어 1976년 12월 24일부터 1978년 12월 7일까지 존재했으며, 여러 차례의 각료 교체와 1977년 11월 28일 개각을 거쳤다.
후쿠다 다케오 내각 (개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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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 정보 | |
내각 명칭 | 후쿠다 다케오 개조내각 |
후리가나 | 후쿠다 타케오 카이조나이카쿠 |
대수 | 67 |
수상 이름 | 후쿠다 다케오 |
성립 연도 | 1977년 |
성립 월일 | 11월 28일 |
종료 연도 | 1978년 |
종료 월일 | 12월 7일 |
여당 | 자유민주당 |
각료 명단 | 각료 명단 (일본 총리대신 관저 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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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각 구성
자유민주당
(후쿠다 파벌)
유임
자유민주당
(후쿠다 파벌)

자유민주당
(후쿠다 파벌)
자유민주당
(오히라 파벌)
자유민주당
(오히라 파벌)
자유민주당
(다나카 파벌)

자유민주당
(무파벌)

자유민주당
(미키 파벌)

자유민주당
(오히라 파벌)
자유민주당
(오히라 파벌)
자유민주당
(미키 파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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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당
(나카소네 파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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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당
(후쿠다 파벌)

자유민주당
(후쿠다 파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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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당
(나카소네 파벌)
자유민주당
(시이나 파벌)
자유민주당
(다나카 파벌)
자유민주당
(오히라 파벌)
자유민주당
자유민주당
(다나카 파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