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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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공수부대는 항공기를 이용하여 병력과 군수 물자를 수송하거나, 낙하산을 이용하여 전략적 요충지에 병력을 투입하는 부대를 의미한다. 공정부대로도 불리며, 적 후방에 은밀히 침투하여 단기 작전을 수행하는 데 적합하다. 공수부대는 정규군 정예 부대이며, 특수부대와는 다른 개념이다. 공수부대의 역사는 1918년 미국 육군 항공대와 빌리 미첼의 공수 작전 제안에서 시작되었으며, 1930년대 소련에서 공수부대 개념이 완성되어 정규군 공수부대가 창설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 소련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공수부대가 활약했으며, 이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걸프 전쟁 등 다양한 군사 작전에 투입되었다. 공수 작전은 강하지대 선정, 공수 강하, 강행 착륙, 물자 투하 등의 방법으로 수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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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수부대 - 선도대
선도대는 주력 부대에 앞서 적진에 침투하여 정찰, 정보 수집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공수 부대에서 유래되었으며 현대에는 대한민국 국군을 포함한 여러 군대에서 핵심 전력으로 운용된다.
공수부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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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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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 | 공수 작전 전투 강하 항공 이동 작전 |
규모 | 대대 ~ 군단 |
지휘관 | 사령관, 장교 |
병력 | 보병, 공병, 포병 등 |
지원 | 수송기, 헬리콥터 |
특징 | |
기동성 | 높은 기동력 |
배치 | 적진 후방, 주요 지역 |
임무 | 적진 깊숙이 침투 주요 시설 장악 아군 작전 지원 |
장비 | 소총, 기관총, 수류탄 등 |
훈련 | 강하 훈련 전투 훈련 특수 훈련 |
역사 | |
기원 |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
발전 | 제2차 세계 대전 중 대규모 사용 |
현재 | 세계 각국에서 운용 |
국가별 공수부대 | |
미국 | 미국 육군 공수부대, 미국 해병대 공수부대 |
영국 | 영국 공수부대 |
프랑스 | 프랑스 공수부대 |
러시아 | 러시아 공수군 |
대한민국 | 대한민국 육군 특수전사령부 |
일본 | 제1공정단 |
기타 국가 | 다수의 국가에서 공수부대 운용 |
작전 | |
주요 작전 | 마켓 가든 작전, 인천 상륙 작전 등 |
기타 작전 | 다양한 규모의 군사 작전 |
관련 용어 | |
공수 작전 | 공수 작전 |
낙하산 강하 | 낙하산 강하 |
헬리본 | 헬리본 |
글라이더 강하 | 글라이더를 이용한 강하 |
훈련 | |
낙하 훈련 | 낙하산을 이용한 훈련 |
전투 훈련 | 실전 전투 상황을 가정한 훈련 |
생존 훈련 | 적진에서 생존하는 훈련 |
장비 | |
개인 화기 | 소총, 기관총, 권총 |
공용 화기 | 박격포, 대전차 무기 |
기타 장비 | 야간 투시경, 통신 장비 |
기타 | |
관련 인물 | 매슈 리지웨이, 제임스 개빈 등 |
관련 영화 | 머나먼 다리, 지상 최대의 작전 |
2. 개념 정리
공수부대는 항공기를 통해 병력과 군수 물자를 수송하거나, 낙하산을 이용해 전략적 요지에 낙하하는 부대를 말하며, 주로 보병으로 구성된다. 해병대가 바다에서 육지로 상륙하는 것처럼, 공수부대는 공중에서 적지로 상륙한다. 공정부대(空挺部隊)로도 불린다.[39] 공수부대는 전선 너머 적군의 배후로 은밀히 배치될 수 있으며, 수송 능력만 충분하면 대규모 병력을 짧은 시간에 투입할 수 있다.
하지만 공수부대는 일반적으로 장기간 작전을 위한 보급품 및 장비가 부족하여 단기 작전에 적합하며, 공중을 통해 퇴각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또한, 낙하산 강하는 기상 악화에 민감하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헬리콥터 기술의 발달로 공중강습이 가능해지면서 대규모 낙하산 강하는 드물게 이루어진다. 글라이더를 이용한 강습은 헬리콥터를 이용한 공중강습으로 완전히 대체되었다.
비행기와 낙하산을 이용해 공중강하하여 적군을 공격하는 군사작전은 공수강습(空輸強襲, airborne assault영어) (국내에서는 '공수작전'이라고 칭함)이라고 하며, 헬리콥터 등을 이용해 지상에 투사되어 적군을 공격하는 군사작전은 공중강습(空中強襲, air assault영어)이라고 한다.
주로 미군의 경우 공수부대 소속 군인들은 보병이라고 불리지 않고, 공수대원(Paratrooper영어)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고급 전투 인력으로 취급받는다. 헬기를 활용한 공중강습 인원들은 Trooper영어 혹은 헬리본 강습보병(Heliborne Infantry영어)이라고 부른다.
공수부대는 정규군 정예부대이며, 특수부대와는 다른 개념이다. 특수부대는 특수전사령부 소속으로, 공수 작전 외에도 다양한 임무를 수행한다. 공수부대는 순수히 공수만을 침투 및 전투 배치 수단으로 다루지만, 특수부대는 낙하산 강하 및 헬기 로펠 외에도 육해공 다방면에서 다양한 침투를 구사하는 최고 정예 인력이다.
정규 보병 중에서도 엘리트 인력으로, 미군의 경우 82공수사단 및 101공수사단에서 미합중국 특수작전사령부 (USSOCOM영어) 오퍼레이터 선발 과정에 응시하는 이들이 많으며, 러시아 연방군의 경우에도 공수부대 경력 이후 스페츠나츠로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3. 역사
항공기를 이용해 부대를 빠르게 이동시키는 개념은 1910년대부터 존재했다. 낙하산은 비행기 탈출 수단으로 실용화되었고, 이를 병력 수송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고려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인 1917년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참호전의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적진 후방에 낙하산 강하를 연구하도록 지시했다.[38]
1916년 10월, 독일군 중위와 특무 조장이 낙하산을 이용해 철도 파괴 임무를 성공시킨 것이 실전에서 낙하산 강하를 통한 병력 수송의 첫 사례이다. 보다 전략적인 의미를 가진 사례는 프랑스의 에브라르 공군 소좌가 부하 1명과 함께 공정 침투 및 물자 공중 투하를 통해 후방 교란 작전을 수행한 것이다. 제1차 세계 대전 말, 미국 육군 항공대의 Lewis H. Brereton영어 소좌와 빌리 미첼 준장 등은 제1보병사단 일부를 메스 적진 후방에 낙하산 강하시키는 계획을 제안했으나, 1919년 2월 실행 예정이었던 이 계획은 전황 변화로 중지되었다.
소비에트 연방은 배낭형 낙하산의 선구자 글렙 코텔니코프가 있었고, 적군(후의 소비에트 연방군)이 건군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군대였기 때문에 세계 최초로 본격적인 공수부대를 편성하게 되었다. [42] 소련은 1927년 동계 대연습에서 8명의 공병을 공중 강하시켜 파괴 공작 성공 판정을 받은 것을 계기로 공수 작전 연구를 시작했다. 소련은 전국에 낙하산 클럽을 설립, 낙하산 숙련자를 모아 공수병 자원을 양성했다. 1931년에는 현재의 러시아 공수군의 기원이 되는 최초의 공수부대를 창설했고, 1935년에는 이미 사단급 병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1935년 9월, 키예프에서 수백 명 규모의 공수부대 강하 훈련이 실시되었고, 이듬해 민스크 부근에서는 화포 18문과 자동차를 동반한 1,200명의 공수 훈련이 성공했다. 이 훈련은 아치볼드 웨이벌 등 각국 주재 무관들도 참관했으며, 많은 이들이 놀랐지만 실제로 공수부대 창설에 착수한 국가는 일부였다. 그러나 비밀리에 소련의 원조를 받아 재군비를 진행하던 나치 독일은 소련 공수부대에 주목, 1935년에 낙하산병 부대 편성에 착수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낙하산으로 투하 가능한 무기가 기관총이나 경박격포 정도로 제한되어, 야포나 대전차포 등 중장비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군용 글라이더나 수송기를 강행착륙시켜야 했다. 이러한 착륙 방식은 중장비 반입 외에도 낙하산 강하 시의 위험과 부대 분산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1940년 독일 국방군의 베저 연습 작전에서는 스타방에르는 낙하산 강하 부대가, 오슬로는 강행착륙 부대가 비행장을 확보한 후 수송기로 후속 부대를 공수했다. 벨기에 전투 초기 에반 에마엘 요새 전투에서는 글라이더를 요새 위에 착륙시켜 부대를 투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글라이더 부대는 격추 시 큰 손실이 발생하고, 낙하산 부대보다 집중적인 착륙이 가능하지만 어느 정도 분산은 불가피하며, 넓고 평평한 착륙 장소가 필요하다는 제약이 있었다. 글라이더는 동력이 없어 예인기에서 분리되면 기동성이 부족하고, 기체가 일회용이라 비경제적이었다. 이러한 문제로 글라이더를 이용한 공정 작전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중단되었고, 엔진을 장착한 강행착륙기가 사용되었다.
이후 중량물 투하 기술 발달로 글라이더나 수송기 착륙 없이 중장비 투입이 가능해졌다. 헬리콥터 발달에 따른 헬리본 전술 실용화로 병력 분산 및 기체 일회용 문제도 해결되었다. 그러나 현재 전술 수송기 대부분은 필요시 강행착륙기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1976년 이스라엘 국방군의 엔테베 공항 기습 작전에서는 C-130 수송기를 은밀히 강행착륙시켜 특수부대와 함께 장갑차, 이디 아민 대통령 전용차와 같은 색으로 도색한 메르세데스-벤츠 600을 내려 인질 구출 작전을 전개했다.
3. 1. 창설 배경
기록상 최초의 공수부대 구상은 1918년 미 육군 항공대의 빌리 미첼 준장이 제안한 것이다. 그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독일군 요충지인 메츠에 미 제1사단을 낙하산으로 투입하는 계획을 제시했다.[1] 당시에는 공수작전의 필요성과 효과가 크지 않다고 판단되어 상부의 반대로 무산되었지만, 미첼은 이후에도 이 전술을 연구하고 논문으로 공수 작전의 유효성을 주장했다.[1]
미하일 투하쳅스키는 제1차 세계대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종심작전이론을 구상하며 공수부대의 개념을 발전시켰다.[1] 그는 적의 방어선을 무력화하기 위해 기갑부대의 기동력과 공중 수송을 결합한 종심작전을 고안했다.[1] 이를 바탕으로 1931년 소련은 최초의 정규군 공수부대를 창설했다.[1]
3. 2. 초기의 공수부대
벤저민 프랭클린은 1784년 열기구를 이용한 최초의 유인 비행이 성공한 지 불과 몇 달 후에 공중 공격의 위협을 예견했다.[40]
윈스턴 처칠은 제1차 세계 대전 중인 1917년 독일군 후방을 공격하기 위해 공수부대 창설을 제안했다.[41] 1918년 말, 루이스 H. 브레턴 소령과 빌리 미첼 준장은 미국 제1사단 일부를 메츠 근처 독일군 후방에 투하하는 것을 제안했으나,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되기 전에 전쟁이 끝났다.
전후, 미국 육군 항공대는 항공기 날개에 병력을 태우고 낙하산을 이용해 강하시키는 실험을 했다. 1927년 11월 이탈리아에서 최초의 낙하산 강하가 이루어졌고,[42] 이후 몇 년 안에 여러 대대가 증강되어 제185보병사단 "폴고레"와 제184보병사단 "네보" 두 개의 사단으로 편성되었다.[3]
거의 같은 시기에 소련도 이 아이디어를 실험하여, 1931년 첫 정규군 공수부대를 창설했다. 1935년 키예프 군사지구 기동훈련에서 군단 규모의 강하를 시연했는데, 영국의 아치볼드 웨이벌 등 외국 참관인들에게 공개되었다.
참관국 중 하나인 나치 독일은 특히 관심을 가졌다. 1936년, F. W. 임만스 소령은 슈텐달(보르스텔)에 낙하산 학교를 설립하라는 명령을 받고, 융커스 Ju 52 항공기를 대량 구입했다. 최초의 훈련반은 '아우스빌둥스콤만도 임만스'로 알려져 있으며, 1936년 5월 3일 첫 번째 훈련 과정을 시작했다.
아르헨티나, 페루, 일본, 프랑스, 폴란드 등 다른 나라들도 이 무렵 공수부대를 편성했다. 프랑스는 공수부대에 여성을 조직한 최초의 국가가 되어, 평시에는 자연재해 지역에 낙하산으로 투하되고, 전시에는 제복을 입은 의료 부대가 되는 200명의 간호사를 모집했다.[4]
3. 3. 제2차 세계 대전
독일은 제2차 세계 대전 초기, 공수부대를 활용하여 덴마크, 노르웨이, 벨기에, 네덜란드 등에서 주요 거점을 점령했다. 덴마크에서는 마스네뢰 섬의 마스네뢰 요새(Masnedøfort)에 공수부대를 투입, 스토르스트룀 다리를 점령했다.[1] 노르웨이에서는 올보르 공군기지에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노르웨이 상공 작전에 중요한 거점을 확보했다. 벨기에에서는 에반 에마엘 요새 전투에서 공수부대가 요새를 점령했다. 네덜란드 전투에서는 헤이그 전투에 공수부대가 투입되었으나, 큰 피해를 입고 일부 비행장이 다시 네덜란드군에 의해 탈환되기도 했다.
크레타 전투(1941)에서 독일 공수부대는 큰 피해를 입었지만, 이 전투는 연합군에게 공수부대의 중요성을 각인시켰다. 연합군은 영국, 미국 등에서 공수부대를 창설, 노르망디 상륙작전, 마켓 가든 작전 등 주요 작전에 투입했다.
일본 제국은 태평양 전쟁에서 공수부대를 활용, 팔렘방 전투 등에서 성과를 거두었다. 일본 제국 육군은 ''정신 단''(Raiding Brigades)을, 일본 제국 해군은 해병(Rikusentai) 공수부대를 네덜란드령 동인도 작전에 투입했다. ''리쿠센타이'' 공수부대는 마나도 전투, 팀모르 전투에 투입되었고,[5][6][7] ''정신''은 팔렘방 전투에 투입되었다.[8]
3. 4.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최근 몇 년 동안 헬리콥터의 활용이 증가하면서 공수부대의 규모는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다. 그러나 공수부대는 여전히 중요한 전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낙하산으로 투하할 수 있는 무기는 기관총이나 경박격포 정도가 한계였으며, 야포나 대전차포 등의 중장비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군용 글라이더 또는 수송기를 강행착륙시켜 반입해야 했다. 이러한 착륙 방식을 채택하면 중장비를 반입할 수 있는 것 외에도, 낙하산에 의한 전투 강하 시 발생하는 강하·착륙 시의 위험이나 부대의 분산과 같은 문제를 어느 정도 회피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예를 들어 1940년 독일 국방군이 베저 연습 작전을 실시했을 때, 스타방에르에서는 낙하산 강하한 부대, 오슬로에서는 강행착륙한 부대에 의해 비행장을 확보한 후, 수송기로 후속 부대를 공수했다. 또 그 다음 달, 벨기에 전투 개전 초기에 실시된 에반 에마엘 요새 전투에서는 글라이더를 요새 위에 착륙시켜 부대를 투입하는 작전도 실시되었다.
그러나 글라이더 부대는 1기라도 격추되면 큰 손실이 되고, 낙하산 부대보다 집중적으로 착륙할 수 있다고는 해도 어느 정도 분산은 피할 수 없으며, 다수의 글라이더를 착륙시키려면 넓고 평평한 땅이 필요하다는 제약이 있었다. 또 글라이더 자체가 동력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예인기로부터 분리되어 활공에 들어가면 기동성이 부족하고, 게다가 기체는 일회용이기 때문에 비경제적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글라이더를 사용한 공정 작전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만 종료되었고, 대전 후에는 글라이더에 엔진을 장착한 것과 같은 강행착륙기가 사용되었다.
그 후, 중량물의 투하 기술이 발달하면서 글라이더나 수송기를 착륙시키지 않고도 중장비를 투입할 수 있게 되었다. 또 헬리콥터의 발달에 따라 헬리본 전술이 실용화되면서 병력의 분산이나 기체의 일회용 등과 같은 문제도 해결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전술 수송기의 대부분은 필요하다면 강행착륙기로 사용할 수 있는 설계가 되어 있다. 1976년 이스라엘 국방군이 엔테베 공항 기습 작전을 실시했을 때는 C-130 수송기를 은밀하게 강행착륙시켜 특수부대와 함께 장갑차 그리고 테러리스트에게 보호를 제공하고 있던 이디 아민 대통령의 전용차와 같은 색으로 도색한 메르세데스-벤츠 600을 내려 인질 구출 작전을 전개했다.
4. 대한민국의 공수부대
대한민국에서는 해병대 제1사단의 3개 공정대대(21, 31, 73대대)가 유일한 공수부대이다.[39] 육군특수전사령부(별칭 '공수특전단')와 해군특수전전단은 공수 훈련을 받지만 특수전 부대이며, 제2신속대응사단은 헬기를 이용한 공중강습을 수행하는 부대이다.
4. 1. 대한민국 육군
육군특수전사령부는 공수부대가 아닌 특수전 부대이지만, '공수특전단'이라는 별칭으로 인해 공수부대로 오인되기도 한다.[39] 이는 관련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부르던 명칭이 굳어진 것이다. 다만 일반적인 타 해외 선진 특수부대에 비해 병력 규모가 지나치게 크며, 평균적인 교육 훈련 수준과 작전계획, "공수특전단"이라는 부대 작명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공수부대로 여기는 여론이 있다.정규전을 치르는 공중강습부대로는 제2신속대응사단이 있다. 이 부대는 낙하산을 이용하는 공수강습이 아닌, 헬리콥터를 활용한 공중강습을 수행한다.
4. 2. 대한민국 해군
해군특수전전단은 특수전 부대로, 공수 훈련을 받지만 공수부대는 아니다.[39]4. 3. 대한민국 해병대
해병대 제1사단의 3개 공정대대(21, 31, 73대대)는 대한민국 유일의 순수 공수부대이다.[39] 해병대 공수교육은 해병대 교육훈련단에서 실시되며, 해군, 공군, 국군정보사 등 타군 부대원도 위탁 교육을 받는다.5. 세계의 공수부대
소련 공수군과 러시아 공수군은 총참모부 산하 핵심 부대로 편성되어 있다. 1931년 처음 공수훈련을 성공한 소련 공수군은 넓은 국토를 가진 러시아의 특성상 공수 기동을 통한 영토 방어와 유사시 작전 선두에 나서는 임무를 맡았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체첸전쟁, 돈바스 전쟁 등 굵직한 전투에 참전한 실전 경험을 가진 러시아의 정예부대이자 신속기동부대이다.[25] 러시아 군에서 신형 장비 보급이 가장 빠르게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2008년 러시아 국방개혁 당시 육군, 공군, 해군, 우주군이 축소되었음에도 유일하게 규모가 확대되었으며, 병력은 35,000명으로 추정된다.
냉전 기간 동안 소련은 7개의 공수사단과 1개의 훈련사단으로 구성된 세계 최대 규모의 공수부대를 유지했다. VDV는 소련 국방부에 직접 예속되어 일반 소련 부대보다 엄격한 훈련과 더 나은 장비를 받았다. 대부분의 공수부대가 경보병 부대인 것과 달리, VDV는 BMD 계열 경량 IFV, BTR-D 장갑차, 2S9 노나 120mm 자주포 박격포, 2S25 스프루트-SD 125mm 구축전차를 사용하여 완전히 기계화된 낙하산 투입 부대로 발전했다.
VDV는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포함하여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과 러시아의 거의 모든 분쟁에 참여했다. 엘리트 부대인 VDV는 '''텔냐시카'''(줄무늬 셔츠)와 청색 베레모를 착용했다.
5. 1. 미국
미국 육군의 제101공수사단은 'Screaming Eagles'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2년에 공수부대로 창설되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마켓 가든 작전, 벌지 전투 등 주요 작전에 참여했다. 현재는 공중강습사단으로 변경되어 헬리콥터 투입 작전에 동원되고 있다.
제173공수여단전투단은 1965년 제101공수사단에서 1여단이 독립하여 창설된 부대이다. 베트남 전쟁의 유일한 공수작전인 '정션 시티 작전'에서 전투강하를 성공시켰다. 베트남 전쟁 이후 해체되었다가 2000년에 재창설되어 이라크 자유작전에서 여단병력이 수송기를 이용, 이라크 북부에 침투하여 공수부대의 존재감을 알렸다.
제187공수연대 전투단("라카산")은 한국 전쟁 당시 두 차례의 전투 강하 작전을 수행했다. 1950년 10월 20일 북한 순천과 숙천에서 첫 번째 전투 강하를, 1951년 3월 21일 한국 문산에서 "토마호크 작전"이라는 작전명으로 두 번째 전투 강하를 실시했다. 인도 육군 제60낙하산 야전 의무대는 이 작전에 의료 지원을 제공했다. 제187연대는 한국에서 여섯 차례의 전투에 참전했다. 전쟁 직후, 베트남 디엔비엔푸에서 포위된 프랑스군 구출 작전에 투입될 가능성이 검토되었지만, 미국은 자국군을 전투 지역에 파병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부대는 제101공수사단에 배속되었다가 해체되었고, 현재 제187보병연대 제1대대와 제3대대는 공정작전 부대로서 제101공수사단에 소속되어 있다.
5. 2. 프랑스
프랑스는 1730년대 후사르 기병대로 창설되어 현대에 와서 공수부대로 전환되었다. 프랑스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비교적 일찍 공수부대의 효과를 깨닫고 공수부대 편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프랑스군은 공수부대의 효용성을 인식하고, 여러 부대를 창설하였다. 프랑스 공수부대는 육군 보병부대, 외인부대, 해병대(Troupes de marine; TDM), 육군 식민지부대 등 육군의 각급 부대에 창설되어 각종 식민지 전쟁에 참전하였다. 1954년, 프랑스의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참전 이후 공수부대는 연대급으로 규모가 확장되었으며 최종적으로는 사단급에 편제되었다. 제1낙하산후사르연대는 알제리 전쟁에도 참전했는데, 이때 세계 최초의 헬리본 작전이 수행되었다.프랑스는 1946년부터 1954년까지 베트민(Việt Minh)과 벌인 전쟁에서 공수부대를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해병대(Troupes de marine), 프랑스 외인부대, 그리고 베트남 현지 부대가 레 작전(Operation Lea)(1947)과 같은 수많은 작전에 참여했다. 이 작전은 이 전쟁에서 처음으로 시행된 대규모 공중 작전 중 하나였으며, 프랑스 공수부대는 봉까(Bắc Kạn)에 착륙하여 보응우옌잡(Võ Nguyên Giáp) 장군을 사로잡고 베트민 지휘부를 교란하려 했다. 베트민을 흩어놓고 장비를 노획하는 데 전술적으로 성공했지만, 보응우옌잡 장군은 탈출했고, 이 작전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나산 전투(Battle of Nà Sản)(1952)에서 프랑스군은 처음으로 인도차이나에서 "고슴도치 방어(Hedgehog Defense/le hérisson)" 전술을 사용하여 중요한 방어적 승리를 거두었다. 히롱델 작전(Operation Hirondelle)(1953)은 랑선(Lạng Sơn) 근처 베트민 보급 기지를 파괴하기 위한 집중적인 공격 작전이었다. 공수부대는 은밀하게 숨겨진 보급품을 파괴하여 베트민의 보급 체계를 성공적으로 교란했다. 정예 훈련과 기동성을 통해 여러 전술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공수부대의 노력은 베트민의 적응력과 프랑스군의 보급 제약에 의해 빈번하게 무력화되었고, 이는 결국 디엔비엔푸 전투(Dien Bien Phu)의 참패로 이어졌다.
5. 3. 러시아
소련 공수군과 러시아 공수군은 총참모부 산하 핵심 부대로 편성되어 있다. 1931년 처음 공수훈련을 성공한 소련 공수군은 국토가 넓은 러시아의 특성상 공수 기동을 통한 영토 방어, 유사시 작전 선두에 나서는 임무를 맡았다. 러시아의 정예부대이자 신속기동부대로서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체첸전쟁, 돈바스 전쟁 등 굵직한 전투에 참전한 실전 경험을 가지고 있다.[25]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러시아 군에서 신형 장비 보급이 가장 빠르게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2008년 러시아 국방개혁 당시 육군, 공군, 해군, 우주군이 축소될 때도 유일하게 규모가 확대되었으며, 병력은 35,000명으로 추정된다.냉전 기간 동안 소련은 7개의 공수사단과 1개의 훈련사단으로 구성된 세계 최대 규모의 공수부대를 유지했다. VDV는 소련 국방부에 직접 예속되었으며, 일반 소련 부대보다 훨씬 엄격한 훈련과 더 나은 장비를 받았다. 대부분의 공수부대가 경보병 부대인 것과 달리, VDV는 BMD 계열 경량 IFV, BTR-D 장갑차, 2S9 노나 120mm 자주포 박격포, 2S25 스프루트-SD 125mm 구축전차를 사용하여 완전히 기계화된 낙하산 투입 부대로 발전했다.
VDV는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포함하여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과 러시아의 거의 모든 분쟁에 참여했다. 엘리트 부대인 VDV는 '''텔냐시카''' 또는 줄무늬 셔츠와 청색 베레모를 착용했다.
6. 공수 작전의 방법
공수부대는 보병을 주축으로 항공기를 통해 병력과 물자를 수송하거나, 낙하산을 이용해 전략적 요지에 공중 낙하하는 부대이다. 해병대가 바다에서 육지로 상륙하는 것처럼, 공수부대는 공중에서 적지로 상륙하여 전선 너머 적군의 배후에 은밀히 배치될 수 있다. 수송 능력만 충분하다면 대규모 병력을 짧은 시간에 투입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장기간 작전을 위한 보급 및 장비가 부족하여 단기 작전 후 공중 퇴각하는 형태에 적합하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낙하산으로 투하 가능한 무기가 기관총이나 경박격포 등으로 제한되어, 야포나 대전차포와 같은 중장비는 군용 글라이더나 수송기를 강행착륙시켜야 했다.[39] 이러한 착륙 방식은 중장비 반입 외에도 낙하산 강하 시 발생하는 위험이나 부대 분산 문제를 어느 정도 회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예를 들어, 1940년 독일 국방군의 베저 연습 작전에서는 스타방에르는 낙하산 강하 부대, 오슬로는 강행착륙 부대가 비행장을 확보한 후 수송기로 후속 부대를 공수했다.[39] 벨기에 전투 초기의 에반 에마르 요새 전투에서는 글라이더를 요새 위에 착륙시켜 부대를 투입하기도 했다.[39]
그러나 글라이더 부대는 격추 시 큰 손실이 발생하고, 넓고 평평한 착륙 장소가 필요하며, 기동성이 부족하고 기체가 일회용이라 비경제적이었다.[39] 이러한 문제로 글라이더를 이용한 공정 작전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중단되었고, 이후에는 엔진을 장착한 강행착륙기가 사용되었다.[39]
헬리콥터의 발달로 헬리본 전술이 실용화되면서 병력 분산 및 기체 일회용 문제가 해결되었고, 중량물 투하 기술 발달로 글라이더나 수송기 착륙 없이도 중장비 투입이 가능해졌다.[39] 현대 전술 수송기 대부분은 필요시 강행착륙기로 사용 가능하다.[39] 1976년 이스라엘 국방군의 엔테베 공항 기습 작전에서는 C-130 수송기를 강행착륙시켜 특수부대와 장갑차 등을 투입하여 인질 구출 작전을 전개했다.[39]
6. 1. 강하 지대 선정
공중 전술에서 강하 지대를 선택할 때는 접근 용이성, 위치, 장애물 유무를 고려한다. 공수부대를 강하시키는 수송기가 접근하기 쉽도록 적의 대공무기를 최대한 피하면서, 강하 지대 자체는 조종사가 명확하게 식별할 수 있어야 한다.[1] 지형 외에도, 특히 저고도 강하의 경우 텔레비전 안테나나 큰 건물과 같은 인공 구조물도 고려된다.[2]강하 지대의 위치는 임무 지시 내용에 따라 결정되지만, 일반적으로 전투 최전선에서 적당히 떨어져 적의 간접 사격을 최대한 받지 않는 곳에 설정된다.[3] 매우 드물게 전투 지역에 직접 강하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럴 경우에는 충분한 화력 지원으로 그 지역을 제압해야 한다.[4]
강하 지대는 착지 시 공수부대원이 부상을 입거나 행동이 제한될 만한 장애물이 없는 곳이 좋다.[5] 지면은 평평하고 움푹 들어간 곳이나 도랑, 수로, 암석 지대가 없는 곳이 좋다.[6] 또한 1000m 이내에 수심 1.2m 이상의 하천이 없고, 가능하면 높이 11m 이상의 나무도 없는 것이 바람직하다.[7] 상공의 전선은 사전에 폭격이나 방해 공작으로 파괴하거나, 적어도 전기가 흐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8]
6. 2. 공수 강하
공수부대의 강하에 앞서 소규모 부대가 적지에 잠입하여 정보 수집 및 주력 부대의 강하를 유도·지원하는 활동을 수행한다. 이를 수행하는 부대가 Pathfinder (military)|패스파인더영어이며, 육상자위대 제1공수단의 경우에는 단 본부 중대의 강하 유도 소대가 이에 해당한다. 패스파인더는 소수 인원으로 은밀하게 잠입해야 하는 특성상, 강하 기술로 고고도에서의 자유낙하를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항공기와 연락하기 위한 통신기, T자형 표시로 항공기의 진입 장소를 나타내는 대공 천판, 상공에서도 장소를 찾기 쉽도록 하는 연막탄, 상공의 풍향·풍속을 확인하기 위한 풍선과 그것을 부풀리기 위한 소형 봄베 등 특수한 장비를 사용한다.강하 유도 부대 이후, 공수부대 본대에 앞서 선발대가 적지 후방에 공수 강하하여 지상을 도보로 이동, 방어 요지를 점령하는 경우도 있다. 이어서 본대가 강하하지만, 대부대가 강하하는 경우 강하 범위가 1,000~2,000미터로 넓게 흩어지기 때문에, 대원들은 지정된 집결지로 이동한다. 이 시점에서는 도보 이동이 주가 되지만, 순차적으로 별도 투하·강하한 차량 등의 중장비를 회수하여 전력을 강화해 나간다.
6. 3. 강행 착륙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기관총이나 경박격포 정도가 낙하산으로 투하할 수 있는 무기의 한계였으며, 야포나 대전차포 등의 중장비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군용 글라이더 또는 수송기를 강행착륙시켜 반입해야 했다.[1] 이러한 착륙 방식은 중장비를 반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낙하산 강하 시 발생하는 위험이나 부대 분산과 같은 문제를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2]예를 들어 1940년 독일 국방군이 베저 연습 작전을 실시했을 때, 스타방에르에서는 낙하산 강하한 부대, 오슬로에서는 강행착륙한 부대에 의해 비행장을 확보한 후, 수송기로 후속 부대를 공수했다.[3] 그 다음 달, 벨기에 전투 개전 초기에 실시된 에반 에마르 요새 전투에서는 글라이더를 요새 위에 착륙시켜 부대를 투입하는 작전도 실시되었다.[3]
그러나 글라이더 부대는 1기라도 격추되면 큰 손실이 발생하고, 다수의 글라이더를 착륙시키려면 넓고 평평한 땅이 필요하다는 제약이 있었다.[2] 또한 글라이더는 자체 동력이 없어 예인기로부터 분리되어 활공에 들어가면 기동성이 부족하고, 기체는 일회용이기 때문에 비경제적이기도 했다.[2] 이러한 문제 때문에 글라이더를 사용한 공정 작전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만 종료되었고,[2] 대전 후에는 글라이더에 엔진을 장착한 것과 같은 강행착륙기가 사용되었다.[1]
이후, 중량물 투하 기술이 발달하면서 글라이더나 수송기를 착륙시키지 않고도 중장비를 투입할 수 있게 되었다.[1] 헬리콥터의 발달로 헬리본 전술이 실용화되면서 병력 분산이나 기체의 일회용 문제도 해결되었다.[2] 현재의 전술 수송기 대부분은 필요하다면 강행착륙기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1] 1976년 이스라엘 국방군이 엔테베 공항 기습 작전을 실시했을 때는 C-130 수송기를 은밀하게 강행착륙시켜 특수부대와 함께 장갑차, 그리고 테러리스트에게 보호를 제공하고 있던 아민 대통령의 전용차와 같은 색으로 도색한 메르세데스-벤츠 600을 내려 인질 구출 작전을 전개했다.[4]
6. 4. 물자 투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대형 낙하산과 플랫폼을 이용한 중량물자 투하 방식이 개발되었다. 미국 공군은 1948년 페어차일드 C-119를 실용화하면서 중량물자 투하가 가능해졌다.[1]중량물자 투하 방식은 크게 컨테이너를 이용하는 방식(Container Delivery System, CDS영어)과 플랫폼을 이용하는 방식(Platform Delivery System, PDS영어) 두 가지로 나뉜다.[1] CDS는 탄약, 연료, 식량 등 보급품이나 비교적 가벼운 소형 장비에 사용되며,[1] PDS는 차량이나 화포에 사용된다.[1] 육상자위대는 중량물자 투하장비를 장비화하여 운용하고 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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