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장갑함 그라프슈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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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 장갑함 그라프슈페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동양 함대 사령관 막시밀리안 폰 슈페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1930년대에 건조된 이 군함은 베르사유 조약의 군비 제한을 회피하기 위해 설계되었으며, 28.5노트의 속도와 28cm 주포 6문을 장착했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고, 조지 6세 대관 기념 관함식에 참가하는 등 활동하다가,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에는 통상 파괴 작전을 수행했다. 1939년 라플라타 해전에서 영국 해군에 의해 손상된 후, 중립국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 항구에 피신했지만, 수리 기간 제한과 영국 해군의 압박으로 인해 자침되었다. 2004년부터 잔해 인양 작업이 진행되었으며, 2006년에는 함미의 독수리 문장이 인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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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장갑함 그라프슈페 - [배(Ship)]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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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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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명 | 아드미랄 그라프 슈페 |
함명 유래 | 막시밀리안 폰 슈페 |
건조 | 빌헬름스하펜 해군 공창 |
기공 | 1932년 10월 1일 |
진수 | 1934년 6월 30일 |
취역 | 1936년 1월 6일 |
최후 | 1939년 12월 17일 자침 |
국적 | 나치 독일 |
종류 | 장갑함, 중순양함 |
소속 | 크릭스마리네 |
동형함 | 도이칠란트급 장갑함 |
제원 | |
설계 배수량 | 14,890 톤 |
만재 배수량 | 16,020 톤 |
전장 | 186 미터 |
전폭 | 21.65 미터 |
흘수 | 7.34 미터 |
동력 | 54,000 마력 |
추진 방식 | 디젤 엔진 8기, 2축 추진 |
속력 | 28.5 노트 |
항속 거리 | 18.69 노트에서 16,300 해리 |
승조원 | 장교 33명, 사병 586명 |
센서 | |
1939년 | FMG 39 G(gO) 레이더 |
무장 | |
주포 | 52구경 28.3cm 3연장포 2기 |
부포 | 15cm 단장포 8문 |
대공포 | 10.5cm 연장포 3기 6문, 3.7cm 대공포 8문, 2cm 대공포 10문 |
어뢰 | 53cm 어뢰 발사관 2기 8문 |
장갑 | |
포탑 | 정면 160mm |
장갑대 | 80mm |
갑판 | 40mm |
항공기 | |
탑재기 | Ar 196 2기 |
시설 | 사출기 1기 |
2. 함명
함명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동양 함대 사령관이었던 막시밀리안 폰 슈페 제독의 이름에서 유래했다.[6][12] 슈페 제독은 칭다오를 근거지로 활동하며 코로넬 해전에서 영국 함대를 상대로 승리했으나, 이후 포클랜드 해전에서 전사했다. 함명은 1934년 6월 30일 열린 진수식에서 슈페 제독의 손녀가 직접 붙였다. 함교 정면에는 코로넬 해전의 승리를 기념하는 명판이 부착되어 있었다.
제1차 세계 대전 패전 후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군비, 특히 해군력 보유에 엄격한 제한을 받았다. 조약에 따라 독일 해군(라이히스마리네)은 기준 배수량 약 10160470.00kg를 초과하는 군함을 건조할 수 없었다. 이러한 제약 속에서도 바이마르 공화국은 조약의 틀 안에서 최대한 강력한 군함을 보유하고자 노력했고, 그 결과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이 탄생했다.
한편,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건조가 중단된 마켄젠급 순양전함의 4번함 역시 '그라프 슈페'로 명명될 예정이었다.
독일어 원어 발음에 따르면 '''Admiral Graf Spee|아트미랄 그라프 슈페deu'''로 표기하는 것이 더 정확하지만, 일본 등 일부 국가에서는 영어식 발음인 '아드미랄'로 불리기도 한다.[13][14]
3. 건조 배경 및 설계
아드미랄 그라프 슈페는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의 3번함으로[6], 빌헬름스하펜 해군 공창에서 1932년 10월 1일에 기공하여 1934년 6월 30일 진수되었다. 함명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동양함대 사령관이었던 막시밀리안 폰 슈페 제독의 이름에서 따왔으며, 진수식에는 그의 손녀가 참여했다. 1936년 1월 6일에 취역했는데, 이는 독일 재군비 선언 이후로, 나치 독일의 크릭스마리네 소속이 되었다.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은 약 10160470.00kg라는 배수량 제한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28cm 주포 6문을 탑재하여 당시 열강의 중순양함들이 장비한 20cm급 주포를 압도하는 화력을 갖추었다. 이 때문에 영국 해군은 이 함급을 '주머니 속의 전함'이라는 의미의 '''포켓 전함'''(Pocket battleship)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7][8] 그러나 제한된 배수량으로 인해 강력한 화력에 비해 방어력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은 설계상 구조적인 결함을 안고 있었다. 선박용 디젤 연료는 점도가 높아 그대로 기관에 공급하기 어렵기 때문에, 연료 탱크와 기관 사이에 중간 탱크를 두어 연료를 가열한 뒤 기관으로 보내는 방식을 사용했다. 그런데 이 중간 탱크의 보일러에서 증기를 공급하는 파이프 일부가 장갑으로 보호되지 않은 상갑판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 결함은 고위도 저온 해역에서의 작전 수행 능력에 영향을 줄 수 있었으며, 훗날 라플라타 해전 이후 그라프 슈페가 자침하게 되는 간접적인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약점은 당시 독일 해군의 최고 기밀 사항이었다.
3. 1. 설계 특징
Admiral Graf Spee|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u는 전체 길이가 186m였으며, 선폭은 21.65m, 최대 흘수는 7.34m였다. 함선의 설계 배수량은 14890MT이고, 만재 배수량은 약 16277072.94kg였지만, 공식적으로는 베르사유 조약의 약 10160470.00kg 제한 기준을 준수한다고 명시되었다.
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u는 4세트의 MAN 9기통 복동 2행정 디젤 엔진으로 구동되었다. 최고 속도는 28.5kn였으며, 출력은 54000PS에 달했다. 18.69kn의 순항 속도로 항해 시, 항속 거리는 16300nmi에 이르렀다. 설계상 표준 승무원은 장교 33명과 사병 586명으로 구성되었으나, 1935년 이후에는 장교 30명과 921명에서 최대 1,040명의 수병으로 크게 증가했다.
함선에는 항공기 사출기 1대가 장착되었으나, 항공기 격납고는 없었다. 사출기에는 수상기 1대가 탑재되었으며, 초기에는 하인켈 He 60이 사용되었으나 전쟁 발발 전에 Arado Ar 196으로 교체되었다. 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u는 레이더를 장착한 최초의 독일 군함이었다. FMG G(gO) "Seetakt" 세트가 전방 상부의 거리 측정기에 장착되었다.
주포로는 28cm SK C/28 6문을 탑재했으며, 이는 상부 구조물 앞뒤에 위치한 2개의 3연장 포탑에 장착되었다. 부포로는 15cm SK C/28 8문을 단장 포탑 형태로 선체 중앙에 배치했다. 대공 무장으로는 3개의 2연장 10.5cm L/65포가 3개의 SL-4 지휘소에 의해 통제되었고, 추가로 4개의 2연장 3.7cm SK C/30포와 10개의 단장 2cm C/30포를 갖추었다. 또한, 함미에는 2쌍의 4연장 53.3cm 갑판 장착 어뢰 발사관을 탑재했다.
함선의 장갑대 두께는 100mm였고, 상부 갑판은 17mm, 주 장갑 갑판은 45mm에서 70mm 두께였다. 주포 포탑의 전면 장갑은 140mm 두께였고, 측면은 80mm 두께였다.
4. 함생애
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u는 1932년 10월 1일 빌헬름스하펜 해군 공창에서 기공되어, 1934년 6월 30일 진수식을 가졌다. 함명은 막시밀리안 폰 슈페 제독의 딸이 직접 명명했다[15]. 1936년 1월 6일 취역한 후 대서양에서 수개월간의 숙련 훈련을 거쳤다. 이후 스페인 내전에 투입되어 순찰 임무를 수행했으며[16], 1937년 5월 20일에는 영국 조지 6세의 대관식을 기념하는 해상 열병식에 참가하여 각국 해군의 주목을 받았다[18].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u는 통상 파괴 작전에 투입되었다. 1939년 9월 말부터 남대서양과 인도양을 무대로 활동하며 다수의 연합국 상선을 격침시켰다[34][44][46][48][52][63][69][71][75]. 이에 대응하여 연합군은 여러 수색 부대를 편성하여 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u를 추적했다.
1939년 12월 13일, 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u는 라플라타 강 어귀에서 영국 해군 G부대의 중순양함 엑세터, 경순양함 에이잭스, 아킬레스와 조우하여 라플라타 해전을 벌였다[9]. 이 전투에서 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u는 엑세터에 큰 피해를 입혔으나, 자신 역시 손상을 입어[78] 본국 귀환이 어렵게 되었다. 함장 한스 랑스도르프는 가장 가까운 중립국 항구인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로 함선을 퇴각시켰다[78].
몬테비데오 항에 정박했으나, 우루과이 정부는 영국의 압력 하에 국제법에 따른 72시간의 정박 시한만을 허용했다[81]. 영국 해군은 외교적 압박과 함께 강력한 함대가 항구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는 기만 작전을 펼쳤다. 함선의 수리가 불가능하고 탈출로가 봉쇄되었다고 판단한 랑스도르프 함장은 승조원들의 불필요한 희생을 막기 위해 12월 17일, 함선을 몬테비데오 항구 밖으로 이동시켜 자침시켰다[6][84]. 자침 장면은 라디오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6].
랑스도르프 함장은 함선 자침의 책임을 지고 12월 19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독일 군함기를 몸에 두른 채 권총으로 자결했다[90][91]. 그는 나치즘 신봉자가 아닌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알려져 있으며, 마지막까지 승조원들의 안전을 우선시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자침 후 아르헨티나로 이동한 승조원들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억류되었다[92].
4. 1.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u는 Ersatz Braunschweigdeu라는 이름으로 독일 제국 해군에 의해 빌헬름스하펜에 있는 빌헬름스하펜 해군 조선소에 발주되어, 낡은 전노급 전함 SMS Braunschweigdeu를 대체할 예정이었다. 1932년 10월 1일, 건조 번호 125번으로 기공되었고[15], 1934년 6월 30일 진수되었다. 진수식에서는 함선 이름의 유래가 된 막시밀리안 폰 슈페 제독의 딸이 명명했다. 1년 반 남짓 지난 1936년 1월 6일 완공되어 독일 해군에 취역했다.
취역 후 첫 3개월 동안 광범위한 해상 시험을 통해 실전 배치를 준비했다. 첫 번째 사령관은 해군 대령(KzS) 콘라트 파치히였으며, 1937년 발터 바르체하 대령으로 교체되었다. 함대에 합류한 후 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u는 독일 해군의 기함이 되었다.
1936년 여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대서양으로 파견되어 스페인 공화파가 점령한 해안에서 스페인 내전 불개입 순찰 임무에 참여했다. 1936년 8월부터 1937년 5월까지 스페인 해안에서 세 차례 순찰을 수행했으며[16], 1937년 2월 초의 말라가 전투에서는 말라가에 함포 사격을 가하기도 했다[17](스페인 내전에서의 독일 해군).
스페인에서 귀국하는 길에 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u는 1937년 5월 20일 영국 스핏헤드에서 열린 조지 6세 국왕의 대관식 기념 해상 열병식에 독일 대표로 참가했다. 이 자리에서 일본의 묘코급 중순양함 아시가라나 프랑스 해군의 덩케르크급 전함 덩케르크 등과 함께 각국 해군의 주목을 받았다[18].
1937년 5월 29일 자매함 도이칠란트가 스페인 인민 전선 소속 폭격기에 의해 손상되는 도이칠란트 사건이 발생하자, 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u는 다시 스페인 내전에 투입되어[19] 자매함 아드미랄 셰어 등과 합류했다[20]. 이후 네 번째 비개입 순찰을 수행했고, 함대 기동 및 스웨덴 방문 후 1938년 2월에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순찰을 마쳤다.
1938년에는 한스 랑스도르프 대령이 함선의 지휘를 맡았으며, 그해 여러 외국 항구를 방문하는 친선 항해를 수행했다. 여기에는 대서양 순항 중 탕헤르와 비고에 정박한 것이 포함된다. 또한 독일 해역에서 광범위한 함대 기동에 참여했으며, 메멜 항구가 독일에 재통합되는 것을 기념하는 행사의 일부였고, 헝가리 섭정인 호르티 미클로시 제독을 기리는 함대 검열에도 참가했다.
1939년 4월 18일부터 5월 17일까지 또 다른 대서양 순항을 수행하여 세우타와 리스본 항구에 정박했다. 1939년 8월 21일, 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u는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직전 빌헬름스하펜을 출발하여 남대서양으로 향했다[21].


4. 2. 제2차 세계 대전
1939년 9월 독일과 연합국 간의 전쟁 발발 이후,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 해군에게 연합국 상선을 상대로 통상 파괴 작전을 시작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히틀러는 폴란드 정복 이후 영국이 평화 조약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 분명해질 때까지 명령을 미뤘다. Admiral Graf Spee|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는 포획 규칙을 엄격히 준수하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이는 선박을 정지시키고 수색하여 밀수품을 찾아낸 후 침몰시키되, 승무원의 안전한 대피를 보장해야 함을 의미했다. 함장 한스 랑스도르프는 열세한 상대를 포함한 교전을 피하고, 자주 위치를 변경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9월 1일, 순양함은 카나리아 제도 남서쪽에서 보급선 알트마르크와 만났다. 연료를 보충하는 동안 랑스도르프는 불필요한 장비(선박 보트, 인화성 페인트, 2cm 대공포 2문 등)를 Altmark|알트마르크de로 옮기도록 지시했다.9월 11일, Altmark|알트마르크de에서 물품을 옮기던 중, Admiral Graf Spee|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의 아라도 수상기가 영국 중순양함 컴벌랜드가 접근하는 것을 발견했다. 랑스도르프는 두 선박에 최고 속도로 떠나라고 명령하여 영국 순양함을 성공적으로 따돌렸다. 9월 26일, 마침내 연합국 상선 공격 허가를 받았다. 4일 후인 9월 30일, Admiral Graf Spee|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의 아라도기는 브라질 해안에서 부스 증기선사의 화물선 클레멘트를 발견했다. 클레멘트는 순양함의 정지 명령 전에 "RRR" 신호("나는 약탈자에게 공격받고 있다")를 보냈다. Admiral Graf Spee|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는 클레멘트의 선장과 수석 기관사를 포로로 잡고 나머지 승무원은 구명정으로 탈출시켰다. 이후 순양함은 28cm 및 15cm 포탄 30발과 어뢰 2발을 발사하여 클레멘트를 격침했다. 랑스도르프는 승무원 구조를 위해 페르남부쿠의 해군 기지에 구조 신호를 보냈다. 영국 해군성은 즉시 독일 수상 약탈자의 출현을 상선에 경고했다. 영국 승무원은 구명정을 타고 브라질 해안에 도착했다.
10월 5일, 영국과 프랑스 해군은 Admiral Graf Spee|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를 남대서양에서 수색하기 위해 8개의 부대를 편성했다. 영국 항공모함 허미즈, 이글, 아크 로열, 프랑스 항공모함 베아른, 영국 순양전함 리나운, 프랑스 전함 덩케르크와 스트라스부르, 그리고 16척의 순양함이 수색에 투입되었다. 코모도어 헨리 하우드가 지휘하는 G 부대는 남아메리카 동해안에 배치되었으며, 순양함 컴벌랜드와 엑세터로 구성되었다. G 부대는 이후 경순양함 에이잭스와 뉴질랜드 경순양함 아킬레스로 증강되었다. 하우드는 컴벌랜드를 포클랜드 제도 해역 순찰에 투입하고, 다른 세 척의 순양함은 라플라타 강 인근을 순찰했다.

영국-프랑스 수색 부대가 편성된 같은 날, Admiral Graf Spee|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는 증기선 ''뉴턴 비치''를 나포했다. 이틀 후 상선 ''애슐리''를 만나 격침했고, 10월 8일에는 포로 수용에 사용했던 ''뉴턴 비치''를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침몰시키고 포로들을 순양함으로 옮겼다. 10월 10일에는 증기선 ''헌츠맨''을 나포했다. ''헌츠맨''의 선장은 Admiral Graf Spee|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를 프랑스 군함으로 오인하여 구조 신호를 늦게 보냈다. 랑스도르프는 포획 승무원과 함께 ''헌츠맨''을 만남 지점으로 보냈다. 10월 15일, Admiral Graf Spee|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는 Altmark|알트마르크de와 만나 연료를 보급하고 포로를 이송했다. 다음 날 아침 포획선 ''헌츠맨''이 합류했고, ''헌츠맨''의 포로들을 Altmark|알트마르크de로 옮긴 뒤 10월 17일 밤 ''헌츠맨''을 침몰시켰다.

10월 22일, 증기선 ''트레바니온''을 만나 격침했다. 10월 말, 랑스도르프는 연합군 군함을 남대서양에서 멀리 유인하고 작전 의도를 혼란시키기 위해 함선을 마다가스카르 남쪽의 인도양으로 이동시켰다. 이 무렵 Admiral Graf Spee|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는 거의 30,000 해리를 항해하여 엔진 점검이 필요했다. 11월 15일, 유조선 ''아프리카 셸''을 침몰시켰고, 다음 날 신원 미상의 네덜란드 증기선을 정지시켰으나 침몰시키지는 않았다. Admiral Graf Spee|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는 11월 17일부터 26일까지 Altmark|알트마르크de에서 연료를 보급받기 위해 대서양으로 돌아왔다. 이 기간 동안 승무원들은 함선의 실루엣을 변경하기 위해 함교에 가짜 포탑을 만들고 항공기 발사기 뒤에 가짜 두 번째 굴뚝을 세웠다.
Admiral Graf Spee|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의 아라도 수상기는 상선 도릭 스타를 발견했다. 랑스도르프는 선박을 정지시키기 위해 뱃머리에 포탄을 발사했다. ''도릭 스타''는 침몰 전에 구조 신호를 보낼 수 있었고, 이를 수신한 하우드는 자신의 세 척의 순양함을 랑스도르프의 다음 목표가 될 가능성이 높은 라플라타 강 어귀로 이동시켰다. 12월 3일, Admiral Graf Spee|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는 증기선 타이로아를 침몰시켰다. 12월 6일, Altmark|알트마르크de와 다시 만나 ''도릭 스타''와 ''타이로아''에서 온 포로 140명을 이송했다. Admiral Graf Spee|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는 12월 7일 저녁, 마지막 희생자인 화물선 ''스트레온샬''(Streonshalh)을 만났다. 포획 승무원은 이 배에서 해운 경로 정보가 담긴 비밀 문서를 회수했고, 이 정보를 바탕으로 랑스도르프는 몬테비데오 근해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12월 12일, 선박의 아라도 196 수상기가 고장나 수리할 수 없게 되면서 공중 정찰 능력을 상실했다. 전투를 대비해 선박의 위장도 제거되었다.
1939년 12월 13일, Admiral Graf Spee|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는 영국 해군 G부대의 중순양함 엑세터(20cm포 장비), 경순양함 에이잭스(15.2cm포 장비), 아킬레스(15.2cm포 장비) 3척에게 포착되어 라플라타 해전이 발발했다. 이 전투에서 Admiral Graf Spee|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의 손상은 비교적 경미했지만[9], 겨울철 북대서양의 격랑을 견디며 본국으로 돌아갈 상태는 아니었다. 함장 한스 랑스도르프는 가까운 중립국인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 항으로 함선을 퇴각시켰다. 독일 본국은 군함과의 교전을 금지하고 있었다. 우루과이는 중립국이었지만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라였고, 독일 본국으로부터 조기 철수 명령이 내려와 수리도 제대로 못한 채 절망적인 귀국 항해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었다.
정박 기간 중 영국 해군의 선전 방송과 본국 정보에 의해 강력한 함대가 탈출로를 봉쇄했다고 판단한 랑스도르프는, 우루과이 정부가 제시한 항구 철수 기한인 12월 17일을 맞이하자 승조원들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기 위해 독일 상선으로 옮겨 태웠다. 남은 승조원 40명과 함께 Admiral Graf Spee|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를 몬테비데오 항구 밖으로 끌고 나가 자침시켰다. (승조원은 전원 구명보트로 대피) 이 모습은 라디오를 통해 전 세계에 실황 중계되었다. 독일 본국에서는 "자침 시 유감을 가지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랑스도르프는 자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군함기를 몸에 두른 채 권총으로 자결했다. 그가 아르헨티나 정부와 교섭했던 승조원에 대한 선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전원 억류되었다.
Admiral Graf Spee|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의 자침 이유로는 선전 방송에 의한 적 함대 세력 오인, 탄약 부족(사실과 다름), 랑스도르프 함장의 투쟁 정신 부족 등 여러 설이 제기되어 왔다. 함장은 자결 직전 인터뷰에서 "연료는 충분했지만, 약 2주간의 수리가 필요했는데 우루과이 정부가 72시간밖에 유예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81] 전후, 당시 승무원이었던 기술 장교의 증언에 의해, 도이칠란트급 장갑함 공통의 구조적 결함에 기인한 손상이 결정적이었음이 밝혀졌다.
선박용 디젤 연료는 상온에서 점도가 높아 그대로 기관에 공급할 수 없으므로,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은 연료 탱크와 기관 사이에 중간 탱크를 설치하여 연료를 가열, 액화시킨 후 기관으로 보내는 구조였다. 특히 고위도 저온 해역에서는 이 연료 처리가 필수적이었다. 그러나 중간 탱크에 증기를 공급하는 파이프 일부가 비장갑 상태로 갑판에 노출되어 있었고, 라플라타 해전 중 이곳에 6인치 포탄 한 발이 명중하여 연료 처리 시스템이 파괴되었다. 그 결과, 풍부한 연료 대부분을 가열할 수 없어 사용 불가능하게 되었고, 중간 탱크에 남아 있던 처리된 연료는 16시간 항해분에 불과했다. 이로 인해 본국 귀환은 물론 영국 순양함대와의 전투 지속조차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이러한 약점은 군 최고 기밀이었기에 당시에는 공표되지 않았다.[94]
손상 부위 수리에는 약 2주가 필요했지만, 영국의 압력으로 인해 분쟁에 휘말리는 것을 두려워한 우루과이 정부는 72시간 이내 출항을 통보했다. 이것이 번복될 수 없게 되자, 현지 억류를 금지당한 랑스도르프 함장은 자침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81][95]
4. 3. 라플라타 해전
1939년 12월 13일, Admiral Graf Spee|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는 남대서양에서 영국 해군 G부대 소속의 중순양함 엑세터(20cm포 장비), 경순양함 에이잭스(15.2cm포 장비), 아킬레스(15.2cm포 장비) 3척에게 포착되어 라플라타 해전이 시작되었다.오전 5시 30분, 망루병이 함선 우현에서 두 개의 돛대를 발견했고, 함장 한스 랑스도르프는 이를 호송대로 추정했다. 그러나 오전 5시 52분, 해당 함선은 엑세터로 확인되었으며, 처음에는 구축함으로 생각했던 두 척의 호위함은 곧 리아더급 경순양함으로 밝혀졌다. 랑스도르프 함장은 교전을 피하지 않고 전투 배치를 명령하며 최대 속도로 접근하도록 지시했다. 오전 6시 8분, 영국 함대도 Admiral Graf Spee|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를 발견하고 사격 분산을 위해 함선들을 분산시켰다. 독일 함선은 오전 6시 17분, 주포로 엑세터를, 부포로 기함인 에이잭스를 향해 포격을 개시했다. 영국 함선들도 오전 6시 20분(엑세터), 6시 21분(에이잭스), 6시 24분(아킬레스)에 차례로 반격에 나섰다.
교전 시작 30분 만에 Admiral Graf Spee|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는 엑세터에 세 발의 명중탄을 기록하여 전방 포탑 두 개를 무력화시키고 함교와 항공기 발사기를 파괴했으며, 함선에 큰 화재를 일으켰다. 이에 에이잭스와 아킬레스는 엑세터를 지원하기 위해 Admiral Graf Spee|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에 더 가까이 접근했다.
랑스도르프 함장은 두 경순양함이 어뢰 공격을 시도한다고 판단하여 연막 속으로 함선 방향을 돌렸다. 이 틈을 타 엑세터는 잠시 전투에서 이탈할 수 있었다. 당시 엑세터는 포탑 하나만 작동 가능한 상태였고, 승무원 61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부상당했다.
오전 7시경, 엑세터는 함미 포탑으로 사격하며 전투에 복귀했지만, Admiral Graf Spee|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의 추가 명중탄을 맞고 다시 후퇴해야 했다. 오전 7시 25분에는 Admiral Graf Spee|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가 에이잭스에 명중탄을 기록하여 함미 포탑을 무력화시켰다. 이후 양측은 교전을 중단했고, Admiral Graf Spee|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는 라플라타 강 하구로 후퇴했고, 손상된 영국 순양함들은 탈출 시도를 감시하기 위해 외부에 머물렀다. 교전 과정에서 Admiral Graf Spee|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는 약 70번의 피격을 받았고, 36명이 사망하고 60명 이상이 부상당했으며, 랑스도르프 함장은 노출된 함교에 서 있다가 파편에 두 번 부상당했다.
이 전투에서 Admiral Graf Spee|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의 손해는 비교적 경미했지만[9] 겨울철 북대서양의 격랑에 견디며 본국에 돌아갈 상태는 아니었고 함장인 한스 랑스도르프(Hans Wilhelm Langsdorff 1894-1939)는 가까운 중립국인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항에 함을 퇴각시켰다. 애초부터 이 배는 본국으로부터 군함과의 교전을 금지당하고 있었다. 우루과이는 중립국이라곤 하지만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라로 또 독일 본국에서 우루과이에서 조기철수명령이 내려왔고 수리도 못한채로 절망적인 귀국항해에 나서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다.[10]

정박기간 중에 영국 해군의 선전방송이나 본국으로부터의 정보에 의해 단독으로는 대항할 수 없는 유력한 함대에게 탈출로가 봉쇄당했다 판단한 랑스도르프는 우루과이 정부가 제시한 항구 철수기간을 맞이하고 있던 12월 17일에 질게 뻔한 싸움으로 승조원을 위험에 빠트리지 않게 하기 위해 승조원을 독일 상선에 옮겨 태우고 남은 승조원 40명과 함께 Admiral Graf Spee|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를 몬테비데오 항구 밖으로 끌고 나가 자침시켰다.(승조원은 전원 구명보트로 대피)[11] 이 모습은 라디오 실황중계로 전 세계에 방송되었다. 또 독일 본국에선 "자침 시 유감을 가지지말라"고 지시는 있었지만 스스로 자침에 책임을 지고 있던 랑스도르프는 계류하고 있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군함기를 몸에 두른채 권총으로 자결했다. 또 그가 아르헨티나 정부와 교섭하던 승조원에 대한 선처도 인정되지 않고 전원 억류당했다.
4. 4. 자침
1939년 12월 13일 벌어진 라플라타 해전에서 영국 순양함 3척(엑세터, 에이잭스, 아킬리스)과 교전한 Admiral Graf Spee|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는 비교적 경미한 손상을 입었으나, 전투 피해와 사상자 발생, 그리고 결정적으로 연료 처리 시스템의 손상으로 인해 함장 한스 랑스도르프는 가까운 중립국인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 항으로 함선을 퇴각시키기로 결정했다. 이는 수리를 받고 부상자를 내리기 위한 조치였으며, 본국으로부터 군함과의 교전을 금지당한 명령도 영향을 미쳤다.[6] 전투 중 입은 손상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엔진용 디젤 연료를 처리하는 데 필수적인 정유 시설의 파괴였다. 선박용 디젤 연료는 상온에서 점도가 높아 가열하여 액화시켜야 기관에 공급할 수 있는데, 이 가열 시스템의 증기 파이프 일부가 비장갑 구역인 상갑판에 노출되어 있었고, 이곳에 영국 해군 경순양함의 6인치 포탄이 명중하여 시스템 전체가 파괴된 것이다. 이로 인해 풍부하게 적재된 연료 대부분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처리되어 남아있는 연료는 약 16시간 항해분에 불과했다. 또한 담수화 시설과 주방도 파괴되었으며, 선수에 입은 손상은 북대서양의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능력을 저해했을 것이다. 더불어 교전으로 인해 탄약의 상당 부분도 소모한 상태였다. 이러한 연료 처리 시스템의 약점은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의 공통적인 구조적 결함이었으나, 군 최고 기밀 사항으로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다.[94]몬테비데오 항에 도착한 후, 부상한 승무원들은 현지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사망자는 정식 군례를 갖춰 매장되었다. 배에 억류되어 있던 연합군 포로(선장 6명, 수석 기관사 9명, 장교 25명, 사병 21명)는 석방되었다.[1] 함선의 손상을 완전히 수리하는 데는 약 2주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우루과이는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중립국이었고, 영국 해군 정보부는 랑스도르프 함장에게 훨씬 우월한 영국 함대가 항구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는 거짓 정보를 흘렸다. 실제로는 가장 가까운 영국의 중무장 함대(항공모함 아크 로열과 순양전함 리나운)는 약 2,500 해리 떨어져 있어 즉각적인 위협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영국 정보부의 기만에 속은 랑스도르프 함장은 탈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1907년 헤이그 협약 제17조에 따라 중립국 항구에서의 교전국 군함 수리 기간은 72시간으로 제한되었고[2], 우루과이 정부는 영국의 외교적 압력 하에 이 규정을 엄격히 적용하여 72시간 이내 출항을 통보했다. 수리가 불가능하고 연료 부족으로 탈출하여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피신하는 것도 어려워진 상황에서, 랑스도르프 함장은 승조원들의 생명을 불필요한 전투로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 또한 함선이 적에게 넘어가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침을 결정했다. 이는 베를린 사령부와 논의 끝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1939년 12월 17일, 랑스도르프 함장은 함선의 모든 중요 장비를 파괴하라고 명령하고 남은 탄약을 배 곳곳에 분산시켜 자폭 준비를 마쳤다. 이후 랑스도르프 함장과 40명의 필수 인원만 남은 Admiral Graf Spee|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는 몬테비데오 항 외곽으로 이동했다. 2만 명의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승무원들은 아르헨티나 예인선으로 옮겨탔고, 오후 8시 55분 설치된 폭약이 터지면서 배는 스스로 침몰했다. 이 모습은 라디오를 통해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중계되었으며, 폭발로 인한 화염과 연기 속에서 함선은 이틀 동안 불탔다.
자침 후 승조원들은 아르헨티나로 이송되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억류되었다. 랑스도르프 함장은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지고 12월 20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호텔 방에서 독일 군함기를 몸에 두른 채 정복 차림으로 누워 권총으로 자결했다. 그는 자결 직전 인터뷰에서 "연료는 충분했지만, 약 2주간의 수리가 필요했는데 우루과이 정부가 72시간밖에 유예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자침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81]
이후 1940년 1월 말, 중립국인 미국 순양함 USS 헬레나가 몬테비데오에 도착하여 승무원들이 Admiral Graf Spee|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의 잔해를 방문하는 것이 허가되기도 했다.
5. 인양
1942년에서 1943년 사이에 잔해는 부분적으로 현장에서 해체되었지만, 한동안 배의 일부가 수면 위로 보였다. 잔해는 수심 11m에 있다. 잔해 인양 권리는 영국을 위한 대리인인 몬테비데오의 한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독일 정부로부터 14000GBP에 구매했다. 영국은 그라프슈페의 포술 정확성에 주목하여 레이더 거리 측정기를 찾고자 했고, 실제로 이를 찾아냈다. 영국은 이렇게 얻은 지식을 사용하여 영국 레이더 프로젝트에서 프레드 호일의 지휘하에 대응책을 개발하려고 했다. 영국 해군성은 인양권에 대해 지불된 큰 금액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 장갑함의 소유권을 가진 독일 정부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수심 8m에 가라앉은 Admiral Graf Spee|아드미랄 그라프 슈페de의 잔해를 크레인선의 도움을 빌려 인양하는 작업이 2004년 2월 개시되었다. 이 작업은 잔해가 선박 항해에 위험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민간 투자자와 우루과이 정부가 공동으로 자금을 지원했다. 몇 차례의 시도 끝에 2004년 2월 25일, 27ton 무게의 대포 거리 측정기가 처음으로 인양되었다.
2006년 2월 10일에는 그라프슈페의 함미에 장식되었던, 하켄크로이츠를 움켜쥔 독수리를 새긴 무게 400kg, 높이 2m, 날개를 펼친 길이 2.8m의 주권 문장이 인양되었다. 이 독수리 문장은 수십만 달러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 문장은 나치즘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2006년 8월, 민간 인양 회사가 우루과이 정부의 뜻에 반하여 이 나치 상징물을 판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논쟁은 더욱 커졌다. 네오나치 그룹이 관심을 보였고, 독일의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는 어떤 이가 300만달러에 구매할 의사를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결국 우루과이 정부는 신나치주의자들이 문장을 손에 넣는 것을 막기 위해 판매를 금지하고, "나치 관련 물품" 전시에 대한 독일의 불만 제기 이후 우루과이 해군 창고에 보관하기로 결정했다.
인양 작업은 2007년에 완료될 예정이었으나, 2009년 대통령령에 의해 중단되었다. 이후 독수리 문장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었다. 잔해 인양에 참여했던 민간 인양 회사를 둘러싼 소송은 2019년, 정부가 문장을 판매하고 수익 일부를 인양 회사에 지급하라는 법원 명령으로 이어졌으나, 이 결정은 나중에 뒤집혀 정부가 완전한 보관 권한을 갖게 되었다.
2022년 1월 2일, 푼타델에스테의 한 신문은 아르헨티나 유대인 사업가 다니엘 시엘레키가 해군 창고에 보관된 독수리 문장을 구매하겠다고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시엘레키는 신나치주의자들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문장을 "수천 조각"으로 폭파시키고 싶다고 밝혔다.[3][4]
2023년 6월 17일, ''뉴욕 타임스''는 이 독수리 문장을 녹여 우루과이 예술가 파블로 아추가리가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로 다시 주조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다음 날, 루이스 라칼레 포 우루과이 대통령은 "이 결정을 공유하지 않는 압도적인 다수가 있다"며 여론의 반발을 이유로 계획을 철회했다. 그는 "평화를 만들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통합을 만드는 것이다. 분명히 이것은 그것을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5]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인양 과정의 일부를 영상으로 기록하기도 했다. 인양된 부품들은 향후 함선을 복원하여 몬테비데오시의 국립 해사 박물관에 전시될 계획이다.
6. 평가 및 논란
독일 정부는 자국 소유임을 주장하며 항의했으나,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앞바다 수심 8m에 가라앉은 그라프 슈페의 잔해 인양 작업은 2004년 2월 크레인선을 동원하여 시작되었다. 이 작업은 선박 항해에 위험을 초래하는 잔해를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민간 투자가와 우루과이 정부가 자금을 지원했다. 몇 차례의 시도 끝에 2004년 2월 25일, 무게 27ton에 달하는 측거의가 처음으로 인양되었다. 인양 작업은 당초 2007년 완료될 예정이었으나, 2009년 우루과이 대통령령에 의해 중단되었다.
2006년 2월에는 그라프 슈페 함미에 장식되었던, 하켄크로이츠를 움켜쥔 독수리 문장이 인양되었다. 이 문장은 무게 400kg, 높이 약 2m, 날개를 펼친 길이는 2.8m에 달하며, 수십만 달러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2006년 8월, 민간 인양회사가 우루과이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나치 상징물을 판매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큰 논란이 일었다. 특히 네오나치 그룹이 큰 관심을 보였으며, 한 인물은 300만달러에 구매할 의사를 밝혔다고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는 보도했다. 이러한 논란은 나치즘 상징물이 지닌 역사적 의미와 윤리적 문제를 다시금 환기시킨다.
한편, 영화 타이타닉의 감독으로 유명한 제임스 카메론은 이 인양 과정을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기록하기도 했다. 인양된 잔해들은 복원하여 몬테비데오시의 국립해사박물관에 전시될 계획이었으나, 인양 작업 중단과 상징물 처리 논란 등으로 인해 그 실현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이다.
7. 대중문화
- '''벽람항로'''
- '''전함 슈페호의 최후'''
- 1956년 영국 영화이다. 극중에서는 미국 해군의 데모인급 중순양함 세일럼이 아드미랄 그라프 슈페의 대역을 맡았으며, 도색이나 함번은 미군 사양 그대로 등장한다. 이에 대해 작중에서는 미군 함정으로 위장하기 위해 도색을 변경했다는 언급이 나온다. 함장실에는 조지 6세 대관 기념 관함식에서의 실제 아드미랄 그라프 슈페 사진이 장식되어 있다. 실제 아드미랄 그라프 슈페 역시 가짜 굴뚝을 증설하거나 리나운급 순양전함처럼 보이도록 하는 등 위장을 실시한 바 있다.[81]
- '''하이 스쿨 플릿'''
- 2016년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독일의 해양 학교 빌헬름스하펜교 소속의 소형 직접 교육함으로 등장하며, 작중에서는 "아드미랄 슈페" 또는 "슈페"로 불린다.
- '''워 썬더'''
- Ver1.95 업데이트에서 독일 해군 랭크 V 장갑함으로 구현되었다.
- '''월드 오브 워쉽'''
- 독일 6단계(티어 6) 프리미엄 순양함으로 구현되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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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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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wish businessman offers to buy and blow up 800-pound eagle and swastika crest from Nazi 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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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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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の壓迫に反撥 シ號の威力・・・・ 科學獨逸が誇る最新鋭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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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七ヶ國の軍艦参加し威風堂々の大觀艦式 足柄第四位に ― 英帝御親閲 伊艦だけは不参加 ― 英伊關係の反影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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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班牙内亂をめぐり歐洲の天地再び風雲急 獨伊の軍事行動積極化 地中海待機中の英佛艦隊頓に緊張/獨伊軍艦待機 スペイン沖に集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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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艦七隻に佛戰艦も参加 スペー號の出港を待機 獨逸潜水艦隊來援説も傳へられ 大海戰の時期刻々と迫る/世界注目の的獨逸袖珍戰艦グラーフ・スペー號(正面から見た主砲と艦橋写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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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ppu Jiji
2024-05-18
[84]
웹사이트
シュペー號乘組の 支那人六名寄港 今朝ビアンカマノ號入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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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apōru Nippō
2024-06-16
[85]
웹사이트
噫!シュペー號の最後 銀映劇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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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shū Nichinichi Shinbun
2024-06-16
[86]
웹사이트
ウルガイ國獨船を抑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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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ppu Jiji
2024-06-16
[87]
기타
ヒトラーの軍艦自沈の真相
ナショナルジオグラフィックチャンネル
[88]
웹사이트
自爆獨艦スペー號艦長 非壮な自殺を遂ぐ 獨逸軍人魂を遺憾なく發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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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ppu Jiji
2024-06-16
[89]
웹사이트
烈々たる獨逸魂の精華! 今次戰の崇高な悲劇 ラ艦長自決の報に日本國民威動 早くも弔慰金を贈る者續出の有様/自爆獨艦スペー號艦長 非壮な自殺を遂ぐ 獨逸軍人魂を遺憾なく發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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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ppu Jiji
2024-06-16
[90]
서적
独英海戦記
[91]
웹사이트
自沈のシュ號艦長 ラ大佐拳銃自殺 悲壮な遺書を遺し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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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shū Nichinichi Shinbun
2024-05-18
[92]
웹사이트
歐洲大戰つれづれ草 陸では自爆せず シュペー號乗組員のその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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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shū Nichinichi Shinbun
2024-06-16
[93]
웹사이트
京雀のおしゃべ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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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uzenchin Jihō
2024-06-16
[94]
간행물
Starshell
The Naval Officers Association of Canada
2006
[95]
웹사이트
ウルグワヰ政府 英佛の壓迫に屈せり 國際法違反だと獨逸政府大憤慨 國際法違反だと獨逸政府大憤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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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rajiru Jihō
2024-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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