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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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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롤랑 바르트는 프랑스의 문학 이론가이자 기호학자로, 1915년 셰르부르에서 태어나 1980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는 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 사상을 통해 문학, 대중문화, 사진 등 다양한 분야를 분석했으며, 특히 '저자의 죽음' 이론으로 텍스트 해석의 주체를 독자로 전환하는 데 기여했다. 주요 저서로는 《글쓰기의 영도》, 《신화론》, 《기호학 원론》, 《텍스트의 쾌락》, 《밝은 방》 등이 있으며, 그의 사상은 한국 학계와 문화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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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출생명롤랑 제라르 바르트
출생일1915년 11월 12일
출생지셰르부르옥트빌, 프랑스
사망일1980년 3월 26일
사망지파리, 프랑스
서명
학력 및 경력
교육파리 대학교 (문학 학사, 문학 석사)
소속 기관고등사회과학원
콜레주 드 프랑스
철학적 관점
학파대륙 철학
구조주의
기호학
탈구조주의
주요 관심사기호학 (문학 기호학, 사진 기호학, 만화 기호학, 문학 이론)
서사학
언어학
주요 사상텍스트 읽기 쉬운 vs 텍스트 '텍스트 스크립터블'
서사의 구조 분석
실재 효과
주요 저서
주요 저서글쓰기의 영도 (1953)
신화론 (1957)
저자의 죽음 (1967)
영향
영향을 준 인물페르디낭 드 소쉬르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니체
지크문트 프로이트
모리스 블랑쇼
자크 라캉
장폴 사르트르
조르주 바타유
쥘 미슐레
폴 발레리
샤를 푸리에
루이페르디낭 셀린
단테 알리기에리 외 다수
영향을 받은 인물미셸 푸코
줄리아 크리스테바
제라르 주네트
하스미 시게히코 외 다수

2. 생애

롤랑 바르트는 1915년 11월 12일 노르망디 셰르부르에서 태어났다. 10대 후반에 결핵에 걸려 이후 일생에 걸쳐 여러 번 요양원을 드나들게 된다. 1935년부터 1939년까지 소르본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한 후, 파리에서 고등학교 선생을 했다. 이후 부카레스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대학강사를 하며 보냈고, 1952년 파리의 국립과학연구원(Centre national de la recherche scientifique프랑스어)의 연구원이 되었다. 1953년 근대문학의 형성을 다룬 《0도의 글쓰기》가 출판됐고, 1957년 일상생활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한 기고문을 모아 엮은 《신화론》이 뒤따랐다. 1962년 고등연구실습원(École pratique des hautes études프랑스어)의 연구책임자로 임명됐다.

1960년대 기호학구조주의에 전념했지만(《기호학원론 Éléments de sémiologie》(1964), 《유행의 체계 Système de la mode》(1967)), 곧이어 구조주의를 폐기했다(《S/Z》(1970), 《텍스트의 쾌락 Le Plaisir du texte》(1973)).

다재다능하여 연주도 하고 그림도 그렸던 바르트는 《오브비와 옵투스 L'Obvie et l'obtus》(1982)에서 슈만과 톰블리(C.Y. Twombly영어)를, <밝은 방: 사진에 대한 노트>(1980)에서 사진을 다루었다. 1976년 콜레주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프랑스어)의 문학기호학 교수로 초빙됐다. 바르트의 다방면의 작품들은 고유한 발전과 현실적 위치를 끊임없이 성찰한 결과들이다 (자서전인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 par Roland Barthes》(1975)와 대담집 《목소리의 입자 Le Grain de la voix. Entretiens 1962~1980》(1981) 참고). 특히 그가 쓴 '저자의 죽음'은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사후에 출판된 《작은 사건들 Incidents》(1987)에서 동성애를 고백했다.

1980년 2월 25일 교통사고를 당하고 한 달 후인 3월 26일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손에 자란 바르트는 어머니를 매우 생각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파리대학교에서 고전 그리스 문학을 공부한 후, 결핵으로 장기간 요양원 생활을 한다. 요양 기간이 끝난 후에는 여러 곳에서 프랑스어 강사로 일하며 사색에 잠겼다. 1953년, 『Le Degré zéro de l'écriture』(『에크리튀르의 영도』)를 발표하여 문학과 사회의 관계를 날카롭게 분석한 이 작품으로 단숨에 시대의 총아가 된다. 1962년부터 고등사회과학연구원 지도교수를 역임했고, 1977년, 프랑스 공과대학 교수에 취임했다. 1980년 2월 25일 교통사고를 당하고 한 달 후인 3월 26일에 사망했다.

바르트는 구조주의자로 여겨지는 것을 싫어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상가였다. 또한, 바르트는 평생 소설을 발표한 적은 없었지만, 프랑스 공과대학 강의에서의 『소설의 준비』나 『에크리튀르의 영도』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글쓰기, 즉 에크리튀르에 대한 논고가 보여주듯이, 소설을 쓰고자 하는 열망은 항상 있었다고 생각된다.

1970년, 일본에 대한 독자적인 분석을 담은 『표식의 제국』(『기호의 나라』)도 발표했다.

1979년 영화 『브론테 자매』에 19세기 유명 작가 윌리엄 메이크피스 새커리 역으로 출연했다. 단, 대사는 거의 없다.

2. 1. 유년 시절과 교육

롤랑 바르트는 1915년 11월 12일 프랑스 노르망디 셰르부르에서 태어났다. 해군 장교였던 아버지 루이 바르트는 롤랑 바르트가 태어나기 전 제1차 세계 대전 중 북해에서 전사하였다.[5] 어머니 앙리에트 바르트는 이모, 할머니와 함께 그를 우르 마을과 바욘시에서 양육하였다. 1924년, 바르트 가족은 파리로 이주했다.[5]

바르트는 학생 시절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1935년부터 1939년까지 소르본 대학교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해 리쌍스(Licence) 학위를 받았다.[5] 1941년에는 파리 대학교에서 그리스 비극 연구로 디플롬 데튀드 쉬페리외르(Diplôme d'études supérieures, 석사 학위에 해당)를 취득했다.[6]

10대 후반부터 결핵을 앓아 여러 차례 요양원 생활을 하였다.[5] 건강 문제로 학업에 지장을 받았고, 제2차 세계 대전 징집에서 면제되기도 했다. 1939년부터 1948년까지 바르트는 주로 문법어원학 리쌍스 학위를 취득하고, 초기 논문을 발표하며, 의학 연구에 참여하고, 건강 문제와 씨름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2. 2. 초기 학문 경력

롤랑 바르트는 1948년 순수 학문 연구로 돌아와 프랑스, 루마니아, 이집트 등지의 여러 연구소에서 단기직을 역임했다.[7] 이 시기 그는 좌파 성향의 파리 신문 ''Combat''에 기고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첫 장편 저서 『0도의 글쓰기』(1953)를 출판했다.[7]

1952년, 바르트는 국립과학연구센터(Centre National de la Recherche Scientifique)에 정착하여 어휘론사회학을 연구했다.[7] 7년간의 연구 기간 동안 그는 ''레 레트르 누벨(Les Lettres Nouvelles)'' 잡지에 대중문화의 신화를 해체하는 격월간 수필을 연재했다.[7] 이 글들은 1957년 출판된 『신화학』에 모아졌다.[7] 1954년에서 1956년 사이에 쓰여진 54편의 짧은 수필로 구성된 『신화학』은 세탁 세제 분석에서 인기 레슬링 해부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대중문화에 대한 날카로운 반성을 담고 있다.[7] 1957년에는 미들베리 칼리지(Middlebury College)에서 강의를 했고, 뉴욕시에서 리처드 하워드(Richard Howard)와 친분을 맺었다.[8]

2. 3. 학문적 명성과 주요 활동

1960년대 초 롤랑 바르트는 기호학구조주의 분야를 탐구하며 프랑스 전역에서 여러 교수직을 역임했고, 장편 연구를 계속해서 발표했다. 그의 많은 작품들은 문학 비평과 유명 문학 인물들에 대한 전통적인 학계의 견해에 도전했다. 그의 비정통적인 사고는 소르본느 대학교의 저명한 문학 교수인 레이몽 피카르와 갈등을 빚게 되었는데, 피카르는 프랑스의 신비평이 불투명하고 프랑스 문학의 뿌리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고 비난했다. 바르트는 1966년 『비평과 진실』( ''Criticism and Truth'')에서 이에 대한 반박으로, 낡은 부르주아 비평이 언어의 미묘한 점에 대한 무관심과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도전적인 이론에 대한 선택적 무지함을 드러냈다고 비난했다.

1960년대 후반, 바르트는 미국일본을 여행하며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발표를 했다. 1967년 에세이 "저자의 죽음"을 썼는데, 자크 데리다탈구조주의의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구조주의 사상의 논리적 귀결을 탐구하는 과도기적인 작품이 되었다. 바르트는 필리프 솔레르와 함께 아방가르드 문학 잡지인 ''텔 켈''에 계속 기고했다. 1970년에는 발자크의 ''사라신''에 대한 밀도 높은 비평적 해석인 ''S/Z''를 발표했다. 1971년에는 제네바 대학교의 방문 교수를 역임했다.

1975년에는 ''롤랑 바르트''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집필했고, 1977년에는 프랑스 공과대학에서 문학 기호학(Sémiologie Littéraire) 교수직에 선출되었다. 같은 해에 어머니 앙리에트 바르트가 사망했다. 그를 키우고 돌봐준 여성의 죽음은 바르트에게 큰 타격이었다. 그의 마지막 주요 작품인 ''카메라 루시다''는 부분적으로 사진의 본질에 관한 논문이자 어머니의 사진에 대한 명상이기도 하다.

2. 4. 죽음

1980년 2월 25일 롤랑 바르트는 파리에서 세탁소 배달 트럭에 치이는 교통사고를 당했다.[9][10]사고로 가슴 부상을 입은 그는 한 달 후인 3월 26일 병원에서 사망했다.[9][10] 사후에 출판된 《작은 사건들 Incidents》(1987)에서 동성애를 고백했다.

3. 사상

쉘부르(Cherbourg)에서 태어나 바욘(Bayonne)에서 자랐다.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의 영향을 받아 에크리튀르(écriture)에 대한 독자적인 사상적 입장을 구축했다. 역사가에 그치지 않은 쥘 미슐레(Jules Michelet)의 활동에 주목한 『미슐레』(Michelet), 『작가의 죽음』(La mort de l'auteur)의 한 편을 수록한 『서사의 구조 분석』(Le discours de l’histoire), 프랑스의 다양한 문화와 관습을 분석한 『신화학』(Mythologies), 의복 등의 유행을 논한 『패션의 체계』(Système de la mode),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의 중편을 과도하게 상세히 분석한 『S/Z』(S/Z), 자전 형식을 취하면서도 자전이 아닌 『롤랑 바르트 자서전』(Roland Barthes par lui-même), 사진에 대한 감동에 찬 관심 속에서 도덕적, 정치적인 교양(문화)이라는 합리적인 매개체를 매개로, 일종의 교양 문화를 통해 느낄 수 있는 “스투디움(studium)”과 그 스투디움을 흔들고 인상 깊은 세부 사항으로 표상되는 “푼크툼(punctum)”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논한 유작 『밝은 방』(La Chambre claire) 등, 그 활동은 광범위하지만,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은 문학에 대한 애정(『영도의 에크리튀르』(Le degré zéro de l'écriture), 『서사의 구조 분석』 등)과 문학 작품이나 영화, 연극, 사진 등을 통해 작가의 주체로서 발신되는 메시지에 대해, 그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향유자에 의한 해석의 가능성에 대한 고찰(『밝은 방』, 『신화학』)이다.

3. 1. 구조주의와 탈구조주의

롤랑 바르트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의 구조주의(structuralisme) 언어학의 영향을 받아, 언어 체계 내에서 기표와 기의의 자의적 관계와 의미는 차이의 체계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다.[35] 초기에는 실존주의 철학, 특히 장-폴 사르트르의 사상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났으며, 『0도의 글쓰기』(1953)에서 관습이 언어와 스타일에 영향을 미쳐 순수한 창조성을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대신 형식, 혹은 바르트가 "글쓰기"(개인이 원하는 효과를 위해 스타일의 관습을 조작하는 특정 방식)라고 부르는 것이 독특하고 창조적인 행위라고 보았다. 그러나 작가의 형식은 대중에게 공개된 후에는 관습이 될 위험성을 지닌다. 즉, 창의성은 끊임없는 변화와 반응의 지속적인 과정이라는 것이다.

1960년대에는 포스트구조주의(poststructuralisme)의 대표 주자로 부상하여, 구조주의의 한계를 지적하고 텍스트의 다의성과 해석의 무한성을 주장했다.[36][37] 절대적 의미를 찾으려는 구조주의는 상대적이고 불안정함을 지적하며, 자크 데리다탈구조주의는 구조주의의 결함을 초월적 기표에 대한 의존으로 확인했다. 일정하고 보편적인 의미의 상징은 그러한 폐쇄된 시스템에서 방향 지점으로 필수적이다. 즉, 어떤 규칙적인 측정 기준 없이는 실제 작품 자체 외부의 어떤 것도 참조하지 않는 비평 시스템은 결코 유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정하고 보편적인 의미의 상징은 없기 때문에 글쓰기(또는 어떤 것이든)를 평가하는 수단으로서 구조주의의 전체 전제는 공허하다.

바르트는 "저자의 죽음" 이론을 통해 텍스트의 의미가 저자의 의도에 의해 고정되지 않고 독자에 의해 구성된다고 주장하며, 이는 문학 비평에 큰 영향을 미쳤다.[13][23] "저자의 죽음"에서 바르트는 예술 작품에 대한 설명을 작품을 창작한 저자에게서 구하려는 경향을 비판하며, 예술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저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고백"이라고 주장한다. 바르트는 텍스트 창작자에 대한 사고방식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Author)"와 "서술자(scriptor)"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저자"는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문학 작품이나 다른 글쓰기를 창작하는 고독한 천재라는 전통적인 개념이다. 바르트는 초현실주의를 포함한 다양한 현대 사상의 통찰은 이 용어를 구식으로 만들었으며, 현대 사회는 저자 대신 "서술자"라고 부르는 인물을 제시하는데, 이 인물의 유일한 능력은 기존 텍스트를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바르트는 모든 글쓰기가 이전 텍스트, 규범 및 관습에 의존하며, 독자가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요소라고 믿는다. 저자의 전기적 사실보다 이러한 텍스트적 및 장르적 관습의 상대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바르트는 서술자는 과거가 없고 텍스트와 함께 태어난다고 말하며, 작품의 의미를 통제하는 "신과 같은 저자"의 개념이 없다면, 능동적인 독자에게 해석의 지평이 상당히 열린다고 주장한다.

바르트는 1966년에 일본을 여행하고, 그곳에서 초월적 의미 지시 대상을 찾는 것에 대한 갈망이 없는 일본 문화의 만족에 대한 숙고인 『표식의 제국』(1970년 출판)을 썼다. 도쿄의 중심부인 황궁을 지배적인 거대 존재가 아니라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존재로 묘사하면서, 일본에서 기호가 그 자체의 가치를 위해 존재하고, 기표가 자연스럽게 부여하는 의미만을 유지하는 능력에 대해 반추한다.

3. 2. 기호학과 신화론

롤랑 바르트는 기호학을 통해 대중문화와 일상생활에 숨겨진 이데올로기를 분석하고 비판했다.[11] 그는 저서 《신화론》(Mythologies, 1957)에서 부르주아 사회의 문화적 산물들이 어떻게 지배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위장하는지 폭로했다.[38]

바르트는 신화를 이차적 기호학적 체계로 규정하고, 표면적 의미 아래 숨겨진 의도와 이데올로기적 함축을 밝혀냈다. 예를 들어, 프랑스 사회에서 와인이 건강하고 강한 습관으로 묘사되는 것은, 와인이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는 현실과 모순되는 부르주아적 이상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이러한 부르주아 문화 신화를 "2차 기호" 또는 "함축"이라고 설명했다. 가득 찬 어두운 병의 그림은 발효된 알코올 음료라는 1차적 의미와 함께, 건강하고 편안한 경험이라는 2차적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11]

바르트는 전후 프랑스의 대중 소비 문화를 분석하면서 "대상이 집단적 문화적 가치를 표현하는 서사를 통해 의미 있는 관계로 조직되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신화"라는 용어를 사용했다.[7] 그는 프랑스 사회의 다양한 문화 현상(와인, 레슬링, 광고 등)을 분석하여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작동 방식을 비판했다.

《패션 시스템》에서 바르트는 기호의 변질이 어떻게 단어로 번역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그는 패션계에서 어떤 단어든 이상적인 부르주아적 강조로 가득 찰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특정 상황에 '블라우스'가 이상적이라고 말한다면, 이 아이디어는 실제 기호가 '스커트', '조끼' 등으로 쉽게 바뀔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즉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바르트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 장 폴 사르트르의 영향을 받아 에크리튀르에 대한 독자적인 사상적 입장을 구축했다. 그의 활동은 문학에 대한 애정과 문학 작품, 영화, 연극, 사진 등을 통해 작가의 메시지에 대한 수용자의 해석 가능성에 대한 고찰로 이어진다.

3. 3. 텍스트 이론과 쾌락

롤랑 바르트는 문학에서 의미나 중요성의 원천이 저자의 의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는 의미가 저자에게서 나올 수 없으므로, 독자가 텍스트 분석 과정을 통해 적극적으로 의미를 창출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14] 그의 저서 『S/Z』(1970)에서 바르트는 발자크의 단편소설 『사라센느(Sarrasine)』를 해체적으로 분석하며 이 개념을 적용했다. 그는 텍스트를 분석하며 다양한 의미를 결정하기 위한 다섯 가지 주요 코드를 확립했고, 텍스트 전체에 걸쳐 수많은 렉시아(lexia)를 발견했다. 렉시아는 추가 분석을 위해 임의로 선택된 텍스트 단위이다.[14] 이러한 코드를 통해 바르트는 이야기가 다양한 의미를 지닐 수 있지만, 엄격하게 순차적인 요소에 의해 제한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바르트는 이상적인 텍스트는 가역적, 즉 다양한 독립적인 해석에 열려 있으며 의미가 제한적이지 않은 텍스트라고 보았다. 그는 텍스트가 엄격한 시간 흐름과 사건의 정확한 정의와 같은 제한적인 장치를 피함으로써 가역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바르트는 이를 독자가 창조적인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작가적(writerly) 텍스트와 단순히 읽는 것으로 제한되는 독자적(readerly) 텍스트의 차이로 설명했다. 독자적 텍스트는 독자에게 자신의 의미를 '쓰거나' '생산하도록' 요구하지 않으며, 독자는 수동적으로 '기성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바르트는 이러한 종류의 텍스트는 주변 문화의 "상식" 또는 "독사(Doxa)"를 방해하지 않는다고 설명하며, "우리 문학의 막대한 양을 구성하는 산물들"이라고 규정한다.[22] 반면, 작가적 텍스트는 문화 및 그 텍스트와 상호 작용하는 능동적인 방식을 구성하며, 독자를 텍스트의 생산자로 만든다. 바르트는 읽기를 "기생적인 행위, 즉 글쓰기의 반응적인 보완물"이 아닌 "일종의 작업"으로 보았다.[22]

3. 4. 후기 사상: 중립성과 사랑

1970년대 후반, 롤랑 바르트는 대중문화의 언어(도그사)와 중립적인 언어(파라-도그사) 간의 갈등에 주목했다.[15] 그는 부르주아 문학과 마르크스주의 이론 모두 단정적인 의미를 지닌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도그사적이며, 문화적 동화의 성격을 지녔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그는 쾌락주의를 다룬 『텍스트의 쾌락』(1975)을 저술했다.[40][41] 바르트는 쾌락을 위한 독서, 즉 주이상스를 통해 텍스트에 몰입하고 자아를 상실함으로써 사회적 영역 밖에서 중립적인 독서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바르트는 진정으로 중립적인 글쓰기의 어려움을 인식하고, 독자에게 의미를 부과하지 않는 소설적 형태의 수사학을 모색했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사랑의 단상』(1977)이다. 이 책에서 바르트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바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 간의 담화를 다각도로 정리하였다.[39] 익명의 연인이 애정 어린 타인을 식별하고 식별받고자 하는 허구적인 반성을 제시하며, 사랑의 징후를 찾는 짝사랑하는 연인의 모습은 그러한 추구에 내재된 허구적인 신화를 드러낸다. 연인의 시도는 모순된 논리를 드러내는 망상과 관련되어 있지만, 동시에 독자의 이해를 구하는 동정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이는 독자에게 사랑에 대한 사회적 구성에 대한 도전을 제시한다.

3. 5. 사진 이론

롤랑 바르트는 사진이 실제 사건을 전달하는 잠재력에 꾸준히 관심을 가졌다. 1950년대 그의 글들은 사진 이미지가 함축된 의미를 나타낼 수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19] 그러나 그는 여전히 사진이 세계를 실제로 표현하는 데 독특한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어머니 앙리에트 바르트가 사망한 후, 바르트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사진이 자신에게 지닌 독특한 의미를 설명하고자 ''카메라 루시다''(Camera Lucida)를 썼다.[19] 그는 사진의 명백한 상징적 의미(스투디움)와 순전히 개인적인 것(푼크툼) 사이의 관계를 고찰했다.[19]

바르트는 어머니 사진을 통해 '있는 것'이라는 환상 대신 '있었던 것'이라는 보다 정확한 설명을 제시한다. 앙리에트 바르트의 어린 시절 사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의 증거이며, 세계의 끊임없이 변화하는 본성을 상기시킨다. 바르트에게 어머니 사진은 매번 반복되는 상실감을 담고 있으며, 이는 주관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카메라 루시다''는 주관성, 의미, 문화 사회 간의 복잡한 관계에 대한 성찰이자, 어머니에 대한 헌정이며 슬픔의 깊이를 묘사한 작품이다.[19]

3. 6. 바르트와 학술지(revues)

롤랑 바르트는 1952년 파리로 돌아와 ''Esprit'' 학술지에 "Le monde où l’on catche"를 출간했다. 계속해서 ''Combat''와 모리스 나도(Maurice Nadeau)의 Les Lettres nouvelles라는 학술지에는 "Petites mythologies du mois"를 실었다. 그의 짧은 글들은 그를 유명해지게 했고, 1957년 한 권으로 합쳐졌다.

바르트는 학술지 Communication과 Tel Quel을 만드는 데에 참여했다. 1961년 조르주 프리드만, 롤랑 바르트, 에드가 모랭에 의해 창간된 ''Communication''은 매스 커뮤니케이션과 프랑스의 기호학적 분석 연구를 출판했다. 1980년대 이후 인간-사회학적인 문제에 관련된 주제로 확장되었으며 정치 과학, 정보 과학, 커뮤니케이션, 사회학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2014년까지 출판되었으며 총 95개의 문서 자료가 있다.

1960년 파리에서 설립된 아방가르드 문학 학술지인 Tel Quel은 문학 역사의 고전적 선봉에 의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했다. 1982년 출판이 중지되었고, 1983년 L'Infini라는 이름으로 재출판되었다.

1962년 바르트는 미셸 푸코, Michel Deguy와 함께 학술지 ''Critique''의 첫 번째 편집 위원회로 들어갔다.

4. 주요 저작

롤랑 바르트는 다양한 저서를 통해 문학, 기호학, 사진, 사랑 등 폭넓은 주제를 다루었다. 주요 저작으로는 《글쓰기의 영도》(Le Degré zéro de l'écriture, 1953), 《신화론》(Mythologies, 1957), 《기호학 원론》(Éléments de sémiologie, 1964), 《유행의 체계》(Système de la mode, 1967), 《기호의 제국》(L'Empire des signes, 1970), 《텍스트의 쾌락》(Le Plaisir du texte, 1973),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par Roland Barthes, 1975), 《사랑의 단상》(Fragments d'un discours amoureux, 1977), 《밝은 방: 사진에 대한 노트》(La Chambre claire: Note sur la photographie, 1980) 등이 있다.

1953년에 출간된 《글쓰기의 영도》는 글쓰기의 역사성과 사회성을 탐구하며, 문학적 글쓰기의 중립적인 상태, 즉 '영도'를 추구하는 바르트의 초기 사상을 보여준다. 1957년에는 현대 사회의 대중문화 현상에 나타난 신화적 의미를 분석한 《신화론》을 발표하여 주목받았다. 1964년에는 《기호학 원론》을 통해 기호학의 기본 개념과 방법론을 제시하며 구조주의 기호학의 발전에 기여했다.

1970년에는 일본 문화에 대한 분석을 담은 《기호의 제국》을 출간하여, 서구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타자 문화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보여주었다. 1973년에는 《텍스트의 쾌락》을 통해 텍스트 읽기의 즐거움과 주체적 의미 구성을 강조하는 후기 구조주의적 관점을 제시했다. 1975년에는 자전적 에세이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를 통해 자기 성찰적인 글쓰기를 선보였다.

1977년에는 사랑에 대한 단상들을 모은 《사랑의 단상》을 출간하여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1980년에는 사진에 대한 철학적 에세이 《밝은 방: 사진에 대한 노트》를 통해 사진의 본질과 의미를 탐구했다. 이 외에도 《강의》(Leçon, 1978), 《목소리의 결정》(Le Grain de la voix. Entretiens 1962~1980, 1981), 《작은 사건들》(Incidents, 1987) 등 다양한 저작을 남겼다.

5.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

롤랑 바르트의 사상은 1980년대 이후 한국의 학계와 문화계에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 문학 비평, 문화 연구, 미디어 연구, 예술 비평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바르트의 이론이 활용되었으며, 특히, 탈구조주의기호학은 한국 사회의 문화 현상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데 유용한 도구로 인식되었다. 바르트의 저작들은 한국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으며, 그의 사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논의되고 있다.

바르트의 비평은 구조주의, 기호학, 탈구조주의와 같은 이론 학파의 발전에 기여했다. 그의 영향력은 주로 그의 작업이 관련을 맺었던 이러한 이론 분야에서 두드러지지만, 컴퓨터, 사진, 음악, 문학을 포함하여 정보의 표상과 의사소통 모델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도 느껴진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에서는 바르트의 비판적 시각을 통해 한국 사회의 불평등, 권위주의, 문화적 획일성 등을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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