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야 사이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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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루야 사이이치는 일본의 소설가, 문학 평론가, 번역가로, 1925년 야마가타현에서 태어나 도쿄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그는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에 큰 영향을 받았으며, 소설, 비평, 에세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소설 『사사마쿠라』, 『속삭이며 노래하라 기미가요』와 비평 『충신장이란 무엇인가』 등이 있으며, 아쿠타가와상,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요미우리 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또한 일본 문학 평론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2011년 문화훈장을 수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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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 사이이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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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사이이치 마루야 |
원어 이름 | 丸谷 才一 |
로마자 표기 | Maruya Saiichi |
출생 이름 | 사이이치 네무라 (根村才一) |
출생일 | 1925년 8월 27일 |
사망일 | 2012년 10월 13일 |
국적 | 일본 |
직업 | 작가, 번역가, 평론가 |
언어 | 일본어 |
학력 | 도쿄 대학 |
장르 | 소설, 평론, 수필, 번역 |
파트너 | 네무라 아야코 |
자녀 | 네무라 료 (장남) |
친척 | 야마모토 진사쿠 (사촌), 오치아이 료 (조카) |
이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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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작품 | |
주요 작품 | 『사사마쿠라』(1966년) 『도시노 노코리』(1968년) 『단 한 사람의 반란』(1972년) 『뒷목소리로 불러라 기미가요』 (1982년) 『여성 전성기』(1993년) 『빛나는 날의 궁전』(2003년) |
수상 | |
수상 | 아쿠타가와상(1968년) 다니자키 준이치로상(1972년) 요미우리 문학상(1974년, 2010년) 노마 문예상(1985년)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1988년) 예술선장(1990년) 오후사 지로상(1999년) 기쿠치 간상(2001년) 이즈미 교카 문학상(2003년) 아사히상(2004년) 문화훈장(2011년) |
학력 | |
최종 학력 | 도쿄 대학 문학부 영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 인문과학연구과 석사 과정 수료 |
사망 장소 | |
사망 장소 | 일본도쿄도시부야구 |
안장 장소 | 가마쿠라 묘원 |
웹사이트 |
2. 생애
마루야 사이이치[4]는 1925년 8월 27일 야마가타현 쓰루오카시에서 태어났다.[5] 그의 아버지는 의사였으며, 상당한 재력을 바탕으로 큰 개인 서재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마루야의 문학적 욕구를 자극했다.[6]
1945년 3월, 고등학생 시절 일본군에 징집되었으나, 일본의 항복 직후였기에 전투 경험은 없었다.[6] 종전 후, 니가타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고, 1947년 도쿄대학에 입학하여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고전 일본 문학도 함께 공부했다.[5] 자신의 글쓰기 스타일을 발전시키기 위해 영어 작품 번역을 시작했다.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은 그의 글쓰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졸업 후에는 고쿠가쿠인대학과 도쿄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다.
마루야는 영향력 있는 문학 비평가이기도 했다. 『주간 아사히』와 마이니치신문(毎日新聞)에 서평을 기고했으며, 일본의 서평 수준 향상을 자신의 가장 큰 자랑거리 중 하나라고 말했다.[5]
일본 문학의 어두운 사소설적 풍토를 비판하고, 경쾌하고 지적인 작품을 쓰는 것을 목표로 했다.[12] 평론·수필을 장기간에 걸쳐 많이 출판했으며, 영문학자로서 조이스의 『율리시스』 번역에도 참여했다. 좌담회와 강연도 많이 하여 "문단 3대 음성" 중 한 명이라고 자부했다.[13]
2011년 문화훈장(文化勲章)을 수훈했다.
2012년 10월 13일 심부전으로 사망했다.[8]
2. 1. 유년 시절 및 학창 시절
마루야 사이이치(본명: 네무라 사이이치)[4]는 1925년 8월 27일 야마가타현 쓰루오카시에서 의사인 아버지 마루야니 규지로와 어머니 센 사이의 차남으로 태어났다.[5] 그의 아버지는 상당한 재력가로 큰 개인 서재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마루야의 문학적 소양을 키우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6]1932년 쓰루오카 시립 아사요 제1 보통소학교에 입학하여 1938년에 졸업하고, 구제 쓰루오카 중학교(현 야마가타현립 쓰루오카 남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943년에 졸업했다. 중학교 재학 중에는 노동 동원을 경험하며 군에 대한 혐오감을 키웠다. 당시 우등생들은 육군사관학교나 해군병학교 진학을 권유받았지만, 마루야는 이를 거부하고 도쿄 시타키타 예비학교에 1년간(1943년 4월~1944년 봄) 다녔다. 예비학교 시절 작가 야스오카 쇼타로를 알게 되었다.
1944년, 구제 니가타 고등학교 문과 을류에 입학하여 도메오기 쿄사부로를 알게 되었다. 1년 선배로는 영문과에 진학한 쓰나부치 켄죠(훗날 중앙공론사 편집자를 거쳐 작가가 됨)가 있었다. 1945년 3월, 학도 징용으로 야마가타 보병 제32연대에 입영했으나, 일본의 항복(8월 15일 종전)을 아오모리에서 맞이하고 9월에 복학했다.[6] 1947년 3월, 구제 니가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47년 4월, 도쿄대학 문학부 영문과에 입학했다. 지도 교수는 나카노 요시오, 히라이 마사호였으며, 주로 현대 영국 문학을 연구했고, 제임스 조이스를 알게 되어 큰 영향을 받았다.[5] 1950년 3월 "James Joyce"(영어)를 졸업 논문으로 제출하고 졸업하였다. 같은 해 4월, 도쿄대학 대학원 석사 과정에 진학했다. 석사 과정 시절에는 오즈 지로의 소개로[14] 토호 학원에서 영어 교사로도 근무했는데, 당시 제자로는 오자와 세이지와 다카하시 유지가 있었다. 1951년 1월부터 1954년 3월까지는 도쿄도립 기타조엔 고등학교 강사를 역임했다.
2. 2. 작가 활동
마루야 사이이치[4]는 1925년 8월 27일 야마가타현 쓰루오카에서 태어났다.[5] 그의 아버지는 의사였으며, 상당한 재산을 바탕으로 큰 개인 서재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마루야의 문학적 욕구를 자극했다.[6]1945년 3월, 고등학생 시절 일본군에 징집되었으나, 일본의 항복 직후였기에 전투 경험은 없었다.[6] 종전 후, 니가타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고, 1947년 도쿄대학에 입학하여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고전 일본 문학도 함께 공부했다.[5] 자신의 글쓰기 스타일을 발전시키기 위해 영어 작품 번역을 시작했다.[5] 다카마쓰 유이치, 나가이 레이지와 함께 조이스의 『율리시스』(1964)를 번역했으며,[7] 1969년에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번역했다.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은 그의 글쓰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졸업 후에는 고쿠가쿠인대학과 도쿄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에호바의 얼굴을 피하여』(1958), 『저편으로』(1962), 『삿사마쿠라』(1966) 등 여러 편의 소설을 집필했다.
1952년 1월, 시노다 이치시, 스가노 아키마사, 가와무라 지로 등과 함께 계간 동인지 『秩序』를 창간하고, 제1호에 단편소설 「일그러진 태양」을 발표했다. 동인지 2호부터 7호까지 첫 장편소설 『에호바의 얼굴을 피하여』를 연재했다. 4월에는 스기나미구에 있는 다카치호 고등학교 강사가 되었다. 5월에는 그레이엄 그린의 『브라이튼 록』을 『불량소년』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이후 영문학 번역 출판을 많이 했다.
1953년 9월, 고쿠가쿠인대학 전임 강사가 되었다. 1954년 봄까지 동인지 「현대평론」의 동인이었던 야마구치 히토미가 이 대학 학생으로 재학 중이었다.[16] 1954년 4월에는 조교수로 승진했다. 여기서 나카노 코우지 등과 알게 되었다. 기류 학원의 비상근 강사도 겸임했다. 같은 해 10월, 도쿄대 영문과 동기이자 연극평론가인 네무라 아야코와 결혼하여 호적상으로 네무라 성을 따랐다.
1960년 10월, 『에호바의 얼굴을 피하여』를 출간했다. 1961년 1월, 계간 『聲』 제1호에 소설 「꾀꼬리 피리」를 발표했다. 『도쿄신문』에 1961년 2월부터 1971년 3월까지 시평 「큰 파도 작은 파도」를 익명으로 게재했다. 『문예』 1962년 3월호부터 1963년 7월호까지 시평 「회전목마」를 익명으로 게재했다. 1964년,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나가카와 레이지, 다카마쓰 유이치와 공동 번역하여 출판했다. 1965년 3월, 고쿠가쿠인대학을 퇴직하고, 4월부터 2년간 도쿄대학 영문과 비상근 강사로서 "제임스 조이스"를 강의했다. 1965년 7월 5일부터 1967년 7월 12일까지 매달 2회, 『요미우리 신문』에 "카이가쿠 이치페이"라는 이름으로 "대중문예시평"을 연재했다. 『군상』 1965년 12월호부터 1969년 1월호까지 시평 「간간악악」을 익명으로 게재했다. 1966년 7월, 장편소설 제2작 『삿사마쿠라』를, 10월에는 평론집 『배의 씨앗』을 출간했다(신가나쓰카이 사용). 1967년, 『삿사마쿠라』로 가와데 문화상을 수상했다. 『종』을 출간했다. 1968년 3월 『해의 남은』을 발표하고, 7월에 같은 작품으로 제59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1972년 4월, 장편 제3작 『단 한 사람의 반란』을 발행하여 화제가 되었다. 12월, 같은 작품으로 제8회 다니자키 준이치로상을 수상했다. 이후 거의 10년에 한 작품꼴로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1973년 4월, 평론 『고토바 천황』을 발행하고 이듬해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의 저서는 역사적 가나 표기법을 사용했다. 1975년, 「4.5첩 방 문풍지 사건」에서 피고인 노사카 아키요시의 특별 변호인으로 출정했다. 1978년부터 일본문예가협회 이사, 일본근대문학관 이사를 역임했다.
조이스 탄생 100주년인 1982년 더블린 등을 여행하고, 8월에 장편 제4작 『속삭이는 목소리로 노래하라 기미가요』를 발행했다. 1984년 4월부터 10월까지 도쿄대학 문학부 강사를 역임했다. 1985년, 평론 『충신장이란 무엇인가』를 발표하고, 주신구라에서의 영령 신앙과 카니발성에 대해 국문학자 스와 하루오와 논쟁을 벌였다. 같은 작품은 이 해의 노마 문예상을 수상했다. 1988년, 『수영담』으로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을 수상했다. 1991년, 다네다 산토카를 다룬 『가로비』의 영역(데니스 킨 역, ''RAIN IN THE WIND'')이 영국의 인디펜던트 외국 소설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1993년 1월, 장편 제5작 『여성기』를 발행하여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듬해 기시나가 유리 주연으로 영화화되었다. 같은 해 『단풍 전집』 편집위원 중 한 명이 되었다. 1995년, 쓰루오카 명예시민으로 추대되었다. 1998년, 일본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999년, 평론 『신신백인일수』가 발행되었고 이듬해 오사라기 지로상을 수상했다.
2003년 11월, 장편 제6작 『빛나는 날의 궁전』이 제31회 이즈미 교카 문학상을 수상했다. 2004년 1월, 2003년도 아사히상을 수상했다. 2006년 10월 27일, 문화공로자로 선정되었다. 2010년 2월,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개역판)이 요미우리 문학상(연구·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2010년 2월 담낭암 수술을 받고, 퇴원 후부터 이듬해에 걸쳐 마지막 장편소설이 된 『무게가 느껴지는 장미꽃』을 집필했다. 그 후 클림트론 집필을 진행하고 있었다. 「나카무라 신이치로 모임」 회장도 역임했다. 2011년 문화훈장을 수훈했고, 11월 3일 고쿄에서의 수여식에서 수훈자 5명 중 최고령이었기 때문에, 처음으로 훈장을 받고 "사례 말씀"을 올리는 역할을 맡았는데, 그때 준비된 원고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개작하여 낭독했다.
마루야는 영향력 있는 문학 비평가이기도 했다. 『주간 아사히』와 마이니치신문에 서평을 기고했다.[5] 마루야는 일본의 서평 수준 향상을 자신의 가장 큰 자랑거리 중 하나라고 말했다.[5] 그의 비평과 에세이로는 『고토바인』(1973), 『일본문학사 속독』(1976), 『놀이 시간』(1976), 『충신장이란 무엇인가』(1984) 등이 있다.
일본 문학의 어두운 사소설적 풍토를 비판하고, 경쾌하고 지적인 작품을 쓰는 것을 목표로 했다.[12] 평론·수필로는 『충신장이란 무엇인가』, 『고토바인』, 『문장독본』 등을 장기간에 걸쳐 많이 출판했으며, 영문학자로서 조이스의 『율리시스』 번역에도 참여했다. 좌담회와 강연도 많이 하여 "문단 3대 음성" 중 한 명이라고 자부했다.[13] 주요 소설 작품으로는 『삿사마쿠라』, 『해의 남은』, 『단 한 사람의 반란』, 『裏声で歌へ君が代(우라고에데우타에키미가요)』, 『여성기』 등이 있다. 1966년부터 1974년을 제외하고는 독자적인 역사적 가나づ가이(역사적 가나 문자 표기법)을 사용했다.
2. 3. 문학 활동
마루야 사이이치(본명: 네무라 사이이치)[4]는 1925년 8월 27일 야마가타현 쓰루오카시에서 태어났다.[5] 그의 아버지는 의사였으며, 큰 개인 서재를 가지고 있어 마루야의 문학적 욕구를 자극했다.[6]니가타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47년 도쿄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하여 고전 일본 문학도 함께 공부했다.[5] 영어 작품 번역을 통해 자신의 글쓰기 스타일을 발전시켰다.[5]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ユリシーズ)』(1964, 다카마쓰 유이치, 나가이 레이지와 공역)[7], 『젊은 예술가의 초상』(1969)을 번역하는 등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은 그의 글쓰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졸업 후 고쿠가쿠인대학과 도쿄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며 『에호바의 얼굴을 피하여』(1958), 『저편으로』(1962), 『笹まくら(삿사마쿠라)』(1966) 등 여러 소설을 집필했다.
문학 비평가로도 활동하며 『주간 아사히』, 마이니치신문(毎日新聞) 등에 서평을 기고했고, 일본 서평 수준 향상을 자랑거리로 여겼다.[5] 비평과 에세이로는 『고토바인』(1973), 『일본문학사 속독』(1976), 『놀이 시간』(1976), 『충신장이란 무엇인가』(1984) 등이 있다.
일본 문학의 어두운 사소설적 풍토를 비판하고 경쾌하고 지적인 작품을 쓰는 것을 목표로 했다.[12] 평론·수필로는 『忠臣蔵とは何か(쥬신구라토와나니카)』, 『後鳥羽院(고토바인)』, 『文章読本(분쇼도쿠혼)』 등을 출판했고, 조이스의 『율리시즈(ユリシーズ)』 번역에 참여했다. "문단 3대 음성" 중 한 명이라고 자부할 정도로 좌담회와 강연도 많이 했다.[13]
주요 소설 작품은 다음과 같다.
- 『笹まくら(삿사마쿠라)』
- 『年の残り(토시노노코리)』
- 『たった一人の反乱(탓타히토리노한란)』
- 『裏声で歌へ君が代(우라고에데우타에키미가요)』
- 『女ざかり(온나자카리)』
1966년부터 1974년을 제외하고는 독자적인 역사적 가나づ가이(역사적 가나 문자 표기법)을 사용했다.
2. 4. 말년
마루야는 2012년 10월 13일 심부전으로 사망했다.[8]2011년 문화훈장(文化勲章)을 수훈했고, 11월 3일 도쿄 황궁(東京御所)에서 수여식이 있었다. 그는 수훈자 5명 중 최고령이었기 때문에, 처음으로 훈장을 받고 "사례 말씀"을 올리는 역할을 맡았는데, 그때 준비된 원고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개작하여 낭독했다.
2012년 7월 17일, 야마가타현(山形県)의 명예현민 칭호가 수여되었다. 2012년 8월에는 "역대 담당 편집자를 초청하는 모임"을 개최했다. 10월 8일 도쿄 도호 학원 음악과 60주년 기념 콘서트 축하회 인사를 앞둔 전날인 10월 7일, 건강이 악화되어 입원했고, 같은 달 13일 심부전으로 도쿄 내 병원에서 사망했다. 도호 학원의 인사말은 바이올리니스트 호리 덴(堀伝)이 대독했다. 부부의 묘지는 가마쿠라 영원(鎌倉霊園)에 있으며, 묘비명은 오카노 히로히코(岡野弘彦)가 생전에 의뢰받았던 "완정묘(玩亭墓)"이고, 비석 뒷면에는 부부의 약력과 "파사파사 하며/사타구니에 잡는/부채로다"(오오카 신(大岡信)의 『신 오리 오리노 우타』 수록)라는 구절이 있다. 사후 『문예춘추(文藝春秋)』 12월호에 소설 「茶色い戦争ありました」(갈색 전쟁이 있었다)가 발표되었다.
3. 작품 세계
마루야 사이이치는 소설가이자 평론가로, 일본 문학의 어두운 사소설적 풍토를 비판하고 경쾌하고 지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12] 제임스 조이스와 마르셀 프루스트 등 모더니즘 문학의 영향을 받아 영국풍의 풍속과 유머, 지적인 풍미를 중시하는 독자적인 소설을 썼다. 평론과 수필을 통해서는 일본 문학에 대한 비평적 시각을 제시했으며, 특히 시가(詩歌) 연구와 가센 연가(歌仙連句) 부흥에 기여했다.
미하일 바흐친의 폴리포니 이론과 카니발 이론에 공감하여 자신의 작품과 비평에 반영했다. 『충신장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일본의 전통 예능인 충신장(忠臣蔵)을 고대부터 내려오는 카니발적인 축제의 계보에 있다고 주장했다.[44]
나카무라 신이치로, 미하일 바흐친, 야마자키 마사카즈(山崎正和) 등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야마자키와는 100회가 넘는 대담을 나누었다. 요시다 겐이치를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고, 나카무라 신이치로를 "아프레 게르(アプレ・ゲール, 전후파)" "전체 소설"이라는 신조어 창시자로 평가했다.[45]
3. 1. 소설
마루야 사이이치의 주요 소설 작품으로는 『笹まくら(삿사마쿠라)』, 『年の残り(도시노노코리)』, 『たった一人の反乱(탓타히토리노한란)』, 『裏声で歌へ君が代(우라고에데우타에키미가요)』, 『女ざかり(온나자카리)』 등이 있다.[12] 1966년부터 1974년을 제외하고는 독자적인 역사적 가나づ가이(역사적 가나 문자 표기법)을 사용했다. 일본 문학의 어두운 사소설적 풍토를 비판하고, 경쾌하고 지적인 작품을 쓰는 것을 목표로 했다.[12] 제임스 조이스와 마르셀 프루스트 등의 모더니즘 문학의 영향을 받아 영국풍의 풍속과 유머, 지적인 풍미를 중시했다.『에호바의 얼굴을 피하여』는 구약성서의 「요나서」를 기본적인 틀로, 조이스의 『율리시즈(ユリシーズ)』나 토마스 만의 『요셉과 그의 형제들』과 같은 "신화적 방법"을 채택한 작품이다.[33]
『사사마쿠라』는 15년 전쟁 중에 징병 기피자로 지낸 남자가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 과거가 그에게 여러 가지 영향을 계속 주는 정신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이케자와 나츠키는 주인공이 탈주 중 어떤 생활을 했는지 세부에 걸쳐 쓰여져 있다는 점을 성공 요인 중 하나로 지적한다.[34] 야마자키 마사카즈는 이 작품을 "전후 문학지에서의 사건"이라고 평가했고,[35] 요네하라 마리는 "풍경이나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심리의 층과 그 공기까지 전해져 온다. 동시에 국가와 개인이라는 거시적인 주제가 전편을 관통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36]
『단 한 사람의 반란』에 보이는 유머는 도스토예프스키 초기의 해학 소설의 영향 때문이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다.[37] 앤서니 버제스는 이 작품에서 다루는 유머, 아이러니, 철학적 관조, 관용 등에 대해 "이 소설은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에게 현대의 해학 소설의 뛰어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즉 인간 내면의 본질을 파헤치는 사람으로서, 세계에 통용되는 하나의 목소리로서 그의 지위를 확립시킬 것이다"라고 평가했다.[38]
『수영담』에 대해 "그런 마음(단편소설 특유의 재미를 독자에게 맛보게 하고 싶다는)이 가장 잘 드러나 있다"며 "나의 단편소설의 대표가 될 자격을 갖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41]
작품명 | 종류 | 출판사 | 출판년월일 | 초출・서지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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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호바의 얼굴을 피하여 (エホバの顔を避けて) | 장편 | 가와데쇼보 신샤(河出書房新社) | 1960년 10월 10일 | 『질서(秩序)』 제2호(1952년 10월 25일)~제7호(1960년 7월 1일) 게재. 중공문고(中公文庫)(1978년, 개정판 1994년), 신판・가와데쇼보 신샤(2013년 2월) |
사사마쿠라(笹まくら) | 장편 | 가와데쇼보 신샤(河出書房新社) | 1966년 7월 20일 | 고단샤 문고(講談社文庫)(1973년), 신초문고(新潮文庫)(1974년) |
시끌벅적한 거리에서 (にぎやかな街で) | 작품집 | 분게이슌주(文藝春秋) | 1968년 3월 10일 | 「시끌벅적한 거리에서」「선물(贈り物)」「비밀(秘密)」 수록. 분슌문고(文春文庫)(1983년) |
한 해의 남은 시간 (年の残り) | 작품집 | 분게이슌주(文藝春秋) | 1968년 9월 15일 | 「한 해의 남은 시간」「강 없는 거리에서(川のない街で)」「남자다움(男ざかり)」「사상과 무사상의 사이(思想と無思想の間)」 수록. 분슌문고(文春文庫)(1975년) |
단 한 사람의 반란 (たった一人の反乱) | 장편 | 고단샤(講談社) | 1972년 4월 20일 | 고단샤 문고(講談社文庫)(상하, 1982년), 신판・고단샤 문예문고(講談社文芸文庫)(1997년) |
저편으로 (彼方へ) | 장편 | 가와데쇼보 신샤(河出書房新社) | 1973년 9월 29일 | 『분게이(文藝)』1962년 10월호 게재. 슈에이샤 문고(集英社文庫)(1977년), 신판・가와데쇼보 신샤(2013년 9월) |
옆 비(横しぐれ) | 작품집 | 고단샤(講談社) | 1975년 3월 8일 | 「옆 비」「느릿느릿 언덕(だらだら坂)」「중년(中年)」「첫 여행(初旅)」 수록. 고단샤 문고(講談社文庫)(1978년), 고단샤 문예문고(講談社文芸文庫)(1990년) |
속삭이며 노래하라 君가代(裏声で歌へ君が代) | 장편 | 신초샤(新潮社) | 1982년 8월 25일 | 신초문고(新潮文庫)(1990년), 쇼가쿠칸(小学館)(상하, 2024년, 전자책도 간행) |
수영담(樹影譚) | 작품집 | 분게이슌주(文藝春秋) | 1988년 8월 1일 | 「둔감한 청년(鈍感な青年)」「수영담」「꿈을 삽니다(夢を買ひます)」 수록. 분슌문고(文春文庫)(1991년) |
여자다움(女ざかり) | 장편 | 분게이슌주(文藝春秋) | 1993년 1월 10일 | 분슌문고(文春文庫)(1986년) |
빛나는 날의 궁전(輝く日の宮) | 장편 | 고단샤(講談社) | 2003년 6월 10일 | 고단샤 문고(講談社文庫)(2006년) |
무거워지는 장미꽃(持ち重りする薔薇の花) | 장편 | 신초샤(新潮社) | 2011년 10월 25일 | 『신초(新潮)』2011년 10월호 게재. 신초문고(新潮文庫)(2015년 4월) |
3. 2. 비평 및 기타 활동
마루야 사이이치는 일본 문학의 어두운 사소설적 풍토를 비판하고, 경쾌하고 지적인 작품을 쓰는 것을 목표로 했다.[12] 평론과 수필을 통해 일본 문학에 대한 비평적 시각을 제시했다.비평가로서 마루야 사이이치는 『신고금와가집』(新古今和歌集) 등의 칙선집(勅撰集)을 비롯한 여러 시가집(詞華集)의 일본 문학사적 위치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 그는 시가집 중심의 문학사론을 주장하여 당대 문학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이는 훗날 『신신백인일수』(新々百人一首)로 이어졌다. 또한 가센 연가(歌仙連句)를 문단에 부흥시키는 데에도 기여했다.
1973년과 1974년에는 아사히 신문(朝日新聞)의 문예 시평을 담당하여 독자적인 평가를 내렸다.[13] 조이스 연구의 제1인자로서 번역서를 여러 번 신판으로 출간했으며, 미스터리 소설에 관한 평론도 다루었다.
나카무라 신이치로(中村真一郎), 미하일 바흐친(ミハイル・バフチン), 야마자키 마사카즈(山崎正和) 등에게 영향을 받았다. 특히 바흐친의 폴리포니 이론과 카니발 이론에 공감하여 자신의 작품과 비평에 반영했다. 『충신장이란 무엇인가』(忠臣蔵とは何か)에서는 충신장(忠臣蔵)을 고대부터 내려오는 카니발적인 축제의 계보에 있다고 주장했다.[44]
야마자키 마사카즈와는 100회가 넘는 대담을 나누었으며, 1995년에는 대담 100회를 기념하여 『반나절의 손님, 하룻밤의 친구』(半日の客 一夜の友)를 간행했다. 요시다 겐이치(吉田健一)를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으며, 나카무라 신이치로를 "아프레 게르(アプレ・ゲール)" "전체 소설"이라는 신조어의 창시자로서 평가했다.[45]
주요 저서 및 평론:
제목 | 출판사 | 출판년도 | 비고 |
---|---|---|---|
배의 조약돌: 마루야 사이이치 문예평론집 | 晶文社 | 1966년 | 신판 1979년 |
여성 대 남성 | 문예춘추 | 1970년 | 후에 문고본 |
큰 신세 | 아사히신문사 | 1971년 | 후에 분슌문고 |
고토바 천황: 일본 시인선 | 치쿠마쇼보 | 1973년 | |
일본어를 위하여 | 신초사 | 1974년 | 후에 문고본·신판 2011년 3월 |
달밤: 유머 에세이집 | 반초쇼보 | 1974년 | |
식통지 츠타카부리 | 문예춘추 | 1975년 | 후에 문고본, 추코문고 2010년 2월 |
별안경 | 슈에이샤 | 1975년 | |
기러기의 편지 | 아사히신문사 | 1975년 | 후에 문고본(문예시평) |
유유울울 | 마이니치신문사 | 1975년 | 현대의 시야 1 |
남자의 포켓 | 신초사 | 1976년 | 후에 문고본 |
놀이 시간 | 다이와쇼보 | 1976년 | 후에 추코문고(평론·서평집) |
저공 비행 | 신초사 | 1977년 | 후에 문고본 |
문장 독본 | 중앙공론사 | 1977년 | 후에 문고본·개정판 1995년 |
일본 문학사 속셈 | 고단샤 | 1978년 | 후에 문고본, 동문예문고(평론집) |
콜럼버스의 알 | 치쿠마쇼보 | 1979년 | 후에 문고본(제2 문예평론집) |
놀이 시간 2 | 다이와쇼보 | 1980년 | 후에 추코문고(평론집) |
좋아하는 양복 | 문예춘추 | 1983년 | 후에 문고본 |
새벽의 잘 자요 | 아사히신문사 | 1984년 | 현대의 에세이 |
놀이 시간 3 | 다이와쇼보 | 1984년 | 개제명「장어와 마〉 추코문고 1995년(서평집) |
충신장이란 무엇인가 | 고단샤 | 1984년 | 후에 문예문고 |
올빼미의 꿈 | 중앙공론사 | 1985년 | 후에 문고본(제3 문예평론집) |
인사는 어렵다 | 아사히신문사 | 1985년 | 후에 문고본·신판『합본 인사는 힘들다』 2013년 9월 |
벚꽃도 작별도 일본어 | 신초사 | 1986년 | 후에 문고본(일부 「완본 일본어~」에 수록) |
6월 16일의 불꽃놀이 | 이와나미쇼텐 | 1986년 | 조이스론 |
개도 산책한다 | 고단샤 | 1986년 | 후에 문고본 |
밤중의 건배 | 문예춘추 | 1987년 | 후에 문고본 |
새의 노래 | 후쿠타케쇼텐 | 1987년 | 후에 문고본 |
남자의 마음 | 신초사 | 1989년 | 후에 문고본(평론·서평집) |
고양이도 꿈을 꾼다 | 문예춘추 | 1989년 | 후에 문고본 |
산이라 하면 강 | 마가진하우스 | 1991년 | 추코문고 1995년(서평집) |
가벼운 갑옷 | 신초사 | 1993년 | 후에 문고본 |
푸른 우산 | 문예춘추 | 1995년 | 후에 문고본 |
목성과 셔벗 | 마가진하우스 | 1995년 | 서평·평론집 |
70구 | 립풍서방 | 1995년 | 『70구 88구』고단샤 문예문고 2017년 |
연애와 여자의 일본 문학 | 고단샤 | 1996년 | 후에 문고본(평론집) |
어디 불어오는 바람 | 고단샤 | 1997년 | |
남자 것 여자 것 | 문예춘추 | 1998년 | 후에 문고본 |
신신백인일수 | 신초사 | 1999년 | 신초문고(상·하) 2004년 |
당당히 걷는 쇼세키 | 고단샤 | 2000년 | 후에 문고본 |
인사는 힘들다 | 아사히신문사 | 2001년 | 신판『합본 인사는 힘들다』아사히문고 2013년 9월 |
불꽃놀이 가게의 두목 | 문예춘추 | 2002년 | 후에 문고본 |
안료 가게의 아내 | 문예춘추 | 2003년 | 후에 문고본 |
가십적인 일본어론 | 문예춘추 | 2004년 | 후에 문고본 |
고양이의 셈이 호랑이 | 마가진하우스 | 2004년 | 후에 분슌문고 |
고토바 천황 제2판 | 치쿠마쇼보 | 2004년 | 치쿠마가쿠게이문고 2013년 3월 |
무늬 있는 은하수 | 문예춘추 | 2005년 | 후에 문고본 |
갖가지 색의 잉크로 | 마가진하우스 | 2005년 | 서평집 |
쌍육으로 도카이도 | 문예춘추 | 2006년 | 후에 문고본 2010년 12월 |
소매의 단추 | 아사히신문사 | 2007년 | 후에 문고본 2011년 3월 |
나비는 누구로부터의 편지 | 마가진하우스 | 2008년 | 서평·평론집 |
달과 멜론 | 문예춘추 | 2008년 | 후에 문고본 2011년 8월 |
인형의 BWH | 문예춘추 | 2009년 | 후에 문고본 2012년 5월 |
인간적인 알파벳 | 고단샤 | 2010년 | 후에 문고본 2013년 3월 |
인사는 한 가지 일 | 아사히신문출판 | 2010년 | 후에 문고본 2013년 4월 |
별의 메아리 | 슈에이샤 | 2010년 | 후에 문고본 2013년 9월(서평·평론집) |
수액 그리고 과실 | 슈에이샤 | 2011년 7월 | 평론집 |
인어는 아카펠라로 노래한다 | 문예춘추 | 2012년 1월 | |
쾌락으로서의 독서 해외편 | 치쿠마문고 | 2012년 4월 | 서평집: 신편 재간 |
쾌락으로서의 독서 일본편 | 치쿠마문고 | 2012년 4월 | 상동 |
쾌락으로서의 미스터리 | 치쿠마문고 | 2012년 11월 | 상동 |
무지의 넥타이 | 이와나미쇼텐 | 2013년 2월 | 해설 이케자와 나츠키 |
연애와 일본 문학과 본고쿠 선장/여자의 구원 | 고단샤 문예문고 | 2013년 4월 | 문예평론·신편 재간 |
이별의 인사 | 슈에이샤 | 2013년 10월 | 후에 문고본 2017년 3월(서평·평론집) |
마루야 사이이치 에세이 걸작선 1 배를 잡다 | 분슌문고 | 2015년 1월 | |
마루야 사이이치 에세이 걸작선 2 무릎을 치다 | 분슌문고 | 2015년 2월 |
4. 수상 내역
연도 | 상 이름 | 작품명 | 비고 |
---|---|---|---|
1967년 | 가와데 문화상 | 笹まくら|사사마쿠라일본어 | |
1968년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상 | 年の残り|도시노 노코리일본어 | |
1972년 |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 たった一人の反乱|닷타 히토리노 한란일본어 | |
1974년 | 요미우리 문학상 | 後鳥羽院|고토바인일본어 | |
2010년 | 若い藝術家の肖像|와카이 게이주쓰카노 쇼조일본어 (신역) | ||
1985년 | 노마 문예상 | 忠臣蔵とは何か|주신구라토와 나니카일본어 | |
1988년 |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 | 樹影譚|주에이탄일본어 | |
1990년 | 예술선장 | 光る源氏の物語|히카루 겐지노 모노가타리일본어 (오노 스스무와의 대담) | |
1999년 | 다이부츠지로상 | 新々百人一首|신신햐쿠닌잇슈일본어 | |
2001년 | 키쿠치 칸상 | ||
2003년 | 이즈미 쿄카 문학상 | 輝く日の宮|가야카쿠 히노미야일본어 | |
2004년 | 아사히상 | 다년간의 문학적 업적 | |
2011년 | 문화훈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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丸谷才一さん死去:深い教養とユーモア 「考える快楽」描き日本問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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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니치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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