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2008년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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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민주당 (2008년 대한민국)은 2008년 2월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통합으로 출범한 정당이다. 2008년 7월 당명을 민주당으로 변경했으며, 손학규와 박상천이 공동 대표를 맡았다.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81석을 얻어 2위를 기록했고,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광역단체장 7곳을 포함하여 다수의 당선자를 배출했다. 2011년 12월 시민통합당, 한국노총과 합당하여 민주통합당으로 재창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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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2008년 대한민국) - [정당]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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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원어 이름 | 민주당 |
한자 표기 | 民主黨 |
로마자 표기 | Minjudang |
다른 이름 | 통합민주당 |
다른 이름 한자 표기 | 統合民主黨 |
다른 이름 로마자 표기 | Tonghapminjudang |
약칭 (영문) | DP |
상징색 | 녹색 |
웹사이트 (한국어) | minjoo.kr |
웹사이트 (영어) | englishdp.tistory.com |
설립 및 해산 | |
창당일 | 2008년 2월 17일 |
창당 설명 | 대통합민주신당에서 출범 |
추가 창당일 | 2008년 5월 7일 |
추가 창당 설명 | 민주당으로 재창당 |
해산일 | 2011년 12월 15일 |
해산 이유 | 시민통합당과의 신설 합당 |
합당 정당 | 민주통합당 |
본부 | |
중앙당사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5-16 |
이념 및 정치 성향 | |
이념 | 자유주의 |
정치 스펙트럼 | 중도 ~ 중도좌파 |
주요 인물 | |
대표 | 손학규 |
원내대표 | 김진표 |
최고위원 | 김민석 송영길 안희정 박주선 김진표 |
기타 | |
색상 | 녹색 |
관련 정보 | |
선행 조직 | 대통합민주신당 민주당 |
2. 역사
이 당은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새천년민주당 의원들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면서 시작되었다. 2004년 총선에서 152석을 얻어 국회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1]
2007년 8월 18일, 열린우리당은 대통합민주신당과 합당하기로 결정했다. 2008년 2월 17일, 대통합민주신당은 민주당과 합쳐 '''통합민주당'''을 창당했다.[1][2] 2008년 7월, 당명을 '''민주당'''으로 변경했다.[53][54]
2010년 지방 선거에서 민주당은 인천 시장직을 포함한 8개 시도지사 및 시장직에서 승리했다.[3]
2011년 12월 16일, 민주당은 시민통합당 및 한국노총과 합쳐 민주통합당을 창당했다.[4][5]
년도 | 월일 | 주요 사건 |
---|---|---|
2007년 | 2월 14일 | 우리당 정기 당대회, 민주당 및 우리당 탈당자를 포함한 대통합 신당 결성 추진을 결의[43] |
5월 7일 | 우리당 탈당자들이 중도개혁통합신당(통합신당) 결성[44] | |
6월 27일 | 통합신당과 민주당이 중도통합민주당(통합민주당)을 결성[45] | |
8월 5일 | 우리당 탈당자와 통합민주당의 대통합 신당파를 중심으로 대통합민주신당(민주신당)이 결성[46] | |
8월 20일 | 민주신당, 우리당을 흡수 합병[47]. 한나라당을 제치고 원내 제1당(143석)이 됨. | |
10월 15일 | 민주신당 대통령 후보 지명 대회. 정동영 후보가 손학규 후보를 누르고 민주신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됨. | |
12월 19일 | 제17대 대통령 선거. 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큰 차이로 패배. | |
2008년 | 2월 11일 | 민주신당 손학규 대표와 민주당 박상천 대표가 회담, “통합민주당” 결성에 합의[48] |
2월 17일 | 민주신당과 민주당이 통합, 손학규와 박상천을 공동 대표로 하는 통합민주당(민주당) 발족[49]. 분열되었던 구여당 세력이 재통합됨. | |
4월 9일 | 제18대 총선. 민주당이 목표로 하는 100석을 크게 하회하는 81석(지역구 66석+비례구 15석) 획득에 그치며 패배[50]. | |
5월 27일 | 제18대 국회 제1기 원내 대표에 원혜영이 선출 (임기 1년)[51] | |
6월 4일 | 지방자치단체 보궐선거. 지방자치단체 단체장 3명, 광역자치단체 의원 14명, 기초자치단체 의원 6명 당선, 선전[52]. | |
7월 6일 | 당대회, “통합민주당”에서 “민주당”으로 당명 변경[53]. 정세균을 신임 대표로 선출[54]. | |
10월 29일 | 지방자치단체 보궐선거. 기초자치단체 의원 1명 당선[55] | |
2009년 | 4월 29일 | 국회의원 재선거. 격전 지역인 인천광역시 부평구 을 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 동시에 실시된 기초자치단체장 보궐선거에서도 경기도 시흥시에서 민주당 공천 후보가 당선, 수도권에서 선전[56]. |
5월 15일 | 제18대 국회 2기 원내 대표에 이강래 의원 선출[57] | |
5월 23일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
8월 18일 |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 |
10월 28일 | 경기도 수원시 등 5곳에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수도권 2곳과 충청북도 1곳에서 승리[58]. | |
2010년 | 2월 10일 | 작년 4월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을 탈당했던 정동영 의원, 신계륜 의원이 민주당에 복당[59]. |
5월 7일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김대중 정권에서 문화관광부 장관과 비서실장을 역임한 박지원 의원이 제3기 원내 대표로 선출.[60] | |
6월 2일 |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광역단체장 선거 7곳, 기초단체장 선거 91곳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광역의회 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을 제치고 제1당이 되어 승리[61]. | |
6월 8일 | 작년 7월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강행 처리에 항의하며 국회 밖에 머물렀던 정 대표가 11개월 만에 국회에 복귀[62]. | |
6월 9일 | 새로운 정책위원회 의장에 전병헌 의원 임명[63] | |
7월 28일 |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8개 선거구 중 3개 선거구만 승리, 패배. | |
7월 30일 | 28일 실시된 재보궐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정 대표가 사퇴 의사 표명[64] | |
8월 3일 | 2일 정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박지원 원내 대표를 위원장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발족[65]. | |
10월 3일 | 전당대회에서 실시된 신임 지도부 선거에서 신임 대표로 손학규 선출[66][67]. 2위는 정동영, 3위는 전 대표 정세균. 동시에 6명의 최고위원 선출. 또한 진보주의적 정책을 강화한 새로운 강령과 정강도 채택. | |
2011년 | ||
1월 | 손학규 대표, 소득에 관계없이 복지 서비스를 향유할 수 있는 “보편적 복지”를 제창, 당론으로 채택할 생각을 밝힘. | |
4월 27일 | 국회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장 등 재보궐선거. 성남시 분당구 을에서 당 대표 손학규가 당선, 강원도지사 선거에서도 당 공천 최문순이 당선[68]. | |
5월 13일 | 제4기 원내 대표 선거. 중도파로 대통령 정책기획수석비서관과 재정경제부 장관 등을 역임한 김진표가 당선[69]. | |
5월 23일 | 새로운 정책위원회 의장에 박영선 의원 선출 (여성 최초 정책위 의장)[70]. | |
6월 15일 | 손학규 대표, 6·15 남북 공동선언 11주년을 맞아 경기도 파주시의 임진각에 있는 통일전망대에서 개최한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남북 정상회담의 재추진을 주장[71]. | |
6월 27일 | 손학규 대표,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회담. 여야 대표 회담은 2008년 9월 이후 약 3년 만[72][73]. | |
8월 20일 | 손학규 대표, 민주노동당 등 야당 4당에 대통합을 공식 제안[74] | |
9월 6일 | 노무현 정권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한 문재인 등 친노파를 중심으로 야당 통합 추진 기구 “혁신과 통합” 발족[18] | |
9월 25일 | 10월 말에 치러질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내 예비선거에서 박영선 의원 선출[75]. | |
10월 3일 | 야당 진영 서울시장 보궐선거 예비선거에서 시민운동가 박원순 변호사가 박영선 등을 누르고 야당 단일 후보로 확정.[76] | |
10월 4일 | 손학규 대표,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당 후보자 예비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패배한 책임을 지고 사임을 표명[77]. 그러나 다음 날 5일 사퇴 의사 철회[78]. | |
10월 26일 | 하반기 재보궐선거.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등 야당의 단일 후보인 박원순이 당선. 11곳에서 실시된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는 당의 지반인 전라도 2곳에서 승리[79]. | |
11월 3일 | 손학규 대표, 12월 말까지 진보 진영의 모든 세력을 결집한 통합 신당을 발족시킬 것을 표명[19]. | |
11월 4일 | 손학규 대표, 야당 대통합에 의한 신당 결성에 대해 “12월 18일 이전에 통합 야당의 당대회를 열 것”이라고 표명. | |
11월 13일 | 연석회의 준비회 개최. | |
11월 20일 | 연석회의 개최. 11월 27일까지 창당 준비위원회를 발족시키고, 12월 17일에 통합 정당의 당대회를 개최하는 로드맵 제시. | |
12월 7일 |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혁통 이해찬·문재인 상임 대표, 통합 정당의 방안에 합의. 혁통의 임시 정당 “시민통합당” 결성. | |
12월 9일 | 김진표 원내 대표, 사퇴 의사 표명. | |
12월 11일 | 전당대회. 시민통합당과 한국노총과의 통합 결의 성립. 그 당시 통합 반대파 의원들의 통합파 의원들에 대한 폭행도 발생. | |
12월 16일 | 민주당과 시민통합당 및 한국노총, 합동을 공식 결의. “민주통합당”(민주당) 발족. |
2. 1. 민주당 창당 이전의 흐름
1995년 이전의 민주당계 정당 흐름은 대한민국의 민주당계 정당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1995년 9월 5일, 김대중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이 정계에 복귀하며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고, 이에 민주당 내 상당수 인사들이 탈당하여 합류했다. 1997년 11월 21일에는 3당 합당과 새정치국민회의에 반대한 김원기, 노무현 등 통합민주당 인사들이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했다. 한편, 통합민주당은 신한국당과 합당했다.
1997년 12월 18일, 자민련의 김종필과 연합(DJP 연합)한 김대중 후보가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면서, 새정치국민회의는 사상 최초로 집권 여당이 되었다. 2000년 1월 20일, 새정치국민회의는 확대 개편을 통해 새천년민주당으로 창당되었다. 2002년 12월 19일에는 노무현 후보가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2003년 9월 29일, 노무현 대통령이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면서 새천년민주당은 야당이 되었다. 같은 해, 새천년민주당 내 개혁파 성향 당원들이 탈당하여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이어졌다. 2004년, 새천년민주당은 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으나, 국민적 지지를 상실하고 제17대 총선에서 9석을 얻는 데 그쳐 원내교섭단체 지위를 상실했다.
2005년 5월 6일, 새천년민주당은 당명을 '''민주당'''으로 변경했다. 2007년 2월 12일, 열린우리당 탈당파 24명이 '중도개혁통합신당추진모임'을 결성하고 국회 교섭단체로 등록했다. 2007년 4월 30일에는 국민중심당 공동대표였던 신국환 의원이 국민중심당을 탈당하고 '중도개혁통합 신당추진 모임'에 합류했으며, 5월 17일에는 이인제 의원이 국민중심당을 탈당하고 민주당에 복당했다.
2007년 6월 27일, 새천년민주당과 중도개혁통합신당이 합당하여 소속 의원 34명의 중도통합민주당이 창당되었다. 2007년 8월 5일, 열린우리당 탈당파 주도로 중도통합민주당, 한나라당 선진평화연대가 통합하여 대통합민주신당이 창당되었고, 8월 13일 당명과 로고를 '''민주당'''으로 복구하였다. 8월 20일, 대통합민주신당은 열린우리당을 흡수했다. 이로써 열린우리당은 대규모 탈당 사태로 군소 정당화된 후 신당에 흡수되었다.
2007년 12월 19일,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는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했다.
2. 2. 창당 및 활동 (2008년 - 2011년)
2008년 2월 17일,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이 통합하여 통합민주당이 출범했다. 공동대표는 손학규, 박상천이 맡았다.[1][2][49] 같은 해 4월 9일에 치러진 제18대 총선에서 81석을 얻는 데 그쳐 참패했다.[50] 총선에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의석을 대폭 줄이며 제2당으로 추락했고, 손학규, 정동영, 김근태, 한명숙 등 유력 간부들이 낙선했다.[9][10]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던 386세대 의원들도 다수 낙선했다.[11]2008년 7월 6일, 전당대회를 통해 당명을 '''민주당'''으로 변경하고 정세균을 당 대표로 선출했다.[53][54] 2009년에는 미디어법 파동, 용산 참사 등이 발생했고, 민주당은 장외투쟁을 전개했다.
2010년 6월 2일,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7곳, 기초단체장 92곳에서 승리했다.[61] 그러나 지방선거 직후 실시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는 8개 선거구 중 3개 선거구 승리에 그쳤다.[13][14] 재보궐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정세균 대표 이하 당 지도부가 총사퇴했다.[64] 같은 해 10월 3일, 전당대회에서 손학규를 당 대표로 선출했다.[66][67]
2011년 4월 27일, 4·27 재보궐선거에서 분당구 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손학규 대표가 당선되었고, 최문순 강원도지사도 당선되었다.[68] 2011년 10월 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야권 단일 후보로 박원순이 당선되었고, 민주당은 후보를 내지 않았다.[79]
2011년 12월 11일, 전당대회에서 시민통합당, 한국노총과의 통합을 의결했다.[30] 12월 16일, 시민통합당, 한국노총과 합당하여 민주통합당을 창당했다.[4][5][32]
년도 | 월일 | 주요 사건 |
---|---|---|
2007년 | 2월 14일 | 우리당 정기 당대회, 민주당 및 우리당 탈당자를 포함한 대통합 신당 결성 추진을 결의[43] |
5월 7일 | 우리당 탈당자들이 중도개혁통합신당(통합신당) 결성[44] | |
6월 27일 | 통합신당과 민주당이 중도통합민주당(통합민주당)을 결성[45] | |
8월 5일 | 우리당 탈당자와 통합민주당의 대통합 신당파를 중심으로 대통합민주신당(민주신당)이 결성[46] | |
8월 20일 | 민주신당, 우리당을 흡수 합병[47]. 한나라당을 제치고 원내 제1당(143석)이 됨. | |
10월 15일 | 민주신당 대통령 후보 지명 대회. 정동영 후보가 손학규 후보를 누르고 민주신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됨. | |
12월 19일 | 제17대 대통령 선거. 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큰 차이로 패배. | |
2008년 | 2월 11일 | 민주신당 손학규 대표와 민주당 박상천 대표가 회담, “통합민주당” 결성에 합의[48] |
2월 17일 | 민주신당과 민주당이 통합, 손학규와 박상천을 공동 대표로 하는 통합민주당(민주당) 발족[49]. 분열되었던 구여당 세력이 재통합됨. | |
4월 9일 | 제18대 총선. 민주당이 목표로 하는 100석을 크게 하회하는 81석(지역구 66석+비례구 15석) 획득에 그치며 패배[50]. | |
5월 27일 | 제18대 국회 제1기 원내 대표에 원혜영이 선출 (임기 1년)[51] | |
6월 4일 | 지방자치단체 보궐선거. 지방자치단체 단체장 3명, 광역자치단체 의원 14명, 기초자치단체 의원 6명 당선, 선전[52]. | |
7월 6일 | 당대회, “통합민주당”에서 “민주당”으로 당명 변경[53]. 정세균을 신임 대표로 선출[54]. | |
10월 29일 | 지방자치단체 보궐선거. 기초자치단체 의원 1명 당선[55] | |
2009년 | 4월 29일 | 국회의원 재선거. 격전 지역인 인천광역시 부평구 을 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 동시에 실시된 기초자치단체장 보궐선거에서도 경기도 시흥시에서 민주당 공천 후보가 당선, 수도권에서 선전[56]. |
5월 15일 | 제18대 국회 2기 원내 대표에 이강래 의원 선출[57] | |
5월 23일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
8월 18일 |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 |
10월 28일 | 경기도 수원시 등 5곳에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수도권 2곳과 충청북도 1곳에서 승리[58]. | |
2010년 | 2월 10일 | 작년 4월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을 탈당했던 정동영 의원, 신계륜 의원이 민주당에 복당[59]. |
5월 7일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김대중 정권에서 문화관광부 장관과 비서실장을 역임한 박지원 의원이 제3기 원내 대표로 선출.[60] | |
6월 2일 |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광역단체장 선거 7곳, 기초단체장 선거 91곳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광역의회 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을 제치고 제1당이 되어 승리[61]. | |
6월 8일 | 작년 7월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강행 처리에 항의하며 국회 밖에 머물렀던 정 대표가 11개월 만에 국회에 복귀[62]. | |
6월 9일 | 새로운 정책위원회 의장에 전병헌 의원 임명[63] | |
7월 28일 |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8개 선거구 중 3개 선거구만 승리, 패배. | |
7월 30일 | 28일 실시된 재보궐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정 대표가 사퇴 의사 표명[64] | |
8월 3일 | 2일 정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박지원 원내 대표를 위원장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발족[65]. | |
10월 3일 | 전당대회에서 실시된 신임 지도부 선거에서 신임 대표로 손학규 선출[66][67]. 2위는 정동영, 3위는 전 대표 정세균. 동시에 6명의 최고위원 선출. 또한 진보주의적 정책을 강화한 새로운 강령과 정강도 채택. | |
2011년 | ||
1월 | 손 대표, 소득에 관계없이 복지 서비스를 향유할 수 있는 “보편적 복지”를 제창, 당론으로 채택할 생각을 밝힘. | |
4월 27일 | 국회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장 등 재보궐선거. 성남시 분당구 을에서 당 대표 손학규가 당선, 강원도지사 선거에서도 당 공천 최문순이 당선[68]. | |
5월 13일 | 제4기 원내 대표 선거. 중도파로 대통령 정책기획수석비서관과 재정경제부 장관 등을 역임한 김진표가 당선[69]. | |
5월 23일 | 새로운 정책위원회 의장에 박영선 의원 선출 (여성 최초 정책위 의장)[70]. | |
6월 15일 | 손 대표, 남북공동선언 11주년을 맞아 경기도 파주시의 임진각에 있는 통일전망대에서 개최한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남북 정상회담의 재추진을 주장[71]. | |
6월 27일 | 손 대표,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회담. 여야 대표 회담은 2008년 9월 이후 약 3년 만[72][73]. | |
8월 20일 | 손 대표, 민주노동당 등 야당 4당에 대통합을 공식 제안[74] | |
9월 6일 | 노무현 정권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한 문재인 등 친노파를 중심으로 야당 통합 추진 기구 “혁신과 통합” 발족[18] | |
9월 25일 | 10월 말에 치러질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내 예비선거에서 박영선 의원 선출[75]. | |
10월 3일 | 야당 진영 서울시장 보궐선거 예비선거에서 시민운동가 박원순 변호사가 박영선 등을 누르고 야당 단일 후보로 확정.[76] | |
10월 4일 | 손학규 대표,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당 후보자 예비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패배한 책임을 지고 사임을 표명[77]. 그러나 다음 날 5일 사퇴 의사 철회[78]. | |
10월 26일 | 하반기 재보궐선거.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등 야당의 단일 후보인 박원순이 당선. 11곳에서 실시된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는 당의 지반인 전라도 2곳에서 승리[79]. | |
11월 3일 | 손 대표, 12월 말까지 진보 진영의 모든 세력을 결집한 통합 신당을 발족시킬 것을 표명[19]. | |
11월 4일 | 손 대표, 야당 대통합에 의한 신당 결성에 대해 “12월 18일 이전에 통합 야당의 당대회를 열 것”이라고 표명. | |
11월 13일 | 연석회의 준비회 개최. | |
11월 20일 | 연석회의 개최. 11월 27일까지 창당 준비위원회를 발족시키고, 12월 17일에 통합 정당의 당대회를 개최하는 로드맵 제시. | |
12월 7일 | 민주당 손 대표와 혁통 이해찬·문재인 상임 대표, 통합 정당의 방안에 합의. 혁통의 임시 정당 “시민통합당” 결성. | |
12월 9일 | 김진표 원내 대표, 사퇴 의사 표명. | |
12월 11일 | 전당대회. 시민통합당과 한국노총과의 통합 결의 성립. 그 당시 통합 반대파 의원들의 통합파 의원들에 대한 폭행도 발생. | |
12월 16일 | 민주당과 시민통합당 및 한국노총, 합동을 공식 결의. “민주통합당”(민주당) 발족. |
민주당은 2010년 10월 전당대회 이전까지 중도개혁주의를 표방했으나, 이후 진보주의적 색채가 강한 새로운 강령을 채택했다.[33] 새 강령은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임을 명시하고, 민주, 자유, 복지, 평화, 환경을 5대 가치로 설정했다.[34] '사람 중심의 시장경제'와 '보편적 복지'를 강조하며, 사회 양극화 해소와 복지 정책 강화를 주요 정책으로 삼았다.[34]
2008년 2월, 통일부와 여성부 존치를 관철시켰다. 17대 국회 막바지에 이명박 정부의 한미 쇠고기 수입 협상에 대한 비판의 일환으로 정운천 장관의 해임안을 상정하였다.
3. 이념 및 정책
2011년 1월, 손학규 대표는 무상 급식, 무상 보육, 무상 교육, 대학생 등록금 반값 지원 등을 포함하는 '보편적 복지'를 제창했다. 이는 소득과 관계없이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증세 없이 추진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등은 재원 조달 방안이 불확실하다며 '인기 영합 정책'이라고 비판했고, 당내에서도 재정적 근거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35][36][37]
민주당은 과거 여당 시절(김대중·노무현 정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추진했으나, 현재는 국가 소송 제도를 문제 삼아 비준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송영길, 안희정 등 일부 인사가 한미 FTA 반대 입장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38][24]
당 내부에는 구 우리당 계열의 중도·진보주의 세력, 구 민주당의 보수계 세력, 한나라당 출신 탈당파[39] 등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을 가진 세력이 공존하고 있다. 18대 총선 직후 실시된 설문조사에서는 민주당 당선자 60명 중 49명이 자신의 이념 성향을 중도 진보라고 답했고, 중도 보수(7명), 진보(1명), 보수(1명) 순으로 나타났다(2명은 불명).[40]
과거 민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가까운 '친노' 세력과 거리를 두기도 했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노무현 정신 계승'을 내세우며 친노 인사를 대거 영입했다. 2010년 6월 지방 선거에서는 한명숙, 송영길, 안희정 등 친노 인사를 후보로 공천했고, 이들 대다수가 민주당에 합류했다.[41]
4. 주요 활동 및 평가
2009년 7월 22일,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미디어법 처리를 두고 논쟁을 벌이던 중, 한나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의 의장석을 점거하자, 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와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며 항의하였다.[108] 그 후 미디어법 처리 절차의 무효와 반대를 알리는 전국적인 선전홍보활동에 나섰다.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 주요 공약으로 무상급식을 내세웠다. 민주당이 다수를 차지한 서울시의회에서는 무상급식 조례안이 통과되었다. 경기도의회에서는 초·중학교와 특수학교 학생에 대해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 무상 학교급식 지원조례안을 마련했다. 2010년 10월 31일에는 4대강 사업 반대 운동을 선언하였고,[109] 민주당 소속 자치단체장들도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손학규 대표는 2010년 12월 8일부터 12월 28일까지 전국을 돌며 이명박 독재 심판을 위한 민주대장정을 전개했으며, 2011년 1월 3일부터 다시 전국을 돌며 시민들의 건의와 주장을 경청하고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 노선을 설명하고 토론하는 희망대장정을 전개하고 있다.
2011년에는 한미자유무역협정 비준을 둘러싸고 여당과 첨예하게 대립했다. 민주당은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 폐기를 주장하며 비준에 반대했고, 한나라당의 강행 처리에 맞서 무효화 투쟁을 벌였다.[96][97][98][99][100][101][102][103][104]
민주당의 무상복지 정책은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았다.[110][111][112] 공학연은 "당선만을 위해 내세운 무상급식 공약은 무책임한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110] 그러나 민주당은 "현실에 맞게 변형·조절할 수 있다"며 유연성을 강조했다.[113]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이후,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 및 정책에 대한 비판적 태도에서 추모 정국을 이용하는 모습으로 변화한 것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114]
또한, 국회에서 무단 점거 농성을 벌이거나, 발목잡기식 법안 처리 지연으로 국회 파행을 유도하였다는 비판과[115] 법안 처리를 막기위해 의사당 정문을 봉쇄하고 출입하는 의원들의 입장을 검열하여 입장이 다른 의원들의 본회의장 입장을 폭력을 동원하여 저지하는 행동을 하여 비판을 받았다.[116]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법안 상정조차 못하게 가로막고, 민주주의 기본인 다수결 원칙을 물리력으로 저지했다’고 비난했다.[117]
2008년11월 26일에는 북한을 향한 전단 살포를 하고 있는 자유북한운동연합에 대해, “ (자유북한운동연합은) 매국단체이며, 이러한 터무니없는 행위를 계속하게 하고 문제를 크게 만들기 위해 따뜻하게 맞이한 것이 아니다.” 등의 성명을 발표했다.[80]
2009년6월 8일에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한 정책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초래했다고 지적하며, 대북한·안보 정책 기조의 전면적인 전환을 요구했다.[81]
5. 역대 지도부
대수 역대 대표 직함 임기 비고 1 손학규 공동대표최고위원 2008년 2월 17일 ~ 2008년 7월 6일 대통합민주신당 대표 1 박상천 공동대표최고위원 2008년 2월 17일 ~ 2008년 7월 6일 민주당 대표 2 정세균 대표최고위원 2008년 7월 7일 ~ 2010년 8월 2일 7.28 재보선 패배로 사퇴 (임시)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2010년 8월 3일 ~ 2010년 10월 2일 7.28 재보선 패배로 비대위 구성 3 손학규 대표최고위원 2010년 10월 3일 ~ 2011년 12월 22일 민주통합당으로 신설합당
원내대표는 다음과 같다.
2010년 10월 이후 지도부에는 당 대표 손학규, 원내대표 김진표, 정책위원회 의장 박영선, 사무총장 정장선, 대변인 이춘석·차영, 최고위원 정동영, 정세균, 이인영, 천정배, 박주선, 조배숙, 김영춘이 있었다.
6. 역대 전당대회
6. 1. 대통합민주신당-민주당 통합수임기구 합동회의 (2008년 2월 17일)
2008년 2월 17일, 신당-민주당 수임기구 합동회의는 양당의 합당을 통한 통합민주당 창당을 선언하고, 신당 손학규 대표와 민주당 박상천 대표를 전당대회까지 공동대표로 선출했다.6. 2. 통합민주당 제1차 정기 전당대회 (2008년 7월 6일)
2008년 7월 6일, 통합민주당 전당대회는 당명을 통합민주당에서 민주당으로 개정하였다. 대의원 투표를 통해 정세균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대표로 선출했다.
6. 3. 민주당 제2차 정기 전당대회 (2010년 10월 3일)
2010년 10월 3일, 민주당 전당대회는 1인 2표제로 사전 당원 여론조사 30%, 대의원 투표 70%로 최고위원 선거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손학규 전 대표가 대표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정세균 전 대표, 이인영 의원, 천정배 전 법무장관, 박주선 의원, 조배숙 의원이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다.순위 | 기호 | 이름 | 당원 여론조사(30%) | 대의원(70%) | 합산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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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표율 | 득표율 | 득표율 | ||||
1 | 8 | 손학규 | 9,643 | 3,827 | 13,470 | 대표최고위원 |
54.5 | 37.7 | 42.7 | ||||
2 | 1 | 정동영 | 9,442 | 3,289 | 12,731 | 최고위원 |
53.3 | 32.4 | 38.7 | ||||
3 | 2 | 정세균 | 6,468 | 3,749 | 10,217 | 최고위원 |
36.5 | 37 | 36.9 | ||||
4 | 7 | 이인영 | 1,609 | 2,963 | 4,572 | 최고위원 |
9.1 | 29.2 | 23.2 | ||||
5 | 6 | 천정배 | 3,873 | 1,962 | 5,835 | 최고위원 |
21.9 | 19.3 | 20.1 | ||||
6 | 4 | 박주선 | 2,152 | 2,303 | 4,455 | 최고위원 |
12.2 | 22.7 | 19.6 | ||||
7 | 3 | 최재성 | 1,415 | 1,761 | 3,176 | rowspan=2 | |
8 | 17.4 | 14.6 | ||||
8 | 9 | 조배숙 | 802 | 436 | 1,238 | 여성 몫 최고위원 |
4.5 | 4.3 | 4.5 | ||||
합계 | style="text-align: left;"| | style="text-align: left;"| | style="text-align: left;"| | - |
6. 4. 민주당 제3차 임시 전당대회 (2011년 12월 11일)
2011년 12월 11일, 민주당 전당대회는 시민통합당,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의 통합을 의결했다.7. 역대 선거 기록
(비례대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