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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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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은 2004년 1월부터 11개월 동안 3명의 여중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집단 성폭행 사건이다. 울산과 창원에 거주하는 피해자들과 밀양과 창원 출신 가해자들이 연루되었으며, 3명에서 최대 24명의 고등학생이 범행에 가담하고 최소 44명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 초기 경찰의 미흡한 대응과 가해자 및 가족들의 2차 가해, 솜방망이 처벌 등으로 인해 사회적 공분을 샀다. 피해자들은 심각한 후유증을 겪었으며, 사건 이후에도 가해자들의 신상 공개와 2차 피해가 이어졌다. 2007년 서울고등법원은 경찰의 피해자 보호 의무 소홀에 대한 유죄를 선고했고, 대법원에서 확정되었다. 이 사건은 영화 '한공주'와 드라마 '시그널'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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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사건 개요
이름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로마자 표기Miryang-jiyeok yeojungsaeng jipdan ganggan sageon
한글밀양지역 여중생 집단 강간 사건
한자密陽地域女中生集團强奸事件
발생일2004년
위치경상남도 밀양시
유형성폭력
집단 강간
가해자남성 고등학생

2. 배경

2004년 1월부터 11월까지 경상남도 밀양시 지역 고등학생들과 기타 인근 지역 학생들이 여중생 자매 등을 약 1년간 집단 성폭행하고 금품을 갈취한 사건이다.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을 딜도 등 성기구로 고문하고, 동영상과 사진을 촬영하여 인터넷에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처음에는 41명의 가해자가 확인되었으나, 이후 75명이 추가로 드러나 총 100명이 넘는 인원이 연루되었다. 이들은 밀양공업고등학교, 밀양밀성고등학교, 밀양세종고등학교 등 밀양 지역 고등학교 3학년생들과 창원의 창원한백직업전문학교 학생, 김해시 고등학생 등이었다. 이들은 '밀양연합'이라는 일진 조직을 결성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일부는 과거 타 학생 폭행 및 강간 혐의로 구속된 전력도 있었다.

가해자들은 2004년 12월 6일부터 창원시, 밀양시, 울산광역시 등 30여 개 장소에서 체포되었다. 이들 외에도 범행에 동조, 가담, 목격했거나 범행을 도운 여학생들도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피해자들을 비난하고 가해자들을 옹호하여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었고, 이들의 신상정보는 인터넷에 유출되기도 했다.

이 사건은 가해자에 대한 미약한 처벌, 피해자에 대한 경찰의 비인권적 수사, 가해자 가족들의 협박 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2. 1. 사건 발생 당시의 사회 분위기

2004년 당시 한국 사회는 청소년 문제, 특히 학교 폭력과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었다. 이 사건은 2004년 1월부터 11월까지 발생했는데, 수능 부정 시험과 비슷한 시기에 터져 고등학생 윤리 교육의 문제점을 드러냈다.[36]

가해자들은 밀양시 지역 고등학교(밀양공업고등학교, 밀양밀성고등학교, 밀양세종고등학교)와 창원시의 직업전문학교(창원한백직업전문학교), 김해시 고등학교 출신으로, '밀양연합'이라는 일진 조직을 결성하여 활동했다. 이들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직업전문학교와 현장 실습을 나간 공장에서 만난 것으로 밝혀졌다.[36]

일부 가해자는 과거 타 학생 폭행 및 강간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었는데, 이는 당시 청소년 폭력 서클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가해자들 외에도 범행에 동조, 가담, 목격했거나 범행을 도운 여학생들이 있었으며, 이들 중 일부는 피해자들을 비난하고 가해자들을 옹호하여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었다. 이들의 신상정보는 인터넷에 유출되기도 했다.[36]

이 사건은 가해자에 대한 미약한 처벌, 피해자에 대한 경찰의 비인권적 수사, 가해자 가족들의 협박 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36] 특히, 일부 경찰관들이 피해 여중생들에게 막말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누리꾼들의 비판을 받았고, 2005년에는 인권위원회 등 여야 정치권이 진상 조사에 나섰다.

2. 2. 가해자들의 환경

피해자들은 울산과 창원에 거주했으며, 가해자들은 밀양과 창원 출신이었다.[1] 가해자들은 고등학교 폭력 조직원으로 추정되었지만, 이에 대한 증거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3][2]

이들은 첫 피해자인 14세 소녀와 전화로 만났다. 소녀가 이들을 방문했을 때 성폭행을 당했고, 그 장면은 협박을 위해 촬영되었다. 경찰에 따르면, 소녀는 3명에서 24명의 고등학생들에게 매번 최대 10번까지 강간당했다. 최소 44명의 소년이 11개월에 걸쳐 이 공격에 가담했다.[7][3]

소녀는 13세 여동생과 16세 사촌을 밀양으로 데려오라는 지시를 받았으며,[3] 사촌은 성폭행을 당했다. 최초 경찰 보고서에는 여동생도 성폭행을 당했다고 명시되어 있었지만, 신체적 폭행만 있었을 수도 있다.[2]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에게 돈을 갈취했다.[8]

자매의 이모가 경찰에 강간 사실을 신고한 후,[7] 소년 3명이 체포되었다. 피해자와 대중의 항의에 따라 다른 학생 9명이 체포되었고 29명이 기소되었다. 가해자 가족들은 피해자들을 위협하며 "지금부터 우리 아들을 경찰에 신고하는 것에 대해 조심하라"고 경고했다.[3] 한 가해자의 부모는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왜 우리가 피해자 가족에게 미안함을 느껴야 하는가? 왜 우리의 고통은 고려하지 않는가? 소녀들이 소년을 유혹하려 할 때 누가 유혹을 견딜 수 있겠는가? 그들은 딸들이 이런 종류의 사고를 피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가르쳤어야 했다"고 말했다.[8] 한 소녀는 가해자 부모들의 반복적인 방문과 언어 폭력으로 인해 학교를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4]

3. 사건 전개

2004년 1월부터 11월까지 경상남도 밀양시 지역 고등학생들(밀양공업고등학교, 밀양밀성고등학교, 밀양세종고등학교)과 창원시의 창원한백직업전문학교 학생, 김해시 고등학생 등 '밀양연합' 일진 조직원들이 여중생 자매와 그 사촌을 약 1년 동안 집단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았다. 이들은 피해 여학생 외에도 창원시 거주 여고생 2명 등을 집단으로 강간하고, 딜도 등 성기구를 이용해 고통을 주었으며, 카메라, 핸드폰, 캠코더 등으로 동영상과 사진을 촬영한 뒤, 발설하면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협박하였다.[36]

처음 피해자 최양(당시 14세, 울산광역시 중구)은 채팅으로 만난 김모군과 그의 소개로 최양 자매를 소개받게 된 박기범 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확인된 가해자는 세종고 10여 명, 밀성고 4명, 밀양공고 20여 명, 창원한백직업전문학교 1명, 김해지역 고교생 1명 등이었다. 가해자 중 일부는 다른 학생을 폭행하거나 강간한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기도 했다.[36]

2004년 12월 6일부터 경상남도 창원시, 밀양시, 울산광역시 내 30여 곳에서 가해자들이 체포되었고, 12월 7일 다른 가담자와 공범자들도 추가로 체포되었다. 처음에는 41명이었으나, 나중에는 75명의 추가 관련자가 드러났다. 가해자들은 1986년생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폭력 조직을 결성해 집단 성폭행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대학을 포기하고 직업전문학교와 현장 실습을 나간 공장에서 만난 것으로 밝혀졌다.[40]

3. 1. 원인

2003년 6월 울산광역시 중구에 사는 한 여중생(당시 만 14세)이 여동생의 실수로 전화를 잘못 걸어 밀양시의 한 남자 고등학교 3학년 학생 김성모 군(당시 만 17세)과 통화하게 되었다.[37] 김성모는 전화를 받은 후 "한번 만나자"며 여중생을 밀양으로 유인했다.[37]

몇 달 후인 2004년 1월 중순, 이 여중생은 채팅을 통해 알게 된 박형민 군(만 17세)과 연락하여 밀양시에 놀러 갔다가 그 지역 고등학생들에게 밀양시 가곡동의 한 여관에서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이후 가해 학생들은 피해 여중생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 ‘아빠한테 다 얘기한다!’라고 협박하고, 학교에 가야 해서 못 간다고 하면 집으로 전화를 걸기도 했다.

이러한 범행은 여중생이 김성모 군에게 잘못 전화를 걸면서 시작되었다. 김성모 군은 인터넷 채팅으로 여중생들과 연락하던 중 2004년 1월 최 양을 유혹해 밀양으로 유인한 후 두목 격인 박기범에게 소개했다. 박기범 등은 피해자를 둔기로 때린 뒤 밀양시 가곡동의 한 여인숙으로 데려가 집단 성폭행하고, 그 장면을 촬영하여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협박하였다. 이들은 실제로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려 문제를 일으켰다.

일본어 자료에 따르면, 2004년 1월 울산광역시 중구에 거주하는 여중생(14세)이 친구에게 연락하려다 휴대 전화로 밀양시의 남고등학생에게 잘못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끊으려 했지만, 대화에 호기심이 생겨 만나게 되었다.[14] 며칠 후, 한 살 아래의 여동생과 두 살 위의 사촌과 함께 밀양시에 가서 남고등학생과 만났다. 남고등학생은 밀양시 내 3개 학교로 구성된 "밀양 연합"의 리더에게 여학생 3명을 소개했다. 리더와 약 10명은 여학생 3명을 협박하고 때려 여인숙으로 데려가 집단 성폭행을 했다.

3. 2. 전개 과정

2004년 1월부터 11월까지 경상남도 밀양시 지역 고등학생들(밀양공업고등학교, 밀양밀성고등학교, 밀양세종고등학교)과 창원 한백직업전문학교 학생, 김해시 고등학생 등 '밀양연합' 일진 조직원들이 여중생 자매와 사촌을 약 1년 동안 집단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았다. 이들은 피해 여학생 최모양 외에도 창원시 거주 여고생 2명 등을 집단으로 강간하고, 딜도 등 성기구를 이용해 고통을 주었다. 또한 카메라, 핸드폰, 캠코더 등으로 동영상과 사진을 촬영한 뒤, 발설하면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협박하였다.[36]

처음 피해자 최양(당 14세, 울산광역시 중구)은 채팅으로 만난 김모군과 그의 소개로 최양 자매를 소개받게 된 박기범 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확인된 가해자는 세종고 10여 명, 밀성고 4명, 밀양공고 20여 명, 창원한백직업전문학교 1명, 김해지역 고교생 1명 등이었다. 가해자 중 일부는 타 학생 폭행 및 강간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기도 했다.[36]

가해자들은 2004년 12월 6일부터 경상남도 창원시, 밀양시, 울산광역시 내 30여개 장소에서 체포되었고, 12월 7일 다른 가담자와 공범자들도 추가로 체포되었다. 처음에는 41명이었으나, 나중에는 75여 명의 추가 관련자가 드러났다. 가해자들은 1986년생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폭력 조직을 결성해 집단 성폭행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대학을 포기하고 직업전문학교와 현장 실습을 나간 공장에서 만난 것으로 밝혀졌다.[40]

2003년 6월 울산광역시 중구에 거주하는 여중생 최모 양(당시 만 14세)은 여동생이 전화번호를 잘못 눌러 통화하면서 밀양의 남자고등학교 3학년 학생 김성모 군(당시 만 17세)을 알게 되었다. 김성모는 "한번 만나자"며 최 양을 밀양으로 유인했다.[37] 이들은 '밀양연합'이라는 학교폭력 서클을 결성해 문신을 새기고 집단으로 지역을 배회했다.[38]

2004년 1월 중순 밀양시 가곡동에 있는 여인숙에서 처음 윤간이 이루어졌다.[38] 이후 밀양시내 여인숙과 모텔, 학교 운동부 버스 안, 놀이터 등지에서 집단성폭행과 금품 갈취가 이어졌다.[39] 같은 해 1월 중순, 최 양은 채팅을 통해 가해자 박형민군(만 17세)과 연락하여 밀양시내에서 만나, 밀양시 가곡동에 있는 여관에서 집단성폭행을 당했다. 가해 학생들은 최양 집으로 전화를 걸어 협박하고, 학교에 가야하기에 못 간다고 하면 집으로 전화를 걸기까지 했다.

이들의 범행은 김성모(17)군에게 김양이 전화를 잘못 건 데서 시작됐다. 김성모 군은 인터넷 채팅으로 여중생들과 연락 중 2004년 1월 최양을 유혹해 밀양으로 유인한 후 박기범에게 소개했고, 피해자를 둔기로 때린 뒤 밀양시 가곡동의 한 여인숙으로 데려가 집단 성폭행하고, 성폭행 장면을 촬영한 뒤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협박하였다. 박기범(18)군 등 밀양 지역 3개 고교 학생 41명은 최양의 언니까지 유인해 1년간 성기구 등을 이용해 집단 성폭행했고, 피해 여중생은 성폭행 충격으로 자살을 기도하는가 하면 산부인과 치료를 받다가 정신과 진료도 받게 됐다.

이들은 '밀양연합'이라는 유사 조직을 결성하고 있었다. 2004년 12월 13일 경찰은 '밀양연합'이라는 서클은 없었으며, 이번 사건 연루 학생들은 조직폭력배가 아니라 직업훈련소를 함께 다니면서 서로 알게 된 친한 친구들의 단순 모임이었는데, 폭력조직인 것처럼 과장되었다고 보았다.[40] 그러나 '밀양연합'은 실제로 존재하는 단체였다.

지역사회와 학교 등에서는 '밀양연합'의 존재를 부인했다. 그러나 2005년 3월 일부 언론이 학생들을 통해 재조사한 결과 '밀양연합'의 존재는 사실로 드러난다.[41] '밀양연합'은 학교를 주름잡는 아이들의 친목단체이며, '밀양연합'이라고 하면 아무나 못 건드린다는 진술이 있었다.[41]

2004년 1월 중순 밤, 밀양시 가곡동 소재 한 여인숙에서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피해자 A양을 윤간하는 등 11월 말까지 총 11회에 걸쳐 여관과 학교 놀이터, 공원 등지에서 상습적으로 윤간과 폭행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38] 성폭행을 당한 A양은 수면제 20알을 먹고 쓰러져 이틀만에 깨어나기도 했으며, 집단 성폭행 후유증으로 몸에 이상이 생겼다.[39]

성폭행은 1년여 지속되면서 가해 학생들 수는 점점 늘고, 쇠파이프로 구타하거나 옷을 벗긴 채 휴대전화로 촬영하여 공갈 협박을 했다. 이후 최 양에게 언니를 불러내지 않으면 성폭행 사실을 인터넷과 학교 등에 공개하겠다고 협박했다. 일부 가해자와 가해자의 여자친구들까지 나타나 성폭행 장면을 캠코더와 핸드폰으로 촬영했고, 촬영장면에는 얼굴과 신체가 선명하게 나타났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름까지 실명으로 말하는 등 신원을 알아볼 수 있었다. 가해자들 및 가해자의 여자친구들은 피해자 자매에게 부모에게 말하면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며 협박하여 피해자 자매는 아무 말도 못했다. 여기에 피해자들의 인적사항을 묻다가 고종사촌인 경상남도 창원시에 사는 노모 양의 존재를 알게 되어 노모 양까지 불러냈다.

밀양으로 온 A양과 사촌언니인 B양(고1)을 박기범에게 소개했고, 박기범 등 12명이 최양을 밀양시 가곡동의 한 여인숙으로 데려가 마구 때린 뒤 집단 성폭행했다.[37] 박기범 등은 또 성폭행 장면을 촬영한 뒤 A양에게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협박, 집단 성폭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37] 그러나 가해자와 가해자의 여자친구들은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렸고, 가해자들의 신상은 물론 피해자들의 신상까지 인터넷에 확산되었다.

가해자들과 가해자의 여자친구들이 올린 동영상들과 사진들은 인터넷에 확산되고 일본, 중국, 미국 등지로도 확산되었다. 이들 고교생들은 다른 여고생을 성폭행하는가 하면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해 협박수단으로 이용했다.[31] 성기구를 이용해 최대 4~10명까지 집단 성폭행하는 등 엽기적 성범죄도 저질렀다. 경찰 관계자는 "극도의 불안감과 수치심에 이들이 시키는 대로 여관과 놀이터, 자취방 등으로 끌려다니며 11차례에 걸쳐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며 "박양 등은 수치심에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하는 등 아직 성폭행 후유증에 산부인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31]

최 양 자매와 노 모양은 부모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특히 첫 피해자인 최모 양(14)의 정신적 피해는 심했다. 그러나 이들은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렸고, 이는 순식간에 확산되었다. 가해자들은 밀양시내 소재한 밀양세종고등학교, 밀성고등학교, 밀양공업고등학교와 대학을 포기하고 진학한 창원의 모 직업전문학교 재학생들이었다. 이들은 속칭 지역 '일진'으로 통하는 학생들과 지역 유지의 아들들이었고, '밀양연합' 조직원 외에 일부는 현장 실습을 나간 공장에서 만난 사이이기도 했다.

가해 학생들은 쇠파이프로 구타를 하거나 옷을 벗긴 채 휴대전화로 촬영을 하는 등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록됐다.[42] 또한 성기구를 구해서 여중생들을 성폭행했다. 성 기구를 동원한 집단 성폭행을 하고, 그들은 최 모양 자매에게“불러서 오지 않으면 인터넷에 사실을 공개하고 학교에 소문을 내겠다”며 협박했다.[43] 그리고 이 장면은 준비된 캠코더와 카메라, 핸드폰 등에 그대로 담겼다.

경찰 관계자는 “붙잡힌 학생들이 전혀 범죄 의식 없이 성인 포르노 사이트의 흉내를 냈다는 말에 크게 놀랐다”며 “성인 범죄와 성인 포르노 사이트에 완전 노출된 극에 달한 청소년 성범죄의 한 전형”이라 밝혔다.[39]

경찰은 창원과 밀양 등지에서 여중생 2명을 20여 명이 집단 성폭행한 혐의를 잡고 수사를 확대했다.[31] 그 결과 2명의 창원시 거주 여고생이 이들에게 강간당했으나 신상 노출을 우려하여 수사협조를 거부했다.

경찰은 집단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는 모두 5명으로 여중생이 2명이고 여고생이 3명이라고 밝혔다. 첫 피해자인 울산의 한 여중생은 집단 성폭행을 당했는데도 신고를 하지 못했다.[44] 이들은 자매가 신고하지 못하게 인터넷, 학교, 부모에게 성폭행 사실을 알린다고 협박했고 이후 2004년 11월까지 집단으로 성폭행했다. 이들은 같은 방법으로 창원에서도 여중생을 유인해 20명이 집단 성폭행하는 등 수십 차례에 걸쳐 인터넷 채팅으로 여중생을 유인해 성폭행하고 협박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이때는 모두 100만 상당의 금품을 빼앗은 것으로 밝혀졌다.

첫 피해자인 최모 양의 이상 행동을 확인한 최모 양 자매의 이모인 강모 씨가 꾸준히 관심을 갖고 대화, 설득을 한 끝에 2004년 12월 경찰서에 신고하게 됨으로써 알려졌다. 그러나 이미 인터넷을 타고 확산된 동영상과 사진들을 통해 피해자들의 신상은 노출되어 소문이 확산된 뒤였다.

경찰관은 “이들이 지금까지 유인한 여중생 5명을 무조건 집단 성폭행하는 등 의식을 잃은 행동을 해왔다”며 “또 두목과 고문을 두고 나름의 행동 강령을 갖는 등 폭력 조직화한 것으로 판단돼 범죄단체 혐의 등에 대해 추가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덧붙였다.[39] 그 밖에 창원시 거주 여고생 2명도 이들에게 당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양은 결국 경찰 수사 직후인 2005년 1월 어머니와 함께 도망치듯 서울특별시로 올라왔고 극심한 불안 증세와 공황장애 등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피해자 A양은 집단성폭행 후유증을 앓으면서 '죽고 싶다'며 수면제 20알을 먹고 자살을 기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38] A양은 이후 울산 시내 산부인과에서 치료를 받고 자살까지 시도하는 등 불안에 떨고 있었으며 이를 이상하게 여긴 A양의 이모가 설득 끝에 폭행 피해 사실을 알아내고 경찰에 신고했다.[37] 2004년 11월 울산의 여중생 자매 가족의 신고를 받고 비공개로 수사를 하다 2004년 12월 7일 밀양 지역 3개 고교생 35명 등 10대 청소년 41명을 피시방 등에서 무더기로 연행하면서 밖으로 드러났다.[44]

12월 7일 울산 남부경찰서는 최모(14)양 등 여중생 5명을 마구 때리고 집단 성폭행한 혐의(특수강간.강도강간 등)로 경남 밀양시 소재 학교 폭력조직 '밀양연합' 소속 고교생 41명을 붙잡아 이중 박기범(18)군 등 17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이용현(18)군 등 24명은 불구속 입건했다.[45]

박기범 등은 2003년 11월 하순 창원시에서도 같은 방법으로 여중생 2명을 유인해 20여명이 집단 성폭행하는 등 2004년 1월부터 11월까지 수십차례에 걸쳐 인터넷 채팅을 통해 알게 된 여중생을 유인, 집단 성폭행하고 모두 100만 상당의 금품을 빼앗은 혐의[45] 가 있었다. 드러난 범죄 횟수만 11회였다. 이들은 속칭 '일진'으로 통하는 이들이었고 '밀양연합'이라는 폭력 조직을 결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학교와 교육당국 등에서는 폭력조직은 없었다고 대응하다가 일부 학생들과 졸업자들이 '밀양연합', '마창연합'을 비롯한 몇개의 단체가 있음을 경찰과 언론에 증언하면서 거짓말을 한 것이 드러난다.

일본중국 등으로 가해자들과 가해자들의 여자친구들이 촬영한 동영상과 사진들이 확산되면서 일본, 중국 등 각국의 뉴스에도 이 사건이 실시간으로 보도되게 되었다.

당초 밝혀진 41명의 가해자 외에도 70여 명의 추가 가해자가 밝혀졌다. 울산 남부경찰서는 12월 7일 여중고생 5명을 마구 때리고 집단 성폭행한 혐의(특수강간 등)로 이미 구속·불구속된 41명 외에 성폭행 당시 망을 보거나 범행에 직접 가담한 30~70여명이 더 있다는 정황이 포착돼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9일 밝혔다.[36] 그러나 70여 명으로 알려진 추가 가해자들에 대한 수사는 흐지부지 됐다.

경찰은 “박기범 등 17명에 대해선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오(18)군 등 24명은 불구속 입건했으며 용의자 75명도 조사하고있다”고 밝혔다.[44] 때문에 앞으로 조사결과에 따라선 성폭행 가담자가 116명까지 불어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은 41명만 보도했고 경찰이 75명에 대해 제대로 조사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44] 75명의 공범자들은 처벌이나 불이익을 받지 않고 수사는 흐지부지되었다.

또한 5명의 여중생 외에 경상남도 창원시의 모 여자고등학교 학생 2명의 추가 피해자도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 2명의 여고생 측에서 자신의 신상 유포 우려와 사건 당시의 후유증으로 인해 다시 떠올리는 것에 대한 극도의 불안감을 느껴 안타깝게도 수사에 협조할 상태가 아니었고, 추가 범죄 조사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경찰 관계자는 “최초 피해자인 최 양이 경남 창원의 여고생 2명도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을 해 조사하고 있다”며 “피해자들이 피해신고를 해 오지 않아 수사에 애를 먹고 있다”고 밝혔다.[36]

3. 3. 체포

2004년 12월 6일부터 경상남도 창원시, 밀양시, 울산광역시 등지에서 가해자들이 체포되기 시작했다.[36] 12월 7일에는 공범들도 추가로 체포되었다.[36] 당초 41명으로 알려졌던 가해자 수는 이후 75명이 추가로 드러나 총 116명에 달했다.[44]

경찰은 박기범 등 17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오 모 군 등 24명은 불구속 입건했으며, 용의자 75명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44]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은 41명만 보도했고, 75명에 대한 경찰 수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흐지부지되었다.[44]

창원시에 거주하는 여고생 2명이 추가 피해자로 확인되었으나, 이들은 신상 유포 우려와 사건 후유증으로 인해 수사에 협조하지 않았다.[36]

울산 지역 6개 여성·시민단체는 성명을 내어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포르노 사이트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요구했다.[36] 경남 밀양경찰서는 강력 범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형사계 직원 13명 가운데 9명을 교체했다.[36] 정수일 밀양경찰서장은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문을 싣고, 학교 폭력 예방 활동을 강화하겠다고 다짐했다.[36]

2004년 12월 13일, 시민단체와 여성단체들은 울산남부경찰서를 항의 방문하여, 경찰의 부적절한 수사 관행과 피해자 인권 침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64] 12월 14일, 울산남부경찰서는 기존 수사팀을 해체하고 여경을 포함한 새 수사팀을 편성하여 사건을 전면 재조사하기로 했다.[65]

경찰의 부적절한 수사 방식은 촛불 시위로 이어졌고,[5] 피해자들은 정신 병원에 입원하여 정신 의학 치료를 받아야 했다.[8] 2007년 8월, 서울고등법원은 밀양 경찰관들에게 피해자 보호 의무 소홀에 대한 유죄를 선고하고, 피해자 측에 5000만을 배상하라고 명령했다.[6] 2008년 6월, 대한민국 대법원은 배상액을 7000만으로 확정했다.[7]

검찰은 피고인 대부분을 소년 법원으로 송치하거나 기소를 취하했다. 10명은 집단 성폭행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판사들은 가해자들의 어린 나이 등을 이유로 혐의를 기각하고 소년 법원으로 보냈다.[8] 결국 5명의 용의자만이 소년원에 송치되었고, 형사 기소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5]

4. 학교와 당국의 태도

경남도교육청과 밀양시교육청은 해당 학교에서 대책회의를 가졌다. 밀양시교육청 관계자는 "고등학교는 도교육청에서 관리하는데, 지근 지역 분위기가 말이 아니다"면서 "여러 가지 상황을 파악한 뒤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38] 박익상 전교조 밀양지회장은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았고,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오늘 저녁 집행부 회의를 소집해 놓았으며, 공식 입장을 밝히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 밝혔다.[38]

가해자들 중에는 자신의 학교의 전교 부회장인 박형민과 성적 상위권인 학생, 학급 임원 등도 있었다.

가해자들이 결성한 밀양연합이라는 써클의 존재가 언론에 보도되자 학교, 경찰 등에서는 이를 은폐하려 하였다. 가해자 대부분은 밀양연합이란 말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항변했다. 김성모는 경찰에서 “친한 친구들과 자주 어울려는 다녔어도 어떤 조직도 만든 적이 없었다”며 손사래를 쳤다.[44] 박기범도 “몸에 장난삼아 새긴 조그만 문신을 보고 담당형사가 ‘밀양연합 아느냐’고 물었다”며 “잘못은 했지만 등에 호랑이 문신을 한 진짜 폭력배와 같이 취급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고 말했다.[44]

교사들 역시 조직폭력 집단의 존재는 없다고 밝혔다. 10년 이상 밀양시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ㅂ씨는 “고작 인구가 11만명인 밀양시에서 지역 고교 4곳을 아우르는 범죄조직이 있다면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았을 것”이라며 “학생들이 분명 잘못은 했지만 언론이 마녀사냥식 보도로 학생들을 조폭으로 몰고 있다”고 비난했다.[44] 가해 학생을 한때 지도했다는 ㅈ씨는 “학생들이 조폭으로 몰리면서 교사들은 물론 1, 2학년 학생들까지 풀이 죽어 수업 분위기가 말이 아니다”며 “학교 안에 폭력 동아리가 있다면 가만 놔둘 학교가 어디 있겠느냐”고 목청을 높였다.[44]

경찰 관계자도 “일부 몇몇 학생이 폭력조직과 연루됐을 가능성은 있으나 가해 학생들이 밀양시 지역 고교들을 묶은 밀양연합 조직원이란 증거는 아직 없으며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본다”고 실토했다.[44] 학교와 경찰측의 주장과는 달리 2005년 3월 일부 학생들이 밀양연합이란 조직에 대해 증언했다.[41]

한 언론의 취재 결과 각 학교 싸움꾼들의 지역 모임으로서 밀양연합은 존재하고 있었다. 다음카페나 세이클럽 등에 ‘밀양연합‘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는 홈페이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밀양시지역 ㅅ고등학교 한 재학생은 “밀양연합은 학교를 주름잡는 아이들의 친목단체다. 밀양연합이라고 하면 아무나 못 건드린다. 청도연합이나 창원연합하고 비슷하다. 요즘 웬만한 지역에는 다 연합이 있다”라고 말했다.[41] 인터뷰가 있기 전날 만난 해당 학교 ‘자칭 연합’ 소속 학생은 “오늘도 한 녀석과 싸움을 했다”라며 얼굴에 생긴 상처를 보여주었다. 이 학생은 “밀양시에는 연합 소속이 40~100명쯤 되는데 정확히 누가 회원이다 아니다라는 말은 못한다”라고 답했다.[41]

5. 일부 가해자, 가해자 가족들의 태도

2004년 12월 7일부터 12월 10일경까지 가해자 부모들은 피해자와 그 부모들을 찾아가 협박과 회유를 시도했다.[33] 일부 가해자 부모는 피해자 부모에게 전화하거나 타인을 통해 협박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논란이 되었다.[36]

가해자들은 경찰서에서도 반성하지 않고 대질심문 때 피해자들에게 폭언을 했다. 12월 7일 남부경찰서에서 가해자 가족들에게 둘러싸인 피해자들은 "이렇게 하고 제대로 사나 보자. 몸조심 해라"는 협박을 받았다.[33]

가해자의 여자친구들은 관련 동영상을 보며 웃고, 욕설과 비웃음을 퍼부었으며, 경찰 조사와 인터넷에는 피해자들이 좋아서 한 행동이라고 증언했다. 이들은 캠코더와 핸드폰으로 폭행 장면을 촬영했고, 일부는 가해자들과 함께 성폭행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46]

2005년 1월 7일, 대질 조사를 위해 경찰에 출두한 피해 여중생들은 경찰서 앞에서 일부 가해자 가족에게 “이렇게 해놓고 잘사나 보자. 몸조심해라”는 협박을 받았다.[36] 여중생들은 “가해자 가족들이 사과는 못할 망정 오히려 큰 소리를 쳐 화도 나고 두려웠다”며, “특히 남학생 대부분이 풀려나와 보복 당할까 겁이 난다”고 말했다.[36]

정신과 치료를 받던 중, 알코올 중독자인 최 양의 아버지는 가해 학생 부모들과 함께 최 양 앞에 나타나 “합의서가 있어야 한다”며 합의를 종용했다.[42] 일부 가해자 부모는 “이렇게 신고해놓고 잘 사나 보자, 몸조심해라.”, “뒷일이 걱정되지 않느냐?”고 협박했다.[42]

한 가해자 부모는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왜 우리가 피해자 가족에게 미안함을 느껴야 하는가? 왜 우리의 고통은 고려하지 않는가? 소녀들이 소년을 유혹하려 할 때 누가 유혹을 견딜 수 있겠는가? 그들은 딸들이 이런 종류의 사고를 피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가르쳤어야 했다"고 말했다.[8] 가해자 부모들의 반복적인 방문과 언어 폭력으로 인해 한 피해 소녀는 학교를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4]

6. 사건 이후

2004년 1월부터 11월까지 경상남도 밀양시 지역의 고등학생들과 기타 다른 지역의 학생들이 여중생 자매 등을 약 1년간 집단 성폭행하고 금품을 갈취한 사건이다. 가해자들은 딜도 등의 성기구를 사용하고, 동영상과 사진을 촬영하여 인터넷에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이 사건은 가해자들과 그들의 여자친구들이 인터넷에 동영상과 사진을 유포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36]

처음에는 41명의 가해자가 확인되었으나, 이후 75명이 추가로 드러나 총 100여 명이 연루되었다. 가해자들은 대부분 1986년생으로, 일찌감치 대학을 포기하고 직업전문학교나 현장 실습을 통해 만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중 일부는 과거 폭력 및 강간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었다.[36]

가해자들은 2004년 12월 6일부터 경상남도 창원시, 밀양시, 울산광역시 등 30여 곳에서 체포되었고, 12월 7일 추가 가담자 및 공범자들도 체포되었다. 그러나 연루자 100여 명 중 3명만이 10개월 형을 받았고, 추가 가해자 75명에 대한 수사는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아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었다.[36]

사건 당시 망을 보거나 범행을 도운 여학생들도 있었으며, 이들 중 일부는 피해자들을 비난하고 가해자들을 옹호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어 신상정보가 유출되기도 했다. 피해자는 여중생 4명, 여고생 3명 등 총 7명으로, 대부분 밀양시 인근 지역인 울산광역시창원시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 사건은 경찰의 비인권적 수사, 가해자 가족들의 협박, 그리고 가해자들에 대한 미약한 처벌로 인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야기했다. 특히 일부 경찰관들이 피해 여중생들에게 막말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2005년 인권위원회 등 정치권이 진상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36]

이후 이 사건은 경미한 처벌 논란, 경찰 수사 과정의 문제점, 주변의 미숙한 대응, 유언비어 유출 및 기자들에 대한 사이버 테러, 술좌석에서의 경찰관 망언, 검찰의 개입, 정부기관의 대처, 후유증 등의 문제점을 야기하며 한국 사회의 성범죄에 대한 인식과 대응 방식에 대한 심각한 질문을 제기했다.

6. 1. 사건 대응 초반

2004년 12월, 피해자 최모 양의 이상 행동을 확인한 최모 양 자매의 이모가 꾸준히 대화와 설득을 한 끝에 경찰에 신고하면서 사건이 알려졌다.[39] 그러나 이미 인터넷을 통해 확산된 동영상과 사진들로 인해 피해자들의 신상은 노출된 뒤였다.

담당 경찰관은 범인식별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의자 41명과 피해 여중생들을 세워놓고 불과 5미터 앞에서 범인을 확인하라고 지시했다.[47] 또한, 여경에게 수사를 받게 해달라는 피해자 가족들의 요청은 거부되었다.[47]

경찰은 피해자들에게 "범죄자에게 묻듯이 꼬치꼬치 캐묻고, 오히려 가해자들 편을 드는 것 같아서 너무 싫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피곤해서 건성으로 대답하면 "동생과 짜고 이야기하는 거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고,[48] "다른 애들은 안 당했는데 왜 너만 당했다고 생각하니?", "나 같으면 한 번 당한 이후로는 밀양 쪽은 쳐다보기도 싫을 것 같은데 어떻게 또 갔어?"라는 질문도 받았다고 한다.[48]

2005년 1월 3일, 피해자 중 한 명은 서울특별시에 있는 병원에 입원했다.[48] 담당 의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주요 우울증', '광장공포증을 동반한 공황 장애', '범불안장애', '식이장애' 등 5가지 병명을 진단했고,[48] 전문적인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수준이었다.[48]

연세대학교 신의진 교수는 "그녀는 '세상에 이용당했다', '보호해 주지 않았다'며 사회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 퇴원할 때도 그녀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이 심했지만, 보호자의 친권이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보호가 필요하다고 말해도 퇴원을 막을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6. 2. 주변의 미숙한 대응

주변 사람들과 사회의 미숙한 대응은 피해자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가해자들의 부모들은 피해자들을 찾아가 협박과 회유를 일삼았고[33], 일부는 "왜 우리가 피해자 가족에게 미안함을 느껴야 하는가?"라며 뻔뻔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8] 심지어 가해자의 여자친구들은 동영상을 보며 웃고 욕설을 퍼붓는가 하면, 피해자들이 좋아서 한 행동이라는 억지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도 피해자들은 인권 침해를 경험했다. 남성 경찰관은 사건 당시의 부끄러운 상황을 자세히 묻는 것은 물론, "다른 아이들은 폭행당하지 않았는데, 왜 너만 폭행당했다고 생각하느냐"는 등 비꼬는 질문까지 던졌다.[26]

학교와 지역 사회 역시 피해자들을 외면했다. 학교들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학생은 받기 어렵다'며 전학을 거부했고, 한 가해 학생의 어머니는 피해자가 새로 전학 간 학교까지 찾아와 탄원서를 써달라며 괴롭혔다.[4] 결국 피해자는 학교에 성폭행 피해자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휴학 후 전화번호를 바꾸고 이사해야 했다.

가해자들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데 그쳤다. 연루자 100여 명 중 단 3명만이 10개월 형을 받았을 뿐이며, 추가 가해자 75명에 대한 수사는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36] 검찰은 소년 20명을 처벌 대상으로 삼았으나, 이 중 10명을 소년부에 송치하여 사실상 전과가 남지 않도록 배려했다. 최종적으로 5명만이 보호 처분을 받아 소년원에 수용되었고, 나머지는 처벌 없이 석방되었다. 학교 측의 처벌 역시 3일간의 교내 봉사 활동에 불과했다.[28]

결국 가해자들은 아무런 형벌도, 전과도 남지 않은 채 사회로 나갔다. 반면 피해자는 심각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다 가출하기에 이르렀다.[28] 이러한 현실은 한국 사회가 성범죄에 대해 얼마나 관대한지를 보여주는 씁쓸한 단면이다.

6. 3. 여론

2004년 12월 7일 사건이 처음 보도되자, 인터넷에서는 10대들의 범죄에 경악하며 교육 현실을 비판하고 가해자들을 엄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49] 12월 8일, 가해자 41명 가운데 3명에 대해서만 구속영장이 신청되었다는 보도가 나오자 네티즌들은 "전원 구속하라"며 경찰을 비판했다.[49]

12월 9일, '난남자다'라는 네티즌 등 여러 네티즌이 가해 고교생 41명의 이름과 개인 홈페이지 주소를 인터넷에 공개했고, 이들이 평소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 10여 장도 함께 올렸다.[50] 일부 학생들은 얼굴을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는 사진과 휴대전화 번호까지 유출되었다.[50] 공개된 사진에는 골목길에서 집단으로 담배를 피우는 장면, 함께 여행 가서 찍은 사진, 경찰관과 함께 찍은 사진 등이 있었고, 일부 가해 학생들의 여자친구로 추정되는 학생들의 사진과 이름도 함께 공개되었다.[50]

이러한 신상 정보 공개는 인터넷상에서 빠르게 확산되었고, 일부 네티즌들은 ‘많은 사람에게 알려서 이들을 응징하자’며 독려하기도 했다.[51] 그러나 가해자가 아닌데도 가해자로 몰리는 피해자가 발생하면서 문제가 되었다.[34] 12월 13일, 울산지방경찰청은 인터넷에 피의자가 아닌데도 사진이 게재되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됨에 따라, 사진을 올리거나 거짓 사실을 유포한 네티즌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34]

일부 가해자들과 가해자의 여자친구들이 캠코더와 핸드폰으로 성폭행 장면을 촬영한 동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하면서, 12월 9일 무렵에는 인터넷에 동영상이 널리 확산되어 있었다. 한국 국내에서는 가해자들과 가해자들의 여자친구들이 올린 동영상과 네티즌들이 유포한 가해자 신상 정보는 모두 삭제되었으나, 일부 동영상은 일본으로 유출되었고[50] 미국 등으로 확산되었다.

언론들의 미숙한 대응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언론사들의 미숙한 대처로 유언비어가 유포되고, 억울한 남학생들이 가해자로 몰려 비난받는 일이 발생했다.

6. 4. 경찰 수사 과정에서의 문제점

경찰은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수사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다. 우선, 피해자 보호에 소홀했다. 피해자들은 여성 경찰관에게 조사를 받기를 원했지만, 경찰은 이 요청을 무시했다.[5] 또한, 범인 식별 과정에서 피의자들과 피해자를 한 공간에 세워놓고 범인을 지목하게 하여 피해자들에게 수치심과 보복에 대한 두려움을 안겨주었다.[47]

경찰은 피해자들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한 경찰관은 피해자들에게 "너희가 밀양 물 다 흐려놨다", "내 딸이 너희처럼 될까 겁난다"와 같은 폭언을 했다.[5] 다른 경찰관은 "다른 애들은 안 당했는데 왜 너만 당했다고 생각하니?", "(밀양에 간 적이 있다는 피해자의 말에) 나 같으면 한 번 당한 이후로는 밀양 쪽은 쳐다보기도 싫을 것 같은데 어떻게 또 갔어?"와 같은 질문을 하여 피해자들을 더욱 힘들게 했다.[48]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관은 노래방에서 도우미 여성에게 피해자의 실명을 언급하며 비하 발언을 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63]

경찰의 부실 수사와 사건 축소 의혹도 제기되었다. 최초 41명으로 알려졌던 가해자 수는 이후 75명이 추가로 드러났지만, 경찰은 추가 가해자들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않았다.[36] 또한, 구속된 피의자 수도 극소수에 불과했고, 대부분 훈방 조치되거나 가벼운 처벌을 받는 데 그쳤다.[36]

피해자들은 경찰서에서 가해자 가족들로부터 "이렇게 하고 제대로 사나 보자. 몸조심 해라"라는 협박을 받기도 했다.[33] 이러한 경찰의 부실 수사, 피해자 보호 소홀, 사건 축소 의혹, 그리고 인권 침해 행위는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6. 5. 유언비어 유출, 기자들에 대한 사이버 테러

언론의 미숙한 대응은 사건의 심각성을 더했다. 유언비어가 유포되면서 엉뚱한 남학생들이 가해자로 몰려 비난받는 일이 발생했고, 이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나왔다.[34][51]

2004년 12월 9일부터 인터넷에는 가해자가 아닌 사람들의 사진이 유포되기 시작했다. 밀양지역 고등학교와 학부모들은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 속 인물들이 실제 사건과 관련 없는 학생들이라고 밝혔다.[51] 울산지방경찰청은 사진을 올리거나 거짓 사실을 유포한 네티즌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34]

이러한 상황은 네티즌들의 분노를 일으켜, 일부 네티즌들은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의 미니홈피를 찾아가 비난하는 등 사이버 테러를 가하기도 했다.[51] 12월 10일에는 "<집단 성폭행 관련 인터넷 사진 사실과 달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도되었는데, 이 기사를 쓴 기자 역시 네티즌들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51] 네티즌들은 기자의 미니홈피에 몰려가 비난성 글을 남겼다.[51]

이처럼 가해자가 아닌 사람이 가해자로 지목되어 매도당하고, 유언비어가 확산되는 상황은 기자들과 언론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다. 이는 언론의 신중하지 못한 보도와 인터넷 여론의 마녀사냥식 행태가 결합하여 발생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51]

6. 6. 술좌석에서의 경찰관 망언

사건을 수사하던 일부 경찰관들은 2004년 12월 8일 오전 5시쯤 한 노래방에서 도우미 여성에게 피해 여중생의 실명을 거론하며 "누구와 닮았네"라며 폭언을 했고, 함께 온 일행이 "밥맛 떨어진다"고 하자 "그럼 동생 얘기를 할까요"라며 다시 실명을 거론하는 등 망언을 했다.[63] 이러한 사실은 당시 노래방 도우미로 있던 여성 중 피해자 가족과 친한 여성이 증언하면서 알려졌다.[63]

'밀양 고교생 여중생 집단성폭행 사건 대책위원회'는 울산남부경찰서장실을 항의 방문하여, 첫 신고를 받은 경찰관 등이 노래방에서 도우미들과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피해 여중생의 이름을 거론하며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비하 발언을 했다는 제보가 접수되었다고 밝혔다.[34] 대책위는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건 피해자와 경찰의 신뢰 관계가 처음부터 무너진 상태에서 편파적인 수사를 벌인 것이라며 철저한 진상 조사를 촉구했다.[34]

이에 울산남부경찰서12월 14일 밀양 고교생의 여중생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기존 4명의 강력계 수사팀 전원을 해체하고 여경을 포함한 6명의 새 수사팀으로 보강, 편성했다.[65] 경찰은 피해자 인권 보호를 소홀히 한 점을 인정하고, 여경 1명이 포함된 새 수사팀을 편성해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을 전면 재조사하기로 했다.[65]

2007년 8월, 서울고등법원은 밀양 경찰관들에게 피해자 보호 의무 소홀에 대한 유죄를 선고하고, 피해자 2명과 그 가족에게 총 5000만의 손해 배상을 명령했다.[6] 이 결정은 2008년 6월 대한민국 대법원에서 유지되었고, 배상액은 7000만으로 결정되었다.[7]

6. 7. 검찰의 개입

울산지방검찰청은 여중생 성폭행 사건을 전담할 특별수사팀(팀장 강태순 부장검사)을 구성하고, 여검사 2명을 포함한 7명의 팀원을 편성했다. 특별수사팀은 피해자 인권 보호와 함께 경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인권침해 부분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66]

검찰은 피고인 대부분을 소년법원으로 송치하거나 기소를 취하했다. 10명은 집단 성폭행 혐의로 공식 기소되었으나, 2년에서 4년의 징역과 3년의 집행유예를 구형받았다. 판사들은 가해자들의 어린 나이와 일부가 이미 대학에 입학했거나 직장을 구했다는 점을 고려하여 이들 10명에 대한 혐의를 기각하고 소년 법원으로 보냈다.[8]

이러한 결정에는 피해자 중 한 명의 아버지가 상당한 금액을 받고 가해자 중 일부와 관대한 처분을 탄원하기로 합의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그는 피해자의 어머니와 3년 전 가정폭력으로 이혼했지만, 딸에 대한 친권을 유지하여 딸을 설득해 합의를 받아들이게 했다.[8] 결국 5명의 용의자만이 소년원에 송치되었고, 형사 기소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5] 이는 미흡한 처벌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6. 8. 정부기관의 대처

2004년 12월 13일, 여성부와 국가인권위원회는 밀양 현지에 조사단을 파견했다.[63] 여성부는 정책보좌과와 인권복지과 서기관을 현지에 보내 피해자 가족 및 울산 소재 성폭력상담소 등 관련 단체를 방문하여 사건 관련 필요한 조치를 논의하고, 피해자 지원이 충분히 이루어졌는지 확인했다.[63]

국가인권위원회는 별도 조사팀을 보내 경찰 수사 과정의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직권조사를 실시했다. 특히 피해자 신원 노출, 부적절한 조사로 인한 피해자의 심리적 모멸감 및 성적 수치심 유발 등에 대해 집중 조사했다.[63] 인권위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부당 수사와 관련해 총 29건의 진정이 접수되었고, 수사 기관에 개선을 권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에서 보듯 실제 수사 과정에서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아 권고 내용 이행 상태를 점검하고 그 이행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63]

6. 8. 1. 법원의 판결

2007년 3월 18일 서울고등법원 민사 26부(강영호 부장판사)는 밀양 성폭행 피해자 경찰의 모욕적 수사는 위법한 공무집행이라며 자매에게 각각 3000만과 1000만, 피해자 어머니에게 1000만을 배상할 것을 판결하였다.[67] 2008년 6월 16일 대법원 1부(주심 전수안 대법관)는 이 원심을 확정하였다.[68]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경찰관이 원고들에게 ‘밀양물 다 흐려놨다’는 등의 말을 한 것은 공무원의 직무집행 행위이거나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행위로, 원고들이 모욕감과 수치감을 느꼈을 게 명백하다고 밝혔다.[69] 또한 담당 경찰관이 노래방 도우미에게 피해자의 피해사실을 누설해 피해자에게 정신적 고통을 안겨줬다는 점도 감안되었다.[47]

대법원은 "경찰이 범인식별실을 사용하지 않고 공개된 장소에서 피의자를 지목하도록 한 것은 직무상 의무를 소홀히 해 원고들에게 불필요한 수치심과 심리적 고통을 느끼게 한 행위로서 '수사편의'라는 동기나 목적에 의해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결문에 명시했다.[68]

서울고등법원은 2007년 8월 밀양 경찰관들에게 피해자 보호 의무 소홀에 대한 유죄를 선고하고, 피해자 2명과 그 가족에게 총 5000만의 손해 배상을 명령했다.[6] 이 결정은 2008년 6월 대한민국 대법원에서 유지되었고, 배상액은 7000만으로 결정되었다.[7]

검찰은 피고인 대부분을 소년법원으로 송치하거나 기소를 취하했다. 다른 10명은 집단 성폭행 혐의로 공식 기소되었으며, 검찰은 2년에서 4년의 징역과 3년의 집행유예를 구형했다. 판사들은 가해자들의 어린 나이와 일부가 이미 대학에 입학했거나 직장을 구했다는 점을 들어 이들 10명에 대한 혐의도 기각하고 대신 소년 법원으로 보냈다.[8] 결국 5명의 용의자만이 소년원에 송치되었고, 형사 기소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5]

6. 9. 경미한 처벌 논란

울산지검은 가해자 중 20명만을 처벌 대상으로 추려 그중 10명을 소년부로 보내 전과조차 남지 않게 했다. 검찰이 정식 기소한 10명도 부산지방법원 가정법원 소년부로 송치했다. 결국 5명이 소년원의 보호 처분을 받았을 뿐, 나머지 가해 학생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가해 학생 중 학내에서 징계받은 학생은 1개 고교 7명으로 3일간 교내 봉사활동에 그쳤다.[72]

2005년 1월 7일, 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 관련 피의자 44명 가운데 10명을 형사 기소하고 7명을 구속했다. 초기 경찰 수사보다 미온적인 검찰 수사 결과에 네티즌들은 축소 의혹을 제기했다.[56]

강지원 변호사 등은 피해 여학생들의 변호와 구제를 위해 노력했다. 피해자들은 신의진 교수 등을 만나 상담과 진료를 받았다. 한편, 경찰의 축소 수사에 반발한 시민단체들은 경찰에 항의하는 촛불집회를 개최하였다.

다음 카페 '밀양사건 네티즌 모임'(http://cafe.daum.net/wpqkfehdhkwnj) 등과 여러 시민단체들의 주도로 2005년 1월 경찰의 축소 은폐에 항의하는 촛불집회가 개최되었다. 또한 각 기소자별 기소 내용, 훈방자별 혐의 내용을 공개하고 국민 앞에 재수사의 철저함 여부를 증명받을 것을 검찰에 요구하며 서명 운동과 촛불 모임을 진행하였다.[56]

당시 사건을 수사한 울산지검은 범행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피의자 10명(구속 7명, 불구속 3명)을 기소하고, 20명을 소년부로 송치했다. 또 13명에 대해서는 피해자와 합의했거나 고소장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43] 13명은 피해자 아버지가 합의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무혐의로 풀려났다. 1명은 다른 사건에 연루되어 타청에 송치되었다.

2005년 3월 22일, 울산지검 형사2부는 집단 성폭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밀양 고교생 박모(19)군 등 10명에게 징역 장기 4년에서 집행유예 3년(징역 2년 6월)을 각각 구형했다.[71] 검찰은 이날 울산지법 제3형사부(재판장 황진효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박군에게 징역 장기 4년 단기 3년을, 우모군 등 4명에게 징역 장기 3년 단기 2년 6월을, 김모군 등 5명에게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구형했다.[71]

소년부로 송치된 20명 중 4명은 소년원 1년, 16명은 봉사활동 및 교화 등의 처분을 받았다. 기소된 10명 중 일부는 보석을 신청하기도 했다.

검찰은 “고교생들이 수 회에 걸쳐 여중생을 집단 성폭행한 사건으로 사회적 충격이 컸으며, 피고인들의 상호 진술에서 공소 사실이 인정되는데도 범행을 부인하고 있어 죄질이 불량하다”며 “그러나 청소년이고 초범인 점을 참작했다”고 밝혔다.[71] 박군 등은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최모 양을 혼자 또는 2명 이상 집단으로 성폭행하고 반지와 팔찌 등을 빼앗은 혐의로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됐으며, 당초 경찰에 입건됐던 이 사건의 전체 피의자 43명 가운데 20명은 소년부에 송치되고 나머지는 ‘공소권 없음’ 등으로 처리됐다.[71]

이후 울산지방검찰청 특별수사팀이 ‘엄정 수사’를 천명하며 이 사건을 맡았지만, 구속된 13명 중 7명만을 구속 기소하고 나머지 3명은 불구속 기소, 20명을 소년부에 송치하는 선에서 4월 7일 사건을 종결했다.[70] 사건은 울산지법이 2005년 4월, 기소된 10명에 대해 부산지법 가정지원 소년부 송치 결정을 내리면서 마무리됐다. 피의자들은 소년원에서 보호관찰을 받았고, 지금은 직장인이나 군인, 대학생으로 큰 문제 없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43] 그러나 경미한 형량이 문제가 되어 네티즌들의 항의가 계속되었다.

검찰이 나서서 조사했으나 구속은 7명이 구속되는 선에서 마무리됐던 것이다.[70] 추가 용의선상에 있던 70명은 조사조차 되지 않았고, 솜방망이 처벌은 문제가 되었다.

경찰이 피해자를 부당하게 대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일었고, 150명의 시위대가 참여한 촛불 시위로 이어졌다. 피해자들은 여성 경찰관에게 심문을 요청했지만, 그들의 요청은 무시되었다. 한 경찰관은 피해자들에게 "너희가 남자들을 유혹한 거 아니야? 밀양의 명예를 망쳤어. 미래에 이 도시를 이끌어갈 남자애들이 너희 때문에 다 잡혀갔어. 너희는 어떻게 할 거야? [...] 내 딸이 너희처럼 될까 봐 무섭다"라고 말했다.[5]

2007년 8월, 서울고등법원은 밀양 경찰관들에게 피해자 보호 의무 소홀에 대한 유죄를 선고하고, 피해자 2명과 그 가족에게 총 의 손해 배상을 명령했다.[6] 이 결정은 2008년 6월 대한민국 대법원에서 유지되었고, 배상액은 으로 결정되었다.[7]

검찰은 피고인 대부분을 소년 법원으로 송치하거나 기소를 취하했다. 다른 10명은 집단 성폭행 혐의로 공식 기소되었으며, 검찰은 2년에서 4년의 징역과 3년의 집행유예를 구형했다. 판사들은 가해자들의 어린 나이와 일부가 이미 대학에 입학했거나 직장을 구했다는 점을 들어 이들 10명에 대한 혐의도 기각하고 대신 소년 법원으로 보냈다.[8] 이 결정의 한 가지 요인은 피해자 중 한 명의 아버지가 상당한 돈을 받고 가해자 중 일부와 관대한 처분을 탄원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그 아버지는 피해자의 어머니와 3년 전에 그의 가정 폭력으로 이혼했지만, 딸에 대한 친권을 유지했고, 딸을 설득하여 그 합의를 받아들이게 했다.[8] 결국 5명의 용의자만이 소년원에 송치되었고, 형사 기소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5]

6. 10. 후유증

피해자들은 사건 이후 극심한 정신적, 신체적 후유증을 겪었다. 담당 의사였던 신의진 연세대학교 정신과 교수는 피해자가 잦은 자살 시도를 하는 등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공황 장애, 섭식장애 등을 겪었다고 밝혔다.[42] 피해자는 "세상에 이용당했다. 세상이 보호를 안 해줬다"며 분노를 표현하기도 했다.[73]

2005년 3월, 피해자는 가해 학생 부모와 아버지의 강요로 합의를 하게 되었고, 합의금 5000만 중 일부는 작은 전셋집을 구하는 데 사용되었고 나머지는 친척들이 나눠 가졌다.[73] 이후 피해자는 알코올 중독 증세가 있는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다 친권 변경 신청을 하고, 어머니와 함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지원금으로 생활했다.

피해자는 학교를 옮겨 다니며 사건의 피해자라는 사실이 알려질 때마다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가출하여 소식이 끊기기도 했다.

6. 10. 1. 제3차 피해와 후유증, 미흡한 수사 문제

2004년 12월 사건 발생 이후, 피해자들은 지속적인 고통과 후유증에 시달렸다. 가해자들과 그 가족들은 피해자들에게 협박과 회유를 일삼았고,[33] 일부 가해자 부모들은 피해자 부모에게 전화와 타인을 통해 협박까지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33] 가해자의 여자친구들은 관련 동영상을 보며 웃고, 피해자들이 좋아서 한 행동이라고 주장하며 2차 가해를 가했다. 이들은 캠코더와 핸드폰으로 폭행 장면을 촬영하고, 인터넷에 유포하기도 했다.[43]

경찰 수사 과정에서도 문제는 계속되었다. 일부 경찰관들은 피해자들에게 '밀양 물 흐렸다'는 막말을 하고,[60] 피해자 신상 정보를 유출하는 등 2차 피해를 유발했다.[57] 대질 조사 과정에서 가해 고등학생이 피해자에게 욕설을 하도록 방치하는 등 피해자 보호에 소홀한 모습을 보였다.[55]

이러한 2차 피해로 인해 피해자들은 서울로 피신했지만, 받아주는 학교가 없어 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42] 2005년 3월에는 가해 학생 부모와 피해자 아버지가 합의를 종용하여 5000만원 정도의 합의금을 받았으나, 이 돈은 친척들이 나눠 가졌고 피해자에게는 돌아가지 않았다.[73]

피해자 중 한 명은 사건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악몽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43] 알코올 중독이었던 아버지에게 합의금을 모두 빼앗기고, 어머니와 함께 무일푼으로 서울에 와 쉼터 생활을 해야 했다. 간신히 입학한 학교에서도 가해자 어머니의 소동으로 학교를 그만두는 등 고통이 계속되었다.[43]

강지원 변호사는 피해자가 트라우마로 여러 번 가출하기도 했다고 전하며, "도가니 사건도 심각하지만, 밀양 사건의 끔찍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43]

7. 경과

2004년 1월부터 11월까지 경상남도 밀양시 지역 고등학생, 기타 지역 고등학생 및 직업전문학교 학생 등 100여 명이 채팅으로 만난 여중생 자매 등을 1년 가까이 집단 성폭행하고 딜도 등 성기구를 사용해 고문했으며, 이 과정을 촬영해 인터넷에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가해자들은 2004년 12월 6일부터 창원시, 밀양시, 울산광역시 등지에서 체포되었고, 추가 가담자들도 밝혀졌다.[36]

연루자 100여 명 중 3명만이 10개월 형을 선고받았고, 경찰의 비인권적 수사와 가해자 가족들의 협박은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36] 추가 가해자 75명에 대한 수사는 진전되지 않았으며, 이들 중 일부는 대학에 진학하거나 직업을 가졌다. 사건 당시 망을 보거나 범행에 가담한 여학생들도 있었으며, 이들 중 일부는 피해자들을 비난하고 가해자들을 옹호하여 신상정보가 유출되기도 했다.

피해자는 여중생 4명, 여고생 3명 등 총 7명으로, 울산광역시창원시에 거주했다. 경찰관들의 막말과 부주의로 피해자들의 신상이 노출되었고, 2005년 인권위원회와 정치권이 진상 조사에 나섰다.[38]

가해자들이 결성한 '밀양연합'이라는 써클의 존재는 학교경찰에 의해 은폐되었으나, 2005년 3월 일부 학생들의 증언으로 그 실체가 드러났다.[41] 언론의 미숙한 대응으로 억울한 남학생들이 가해자로 몰리기도 했다.

가해자들은 대부분 평범한 삶을 살고 있지만, 피해자들은 여전히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75] 2011년 영화 도가니의 영향으로 재수사 청원 운동이 일어났다.[77] 2024년, 한 유튜버가 일부 가해자들의 신상을 공개하면서 사건은 다시 주목받았다.[12]

8. 비판과 기타 문제점

사건 초기, 가해자들은 고등학교 폭력 조직 구성원으로 추정되었으나, 이에 대한 증거는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2] 그러나 이후 언론 취재 결과 각 학교 싸움꾼들의 지역 모임인 '밀양연합'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밀양지역 ㅅ고등학교 한 재학생은 “밀양연합은 학교를 주름잡는 아이들의 친목단체다. 밀양연합이라고 하면 아무나 못 건드린다. 청도연합이나 창원연합하고 비슷하다."라고 증언했다.[41]

이 사건은 경찰의 비인권적 수사, 검찰의 솜방망이 처벌, 언론의 선정적 보도 등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다.


  • 경찰의 비인권적 수사:
  • 경찰은 피해자 보호에 소홀했으며, 오히려 피해자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했다.
  • 피해자가 여성 경찰관에게 조사받기를 원했으나, 이 요청은 무시되었다.[5]
  • 경찰은 피해자 신상 정보를 언론에 유출하여 2차 피해를 유발했다.[57]
  •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가 가해자를 직접 지목하게 하여 수치심과 보복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55]
  • 담당 형사는 노래방에서 도우미 여성에게 피해자 실명을 거론하며 폭언을 했다.[63]
  • 검찰의 솜방망이 처벌:
  • 검찰은 가해자 대부분을 소년 법원으로 송치하거나 기소를 취하했다.[8]
  • 집단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10명조차 소년 법원으로 보내져, 사실상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다.[8]
  • 강지원 변호사는 검찰의 가벼운 처벌을 비판하며, 외국에서는 청소년 성범죄자를 엄중 처벌한다고 지적했다.[70]
  • 언론의 선정적 보도:
  • 언론은 피해자 신상 정보를 유출하여 2차 피해를 유발했다.[57]
  • 일부 언론은 '밀양연합'이라는 폭력 조직의 존재를 부각하며 사건을 과장했다.[44]
  • 가해자 및 주변인의 태도:
  • 일부 가해자들은 경찰서에서조차 피해자에게 폭언을 했다.[33]
  • 가해자 부모들은 피해자 가족을 찾아가 협박하고 회유했다.[33]
  • 가해자 여자친구들은 동영상을 보며 웃고 욕설을 하며, 피해자들이 좋아서 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46]
  • 기타 문제점:
  • 가해자 중에는 전교 부회장, 성적 상위권 학생, 학급 임원 등도 포함되어 있어 충격을 주었다.
  • 학교경찰은 '밀양연합'의 존재를 은폐하려 했다.[44]
  • 네티즌들의 감정적인 대응으로 기자들의 개인 공간이 공격받는 등 문제가 발생했다.[51]


이 사건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2004년 12월 11일 서울특별시 광화문에서 철저한 수사와 책임자 문책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리기도 했다.[52]

9. 사건 일지


  • 2003년 6월 말, 울산광역시 중구에 사는 여중생 A양이 여동생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던 중 실수로 밀양시 모 고등학교 재학생 김모군(17세, 1986년생)에게 통화를 걸었다.
  • * 한 달 뒤인 7월부터 2004년 1월 초반까지 인터넷 채팅으로 연락하다가 만나기로 하였다.
  • 2004년 1월 중반, 가해자 김모군이 A양(14세)을 밀양시 가곡동으로 유인, 가해자들의 두목인 박모(17세)에게 소개하였다.
  • * 이후 10개월간 11회에 걸쳐 성폭행을 당했으며, 매월 가해자 수가 증가하였다.
  • * 첫 피해자 최양을 협박하여 3월부터는 여동생, 고종사촌 노모양까지 유인하여 성폭행하였다.
  • 2004년 12월 7일, 울산남부경찰서경상남도 밀양시 3개 고교생 41명이 여중생 자매 등을 성폭행하거나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검거하였다.
  • * 이들은 2004년 1월 중순부터 11월 하순까지 총 11회에 걸쳐 여관과 학교 놀이터, 공원 등지에서 상습적으로 윤간과 폭행을 하였다고 경찰은 발표하였다.
  • * 일부 가해자의 부모들이 피해자 최모 양 자매의 부모를 쫓아와 협박하였다.
  • * 같은 날, 고교생 집단 성폭력 사건을 수사 중인 울산남부경찰서의 김모 경장이 조사받으러 나온 피해 여학생들에게 "내가 밀양이 고향인데 (너희들이) 밀양물 다 흐려놨다"고 말하여 물의를 빚었다.[78] 해당 형사와 직속 상급자 하모 과장, 송모 팀장은 12월 16일 전보조치 등의 징계를 받았다.
  • 2004년 12월 8일, 1년가량 6명의 여중생들을 집단성폭행하고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울산남부경찰서에 연행됐던 밀양지역 3개 고교생 41명 중 3명만 구속영장이 신청되었다.
  • * 같은 날, 일부 경찰관이 저녁 노래방 술좌석에서 피해 여중생들의 실명을 언급하며 폭언을 하였다.[63]
  • 2004년 12월 9일, 사건 수사 중 밀양시 부북면에서 유사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였다.
  • 2004년 12월 11일, 저녁 서울특별시 종로구 교보문고 앞에서 네티즌 200여명이 참가하여 사건 가해자 및 경찰의 미흡한 수사를 규탄하는 항의 촛불 집회를 열었다.
  • 2004년 12월 13일, 여성부와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진상조사단을 파견하였다.[79]
  • 2004년 12월 14일, 문제가 되자 울산남부경찰서에서는 수사팀을 교체하였다.[65]
  • 2004년 12월 16일, 검찰이 개입하였다.[66]
  • 2005년 1월, 피해자 자매와 어머니는 서울특별시로 이주하였으며, 이주 후 진료를 받았다.
  • 2005년 1월 9일, 성폭행 피해 소녀에 대한 사회 각계 각층의 성금이 모금, 지급되었다.[80]
  • 2007년 6월, 방송에 따르면 4년 전 성폭행 사건 가해자 41명 중 형사처벌을 받은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울산지검이 처벌대상으로 간주한 20명 중 10명이 소년부로 송치됐고 그 중 5명이 보호관찰 처분을 받아 전과가 남은 가해자는 그 누구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재학 중이던 대부분의 고교도 가해자들 중 단 한명도 징계조치하지 않았고 2개 학교에서만 '3일간 교내 봉사활동' 등 가벼운 벌을 내렸을 뿐이었다.

10. 기타

이 사건은 가해자들에 대한 미약한 처벌, 경찰의 비인권적 수사, 가해자 가족들의 협박 등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수능 부정 시험과 비슷한 시기에 발생하여 고등학생 윤리 교육의 문제점을 드러냈다.[36]

사건 초기에는 41명의 가해자가 알려졌으나, 이후 75명이 추가로 연루된 것으로 밝혀졌다. 피해 여중생들 중 일부는 피의자 가족들로부터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하여 경찰이 진상 조사에 나섰다.[36] 그러나 대부분의 가해자들은 10년 이내의 가벼운 처벌을 받거나 훈방 조치되었으며, 추가 가해자 75명에 대한 수사는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사건 당시 망을 보거나 범행에 동조, 가담한 여학생들도 있었는데, 이들 중 일부는 심한 막말과 가해자 옹호, 피해자 비난 등으로 물의를 빚어 신상 정보가 유출되기도 했다.

피해자는 여중생 4명과 여고생 3명 등 총 7명으로, 울산광역시창원시밀양시 인근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 일부 경찰관들이 피해 여중생들에게 막말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누리꾼들의 항의로 울산남부경찰서장이 대기 발령되고, 2005년 인권위원회 등 정치권이 진상 조사에 나섰다.[55]

울산지방검찰청은 여검사 2명을 포함한 특별수사팀을 구성하여 피해자 인권 보호와 경찰 수사 과정에서의 인권 침해 부분을 조사했다.[66] 경찰은 관련 경찰관들을 징계하고 울산경찰청장이 사과문을 발표하는 등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63]

경찰은 '피해자 녹화 진술실'을 만들고 범인식별실을 활성화하는 한편, 피해자 조사 때 여경 조사관을 배치하는 등 수사 관행을 개선하기로 했다.[34] 한 언론인은 "성폭행 가해자는 멀쩡하고 피해 여성만 또 다른 피해를 겪는 것이 다반사"라며 분개했다.[42]

2004년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경찰의 '피의자 보호' 원칙이 강화되면서 모자와 마스크를 씌워주는 관행이 생겼다.[82]

10. 1. 유사 성폭력 사건 발생

2004년 12월 16일, 여중생 성폭행 사건 수사 발표 이틀 만에 밀양시 지역에서 여고생이 또다시 성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었다.[81]

2004년 12월 16일 밀양경찰서는 여고생을 승용차로 납치해 성폭행한 혐의로 A씨(21세, 밀양시 삼문동 거주)를 붙잡아 구속했다고 밝혔다.[81] A는 2004년 12월 9일 밤 10시쯤 밀양시 부북면에서 집으로 가던 여고생 B양(17세)을 자신의 승용차로 납치한 뒤 약 20km 떨어진 창원시 대산면 인근 비닐하우스에서 4차례에 걸쳐 성폭행하였다.[81] B양이 반항하자 주먹으로 마구 때리고 목을 조르는 등 폭행한 혐의도 받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사건 발생 다음날인 10일 A씨를 검거해 놓고도 여중생 집단성폭행 사건의 비난 여론을 의식해 내부적인 보고만 한 채 쉬쉬한 것으로 드러났다.[81] A씨는 경찰의 차적조회로 사건 발생 18시간 만에 붙잡혔다.[66]

11. 기타 사건

2010년, 사건 당시 가해자 중 한 명의 여자친구이며 피해자들을 조롱했던 황 모 씨가 경주시 모 대학교 졸업 후 경남지방경찰청 순경 공채에 합격한 사실이 알려졌다.[30][84][85] 2012년에는 가해자 중 한 명의 여자 친구가 경찰관이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해당 여경은 사건이 공개되었을 당시 피해자들을 모욕하고 조롱했다는 점 때문에 논란이 되었다.[9][10]

2024년에는 한 유튜버가 일부 가해자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도싱 영상을 올리면서 이 사건은 다시 주목을 받았다.[12] 이후 다른 유튜버들도 이에 동참하여 더 많은 신상을 공개했다.

참조

[1] 웹사이트 http://legacy.www.ha[...] 2004
[2] 뉴스 Police Once Again Hurt Victimized Middle School Girls http://english.donga[...] 2004-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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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뉴스 여중생 집단 성폭행 9명 추가 구속:시민들, 철저 수사와 책임자 문책 요구 촛불집회 열려 http://news.sbs.co.k[...] SBS 2004-12-12
[53] 뉴스 집단 성폭행 여중생, 피의자 가족들에 협박 받아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2004-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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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뉴스 ˝밀양물 다 흐려놨다˝..성폭행 피해자 모욕, 국가배상 확정 http://www.fnnews.co[...] 파이낸셜뉴스 2008-06-16
[70] 뉴스 밀양 성폭행 '솜방망이' 처벌 항의 촛불집회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2005-01-13
[71] 뉴스 '밀양 집단 성폭행' 피고인에 징역 장기 4년까지 구형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2005-03-22
[72] 뉴스 성폭행 보다 잔인한 학교·사회 '충격'…'밀양사건' 피해 여학생 결국 가출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2007-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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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뉴스 경남경찰청 홈페이지 마비…'밀양 性폭행' 옹호 여경 과거글 논란 http://www.newshanku[...] 한국일보 2012-04-10
[75] 뉴스 "<뉴스 그 후> 2004년 밀양 집단성폭행 사건" 연합뉴스 2011-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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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뉴스 도가니 여파로 2004년 밀양 집단성폭행 사건 재수사 촉구 http://www.segye.com[...] 세계일보 2011-10-10
[78] 뉴스 경관이 성폭행피해자 ‘폭언’ http://www.hani.co.k[...] 한겨레 2004-12-11
[79] 뉴스 여성부·인권위 '밀양 성폭행' 진상조사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2004-12-13
[80] 뉴스 “성폭행 피해 소녀 돕자” 성금 잇따라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2005-01-09
[81] 뉴스 밀양 또 여고생 성폭행, 여중생 사건 발표 이틀 만에 http://www.nocutnews[...] 노컷뉴스 2004-12-16
[82] 뉴스 '피의자 실명.얼굴 공개' 정답 없나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2009-01-30
[83] 뉴스 밀양서 또 여고생 납치 성폭행 http://sports.hankoo[...] 한국일보 2004-12-16
[84] 뉴스 "[단독]2주 만에 복직한 밀양 성폭행 옹호 女警, 최근 승진 시험 합격"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2014-05-25
[85] 뉴스 "'한공주'·'돈 크라이 마미'의 모티브 '밀양 여중생 사건'" http://news1.kr/arti[...] 뉴스1 2014-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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