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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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유하는 대한민국의 일본 문학 연구자이자 작가로,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게이오 대학에서 일어일문학을 전공하고 와세다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세종대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반일민족주의를 넘어서》, 《제국의 위안부》 등이 있으며, 가라타니 고진, 나쓰메 소세키 등의 작품을 번역했다. 특히 《제국의 위안부》는 일본군 위안부 시스템에 대한 기존의 통념에 이의를 제기하며 논란을 일으켰고, 관련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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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하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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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한글 | 박유하 |
한자 | 朴裕河 |
로마자 표기 | Bak Yuha |
출생일 | 1957년 3월 25일 |
출생지 | 서울특별시 |
국적 | 대한민국 |
학력 | |
학사 | 게이오기주쿠 대학 |
석사/박사 | 와세다 대학 |
학위 | 박사 (학술) |
직업 | |
주요 분야 | 문학(근현대 일본 문학), 문화사 |
소속 | 세종대학교 |
2. 학력 및 경력
1981년 게이오기주쿠 대학 문학부 국문과를 졸업했다. 이후 와세다 대학 문학연구과에서 1989년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1] 2003년 같은 대학원에서 「일본 근대 문학과 내셔널 아이덴티티」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21][1]
박유하는 일본 근대 문학과 사상을 한국에 소개하는 연구자이자 번역가이다. 특히 나쓰메 소세키, 오에 겐자부로, 가라타니 고진 등 주요 일본 작가들의 작품을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또한, 한일 관계, 역사 인식 문제, 젠더 등 민감하고 중요한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을 담은 저서를 다수 출간하며 사회적 논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의 저작과 번역 활동은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주목받고 있다.
3. 주요 저서 및 번역
3. 1. 저서
=== 공저/공편저 ===
=== 번역 ===3. 2. 번역
한국에 일본 근대 문학 및 사상을 소개하고 있으며, 나쓰메 소세키, 오에 겐자부로, 가라타니 고진 등의 저작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데 참여하고 있다.
주요 번역서는 다음과 같다.
4. 《제국의 위안부》 논란
박유하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는 기존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통념과 해석에 도전하는 내용을 담아 출간 직후부터 한국 사회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64] 이 책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 문제, 위안부와 일본군 사이의 관계 등을 기존과 다르게 해석하며 일부 위안부와 군인 간의 '동지적 관계' 가능성을 제시하고, 조선 내에서는 일본군에 의한 공적인 '강제 연행'이 아닌 민간 업자에 의한 유괴나 취업 사기가 주된 동원 방식이었다고 주장했다.[65][66]
이러한 주장은 일본 제국의 책임을 축소하고 위안부 피해자들의 경험과 명예를 훼손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11][12] 특히 나눔의 집 소속의 이옥선 할머니 등 일부 위안부 피해자들은 책 내용에 강하게 반발하며 2014년 박유하를 상대로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소하기에 이르렀다.[40][13]
이 사건은 법적 분쟁으로 비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학문과 표현의 자유, 역사 해석의 문제, 피해자 인권 보호 등 다양한 쟁점을 둘러싸고 국내외 지식인 사회에서도 격렬한 찬반 논쟁을 촉발했다. 오에 겐자부로, 노엄 촘스키 등 해외 석학들과 다수의 국내외 지식인들이 박유하에 대한 형사 기소에 반대하며 학문의 자유를 옹호하는 성명을 발표하는가 하면,[70][15][16][17][71][72][18][19] 다른 한편에서는 박유하의 주장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식민주의를 옹호하며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를 가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22][26][34][37] 이 논란은 위안부 문제의 복잡성과 이를 둘러싼 기억과 해석의 갈등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다.
4. 1. 주요 내용 및 주장
박유하는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기존의 일본 제국 위안부 시스템에 대한 설명에 이의를 제기한다.[64] 박유하는 역사적 문서와 위안부 증언을 바탕으로, 일부 위안부와 군인 사이에 사랑과 같은 인간적인 관계가 형성되거나, 군인이 병든 여성을 돌보고 귀향을 돕는 등의 사례가 있었음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일본군에 의한 조선인 여성 강제 연행'과 '성노예'라는 단일한 서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위안부의 다양한 모습과 군인과의 복잡한 관계가 존재했음을 주장한다.[65][4][5]그는 이러한 관계가 조선이 식민지였기에 발생했으며, '애국'이라는 명분 아래 동원된 약자들 사이의 '동지적 관계'와 같은 비극이 나타났다고 설명한다. 당시 조선은 일본 제국의 일부로 간주되었기에, 일본군이 공식적으로 조선 여성을 강제 연행하는 것은 표면적으로 불가능했으며, 오히려 민간 업자들이 여성들을 기만하여 위안소에 팔아넘긴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법적 책임을 묻는다면, 당시 법을 어긴 이들 업자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66][4]
박유하는 조선의 식민지 상태, 수많은 증언, 그리고 1965년 한일기본조약 등을 고려할 때, 일본 정부에 대해 전쟁 범죄로서의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67][6] 그는 이러한 '법적' 책임 추궁에 집중하는 정의기억연대 등 일부 지원단체의 운동 방식이 오히려 한일 간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일본 내 반성적인 시민들마저 등 돌리게 만들어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고 비판한다. 또한, '순수한 피해자'라는 틀에 맞지 않는 증언들을 배제하는 방식이 위안부 당사자들을 억압하고 분열시킨다고 지적한다.[64][6][7]
이에 박유하는 일본에 대해 전쟁 후 처리로서의 법적 책임 대신, 식민지배 자체에 대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68][5] 그는 한국 사회를 향해 "사실을 정확히 알아야 일본에도 제대로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강조하는 한편, 일본을 향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낸다. 일본 우익이 책임을 다했다는 주장의 근거로 드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1990년대의 사죄 및 보상 조치들이 가진 한계를 지적하며, 특히 한일기본조약은 전쟁 후 처리에 국한될 뿐 식민지배 자체에 대한 책임까지 포괄하는 것은 아니라고 비판한다. 또한 1990년대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이 애매한 태도로 인해 그 뜻을 한국에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던 점을 비판한다.[69][5]
박유하는 일본이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보다 앞서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을 표명하고, 조선인 위안부를 포함한 식민지 시기 희생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는 것이 국제적으로나 아시아 통합을 위해서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일본의 사죄를 전략적으로 유도하고 있다.[69][5][8]
이러한 박유하의 주장은 학계와 사회에서 다양한 평가를 받고 있다. 작가 가마다 사토시는 "'종군 위안부와 군대'라는 관계에서가 아니라 '제국주의'라는 틀 안에서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라는 문제를 파헤친 작품"이며 "역사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했고,[32] 도쿄대 명예교수 다나카 아키히코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전면적이고 실증적이며, 이성적이고 윤리적인 분석"이라며 "'성 노예'인가 '매춘부'인가 하는 인식에 대해서도, 그리고 '강제성'의 문제에 대해서도, 안이한 단순화를 허용하지 않는 다면적인 측면을 밝히고 있다"고 평가했다.[33] 웹 론자(WebRonza)의 서평에서 사회학부 교수 오쿠 타케노리는 박유하가 "'위안부 문제'를 '정치'와 '운동' 속의 이야기에서 풀어내려 시도"했으며, "'공적인 기억'에 이의를 제기한다"고 분석했다.[38] 작가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앞으로 쓰여질 모든 '위안부'에 관한 말에 대해, 공감하든 반발하든, 부동의 항성처럼 흔들림 없는 기축이 될 것"이라고 평했다.[39] 반면, 역사학자 정영환은 "증언과 자료의 짜깁기와, 그 짜깁기된 자료들로부터조차 이끌어낼 수 없는 근거 없는 해석"이라고 비판했으며,[34][35][36] 법학자 마에다 아키라는 박유하가 민간 업자의 책임을 언급하는 것이 "오로지 일본 정부의 책임을 해제하기 위해서"이며, 식민지 지배의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는다고 비판했다.[37]
4. 2. 비판과 반론
박유하는 그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기존에 확립된 일본군 위안부 시스템에 대한 통념에 도전하는 주장을 펼쳤다.[64] 그는 일부 위안부와 군인 사이에 사랑과 같은 관계가 형성되기도 했으며, 병든 여성을 군인이 돌보고 고국으로 보내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서술했다. 이를 통해 '일본군의 조선인 여성 강제 연행'과 '성노예'라는 단일한 서사에서 벗어난, 보다 복잡하고 다원적인 위안부의 존재 양상과 군인과의 관계를 드러내고자 했다.[65]박유하는 당시 조선이 식민지화의 결과로 '일본'의 일부로 취급되었기에, '애국'이라는 명분 아래 동원된 약자들 사이의 협력적 관계처럼 보이는 '동지적 관계'와 같은 비극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그는 표면적으로 일본과 조선이 구분되지 않던 상황에서 공식적인 여성 강제 연행은 어려웠을 것이며, 법적 책임을 묻는다면 당시 법을 위반한 업자(여성을 속이거나 강제로 위안소에 넘긴 자)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66]
나아가 그는 일본 제국이 침략한 다른 국가와 달리 조선이 식민지였다는 특수한 시대 상황, 관련 사료 및 증언들을 고려할 때, 일본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여성들이 속아서 끌려온 경우 업자가 소유주처럼 행세하며 군이 이를 묵인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공식적으로는 군이 여성들을 다른 곳에 취직시키거나 돌려보낸 사례도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1965년 한일기본조약 역시 일본에 대한 '법적' 책임 추궁에 큰 제약이 된다고 지적했다.[67]
이러한 관점에서 박유하는 사실과 다른 주장까지 포함하며 '법적' 책임만을 고집하는 일부 위안부 지원단체의 운동 방식을 비판했다. 그는 이러한 방식이 한일 간 갈등을 심화시키고, 위안부 문제에 반성적이던 일본 시민들마저 돌아서게 만들어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고 보았다. 또한, '순수한 피해자'상에 부합하지 않는 위안부의 경험을 배제하는 운동 방식이 당사자들을 억압하고 분열시킨다고 주장했다.[64]
대신 박유하는 식민지라는 역사적 상황, 1965년 한일 협정, 1990년대 일본의 사죄와 보상 시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전쟁 후 처리로서의 법적 책임보다는 식민지배 자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제안했다.[68] 그는 한국 사회를 향해 "사실을 정확히 알아야 일본에도 제대로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한편, 일본을 향한 비판도 제기했다. 일본 우파가 책임 이행의 근거로 삼는 1965년 한일협정과 1990년대의 사죄 및 보상이 실제로는 한계를 지녔다고 지적했다. 한일협정은 전쟁 후 처리에 국한되었을 뿐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 인정은 아니었으며, 1990년대의 사죄와 보상 역시 일본 정부의 모호한 태도로 인해 그 진의가 한국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일본이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보다 앞서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을 표명하는 것이 국제적으로나 아시아 통합을 위해서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며, 일본의 진심 어린 사죄를 촉구했다. 이때 사죄는 조선인 위안부를 포함하여 식민지배 기간 동안 희생된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69]
''제국의 위안부''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폭력, 한국의 가부장제, 브로커들의 자본주의적 착취 등을 다루었으나, 일부 비평가들은 그의 서술이 결과적으로 "일본을 옹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위안부 지원 단체와 피해자들은 책 내용에 크게 반발했다. 메이지가쿠인대학의 정영환 교수는 박유하가 기본적인 자료와 기존 연구를 잘못 해석하고 왜곡하며 식민주의를 옹호한다고 비판했다.[11][12]
결국 2014년 6월, 나눔의 집 소속 이옥선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9명은 박유하를 상대로 저서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과 1인당 3000만원씩 총 2.7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며,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13] 법원은 2015년 2월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 일부를 인용했고, 2015년 11월 검찰은 박유하를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에 대해 2015년 11~12월, 오에 겐자부로,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 우에노 치즈코 도쿄대 명예교수 등 일본의 지식인 54명과 장정일, 김규항, 고종석, 홍세화 등 한국의 지식인 194명이 박유하의 형사 기소에 반대하며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성명을 발표했다.[70][15][16][17] 2017년 1월에는 노엄 촘스키 MIT 교수와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 대학 교수도 이 성명에 동참하며 기소 철회 또는 무죄 판결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71][72][18][19] 민사소송 1심에서는 2016년 1월 박유하에게 총 9000만원 (피해자 1인당 1000만원)의 배상 판결이 내려졌으며(항소심 진행 중),[14] 형사 소송 1심에서는 2017년 1월 25일 서울동부지방법원이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진행 중).[20]
박유하의 저작과 주장에 대한 비판은 여러 방면에서 제기되었다.
- 김부자는 박유하의 시각이 지나치게 국가 중심, 남성 중심적이며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이 부족하고 피해와 가해를 동일 선상에 놓는다고 비판했다.[22]
- 여성사 연구가 스즈키 유코는 이를 "박유하 현상"이라 칭하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23][24][25]
- 서경식은 박유하가 '자신만이 일본을 올바로 이해하고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는 식의 조잡한 논리를 편다고 비판하며, 국가가 체결한 조약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을 책임 있는 지식인의 자세로 보는 듯한 태도가 국가 권력과 식민 지배자들에게 영합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26]
- 역사학자 정영환은 박유하가 증언과 자료를 자의적으로 짜깁기하고, 그마저도 근거가 부족한 해석(특히 전 위안부들이 일본군에 '동지 의식'을 가졌다는 주장)을 전개한다고 비판했다.[34][35][36]
- 법학자 마에다 아키라는 박유하가 위안부 강제의 직접 실행자가 주로 민간 업자였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의 책임은 묻지 않고, 오직 일본 정부의 책임을 면제하기 위해 민간 업자를 언급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식민지 지배의 책임을 묻기보다 식민지에 협력한 '애국적' 노력을 강조한다고 지적했다.[37]
반면, 박유하의 문제 제기 방식이나 분석에 긍정적인 평가도 존재한다.
- 키무라 칸은 박유하의 분석과 지적에는 동의하지만, 제안하는 해법이 민족주의적 시각을 고려하지 않아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보았다.[27]
- 소노 미츠하루는 문제 해결을 모색하는 생산적인 자세와 기존 운동 방식에 대한 비판에는 공감하면서도, 박유하가 높이 평가하는 '민족주의를 넘어서려는 일본인의 자기 비판'이 실제로는 또 다른 형태의 내셔널리즘이거나 그에 대한 무자각일 수 있다고 지적하며, 일본 내셔널리즘 전체에 대한 균형 잡힌 평가와 비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28]
- 시마다 요이치는 일부 결함에도 불구하고 박유하가 주저 없이 정론을 이야기한다고 평가했다.[29]
- 작가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박유하가 진실을 단순화하지 않기 위해 양측의 의견에 귀 기울이려 했으며, 피해와 가해의 복잡성, 때로는 피해자가 가해자이기도 했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평가했다.[30] 그는 다른 글에서도 ''제국의 위안부''를 "준엄함으로 가득 찬 책"이자 "앞으로 쓰여질 모든 '위안부'에 관한 말에 대해 부동의 항성처럼 흔들림 없는 기축이 될 것"이며, "이토록 고독한 책을 쓸 수밖에 없었던 저자의 심정을 생각하며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고 평했다.[39]
- 오오부치 지로 논단상 심사위원이었던 고 와카미야 테루후미는 이 책이 한일 간의 4가지 난제(역사 교과서 문제, 위안부 문제, 야스쿠니 신사 문제, 독도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양국의 극단적인 주장을 비판하고 화해의 길을 모색하는 용기 있는 문제 제기라고 평가했다. 함께 심사한 이리에 아키라 하버드대 명예교수 역시 학문적 수준, 균형 잡힌 시각, 설득력 있는 논의를 높이 평가하며 양국 관계 발전과 국제적 화해에 중요한 시사를 준다고 평했다.[31]
- 이시바시 탄잔 기념 와세다 저널리즘 대상 선정위원인 작가 가마다 사토시는 이 책이 '종군 위안부와 군대'라는 관계를 넘어 '제국주의'라는 틀 안에서 인간 정신의 문제를 파헤쳤으며, 감정적인 기록을 넘어서는 냉정한 분석이 때로는 비판받을 수 있지만, 앞으로의 한일 관계에서 중요한 역사적 작품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32]
- 도쿄 대학 명예교수 다나카 아키히코는 마이니치 신문 아시아 태평양상 심사평에서 이 책을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전면적이고 실증적이며, 이성적이고 윤리적인 분석"이라 평하며, '성 노예' 대 '매춘부', '강제성' 문제 등에서 안이한 단순화를 거부하고 다면적인 측면을 밝히면서도, 여성을 '수단화', '물건화', '도구화'하는 구조에 대한 강한 비판과 그 속에서 살아간 인간에 대한 공감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33]
- 호세이 대학 교수 오쿠 타케노리는 박유하가 '위안부 문제'를 '정치'와 '운동'의 서사에서 벗어나 당사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임으로써 기존의 '상식'에 도전했으며, '일본군에 강제 연행된 20만 명의 소녀'라는 통념이 실제로는 '공적인 기억'으로 형성된 측면이 있음을 지적했다고 분석했다.[38]
4. 3. 소송 및 재판
박유하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는 기존에 정설로 받아들여지던 일본군 위안부 동원 방식과 생활상에 대해 다른 해석을 제시하며 논란을 일으켰다.[64] 책에서 박유하는 일부 위안부와 일본군인 사이에 인간적인 관계가 존재했으며, 이는 '일본군의 조선인 여성 강제 연행'과 '성노예'라는 단일한 서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위안부의 다면적 실체를 보여준다고 주장했다.[65] 또한 당시 조선이 일제강점기 식민지였던 상황에서 '동지적 관계'라는 명목 아래 약자들이 동원된 비극이 발생했으며, 공식적으로는 군에 의한 강제 연행이 아니었기에 법적 책임은 불법적으로 여성을 모집한 민간 업자에게도 물어야 한다고 서술했다.[66] 박유하는 1965년 한일협정 등의 문제로 일본 정부에 대한 "법적" 책임 추궁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았고,[67] 위안부 지원 단체들이 사실과 다른 주장까지 포함하며 법적 책임만을 고집하는 방식이 오히려 문제 해결을 방해하고 위안부 당사자들을 억압한다고 비판했다.[64] 대신 일본이 식민 지배 자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68][69]이러한 내용은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이옥선 등 위안부 피해자 9명으로부터 강한 반발을 샀다. 그들은 2014년 6월, 박유하의 책이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1인당 3000만원씩 총 2.7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 소송을 제기하고, 박유하를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소했다.[40][13]
'''민사 소송'''
- 2015년 2월 17일: 서울동부지방법원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하여, 책 내용 중 "'조선인 위안부'의 고통이 일본인 매춘부의 고통과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위안부'들을 '유괴'하고 '강제 연행'한 것은, 적어도 조선의 땅에서는, 그리고 공적으로는 일본군이 아니었다" 등 34개 부분의 삭제를 명령했다.[43]
- 2016년 1월 13일: 서울동부지방법원은 1심에서 박유하의 명예훼손 및 인격권 침해를 인정하여 피해자 9명에게 총 9000만원(8262USD 상당[14])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박유하는 이에 불복하여 항소했다.[41]
- 판결 이후 원고들은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박유하의 급여 일부 압류를 신청하여 인용되었으나, 박유하가 공탁금을 내고 집행 정지를 신청하여 4월부터 중단되었다.[42]
'''형사 소송'''
- 2015년 11월 18일: 검찰은 『제국의 위안부』 내용 중 '한반도에서는 공적으로 강제 연행되지 않았다', '위안부는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에 있었다', '매춘의 틀 안에 있었다'는 등의 35곳 표현이 허위 사실 적시에 해당한다며 박유하를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44][45]
- 2017년 1월 25일: 서울동부지방법원 형사11부는 "학문적 주장이나 의견 개진은 그 자체로 평가의 대상일 뿐,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박유하에게 무죄를 선고했다.[20][48]
- 2017년 10월 27일: 검찰의 항소로 진행된 2심에서 서울고등법원은 1심 판결을 파기하고 벌금 1000만원의 유죄를 선고했다.[49]
- 2023년 10월 26일: 대한민국 대법원은 "유죄로 인정한 표현은 피고의 학문적 주장 또는 의견 표명으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며,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사실 적시'로 보기 어렵다"며 2심의 유죄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50]
- 2024년 4월 12일: 서울고등법원 환송심 재판부는 대법원의 취지에 따라 박유하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문제가 된 표현들은 학문적 주장 및 의견 표명에 해당하며 허위 사실 기재로 볼 수 없다고 다시 한번 판단했다.[51]
'''국내외 반응 및 평가'''
박유하의 기소에 대해 국내외 지식인들의 비판과 우려가 이어졌다. 2015년 11월과 12월, 오에 겐자부로,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 우에노 치즈코 교수 등 일본의 저명인사 54명은 "공권력이 특정 역사관을 바탕으로 학문과 언론의 자유를 억압한다"며 기소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70][15][16][46] 한국에서도 장정일, 김규항, 고종석, 홍세화 등 194명의 지식인이 이 성명에 동참했다.[70][17] 2017년 1월에는 노엄 촘스키 MIT 교수와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가 일본 지식인들의 성명에 동참하며 박유하에 대한 기소 철회 또는 무죄 판결을 촉구했다.[71][72][18][19][47]
반면, 메이지가쿠인대학의 정영환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가 증언과 자료를 짜깁기하고 근거 없는 해석을 통해 식민주의를 옹호한다고 비판했으며,[11][12][34][35][36] 법학자 마에다 아키라는 박유하가 민간 업자의 책임을 언급하며 일본 정부의 책임을 면제시키려 한다고 지적했다.[37]
『제국의 위안부』는 일본에서 이시바시 탄잔 기념 와세다 저널리즘 대상을 수상했으며, 선정위원인 작가 가마다 사토시는 "'제국주의'라는 틀 안에서 인간 정신의 문제를 파헤친 작품"이라고 평가했고,[32] 도쿄 대학 명예교수 다나카 아키히코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전면적이고 실증적이며, 이성적이고 윤리적인 분석"이라고 호평했다.[33] 작가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앞으로 쓰여질 모든 '위안부'에 관한 말에 대해 부동의 기축이 될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39]
5. 위안부 문제 관련 발언 및 비판
박유하는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기존에 확립된 일본 제국의 위안부 시스템에 대한 통념에 도전한다.[64] 그는 일부 위안부와 군인 사이에 사랑과 같은 관계가 존재했으며, 군인이 병든 여성을 돌보고 고국으로 보내준 사례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일본군의 조선인 여성 강제 연행'과 '성노예'라는 단일한 서사에서 벗어난 다양한 위안부의 존재와 군인과의 복잡한 관계를 드러내고자 했다.[65]
박유하는 당시 조선이 식민지화의 결과로 '일본'의 일부였기에, '애국'이라는 명분 아래 동원된 약자들 사이의 협력적 관계와 같은 '동지적 관계' 속에서 비극이 발생했다고 설명한다. 공식적으로는 일본과 조선이 구분되지 않는 상황에서 여성을 강제 연행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법적 책임을 묻는다면 당시 법을 위반한 업자(여성을 속이거나 강제로 위안소에 넘긴 이들)에게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66] 그는 일본 제국이 침략한 다른 국가와 달리 조선이 식민지였다는 점, 사료와 증언들을 종합할 때 일본 정부에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고 본다. 또한, 1965년 한일협정 역시 법적 책임 추궁의 큰 장애물이라고 지적한다.[67]
이러한 맥락에서 박유하는 "법적" 책임을 고수하는 지원단체의 운동 방식을 비판한다. 그들의 운동 방식이 사실과 다른 주장을 포함하며 한일 갈등을 심화시키고, 위안부 문제에 반성적이던 일본 시민들마저 등 돌리게 만들어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고 본다. 또한, '순수한 피해자'상에 맞지 않는 위안부의 경험을 배제함으로써 당사자들을 억압하고 분열시킨다고 비판한다.[64] 대신 박유하는 전쟁 후 처리로서의 법적 책임보다는 식민지 지배 자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제안한다.[68]
박유하는 한국 사회를 향해 '사실을 정확히 알아야 일본에 제대로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동시에, 일본을 향한 비판도 제기한다. 일본 우파가 책임 이행의 근거로 드는 1965년 한일협정과 1990년대의 사죄 및 보상이 한계를 지녔다고 지적한다. 한일협정은 식민 지배가 아닌 전쟁 후 처리에 국한되었으며, 1990년대의 조치들은 일본 정부의 모호한 태도로 인해 그 의미가 한국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그는 일본이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보다 앞서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을 표명하는 것이 국제적으로나 아시아 통합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며, 일본의 진심 어린 사죄를 촉구한다.[69]
2007년 발언 논란2007년 4월, 아시아여성기금 해산과 관련하여 도쿄의 일본 외국 특파원 협회(FCCJ) 강연에서 박유하는 미국 하원 121호 결의 등에서 한국 측의 주장이 일방적으로 수용되는 경향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일본군과 그렇게 만든 아버지 중 누가 더 밉냐?"는 질문에 한 전 위안부가 "아버지"라고 답한 일화를 소개하며, 위안부 동원에 한국인 업자의 책임 문제와 한국 전쟁 당시 특수 위안대 운영 사실을 언급했다. 이를 통해 위안부 문제를 일본만의 문제로 국한시키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52] 또한, 당시 아베 신조 총리의 "넓은 의미의 강제성은 있었지만, 좁은 의미의 강제성은 없었다"는 발언에 대해 그 배경을 설명하며, 사죄를 받아들이는 피해자 측의 문제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연합뉴스에 의해 "위안부에 대한 가해 책임, 한국에도 있다", "아베 총리 발언에도 이해를 나타낸다"는 식으로 보도되자[53], 한국 내에서 박유하를 "일본녀"라고 비난하는 등 거센 반발이 일었고, 그가 재직 중인 세종대학교에도 비난이 쏟아졌다.[54][55] 박유하는 이에 대해 연합뉴스 기사가 발언 취지를 왜곡했으며, 아베 총리를 옹호하거나 한국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한일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시각을 제시하려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일본이 사과도 보상도 하지 않았다"는 한국 내의 통념은 사실과 다르며, 이러한 인식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덧붙였다.[52][55]
박유하는 아시아여성기금 설립에 가장 반대한 이들이 일본의 보수 우익이 아니라 "법에 근거하지 않은 사과 방식은 불완전하다"고 비판한 진보적 지식인과 언론이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등 일부 단체가 기금 수령을 반대하면서 위안부 피해자들 사이에 분열이 생겼으며, 정대협 관계자들이 이후 정치적 입지를 다진 뒤에는 피해자들에게 관심을 잃거나 배척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비판했다. 그는 일부 피해자들이 "진심으로 도와주는 것은 일본인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며, 정대협이 보상금 수령 사실 등을 알리지 않고 기금 반대 운동을 벌인 책임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55][56] 그는 와다 하루키 등이 제안한 새로운 방식의 보상에 기대를 나타내면서도, 정대협이 모순 검증 없이 비난만 반복하는 수요 시위와 미국에 문제 해결을 호소하는 방식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55]
소송 및 지식인들의 반응박유하의 저서와 발언에 대해 이옥선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9명은 2014년 6월, 《제국의 위안부》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1인당 3000만원씩 총 2.7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고, 명예훼손 혐의로 박유하를 형사 고소했다.
- 출판금지 가처분 소송: 2015년 2월, 법원은 책 내용 중 34곳을 삭제하라는 일부 인용 결정을 내렸다.
- 손해배상 민사소송: 2016년 1월 13일, 1심 법원은 박유하에게 9000만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항소심 진행 중)
- 명예훼손 형사소송: 검찰은 2015년 11월 박유하를 불구속 기소했으나, 2017년 1월 25일 1심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진행 중)
박유하에 대한 형사 기소에 대해 국내외 지식인들의 반대 성명이 이어졌다. 2015년 12월에는 오에 겐자부로,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 우에노 치즈코 도쿄대 명예교수 등 일본 지식인 54명과 장정일, 김규항, 김철, 고종석, 홍세화, 최규승 등 한국 지식인 194명이 기소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70] 2017년 1월에는 노엄 촘스키 MIT 교수와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가 박유하의 무죄를 탄원하며 일본 지식인들의 성명에 동참했다.[71][72]
2014년 4월 29일 서울에서 열린 위안부 문제 심포지엄에서는 "일본을 용서하고 싶지만, 다른 위안부와 다른 말을 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하는 전 위안부의 영상이 소개되기도 했다.[60][61]
6. 기타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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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의 혁명은 안단테로]역사의 거울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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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뉴스]학문의 자유 침해인가, 정당한 법적 처벌인가…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논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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