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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 3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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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발트 3국은 발트해 동부 연안에 위치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3개국을 지칭한다. 13세기부터 독일, 덴마크, 스웨덴, 폴란드, 러시아 등의 지배를 받았으며,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독립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소련에 병합되었다가 1991년 재독립했다. 독립 후 유럽 연합(EU)과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에 가입하여 서유럽과의 통합을 추구하며, 현재 자유 민주주의 의회 공화국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유럽 연합과 유로존에 속하며, 문화적으로는 언어와 종교의 차이를 보이지만, 역사적으로는 독일, 러시아 등의 영향을 받았다. 발트 3국은 "구소련 국가"라는 표현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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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 3국
위치
명칭
영어Baltic States, Baltic Countries
에스토니아어Balti riigid
라트비아어Baltijas valstis
리투아니아어Baltijos valstybės
러시아어Прибалтика
독일어Baltische Staaten
폴란드어Kraje bałtyckie
일본어バルト三国
기본 정보
국가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수도탈린
리가
빌뉴스
공용어에스토니아어
라트비아어
리투아니아어
면적175,015 km²
인구 (2010년)6,827,351 명
GDP (PPP) (2010년)1,081억 US 달러
1인당 GDP (PPP) (2010년)15,665 US 달러
명목 GDP (2010년)745억 US 달러
1인당 명목 GDP (2010년)10,792 US 달러
시간대
시간대UTC+02:00 (EET)
UTC+03:00 (EEST)

2. 역사

13세기경 독일계 검의 형제 기사단이 기독교와 봉건주의를 전파하면서 발트 3국의 공동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후 덴마크, 스웨덴, 폴란드, 러시아 제국, 독일 제국 등이 발트 3국 지역을 두고 각축을 벌였다.

1582년에는 에스토니아 북부를 제외한 발트 3국 대부분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지배를 받았다. 19세기에는 러시아 제국이 이 지역을 지배했다. 독일인 제후들과 스웨덴인 지배층이 있었으나, 이들이 러시아 황제에게 충성했기 때문에 자치권을 얻어 독일 문화가 널리 퍼졌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발트 3국은 독립했지만, 독일-소련 불가침 조약으로 인해 소비에트 연방에 합병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나치 독일의 침공을 받았고, 종전 후 다시 소련에 합병되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될 때까지 발트 3국은 소련의 점령하에 있었다. 이들은 1990년에 독립을 선언했고, 소련은 1991년 9월 6일에 이를 인정했다. 발트 3국은 제1차 세계 대전제2차 세계 대전 사이의 독립국이 복원된 것이라 주장하며, 냉전 시대 소련의 지배를 불법 점령으로 규정했다.

2002년 발트 3국은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와 유럽 연합(EU) 가입을 신청했고, 2004년 각각 NATO와 EU에 가입했다.

2. 1. 명칭의 유래와 개념 변화

"발트"라는 용어는 발트 해의 이름에서 유래했으며, 기원전 3세기(에라토스테네스가 고대 그리스어 텍스트에서 Baltiael를 언급했을 때) 또는 그 이전부터 사용된 수리명이다.[45] 그 기원에 대한 몇 가지 이론이 있는데, 대부분 재구성된 원인도유럽어 어근 ''*bhel''[46]("흰색, 밝은"을 의미)에서 유래했다고 본다. 이 의미는 리투아니아어 baltaslt라트비아어 baltslv에서 "흰색"을 의미하는 것으로 유지되고 있다.[47] 그러나 이 어근에서 유래한 이 지역과 바다의 현대 이름은 19세기 이전에는 두 언어 중 어느 언어에서도 사용되지 않았다.[48]

중세 이후로 발트해는 게르만어권 지도에 "동쪽 바다"에 해당하는 , , , 등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발트해는 독일,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의 대부분 동쪽에 위치해 있다. 이 용어는 역사적으로 스웨덴 제국의 발트 지배 지역 ()과 그 후 러시아 제국의 발트 주지사령 ()을 가리키는 데에도 사용되었다.[48] 현대 이름 "발트"와 관련된 용어는 고대 텍스트에 나타나지만, 독일어 형용사 Baltischde로 다시 등장하기 전까지는 사용되지 않았고, 다른 언어에서도 이것을 채택했다.[49] 19세기 동안 "발트"는 이 지역의 이름으로 Ostseede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공식적으로 러시아어에 해당하는 Прибалтийскийru ()는 1859년에 처음 사용되었다.[48] 이러한 변화는 발트 독일인 엘리트가 자신들을 가리키기 위해 Baltischde에서 파생된 용어를 채택한 결과였다.[49][50]

"발트 국가"(또는 "지역", "국가")라는 용어는 20세기 초까지 발트 해에 인접한 국가인 스웨덴, 덴마크, 때로는 독일 제국, 러시아 제국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노르딕 협회(Foreningen Norden)의 출현과 함께 스웨덴과 덴마크에는 더 이상 이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다.[2][3]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발트해 동해안에 새롭게 등장한 주권 국가들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핀란드가 "발트 국가"로 알려지게 되었다.[49]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로는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세 국가를 묶어서 이 용어를 사용해 왔다.

러시아 제국 시대에 설치된 "발트 지방"은 현재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에 해당하는 지역이며, 리투아니아에 해당하는 지역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리투아니아를 포함한 3개국이 하나의 "발트" 지역으로 간주되기 시작한 것은, 세 나라 모두 제1차 세계 대전 후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고 제2차 세계 대전 중 소련에 편입되었다는 공통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는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그리고 리투아니아는 서로 다른 역사를 걸어왔다고 여겨졌지만, 1970년발트 독일인 역사가 Georg von Rauch영어가 3개국을 아우르는 역사서를 저술한 이후로는 발트 지역으로서의 역사도 논의되기 시작했다.

2. 2. 20세기 이전의 역사

13세기경 독일계 검의 형제 기사단이 기독교와 봉건주의를 가지고 들어오면서 발트 3국의 공동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 후 덴마크, 스웨덴, 폴란드, 러시아 제국, 독일 제국이 발트 3국 지역을 두고 각축을 벌였다.

1582년에는 에스토니아 북부를 제외한 발트 3국 지역 거의 전체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19세기에는 이 지역이 러시아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독일인 제후들과 스웨덴인 지배층들이 있었으나 이들이 러시아 황제에게 충성을 다했기 때문에 이 지역은 자치권을 받아 독일 문화가 많이 퍼졌다.

2. 3. 독립과 제2차 세계 대전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날 무렵, 리투아니아는 독립을 선언했고 라트비아는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에스토니아는 이미 1917년에 차르 러시아로부터 자치권을 획득했고 1918년 2월에 독립을 선언했지만, 이후 1918년 11월까지 독일 제국에 점령당했다. 에스토니아는 1918년부터 1920년까지 소비에트 러시아에 맞서 성공적인 독립 전쟁을 수행했다.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도 1920년 라트비아 독립 전쟁과 리투아니아 독립 전쟁이 끝날 때까지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63]

전간기 동안 핀란드와 폴란드와 함께 세 나라는 때때로 집합적으로 ''접경 국가''(프랑스어에서 유래)로 불렸는데, 이는 이들이 함께 소비에트 러시아와 소련의 서쪽 국경을 따라 "테두리"를 형성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또한 조르주 클레망소가 전략적인 ''위생 봉쇄''로 간주한 영역, 즉 북쪽의 핀란드에서 남쪽의 루마니아까지 서유럽과 중부 유럽 그리고 잠재적인 볼셰비키의 영토 야망 사이의 전체 영토의 일부였다.[7][8]

발트 3국 모두 무혈 쿠데타 이후 권력을 잡은 국가 원수의 권위주의적 통치 시대를 경험했다. 리투아니아에서는 안타나스 스메토나( 1926년~1940년), 라트비아에서는 카를리스 울마니스( 1934년~1940년), 에스토니아에서는 "침묵의 시대"(1934년~1938년) 동안 콘스탄틴 페츠가 각각 그러했다. 리투아니아의 사건은 다른 두 국가와 달랐다는 점을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스메토나는 다른 동기가 있었고 라트비아나 에스토니아에서 그러한 사건이 발생하기 8년 전에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이었다. 핀란드에서는 상당한 정치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권위주의적 인물이 권력을 잡지 못했다. 하지만 1918년에 피비린내 나는 내전에 휘말렸는데, 이는 발트 국가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9]

1939년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에 따르면, "발트 국가(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는 독일과 소련의 "영향권"으로 분할되었다 (독일어 사본).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소불가침조약의 비밀 의정서를 계기로 1939년 가을, 소비에트 연방과 발트 3국은 상호 원조 조약을 체결했고, 소련군 주둔과 기지 설치가 허용되었다. 1940년 소비에트 연방에 병합되어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라트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라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서 연방 정부의 강력한 통제 아래 놓였다. 1941년에 시작된 독소전쟁으로 이 지역은 나치 독일의 지배를 받았으나, 1944년부터 1945년에 걸쳐 다시 소련에 점령되었다. 전후 소련은 전쟁 전 획득한 옛 폴란드 영토의 일부를 리투아니아에 편입시켰고, 현재의 발트 3국의 국경선이 확정되었다.[63]

2. 4. 소련 시대와 독립 회복

제2차 세계 대전독일-소련 불가침 조약의 비밀 의정서에 따라, 1939년 소련군동부 폴란드를 침공했고, 소련 정부는 발트 3국에 군사 기지 설치를 허용하는 "상호 원조 조약"을 강요했다. 1940년 6월, 소련군은 발트 3국을 점령하고 친소련 괴뢰 정부를 세웠다. 1940년 7월, 조작된 선거를 통해 구성된 세 국가의 "의회"는 만장일치로 소련 가입을 신청했고, 1940년 8월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라트비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소련에 편입되었다.[12][13]

이후 발트 지역에서는 탄압, 처형, 대규모 강제 이주가 이어졌다. 소련은 강제 이주 및 러시아어를 유일한 공용어로 지정하는 등의 방법으로 점령 지역을 소비에트화하려 했다. 1940년부터 1953년까지 20만 명 이상이 소련의 외딴 지역으로 강제 이주당했고, 최소 7만 5천 명이 굴락으로 보내졌다. 발트 지역 성인 인구의 약 10%가 강제 이주당하거나 노동 수용소로 보내졌다.[14]

1941년 나치 독일의 침공으로 소련 점령은 중단되었다. 많은 에스토니아인, 라트비아인, 리투아니아인은 독일군을 해방군으로 여겼지만, 나치는 ''라익스코미사리아트 오스트란트''라는 민정부를 설립했다. 나치는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의 유대인들을 격리구역에 가두고 학살했다.[15] 19만 명이 넘는 리투아니아 유대인(전쟁 전 리투아니아 유대인 공동체의 거의 95%)과 6만 6천 명의 라트비아 유대인이 학살당했다. 1944년 말(쿠를란트에서는 1945년 초) 소련군이 다시 점령하여 소련 통치가 재확립되었고, 미국영국얄타 회담포츠담 협정을 통해 이를 수동적으로 동의했다.

1947년 강제 집단화가 시작되어 1949년 3월 대규모 강제 이주(프리보이 작전) 후 완료되었다. 사유 농장은 몰수되었고 농민들은 집단 농장에 가입해야 했다. 세 나라에서 발트 게릴라(숲의 형제, 라트비아 민족 게릴라, 리투아니아 게릴라)는 8년 동안 소련 점령에 맞서 독립을 되찾기 위한 게릴라전을 벌였으나 실패했다. 반소 게릴라의 무장 저항은 1953년까지 지속되었다.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는 미국, 영국,[16] 캐나다, NATO 및 기타 여러 국가와 국제 기구에 의해 소련 점령하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17] 냉전 기간 동안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는 워싱턴 D.C.에 공관을, 에스토니아는 뉴욕시에 사무소를 두었다.[18]

1980년대 후반, 소련 지배에 대한 대규모 민중 저항 운동인 노래 혁명이 시작되었다. 1989년 8월 23일, 탈린에서 빌뉴스까지 600km에 이르는 200만 명의 인간 사슬인 발트의 길이 형성되었다. 고르바초프 정부는 발트 3국의 독립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19] 이 과정은 소련 해체에 기여했으며, 다른 소련 공화국들이 소련으로부터 분리 독립하는 선례를 남겼다. 소련은 1991년 9월 6일 발트 3국의 독립을 승인했다. 1993년 8월부터 (리투아니아부터 시작) 병력이 철수하기 시작했고, 1994년 8월 마지막 러시아군이 철수했다. 발트 3국에 남아 있던 마지막 러시아 군사 레이더인 Skrunda-1은 1998년 8월 공식적으로 운영을 중단했다.[20]

2. 5. 독립 이후의 발전과 과제

1990년 독립을 선언하고 1991년 9월 6일 소련이 독립을 인정한 후, 발트 3국은 1차대전2차대전 사이에 존재했던 독립국이 복원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냉전 시대 소련의 지배는 불법 점령이었다고 강조했다.[2] 이들은 자유 민주주의 의회 공화국으로서 시장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켰다.

2002년 발트 3국은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와 유럽 연합(EU) 가입을 신청하여 서유럽과의 통합이라는 오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2004년 3월 29일 NATO에, 2004년 5월 1일 EU에 가입했다.[2]

세 국가는 모두 4년 임기의 인민투표로 선출된 일원제 의회를 가진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에스토니아는 리이기코구, 라트비아는 사에이마, 리투아니아는 세이마스 의회를 두고 있다.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에서는 의회가 대통령을 선출하지만, 리투아니아는 대통령을 국민투표로 선출하는 준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다. 세 국가 모두 EU와 NATO의 회원국이다.

미국, 영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서방 민주주의 국가들은 발트 3국의 소련 강제 편입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이들 국가를 소련의 구성 요소로 간주하지 않았다.[21] 호주와 스웨덴은 예외적으로 소련의 지배를 인정했으나, 호주는 이후 의회에서 이 결정을 번복했다.[21][22]

독립 회복 후, 서유럽과의 통합은 발트 3국의 주요 전략적 목표였다.[2] 2004년, 발트 3국은 NATO와 EU에 동시 가입했다. 2007년 12월 21일 솅겐 조약을 시행하여 솅겐 지역에 편입되었다.

2011년 1월 1일 에스토니아가, 2014년 1월 1일 라트비아가, 2015년 1월 1일 리투아니아가 유로(евро)로 통화를 변경했다. 2010년 12월 9일 에스토니아, 2016년 7월 1일 라트비아, 2018년 7월 5일 리투아니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2023년 세 나라 모두 정부 수반이 여성이었으나,[69] 2024년 7월 23일 에스토니아의 카야 칼라스(Кая Каллас) 총리가 사임하여 여성 총리는 2명이 되었다.

3. 정치

1991년 소련 해체까지 발트 3국은 소련의 점령하에 있었다. 이들은 1990년에 독립을 선언하였으며 소련은 1991년 9월 6일 발트 3국의 독립을 인정하였다.[23]

발트 3국은 신생국이 아니라 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 존재했던 독립국이 복원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냉전 시대 소련의 지배가 불법 점령이었다는 주장을 강조한 것이다. 오늘날 발트 3국은 자유 민주주의 의회 공화국으로 시장 경제는 고속으로 발전하고 있다.

2002년 발트 3국은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와 유럽 연합(EU)에 가입을 신청하여 서유럽과의 통합이라는 목표 달성에 첫걸음을 내디뎠다. 2004년 3월 29일 북대서양 조약 기구에, 2004년 5월 1일에는 유럽 연합에 가입했다.[24]

발트 방위 대학(Baltic Defence College)은 전략 및 작전 연구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중·고급 장교 및 정부 관계자들에게 군사 교육을 제공한다.


1989년부터 1992년까지 발트 국가의 독립 투쟁 중 발트 외교 장관들과 북유럽 외교 장관들 사이에 개인적인 친분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친분은 1992년 발트해 연안 국가 이사회(Council of the Baltic Sea States)와 1993년 유로학부(EuroFaculty)의 설립으로 이어졌다.[23]

1994년부터 2004년까지 발트 3국은 EU 가입 준비를 위해 BAFTA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다.

현재 발트 3국의 정부는 대통령, 의회 의장, 정부 수반 및 외교 장관 간 협력을 포함하여 여러 방식으로 협력하고 있다. 1991년 11월 8일, 발트 의회(Baltic Assembly)가 설립되어 의회 간 협력을 촉진하였다. 1994년 6월 13일 발트 장관회의(Baltic Council of Ministers)가 설립되어 정부 간 협력을 촉진하고 있다. 2003년부터 두 조직 간의 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24]

북유럽 이사회(Nordic Council) 또는 비스그라드 그룹(Visegrád Group)과 같은 유럽의 다른 지역 그룹과 비교할 때 발트 협력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세 국가 모두 공동 재정적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설립된 북유럽 EU 국가들의 비공식 그룹인 신 한자 동맹(New Hanseatic League)의 회원이기도 하다.

세 국가 모두 일원적 단일 공화국이며, 2004년 5월 1일에 동시에 유럽 연합에 가입했고, EET/EEST 시간대와 유로 통화를 공유한다.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합계
국기
수도탈린리가빌뉴스
독립
정치 체제의원내각제의원내각제준대통령제 공화국
의회리이기코구사이마세이마스
현 대통령알라르 카리스에드가르스 린케비치스기타나스 나우세다
현 총리크리스텐 미할에비카 실리냐긴타우타스 팔루카스
최대 도시 지역[52]탈린 (638,076)리가 (927,953)빌뉴스 (747,864)
인구 (2023년 12월/2024년 1월)1,366,491[53]1,874,000[54]2,886,515[55]6,093,214
면적45339km264589km265300km2175228km2
인구 밀도30/km229/km244/km235/km2
수역 비율4.56%1.5%1.35%2.47%
GDP (명목) 총액 (2023)[56]376.82억유로403.1억유로720.48억유로1500.4억유로
GDP (명목) 1인당 (2023)[56]27590EUR21440EUR25070EUR24620EUR
군사 예산 (2023)10억유로[57]10억유로[58]20억유로[59]40억유로
지니 지수 (2020)[60]30.534.535.1
HDI (2022)0.899 (매우 높음)0.879 (매우 높음)0.879 (매우 높음)매우 높음
인터넷 TLD.ee.lv.lt
국가번호+372+371+370


4. 지리

발트 3국은 발트해 동부 연안의 저평한 지역을 차지하는 작은 나라들로, 세 나라의 면적을 모두 합쳐도 러시아의 100분의 1 가량에 불과하다. 지형은 대부분 매우 평탄하며, 가장 높은 곳도 300m 가량이다.

기후는 냉대에 속하여 춥고 긴 겨울을 가지고 있으나, 대서양발트해의 영향으로 위도에 비해서는 비교적 온화하여, 같은 위도의 러시아 내륙에 비해서는 훨씬 따뜻하다.

라트비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국립공원인 가우야 국립공원의 데본기 사암 절벽

5. 경제

발트 3국은 민주주의와 법치 국가로 전환하면서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예산 규칙, 국가 감사, 국가 통화, 중앙은행과 같은 주요 거시경제 요소들이 새로 만들어지거나 다시 편성되었다. 초기에는 높은 인플레이션, 실업률, 낮은 경제 성장, 높은 정부 부채 등의 문제가 있었지만, 2000년까지 인플레이션율이 5% 미만으로 빠르게 줄어들면서 경제가 안정되었다. 2004년에는 모두 유럽 연합에 가입했다.[27]

발트 지역별 1인당 GDP. 리투아니아와 에스토니아는 2022년, 라트비아는 2020년 데이터


빌뉴스 시내


리가 시내


빌뉴스 시내


탈린 시내


세 나라 모두 유럽 연합유로존 회원국이며, 세계은행에 의해 고소득 국가로 분류되고 높은 인간 개발 지수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OECD 회원국이기도 하다.[28] 에스토니아는 2011년 1월, 라트비아는 2014년 1월, 리투아니아는 2015년 1월에 유로를 도입했다.[29]

에너지 안보는 무정전 공급, 충분한 에너지 저장, 에너지 부문의 첨단 기술 개발, 환경 규제와 관련이 있다.[30] 발트 3국은 소련 시대의 영향으로 러시아로부터의 가스관과 석유 공급 경로를 가지고 있어 에너지 안보에 취약한 면이 있었다.[33] 그러나 2004년 EU 가입 이후, 유럽 연합 기후 및 에너지 패키지 등 EU 규정을 따르면서 에너지 안보를 개선하고 있다.[34]

2008년 이후 발트 3국의 에너지 안보 점수는 좋아졌다. 2006년 드루즈바 가스관 폐쇄 이후 석유 수입원을 다양화했고, EU 정책의 도움으로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였다.[30] 에스토니아는 에너지 안보 면에서 좋은 성과를 보였지만, 에너지 경제는 여전히 탄소 배출량이 높았다. 리투아니아는 탄소 배출량은 적었지만, 에너지 의존도는 여전히 높았다. 라트비아는 모든 지표에서 좋은 성과를 보였는데, 특히 지리적 위치와 자연 조건 덕분에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았다.[30]

에너지 안보의 잠재적 위협으로는 에너지 공급 중단, 단일 공급원(러시아) 의존, 낮은 기술 수준 등이 있었다.[32]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발트 3국은 1990년대 초부터 대체 에너지 공급 경로에 투자해 온 덕분에 중앙 및 동유럽에서 에너지 위기에 가장 잘 대처할 수 있는 국가 중 하나였다. 여기에는 부팅게 석유 터미널, 스웨덴, 핀란드, 폴란드와의 전력 연결, 클라이페다 LNG 터미널, 폴란드-리투아니아 가스 상호연결 등이 포함된다.[36]

6. 문화

발트 3국은 문화와 역사 면에서 공통점이 많지만, 사용하는 언어는 서로 다른 어족에 속한다. 라트비아어리투아니아어인도유럽어족발트어파에 속하지만, 에스토니아어우랄어족핀우그리아어파에 속해 핀란드어와 가깝다.

탈린(Tallinn)의 올라프 성당(St. Olaf's church)


종교 또한 서로 다른데, 라트비아에스토니아는 루터교가 중심이며, 이들 국가 내 러시아 정교를 믿는 러시아인 소수 집단이 있다. 리투아니아가톨릭 신자가 다수이다.

1992년, 발트 3국은 음악 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폴라음악상을 공동 수상했다.[40]

중세부터 오랫동안 발트 독일인과 19세기 이후 러시아인의 지배를 받으면서, 나이 든 세대 중에는 독일어러시아어를 제2언어로 구사하는 사람이 많다. 역사적으로 스웨덴, 폴란드, 러시아의 영향을 받았으며, 소련에 병합된 후에는 러시아인들이 대거 이주하여 소수 민족 집단을 형성하면서 민족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6. 1. 민족

에스토니아인들은 인근 핀란드인들과 함께 핀우그리아계 민족이다. 언어적, 문화적으로 서로 관련된 라트비아인리투아니아인은 발트계 인도유럽어족 민족이다. 라트비아에는 에스토니아인과 관련된 소규모 핀우그리아계 민족 공동체인 리보니아인이 250명 정도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은 소위 리보니아 해안에 살고 있다. 발트 국가의 여러 민족들은 수천 년 동안 발트해 동해안에 거주해 왔지만, 고대에는 항상 평화롭지는 않았으며, 그 기간 동안 에스토니아인, 라트비아인, 리투아니아인의 인구는 현재 발트 국가의 대략적인 영토 경계 내에서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이었다. 서로 다른 관습과 전통을 가진 별개의 민족이지만, 역사적 요인으로 인해 그들 사이에 문화적 유사점과 차이점이 생겨났다.[40]

발트 3국은 문화·역사적으로 공통점도 많지만 그들의 언어는 두개의 전혀 다른 어족에 속한다.

북유럽의 언어 분류.


각 발트 국가의 인구는 여러 기독교 종파에 속하며, 이는 역사적 상황을 반영한다. 서기 1000년대 말까지 서구 기독교와 동방 기독교가 모두 도입되었다. 현재 북쪽의 루터교와 남쪽의 가톨릭의 분열은 각각 스웨덴과 폴란드-리투아니아의 패권의 잔재이며, 정교회는 러시아인과 기타 동슬라브계 소수 민족 사이에서 주요 종교로 남아 있다.[40]

  •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는 개신교의 일파인 루터교 국가이다. 또 이들 국가에서 소수집단을 이루는 러시아인들은 러시아 정교 신자이다.
  • 리투아니아는 가톨릭 신자들이 주를 이룬다.


성 페테르스 루터 교회, 리가, 라트비아


발트 국가에는 여러 소수 민족이 거주한다. 라트비아에는 33.0%(25.4% 러시아인, 3.3% 벨라루스인, 2.2% 우크라이나인, 2.1% 폴란드인 포함)[37], 에스토니아에는 27.6%(22.0% 러시아인, 10.2% 기타 포함)[38], 리투아니아에는 12.2%(5.6% 폴란드인, 4.5% 러시아인 포함)[39]이다.

소련은 러시아인과 소비에트 연방의 다른 러시아어 사용 소수 민족이 발트 지역에 정착하도록 장려하는 러시아화 정책을 시행했다. 오늘날, 전 소비에트 연방 출신의 러시아 이민자와 그 후손들은 특히 라트비아(총 인구의 약 4분의 1, 수도 리가에서는 거의 절반에 가까움)와 에스토니아(총 인구의 약 4분의 1)에서 상당한 집단을 구성한다.

에스토니아인은 핀란드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민족이며, 에스토니아어는 핀란드어와 같은 우랄어족에 속한다. 반면 라트비아인리투아니아인은 발트족( 인도유럽어족 발트어파 사용자)이다. 리투아니아가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켜 온 것과 달리, 라트비아는 리보니아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민족의 각성은 19세기에 일어났다. 이들 각기 다른 문화를 공유하고 자립하게 만든 것은 중세 이후 정치적 지배를 해 온 소수민족인 발트 독일인이었다.

6. 2. 언어

발트 3국의 언어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어족에 속한다. 라트비아어리투아니아어인도유럽어족에 속하며, 발트어파(좀 더 구체적으로는 발트어파 동부 아그룹)의 현존하는 유일한 구성원이다. 라트갈리아어와 자모기티아 방언은 각각 라트비아어와 리투아니아어의 별개 언어 또는 방언으로 간주된다.[79][80]

에스토니아어(다른 방언인 뵈로어와 세토 방언 포함)는 이웃 국가인 핀란드의 핀란드어와 함께 핀우그리아어파에 속한다. 또한 라트비아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제2언어로 사용하는 거의 멸종된 리보니아어와도 관련이 있다.

빌뉴스, 리투아니아의 성 요한 교회


토착 언어 외에도, 저지작센어는 13세기부터 제1차 세계 대전까지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의 학계, 직업 생활 및 상류 사회에서 주요 언어였다. 폴란드어는 리투아니아에서 비슷한 역할을 했다. 많은 스웨덴어 차용어가 에스토니아어에 들어왔는데, 이는 17세기에 스웨덴 통치 아래 학교가 설립되고 교육이 보급되었기 때문이다. 스웨덴어는 특히 북부 에스토니아와 섬들의 에스토니아계 스웨덴인들이 사용하는 에스토니아 스웨덴어 방언을 중심으로 에스토니아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하지만 1944년 소련이 침공하여 재점령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스웨덴으로 피난했다). 또한 에스토니아어와의 언어적 연관성과 소련 시대 핀란드 방송의 광범위한 노출로 인해 에스토니아에서 핀란드어 사용 능력이 상당하다.

1944년부터 1991년까지 소련 통치 기간 동안 러시아어는 모든 수준의 학교에서 가장 흔하게 공부되는 외국어였다. 현지 언어로 교육과 행정이 이루어졌지만,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이주민들은 현지 공용어를 배우도록 장려하거나 동기를 부여받지 못했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어느 정도 아는 것이 러시아가 지배하는 도시 지역의 일상생활에서 실질적인 필요가 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에도 세 나라의 중장년층 대부분, 특히 소련 통치 시대에 학교에 다녔던 50세 이상의 사람들은 러시아어를 이해하고 말할 수 있다.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이민자들의 동화 또는 통합 문제는 현재 사회 및 외교 문제의 주요 요소이다.[41]

러시아의 영향력 감소와 유럽 연합 경제로의 통합 이후, 영어는 발트 3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제2언어가 되었다. 고령층 사이에서는 러시아어가 더 널리 사용되지만,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영어를 배우고 있으며, 리투아니아 젊은이 중 최대 80%가 영어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다른 발트 3국에서도 유사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42][43]

발트 로마니어는 로마족이 사용한다.

6. 3. 종교

발트 3국의 종교
국가종교
에스토니아루터교
라트비아루터교
리투아니아가톨릭



발트 3국은 기독교의 서로 다른 교파에 속해 있다.[65] 라트비아에스토니아개신교의 일파인 루터교 국가이다. 이들 국가에서 소수 집단을 이루는 러시아인들은 러시아 정교 신자이다. 리투아니아가톨릭 신자들이 주를 이룬다. 리투아니아는 과거 동일한 왕국을 형성했던 폴란드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에 국민 대부분이 로마 가톨릭 신자이다. 라트비아에서는 개신교 루터교가 많다.[65] 에스토니아에서는 국민의 절반 이상이 무종교이다.[66]

7. "구소련 국가" 표현 문제

앞서 "역사" 항목에서 설명했듯이, 발트 3국에서는 "옛 소련 국가"라는 표현이 금지되어 있다.

일본 뉴스 프로그램 TBS의 공식 트위터 계정인 "TBS NEWS"는 2022년 2월 24일, "옛 소련의 발트 3국 공동 성명 '러시아를 스위프트에서 배제' 촉구"라는 내용의 트윗을 게시했다.[70]

이에 대해 주일 에스토니아 대사관의 공식 트위터 계정 "Estonia in japan"은 "옛 소련 국가"라는 표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난했다.

: TBS님, 또입니까.. 이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옛 소련의 나라"라고 부르는 것을 그만해 주시겠습니까? 역사적으로나 법적으로 부정확한 호칭입니다. 발트 3국은 소련의 승계 국가가 아닙니다. 2월 24일 에스토니아 독립 104주년 기념일에, 더 이상 이런 호칭은 사용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71]

참고로, 자국의 국가명 표기에 대해 러시아어에서 유래한 명칭 "그루지아"를 버린 조지아(Georgia)의 주일 조지아 대사관은 에스토니아의 의견에 동조하며 다음과 같이 표명했다.

: 에스토니아님의 심정을 매우 잘 이해합니다…[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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