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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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산성은 백제가 하남 위례성을 도읍으로 정했을 때 도성을 지키기 위해 축조된 산성이다.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군사적 요충지로 활용되었으며, 특히 조선 숙종 때 대대적인 개축을 통해 석성으로 완성되었다. 14개의 성문과 다양한 군사 시설, 사찰 등이 갖춰져 있었으며, 현재는 일부 유적과 함께 대서문, 장대지 등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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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 | |
---|---|
위치 정보 | |
기본 정보 | |
이름 | 북한산성 |
한글 표기 | 북한산성 |
한자 표기 | 北漢山城 |
로마자 표기 | Bukhansanseong |
국문학 표기 | Pukhansŏng |
뜻 | 한강 북쪽 산의 요새 |
유형 | 한국의 성 |
위치 | 경기도/서울특별시, 대한민국 |
소재지 | 북한산국립공원 |
건설 시작 | 1711년 |
건축가 | 숙종 |
재료 | 화강암, 나무 |
높이 | 7m |
문화재 정보 | |
유형 | 사적 |
지정 번호 | 162 |
지정일 | 1968년 12월 5일 |
주소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산1-1번지 외 서울특별시 은평구, 성북구, 강북구, 도봉구 일원 |
시대 | 삼국시대~조선시대 |
관리 | 고양시 |
면적 | 515,224.9m2 |
문화재청 | 13,01620000,31 |
이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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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북한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오랜 역사를 지닌 중요한 요새였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차지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였던 곳이며, 백제가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했을 때 도성을 지키는 북방의 성으로 처음 축조되었다.
고려시대에는 11세기 초 거란의 침입이 있을 때 현종이 태조의 관을 이곳으로 옮기기도 했으며, 1232년에는 몽골군과의 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1387년에는 성을 다시 고쳐 쌓았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도성 외곽 방어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숙종 37년(1711년)에 대대적인 축성 공사가 이루어졌다. 이때 고려시대의 중흥산성을 바탕으로 토성을 석성으로 고쳐 쌓았으며, 14개의 성문과 3개의 장대, 행궁 등을 건립하였다.
북한산성 축성과 관련된 주요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연도 | 내용 |
---|---|
조선 문종 원년(1451) | 북한산을 비롯한 도성 주변지역에 대한 축성 논의 |
조선 선조 29년(1596) | 이덕형이 중흥산성을 돌아보고 옴 |
조선 효종 10년(1659) | 송시열에게 축성 계획을 전했으나 실행하지 못함 |
조선 숙종 28년(1702) | 우의정 신완이 성지 문제를 논의 |
조선 숙종 37년(1711) 4월 3일 | 축성 시작 |
조선 숙종 37년(1711) 8월 | 행궁영건청 설치 |
조선 숙종 37년(1711) 10월 | 완공 |
조선 숙종 38년(1712) 4월 | 숙종이 중성을 쌓도록 지시 |
조선 숙종 38년(1712) 5월 | 행궁 완공 |
조선 숙종 40년(1714) | 중성문 완성 |
조선 영조 36년(1760) | 소남문에 문루를 올림 |
조선 영조 41년(1765) | 소남문의 이름을 대남문으로 바꿈 |
1996년 | 서울대박물관에서 북한산성 지표조사 |
1999년 | 단국대학교 매장문화재연구소가 북한산성 행궁지 지표조사 |
2009년 | 경기문화재단 북한산성행궁지 종합정비 기본계획 발간 |
2011년 | 한울문화재연구원 고양 북한산성행궁지 시굴조사 |
이후 영조 때 소남문에 문루를 올리고 대남문으로 이름을 바꾸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2. 1. 삼국 시대
북한산성은 백제가 수도를 하남 위례성으로 정했을 때 도성을 지키던 북방의 성이다.[7] 개루왕 5년(132)에 처음 축조되었다.[7], [3] 백제는 한암의 위례성에 수도를 정했을 때 이 성을 수도 방어에 사용했다.[4] 이 지역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차지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였던 곳이다.[7]2. 2. 고려 시대
백제가 수도를 하남 위례성으로 정했을 때 도성을 지키던 북방의 성이다.[7] 11세기 초 거란의 침입이 있을 때 현종이 태조의 관을 이곳으로 옮겨 오기도 했다. 고려 고종 19년(1232)에 몽고군과의 격전이 있었고, 우왕 13년(1387)에 성을 다시 고쳐지었다.[7]2. 3. 조선 시대
조선 숙종 때인 1711년에 고려시대의 중흥산성을 바탕으로 축성된 산성이다. 14개의 문, 3개의 장대와 함께 유사시 어가를 북한산성으로 옮길 행궁을 건립하였다. 둘레는 7,620보(步)였다.수문부터 용암문까지 훈련도감에서, 용암문에서 대성문까지 금위영에서, 수문부터 대남문까지 어영청에서 각각 만들었다. 지형에 따라 성벽 없이 여장(女檣)만 쌓은 곳도 있는데, 그 길이는 1,457보이다.
1700년대에 지어진 요새로 6개의 성문, 8개의 비밀문, 2개의 수로로 구성되어 있다. 백제가 수도를 하남 위례성으로 정했을 때 도성을 지키던 북방의 성이었다.[7]
백제 개루왕 5년(132)에 세워진 곳으로, 11세기 초 거란의 침입이 있을 때 현종이 고려 태조의 관을 이곳으로 옮겨 오기도 했다. 고려 고종 19년(1232)에 몽골군과의 격전이 있었고, 고려 우왕 13년(1387)에 성을 다시 고쳐지었다. 조선시대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도성 외곽을 고쳐짓자는 의견이 일어나 숙종 37년(1711) 왕명으로 토성을 석성으로 고쳐지었다.[7]
성의 규모는 대서문, 동서문, 북문 등 13개의 성문과 불을 피우던 곳으로 동장대, 남장대, 북장대가 있었다. 성내에는 중흥사를 비롯한 12개의 사찰과 99개의 우물, 26개의 작은 저수지, 그리고 8개의 창고가 있었다. 현재 북한산성에는 삼국시대의 토성이 약간 남아 있기는 하나 대개 조선 숙종 때 쌓은 것으로 여장은 허물어 졌고, 대서문과 장대지·우물터·건물터로 생각되는 방어시설 일부가 남아있다.[7]
이 지역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차지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였던 곳이며, 조선시대에는 도성을 지키는 중요한 곳이었다.[7]
'''북한산성 축성 관련 연표'''
연도 | 내용 |
---|---|
조선 문종 원년(1451) | 북한산을 비롯한 도성 주변지역에 대한 축성을 논의 |
조선 선조 29년(1596) | 북한산성 축성논의에 따라 이덕형이 중흥산성을 돌아보고 옴 |
조선 효종 10년(1659) | 송시열에게 축성 계획을 전했으나 실행하지 못함 |
조선 숙종 28년(1702) | 우의정 신완(申玩)이 성지(城池) 문제를 논의 |
조선 숙종 37년(1711) 4월 3일 | 축성 시작 |
조선 숙종 37년(1711) 8월 | 행궁영건청 설치 |
조선 숙종 37년(1711) 10월 | 완공 |
조선 숙종 38년(1712) 4월 | 숙종이 중성을 쌓도록 지시 |
조선 숙종 38년(1712) 5월 | 행궁 완공 |
조선 숙종 40년(1714) | 중성문 완성 |
조선 영조 36년(1760) | 소남문에 문루를 올림 |
조선 영조 41년(1765) | 소남문의 이름을 대남문으로 바꿈 |
조선 숙종 때인 1711년에 중흥산성을 바탕으로 축성된 북한산성은 14개의 성문, 3개의 장대, 유사시 임금이 머무를 행궁을 포함하여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성벽의 전체 둘레는 7,620보(步)이며, 지형에 따라 성벽 없이 여장(女檣)만 쌓은 곳도 있는데, 그 길이는 1,457보이다.
3. 구조
북한산성의 건설은 삼군문(三軍門)이라 불리는 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 세 부대가 나누어 담당하였다. 수문부터 용암문까지는 훈련도감이, 용암문에서 대성문까지는 금위영이, 수문부터 대남문까지는 어영청이 각각 맡아 축성하였다.
북한산성에는 3개의 장대(지휘소)가 설치되어 있었다. 동장대는 시단봉 위에, 남장대는 나한봉 동북방향에, 북장대는 기린봉 위에 각각 위치하였다.
또한, 서암사 앞에 세심루, 중흥동 입구 계곡을 지나 용학사 앞에 항해루, 중흥사 앞에 산영루 등 3개의 누각이 있었다.
북한산성 내에는 행궁 1개소, 군창 3개소, 우물 99개소, 그리고 승병 주둔을 위한 13개의 사찰이 있었다.
3. 1. 성문
북한산성의 성문은 총 14개로, 크게 대문(大門)과 암문(暗門)으로 나뉜다. 대문은 성벽의 통행로 중 비교적 넓고 중요한 곳에 설치된 큰 문이며, 암문은 적에게 보이지 않도록 숨겨진 작은 문이다.
한국어 | 영어 | 분류 |
---|---|---|
대서문 | Dae-seo-mun | 대문 |
북문 | Buk-mun | 대문 |
중성문 | Jung-seong-mun | 대문 |
대동문 | Dae-dong-mun | 대문 |
대성문 | Dae-seong-mun | 대문 |
대남문 | Dae-nam-mun | 대문 |
수문 | Su-mun | 수문 겸 암문 |
서암문 | Seo-'am-mun | 암문 |
백운봉암문 | Baek-wun-bong-'am-mun | 암문 |
용암문 | Yong-'am-mun | 암문 |
보국문 | Bo-guk-mun | 암문 |
가사당암문 | Ga-sa-dang-'am-mun | 암문 |
부왕동암문 | Bu-wang-dong-'am-mun | 암문 |
청수동암문 | Chung-su-dong-'am-mun | 암문 |
각 성문은 위치한 봉우리나 고개 이름을 따서 불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소동문은 현재 대동문으로, 동암문은 보국문으로, 소남문은 대남문으로 불린다.
3. 2. 군사 시설
조선 숙종 때인 1711년에 중흥산성을 바탕으로 축성된 북한산성에는 다양한 군사 시설이 있었다. 14개의 성문, 3개의 장대, 유사시 임금이 머무를 행궁이 건립되었다.1700년대에 지어진 요새로 6개의 성문, 8개의 비밀문, 2개의 수로로 구성되어 있다. 성벽의 둘레는 7,620보(步)이며, 지형에 따라 성벽 없이 여장(女檣)만 쌓은 곳도 있는데, 그 길이는 1,457보이다.
- 누각 : 3개
- * 세심루 : 서암사 앞에 있다.
- * 항해루 : 중흥동 입구 계곡 지나서 있다(용학사 앞에 있다)
- * 산영루 : 중흥사 앞에 있다.
- 행궁
- 군창 : 3개
- 우물 : 99개
북한산성의 총 길이는 12.7km이며, 총 면적은 6.2km²이다. 성에는 큰 문 6개, 암문 8개, 수문 2개, 그리고 성랑(성랑, 초소) 143개가 있었다.
한국어 | 영어 | 분류 |
---|---|---|
북문 | Buk-mun | 북문 |
대서문 | Dae-seo-mun | 서대문 |
중성문 | Jung-seong-mun | 중성문 |
대동문 | Dae-dong-mun | 동대문 |
대성문 | Dae-seong-mun | 대성문 |
대남문 | Dae-nam-mun | 남대문 |
수문 | Su-mun | 수문 겸 암문 |
서암문 | Seo-'am-mun | 암문 |
백운봉암문 | Baek-wun-bong-'am-mun | 암문 |
용암문 | Yong-'am-mun | 암문 |
보국문 | Bo-guk-mun | 암문 |
가사당암문 | Ga-sa-dang-'am-mun | 암문 |
부왕동암문 | Bu-wang-dong-'am-mun | 암문 |
청수동암문 | Chung-su-dong-'am-mun | 암문 |
북한산성에는 행궁 1개, 장대(지휘소) 3개, 방어 목적으로 사용된 유영(군영) 3개가 있다. 북한산성에는 삼군문(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이라 불리는 세 개의 부대가 주둔했었다. 이들은 북한산성 내 세 곳에 주둔했으며, 이 부대들의 주요 임무는 북한산성의 방어였다.
한국어 | 영어 | 분류 |
---|---|---|
행궁 | Haeng-gung | 행궁 |
북장대지 | Buk-jang-dae-ji | 북장대 |
남장대지 | Nam-jang-dae-ji | 남장대 |
동장대 | Dong-jang-dae | 동장대 |
훈련도감 유영지 | Hun-ryeong-do-gam Yu-young-ji | 훈련도감 유영 |
금위영 유영지 | Geum-wei-young Yu-young-ji | 금위영 유영 |
어영청 유영지 | Eo-young-cheong Yu-young-ji | 어영청 유영 |
수문부터 용암문까지 훈련도감에서, 용암문에서 대성문까지 금위영에서, 수문부터 대남문까지 어영청에서 각각 만들었다.
북한산성 성벽 안에는 승병들을 위한 불교 사찰 13개가 세워졌으며, 무기고 7개, 우물 99개, 소규모 저수지 22개가 있었다.
3. 3. 기타 시설
북한산성에는 행궁 1개소, 장대 3개소, 유영(군영) 3개소가 있었다. 북한산성 내에는 삼군문(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이라 불리는 세 개의 다른 부대가 주둔했었다. 이들은 북한산성 내 세 곳에 주둔했으며, 이 부대들의 주요 임무는 북한산성의 방어였다.한국어 | 영어 | 분류 |
---|---|---|
행궁 | Haeng-gung | 행궁 |
북장대지 | Buk-jang-dae-ji | 북장대 |
남장대지 | Nam-jang-dae-ji | 남장대 |
동장대 | Dong-jang-dae | 동장대 |
훈련도감 유영지 | Hun-ryeong-do-gam Yu-young-ji | 훈련도감 유영 |
금위영 유영지 | Geum-wei-young Yu-young-ji | 금위영 유영 |
어영청 유영지 | Eo-young-cheong Yu-young-ji | 어영청 유영 |
또한 북한산성 성벽 안에는 승병들을 위한 불교 사찰 13개가 세워졌다. 오늘날에는 6개의 사찰만 남아 있지만, 모든 폐사지가 사적지로 지정되어 있다.
한국어 | 영어 | 분류 |
---|---|---|
중흥사(지) | Jung-heung-sa(ji) | 사찰 및 사적 |
서암사(지) | Seo-'am-sa(ji) | 사찰 및 사적 |
태고사 | Tae-go-sa | 사찰 |
상운사 | Sang-wun-sa | 사찰 |
진국사(노적사) | Jin-gook-sa(No-jeok-sa) | 사찰 (*재건 및 개명) |
봉성암 | Bong-seong-'am | 사찰 |
국녕사 | Guk-nyeong-sa | 사찰 |
용암사(지) | Yong-'am-sa(ji) | 사찰 및 사적 |
원각사(지) | Won-gak-sa(ji) | 사찰 및 사적 |
원효암 | Won-hyo-'am | 사찰 |
보광사(지) | Bo-gwang-sa(ji) | 사찰 및 사적 |
보국사(지) | Bo-guk-sa(ji) | 사찰 및 사적 |
부왕사(지) | Bu-wang-sa(ji) | 사찰 및 사적 |
누각은 3개가 있었는데, 서암사 앞에 세심루, 중흥동 입구 계곡 지나서(용학사 앞) 항해루, 중흥사 앞에 산영루가 있었다.
그 외에 북한산성 관할 아래에는 무기고 7개, 우물 99개, 소규모 저수지 22개가 있었다.
4. 유적
백제가 수도를 하남 위례성으로 정했을 때 도성을 지키던 북방의 성이다.[7] 백제 개루왕 5년(132)에 세워진 곳으로, 11세기 초 거란의 침입이 있을 때 현종이 태조의 관을 이곳으로 옮겨 오기도 했다. 고종 19년(1232)에 몽골군과의 격전이 있었고, 우왕 13년(1387)에 성을 다시 고쳐지었다. 조선 시대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도성 외곽을 고쳐짓자는 의견이 일어나 숙종 37년(1711) 왕명으로 토성을 석성으로 고쳐지었다.[7]
성의 규모는 대서문, 동서문, 북문 등 13개의 성문과 불을 피우던 곳으로 동장대, 남장대, 북장대가 있었다. 성내에는 중흥사를 비롯한 12개의 사찰과 99개의 우물, 26개의 작은 저수지, 그리고 8개의 창고가 있었다. 현재 북한산성에는 삼국시대의 토성이 약간 남아 있기는 하나 대개 조선 숙종 때 쌓은 것으로 여장은 허물어 졌고, 대서문과 장대지·우물터·건물터로 생각되는 방어시설 일부가 남아있다.[7]
이 지역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차지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였던 곳이며, 조선시대에는 도성을 지키는 중요한 곳이었다.[7]
- 북한산 승도절목 명문(北漢山 僧徒節目 銘文): 북한산 용학사 아래 비석거리 내 화강암 암벽에 새겨진 명문이다. 철종 6년(1855)에 북한산성 내의 사찰이 피폐하고 승도가 흩어짐이 승병대장인 총섭(總攝)의 책임인 바 그의 임용 시 폐단을 없애기 위한 규칙을 새겨 놓은 것이다. 규모는 가로 226.5cm, 세로 107.5cm이다.
- 북한산성 금위영 이건 기비(北漢山城 禁衛營 移建 記碑): 대동문 안에 있던 금위영을 숙종 41년(1715)에 보국사 아래로 옮긴 기념으로 세운 비석이다. 뒷면이 땅에 묻혀 있는 와비(臥碑)이다.
- 북한산성 금위영 유영지(北漢山城 禁衛營 留營址): 효율적인 산성 자치와 관리를 위하여 금위영 유영을 둔 터이다. 지금은 금위영이건기비를 비롯하여 가로 4m, 세로 2m 크기의 건물 기단, 주춧돌 9개, 돌계단 2개소, 장대석 7개, 석누조 1개, 무너진 담장터만이 남아 있다.
- 북한산성 어영청 유영지(北漢山城 御營廳 留營址): 대성문 안쪽에 어영청 유영을 두었던 터로, 19세기 말에 관리 소홀로 방치되다가 소멸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없으며 오래된 석축, 주춧돌, 돌담 등이 흩어져 있다.
- 북한산성 훈련도감 유영지(北漢山城 訓鍊都監 留營址): 효율적인 산성 자치와 관리를 위하여 훈련도감 유영을 둔 터이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없으며 총길이 200m, 높이 7m에 이르는 긴 석축과 각 건물에 사용되었던 주춧돌, 기단석, 대석과 우물, 연못자리 등이 남아 있다.
- 북한산성산영루지(北漢山城山映樓址): 북한산성 중흥사 앞에 위치해 있는 조선 후기의 누각으로, 산 그림자가 수면 위에 비치는 곳이라 하여 산영루라 이름 붙였다. 17세기 이전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며, 1915년과 1925년 홍수로 누각은 사라지고 초석 10매만이 남아 있다.
- 북한산성 상창지(北漢山城 上倉址): 조선 숙종 37년(1711) 북한산성 축성 이후 전란을 대비하여 양곡을 보관하던 창고터로 북한산성행궁 아래에 있다. 규모는 대청 18칸, 내아 12칸, 향미고 63칸, 군기고 3칸, 집사청 3칸, 군관청 4칸, 서원청 4칸, 고지기집 5칸, 월랑 2칸, 각문 7칸 정도였고, 19세기 말에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 북한산성 중창지(北漢山城 中倉址): 조선 숙종 37년(1711) 북한산성 축성 이후 전란을 대비하여 양곡을 보관하던 창고터로 중흥사 앞에 있다. 규모는 대청 6칸, 향미고 78칸, 고지기집 5칸, 대문 2칸 정도였고, 19세기 말에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 북한산성 하창지(北漢山城 下倉址): 조선 숙종 37년(1711) 북한산성 축성 이후 전란을 대비하여 양곡을 보관하던 창고터로 대서문 안에 있다. 규모는 대청 6칸, 향미고 34칸, 고지기집 8칸, 대문 2칸 정도였고, 19세기 말에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 북한산성 선정비군(北漢山城 善政碑群): 현존하고 있는 비의 숫자는 총 26기로 이 중에 옥개석을 모두 갖춘 것은 몇 기 되지 않으며 대부분 훼손된 상태이다. 비문에 새겨진 기록을 통해 본 비의 건립 시기는 모두 19세기 이후이다.
참조
[1]
뉴스
Lush trails for fall trekking season
http://koreajoongang[...]
2010-09-30
[2]
뉴스
Conquering the mountains of Seoul
http://koreajoongang[...]
2005-07-14
[3]
웹사이트
Bukhansanseong Fortress (북한산성)
https://english.visi[...]
Korea Tourism Organization
[4]
웹사이트
Bukhansanseong Fortress
http://english.cha.g[...]
Culture Heritage Administration Korea
[5]
서적
북한산 조사 연구 자료집
GeyongGi Cultural Foundation
2011-11-25
[6]
간행물
「북한산성」 관리단체 조정
문화재청장
2018-06-19
[7]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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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20개의 뉴스만 표기 됩니다. )
'한양의 수도성곽' 유네스코 세계유산 도전…등재 신청 대상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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