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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마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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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도 마태오는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세리였다가 예수의 부름을 받고 제자가 되었으며, 전통적으로는 《마태오 복음서》의 저자로 여겨진다. 마태오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생애와 관련하여 여러 전승이 존재한다. 그는 에티오피아에서 설교하다가 순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기독교 미술에서는 천사와 함께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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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마태오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성 마태오" (c. 1611) - 페테르 파울 루벤스
존경 대상가톨릭교회
동방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아시리아 동방교회
성공회
루터교
드루즈교
축일9월 21일 (서방 기독교)
10월 22일 (콥트 정교회)
11월 16일 (동방 기독교)
출생지가파르나움, 갈릴래아, 로마 제국
사망지에티오피아
칭호사도
복음사가
순교자
수호 대상회계사
살레르노, 이탈리아
은행가
오소르노, 칠레
세금 징수원
조향사
공무원
주요 저작마태오 복음서
이름
히브리어מַתִּתְיָהוּ (마티트야후), 단축형 מַתִּי (마티)
아람어ܡܰܬ݁ܰܝ (마타이)
그리스어Μαθθαῖος (마타이오스)
콥트어ⲙⲁⲧⲑⲉⲟⲥ (마테오스)
라틴어Matthaeus (마태우스)
의미YHWH의 선물
상징
상징물천사

2. 명칭

라틴어에서는 마타에우스(Matthaeusla), 프랑스어에서는 마티외(Matthieu프랑스어), 영어에서는 '''매튜'''(Matthew영어), 독일어에서는 마테우스(Matthäusde), 러시아어에서는 마트페이(Матфейru), 아랍어에서는 마타(مَتَّى, Mattā)[29]라고 한다. 일본어에서는 '마타이'와 함께 이탈리아어에서 유래한 '마테오'(Matteoit)라는 표기도 드물게 쓰인다. 일본 가톨릭 교회에서도 라틴어에 기반한 '마테오'라는 표기를 사용했다.[30] Matthaeus의 탈격형인 Mattaeo를 교회식 발음에 따라 가나 문자로 전사한 것이다. 일본 정교회에서는 러시아어에서 유래한 '마트페이'라는 표기를 사용한다.

3. 생애

마태는 갈릴리 태생으로, 마르코 복음서(마가복음서)와 루카 복음서(누가복음서)에서 레위라고도 불려 '레위 마태'가 본명으로 추정된다. 레위 지파 후손이자 알패오의 아들로, 카파르나움에서 로마 제국을 위해 세금을 걷는 세리였다. 그는 재물에 대한 욕심이 강해 유대인들의 긍지보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현실주의자였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죄인 취급받던 세리였던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고 제자가 되어 인생이 변화되었다.

1609년 아르메니아 복음서에 실린 삽화 속 마태오, 보들리언 도서관 소장


마태오 복음서 9장 9절[2]과 10장 3절[3]에서는 예수를 따르라는 부름을 받은 세리로 마태오를 언급하며, 카파르나움에서 "세관"에 앉아 있었다고 묘사한다.[4] 그는 열두 제자 중 한 명으로 언급되지만, 자세한 배경은 마르코 복음서 3장 18절, 루카 복음서 6장 15절, 사도행전 1장 13절에 등장한다.[5]

예수의 제자가 된 후, 마태오는 예수를 믿고 따르며 사도로서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겟세마니 동산에서 예수를 버리고 도망치기도 했지만,[39] 부활한 예수를 만나고 오순절성령 세례를 받은 후 사도로서 직분을 감당하게 되었다.

바빌로니아 탈무드 (산헤드린 43a)에서는 "마태"가 "예슈아"의 다섯 제자 중 한 명으로 언급된다. 이레네오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같은 초기 교부들은 마태오가 다른 나라로 가기 전에 유대 지역 사회에 복음을 전파했다고 전한다. 고대 작가들은 마태오가 선교한 나라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지만, 대부분 에티오피아를 언급한다.

여러 전승에 따르면 마태오는 유대를 순회하며 전도하다가 동방으로 갔다고 한다. 로마 순교록에는 그가 에티오피아에서 순교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다른 전승에 의하면 페르시아 지역에서 순교했다고도 한다. 그의 유해는 처음에 에티오피아에서 페스툼으로, 다시 10세기에 이탈리아의 살레르노로 옮겨졌다.

3. 1. 회심

마태는 갈릴리 태생으로, 마르코 복음서(마가복음서) 2장 14절[6], 루카 복음서(누가복음서) 5장 27절[7]에서 레위(Levi)라고 불리고 있어 ‘레위 마태’가 본명일 것으로 추측된다. 레위 지파의 후손이자 알패오의 아들(마르코 복음서 2장 14절)로, 처음에는 카파르나움에서 로마 제국을 위해 유대인들에게 세금을 걷는 세리로 일했다. 재물에 욕심이 많아 선민으로서의 긍지보다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현실주의자였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창녀, 죄인과 같이 천대받던 세리가 되어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모으는 데 급급했던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고 제자가 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복음주의 신학자 김회권 교수(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는 《청년설교》(복있는 사람)에서 마태의 회심을 진정한 만족을 주시는 분과의 만남으로 묘사한다. 예수를 만나기 전까지 재물에서 만족을 얻으려던 마태는 예수께서 전하시는 하나님나라 복음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고, 세상 재물에 쏟았던 마음이 예수에게로 옮겨갔다. 로마 제국의 하수인으로 일하며 불의하게 모은 재물로 큰 잔치를 벌여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자신이 받은 구원을 증거하며 예수를 소개하는 전도를 하기도 했다. 김동리사반의 십자가에서 마태가 예수와 이야기하며 위로받는 모습을 묘사하여 예수와 사회적 소외자들의 연대를 보여주었다.

마태오 복음서 9장 9절[2]과 10장 3절[3]에서는 예수를 따르라는 부름을 받은 세리 (성경의 신 국제 버전 및 다른 번역본)로 마태오를 언급하며, 카파르나움에서 "세관"에 앉아 있었다고 묘사한다.[4] 열두 제자 중 한 명으로 언급되지만, 마르코 복음서 3장 18절, 루카 복음서 6장 15절, 사도행전 1장 13절에는 배경에 대한 언급 없이 등장한다.[5]

마태오 복음서 9장 9절에 따르면, 로마 제국의 세리였으나, 예수의 소명에 응하여 제자가 되었다. 마르코 복음서 2장 13절 이하와 루카 복음서 5장 27절 이하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오지만, 부름받은 제자의 이름은 "알패오의 아들 레위" 또는 "레위"로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전통적으로 마태와 레위(레비)는 동일 인물로 해석된다.

3. 2. 사도로서의 활동

마태오는 예수를 전적으로 믿고 따르며 사도로서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겟세마니 동산에서 예수를 버리고 도망치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39] 하지만 부활한 예수를 만나고 오순절성령 세례를 받은 후, 비로소 사도로서 직분을 감당하게 되었다.

마태오 복음서 9장 9절에 따르면, 마태오는 로마 제국의 세리였으나 예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제자가 되었다. 마르코 복음서 2장 13절 이하와 루카 복음서 5장 27절 이하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오지만, 부름받은 제자의 이름은 "알패오의 아들 레위" 또는 "레위"로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전통적으로 마태오와 레위는 동일 인물로 여겨져 왔다.

예수의 제자가 된 이후, 성경에는 마태오의 말과 행동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사도행전에는 예수의 승천 후 1장 13절에서 이름이 언급된 11명의 사도 중 한 명으로 마태오의 이름이 나오며, 그 외에도 "열한 명"으로 표현된 1장 26절과 2장 14절에서 마태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바빌로니아 탈무드 (산헤드린 43a)에서는 "마태"가 "예슈아"의 다섯 제자 중 한 명으로 언급된다.

이레네오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같은 초기 교부들은 마태오가 다른 나라로 가기 전에 유대 지역 사회에 복음을 전파했다고 전한다. 고대 작가들은 마태오가 선교한 나라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지만, 대부분 에티오피아를 언급한다.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는 마태오가 순교자로 죽었다는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바빌로니아 탈무드는 산헤드린 43a에서 그의 처형을 보고하는 것으로 보인다.

교회 전통에 따르면, 마태오는 에티오피아에서 설교하던 중 에티오피아 왕 에기푸스의 딸인 에피게니아를 개종시키고 하나님께 봉헌했다.[8] 히르타쿠스 왕이 에기푸스를 계승하자, 마태오에게 에피게니아를 설득하여 자신과 결혼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마태오는 히르타쿠스 왕을 다음 주 일요일 전례에 초대하여, 에피게니아는 수녀이자 그리스도의 신부이므로 그녀를 탐낸다고 꾸짖었다. 분노한 왕은 경호원에게 제단에 서 있던 마태오를 죽이라고 명령하여, 마태오는 순교자가 되었다.[9]

여러 전승에 따르면 마태오는 유대를 순회하며 전도하다가 동방으로 갔다고 한다. 로마 순교록에는 그가 에티오피아에서 순교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다른 전승에 의하면 페르시아 지역에서 순교했다고도 한다. 그의 유해는 처음에 에티오피아에서 페스툼으로, 다시 10세기에 이탈리아의 살레르노로 옮겨졌다.

4. 마태오 복음서

렘브란트의 ''성 마태오와 천사''(1661)


비잔틴 제국 시대 그리스 아토스 산 힐란다르 수도원에 있는 마태오 복음사가 그림(14세기)


카밀로 루스코니의 ''성 마태오'' (1713–1715), 로마의 성 요한 대성전


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에 있는 6세기 사도 마태오 모자이크


3세기부터 나자렛파와 에비온파 같은 유대-기독교 집단에서 유대-기독교 복음서를 마태오가 썼다고 전해진다. 이 복음서들의 단편은 제롬, 살라미스의 에피파니우스 등의 인용문에서 발견된다. 학계에서는 슈네멜처의 신약 외경에 나오는 나사렛 복음서(36개 단편), 에비온파 복음서(7개 단편), 히브리 복음서(7개 단편) 구분을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비평가들은 대체로 이 텍스트들이 그리스어로 작성되었고 그리스어 마태오 복음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다만, 소수 비평가들은 이것이 소실된 아람어 또는 히브리어 원본의 단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가짜 마태오 복음서는 7세기에 야고보 복음서, 이집트 도피, 토마스 영아 복음서를 편집한 것이다.

제롬은 나자렛파가 자신들의 히브리 복음서를 마태오가 썼다고 믿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레네우스와 살라미스의 에피파니우스는 이를 성경 정경 복음서의 수정본으로 간주한다. 이 복음서는 교부들의 저작에서 부분적으로 보존되어 있으며, 마태오가 저술했다고 전해진다. 에피파니우스는 마태오가 히브리 복음서를 썼다는 주장을 직접 제기하지 않고, 이단인 에비온파의 주장이라고 언급한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9월 21일에 마태오 축일을 기념한다.[10]

4. 1. 저자 문제

전통적으로 교회에서는 교부들에 의해 세리 마태오를 마태오 복음서의 저자로 믿어왔지만, 성경학자들은 마태오 복음서의 저자를 헬라어 사용이 가능하고, 율법에 대해 잘 아는 익명의 유대 기독교인으로 이해하고 있다. 단지, 편의상 마태오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이다.[40] 마태오복음서 저술연대는 60년에서 90년, 80년에서 90년 등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해외에서 거주한 유대 기독교인과 이방 기독교인이 같이 신앙생활한 마태오공동체 신자들이 독자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41]

초기 교회 전승에 따르면, 마태오 복음서는 사도 마태오가 기록했다고 한다. 이 전승은 현존하는 1, 2세기 저작 중에서 초기 기독교 주교인 히에라폴리스의 파피아스에게서 처음 나타난다. 그는 교회 역사가인 에우세비우스(260년–340년)에 의해 "마태오는 히브리어Hebraïdi dialektōigrc로 어록[그리스어, logiagrc: 예수에 관한 또는 예수의 말씀]을 수집하여 각자 최선을 다해 해석hērmēneusengrc – 아마도 '번역']했다."라고 인용된다. 마찬가지로, 초기 기독교 신학자인 오리게네스(184년–253년)는 첫 번째 복음서가 마태오에 의해 기록되었고, 그의 복음서는 예루살렘 근처에서 히브리 기독교인들을 위해 히브리어로 작성되어 그리스어로 번역되었다고 언급한다. 히브리어 원본은 카이사레아 도서관에 보관되었다. 4세기 말이나 5세기 초에 나사렛 공동체는 제롬을 위해 사본을 필사했고, 그는 자신의 저작에 사용했다.[11] 이 복음서는 히브리인의 복음서 또는 때로는 사도들의 복음서라고 불렸으며, 한때 성경에서 발견된 '그리스어 마태오'의 원본이라고 믿어졌다. 그러나 이것은 바트 D. 에르만과 제임스 R. 에드워즈와 같은 현대 성서학자들에 의해 이의가 제기되었다.

대부분의 현대 학자들은 마태오 복음서가 익명으로 기록되었으며 마태오가 기록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본문 내에 이름이 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학자들은 "마태오에 따르면"이라는 표제가 2세기에 추가되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미주리 시노드 루터교회는 9월 21일에 마태오 축일을 기념한다.

신약성경』에 수록된 4개의 복음서 중 『공관 복음서』 3서는 본문에 기록자의 이름이 없으며, 마태오, 마르코, 루카라는 각 기록자의 이름은 2세기에 나타나는 것으로,[32] 누가 썼는지는 불분명하다. 기독교 교회에서는 고대부터 전통적으로 『마태오 복음서』의 기록자를 사도 마태오로 간주해 왔다. 히에라폴리스 교회의 주교 파피아스의 2세기 발언 "마태오는 히브리어로 말씀(타 로기야)을 편찬했다. 그러나 각 사람이 가능한 대로 번역했다"가 "교회사 아버지" 4세기의 에우세비우스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33] 그러나 근대 이후의 성서학에서는 사도 마태오와 복음사가 마태오는 다른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설이 유력하다.[34][35] 마태오라는 이름은 아람어 기원으로, 사도 마태오가 초기 교단 내의 히브리즘의 중심 인물 중 한 명이었던 것이 복음사가 전승에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시사된다. 한편 현대의 기독교 교회 내에서 성서 신앙의 복음주의 등, 사도 마태오가 『마태오 복음서』의 기록자라고 이해하는[36] 입장도 있다.

4. 2. 저술 연대 및 배경

전통적으로 교회에서는 교부들에 의해 세리 마태오를 마태오 복음서의 저자로 믿어왔지만, 성경학자들은 마태오 복음서의 저자를 헬라어 사용이 가능하고, 율법에 대해 잘 아는 익명의 유대 기독교인으로 이해하고 있다. 단지, 편의상 마태오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이다.[40] 마태오복음서 저술 연대는 60년에서 90년, 80년에서 90년 등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해외에서 거주한 유대 기독교인과 이방 기독교인이 같이 신앙생활한 마태오공동체 신자들이 독자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41]

초기 교회 전승에 따르면, 마태오 복음서는 사도 마태오가 기록했다고 한다. 이 전승은 현존하는 1, 2세기 저작 중에서 초기 기독교 주교인 히에라폴리스의 파피아스에게서 처음 나타나는데, 그는 교회 역사가인 에우세비우스(260년~340년)에 의해 다음과 같이 인용된다. "마태오는 히브리어[Hebraïdi dialektōigrc]로 어록[그리스어, logiagrc: 예수에 관한 또는 예수의 말씀]을 수집하여 각자 최선을 다해 해석[hērmēneusengrc – 아마도 '번역']했다." 마찬가지로, 초기 기독교 신학자인 오리게네스(184년~253년)는 첫 번째 복음서가 마태오에 의해 기록되었고, 그의 복음서는 예루살렘 근처에서 히브리 기독교인들을 위해 히브리어로 작성되어 그리스어로 번역되었다고 언급한다. 히브리어 원본은 카이사레아 도서관에 보관되었다. 4세기 말이나 5세기 초에 나사렛 공동체는 제롬을 위해 사본을 필사했고, 그는 자신의 저작에 사용했다. 이 복음서는 히브리인의 복음서 또는 때로는 사도들의 복음서라고 불렸으며, 한때 성경에서 발견된 '그리스어 마태오'의 원본이라고 믿어졌다. 그러나 이것은 바트 D. 에르만과 제임스 R. 에드워즈와 같은 현대 성서학자들에 의해 이의가 제기되었다.

대부분의 현대 학자들은 마태오 복음서가 익명으로 기록되었으며 마태오가 기록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본문 내에 이름이 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학자들은 "마태오에 따르면"이라는 표제가 2세기에 추가되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신약성경』에 수록된 4개의 복음서 중 『공관 복음서』 3서는 본문에 기록자의 이름이 없으며, 마태오, 마르코, 루카라는 각 기록자의 이름은 2세기에 나타나는 것으로[32], 누가 썼는지는 불분명하다. 기독교 교회에서는 고대부터 전통적으로 『마태오 복음서』의 기록자를 사도 마태오로 간주해 왔다. 히에라폴리스 교회의 주교 파피아스의 2세기 발언 "마태오는 히브리어로 말씀(타 로기야)을 편찬했다. 그러나 각 사람이 가능한 대로 번역했다"가 "교회사 아버지" 4세기의 에우세비우스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33]. 그러나 근대 이후의 성서학에서는 사도 마태오와 복음사가 마태오는 다른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설이 유력하다.[34][35]. 마태오라는 이름은 아람어 기원으로, 사도 마태오가 초기 교단 내의 히브리즘의 중심 인물 중 한 명이었던 것이 복음사가 전승에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시사된다. 한편 현대의 기독교 교회 내에서 성서 신앙의 복음주의 등, 사도 마태오가 『마태오 복음서』의 기록자라고 이해하는[36] 입장도 있다.

4. 3. 신학적 특징

초기 교회 전승에 따르면, 마태오 복음서는 사도 마태오가 기록했다고 한다. 이 전승은 현존하는 1, 2세기 저작 중에서 초기 기독교 주교인 히에라폴리스의 파피아스에게서 처음 나타나는데,[33] 그는 교회 역사가인 에우세비우스에 의해 다음과 같이 인용된다. "마태오는 히브리어(Hebraïdi dialektōigrc)로 어록[그리스어, logiagrc: 예수에 관한 또는 예수의 말씀]을 수집하여 각자 최선을 다해 해석(hērmēneusengrc – 아마도 '번역')했다."[33] 마찬가지로, 초기 기독교 신학자인 오리게네스는 첫 번째 복음서가 마태오에 의해 기록되었고,[36] 그의 복음서는 예루살렘 근처에서 히브리 기독교인들을 위해 히브리어로 작성되어 그리스어로 번역되었다고 언급한다. 히브리어 원본은 카이사레아 도서관에 보관되었다. 4세기 말이나 5세기 초에 나사렛 공동체는 제롬을 위해 사본을 필사했고,[34] 그는 자신의 저작에 사용했다.[35] 이 복음서는 히브리인의 복음서[34] 또는 때로는 사도들의 복음서라고 불렸으며, 한때 성경에서 발견된 '그리스어 마태오'의 원본이라고 믿어졌다. 그러나 이것은 바트 D. 에르만과 제임스 R. 에드워즈와 같은 현대 성서학자들에 의해 이의가 제기되었다.

대부분의 현대 학자들은 마태오 복음서가 익명으로 기록되었으며 마태오가 기록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본문 내에 이름이 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학자들은 "마태오에 따르면"이라는 표제가 2세기에 추가되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마태오는 동방 정교회에서 성인으로 존경받으며, 축일은 다음과 같다.

날짜내용
6월 30일 (7월 13일)열두 사도 대축일.[13]
11월 16일 (11월 29일)축일.[14]



신약성경』에 수록된 4개의 복음서 중 『공관 복음서』 3서는 본문에 기록자의 이름이 없으며, 마태오, 마르코, 루카라는 각 기록자의 이름은 2세기에 나타나는 것으로[32], 누가 썼는지는 불분명하다. 기독교 교회에서는 고대부터 전통적으로 『마태오 복음서』의 기록자를 사도 마태오로 간주해 왔다. 히에라폴리스 교회의 주교의 2세기 발언 "마태오는 히브리어로 말씀(타 로기야)을 편찬했다. 그러나 각 사람이 가능한 대로 번역했다"가 "교회사 아버지" 4세기의 에우세비우스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33] 그러나 근대 이후의 성서학에서는 사도 마태오와 복음사가 마태오는 다른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설이 유력하다.[34][35] 마태오라는 이름은 아람어 기원으로, 사도 마태오가 초기 교단 내의 히브리즘의 중심 인물 중 한 명이었던 것이 복음사가 전승에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시사된다. 한편 현대의 기독교 교회 내에서 성서 신앙의 복음주의 등, 사도 마태오가 『마태오 복음서』의 기록자라고 이해하는[36] 입장도 있다.

5. 다양한 관점

마태오는 로마 가톨릭, 동방 정교회, 루터교, 성공회에서 성인으로 존경받고 있다. 그의 무덤은 이탈리아 남부에 있는 살레르노 대성당 지하 묘지에 있다.

5. 1. 이슬람

코란은 예수의 제자들에 대해 언급하지만, 그들의 이름은 언급하지 않고 대신 "알라의 일에 협력하는 자들"이라고 지칭한다.[16] 그러나 무슬림 주석과 코란 해설에서는 그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마태오를 제자들 중 하나로 포함한다. 무슬림 주석은 마태오와 안드레아가 에티오피아로 가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한 두 제자였다는 전승을 보존하고 있다.

5. 2. 드루즈교

드루즈 전통은 여러 "멘토"와 "예언자"를 존경하며, 사도 마태오는 예언자로 존경받는다. 드루즈 전통과 교리에 따르면, 사도 마태오는 영적인 지식과 지도에 기여한 공로로 존경받는다. 드루즈 교리는 기독교가 "존경받고 칭찬받아야" 한다고 가르치며, 복음서 저자들은 "지혜의 전달자"로 여겨진다.[17]

드루즈 신앙에서 숫자 5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이 지역에서는 5명의 위대한 예언자가 한 그룹으로 온다고 믿는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피타고라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파르메니데스, 엠페도클레스가 이 다섯 명으로 대표되었다. 1세기에는 예수 그리스도,[18][19] 세례자 요한,[20] 성 마태오, 마르코, 루카가 이 다섯 명으로 대표되었다. 드루즈 신앙 창시 시대에는 함자 이븐 알리 이븐 아흐마드, 무함마드 이븐 와합 알-쿠라시, 아부 알-카이르 살라마 이븐 압드 알-와합 알-사무리, 이스마일 이븐 무함마드 앗-타미미, 알-무크타나 바하우딘이 다섯 명이었다.

6. 예술 작품 속 마태오

다른 복음사가들과 마찬가지로, 마태오는 종종 기독교 미술에서 요한의 묵시록 4:7에 나오는 네 생물 중 하나와 함께 묘사된다.[15] 그를 따르는 것은 날개 달린 사람의 모습이다. 마태오가 세리로서의 직업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소명받는 모습으로 묘사된, 로마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에 있는 카라바조의 마태오 그림 세 점은 서양 미술의 랜드마크 중 하나이다.

성 마태오를 부르심, 카라바조


나자렛의 수태고지 대성당에는 사도 마태오와 에티오피아의 에글리푸스 왕과 그의 아들들에 관한 이야기가 묘사된 주두가 있다. 그것은 마태오가 주두의 가장 먼 구석에 있는 악마로부터 그들을 이끄는 모습을 보여준다. 성경 이야기는 마태오가 왕과 그의 아들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것에 대해 말한다. 이 주두는 마태오가 성경에서 수행한 행위를 묘사할 뿐만 아니라 마태오가 순교자가 될 것을 예고한다. 사도 마태오가 살해되었을 때, 그는 신앙과 가르침 때문에 살해당한 기독교 종교의 순교자가 되었다. 이 주두의 도상학은 당시 기독교가 막 시작되던 시대의 종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것은 에티오피아와 나자렛 사이의 교차점을 보여주는데, 이곳이 바로 오늘날 주두가 있는 곳이다.[21][22][23][24][25][26]

무굴 제국 왕을 위해 케수 다스가 제작한 이슬람 미니어처 ''천사가 두루마리를 들고 사도 마태오가 복음을 기록하는 모습''


1620–1630년, 귀도 레니의 ''사도 마태오와 천사''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 있는 성 마태오 독일 복음주의 루터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로 묘사된 사도 마태오


성 마태와 천사 (지롤라모 사볼도, 1529년경)


마태오를 그린 미술 작품으로는 특히 카라바조의 작품이 유명하다. 마태오는 종종 천사와 함께 묘사된다. 이는 《에제키엘서》 제1장에 등장하는 생물이 가진 네 개의 얼굴인 천사(날개 달린 인간), 사자, 황소, 독수리를 각각 각 복음사가의 아테리뷰트 (상징)로 삼는 기독교 전통에 따른 것이다. 사자는 마르코, 황소는 루가, 독수리는 요한의 아테리뷰트이다.[37] 마태오의 아테리뷰트로는 천사 외에 지갑, 복음서, 요람 속의 아기, 창, 도끼가 있다.[37]

정교회에서는 이코노스타시스 (이콘을 거는 칸막이)의 "왕문" 또는 "아름다움의 문"이라고 불리는 출입구 문에 마태오를 포함한 복음사가의 이콘을 건다.[38]

참조

[1] 서적 The A to Z of the Druzes Rowman & Littlefield
[2]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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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경
[5] 성경
[6]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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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문서 The Golden Legend of Jacobus de Voragine Arno Press: Longmans, Green & Co
[9] 간행물 St. Hilarion Calendar of Saints for the year of our Lord 2004 St. Hilarion Press (Austin, TX)
[10] 웹사이트 Saint Matthew, Apostle, Evangelist https://www.universa[...] 2024-11-27
[11] 웹사이트 Feasts and Festivals https://www.lcms.org[...] 2024-11-27
[12] 웹사이트 The Calendar https://www.churchof[...] 2024-11-27
[13] 웹사이트 Synaxis of the Holy, Glorious and All-Praised Twelve Apostles https://www.oca.org/[...] 2024-11-27
[14] 웹사이트 Apostle and Evangelist Matthew https://www.oca.org/[...] 2024-11-27
[15]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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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잡지 On the Horizon: The Strange World of the Druzes https://www.commenta[...] 1956-01-20
[18] 서적 The Origins of the Druze People and Religion: With Extracts from Their Sacred Writings Library of Alexandria
[19] 서적 The Druze in the Middle East: Their Faith, Leadership, Identity and Status Michigan University press
[20] 서적 Historical Dictionary of the Druzes Rowman & Littlefield
[21] 웹사이트 Cathedral of St. Matthew the Apostle, Washington, D.C. http://www.stmatthew[...] Stmatthewscathedral.org 2013-09-21
[22] 웹사이트 Saint Matthew https://www.francisc[...] Franciscan Media 2020-09-21
[23] 웹사이트 The Calendar https://www.churchof[...] 2021-03-27
[24] 학술지 Pleasurable Perplexity: Reflecting the Holy City https://www.jstor.or[...] 2018
[25] 학술논문 "The Contrasted `Other' in the Old English Apocryphal Acts of Matthew, Simon and Jude."
[26] 학술논문 "The Central Synagogue of Nazareth Illit and its Architectural Dialogue with Nazareth's Basilica of the Annunciation."
[27] 백과사전 マタイ 研究社
[28] 문서
[29] 웹사이트 المعاني : معاني الأسماء - متى https://www.almaany.[...] 2024-03-08
[30] 서적 キリスト教史 11 現代に生きる教会 平凡社ライブラリー
[31] 백과사전 マタイ https://kotobank.jp/[...] コトバンク
[32] 백과사전 イエス・キリスト https://kod.kenkyush[...]
[33] 서적 解説 岩波文庫
[34] 백과사전 マタイ https://kotobank.jp/[...] 小学館
[35] 백과사전 マタイ伝福音書 https://kotobank.jp/[...] 小学館
[36] 서적 聖書の概説 羊群社
[37] 간행물 アトリビュート 研究社Online Dictionary 2021-06-30
[38] 웹사이트 イコン https://kotobank.jp/[...] 平凡社 2024-06-10
[39] 성경 마가복음 14장 50절
[40] 서적 마태오복음서 분도출판사
[41] 서적 복음서와 시간 생활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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