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타임라인 바로가기

서석구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타임라인 바로가기

1. 개요

서석구는 대한민국의 변호사이다. 경북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1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판사로 재직했으며, 1983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했다. 1980년대에는 진보주의 성향의 법조인이었으나, 1990년대 중반 보수주의로 전향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과정에서 대통령 대리인단을 맡았으며,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침투설을 주장하는 등 논란이 있었다. 또한, 로마 가톨릭교회 신자이며 보수적인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사형존치론자 - 하시모토 도루
    하시모토 도루는 1969년 도쿄에서 태어나 변호사, 방송인으로 활동하다 2008년 오사카부 지사를 시작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오사카 시장을 역임하며 여러 정책을 추진하고 논란을 일으킨 일본의 정치인이다.
  • 자유공화당 당원 - 조원진
    조원진은 한국외대 졸업 후 대우그룹에서 근무하다 2008년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하여 3선 의원을 지냈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운동을 주도했으며 대한애국당을 창당했으나 21대 총선에서 낙선, 막말 논란 등 사회적 논쟁을 일으킨 정치인이다.
  • 자유공화당 당원 - 권석창
    권석창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제20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새누리당 원내부대표를 역임했으며, 해양수산부 및 국토교통부에서 요직을 거쳐 대통령비서실 공공개혁국장을 역임했고, 불법 선거운동 혐의와 화재 참사 현장 부적절 행동 논란 후 우리공화당 사무총장을 거쳐 현재 세명대학교 초빙교수 및 법무법인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 새누리당 (2017년) 당원 - 조원진
    조원진은 한국외대 졸업 후 대우그룹에서 근무하다 2008년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하여 3선 의원을 지냈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운동을 주도했으며 대한애국당을 창당했으나 21대 총선에서 낙선, 막말 논란 등 사회적 논쟁을 일으킨 정치인이다.
  • 새누리당 (2017년) 당원 - 권영해 (1937년)
    권영해는 대한민국 육군 소장으로 예편하여 국방부 기획관리실 실장, 국방부 차관, 국방부 장관, 국가안전기획부 부장을 역임하고, 한국야구위원회 총재와 여러 정당의 당무위원, 최고위원, 상임고문을 지냈다.
서석구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서석구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대리인을 맡은 서석구 변호사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심판 대리인을 맡은 서석구 변호사
원어명徐錫九
출생일1944년 1월 23일
출생지일제강점기 경상북도 대구
국적대한민국
본관달성(達城)
종교천주교(세례명: 빈첸시오)
소속 기관법무법인 영남 대표 변호사
직책대한민국 경상남도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 예하 판사
정치 경력
정당우리공화당
경력자유민주연합 당무위원(1995년)
한나라당 당무위원(2001년)
새누리당 당무위원(2017년)
대한애국당 당무위원(2017년)
자유공화당 당무위원
법조 경력
임기1982년 6월 2일 ~ 1982년 12월 6일
대통령전두환
총리유창순 국무총리
김상협 국무총리 서리
김상협 국무총리
장관정치근 법무부 장관
배명인 법무부 장관
차관이영욱 법무부 차관
정해창 법무부 차관
학력
학력경북대학교 법학과 학사

2. 생애

계성고등학교 졸업을 거쳐 경북대학교 법학과에서 법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1971년 제1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3기 과정을 수료한 이후에는 대구지방법원, 광주지방법원,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부산지방법원,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에서 판사로 재직했고 1981년부터 1982년까지 부림 사건의 주심 판사를 맡았다.

1982년에 판사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1983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했다. 1987년에는 대구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들이 발표한 4·13 호헌 조치 규탄 성명에 참여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는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대표, 대구YMCA 이사, 낙동강살리기운동협의회 집행위원장, 대구사회연구소 이사장 등 대구광역시, 경상북도의 여러 시민 단체에서 주요 직책을 맡았다.

1980년대에는 대구광역시, 경상북도에서 활동하던 운동권 인사의 변론을 도맡았을 정도로 진보주의 성향의 법조인이었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운동권과 결별하면서 보수주의 성향으로 전향하게 된다. 그 외에 대구지방변호사회 총무이사, 대구지방변호사회 부회장, 대한변호사협회 총무이사,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한미우호증진협의회 한국본부 대표, 대한민국정체성수호포럼 공동대표, 미래포럼 상임대표 등을 역임했다.

2013년에는 자신의 SNS에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김성환 노원구청장을 종북주의 성향의 지방자치단체장으로 비난하여 2014년 지방 선거(대한민국 제6회 지방 선거)에서 퇴출시켜야한다는 글을 올려 명예훼손, 모욕 등의 혐의로 인한 민·형사상 고소를 당했던 정미홍의 소송을 담당했다. 정미홍은 서석구, 전원책 등 8명의 변호사로 구성된 변호인단을 통해 재판에 나섰지만 패소했고 법원으로부터 벌금형을 선고받게 된다. 2015년에는 사단법인 대한민국사랑회로부터 제8회 우남 이승만 애국상을 수상했다. 대한민국 어버이연합 법률고문으로 재직 중이던 2016년에는 어버이연합에 대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자금 지원 의혹, 청와대의 어버이연합 개입 의혹을 적극 반박했다.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에 참여했으며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과정에서 김평우 등과 함께 피청구인 박근혜 대통령의 대리인단을 맡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에는 지만원과 함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침투설을 주장했다. 또한 유네스코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 결정에 항의하여 지만원과 함께 유네스코 본부를 방문하여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그 외에 대한애국당 산하 천만인무죄석방본부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2. 1. 판사 및 변호사 활동

계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북대학교 법학과에서 법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1971년 제1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3기 과정을 수료하고 대구지방법원, 광주지방법원,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부산지방법원,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에서 판사로 재직했다. 1981년부터 1982년까지 부림 사건의 주심 판사를 맡았다.

1982년에 판사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1983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했다. 1987년에는 대구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들이 발표한 4·13 호헌 조치 규탄 성명에 참여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대표, 대구YMCA 이사, 낙동강살리기운동협의회 집행위원장, 대구사회연구소 이사장 등 대구광역시, 경상북도의 여러 시민 단체에서 주요 직책을 맡았다.

1980년대에는 대구광역시, 경상북도에서 활동하던 운동권 인사의 변론을 도맡았을 정도로 진보주의 성향의 법조인이었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운동권과 결별하면서 보수주의 성향으로 전향하게 된다. 대구지방변호사회 총무이사, 대구지방변호사회 부회장, 대한변호사협회 총무이사,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한미우호증진협의회 한국본부 대표, 대한민국정체성수호포럼 공동대표, 미래포럼 상임대표 등을 역임했다.

2013년에는 자신의 SNS에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김성환 노원구청장을 종북주의 성향의 지방자치단체장으로 비난하여 2014년 지방 선거(대한민국 제6회 지방 선거)에서 퇴출시켜야한다는 글을 올려 명예훼손, 모욕 등의 혐의로 인한 민·형사상 고소를 당했던 정미홍의 소송을 담당했다. 정미홍은 서석구, 전원책 등 8명의 변호사로 구성된 변호인단을 통해 재판에 나섰지만 패소했고 법원으로부터 벌금형을 선고받게 된다. 2015년에는 사단법인 대한민국사랑회로부터 제8회 우남 이승만 애국상을 수상했다. 대한민국 어버이연합 법률고문으로 재직 중이던 2016년에는 어버이연합에 대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자금 지원 의혹, 청와대의 어버이연합 개입 의혹을 적극 반박했다.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에 참여했으며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과정에서 김평우 등과 함께 피청구인 박근혜 대통령의 대리인단을 맡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에는 지만원과 함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침투설을 주장했다. 또한 유네스코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 결정에 항의하여 지만원과 함께 유네스코 본부를 방문하여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그 외에 대한애국당 산하 천만인무죄석방본부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2. 2. 시민 운동

2. 3. 보수 성향으로 전향

서석구는 1980년대에는 대구광역시, 경상북도에서 활동하던 운동권 인사의 변론을 도맡았을 정도로 진보주의 성향의 법조인이었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운동권과 결별하면서 보수주의 성향으로 전향하게 된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는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대표, 대구YMCA 이사, 낙동강살리기운동협의회 집행위원장, 대구사회연구소 이사장 등 대구광역시, 경상북도의 여러 시민 단체에서 주요 직책을 맡았다. 1987년에는 대구지방변호사회 소속 변호사들이 발표한 4·13 호헌 조치 규탄 성명에 참여했다.

2. 4.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변호

경북대학교 법학과에서 법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1971년 제1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3기 과정을 수료한 이후에는 대구지방법원, 광주지방법원,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부산지방법원,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에서 판사로 재직했다. 1981년부터 1982년까지 부림 사건의 주심 판사를 맡았다.

1982년에 판사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1983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했다. 1980년대에는 대구광역시, 경상북도에서 활동하던 운동권 인사의 변론을 도맡았을 정도로 진보주의 성향의 법조인이었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운동권과 결별하면서 보수주의 성향으로 전향하게 된다.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시위에 참여했으며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과정에서 김평우 등과 함께 피청구인 박근혜 대통령의 대리인단을 맡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에는 지만원과 함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침투설을 주장했다. 또한 유네스코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 결정에 항의하여 지만원과 함께 유네스코 본부를 방문하여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그 외에 대한애국당 산하 천만인무죄석방본부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2. 5. 극우 활동 및 논란

3. 종교

서석구는 로마 가톨릭교회 신자이며 세례명은 '''빈첸시오'''(Vincentius)이다. 보수주의 성향의 로마 가톨릭교회 단체인 대한민국 수호 천주교인 모임의 대표 등의 직책을 역임하고 있다.

4. 같이 보기

관련 사건 타임라인

( 최근 20개의 뉴스만 표기 됩니다. )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