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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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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선돌은 '서 있는 돌'을 의미하는 순우리말로, Menhir(멘히르)라고도 불리며, 선사 시대에 세워진 커다란 돌을 지칭한다. 선돌은 무덤 표지석, 마을 경계 표시, 신앙의 대상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 전 세계적으로 분포한다. 한국의 선돌은 청동기 시대부터 초기 철기 시대에 걸쳐 조성되었으며, 전라남도 화순군에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대규모 선돌군이 존재한다. 선돌의 정확한 용도와 기능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며, 최근 연구를 통해 건립 시기가 더 오래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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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
개요
명칭선돌
로마자 표기Seondol
영문 명칭Menhir
정의
설명거대한 직립 석재
형태 및 특징
일반적 형태끝이 뾰족한 형태가 많음.
추가 특징표면에 그림이나 기호가 새겨지기도 함.
분포
주요 분포 지역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
관련 유적고인돌, 스톤헨지 등 거석 기념물과 함께 발견되기도 함.
상징 및 의미
종교적 의미숭배 대상, 신성한 장소 표시
사회적 의미영역 표시, 기념비적 기능
기타 의미천문학적 기능 (해시계 등), 지도 역할
문화적 중요성
관련 문화거석 문화
현대적 의미역사적 상징, 관광 자원
기타
참고고고학, 역사학, 민속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 대상

2. 어원

선돌은 '서 있는 돌'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영어로는 'Menhir'라고 부르는데, 이 단어는 19세기 고고학자들이 프랑스어에서 차용한 것이다. 이 단어가 일반적인 고고학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프랑스 군 장교 테오필 코레 드 라 투르 도베르뉴의 공헌으로 여겨진다.[3] 'Menhir'는 브르타뉴어 단어 두 개, 즉 ''maen''(돌)과 ''hir''(긴)의 조합이다. 웨일스어에서는 "긴 돌"을 뜻하는 ''maen hir''로 표현한다. 현대 브르타뉴어에서는 ''peulva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peul''(말뚝 또는 기둥)과 ''van''('maen'의 연성 변이 형태)을 합친 말이다. 독일스칸디나비아에서는 ''Bauta''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예: 독일어 Bautastein 및 노르웨이어 bautastein), 이 용어는 때때로 영어에서도 "bauta stone"으로 사용된다.

3. 역사

선돌을 세운 사람들의 사회 조직이나 종교적 믿음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그들의 언어 역시 알려져 있지 않지만, 죽은 자를 매장하고, 작물을 재배하며 농사를 짓고, 도자기를 만들며, 석기 도구와 보석을 만들 기술을 가졌다는 것은 확인되었다. 선돌의 정확한 목적이나 용도는 여전히 추측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과거에는 선돌이 유럽 후기 신석기 시대와 초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3천년 후반, 대략 기원전 2800년~1800년)에 활동했던 비커족과 관련이 있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의 거석 유적 연대에 대한 최근 연구는 이보다 훨씬 오래전인 6천 년에서 7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4] 일부 연구자들은 선돌 건립자들이 R1b (Y염색체) 하플로그룹에 속하며, 이들이 신석기 시대에 유럽에 농경을 전파했고 바스크어와 유사한 언어를 사용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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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의 기능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다양한 추측이 제기되어 왔다. 선사 시대 유럽 연구에서 가장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킨 주제 중 하나로, 드루이드가 인신 제사를 위해 사용했다거나, 영토 표시, 복잡한 이념 체계의 일부, 구전 문화를 위한 기억술 장치, 혹은 초기 달력으로 기능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다.[8][9] 19세기까지 고고학 지식이 부족했던 연구자들은 고전 문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으나, 이후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과 연륜 연대 측정 같은 과학적 방법론의 발달로 선사 시대 연구는 크게 발전했다.

많은 선돌에는 거석 예술이 새겨져 있으며, 일부는 의인화된 특징을 보인다. 돌도끼, 쟁기, 목동의 지팡이, 멍에 등으로 해석되는 문양이 발견되지만, 돌도끼 외에는 명확한 식별이 어렵다. 일부 선돌은 후대에 만들어진 통로 무덤 건설 시 부서져 재사용되기도 했는데, 이것이 의도적인 행위였는지 단순히 편리한 석재 공급원으로 여겼기 때문인지는 불분명하다.[6] 선돌이 원형, 타원형, 헨지 또는 말굽 모양으로 집단을 이루는 경우 거석 기념물이라고 불리며, 이는 고대 종교 의식의 장소였을 가능성이 있고 때로는 매장 시설을 포함하기도 한다.[7]

선돌은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 전 세계적으로 발견되지만, 특히 서유럽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아일랜드, 영국, 브르타뉴 지역에 약 5만 개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10] 프랑스 북서부에도 약 1,200개가 남아 있다.[11] 선돌의 대다수가 해안, 섬, 반도에 위치하는 점으로 미루어, 거석 문화를 가진 이들이 바다를 통해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된다.[14]

유럽 중세 시대에는 선돌이 거인이 성경의 홍수 이전에 세운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 때문에 많은 선돌이 초기 기독교인들에 의해 파괴되거나 훼손되었다. 한때 북유럽에 약 5만 개의 거석이 있었으나 현재는 약 1만 개만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된다.[5] 북독일 지역에서도 많은 선돌이 있었지만 기독교도에 의해 조직적으로 파괴되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큰 선돌은 브르타뉴의 로크마리아케르에 있는 "Grand Menhir Brisé"(거대한 부러진 선돌)로, 원래 높이는 약 20m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네 조각으로 부서졌지만, 무게가 약 330ton에 달해 기계의 도움 없이 인간이 옮긴 가장 무거운 물체 중 하나로 여겨진다. 여러 개의 선돌이 줄지어 늘어선 열석도 발견되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브르타뉴의 카르나크 열석으로, 3천 개 이상의 선돌이 세 그룹으로 나뉘어 수 킬로미터에 걸쳐 배열되어 있다.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선돌이 밀집된 지역은 화강암 지대인 세벤의 석회암 고원에 위치한 "Cham des Bondons"으로, 현재 세벤 국립공원 내에서 보호받고 있다.

선돌의 형태는 일반적으로 위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사각형 단면을 가지며 거칠게 다듬어진 모습이다. 표면에 수직 방향의 홈이 파인 경우도 있다.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는 철기 시대 이후에도 선돌을 계속 세웠으며, 주로 죽은 자의 화장된 유해 위에 세워졌다. 이 시기의 선돌은 단독으로 서 있거나, 스톤쉽 또는 스톤 서클 형태를 이루기도 한다. 1세기경 고트족에 의해 이 전통이 북부 폴란드 지역으로 전파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스노리 스투를루손의 기록에 따르면 선돌은 위대한 인물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으며, 이러한 전통은 이후 룬스톤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선돌이 정확히 어떤 문화적 의미로 세워졌는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3. 1. 한국의 선돌

한국의 선돌은 주로 청동기 시대부터 초기 철기 시대에 걸쳐 만들어졌으며,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된다. 이 거석 구조물들은 무덤의 위치를 표시하는 표지석 역할을 하거나, 마을 또는 부족 간의 경계를 나타내는 표시물로 사용되었다. 또한, 특정 바위 자체를 신성시하는 암석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목적으로 세워졌다.

특히 전라남도 화순군에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대규모 선돌군이 분포하고 있다. 이 유적은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 유적의 일부로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러한 선돌 유적을 포함한 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은 역사적 가치를 되새기고 지역 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중요한 과제이다. 더불어민주당 등 여러 정당과 시민사회는 이러한 문화유산의 체계적인 관리와 연구, 그리고 교육 자원으로서의 활용 방안 마련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다음은 한국 각지에 분포하는 주요 선돌 유적의 일부이다.


4. 특징

선돌은 일반적으로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약간의 가공을 거쳐 만들어진다. 형태는 다양하지만, 대체로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사각형 기둥 형태이며 표면은 거칠게 다듬어진 경우가 많다. 일부 선돌에는 수직으로 홈이 파인 경우도 있으며, 카르나크 열석에서는 이런 홈이 부분적으로 평평하게 다듬어진 사례도 발견된다.

크기는 수 미터에서 수십 미터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큰 선돌은 프랑스 브르타뉴의 로크마리아케르에 있는 "Grand Menhir Brisé"(거대한 부러진 선돌)이다. 한때 높이가 약 20m에 달했으며, 무게는 약 330ton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부서져 4개의 조각으로 나뉘어 있지만, 기계의 도움 없이 인간이 옮긴 가장 무거운 물체 중 하나로 여겨진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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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선돌 표면에는 거석 예술이 새겨져 있으며, 기하학적 무늬나 의인화된 특징을 보이기도 한다. 돌도끼, 쟁기, 목동의 지팡이, 멍에 등으로 보이는 그림도 발견되지만, 돌도끼 그림 외에는 그 정체가 명확하지 않아 편의상 붙여진 이름이다.[6] 일부 선돌은 후대에 만들어진 통로 무덤 건설 시 부서져 건축 자재로 재사용되기도 했는데, 이때 원래 새겨져 있던 그림은 거의 고려되지 않았다. 이것이 의도적인 재활용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편리한 석재 공급원으로 여겨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6]

선돌은 홀로 서 있기도 하지만, 원형, 타원형, 헨지 또는 말굽 모양으로 무리를 지어 나타나기도 하며, 이를 '거석 기념물'이라고 부른다. 이런 곳들은 고대 종교 의식 장소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때로는 매장 시설을 포함하기도 한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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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여러 선돌을 줄지어 세운 열석(列石) 형태도 존재하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프랑스 브르타뉴카르나크 열석으로, 3000개가 넘는 선돌이 3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수 킬로미터에 걸쳐 늘어서 있다.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선돌이 집중된 곳은 화강암이 많은 세벤의 석회암 고원에 세워진 "Cham des Bondons"이다. 이곳은 현재 세벤 국립공원 내에서 보호받고 있다.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는 로마 시대 이전 철기 시대와 그 이후에도 선돌을 계속 세웠는데, 주로 죽은 사람의 재 위에 세웠다. 철기 시대의 선돌은 홀로 세워지거나, 배 모양(스톤쉽) 또는 원형(스톤 서클)으로 배치되기도 했다. 이러한 전통은 1세기경 고트족에 의해 북부 폴란드 지역으로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빌바르크 문화 참조). 스노리 스투를루손의 『헤임스크링글라』에 따르면 선돌은 위대한 인물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으며, 이러한 거석 건립 전통은 이후 비에르케토르프 룬석 등을 거쳐 룬스톤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유럽 중세 시대에는 선돌이 성경의 홍수 이전에 거인들이 세운 것이라고 믿기도 했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 시대에 많은 거석이 파괴되거나 훼손되었다. 한때 북유럽에 약 5만 개의 거석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는 약 1만 개 정도만 남아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5] 북독일 지역에서도 많은 선돌이 세워졌으나 오늘날 거의 남아있지 않다.

5. 용도와 기능 (추정)

선돌을 세운 사람들의 사회 조직이나 종교적 믿음, 언어 등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그들이 죽은 자를 매장하고, 농사를 지으며 도자기, 석기 도구, 보석 등을 만들 기술을 가졌다는 것은 확인되었다. 선돌의 정확한 목적이나 용도는 여전히 추측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4]

유럽 중세 시대에는 거인이 성경의 홍수 이전에 세웠다고 믿기도 했다. 많은 거석 유적은 초기 기독교인들에 의해 파괴되거나 훼손되었는데, 한때 북유럽에 약 5만 개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약 1만 개만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5]

많은 선돌에는 거석 예술이 새겨져 있으며, 일부는 의인화된 특징을 보인다. 돌도끼, 쟁기, 목동 지팡이, 멍에 등으로 보이는 조각들도 발견되지만, 돌도끼 외에는 그 정체가 확실하지 않다. 일부 선돌은 후대에 만들어진 통로 무덤 건축에 재사용되기도 했는데, 이때 원래 새겨진 그림은 거의 고려되지 않았다. 이것이 의도적인 재활용이었는지, 단순히 편리한 석재로 이용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6]

선돌이 원형, 타원형, 헨지, 말굽 모양 등으로 무리를 이루는 경우 '거석 기념물'이라 불리며, 고대 종교 의식 장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때로는 매장 시설을 포함하기도 한다.[7] 선돌의 기능에 대해서는 선사 시대 유럽 연구에서 가장 많은 논쟁이 있었다. 수 세기 동안 다음과 같은 다양한 추측이 제기되었다.[9]



19세기까지는 고전 문헌 외에 참고할 자료가 부족했으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과 연륜 연대 측정 같은 과학적 연대 측정 방법의 발달로 연구가 크게 진전되었다.

스칸디나비아에서는 철기 시대 이후에도 선돌을 세우는 전통이 이어졌는데, 주로 죽은 자의 유골 위에 세워졌다. 고립된 형태 외에도 스톤쉽이나 스톤 서클 형태로 세워지기도 했다. 1세기경에는 고트족에 의해 북부 폴란드 지역으로 이 전통이 전파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스노리 스투를루손의 『노르웨이 왕의 사가』에 따르면 위인을 기리기 위해 세우기도 했으며, 이 전통은 룬스톤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룬스톤 관련 연구

선돌 건립 시기와 주체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존재한다. 과거에는 유럽 후기 신석기 시대와 초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2800년~1800년경)의 비커족과 연관 지었으나, 브르타뉴 지방 거석 유적에 대한 최근 연구는 이보다 훨씬 오래된, 약 6천~7천 년 전의 기원을 시사한다.[4] 또한, 선돌의 분포가 R1b (Y염색체) 하플로그룹의 고빈도 지역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이 그룹에 속하는 사람들이 선돌을 세웠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들은 신석기 시대에 유럽에 농경을 전파한 집단으로 추정되며, 바스크족과의 유전적 유사성 및 바스크어 사용 가능성도 언급된다.

결론적으로, 선돌이 정확히 어떤 문화적 의미로 세워졌는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6. 한국의 주요 선돌 유적

한반도 전역에는 선사 시대의 중요한 문화 유산인 선돌이 널리 분포하고 있다. 이는 당시 사람들의 거석 신앙, 묘표, 혹은 영역 표시 등 다양한 사회·문화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며, 주로 청동기 시대의 유적으로 추정된다. 강원특별자치도, 충청북도, 경기도, 충청남도, 전라남도 등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형태와 규모의 선돌 유적이 확인되고 있어, 당시의 지역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6. 1. 강원특별자치도

6. 2. 충청북도

6. 3. 경기도

6. 4. 충청남도

6. 5. 전라남도

6. 6. 기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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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7. 에히메현

6. 8. 오이타현

6. 9. 미야자키현

쿠루손 협곡 멘힐은 미야자키현 에비노시 오카와히라의 쿠루손 협곡에 위치한다.

7. 대중문화 속 선돌

프랑스 만화 시리즈 ''아스테릭스''에는 선돌을 조각하고 배달하는 오벨릭스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처럼 선돌은 선사 시대 문화와 자주 연결되어 대중문화 작품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곤 한다. 또한, 선돌은 유사 고고학적 사색의 소재로 선호되기도 하며, 예술 분야에서는 파울 첼란의 독일어 시 "멘히르" 등이 있다.

참조

[1] OED menhir 2023-09-25
[2] 웹사이트 Menhir http://www.thefreedi[...] Farlex, Inc. 2010-12-15
[3] 웹사이트 La Tour d'Auvergne (Théophile Malo Corret de la Tour d'Auvergne : 1743–1800) https://www.landruci[...] 2018-01-24
[4] 간행물 Mysterious Megaliths: The Standing Stones of Carnac, Brittany, France 1998-10
[5] 서적 Sacred Places Around the World: 108 Destinations By Brad Olsen Consortium of Collective Consciousness 2010-02-21
[6] 저널 The Art of Gavrinis Presented in its Armorican Context and in Comparison with Ireland 1992
[7] 서적 Heavy Words Lightly Thrown: The Reason Behind Rhyme Thorndike Press
[8] 서적 Knowledge and Power in Prehistoric Societies: Orality, Memory, and the Transmission of Culture Cambridge University Press
[9] 서적 Statements in Stone: Monuments and Society in Neolithic Brittany Routledge
[10] 서적 Strange But True Stories https://books.google[...] Saddleback Pub 2011-08-25
[11] 서적 The Atlas Of The Ancient World
[12] 웹사이트 Oxenham Arms—Standing Stone (Menhir) https://www.megalith[...] 2022-06-11
[13] 웹사이트 Dartmoor Site: The Oxenham Arms standing stones http://www.dartmoorw[...]
[14] 서적 Granite Island: Portrait of Corsica https://books.google[...] Penguin UK 2020-12-26
[15] 뉴스 Reach for the sky with Astérix https://www.thetimes[...] 2023-10-17
[16] 논문 The case of the unreliable SNP: recurrent back-mutation of Y-chromosomal marker P25 through gene conversion 2006
[17]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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