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아이치·기후 연쇄 린치 살인 사건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오사카·아이치·기후 연쇄 린치 살인 사건은 1994년 오사카, 아이치, 기후현에서 발생한 일련의 린치 살인 사건이다. 1975년생인 KM, KA, HM 등 3명의 주범과 공범들은 불우한 성장 환경과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으며, 삥 뜯기, 폭행, 강도 행각을 벌였다. 1994년 9월부터 10월까지 오사카, 기소강, 나가라강에서 4명의 피해자를 살해하고, 1995년 3명의 피고인에게 사형이 확정되었다. 소년법 적용, 사형 제도, 실명 보도 문제 등이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와노우치정의 역사 - 안파치군
기후현에 위치한 안파치군은 과거 오가키시 대부분을 포함하는 지역이었으며 임신 정변과 관련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고 현재는 고도정, 안파치정, 와노우치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 국가배상청구소송 - 인민혁명당 사건
인민혁명당 사건은 1964년과 1975년에 발생한 두 차례의 사건으로, 박정희 정권 하에서 정치적 탄압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2000년대 조사 결과 조작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관련자들이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사건에 대한 해석은 여전히 대립하며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논쟁을 촉발했다. - 국가배상청구소송 - 오케가와 스토커 살인 사건
오케가와 스토커 살인 사건은 1999년 사이타마현 오케가와시에서 발생한 스토킹 살인 사건으로, 스토커 고마츠 카즈히토가 사주한 야쿠자에게 피해자 이노 시오리가 살해당했으며, 경찰의 부실한 대응과 언론 보도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켜 스토킹 방지법 제정의 계기가 되었다.
오사카·아이치·기후 연쇄 린치 살인 사건 | |
---|---|
사건 개요 | |
명칭 | 오사카·아이치·기후 연속 린치 살인 사건 |
위치 | 일본 살해 현장 - 오사카부, 아이치현, 기후현 오사카 사건의 시체 유기 현장 - 고치현 |
날짜 | 1994년 9월 28일 - 10월 8일 |
시간대 | UTC+9 ( 일본 표준시) |
개요 | 불량 소년 KM(당시 19세, 아이치현 출신)과 그 관련 인물들이 11일 동안 총 4명을 집단 폭행하여 살해한 연속 살인 사건 |
무기 | 알루미늄제 파이프 등 |
공격 인원 | 총 10명 (그중 3명이 모든 사건에 관여, 사형 확정) |
표적 | 남성 5명 (그룹 동료 1명 + 나머지 4명은 면식 없음) |
사망 | 4명 |
부상 | 1명 |
범인 | 불량 소년 그룹 (주범 3명은 사건 당시 18세, 19세의 폭력단 조직원) |
범인 정보 | 오사카 사건 - 3명이 소속되어 있던 오사카 거점의 폭력단 조직원 2명 기소강·나가라강 사건 - 아이치현 거점의 불량 그룹에서 +5명 (기소강 사건). 그중 3명은 나가라강 사건에도 관여 |
혐의 | 주범 3인 공통 - 살인죄, 사체 유기죄 (오사카 사건), 상해죄, 살인죄 (기소강 사건), 감금죄, 강도 살인죄·강도 치상죄 (나가라강 사건) |
피고인 KM | (상기 +) 공범 소년과 일으킨 강도 치상죄·공갈죄,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
피고인 KA | (상기 +)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
동기 | 상해·공갈 등의 입막음 |
사죄 | 있음 (나가라강 사건 피해자 유족은 거절) |
대처 | 주범 3명을 비롯한 가해자 총 10명을 체포. 3명을 포함한 남성 8명을 기소, 소녀 2명은 소년원 송치 |
형사 소송 | 주범 3명은 사형 (소년 사형수 / 항소심·상고심 판결에 의해 확정·미집행) |
형사 소송 추가 정보 | 기타 기소된 5명은 징역형 (최고 징역 4 - 8년의 부정기형. 일부는 집행 유예 포함) |
소년 심판 | 미성년자 7명 중 소년 5명 (주범 3명 포함)은 검찰관에게 역송치 / 소녀 2명은 소년원에 송치 |
관할 | 오사카부 경찰 아이치현 경찰 기후현 경찰 오사카지방검찰청 (후에 나고야지검에 병합) 나고야지방검찰청 |
지도 정보 | |
![]() |
2. 사건 발생 배경
이 사건은 폭력단에 소속된 주범 3명을 중심으로 한 범행으로, 당시 미성년자 불량 소년 등이 끔찍한 린치를 벌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1] 1994년 8월, 가해자 KM은 아이치현에서 강도 상해 사건을 일으키고 오사카부로 도주했다. 오사카에서 KA, HM 등과 만나 폭력단에 가입하고 함께 생활하며 공갈 등의 범행을 저질렀다.[1]
이후 이들은 아이치현으로 이동하여 지인들과 함께 신나를 흡입하던 중, KM과 갈등을 빚은 남성을 집단 폭행하고 기소강 하천 부지에서 살해했다.[1] 다음 날(10월 7일 심야)에는 볼링장에서 우연히 만난 남성 3명을 집단 린치하여 2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혔다.[1]
이 사건은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 사건, 나고야 아베크 살인 사건과 유사점이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17] 특히 범행의 잔혹성, 연속성, 집단 심리, 범행 그룹 내 관계의 희박함, 안이함, 무책임함 등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17] 또한, 공판 중 주범 3명의 심리 감정을 담당했던 일본 복지 대학 부학장 가토 유키오는 이 사건이 '발달 미성숙', '불행한 만남', '동료와의 얕은 커뮤니케이션' 등 현대 소년 범죄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18]
이 사건은 당시 옴진리교 사건 (마쓰모토 사린 사건, 지하철 사린 사건) 및 한신·아와지 대지진 등 중대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여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1]
2. 1. 가해자들의 성장 환경
폭력단에 소속되었던 주범 3명은 모두 반사회적인 생활을 했다.[146] 이들은 가족에게 버려지는 등 열악한 가정 환경에서 성장한 경우가 많았다.[33]주범 중 한 명인 K.M.(나가라강 사건 당시 세, 현재 세)는 1975년 쇼와 50년 3월 19일 아이치현 이치노미야시에서 태어났다.[127] 본적지는 아이치현 이나자와시였다.[54] K.M.은 나고야시 출생은 아니지만, 나고야 시내까지 전철로 7, 8분 거리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K.A. 등에게는 '나고야 출생'이라고 말했다.[127]
K.M.은 사건 직후 사회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며 면회를 오는 변호사에게까지 경계심을 드러냈지만, 구치소 내에서 종교 교화를 받고 변호사, 독지가, 교회사 등과의 교류를 계속하면서 점차 성장하여 내성을 깊게 해나가고 있다고 아오키 오사무가 2008년에 취재한 나고야 구치소 관계자는 증언했다.[19]
2. 2. 사건 발생 경위
1994년 8월, 가해자 KM은 아이치현에서 강도 상해 사건을 일으키고 오사카부로 도주했다. 오사카에서 KA, HM 등과 만나 폭력단에 가입하고 함께 생활하며 공갈 등의 범행을 저질렀다.[1] 이후 이들은 아이치현으로 이동하여 지인들과 함께 신나를 흡입하던 중, KM과 갈등을 빚은 남성을 집단 폭행하고 기소강 하천 부지에서 살해했다.[1]다음 날(10월 7일 심야)에는 볼링장에서 우연히 만난 남성 3명을 집단 린치하여 2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혔다.[1]
이 사건은 당시 미성년자 불량 소년 등이 끔찍한 린치를 벌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1] 주범 3명은 모두 당시 소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항소심까지 사형 판결을 받았으며, 최고 재판소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사형이 확정되었다.[1]
주범 3명이 기소된 죄목은 다음과 같다.
- KM과 공범 1명에 의한 강도치상 사건[146]
- '''오사카 사건'''(살인·시체 유기): 9월 28일 오사카부에서 발생. KM, KA, HM과 폭력단 동료 1명이 협박한 남성을 집단 린치하여 살해하고, 고치현 산중에 시체를 유기.[146]
- 오사카 사건과 기소강 사건 사이 KM이 공범 1명과 일으킨 공갈 사건, KM과 KA의 공동 폭행·흉기 협박, KA와 공범 1명의 공동 폭행 사건.[146]
- '''기소강 사건'''(상해·살인): 10월 6일 심야 발생. 오사카 사건 후 아이치현으로 도주한 주범 3명이 KM의 불량 친구였던 남성을 집단 린치하여 사망.[146] 제1심에서는 상해치사죄로 인정되어 KA와 HM은 사형을 면했으나, 항소심에서 살인죄로 인정되어 3명 모두 사형 선고.[146]
- '''나가라강 사건'''(감금·강도 살인·강도 치상): 기소강 사건 다음 날 발생. 볼링장에서 만난 남성 3명을 집단 린치하여 2명 사망, 1명 중상.[146]
3. 사건의 전개
1994년, KM, KA, HM 등 주범 3명과 그들의 동료들은 오사카부, 아이치현, 기후현에서 연쇄적으로 린치 및 살인 사건을 일으켰다.[146]
3. 1. 오사카 사건 (1994년 9월 28일)
1994년 9월 28일 오사카부 오사카시 주오구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주범 3명(KM, KA, HM)과 공범인 폭력단 동료 소년 U까지 총 4명이 남성 A(당시 21세)를 집단으로 린치하여 살해하고, 고치현의 산중에 시신을 유기했다.[146]사건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 오사카 사건의 공범인 소년 U는 1994년 6월경 오사카 시내의 여성 클럽에서 호스트로 일하던 중, 동료였던 KA와 알게 되었고, KA의 형님뻘 되는 인물 T가 빌린 빌딩(오사카 시 주오구 센니치마에 소재)의 한 방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146]
- 그 후, U는 1994년 7월경부터 T의 지시로 피해자 A 등과 함께 다단계 판매 사업(화장품 등의 방문 판매)을 시작했지만, 사업은 잘 풀리지 않았다.[146]
- 한편, KA는 T로부터 A의 감시역을 맡아, A에게 "도망치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146]
- 1994년 9월 상순, KA는 T로부터 "A를 건설업 현장 인부로 보내 50만 엔을 받아오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A가 도망쳐 실패했다.[146]
- 그 후, T는 KA에게 "A를 찾아내 죽여라"고 지시했고, KA는 1994년 9월 중순, 아이치현 이치노미야시에서 KM, HM과 합류하여 A를 찾기 시작했다.[146]
- 1994년 9월 27일, KM, KA, HM은 오사카로 돌아와 U와 함께 A를 찾던 중, 다음 날(28일) 새벽, 오사카 시 주오구의 한 노래방 앞에서 A를 발견했다.[146]
- KM 등 4명은 A를 T의 사무실로 끌고 가, "도망치면 가족을 몰살하겠다"고 협박하며 각목 등으로 마구 때렸다.[146]
- 그 후, KM은 A를 오사카 시내의 한 맨션으로 옮겨 감금하고, T에게 A를 처리할지 물었지만, T는 "알아서 하라"고 답했다.[146]
- 결국, KM 등 4명은 A를 다시 T의 사무실로 끌고 가, 28일 오전 9시경부터 다음 날 새벽 3시경까지 번갈아 가며 폭행했다.[146]
- A는 결국 29일 새벽 3시경, 외상성 쇼크로 사망했다.[146]
- KM 등 4명은 A의 시신을 자동차에 싣고, 고치현 도사군 오카와촌(현 이노정)의 산속에 유기했다.[146]
3. 2. 기소강 사건 (1994년 10월 6일)
1994년 10월 6일 심야에 발생했다. 오사카 사건 후 아이치현 (주범 3명 중 1명 "KM"의 출신지)으로 도주한 주범 3명은 KM이 소속되어 있던 그룹과 행동을 함께 했지만, KM의 불량 친구였던 남성 1명이 KM과 트러블을 일으킨 것을 발단으로 KM 등에게 집단 린치를 당해, 기소가와 하천 부지에서 사망했다.[146] 제1심에서는 "상해치사죄"로 인정되어 3명 중 2명(KA・HM)에 대한 사형 적용이 회피되었지만[106], 항소심에서는 반대로 "살인죄 사건"으로 인정되어 3명 전원에게 사형이 적용되었다.[127]3. 3. 나가라강 사건 (1994년 10월 7일)
長良川事件일본어는 1994년 10월 7일 심야에 기후현 와노우치정에서 발생했다. 볼링장에서 우연히 가해자들과 마주친 남성 3명이 집단 린치를 당해 2명(C, D)이 사망하고 1명(E)이 중상을 입었다.[1] 가해자 KM, KA, HM, V, Y(소녀), Z 등 6명은 피해자들을 감금하고 여러 장소를 끌고 다니며 폭행했다.[1]4. 수사 및 체포
나가라강 사건 발생 다음 날, 트럭 운전사가 피해자들의 시신을 발견하여 경찰에 신고했다.[1] 피해자 E의 증언과 현장 증거를 토대로 수사가 진행되었다.[1]
일련의 사건으로 총 10명이 체포되었으며[1], 가해자들은 차례로 체포되었다. 주범 3명은 모두 당시 소년이었음에도 항소심까지 사형 판결을 선고받았으며[106][127], 최고 재판소에서 상고를 기각하는 판결을 받아 사형이 확정되었다(소년 사형수).[146]
주범 3명이 기소된 죄목은 다음과 같다(굵은 글씨는 살인 사건).
가해자 | 죄목 |
---|---|
KM | 강도 치상[146], 살인·시체 유기[146], 공갈[146], 공동 폭행·흉기 협박[146], 상해·살인[146], 감금·강도 살인·강도 치상[146] |
KA | 공동 폭행·흉기 협박[146], 상해·살인[146], 감금·강도 살인·강도 치상[146] |
HM | 상해·살인[146], 감금·강도 살인·강도 치상[146] |
- '''오사카 사건'''(살인·시체 유기 사건): 1994년 9월 28일 오사카부에서 발생. 주범 3명 (KM・KA・HM) 및 폭력단 동료 1명(소년 U)이 남성 1명을 집단 린치하여 살해하고, 시체를 고치현의 산에 유기.[146]
- '''기소강 사건'''(상해·살인 사건): 1994년 10월 6일 심야 발생. 주범 3명이 KM의 불량 친구였던 남성 1명을 집단 린치하여 기소강 하천 부지에서 사망.[146] 제1심에서는 상해치사죄로 인정되었으나, 항소심에서 살인죄로 인정.[146]
- '''나가라강 사건'''(감금·강도 살인·강도 치상 사건): 1994년 10월 7일 심야 발생. 볼링장에서 만난 남성 3명을 집단 린치하여 2명 사망, 1명 부상.[146]
이 사건은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 사건, 나고야 아베크 살인 사건과 유사한 점이 지적되었다.[17]
5. 재판 과정
이 사건은 폭력단에 소속된 주범 3명을 중심으로, 당시 미성년 불량 소년 등이 끔찍한 린치를 가해 벌어진 흉악 범죄이다.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으며, 옴진리교 사건 등과 함께 언급되기도 한다.[1] 일련의 사건으로 총 10명이 체포되었고,[1] 주범 3명은 모두 당시 소년이었음에도 사형 판결이 확정되었다(소년 사형수).[146]
주범 3명이 기소된 죄목은 다음과 같다. (굵은 글씨는 살인 사건)
- 가해 소년 KM과 공범 1명: 강도 치상 사건[146]
- '''오사카 사건''': 살인, 시체 유기 사건[146]
- 가해자 KM과 공범 1명: 공갈 사건[146]
- KM·KA: 공동 폭행·흉기 협박
- KA와 공범 1명: 공동 폭행 사건[146]
- '''기소강 사건''': 상해, 살인 사건[146]
- '''나가라강 사건''': 감금, 강도 살인, 강도 치상 사건[146]
이 사건은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 사건, 나고야 아베크 살인 사건 등과 같이 불량 청소년들에 의한 흉악 범죄의 공통점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었다.[17] 또한, 공판 중 주범 3명의 심리 감정을 담당한 가토 유키오 일본 복지 대학 부학장은 본 사건이 현대 소년 범죄의 특성을 보인다고 지적했다.[18]
사건 관련자 및 판결 내용은 다음과 같다.
관련자 | 역할 및 사건 | 판결 |
---|---|---|
남자 T (오사카 사건) | 야마구치구미 계열 폭력단 간부, 오사카 사건 아지트 제공 및 시체 유기 가담 | 징역 1년 8개월 |
소년 U (오사카 사건) | 폭력단 조직원, 오사카 사건 가담 | 징역 4년 - 8년 부정기형 |
남자 V (기소강·나가라강 사건) | 주범 3명의 운전사, 기소강·나가라강 사건 가담 | 징역 3년, 집행 유예 4년 (보호 관찰 부착) |
소녀 W자 (기소강 사건) | KM의 전 신나 친구, 기소강 사건 가담 | 소년원 송치 |
소년 X (기소강 사건) | W자의 신나 친구, 기소강 사건 가담 | 징역 4년 - 8년 부정기형 |
소녀 Y자 (기소강·나가라강 사건) | 기소강·나가라강 사건 가담 | 소년원 송치 |
남자 Z (기소강·나가라강 사건) | 신나 친구들의 짬밥, 기소강·나가라강 사건 가담 | 징역 3년, 집행 유예 4년 |
5. 1. 1심 (나고야 지방 법원)
폭력단에 소속된 주범 3명을 중심으로 한 범행으로, 당시 미성년 불량 소년 등의 끔찍한 린치 끝에 벌어진 흉악한 사건으로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1] 일련의 사건으로 총 10명이 체포되었으며,[1] 그 중 주범 3명은 모두 당시 소년이면서도 항소심까지 사형판결을 선고받았으며,[106][127] 최고 재판소에서 상고를 기각하는 판결을 받아 사형이 확정되었다(소년 사형수).[146]제1심 판결에서 나고야 지방 법원 (2001)은 "어느 범행도 자신의 욕망·감정에 따라 행동하여 상해·강도 등을 범한 가해 소년들이 '피해자들을 풀어주면 경찰에 잡힌다' 등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행동으로 생긴 결과의 처치에 곤혹스러워했다. 그 때 허세를 부리는 심리도 섞여 고성으로 격화된 언동을 하는 자의 영향을 받아 '상대에게 약점을 보일 수 없다'라는 소년기 특유의 심리 상태도 겹쳐 이에 동조하여, 서로가 적절하게 사태를 수습하지 못한 채 최악의 결과를 초래했다"라고 인정했다.[81]
- 나리타 아오는 저서 『부서진 소년』에서 "본 사건과 마찬가지로 불량 소년 등에 의한 흉악 범죄인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 사건·나고야 아베크 살인 사건(모두 1988년에 발생)은 '범행의 잔혹성·연속성' '집단 사건 특유의 심리 상황' '범행 그룹 내의 관계의 희박함' '안이함·무책임함' 등의 관점에서 공통점을 찾아낼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17]
- 또한 공판 중에 주범 3 피고인의 심리 감정을 담당한 가토 유키오·일본 복지 대학 부학장(비행 임상 심리학)은 본 사건의 성질에 대해 "'발달의 미성숙' '불행한 만남' '동료와의 커뮤니케이션의 얇음' 등, (집단 심리에 의해 에스컬레이트하는) 현대 소년 범죄와 같은 구도의 사건이다"라고 지적했다.[18]
가해 소년 '''K・M'''(이하 ''''KM''''으로 표기 / 나가라가와 사건 당시 만 19세, 현재 만 49세)는 1975년 (쇼와 50년) 3월 19일, 아이치현이치노미야시 출생이다.[54] 형사 재판에서는 강도 치상죄·상해죄·살인죄·감금죄·강도 살인죄·사체 유기죄·공갈죄·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되었으며,[146] 사형수 3명 중 유일하게 제1심·항소심 모두 사형 판결을 받았다.[106][127]
공범 2명과 함께 2011년 3월 10일에 최고 재판소에서 상고 기각 판결을 받았으며, 동 판결에 대한 이의 신청도 같은 달 30일자로 기각되었기 때문에 2011년 4월 1일자로 사형 판결이 확정되었다.[164] 2019년(레이와 원년) 10월 1일 시점에서 사형수로서 도쿄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164]
KM은 범행 그룹을 포함한 십여 명의 놀이 친구들의 리더 격이었으며, 품행이 불량하여 오와리에 있는 아이치현 경찰 각 경찰서가 그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었다.[54]
KM은 이치노미야시에서 태어났지만, 친어머니는 고령 출산으로 KM을 낳은 직후 급사했기 때문에 양육에 어려움을 겪은 친아버지가 남동생(KM의 삼촌) 부부에게 양자로 맡겼다. 하지만 양어머니의 남동생 4명 중 3명이 폭력단 조직원이라는 환경이었던 데다, KM이 맡겨진 직후 양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여 파산했고, KM은 극도로 고독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린 시절부터 절도를 반복하는 한편, 초등학교 3학년 때 절도 누명을 쓴 것으로 경찰에 연루되어 큰 충격을 받아, 이후 비행이 더욱 심해졌다.
가해 소년 '''K・A'''(이하 "'''KA'''"로 표기 / 나가라가와 사건 당시 만 19세·현재 만 48세)는 1975년 7월 21일, 오사카부마쓰바라시 출생이다. 형사 재판에서는 상해죄·살인죄·감금죄·강도 상해죄·강도 살인죄·사체 유기죄·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되어,[146] 제1심·나고야 지방 법원 판결 (2001)에서는 "기소강 사건은 상해 치사죄. 피고인 KM에게 종속적인 역할이었다"고 인정되어 피고인 HM과 함께 무기 징역을 선고받았지만,[81] 항소심·나고야 고등 법원 판결 (2005)에서는 "기소강 사건은 살인죄. 피고인 KM과는 죄책에 차이가 없다"고 인정되어 KM·HM 양 피고인과 함께 사형을 선고받았다.[127] 2011년 4월 1일자로 사형 판결이 확정되어,[164] 2019년 10월 1일 시점에서 사형수로서 나고야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164]
사형수 3명 중에서는 소속 폭력단에서 최상위이며,[127] 공범 KM과의 첫 대면 시에는 "야마구치구미 소속"이라고 자칭했지만,[127] 오사카 사건의 공범·소년 U는 KA를 "기세 등등했지만, 근본은 기가 약하고 싸움도 못 하는 녀석"이라고 평하고 있다. 변호인에 따르면 제1심 동안에는 스스로 사형을 원했지만, 판결 공판에서는 무기 징역을 선고받은 한편 "형님 격의 입장에 있으면서 범행을 막지 못한 일처리주의가 최악의 결과를 초래했다"고 단죄당해,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통곡했다.[19]
사형 확정 후 2013년 1월에 나고야 고등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지만,[169] 2016년 12월에 최고 재판소에서 청구 기각이 확정되어, 같은 달 중에 나고야 고등 법원에 2번째 재심 청구를 하고 있다.[173]
KA는 3명의 누이들 중 막내로 태어났으며, KM, HM에 비하면 혜택받는 가정 환경에서 자랐지만, 부모는 두 누나가 여자아이였기 때문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이었던 KA에게 과도한 애정을 쏟았다.
사형수 '''H・M'''(이하 '''HM'''으로 표기 / 나가라가와 사건 당시 만 18세・현재 만 48세)는 1975년 10월 23일, 오사카시니시나리구 출생이다. 형사 재판에서는 상해죄·살인죄·감금죄·강도 상해죄·강도 살인죄·사체 유기죄로 기소되어,[146] 제1심·나고야 지방 법원 판결(2001)에서는 "기소가와 사건은 상해 치사죄. 피고인 KM에 종속적인 역할이었다"고 인정되었기 때문에 피고인 KA와 함께 무기 징역을 선고받았지만,[81] 항소심·나고야 고등 법원 판결(2005)에서는 "기소가와 사건은 살인죄. 피고인 KM과는 죄책에 차이가 없다"고 인정되어 KM・KA 두 피고인과 함께 사형을 선고받았다.[127] 2011년 4월 1일부로 사형 판결이 확정되어,[164] 2019년 10월 1일 시점에서 사형수로 나고야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164]
사형수 3명 중에서는 소속 폭력단에서의 서열은 최하위였다.[127] 제1심 공판 중에는 나고야 구치소 내에서 자살 미수·기물 손괴 행위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HM은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전직 야쿠자였고,[209] 어머니도 담배를 물고 게임 센터에 드나드는 사람이었다. 생활은 상당히 가난했고, 초등학교 시절에는 더러운 옷을 입었다는 등의 이유로 심한 괴롭힘을 당했고,[209] 점차 혼자서 HM 등을 키우던 어머니도 집안일을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209]
가해자 KM은 1994년 8월 10일 22시경, 파칭코 가게 "파칭코 EX" (아이치현 쓰시마시이리마에마치)의 주차장에서 당시 18세 소년 (일련의 사건과는 무관. 보호 관찰 처분 / 기후현카이즈군 거주)과 공모하여,[30] 승용차로 가게에 온 회사원 A (당시 22세)에게 "차로 근처 중학교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고, 자신은 조수석에, 공범 소년이 뒷좌석 조수석 쪽에, KM의 일행 1명이 뒷좌석 운전석 쪽에 각각 탑승하여 출발했다.
KM은 데려다주는 도중 편의점에 들러, 커터 칼 1개를 구입하고, 주행 중인 차 안에서 공범 소년에게 커터 칼을 보여주며 "이걸로 한다"고 말하고, 2명은 A에게서 금품을 강탈하려 했다. 그 후, 한 번은 "분실물을 가지러 간다"고 말하며 A에게 지시하여 파칭코 가게로 돌아가, 다시 자동차를 주행시켰지만, 같은 날 22시 30분경에는 A에게 명령하여 쓰시마시 오아자 쓰시마 아자 미나미 신카이 63번 1의 노상에 정차하게 하고, A에게 자동차의 라이트를 끄고 엔진도 끄게 했다. 그러자 A에게 "태도가 건방지다" 등 트집을 잡고, A의 얼굴을 주먹으로 수차례 때리고, 커터 칼을 들이대 얼굴 앞에서 칼날을 꺼냈다 넣었다 한 외에, 하차한 공범 소년이 운전석 창문을 통해 A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다. 게다가 KM은 A에게 소지금을 물었고, A의 지갑 안을 확인하고 "금액이 다르다"고 트집을 잡고, 다시 커터 칼을 쥔 주먹으로 A의 얼굴을 수차례 구타했다. 일련의 폭행으로 인해 KM은 A에게 통원 치료 약 2주가 필요한 부상 (안면 좌상·안면 타박의 장애)을 입힌 후, A의 반항을 억압하고 현금 30000JPY을 빼앗았다 (강도 상해죄).[81]
5. 2. 항소심 (나고야 고등 법원)
2005년 10월 14일, 나고야 고등 법원은 1심 판결을 파기하고 3명 모두에게 사형을 선고했다.[127] 검찰 측의 항소(기소강 사건 살인죄 인정, 형량 부당)를 받아들인 것이다. 법원은 3명의 형사 책임이 동등하다고 판단했다.[127]1심에서 KA와 HM은 기소강 사건에 대해 상해치사죄가 인정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127] 항소심에서는 살인죄가 인정되어 3명 모두 사형이 선고되었다.[127]
5. 3. 상고심 (최고 재판소)
2011년 3월 10일, 최고 재판소는 상고를 기각하여 3명 모두 사형을 확정하였다. 범행 당시 소년이었던 피고인들에게 사형이 확정된 것은 이례적인 사례이다.[146]6. 사회적 영향 및 논란
폭력단에 소속된 주범 3명을 중심으로 한 범행으로, 당시 미성년 불량 소년 등의 끔찍한 린치 끝에 벌어진 흉악한 사건으로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이 사건은 '3부현 연속 린치 살인 사건', '기소강·나가라강 연속 린치 살인 사건' 등으로도 불린다.
옴진리교 사건(마쓰모토 사린 사건, 지하철 사린 사건 등) 및 한신·아와지 대지진 등 중대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했기 때문에, 사건 당시에는 언론에서 많이 다뤄지지 않았다. 끝까지 도주했던 가해자 HM이 체포된 1995년 1월 이후로는 특히 보도가 줄어들었다.
사건 후, 『주간문춘』은 "옴진리교의 출현이 세기말 현상이라면, 본 사건은 21세기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평했다. 『주니치 신문』은 2017년에 "전후사에 남을 흉악 사건으로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라고 보도했다.
나리타 아오는 저서 『부서진 소년』에서 본 사건과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 사건, 나고야 아베크 살인 사건이 '범행의 잔혹성·연속성', '집단 사건 특유의 심리 상황', '범행 그룹 내의 관계의 희박함', '안이함·무책임함' 등의 관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고 지적했다. 아카즈카 유키오는 "편의점 등에서 알게 된 불량 소년들이 갱화된 본 사건은 나고야 아베크 살인 사건을 방불케 하는 사건이다"라고 지적했다.
공판 중 주범 3 피고인의 심리 감정을 담당한 가토 유키오는 본 사건의 성질에 대해 "'발달의 미성숙', '불행한 만남', '동료와의 커뮤니케이션의 얇음' 등, (집단 심리에 의해 에스컬레이트하는) 현대 소년 범죄와 같은 구도의 사건이다"라고 지적했다.
6. 1. 소년법 적용 문제
폭력단에 소속된 주범 3명을 중심으로 한 범행으로, 당시 미성년 불량 소년 등의 끔찍한 린치 끝에 벌어진 흉악한 사건이었다.[1] 일련의 사건으로 총 10명이 체포되었으며,[1] 그 중 주범 3명은 모두 당시 소년이었음에도 항소심까지 사형판결을 선고받았다.[106][127] 최고 재판소에서 상고를 기각하는 판결을 받아 사형이 확정되었다(소년 사형수).[146]가해 소년 K・M(이하 KM, 나가라가와 사건 당시 19일본어세)는 1975년 3월 19일 아이치현이치노미야시에서 태어났다.[127] 형사 재판에서 강도 치상, 상해죄, 살인, 감금, 강도 살인, 사체 유기, 공갈죄,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되었으며, 사형수 3명 중 유일하게 제1심·항소심 모두 사형 판결을 받았다.[106][127]
공범 2명과 함께 2011년 3월 10일에 최고 재판소에서 상고 기각 판결을 받았으며, 2011년 4월 1일 자로 사형 판결이 확정되었다.[168] 2019년(레이와 원년) 10월 1일 시점에서 사형수로서 도쿄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173]
6. 2. 사형 제도 논란
주범 3명에게 사형이 확정되면서 사형제도 존폐 논란이 다시 불붙었다. 피해자 유족, 변호인, 언론 등 각계에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다.[1]이 사건은 당시 미성년자였던 불량 청소년들이 끔찍한 린치 끝에 살인을 저지른 흉악 범죄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특히 주범 3명이 모두 사형 판결을 받고, 최고재판소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사형이 확정되면서(소년 사형수) 논란은 더욱 커졌다.[146]
사건 당시에는 옴진리교 사건(마쓰모토 사린 사건, 지하철 사린 사건 등)과 한신·아와지 대지진 등 중대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여 언론의 주목을 덜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건의 잔혹성이 부각되며 사형 제도의 존폐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1]
6. 3. 실명 보도 문제
사건 초기에는 가해자들이 소년이라는 이유로 익명으로 보도되었다.[1] 그러나 최고 재판소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사형이 확정된 이후, 대부분의 언론이 실명 보도로 전환하였다.[146]이 사건을 계기로 소년 범죄 보도에 있어서 실명 보도와 익명 보도 기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특히, 흉악 범죄를 저지른 소년범의 실명 보도는 사회적 관심사가 되었으며, 언론의 보도 방식과 소년법의 취지 사이의 균형점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6. 4. 한국의 관점
이 사건은 대한민국에서도 유사한 소년 범죄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참고 사례로 언급되곤 한다. 특히, 소년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이 사건의 판결 내용과 사회적 영향이 자주 거론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소년범에 대한 처벌 강화보다는 교정 및 교화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며, 이 사건의 가해자들에게 사형이 선고된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소년범죄의 흉포화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처벌 강화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일 수 있다.참조
[1]
뉴스
'『少年と罪 木曽川・長良川連続リンチ殺人事件』 1『法の壁 遺族置き去り』'
中日新聞
2017-03-30
[2]
뉴스
知る権利と報道被害 逆転判決 揺れた司法 『少年報道』文春が勝訴 名高裁差し戻し審
中日新聞
2004-05-13
[3]
뉴스
永久保存 元名大生事件のみ 名家裁 中学生5000万円恐喝は廃棄
中日新聞
2022-10-22
[4]
뉴스
連続リンチ殺人、3人が再審請求 名古屋高裁【名古屋】
朝日新聞
2017-03-04
[5]
뉴스
木曽川・長良川リンチ殺人公判 被告の1人が陳述一転、起訴事実ほぼ認める 「未必の故意」否定せず
毎日新聞
1998-05-14
[6]
뉴스
連続リンチ事件 死刑と無期なぜ格差 遺族「判決は甘い」
産経新聞
2001-07-20
[7]
뉴스
連続リンチ殺人事件 来年2月上告審弁論
産経新聞
2010-07-09
[8]
뉴스
〈解〉木曽川・長良川連続リンチ死事件
読売新聞
2004-05-12
[9]
뉴스
連続リンチ殺人 元少年3人死刑確定へ 最高裁が上告棄却 「結果重大やむなし」
中日新聞
2011-03-11
[10]
뉴스
連続リンチ殺人 死刑囚の再審請求棄却 名高裁 精神鑑定「新規性欠く」」「「いつまで苦しめるのか」 一宮の遺族が死刑囚に手紙
中日新聞
2013-02-06
[11]
뉴스
連続リンチ殺人 元少年3人死刑確定へ 最高裁、上告棄却
読売新聞
2011-03-11
[12]
뉴스
当時少年3人に死刑 2人無期の一審破棄 連続リンチ殺人、名古屋高裁判決【名古屋】
朝日新聞
2005-10-15
[13]
뉴스
元少年3人、死刑確定へ 最高裁、4人殺害「責任重大」 連続リンチ殺人事件
朝日新聞
2011-03-11
[14]
뉴스
3府県連続リンチ殺人:死刑囚接見制限、国に賠償を命令――名地裁
毎日新聞
2014-08-29
[15]
뉴스
損賠訴訟:死刑囚への手紙制限、違法判決
毎日新聞
2021-09-22
[16]
뉴스
元少年3人、死刑確定へ 最高裁 連続リンチ殺人、上告棄却
産経新聞
2011-03-11
[17]
뉴스
長良・木曽川リンチ殺人 接点は『シンナー』だけ 犯行グループ 名前知らぬ人物も
中日新聞
1994-10-17
[18]
뉴스
【愛知県】事件ファイル2001(下) 連続リンチ殺人判決 木曽川・長良川事件 元少年のA (KM) 被告に死刑 3被告全員を検察側控訴 遺族の強い不満後押し
中日新聞
2001-12-31
[19]
뉴스
連続リンチ控訴審 事件11年 罪と向き合う 3被告の日々 体験を文章に■A被告/続く自問自答■B被告/信仰が支え■C被告
中日新聞
2005-10-14
[20]
뉴스
連続リンチ殺人の異議棄却【名古屋】
朝日新聞
2015-12-26
[21]
뉴스
罪状認否持ち越す リンチ殺人の主犯格初公判
中日新聞
1995-06-27
[22]
뉴스
木曽川・長良川連続リン치死事件 14일에 控訴審판결 3被告는 지금 信仰을 얻어 罪와 마주보는 悩み면서도 法廷에서 主張
中日新聞
2005-10-12
[23]
뉴스
'『少年と罪 木曽川・長良川連続リンチ殺人事件』 3『「居場所」を失い転落』'
中日新聞
2017-04-01
[24]
뉴스
'『少年と罪 木曽川・長良川連続リンチ殺人事件』 2『「ええ子」寂しさ抱え』'
中日新聞
2017-03-31
[25]
뉴스
正義のかたち:死刑・日米家族の選択/1 義母殺された女性、弟が殺人被告に
毎日新聞
2009-02-15
[26]
뉴스
Aさん殺害容疑で2人指名手配 連続リンチ殺人
中日新聞
1994-11-30
[27]
뉴스
大阪出身少年も逮捕 連続リンチ Aさん殺害 さらに1人手配へ
中日新聞
1994-11-27
[28]
뉴스
'『木曽川』も関与 長良川リンチ容疑者の6人【名古屋】'
朝日新聞
1994-10-14
[29]
뉴스
19歳少年を地検送致 木曽川リンチ殺人
中日新聞
1994-11-26
[30]
뉴스
別の強盗で再逮捕 連続リンチ主犯格少年 津島で3万円奪う
中日新聞
1994-11-26
[31]
뉴스
陰惨な犯行、克明に 連続リンチ殺人冒頭陳述【名古屋】
朝日新聞
1995-02-01
[32]
뉴스
集団リンチ事件 荒れる室戸“死体遺棄ドライブ” 遺体元すし店員と確認」「集団リンチ事件 室戸岬に台風取材TV局 計画変更し竹林へ死体遺棄
読売新聞
1994-11-24
[33]
뉴스
記者の眼/凶暴な若者 その心模様は… 上田寿行
中日新聞
1994-11-13
[34]
뉴스
長良・木曽川リンチ殺人 母と弟の3人暮らし 新たな被害者
中日新聞
1994-10-14
[35]
뉴스
木曽川河川敷にも遺体 長良川リンチ事件の2参考人が供述【名古屋】
朝日新聞
1994-10-14
[36]
뉴스
岐阜・輪之内の河川敷遺体 2人とも尾西の男性 暴行後に現場に運ぶ?
中日新聞
1994-10-09
[37]
뉴스
'『少年と罪 木曽川・長良川連続リンチ殺人事件』 4『集団心理 引けず凶行』'
中日新聞
2017-04-03
[38]
뉴스
長良川河川敷に男性2死体 リンチ殺人か? 頭部を強打、致命傷に
中日スポーツ
1994-10-09
[39]
뉴스
長良・木曽川リンチ殺人 主犯格の容疑者 仲間2少女殺害も計画 グループ内で漏らす 通報を恐れ?別の仲間 怖くなり警察へ
中日新聞
1994-11-02
[40]
웹사이트
施設案内 丹陽町出張所(丹陽公民館)
https://www.city.ich[...]
一宮市
2020-06-05
[41]
뉴스
口論になった、髪が赤い だからリンチして死なせた(第2報)
朝日新聞
1994-10-30
[42]
뉴스
グループ1人逮捕、ほか2人指名手配 長良川リンチ事件【名古屋】
朝日新聞
1994-10-13
[43]
뉴스
叫ぶ被害者めった打ち 連続リンチ殺人 シンナーかけ火・木曽川事件 無抵抗者助かる・長良川事件
中日新聞
1994-10-16
[44]
뉴스
河川敷に男性2遺体 殺人?頭部に殴打痕 周りに血痕 岐阜・輪之内町 長良川堤防下
中日新聞
1994-10-08
[45]
뉴스
岐阜・輪之内 河川敷2遺体 3人目の被害者いた 数人から暴行 命からがら逃げ帰る
中日新聞
1994-10-10
[46]
뉴스
女性めぐりトラブル? 岐阜・輪之内 河川敷2遺体 負傷の友人から聴く
中日新聞
1994-10-11
[47]
뉴스
犯行グループの中心に若い女性 岐阜・輪之内河川敷2遺体
中日新聞
1994-10-12
[48]
뉴스
岐阜・輪之内河川敷2遺体 犯行、愛知の6人グループ 岐阜県警 無職19歳ら4人特定
中日新聞
1994-10-13
[49]
뉴스
容疑の4人特定 長良川のリンチ 岐阜・輪之内町【名古屋】
朝日新聞
1994-10-12
[50]
뉴스
岐阜・輪之内河川敷2遺体 男女3人逮捕へ 強盗致死容疑 2人を手配
中日新聞
1994-10-13
[51]
뉴스
尾西の木曽川 自供通り遺体
中日新聞
1994-10-14
[52]
뉴스
岐阜の河川敷事件 仲間が別のリンチ殺人 参考人聴取で犯行を自供 男女計4人を逮捕
中日新聞
1994-10-14
[53]
뉴스
主犯格の少年出頭 岐阜・愛知リンチ殺人【名古屋】
朝日新聞
1994-10-15
[54]
뉴스
主犯格の少年逮捕 長良・木曽川のリンチ殺人 同じ仲間の犯行 逃走中、別の事件も 一宮署に出頭 全面的に容疑認める
中日新聞
1994-10-15
[55]
뉴스
新幹線ボルト抜き取り 不審な車目撃 練馬ナンバー 1ヵ月前に2度
中日新聞
1998-05-01
[56]
뉴스
【三重県】県警この1年 犯罪に県境なく広域化 相次いで合同捜査
中日新聞
1989-12-26
[57]
뉴스
【岐阜県】3長官賞を受ける 県警刑事部と関連各署
中日新聞
1990-05-24
[58]
뉴스
三重で逮捕の元組幹部夫婦 愛知でもホステス監禁 美容店主失跡と様相酷似
中日新聞
1989-07-16
[59]
뉴스
美容師経営者殺人 ××被告に懲役17年の実刑判決/岐阜地裁
読売新聞
1994-07-01
[60]
뉴스
手配の容疑者 さらに1人逮捕 長良・木曽川リンチ
中日新聞
1994-10-15
[61]
뉴스
さらに1人逮捕 長良川事件
中日新聞
1994-10-16
[62]
뉴스
大垣へ身柄移送 手配の少年逮捕 長良川リンチ殺人
中日新聞
1994-10-24
[63]
뉴스
主犯格の少年再逮捕 長良川リンチ殺人
中日新聞
1994-11-04
[64]
뉴스
少年を再逮捕 木曽川事件殺人容疑
中日新聞
1994-11-15
[65]
뉴스
長良川・木曽川リンチ殺人 若者、歯止めなき暴走 動機不明、命もてあそぶ
中日新聞
1994-10-14
[66]
뉴스
長良川・木曽川リンチ殺人 大阪でも人殺した 第4の殺人 少年自供『高知に捨てた』
中日新聞
1994-11-19
[67]
뉴스
4人目の被害者は大阪の23歳男性 長良・木曽川リンチ殺人
中日新聞
1994-11-22
[68]
뉴스
高知の山中であす遺体捜索 連続リンチ殺人事件【大阪】
朝日新聞
1994-11-22
[69]
뉴스
4人目被害者の遺体本格捜査へ リンチ殺人
中日新聞
1994-11-22
[70]
뉴스
4人目の遺体発見 長良・木曽川事件の少年自供通り 高知の山中で
中日新聞
1994-11-23
[71]
뉴스
歯形でAさんと断定 リンチ・高知の遺体
中日新聞
1994-11-24
[72]
뉴스
大阪の少年を逮捕 Aさん殺害し、死体遺棄容疑【大阪】
朝日新聞
1994-11-22
[73]
뉴스
さらに2人を再逮捕 連続リンチ殺人事件
中日新聞
1994-12-06
[74]
뉴스
大阪の事件で3人家裁送致 連続リンチ殺人
中日新聞
1994-12-28
[75]
뉴스
主犯格少年ら2人『刑事処分が相当』長良川・木曽川リンチ殺人
中日新聞
1995-01-19
[76]
뉴스
連続リンチ殺人 残る少年を逮捕 大垣署、長良川事件
中日新聞
1995-02-10
[77]
뉴스
19歳少年を再逮捕 長良・木曽リンチ殺人
中日新聞
1995-03-04
[78]
뉴스
リンチで主犯格ら起訴
中日新聞
1995-03-25
[79]
뉴스
連続リンチ殺人で無職少年2人を起訴 名古屋地検
日本経済新聞
1995-03-25
[80]
뉴스
主犯格の少年起訴 連続リンチ殺人 木曽・長良川事件
中日新聞
1995-04-29
[81]
뉴스
兵庫出身の少年起訴 木曽川・長良川事件
日本経済新聞
1995-04-29
[82]
뉴스
被害者支援 父親訴え 連続リンチ殺人25年 「息子の死」 年10回講演=愛知
読売新聞
2019-10-11
[83]
뉴스
連続リンチ事件の経過
中日新聞
2005-10-14
[84]
뉴스
罪状認否持ち越す リンチ殺人の主犯格初公判
中日新聞
1995-06-27
[85]
뉴스
被告が罪状認否留保 名古屋地裁 連続リンチ殺人事件
日本経済新聞
1995-06-27
[86]
뉴스
リンチ殺人事件 次回27日求刑へ 名古屋地裁公判
中日新聞
2000-12-11
[87]
뉴스
極めて厳しい求刑か 長良川リンチ殺人 検察側が論告へ 名古屋地裁
中日新聞
2000-12-27
[88]
뉴스
少年3人、殺意を否認 リンチ殺人第2回公判 事実関係は認める 名古屋地裁
中日新聞
1995-08-21
[89]
뉴스
3被告、殺意を否認 名古屋地裁公判 木曽川・長良川リンチ殺人事件
日本経済新聞
1995-08-21
[90]
뉴스
被告の1人、共謀認める 木曽川・長良川リンチ殺人 名地裁公判で陳述書
日本経済新聞
1998-05-14
[91]
뉴스
木曽・長良川リンチ殺人事件の経過
中日新聞
2000-12-28
[92]
뉴스
連続リンチ殺人木曽・長良川事件 1人共謀認める/名古屋地裁
読売新聞
1998-05-14
[93]
뉴스
連続リンチ殺人 愛知、岐阜2事件 一転、共謀認める 3被告のうち1人 名地裁公判
中日新聞
1998-05-14
[94]
뉴스
連続リンチ殺人 被告少年の1人が未必の故意を認める/名古屋地裁
読売新聞
1998-05-28
[95]
뉴스
新たに1人が認める 木曽川・長良川連続リンチ殺人 名地裁、主犯格の3被告公判
日本経済新聞
1998-05-28
[96]
뉴스
新たに1被告が起訴事実認める 連続リンチ殺人公判
中日新聞
1998-05-28
[97]
뉴스
大阪事件を併合 木曽川・長良川リンチ殺人公判で名地裁【名古屋】
朝日新聞
1998-08-14
[98]
뉴스
『大阪事件』を併合、一括審理に 3府県連続リンチ殺人【大阪】
朝日新聞
1998-08-14
[99]
뉴스
連続リンチ殺人事件 大阪の殺人も併合審理/名古屋地裁
読売新聞
1998-09-22
[100]
뉴스
連続リンチ殺人 大阪事件の殺意、2被告が否認/名古屋地裁
読売新聞
1998-10-06
[101]
뉴스
息子奪われた悔しさ今も 木曽・長良川リンチ求刑 涙の遺族『死刑に』 『少年でも許されぬ』
中日新聞
2000-12-28
[102]
뉴스
木曽・長良川リンチ殺人 3被告に死刑求刑 名地検 『少年(当時)でも矯正無理』
中日新聞
2000-12-28
[103]
뉴스
木曽川・長良川連続リンチ殺人 涙流し『生きて償う』名古屋地裁 3被告訴え結審
中日新聞
2001-03-01
[104]
뉴스
死刑求刑3被告 最終弁論始まる 木曽川・長良川連続リンチ殺人
中日新聞
2001-02-28
[105]
뉴스
凶走少年の7年 木曽川・長良川リンチ殺人 判決を前に(下) 生きたいけど勝手すぎる…
中日新聞
2001-07-05
[106]
뉴스
主導の19歳(当時)に死刑 リンチ殺人で名地裁判決 『強固な殺意 集団の推進力』追従2人は無期
中日新聞社
2001-07-10
[107]
뉴스
連続リンチ殺人判決 犯行時少年の死刑 83年以降確定なし
中日新聞社
2001-07-10
[108]
뉴스
解説 罪に毅然とした態度
中日新聞社
2001-07-10
[109]
뉴스
連続リンチ殺人判決 識者の見方 『論拠が弱い』『妥当な結論』
中日新聞社
2001-07-10
[110]
뉴스
連続リンチ殺人判決 遺族『何だ、これは』 7年間の涙乾かず『墓前にどう報告…』
中日新聞社
2001-07-10
[111]
뉴스
連続リンチ殺人判決 死刑に硬直 無期に涙 対照的な3被告 支援者『死刑償いにならぬ』
中日新聞社
2001-07-10
[112]
뉴스
死刑判決の被告控訴 連続リンチ殺傷事件
中日新聞社
2001-07-10
[113]
뉴스
連続リンチ殺人 殺人罪求め控訴 名地検『3被告共通の事実』
中日新聞社
2001-07-24
[114]
뉴스
女性5人殺害のK被告 身代金要求無罪は『事実誤認』 大阪地検が控訴
読売新聞大阪本社
1999-04-06
[115]
뉴스
5女性殺害のK被告、2審も死刑 大阪高裁【大阪】
朝日新聞大阪本社
2001-03-28
[116]
뉴스
来年5月に控訴審 連続リンチ殺人
中日新聞社
2002-07-02
[117]
뉴스
来年5月に第1回控訴審 連続リンチ殺人3被告
日本経済新聞社
2002-07-02
[118]
뉴스
3被告の死刑求める 木曽川・長良川リンチ殺人控訴審 検察『悪質さ同じ』 名高裁初公判
中日新聞社
2003-05-26
[119]
뉴스
長良川・木曽川連続リンチ殺人 3被告『矯正可能』名高裁控訴審で主張
中日新聞社
2003-05-27
[120]
뉴스
木曽川・長良川リンチ殺人控訴審初公判 3被告の控訴趣意書(要旨)
中日新聞社
2003-05-27
[121]
뉴스
木曽川・長良川連続リンチ死 名古屋高裁14日判決 償いの言葉響かない
中日新聞社
2005-10-12
[122]
뉴스
'『少年と罪 木曽川・長良川連続リンチ殺人事件』 6『議論尽くし全員極刑』'
中日新聞社
2017-04-05
[123]
뉴스
'『硬膜下血腫』死因の可能性大 木曽川リンチで医師【名古屋】'
朝日新聞名古屋本社
2003-07-01
[124]
뉴스
連続リンチ死事件 控訴審公判で遺族が意見陳述/名古屋高裁
読売新聞中部支社
2005-03-16
[125]
뉴스
木曽川・長良川連続リンチ殺人 死刑妥当の是非争点 控訴審結審 判決は10月14日
中日新聞社
2005-08-20
[126]
뉴스
連続リンチ殺人、判決は10月14日 控訴審結審【名古屋】
朝日新聞名古屋本社
2005-08-20
[127]
뉴스
連続リンチ殺人 元少年3人に死刑 名高裁 一審破棄 4人殺害を認定
中日新聞社
2005-10-14
[128]
뉴스
元少年3人に死刑判決 連続リンチ殺人 『役割に大差ない』名高裁 2人無期の一審破棄
中日新聞社
2005-10-15
[129]
뉴스
核心 連続リンチ殺人 元少年3人に死刑 少年事件厳罰化拍車か 死刑の選択基準明確化
中日新聞社
2005-10-15
[130]
뉴스
識者の見方(談)『3人同等の刑事責任』『北京規則 精神尊重を』
中日新聞社
2005-10-15
[131]
뉴스
社説 リンチ殺人判決 3少年死刑の問うもの
中日新聞社
2005-10-15
[132]
뉴스
3被告身じろぎせず 連続リンチ殺人全員『死刑』 遺族に深々一礼も 弁護人は『頭真っ白』
中日新聞社
2005-10-15
[133]
뉴스
連続リンチ殺人 全員『死刑』 遺族癒えぬ悲しみ あの子は帰らない
中日新聞社
2005-10-15
[134]
뉴스
'『殺人認定に不満』 B被告の弁護人'
中日新聞社
2005-10-14
[135]
뉴스
来週に面会 弁護人上告も
中日新聞社
2005-10-15
[136]
뉴스
被告1人が上告 連続リンチ殺人
中日新聞社
2005-10-19
[137]
뉴스
元少年の弁護人ら 判決を非難の声明 連続リンチ殺人
中日新聞社
2005-10-22
[138]
뉴스
元少年上告2人目 連続リンチ殺人
中日新聞社
2005-10-24
[139]
뉴스
元少年全員が上告 連続リンチ殺人
中日新聞社
2005-10-27
[140]
뉴스
来年2月に最高裁弁論 連続リンチ殺人 二審死刑3被告
中日新聞社
2010-07-09
[141]
뉴스
連続リンチ殺人事件、3被告の弁論期日指定 最高裁
http://www.nikkei.co[...]
日本経済新聞社
2017-06-19
[142]
뉴스
元3少年の死刑回避を 連続リンチ殺人 上告審弁論で弁護側
中日新聞社
2011-02-11
[143]
뉴스
連続リンチ殺人事件、元少年3人の死刑回避訴え 最高裁弁論
http://www.nikkei.co[...]
日本経済新聞社
2017-06-19
[144]
뉴스
'『リンチ』3・10判決'
中日新聞社
2011-02-22
[145]
뉴스
連続リンチ殺人3被告、最高裁判決は3月10日
http://www.nikkei.co[...]
日本経済新聞社
2017-06-19
[146]
뉴스
元少年3人死刑確定へ 連続リンチ殺人 事件から17年『社会への影響大』最高裁が上告棄却
中日新聞社
2011-03-10
[147]
뉴스
元少年3人死刑確定へ 連続リンチ殺人 最高裁が上告棄却 『結果重大 やむなし』
中日新聞社
2011-03-11
[148]
뉴스
社説 3少年に死刑 市民も直面する『問い』
中日新聞社
2011-03-11
[149]
뉴스
リンチ殺人死刑確定へ 遺族『一歩踏み出せる』 無念耐えた16年 法廷に深々と一礼
中日新聞東京本社
2011-03-11
[150]
뉴스
リンチ殺人死刑確定へ 遺族『一歩踏み出せる』 無念耐えた16年 法廷に深々と一礼
中日新聞社
2011-03-11
[151]
뉴스
元少年3人死刑確定へ 連続リンチ殺人 最高裁が上告棄却
毎日新聞東京本社
2011-03-11
[152]
뉴스
少年の確定 複数は初
中日新聞社
2011-03-11
[153]
뉴스
連続リンチ殺人 『判決は政治的な判断』 元少年の1人 再審請求を希望
中日新聞社
2011-03-11
[154]
뉴스
写真記事『不服ない』 週刊誌掲載 リンチ殺人死刑囚
中日新聞社
2011-05-13
[155]
뉴스
リンチ殺人事件 死刑囚写真掲載 発売の週刊誌
中日新聞社
2011-05-12
[156]
뉴스
死刑囚との面会写真を掲載 週刊誌「フライデー」
http://www.nikkei.co[...]
日本経済新聞社
2017-06-19
[157]
뉴스
死刑囚撮影し掲載 フライデーに抗議 法務省
中日新聞社
2011-05-31
[158]
뉴스
死刑判決の元3少年、最高裁に訂正申し立て
http://www.nikkei.co[...]
日本経済新聞社
2017-06-19
[159]
뉴스
死刑判決訂正申し立て
読売新聞東京本社
2011-03-23
[160]
뉴스
死刑判決の元少年3人が訂正申し立て 連続リンチ殺人事件
朝日新聞社
2011-03-23
[161]
뉴스
連続リンチ殺人 元少年3人の死刑確定 最高裁、訂正申し立て棄却
中日新聞社
2011-04-02
[162]
뉴스
元少年3人の死刑確定 連続リンチ殺人事件 最高裁【大阪】
朝日新聞大阪本社
2011-04-02
[163]
뉴스
連続リンチ殺人事件、元少年3人の死刑確定
朝日新聞社
2011-04-02
[164]
뉴스
元少年3被告の死刑が確定、3府県連続リンチ殺人
http://www.nikkei.co[...]
日本経済新聞社
2017-06-19
[165]
뉴스
連続リンチ殺人 3死刑囚再審請求へ 弁護人方針 木曽川事件、焦点に
中日新聞社
2011-05-29
[166]
뉴스
死刑囚が再審請求 連続リンチ殺人 心神喪失を主張
中日新聞社
2011-12-20
[167]
뉴스
連続リンチ殺人、死刑囚が再審請求
http://www.nikkei.co[...]
日本経済新聞社
2017-06-19
[168]
뉴스
連続リンチ殺人 死刑囚の再審請求棄却 名高裁 精神鑑定『新規性欠く』
中日新聞社
2013-02-06
[169]
뉴스
連続リンチ殺人 別の死刑囚も再審請求 名高裁 弁護側『共謀、殺意ない』
中日新聞社
2013-02-06
[170]
뉴스
連続リンチ殺人の死刑囚 2人目再審請求棄却 名高裁
中日新聞社
2013-08-20
[171]
뉴스
連続リンチ殺人の異議棄却 【名古屋】
朝日新聞名古屋本社
2015-12-26
[172]
뉴스
連続リンチ殺人で異議申し立て棄却 2死刑囚に、名古屋高裁
中日新聞社
2015-12-26
[173]
뉴스
元少年3人、再審請求 木曽川、長良川リンチ殺人
http://www.chunichi.[...]
中日新聞社
2017-03-03
[174]
뉴스
連続リンチ殺人 再審請求 元少年3人 1人は初『心神喪失』
中日新聞社
2017-03-04
[175]
뉴스
連続リンチ殺人、3人が再審請求 名古屋高裁【名古屋】
朝日新聞名古屋本社
2017-03-04
[176]
뉴스
名古屋拘置所 預かった公判記録誤廃棄 死刑囚、賠償求め国提訴
中日新聞社
2012-02-01
[177]
뉴스
死刑囚公判記録、名古屋拘置所が誤廃棄 連続リンチ殺人事件
https://www.nikkei.c[...]
日本経済新聞社
2017-06-19
[178]
뉴스
'『秘密面会』拒否違法 死刑囚の請求認める 東京地裁'
中日新聞社
2016-02-24
[179]
뉴스
死刑囚面会で職員同席は違法 東京地裁判決
http://www.nikkei.co[...]
日本経済新聞社
2017-06-19
[180]
뉴스
面会立ち会い、控訴審『違法』 東京高裁
朝日新聞社
2016-11-25
[181]
뉴스
'『秘密面会』国が拒否 59万円賠償判決確定 連続リンチ殺人死刑囚に'
中日新聞社
2017-09-09
[182]
뉴스
死刑囚の面会、職員立ち会いは「違法」 国に賠償命令
http://www.asahi.com[...]
朝日新聞社
2017-06-19
[183]
뉴스
拘置所で雑誌廃棄 5000円支払い命令 名古屋地裁、国に
中日新聞社
2006-10-27
[184]
뉴스
雑誌廃棄は違法 被告訴え認める 名古屋地裁【名古屋】
朝日新聞名古屋本社
2006-10-27
[185]
뉴스
死刑囚の手紙制限は違法
中日新聞社
2016-02-17
[186]
뉴스
死刑囚の手紙不許可、国に賠償増額命じる 名古屋高裁判決
中日新聞社
2017-03-10
[187]
뉴스
死刑囚へ閲覧制限 国に賠償を命じる 名古屋地裁
中日新聞社
2016-08-31
[188]
뉴스
拘置所の閲覧制限『違法』 名古屋地裁 死刑囚が勝訴
中日新聞社
2016-01-20
[189]
뉴스
死刑囚の文書送付 不許可に賠償判決 名古屋地裁 国に命令
中日新聞社
2017-01-14
[190]
뉴스
死刑囚に差し入れ不許可で賠償命令 名古屋地裁、国に
中日新聞社
2017-11-17
[191]
뉴스
死刑囚接見妨害 国の主張退ける 名地裁が賠償命令
中日新聞社
2014-08-29
[192]
뉴스
死刑囚と接見を妨害 国に63万円賠償命令=中部
読売新聞中部支社
2014-08-29
[193]
뉴스
死刑囚の情報漏えい 国に損害賠償命じる 連続リンチ殺人
中日新聞社
2014-04-19
[194]
뉴스
死刑囚の面会者情報漏洩、国に慰謝料命令 名古屋地裁
http://www.nikkei.co[...]
日本経済新聞社
2017-06-19
[195]
뉴스
死刑囚の情報漏えい 国に39万円賠償命令 名地裁、連続リンチ殺人
中日新聞社
2016-09-03
[196]
뉴스
死刑囚が逆転勝訴 名高裁 漏えい国に賠償命令
中日新聞社
2015-02-06
[197]
뉴스
木曽川など連続リンチ 被告が文春提訴 『本名わかる記事掲載』
中日新聞社
1998-03-10
[198]
뉴스
'『仮名でも少年本人と推測』 リンチ殺人 記事掲載 文春に賠償命令 名地裁判決'
中日新聞社
1999-06-30
[199]
뉴스
少年仮名報道に名地裁賠償命令 文春側『市民感覚とズレ』 『分かるのは知人だけ』
中日新聞社
1999-07-01
[200]
뉴스
実名類似の仮名報道 違法 リンチ殺人記事の文春 名高裁も賠償命令
中日新聞社
2000-06-29
[201]
뉴스
実名にも余地『基準不明瞭』 仮名報道判決 文春側上告へ
中日新聞社
2000-06-30
[202]
뉴스
少年事件報道で新判断か 仮名記事めぐる訴訟 最高裁が弁論開く
中日新聞社
2003-02-08
[203]
뉴스
少年仮名報道 不特定多数 推測できぬ 木曽・長良川リンチ殺人 最高裁、二審を破棄
中日新聞社
2003-03-14
[204]
뉴스
原告側が書面陳述 『不法行為が成立』 リンチ殺人文春 報道差し戻し審
中日新聞社
2003-05-31
[205]
뉴스
長良川・木曽川リンチ殺人 『少年報道』で文春勝訴 差し戻し審 名高裁判決 『記事に公益性』
中日新聞社
2004-05-12
[206]
뉴스
実名推測できる仮名報道『公益性』 『仮名』訴訟判決【名古屋】
朝日新聞名古屋本社
2004-05-12
[207]
뉴스
少年犯罪、報道の公益性優先 文春側逆転勝訴判決【名古屋】
朝日新聞名古屋本社
2004-05-12
[208]
뉴스
元少年の賠償を棄却 実名似の仮名報道、名古屋高裁で差し戻し審
朝日新聞社
2004-05-12
[209]
뉴스
知る権利と報道被害 逆転判決 揺れた司法 『少年報道』文春が勝訴 名高裁差し戻し審
中日新聞社
2004-05-13
[210]
뉴스
元少年側上告、弁護士『違憲主張』 週刊文春の仮名報道【名古屋】
朝日新聞名古屋本社
2004-05-26
[211]
뉴스
長良川のリンチ殺人 文春の勝訴確定 実名似た少年報道 最高裁『公表に意義』
中日新聞社
2004-11-03
[212]
뉴스
連続リンチ殺人 元少年の実名掲載 週刊新潮、2人は写真も
中日新聞社
2005-10-20
[213]
뉴스
(メディア)死刑判決の少年事件報道 『確定後は実名』の動き
朝日新聞社
2005-11-05
[214]
웹사이트
「週刊新潮」の実名報道に対する会長声明
https://www.nichiben[...]
日本弁護士連合会
2005-10-28
[215]
웹사이트
「週刊新潮」の実名報道に対する会長声明
https://www.aiben.jp[...]
愛知県弁護士会
2005-11-10
[216]
뉴스
実名『更生する可能性なく』 報道各社対応割れる 匿名『少年法の精神基づく』
中日新聞社
2011-03-11
[217]
서적
事件の取材と報道
朝日新聞社
2005-03-25
[218]
뉴스
朝日新聞指針『事件の取材と報道2004』 4年ぶり全面改訂
朝日新聞東京本社
2004-06-21
[219]
뉴스
元少年3人死刑確定へ 最高裁 4人殺害『責任重大』
朝日新聞社
2011-03-11
[220]
뉴스
元少年3人死刑確定へ 連続リンチ殺人 最高裁、上告棄却
読売新聞東京本社
2011-03-11
[221]
뉴스
元少年3人の死刑確定へ 実名、報道すべき関心事
読売新聞東京本社
2011-03-11
[222]
뉴스
元少年3人死刑確定へ 『やっと無念晴らせた』 遺族ら涙ぬぐう
読売新聞東京本社
2011-03-11
[223]
뉴스
元少年3人、死刑確定へ 最高裁 連続リンチ殺人、上告棄却
産経新聞東京本社
2011-03-11
[224]
뉴스
元少年3人死刑確定へ 連続リンチ殺人 上告棄却 最高裁『執拗かつ残虐』
産経新聞大阪本社
2011-03-11
[225]
뉴스
元少年3人死刑確定へ 連続リンチ殺人 最高裁上告棄却『4人次々 結果重大』
日本経済新聞社
2011-03-11
[226]
뉴스
元少年3人の死刑確定へ 連続リンチ殺人の上告棄却
http://www.nikkei.co[...]
日本経済新聞社
2017-06-19
[227]
뉴스
▽ 実名報道と匿名報道 光市母子殺害事件で分かれる(在京メディア各社の対応とその理由)
http://www.47news.jp[...]
2017-06-17
[228]
문서
免田事件・財田川事件・松山事件・島田事件の4件
[229]
뉴스
匿名報道を継続します 本紙見解
毎日新聞中部本社
2011-03-11
[230]
뉴스
なぜ匿名報道か 更生になお配慮必要
中日新聞東京本社
2011-03-11
[231]
뉴스
少年と罪 凶悪犯に厳罰の流れ 少年法引き下げで論議■97年神戸連続殺傷が転機に■判決確定時の実名報道主流
中日新聞社
2017-12-20
[232]
뉴스
法務省:元少年ら2人の死刑執行 永山則夫元死刑囚以来
https://mainichi.jp/[...]
毎日新聞社
2017-12-19
[233]
뉴스
元少年死刑執行:4人殺害、重大さ考慮か 法相異例の決断
https://mainichi.jp/[...]
毎日新聞社
2017-12-19
[234]
뉴스
元少年死刑執行:関係者の評価、分かれる
https://mainichi.jp/[...]
毎日新聞社
2017-12-19
[235]
뉴스
元少年 20年ぶり死刑執行 千葉一家4人殺害 永山元死刑囚以来
中日新聞社
2017-12-20
[236]
뉴스
犯行時19歳の死刑執行 92年の市川一家4人殺害
http://www.tokyo-np.[...]
中日新聞東京本社
2017-12-19
[237]
뉴스
「僕の経験 反面教師に」 当時19歳死刑囚 16年前、本紙に手記
http://www.tokyo-np.[...]
中日新聞東京本社
2017-12-19
[238]
뉴스
連続リンチ事件で元少年3人の死刑が確定
http://news.tv-asahi[...]
テレビ朝日
2018-01-26
[239]
뉴스
匿名か実名か判断分かれる 死刑が確定した元少年3人◆報道各社の実名・匿名対応とその理由◆
毎日新聞東京本社
2011-05-07
[240]
웹사이트
少年の実名報道を受けての会長声明
http://www.nichibenr[...]
日本弁護士連合会
2017-06-19
[241]
웹사이트
少年に対する死刑判決の確定に関する会長声明
http://www.nichibenr[...]
日本弁護士連合会
2017-06-19
[242]
뉴스
連続リンチ事件 実名報道に抗議 県弁護士会長
中日新聞社
2011-03-12
[243]
웹사이트
少年事件の実名報道に対する会長声明
http://www.aiben.jp/[...]
愛知県弁護士会
2017-07-01
[244]
뉴스
[少年法の岐路](5)『実名』容認 議論進まず(連載)
読売新聞東京本社
2015-11-22
[245]
뉴스
元少年3被告の量刑焦点 連続リンチ殺人、あす最高裁判決
朝日新聞社
2011-03-09
[246]
웹사이트
本多小百合 フォト日記:中京テレビ アナウンスルーム
https://www.ctv.co.j[...]
中京テレビ放送
2023-02-01
[247]
뉴스
[極刑](下)『命の償い』 揺れる是非(連載)
読売新聞
2005-10-16
[248]
뉴스
'3被告、今も許せぬ』 連続リンチ殺人事件 【名古屋】
朝日新聞
2000-12-28
[249]
뉴스
[裁きの時](上)被告から謝罪の手紙『きれいごと』(連載)=中部
読売新聞
2011-03-08
[250]
뉴스
連続リンチ殺人 上告審弁論 『真の謝罪に思えぬ』 遺族 ため息、不信強く
中日新聞
2011-02-11
[251]
뉴스
償いと救いを求めて:3府県連続リンチ殺人・控訴審判決を前に/中
毎日新聞
2005-10-08
[252]
뉴스
木曽川・長良川連続リンチ殺人上告審 死刑の適否どう判断 元少年3人あす判決 『生きて償ってほしい』 被告と面会重ねる遺族 会話重ね減軽の思いも
中日新聞
2011-03-9
[253]
뉴스
元組員に懲役1年8月判決 リンチ殺人事件
中日新聞
1995-04-21
[254]
뉴스
連続リンチ殺人 少年に不定期刑 大阪の事件で判決
中日新聞
1995-09-12
[255]
뉴스
強盗致傷などで2容疑者を起訴 長良川リンチ殺人
中日新聞
1994-11-04
[256]
뉴스
'木曽川事件』で2容疑者を起訴
中日新聞
1994-12-06
[257]
뉴스
少女を少年院送致 木曽川リンチ殺人
中日新聞
1994-12-17
[258]
뉴스
連続リンチ殺人 3被告初公判 V被告は無罪主張 検察側冒頭陳述 Bさん放置し殺害
中日新聞
1995-02-01
[259]
뉴스
'執ようで冷酷非情』X被告に7年求刑 連続リンチ事件
中日新聞
1995-12-08
[260]
뉴스
X被告、猶予付き判決 連続リンチ殺人で名地裁 『脅され加担』と減軽
中日新聞
1996-03-20
[261]
뉴스
Z被告に懲役7年求刑 木曽川・長良川リンチ殺人 『冷酷、非情』と検察
中日新聞
1996-11-15
[262]
뉴스
連続リンチ殺人 ほう助男性に猶予判決 名古屋地裁 殺人の共謀関係否定
中日新聞
1997-03-06
[263]
뉴스
少年と少女を家裁送致
中日新聞
1994-11-03
[264]
뉴스
一宮の少年も起訴 木曽川リンチ事件
中日新聞
1994-12-03
[265]
뉴스
連続リンチ殺人木曽川事件初公判『殺人に当たるかわからない』少年 起訴事実は大筋認める
中日新聞
1995-01-31
[266]
뉴스
連続リンチ殺人木曽川事件 少年に懲役5 - 10年求刑 名地検『追従でも責任重い』
中日新聞
1995-05-18
[267]
뉴스
リンチ殺人木曽川事件 少年に不定期刑 名地裁判決
中日新聞
1995-07-06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