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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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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원예사는 정원 설계, 관리, 원예와 관련된 모든 사람을 의미하며, 역사적으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고대부터 정원은 예술로 여겨졌으며, 정원사들은 정원 디자인과 관리를 통해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정원사의 역할은 정원 설계, 식물 심기, 잡초 제거, 가지치기 등 다양하며, 르네상스 시대부터 바로크 시대를 거치며 예술가로 존경받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조경가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며, 다양한 작품과 인물들을 통해 원예사의 역할과 중요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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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예사
직업 정보
이름원예사
원예
원예
공식 이름해당 정보 없음
분류해당 정보 없음
활동 분야해당 정보 없음
역량해당 정보 없음
과정해당 정보 없음
관련 직업해당 정보 없음

2. 역사

원예사


헨드릭 단케르츠, 왕실 원예사 존 로즈와 찰스 2세, 1675년


사다리에서 과일을 수확하는 원예사, c.1910


원예사란 원예와 관련된 모든 사람을 의미하며,[1] 이는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로 간주될 수 있다. 여기에는 주거용 정원에서 활동하는 취미 원예가, 작은 채소밭이나 과수원으로 가족 식량을 보충하는 주택 소유자, 식물 묘목장의 직원 또는 대저택의 수석 원예사 등이 포함된다. 원예의 역사는 고대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왔다.

2. 1. 고대와 중세

고대에는 이미 조원 기술이 발달하여 바빌론의 공중 정원이나 로마의 돔스 아에리아, 하드리아누스 정원(빌라 아드리아나) 등 대규모의 정원이 조성되었음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기계적 기술을 중시하지 않았던 고대 사회에서는 정원을 만드는 사람의 지위는 일반적으로 낮았던 것으로 보인다. 오스만 제국의 궁정 정원사는 참수형 집행인을 겸임하기도 했으며, 신분이 높은 사람이 사형 판결을 받은 경우, 피고와 달리기 경주를 하여 피고가 지면 즉시 사형을 집행하고, 이기면 국외 추방하는 특이한 직무도 수행했다.

터키에서는 16세기 중반 튤립의 교배가 활발해져 개량 신품종이 잇따라 탄생하면서 튤립 전문 정원사도 등장했다. 당시 이슬람 장관 에브수드 에펜디조차 "낙원의 빛"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튤립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터키는 인도를 침략했을 때 파프리카를 가져와 궁정 정원사에게 재배하게 했는데, 이는 헝가리에 전해진 고추 관련 이야기에서도 확인된다.

중세 유럽에서는 스페인 등지에 조성된 이슬람 정원, 특히 물과 분수를 활용한 알함브라 궁전과 헤네랄리페 정원이 유명하다. 그러나 동시대의 수도원이나 궁정에서는 채소밭과 정원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고, 채소밭을 겸한 안뜰이 일반적이었다. 남아있는 기록에 따르면, 궁정 정원사들은 국왕이나 귀족 아래에서 일하며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다움을 고려한 원예 작업을 수행했음을 알 수 있다.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의 저택 정원 식물 목록에는 사과, 서양배 같은 과수 외에도 백합, 장미, 붓꽃, 세이지 등이 포함되어 있어, 시각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방향 식물의 향기도 중시했음을 보여준다.

궁정 정원사의 채소 재배에 관한 기록은 다양하다. 프랑스에서 13세기경부터 먹기 시작한 아스파라거스는 귀족의 채소라 불릴 만큼 고가였는데, 특히 루이 14세는 궁정 정원사에게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도록 온실 재배를 지시했다고 한다. 1593년 이베리아 반도를 여행한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2세의 궁정 식물학자 카롤루스 클루시우스는 카스티야(스페인)에서 정원사와 주부들까지 고추(Capsicum)를 정성껏 재배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탈리아에서 토마토가 부유층의 관상용에서 식용으로 전환된 계기는 나폴리의 궁정 정원사가 묘목을 집으로 가져가 식용으로 사용하면서부터라고 전해진다. 궁정 정원사 미하엘 함프 등은 16세기에 과수와 채소를 재배하던 실용 정원인 루스트가르텐을 1647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명령으로 네덜란드식 정원으로 개조하기도 했다. 17세기에는 감자토마토 등이 관상용에서 식량으로서의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게 되면서, 영국 등은 식량 대량 생산을 목적으로 이러한 채소 묘목을 식민지에서 재배하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시기부터 바로크 시대에 이르러서는 수리 기술을 활용한 정원이 발달했다. 메디치 저택 건설 당시 코시모 1세 데 메디치가 의뢰한 수리 기술자이자 건축가, 조각가인 니콜로 트리볼로와 같은 인물들이 정원 조성에 참여했으며, 정원 설계 이론도 활발하게 저술되었다. 이는 유럽 정원 발달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베르사유 궁전과 같은 대규모 정원이 조성되면서 조경가는 농업 전문가에서 예술가로 인정받으며 더 나은 대우를 받게 되었다. 라파엘로는 '아름다운 여정원사'라는 그림을 남겼고, 모차르트의 오페라 '가짜 여정원사'는 1775년 1월 독일 뮌헨에서 초연되었다. 앙드레 르 노트르의 가문은 파리 왕실 소유의 튈르리 정원에서 대대로 일한 조경가 집안으로 유명하며, 독일 마그데부르크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정원을 설계한 페터 요제프 렌네 역시 궁정 정원사 가문 출신이다.

찰스 1세의 고용 정원사였던 존 트라데스칸트 부자는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에 걸쳐 해외에서 희귀 식물을 채집해 오는 '플랜트 헌터'로 활동했다. 그들은 배를 타고 여러 나라를 돌며 희귀 식물을 수집하여 영국으로 들여와 자신의 정원에서 길렀다. 비슷한 활동을 한 로버트 포춘 역시 에든버러 왕립 식물원에서 원예를 배우고 런던 원예 협회의 정원사로 일했다. 영국에서는 이 외에도 햄프턴 코트 등의 정원을 관리한 조지 런던과 헨리 와이즈, 그들 밑에서 일했던 스티븐 스위처, 그리고 앤 여왕의 고용 정원사였던 로저 루커 등이 알려져 있다. 이들은 정원의 유지 관리와 경관을 담당하는 왕실 원예관으로 활동했다.

2. 2. 르네상스와 근대

르네상스 시기부터 바로크 시대에 이르러서는 수리 기술을 활용한 정원이 발달했다. 메디치 저택 건설 당시 코시모 1세가 의뢰했던 니콜로 트리볼로와 같이 수리 기술자이자 건축가, 조각가인 인물이 정원 조성에 참여했으며, 정원 설계 이론도 활발하게 저술되기 시작했다. 이는 유럽 정원 발달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베르사유 궁전과 같은 대규모 정원이 조성되면서, 정원을 만드는 사람은 단순한 농업 전문가가 아닌 예술가로 인정받고 더 나은 대우를 받게 되었다. 라파엘로는 '아름다운 여정원사'라는 그림을 남겼고, 모차르트오페라인 "가짜 여자 정원사"는 1775년 1월 독일 뮌헨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앙드레 르 노트르의 가문은 파리 왕실 소유의 튈르리 정원에서 대대로 일한 조경가 집안으로 유명하며, 독일 마그데부르크의 프리드리히 빌헬름스파르크를 설계한 페터 요제프 렌네 역시 궁정 정원사 가문 출신이다.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에는 해외에서 희귀 식물을 채집해 오는 '플랜트 헌터'라는 직업이 등장했다. 찰스 1세의 전속 정원사였던 존 트라데스칸트 부자는 유럽 대륙, 알제리, 아메리카 등지에서 희귀 식물을 수집하는 플랜트 헌터로 활동하며 벚나무, 오렌지, 튤립 등을 영국으로 들여왔다. 여러 나라를 탐험한 로버트 포춘 역시 에든버러 왕립 식물원에서 원예를 배우고 런던 원예 협회의 정원사로 일하며 플랜트 헌터로 활동했다. 영국에서는 이 외에도 햄프턴 코트 등의 정원을 관리한 조지 런던과 헨리 와이즈, 그들 밑에서 일했던 스티븐 스위처, 그리고 앤 여왕의 전속 정원사였던 로저 루커 등이 왕실 원예관으로서 정원 유지 관리와 경관 조성을 담당하며 활약했다.

일본에서는 정원을 만드는 사람을 의미하는 '정원사(庭師)'라는 말이 에도 시대에 정착했다. 근대에 들어서는 묘목 장인이나 수목, 원예종을 기르던 농가가 상호를 가지고 건설업, 조원업, 석재업 등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중 오가와 지헤이의 '우에지(植治)'처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노포(老鋪)로 발전하거나, 특정 가문에 소속되어 가업을 이어 발전한 경우가 많았다. 또한, 전쟁 이전부터 대학을 졸업한 학사들이 수련을 거쳐 독립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근대기 일본의 유명 원예사로는 다이카쿠센소를 조성한 히로세 리헤이, 토노가야토 정원을 만든 센고쿠, 직접 고호 공원 조성을 시작한 구 히로사키 번 정원사 미즈하라 에이사쿠, 영빈관 정원을 만든 사노 토자에몬과 이와키 겐타로, 시바마타 타이샤쿠텐의 수계원(邃渓園)을 조성한 도쿄의 정원사 나가이 라쿠잔 등이 있다.

현대에 와서는 수많은 유명 정원들이 기업이나 공공 단체에 의해 관리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카네 킨사쿠처럼 교토부와 같은 자치체의 기사(技師)나 문화청, 환경성 등 국가 기관의 기술관으로 임용되어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3. 정원 디자인과 관리

정원사는 단순히 식물을 가꾸는 사람을 넘어, 정원을 설계하고 아름답게 유지 관리하는 역할을 포괄적으로 수행한다. 역사적으로 정원사의 역할과 위상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났다.

고대 바빌론의 공중 정원이나 로마의 정원처럼 일찍부터 발달한 조경 기술은 정원 디자인의 중요성을 보여주지만, 당시 정원사의 사회적 지위는 높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중세 유럽에서는 실용적인 채소원과 미적인 정원의 구분이 모호했으며, 궁정 정원사들은 채소 재배와 같은 실용적인 작업과 함께 아름다움을 고려한 원예 활동에 종사했다. 오스만 제국에서는 궁정 정원사가 특이한 직무를 겸하기도 했으며, 튤립 개량과 같은 전문적인 원예 활동도 이루어졌다.

르네상스바로크 시대를 거치면서 정원 디자인은 예술의 한 분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의 메디치 정원이나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 정원처럼 정교한 설계와 기술이 요구되는 대규모 정원이 등장하면서, 정원사는 단순한 기술자에서 예술가로 인식되기도 했다. 영국의 랜슬롯 브라운은 정원사이면서 동시에 뛰어난 정원 설계가(작정가)로 활동했지만, 서구에서는 점차 정원을 설계하는 garden architect영어와 실제 관리를 담당하는 gardener영어의 역할이 구분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일본에서는 오가와 지헤에와 같이 정원의 설계부터 시공, 관리까지 전반을 담당하는 정원사를 조경가나 작정가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시게모리 미레이와 같은 정원 연구자나 공공기관의 조경 기술자가 직접 정원을 설계하고 조성하는 경우도 많아, 조경가나 작정가는 이러한 전문가들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현대에 와서는 정원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정원 설계가나 조경가와, 설계된 정원을 실제로 가꾸고 유지하는 정원사의 역할이 분담되는 경향이 있다. 정원 디자인과 관리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정원의 아름다움과 기능을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3. 1. 정원 디자인

정원 설계가는 정원을 설계하는 사람이고, 정원사는 원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실제 작업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정원사라는 용어는 실제 원예 작업보다는 주로 정원 디자인에 관여하는 정원 디자이너나 조경가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정원 디자인은 많은 문화권에서 예술의 한 분야로 여겨지며, 일반적으로 정원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정원 가꾸기'와는 구분된다. 비타 색빌-웨스트, 거트루드 제킬, 윌리엄 로빈슨 등은 정원사이면서 동시에 정원 디자이너로 활동한 대표적인 인물이다.[2]

정원 디자인은 정원을 만들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디자인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정원이 만들어지며, 정원 디자이너는 주어진 장소의 토양, 위치, 기후, 생태, 지질 등의 조건을 분석하고 최적화하여 그 환경에 가장 적합한 식물을 선택한다. 정원 디자인에는 다년생 식물 정원, 나비 정원, 야생 동물 정원, 일본 정원, 수생 정원, 열대 정원, 음지 정원 등 다양한 주제(테마)가 적용될 수 있다. 18세기 유럽에서는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 정원과 같은 정형 정원이나 잉글랜드의 스토우 가든처럼, 시골 영지를 조경사들이 아름다운 조경 공원으로 바꾸기도 했다.

오늘날 조경가와 정원 디자이너는 개인 주택의 정원부터 공공 공원, 도로변 녹지, 대학 캠퍼스, 기업 사옥 부지 등 다양한 공간의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다. 전문적인 조경 디자이너는 전문 조경 디자이너 협회와 같은 기관의 인증을 받기도 한다.[3]

3. 2. 정원 관리

정원 설계가는 정원을 설계하고 건설 과정을 감독하며, 조성 후 유지 관리 계획을 세우는 역할을 한다. 반면, 정원사는 설계된 정원을 실제로 가꾸고 유지하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다.

정원사의 연중 작업에는 다양한 활동이 포함된다. 꽃이나 다른 식물을 심고, 불필요한 잡초를 제거하며, 식물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가지치기와 접목을 실시한다. 또한 시든 꽃을 제거하고, 해충을 막기 위해 살충제를 직접 혼합하고 준비하여 사용하는 등 해충 방제 작업도 수행한다. 정원의 흙을 비옥하게 하기 위한 퇴비 관리 역시 중요한 업무 중 하나이다.

특히 잡초는 섬세하게 관리해야 하는 식용 식물이나 관상 식물의 성장을 방해하며 빠르게 번성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정원사는 잡초가 완전히 자라 재배 중인 식물에 해를 끼치기 전에 관리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직접 손으로 뽑는 물리적인 방법이나 제초제를 사용하는 화학적인 잡초 방제 방법을 활용한다. 이른 봄에는 보통 씨앗을 뿌려 모종을 키운 뒤 나중에 정해진 자리에 옮겨 심는(이식) 작업을 수행한다.

4. 정원사의 역할 및 종류



원예사란 원예와 관련된 모든 사람을 의미하며,[1] 이는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로 간주될 수 있다. 여기에는 주거용 정원에서 활동하는 취미 원예가, 작은 채소밭이나 과수원으로 가족 식량을 보충하는 주택 소유자, 식물 묘목장의 직원 또는 대저택의 수석 원예사 등이 포함된다.

일본에서는 오가와 지헤에와 같이 정원에 관한 사항 전반, 즉 시공부터 관리, 설계까지 담당하는 경우가 있어 정원사가 조경가나 작정가(作庭家)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시게모리 미레이와 같은 정원 연구자나 관청에 근무하는 조경 기술자가 유명한 정원을 만드는 경우도 많으며, 조경가나 작정가는 이러한 인물들을 포함하는 총칭으로 사용된다. 영국의 랜슬롯 브라운은 정원사이면서 작정가이기도 했다. 영어에서는 '가드너'(gardenereng)와 '가든 아키텍트'(garden architecteng)는 구분되는 개념이다.

고대에도 조원 기술은 발달하여 바빌론의 공중 정원이나 로마의 도무스 아우레아, 빌라 아드리아나 등 대규모 정원이 조성되었다. 그러나 기계적 기술을 경시했던 고대 사회에서는 정원을 만드는 사람의 지위는 일반적으로 낮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오스만 제국의 궁정 정원사는 참수형 집행인을 겸임하기도 했으며, 신분이 높은 사람이 사형 판결을 받았을 때 그 죄수와 달리기 경주를 하여, 죄수가 지면 즉시 사형을 집행하고 이기면 국외 추방하는 역할도 맡았다.

터키에서는 16세기 중반 튤립 교배가 활발해지면서 개량 신품종이 잇따라 탄생했고, 이 시기에 튤립 전문 정원사도 등장했다. 당시 이슬람 최고 종교 지도자였던 에부수드 에펜디조차 "낙원의 빛"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튤립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터키는 인도를 침략했을 때 파프리카를 가져와 궁정 정원사에게 재배하게 했는데, 이는 헝가리에 전해진 고추 관련 이야기에서 알 수 있다.

중세 유럽에서는 스페인 등지에 조성된 이슬람 정원, 특히 물과 분수를 활용한 알함브라 궁전과 헤네랄리페 정원이 유명하다. 하지만 동시대의 수도원이나 궁정에서는 채소밭과 정원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았고, 오히려 채소밭을 겸한 안뜰이 일반적이었다. 남아있는 사료에 따르면, 이 시대 궁정 정원사들은 국왕이나 귀족 밑에서 일하며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다움을 고려한 원예 작업에 종사했음을 알 수 있다. 프랑크 왕국 샤를마뉴 대제의 저택 정원 식물 목록에는 사과, 서양배 등 과수 외에 백합, 장미, 붓꽃, 세이지 등이 기록되어 있어, 시각적인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방향 식물을 이용한 향기도 중시했음을 보여준다.

궁정 정원사의 채소 재배 기록은 더 있다. 프랑스에서 13세기경 먹었던 아스파라거스는 '귀족의 채소'라 불릴 만큼 고가였는데, 루이 14세는 궁정 정원사에게 온실 재배를 명하여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게 했다고 한다. 1593년 이베리아 반도를 여행한 막시밀리안 2세의 궁정 식물학자 샤를 드 레클루즈는 카스티야(스페인)에서 정원사와 주부들까지 고추(Capsicum)를 정성껏 재배한다고 보고했다. 이탈리아에서 토마토가 부유층의 관상용에서 식용으로 바뀐 것은 나폴리의 궁정 정원사가 묘목을 집으로 가져가 식용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궁정 정원사 미하엘 한프 등은 16세기에 실용적인 정원으로 만들어졌던 루스트가르텐(Lustgarten)을 1647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명으로 네덜란드식 정원으로 개조했다. 17세기에는 감자와 토마토 등의 경제적 유용성이 인정되면서, 영국 등은 식량 대량 생산을 위해 이러한 채소 묘목을 식민지에서 재배하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시기부터 바로크 시대에 이르러 수리 기술을 활용한 정원이 발달했다. 빌라 메디치 건설에 코시모 1세가 의뢰한 수리 기술자이자 건축가, 조각가인 니콜로 트리볼로와 같은 인물이 정원 조성에 참여했으며, 정원 설계 이론도 활발히 저술되었다. 이는 유럽 정원 발달에 큰 변화를 가져왔고, 베르사유 궁전과 같은 대규모 정원이 조성되면서 조경가는 농업 전문가에서 예술가로 인정받으며 더 나은 대우를 받게 되었다. 라파엘로는 '아름다운 여정원사'를 그렸고, 모차르트오페라 '가짜 여정원사'는 1775년 1월 독일 뮌헨에서 초연되었다. 앙드레 르 노트르는 파리 왕실 소유의 튈르리 정원에서 대대로 일한 조경가 가문 출신이며, 독일 마그데부르크의 프리드리히 빌헬름스파르크를 설계한 페터 요제프 렌네 역시 궁정 정원사 가문 출신이다.

찰스 1세에게 고용되었던 존 트라데스칸트 부자는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에 걸쳐 해외에서 희귀 식물을 채집해 오는 '플랜트 헌터'로 활약했다. 그들은 배를 타고 여러 나라를 돌며 희귀 식물을 모아 자신의 뜰에서 길렀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 또 다른 인물인 로버트 포춘 역시 에든버러 왕립 식물원에서 원예를 배우고 런던 원예 협회의 정원사로 일했다. 영국에서는 이 외에도 햄프턴 코트 등의 정원사였던 조지 런던과 헨리 와이즈, 그들 밑에서 일했던 스티븐 스위처, 그리고 앤 여왕의 전속 정원사였던 로저 루커 등이 알려져 있다. 이들은 정원의 유지 관리와 경관을 담당하는 왕실 원예관으로 활동했다.

일본에서는 고대에 정원을 관리하는 원지사(園池司)라는 관직이 있었고, 메이지 시대에는 개척사(開拓使)가 원예사로 외국인을 고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원을 시공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정원사'(庭師)라는 말은 에도 시대에 정착되었다. 그 외에 정원을 만드는 사람을 부르는 말로는 헤이안 시대 말기부터 사용된 '석립승'(石立僧), 무로마치 시대의 젠아미 등 '산수하원자'(山水河原者)가 있었는데, 이는 실제로 정원을 만드는 인물의 신분을 나타내는 호칭이었다.

무로마치 시대 이후 가레산수(枯山水) 기법이 널리 퍼졌는데, 이는 선종의 영향을 받아 셋슈, 무소 소세키와 같은 '석립승'들이 활동했기 때문이다. 현재에도 후카야 미츠키, 마스노 슌묘처럼 승려가 조원가가 되는 경우가 있다.

에도 시대에는 회유식 정원 양식이 발달했으며, 당시 도쿠가와 막부는 조원 책임자인 쇼군가 정원사와 함께 어용 정원사에 해당하는 어정원걸(御庭掛) 등을 두어 정원 관리를 맡겼다. 이 시대에는 데이칸엔 개수에 참여한 막부 고용 정원사 구단 니에몬과 후지이 토모노신, 슈쿠케이엔 축조에 초빙된 교토 출신 정원사 시미즈 시치로에몬, 시미즈엔(시바타 번) 조성에 관여한 막부 고용 정원사 아카타 소치, 미야라 둔치의 일본식 가레산수 정원을 만든 슈리의 정원사 조마 친운 등이 활동했다. 고마고메 지역에는 에도 성내 정원사 일도 했던 묘목상 이토 가문 등이 있었다.

근대 이후에는 묘목 장인이나 수목, 원예종을 기르는 농가가 상호를 가지고 건설업, 조원업, 석재업 등을 영위하게 되었다. 이 중 오가와 지헤에의 우에지(植治)처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노포(老鋪) 묘목상이나 조원업자로 발전하거나, 출입업(出入り業, 특정 가문이나 기관에 소속되어 일하는 방식)으로 가업을 이어 발전한 경우가 많다. 또한, 전쟁 이전부터 대학을 졸업한 학사들이 수련을 거쳐 독립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근대기 인물로는 오코치 산장을 조성한 히로세 리헤이, 토노가야토 정원을 만든 센고쿠, 스스로 고호 공원 조성을 시작한 구 히로사키 번 정원사 미즈하라 에이사쿠, 영빈관을 조성한 사노 토자에몬, 이와키 겐타로, 시바마타 타이샤쿠텐 수계원(邃渓園)을 만든 무코지마의 정원사 나가이 라쿠잔 등이 있다.

현재는 수많은 유명 정원들이 기업이나 공공단체에 의해 관리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나카네 킨사쿠처럼 교토부 등 지방 자치체의 기사나 문화청, 환경성 등 국가 기관의 기술관으로 임용되는 경우도 있다.

5. 정원사와 관련된 작품


  • 가레산스이 (보드 게임)
  • 교토의 여정원사 풍수 탐정 사쿠라코 시리즈 - 일본의 추리 소설 시리즈.
  • 귀스타브 카유보트 -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작품 《정원사들》[6] (Les Jardiniers, 1875-1877)이 있다.
  • 라파엘로 산치오 -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대표작 중 하나로 《아름다운 여정원사》(La belle jardinière, 1507년)가 있다.
  • 로젠메이든 - 일본의 만화 및 이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등장인물인 소우세이세키와 스이세이세키는 식물과 인간의 '마음의 나무'를 가꾸는 능력을 지녀 '정원사'로 불린다.
  • 마이클 K -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작가 존 쿳시의 소설 《마이클 K》(Life & Times of Michael K)의 주인공. 정원사로 일하며 혼란한 시대를 살아간다.
  • 막스 에른스트 - 독일 태생의 프랑스 화가. 초현실주의 작품 《아름다운 여정원사의 귀환》(Le Retour de la Belle Jardinière, 1967년)을 발표했다.
  • 반지의 제왕 - J. R. R. 톨킨의 판타지 소설. 호빗 종족인 샘와이즈 갬지와 그의 아버지 햄퍼스트 갬지가 정원사로 등장한다. 특히 샘와이즈는 주인공 프로도 배긴스의 충직한 동료이자 반지 운반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 바순과 첼로를 위한 소나타 (모차르트) / 피아노 소나타 6번 (모차르트)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오페라 《가짜 여정원사》(La finta giardiniera, 1775년 초연)의 초연을 위해 작곡한 곡들이다. (모차르트의 악곡 목록 참고)
  • 실비와 브루노 - 루이스 캐럴의 소설. 시 「미친 정원사의 노래」(The Mad Gardener's Song)가 포함되어 있다.
  • 아이작 아시모프파운데이션 시리즈 - 광대한 은하 제국의 수도 트랜터에 위치한 황궁의 수석 정원사가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묘사된다.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루이스 캐럴의 동화. 흰 토끼의 정원사 팻(Pat)이 등장한다.
  • 인간 소시지 (원제: 人間腸詰, 인간장힐) - 일본의 괴담 또는 도시전설.
  • 자크 이베르 - 프랑스의 작곡가. 오페라 부프 《사모스 섬의 정원사》[7] (Le jardinier de Samos)를 작곡하여 1932년 초연했다.
  • 정원사 삭 (또는 정원사 삿쨩) - 일본의 만화 또는 관련 미디어 작품.
  • 정원사, 그냥 거기에 있는 사람 (원제: Being There) - 폴란드의 작가 예지 코신스키의 1970년 소설. 아래 영화의 원작이다.
  • 정원사의 딸 - 프랑스 작곡가 프란시스 풀랑크의 악곡이다. (풀랑크의 악곡 목록 참고)
  • 제비꽃 (그림 형제) (원제: 패랭이 꽃, Die Nelke) - 그림 형제가 수집한 독일 민담 중 하나.
  • 존 롤랜드 (John Rolland)
  • 찬스 (1979년 영화) - 예지 코신스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주인공(피터 셀러스 분)의 이름 '챈스 가디너'(Chance Gardener)를 '챈시 가드너'(Chauncey Gardiner)로 잘못 알아들은 오해에서 비롯되어, 세상 물정 모르는 정원사가 우연히 미국의 저명인사가 되고 정치적 영향력을 갖게 되는 과정을 그린 블랙 코미디.
  • A. J. 크로닌 - 스코틀랜드의 소설가. 소설 《스페인의 정원사》[5] (The Spanish Gardener, 1950년)를 발표했다.
  • 톰과 바바라의 굿 굿 라이프 (The Good Life, 1975년 TV 시리즈) -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교외에서 자급자족적인 삶을 추구하며 정원을 가꾸는 영국 중산층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BBC 시트콤.
  • 해리 포터 시리즈 - J. K. 롤링의 판타지 소설 시리즈. 여러 정원사 및 마법약과 약초학 관련 인물들이 등장한다.
  • * 포모나 스프라우트 -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약초학 교수이자 후플푸프 기숙사 사감. 온실을 관리한다.
  • * 허버트 비얼리 - 포모나 스프라우트 이전의 호그와트 약초학 교수.
  • * 프랭크 브라이스 - 볼드모트의 아버지 톰 리들 1세 일가의 정원사로 일했으며, 리들 가문의 저택을 관리했다.
  • * 미란다 구세크 (영화) / 필리다 스포어 - 약초학 관련 교과서인 《1000가지 마법 약초와 곰팡이》의 저자.
  • * 하드리아누스 휘틀 - 실존했던 정원 디자이너의 이름을 딴 마법사 카드로만 언급되는 인물.
  • 화가와 정원사와 캉파뉴 (Dialogue avec mon jardinier, 2007) - 프랑스 영화. 도시 생활에 지친 화가가 고향으로 돌아와 옛 친구인 정원사와 교감하는 이야기.
  • 후리오 리카르도 크루스 - 아르헨티나의 전 축구 선수. 그의 별명 중 하나가 '정원사'(El Jardinero)이다.

6. 정원사 관련 인물


  • 구단 니에몬: 에도 시대 도쿠가와 막부 고용 정원사로, 테이칸엔 개수에 참여했다.
  • 구스타프 마이어 Gustav Meyerde: 프로이센 궁정의 정원사였다.
  • 나가이 라쿠잔: 도쿄 무코지마의 정원사로, 시바마타 타이샤쿠텐 수계원을 축조했다.
  • 나카네 킨사쿠: 교토부 등 지자체의 기사나 문화청, 환경성 등 국가 기관의 기술관으로 임용되어 활동한 조원가이다.
  • 니카우: 나미비아 출신의 영화 배우로, 실제로는 정원사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 니콜로 트리볼로 Niccolò Triboloit: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의 수리 기술자, 건축가, 조각가로, 메디치 저택 건설 시 조원에 참여했다.
  •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 미국의 소설가로, 그의 아내는 정원사로도 유명하다.
  • 돈 톰프슨: 정원사를 겸업했다. (동명이인이 많아 특정 인물 식별 어려움)
  • 럭키 드웨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레게 가수로, 과거 정원사로 일한 경험이 있다.
  • 랑스로트 브라운 Lancelot Brown영어: 18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정원사이자 조경가이다. '케이퍼빌리티 브라운'이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하다.
  • 로버트 포츈 Robert Fortune영어: 19세기 스코틀랜드의 식물학자이자 플랜트 헌터로, 에든버러 왕립 식물원에서 원예를 배우고 런던 원예 협회의 정원사로 활동하며 아시아 등지에서 식물을 채집했다.
  • 로베르토 프로시네치키: 크로아티아의 축구 선수로, '정원사의 발을 가진 남자'라고 불렸다.
  • 로저 루커 Roger Looker영어: 앤 여왕 시대 영국의 왕실 정원사였다.
  • 루이스 베머 Louis Baeumerde: 고등학교 졸업 후 궁정 정원사 아래에서 수업을 받았다.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오스트리아 출신의 저명한 철학자로, 말년에는 정원사로 일하기도 했다.
  • 마스노 슈메이: 일본선종 승려이자 현대 일본식 정원을 대표하는 조원가이다.
  • 메르히오르 바우어 Melchior Bauerde: 아버지가 정원사였으며, 본인도 조원을 배웠다.
  • 메흐메트 2세: 오스만 제국의 술탄으로, 정복 활동 외에 정원 가꾸기를 전문 분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 무라사메 타츠마사: 스웨덴 출신으로 일본에 귀화한 정원사이다.
  • 무소 소세키: 일본 무로마치 시대선종 승려이자 뛰어난 작정가(作庭家)로, '이시다테 승려(石立僧)'로 불리며 많은 명원을 남겼다.
  • 미즈하라 에이사쿠: 구 히로사키번의 정원사 출신으로, 고호 공원 조성을 시작했다.
  • 미하엘 함프 Michael Hanffde: 17세기 독일의 궁정 정원사로,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명으로 루스트가르텐(Lustgarten)을 네덜란드식 정원으로 개조했다.
  • 발터 슈타이너 Walter Steinerde: 스위스의 스키점프 선수로, 은퇴 후 스웨덴 팔룬에서 정원사로 일했다.
  • 사노 토자에몬: 일본의 조원가로, 영빈관 아카사카 이궁의 일본 정원 조성에 참여했다.
  • 사르곤 (아카드): 고대 메소포타미아 아카드 제국의 창시자로, 키시 왕을 섬기던 정원사 라이붐에게 주워져 길러졌다는 전설이 있다.
  • 새첼 페이지: 미국 니그로 리그메이저 리그에서 활약한 전설적인 투수로, 아버지가 정원사였다.
  • 샤를 드 레클루즈 Carolus Clusiusla: 16세기 프랑스의 식물학자로,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2세의 궁정 식물학자로 활동하며 스페인 등지에서 식물을 연구하고 정원사들과 교류했다.
  • 세슈: 일본 무로마치 시대선종 승려이자 화가로, 정원 조성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 '이시다테 승려'로 불렸다.
  • 센고쿠: 도쿄의 토노가야토 정원을 축조한 조원가이다.
  • 식스토 5세 (교황): 16세기 가톨릭 교황으로, 아버지가 정원사였다.
  • 시게모리 미레이: 일본의 정원 연구가이자 작정가로, 특히 가레산수 정원 연구와 복원, 창작에 큰 업적을 남겼다.
  • 시미즈 시치로에몬: 교토 출신의 정원사로, 에도 시대히로시마번의 다이묘 정원인 슈쿠케이엔 축조에 초빙되었다.
  • 스티븐 스위처 Stephen Switzer영어: 18세기 영국의 정원 디자이너이자 작가로, 조지 런던과 헨리 와이즈 밑에서 일했다.
  • 아이신 교로 푸이: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이자 만주국의 황제로,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에는 베이징 식물원에서 정원사로 일했다.
  • 아카타 소치: 에도 시대 도쿠가와 막부 고용 정원사로, 시바타번의 시미즈엔 조성과 관련이 있다.
  • 앙드레 르 노트르: 17세기 프랑스의 조경가로, 대대로 왕실 정원사 집안 출신이며 루이 14세 아래에서 베르사유 궁전의 정원을 설계한 것으로 유명하다.
  • 에브수드 에펜디: 오스만 제국의 셰이퀼 이슬람(이슬람 최고 법관)으로, 16세기 튤립 개량이 성행할 당시 새로운 품종에 '낙원의 빛'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 오가와 지헤이 7세 (오가와 오사무 무관): 일본의 근대 조원의 선구자로 불리는 정원사 겸 조원가이며, '우에지(植治)'라는 상호로 활동했다.
  • 오카다 노리히사: 교토에서 정원사로서 수련한 경험이 있다.
  • 윌리엄 로빈슨 (조경가): 아일랜드 출신의 영향력 있는 조경가이자 작가로, 젊은 시절 더블린에서 정원사로 수련했다.
  • 윌리엄 브라운 (바운티 호): 영국 해군의 바운티 호 반란 사건 당시 승무원 중 한 명으로, 직업은 정원사였다.
  • 이시야마 오사미: 일본 나사렛 교단의 목사로, 과거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정원사로 일한 경력이 있다.
  • 이와키 겐타로: 일본의 조원가로, 영빈관 아카사카 이궁의 일본 정원 조성에 참여했다.
  • 이토 가문: 에도 시대 고마고메의 소메이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묘목상 가문으로, 에도성 내 정원사 일을 맡기도 했다.
  • 제임스 스타일리: 영국의 발명가로, 자전거재봉틀 발전에 기여했으며, 젊은 시절 정원사로 일했다.
  • 젠아미: 일본 무로마치 시대의 정원사로, '산수하원자(山水河原者)'라는 신분으로 활동하며 정원을 만들었다.
  • 조마 친운상: 류큐 왕국 슈리의 정원사로, 미야라 둔내의 일본식 가레산수 정원을 작정했다.
  • 조제프 모니에: 프랑스의 정원사로, 깨지기 쉬운 테라코타 화분을 대체하기 위해 철망을 넣은 시멘트 화분을 만들다가 철근 콘크리트를 발명하게 되었다.
  • 조지 런던 George London영어: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초까지 영국에서 활동한 정원 디자이너로, 햄프턴 코트 궁전 등의 정원을 설계하고 관리했다.
  • 존 트라데스칸트 부자 John Tradescant the Elder, John Tradescant the Younger영어: 17세기 영국의 정원사이자 플랜트 헌터로, 찰스 1세의 후원을 받으며 유럽 대륙, 북아프리카, 북아메리카 등지에서 희귀 식물을 수집하여 영국에 도입했다.
  • 존 폴 존스 (군인): 미국 독립 전쟁의 해군 영웅으로, 스코틀랜드 아비그란드에서 정원사를 하던 집안 출신이다.
  • 지미 헨드릭스: 미국의 전설적인 록 기타리스트로, 그의 아버지 알 헨드릭스는 정원사로 일했다.
  • 카를 대제: 프랑크 왕국의 국왕으로, 그의 저택 정원에는 사과, 서양배 등 과수와 백합, 장미, 붓꽃, 세이지 등 다양한 식물이 심어져 향기와 미관을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미국의 판타지, 호러 작가이자 화가, 조각가로, 생계를 위해 정원사 등 다양한 일을 하면서 창작 활동을 했다.
  • 페터 슈미트: 정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동명이인이 많아 특정 인물 식별 어려움)
  • 페터 요제프 렌네: 19세기 독일의 대표적인 조경가로, 궁정 정원사 가문 출신이며 포츠담베를린 등지에 많은 공원과 정원을 설계했다.
  • 프리드리히 루드비히 폰 슈켈: 18-19세기 독일의 조경가로, 조부 이래로 궁정 정원사 집안 출신이며 뮌헨영국 정원 설계로 유명하다.
  • 후카야 미츠키: 일본선종 승려이자 조원가이다.
  • 후지이 토모노신: 에도 시대 도쿠가와 막부 고용 정원사로, 테이칸엔 개수에 참여했다.
  • 훌리오 크루스 Julio Cruzes: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로, '하르디네로(El Jardinero, 정원사)'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 하인리히 뮐러: 나치 독일게슈타포 수장으로, 그의 아버지는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경험이 있는 정원사였다.
  • 한스 헬무트 키르스트 Hans Hellmut Kirstde: 독일의 작가로, 한때 정원사로 일한 경험이 있다.
  • 헨리 와이즈 Henry Wise영어: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초까지 영국에서 활동한 정원사로, 조지 런던과 함께 왕실 정원을 관리하고 설계했다.
  • 헨리 프리츠크로프트 Henry Flitcroft영어: 18세기 영국의 건축가로, 아버지는 햄프턴 코트 궁전에서 일하는 정원사였다.
  • 히로세 리헤이: 교토의 다이카쿠센소를 축조한 조원가이다.

참조

[1] 웹사이트 Gardener http://www.thefreedi[...] The Free Dictionary 2013-10-01
[2] 서적 The Landscape of Man: Shaping the Environment from Prehistory to the Present Day https://archive.org/[...] Thames & Hudson
[3] 웹사이트 APLD http://www.apld.org/ Association of Professional Landscape Designers 2013-10-01
[4] 문서 "gardener に由来する"
[5] 문서 The Spanish Gardener
[6] 문서 Les Jardiniers
[7] 문서 Le jardinier de Sam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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