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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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인왕경은 석가모니가 파사익왕과의 문답 형식으로 저술한 경전으로, 육바라밀 중 반야바라밀을 통해 재해를 멸하고 국가의 안정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보살 수행 계위인 10지, 묘각을 포함한 51위의 보살 수행 계위를 설하며, 특히 ‘적멸인’을 강조한다. 한역본으로는 구마라집의 《인왕호국반야바라밀경》과 불공의 《인왕호국반야바라밀다경》 두 종류가 전해지며, 한국과 일본 불교에서 호국과 재앙 예방을 위한 법회와 수행법으로 널리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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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경 | |
---|---|
개요 | |
종류 | 경전 |
언어 | 한문 |
불교 | 대승불교 |
명칭 | |
한자 | 仁王經 |
로마자 표기 | rén wáng jīng |
일본어 | 仁王経 (Ninnō-gyō) |
한국어 | 인왕경 (inwang-gyeong) |
베트남어 | Kinh Hộ Quốc |
내용 | |
관련 정보 | 현장이 고창왕으로부터 《인왕경》에 대한 설법 요청을 받음 |
번역 | 아모가바즈라가 산스크리트어 텍스트를 번역 |
2. 주요 내용
《인왕경》은 석가모니가 사위국의 파사익왕과 문답하는 형식으로 쓰인 경전으로, 육바라밀 중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고 해설하면 재해를 없애고 국가가 평안해진다고 설하는, 반야경으로서는 이질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1]
현재 두 가지 고전 한역본이 존재한다.
- 구마라집이 410~412년에 번역한 《인왕호국반야바라밀경》(仁王護國般若波羅蜜經)[4][5]
- 불공이 765~766년에 번역한 《인왕호국반야바라밀다경》(仁王護國般若波羅蜜多經)[6][7] (불공은 만트라를 번역함)
1970년대 중반, 구결로 된 《구역인왕경(舊譯仁王經)》의 발견은 중세 한국어 연구에 기여했다.[8]
경전의 한 주제는 무상이다. 일본에서 인기 있는 구절은 四字熟語|요지주쿠고일본어 盛者必衰|조샤힛스이일본어이며, 전체 문구는 盛者必衰、実者必虚|조샤 힛스이, 짓샤 힛쿄일본어로, 서양의 'sic transit gloria mundi'와 유사하다. 이는 ''헤이케 이야기''의 첫 구절에 인용되었으며, 후반부에는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沙羅雙樹の花の色、盛者必衰の理を顯す|샤라소주 노 하나 노 이로, 조샤힛스이 노 코토와리 오 아라와스일본어.[3]
2. 1. 반야바라밀과 호국
석가모니가 사위국의 파사익왕과 문답하는 형식으로 쓰인 경전으로, 육바라밀 중 반야바라밀을 받아 지니고 해설하면 재해를 없애고 국가가 평안해진다고 설하는, 반야경으로서는 이질적인 내용이다.[1]2. 2. 보살 수행계위
《인왕경》에서는 보살 10지에 대해 설명하면서, 10신⋅10주⋅10행⋅10회향⋅10지⋅묘각으로 이루어진 51위의 보살 수행계위를 제시하고 있다.[1] 그리고 51위 가운데 처음의 10신을 제외한 상위 41위를 지혜의 관점에서 복인⋅신인⋅순인⋅무생인⋅적멸인의 5인으로 나누고 있으며, 반야바라밀을 수행한다는 것은 5인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2]《인왕경》에서는 보살의 가장 높은 계위인 제10지와 불과 즉 묘각을 통칭하여 '''적멸인'''(寂滅忍)이라고 부른다.[3] 즉, 적멸인에 상⋅하의 차별을 두어서 보살의 적멸인과 부처의 적멸인으로 구분하는데, 후자의 부처의 적멸인이 51위 보살 수행계위에서의 묘각에 해당한다.[4] 따라서 《인왕경》에서 설하는 51위의 계위는 대승불교권에서 널리 채택하는 보살 수행계위인 10신⋅10주⋅10행⋅10회향⋅10지⋅등각⋅묘각의 52위와 거의 동일하다.
5인에 따른 51위⋅52위의 구분은 다음과 같다.
5인 | 51위 | 52위 |
---|---|---|
복인 | 10주⋅10행⋅10회향의 3현(三賢) | 10주⋅10행⋅10회향의 3현(三賢) |
신인 | 10지 가운데 초지⋅제2지⋅제3지 | 10지 가운데 초지⋅제2지⋅제3지 |
순인 | 10지 가운데 제4지⋅제5지⋅제6지 | 10지 가운데 제4지⋅제5지⋅제6지 |
무생인 | 10지 가운데 제7지⋅제8지⋅제9지 | 10지 가운데 제7지⋅제8지⋅제9지 |
적멸인 | 제10지와 묘각 | 제10지와 등각⋅묘각 |
2. 3. 무상(無常)
경전의 한 주제는 무상이다. 일본에서 인기 있는 구절은 四字熟語|요지주쿠고일본어 盛者必衰|조샤힛스이일본어이며, 전체 문구는 盛者必衰、実者必虚|조샤 힛스이, 짓샤 힛쿄일본어로, 서양의 'sic transit gloria mundi'와 유사하다. 이는 ''헤이케 이야기''의 첫 구절에 인용되었으며, 후반부에는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沙羅雙樹の花の色、盛者必衰の理を顯す|샤라소주 노 하나 노 이로, 조샤힛스이 노 코토와리 오 아라와스일본어.[3]3. 한역본 및 번역
현재 두 가지 고전적인 한역본이 존재한다.
- 구마라집이 번역(410-412년)한 《인왕호국반야바라밀경》(仁王護國般若波羅蜜經)[4][5]
- 불공이 번역(765-766년)한 《인왕호국반야바라밀다경》(仁王護國般若波羅蜜多經)[6][7] 불공은 만트라를 번역했다.
1970년대 중반, 구결로 된 《구역인왕경(舊譯仁王經)》의 발견은 중세 한국어 연구에 기여했다.[8]
현존하는 한역은 『인왕호국반야바라밀다경소 7권』 양분[9] 칙찬(766년, 불공의 번역에 대한 주소)에서 언급되는 4역 중 2본이 남아있다. 아래 2본이다.
- 『불설인왕반야바라밀다경 2권』(401년, 별명 『인왕반야』) 요진 삼장구마라집 역(344년-413년) (SAT 데이터베이스 T0245_.08.0825a04 - 0834a08)
- 『인왕호국반야바라밀다경 2권』(765년) 대광지대흥선사 삼장사문불공 봉조역(705년-774년) 역 (SAT 데이터베이스 T0246_.08.0834a13 - 0845a02)
전자는 구마라집 역으로 알려져 있지만, 구마라집 이후 양 이전의 선정으로 추정된다[10]。예로부터 두 경전 모두 위경이라고 한다[11]。또한 그 증거로 현장 역 『대반야바라밀다경』에 포함된 여러 경전에는 해당 경전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12]。현재는 5세기에 중국에서 성립되었다는 설이 거의 정설이 되었다[13]。가나오카 히데토모에 따르면, 구마라집 역 『인왕반야경』이 중국 찬술의 위경이므로, 불공 역도 범본에서 다시 번역한 것이 아니라, 구마라집 역의 개정역이다[14][15]。
4. 한국 불교에서의 인왕경
《인왕경》은 한국 불교에서 국가를 수호하고 재앙을 물리치는 경전으로 중요하게 여겨졌다. 비록 주어진 자료는 일본 불교의 《인왕경》에 대한 내용이지만, 한국 불교에서도 유사한 신앙 형태가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호국삼부경 중 하나로 여겨진 점, 국가적 차원의 법회(인왕회)가 열린 점 등은 한국 불교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4. 1. 역사
일본에도 예로부터 전해져 왔으며, 《법화경(묘법연화경)》·《금광명경 (금광명최승왕경)》과 함께 호국삼부경 중 하나로 여겨졌다. 진호국가를 위해 인왕경을 강설하는 법회(인왕회=니오우에)나 부동명왕을 중심으로 한 인왕오방만다라(인왕경만다라라고도 함)를 본존으로 하여 행하는 인왕경법이 행해졌다.[16]인왕회는 궁중이나 국분사 등의 대사찰에서 100개의 법좌를 설치하여 행해졌으며, 주로 나라 시대부터 헤이안 시대에 걸쳐 성행하여 "백좌회"라고도 칭해졌다. 국가가 행하는 인왕회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 천황의 선조 후에 행하는 일대일도대인왕회(선조인왕회)로 즉위식과 대상회와 함께 천황의 교체로 위치지어졌다.
- 계인왕회라고 불리는 것으로 매년 봄(2월 또는 3월)과 가을(8월 또는 9월)에 실시되었다.
- 천재지변이나 전쟁, 역병 등의 비상시에 행해진 임시인왕회가 있었다.
이들 모두 자연 질서와 사회 질서의 안정을 기원하고, 만민의 풍요와 이익과 백성을 실현하는 공공적 주술 의례로서의 성격을 지녔다. 이러한 비용은 국가 재정에서 지출되었지만, 부족한 경우에는 여러 국가에 대해 임시 부과가 이루어졌다.
또한, 지방의 국아(수령·재청관인)이나 장원(본가·령가·예소)의 손에 의해 국내·장원 내의 안녕을 기원하는 진수의 의식으로 인왕회·인왕강도 설치되었다. 더욱이 지방의 무사나 승려가 지역·촌락의 진수를 위해 인왕강도 행해지는 등, 여러 국가에 퍼져나갔다. 중세(11세기 이후)에 들어서면 천재지변이나 충해·역병과 기근을 제거하기 위한 공공적 성격과 함께, 수명 연장·안온복수·자손 번영 등을 기원하는 민간 의례의 요소가 강한 인왕회·인왕강도 증가하게 된다. 가마쿠라 시대에 들어서면, 가마쿠라 막부의 사사흥행정책의 수행의 영향으로, 당초에는 국가나 장원의 인왕회·인왕강에서의 부담에 대해 저항 자세를 보였던 지두 등의 고케닌층이 지역의 사찰을 무대로 한 인왕강의 적극적인 담당자가 되었다.
니치렌의 《립정안국론》 중에서도 진호국가를 기원하기 위해 사용된 3종의 경전으로 법화경·인왕경·금광명경을 언급하고 있다. 니치렌 대성인은, 전교대사 사이초가 법화경·인왕경·금광명경으로 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에이산 제3대 좌주인 엔닌(자각)이 밀교 경전인 대일경·금강정경·소실지경을 진호국가의 삼부경으로 중시하여 망국의 원인을 만들었다고 규탄하고 있다. 그러나 "백좌백강의 의"라는 문구를 사용하여 인왕회·인왕강의 유행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편, 국가에서의 일대일도대인왕회는 양통첩립의 혼란도 있어, 고후카쿠사 천황 때를 마지막으로 중단되지만, 이 무렵에는 각지에서 열린 인왕회·인왕강이 공공적 주술 의례로서의 역할을 대체하게 되었다.
4. 2. 인왕회(仁王會)
일본에도 예로부터 전해져 왔으며, 《인왕경》은 《법화경(묘법연화경)》·《금광명경(금광명최승왕경)》과 함께 호국삼부경 중 하나로 여겨져, 진호국가를 위해 인왕경을 강설하는 법회(인왕회=니오우에)나 부동명왕을 중심으로 한 인왕오방만다라(인왕경만다라라고도 함)를 본존으로 하여 행하는 인왕경법이 행해졌다.인왕회는 궁중이나 국분사 등의 대사찰에서 100개의 법좌를 설치하여 행해졌으며, 주로 나라 시대부터 헤이안 시대에 걸쳐 성행하여 "백좌회"라고도 칭해졌다. 국가가 행하는 인왕회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종류 | 설명 | 시기 |
---|---|---|
일대일도대인왕회(선조인왕회) | 천황의 선조 후에 행하는 의식으로, 즉위식과 대상회와 함께 천황의 교체로 위치지어졌다.[16] | 천황 선조 후 |
계인왕회 | 매년 봄(2월 또는 3월)과 가을(8월 또는 9월)에 실시되었다. | 매년 봄, 가을 |
임시인왕회 | 천재지변이나 전쟁, 역병 등의 비상시에 행해졌다. | 비상시 |
이들 모두 자연 질서와 사회 질서의 안정을 기원하고, 만민의 풍요와 이익과 백성을 실현하는 공공적 주술 의례로서의 성격을 지녔다. 이러한 비용은 국가 재정에서 지출되었지만, 부족한 경우에는 여러 국가에 대해 임시 부과가 이루어졌다.
또한, 지방의 국아(수령·재청관인)이나 장원(본가·령가·예소)의 손에 의해 국내·장원 내의 안녕을 기원하는 진수의 의식으로 인왕회·인왕강도 설치되었다. 더욱이 지방의 무사나 승려가 지역·촌락의 진수를 위해 인왕강도 행해지는 등, 여러 국가에 퍼져나갔다. 중세(11세기 이후)에 들어서면 천재지변이나 충해·역병과 기근을 제거하기 위한 공공적 성격과 함께, 수명 연장·안온복수·자손 번영 등을 기원하는 민간 의례의 요소가 강한 인왕회·인왕강도 증가하게 된다. 가마쿠라 시대에 들어서면, 가마쿠라 막부의 사사흥행정책의 수행의 영향으로, 당초에는 국가나 장원의 인왕회·인왕강에서의 부담에 대해 저항 자세를 보였던 지두 등의 고케닌층이 지역의 사찰을 무대로 한 인왕강의 적극적인 담당자가 되었다. 니치렌의 《립정안국론》 중에서도 진호국가를 기원하기 위해 사용된 3종의 경전으로 법화경·인왕경·금광명경을 언급하고 있다. 니치렌 대성인은, 전교대사 사이초가 법화경·인왕경·금광명경으로 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에이산 제3대 좌주인 엔닌(자각)이 밀교 경전인 대일경·금강정경·소실지경을 진호국가의 삼부경으로 중시하여 망국의 원인을 만들었다고 규탄하고 있다. 그러나 "백좌백강의 의"라는 문구를 사용하여 인왕회·인왕강의 유행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편, 국가에서의 일대일도대인왕회는 양통첩립의 혼란도 있어, 고후카쿠사 천황 때를 마지막으로 중단되지만, 이 무렵에는 각지에서 열린 인왕회·인왕강이 공공적 주술 의례로서의 역할을 대체하게 되었다.
5. 일본 불교에서의 인왕경
인왕경의 한 주제는 무상이다. 일본에서 인기 있는 구절은 盛者必衰|조샤힛스이일본어이며, 전체 문구는 盛者必衰、実者必虚|조샤 힛스이, 짓샤 힛쿄일본어로, 서양의 ''sic transit gloria mundi''와 유사하다. 이는 ''헤이케 이야기''의 첫 구절에 인용되었으며, 후반부에는 沙羅雙樹の花の色、盛者必衰の理を顯す|샤라소주 노 하나 노 이로, 조샤힛스이 노 코토와리 오 아라와스일본어라고 묘사되어 있다.[3]
5. 1. 인왕회(仁王會)
일본에도 예로부터 전해져 왔으며, 《인왕경》은 《법화경(묘법연화경)》·《금광명경(금광명최승왕경)》과 함께 호국삼부경 중 하나로 여겨졌다. 진호국가를 위해 인왕경을 강설하는 법회(인왕회=니오우에)나 부동명왕을 중심으로 한 인왕오방만다라(인왕경만다라라고도 함)를 본존으로 하여 행하는 인왕경법이 행해졌다.인왕회는 궁중이나 국분사 등의 대사찰에서 100개의 법좌를 설치하여 행해졌으며, 주로 나라 시대부터 헤이안 시대에 걸쳐 성행하여 "백좌회"라고도 칭해졌다. 국가가 행하는 인왕회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 천황의 선조 후에 행하는 일대일도대인왕회(선조인왕회)로 즉위식과 대상회와 함께 천황의 교체로 위치지어졌다.[16]
- 계인왕회라고 불리는 것으로 매년 봄 (2월 또는 3월)과 가을 (8월 또는 9월)에 실시되었다.
- 천재지변이나 전쟁, 역병 등의 비상시에 행해진 임시인왕회
이들 모두 자연 질서와 사회 질서의 안정을 기원하고, 만민의 풍요와 이익과 백성을 실현하는 공공적 주술 의례로서의 성격을 지녔다. 이러한 비용은 국가 재정에서 지출되었지만, 부족한 경우에는 여러 국가에 대해 임시 부과가 이루어졌다.
또한, 지방의 국아(수령·재청관인)이나 장원(본가·령가·예소)의 손에 의해 국내·장원 내의 안녕을 기원하는 진수의 의식으로 인왕회·인왕강도 설치되었다. 더욱이 지방의 무사나 승려가 지역·촌락의 진수를 위해 인왕강도 행해지는 등, 여러 국가에 퍼져나갔다. 중세(11세기 이후)에 들어서면 천재지변이나 충해·역병과 기근을 제거하기 위한 공공적 성격과 함께, 수명 연장·안온복수·자손 번영 등을 기원하는 민간 의례의 요소가 강한 인왕회·인왕강도 증가하게 된다. 가마쿠라 시대에 들어서면, 가마쿠라 막부의 사사흥행정책의 수행의 영향으로, 당초에는 국가나 장원의 인왕회·인왕강에서의 부담에 대해 저항 자세를 보였던 지두 등의 고케닌층이 지역의 사찰을 무대로 한 인왕강의 적극적인 담당자가 되었다. 니치렌의 《립정안국론》 중에서도 진호국가를 기원하기 위해 사용된 3종의 경전(법화경·인왕경·금광명경)을 말한다. 니치렌 대성인은, 엔닌(자각)이 밀교 경전인 대일경·금강정경·소실지경을 진호국가의 삼부경으로 중시하여 망국의 원인을 만들었다고 규탄하고 있다. 그러나 "백좌백강의 의"라는 문구를 사용하여 인왕회·인왕강의 유행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편, 국가에서의 일대일도대인왕회는 양통첩립의 혼란도 있어, 고후카쿠사 천황 때를 마지막으로 중단되지만, 이 무렵에는 각지에서 열린 인왕회·인왕강이 공공적 주술 의례로서의 역할을 대체하게 되었다.
5. 2. 인왕경법(仁王經法)
인왕경법은 밀교에 기반하여 행해지는 수행법이다. 810년 (홍인 원년)에 구카이가 이 법을 수행했다는 전설이 있으며,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여겨진다.[1]참조
[1]
문헌
Yang 2016
[2]
문헌
Orzech 2002, p. 63
[3]
문헌
Chapter 1.1, Helen Craig McCullough's translation
[4]
웹사이트
Taisho Tripitaka Vol. 8, No. 245, CBETA
https://web.archive.[...]
2009-02-28
[5]
문헌
Orzech 1989, p.18
[6]
웹사이트
Taisho Tripitaka Vol. 8, No. 246, CBETA
https://web.archive.[...]
2009-02-28
[7]
문헌
Orzech 1989, p.18
[8]
웹사이트
On the Chinese Transcriptions of Northeastern Eurasian Languages
http://www.hmn.bun.k[...]
[9]
간행물
'良賁の生涯及び[[不空金剛|不空三蔵]]との関係について』智山学報 2004年 53巻 p.393-421'
https://doi.org/10.1[...]
2004
[10]
서적
摩訶般若波羅蜜經解題
國譯大蔵經第二巻
[11]
서적
仁王般若波羅蜜經解題
國譯大蔵經第三巻
[12]
서적
摩訶般若波羅蜜經解題
國譯大蔵經第二巻
[13]
논문
「『仁王般若経』受持品について」印度學佛教學研究 55巻 1号 2006年
https://doi.org/10.4[...]
2006
[14]
간행물
護国経典と言われるものー「仁王経」をめぐってー」「東洋学術研究」第14巻3号8昭和50年3月)
1975-03
[15]
간행물
『真言密教における護国』現代密教 13号
https://tripitaka.l.[...]
[16]
문헌
井原、2012年、P81・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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