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통감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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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자치통감강목》은 주희가 《자치통감》을 성리학적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편찬한 역사서로, 강목체라는 독특한 서술 방식을 사용했다. 이 책은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를 거치며 증보되고 연구되었으며, 조선 시대에 전래되어 역사학, 정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조선 세종은 이 책을 간행하고 훈의를 만들도록 했으며, 다양한 판본이 제작되어 한국의 금속활자 인쇄술 연구에도 활용되었다. 2014년에는 상하이 도서관에서 경자자본 《자치통감강목》의 전질이 발견되어 그 가치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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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강목 권11은 세종 20년에 병진자와 초주갑인자로 간행된 주희의 자치통감강목 초기 판본으로, 정교한 인쇄 상태와 희소성을 통해 조선 초기 인쇄술 특징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다. - 1438년 책 - 속자치통감강목 권7
《속자치통감강목》 권7은 주희가 《자치통감》을 요약하고 강목으로 정리한 역사서로, 조선 시대에 널리 읽혔으며 서지학적,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자치통감강목 | |
---|---|
개요 | |
제목 (한국어) | 자치통감강목 |
제목 (한자) | 資治通鑑綱目 |
로마자 표기 | Jachitonggam Gangmok |
몽골어 | ᠲᡠᠩ ᡤᡳᠶᠠᠨ ᡬᠠᠩ ᠮᡠ |
저자 | 주희 |
편찬 시기 | 남송 |
종류 | 역사서 |
내용 | |
대상 | 자치통감 |
체제 | 강목체 |
권수 | 59권 |
간행 | |
영역본 제목 (프랑스어) | Histoire générale de la Chine, ou, Annales de cet Empire, traduit du Tong-kien-kang-mou |
번역가 | 조제프 드 모이리아크 드 마이야 |
간행 시기 | 1777–1783년 |
간행 장소 | 파리 |
참고 | |
참고 문헌 | Hager, J. W. (1978). "Tzu-chih t'ung-chien kang-mu". In Yves Hervouet (ed.). A Sung Bibliography. The Chinese University Press. pp. 75–6. ISBN 962-201-158-6. |
온라인 자료 | chinaknowledge.de의 자치통감강목 |
2. 성리학적 역사관과 강목체
주희는 성리학적 관점에서 역사를 재해석하고, 사마광의 《자치통감》의 정통관을 수정하였다.[1] 《자치통감강목》의 탄생은 역사학에서 강목체(綱目體)라는 독특한 서술 체계를 완성시켰다는 의의를 지닌다. 강목체는 넓게 보아 편년체의 변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1] 명나라의 남헌(南軒)과 상로(商輅)는 각각 《자치통감강목》의 「정편」과 「속편」을 저술하기도 했다.
《자치통감강목》은 남송 후기와 명나라 시대에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았다. 윤기신(尹起莘)의 《발명(發明)》, 유우익(劉友益)의 《강목서법(綱目書法)》, 왕극관(汪克寬)의 《강목범례고이(綱目凡例考異)》를 구우(瞿佑)가 교감하여 영락 8년(1410년)에 《자치통감강목집람전오》(資治通鑑綱目集覽鐫誤)라는 제목으로 간행하였다. 숭정 3년(1630년)에는 진인석(陳仁錫)이 이 세 권의 책을 합쳐 인쇄하면서 주희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서문을 함께 실었다.
이밖에도 진제(陳濟)의 《강목집람정오》(綱目集覽正误), 풍지서(馮智舒)의 《강목질실》(綱目質實), 왕유학(王幼學)의 《자치통감강목집람》(資治通鑑綱目集覽) 59권, 진경수(陳桱修)의 《통감속편》(通鑑續編) 24권, 진균(陳均)의 《황조편년강목피요》(皇朝編年綱目被要) 30권과 《중흥양조강목비요(中興兩朝綱目備要)》 18권, 작자 미상의 《양조강목비요(兩朝綱目備要)》 16권 등이 있었다.
청나라 강희 46년(1707년)에는 황제가 《자치통감강목》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송락(宋犖) 등이 새로 편집한 것을 교각하여 《어비통감강목전서》(御批通鑑綱目全書)라는 이름으로 출간하였다. 건륭 11년(1746년)에는 《어찬자치통감강목삼편》(御撰資治通鑒綱目三編, 20권)을 완성하였는데, 이는 주희의 《자치통감강목》 정편과 상로의 《속자치통감강목》(續資治通鑒綱目)을 계승한 명대 편년사이다. 청대 역사학자 소정채는 《통감》과 《강목》을 역사서이자 경전이라고 평가하였다.
2. 1. 정통론과 명분론
주희는 성리학자로서 엄격한 정윤론(正閏論)과 명분론에 입각한 강상(綱常) 윤리에 따라 과거 역사에 대해 춘추필법(春秋筆法)과 같은 포폄을 실천하였다. 주희는 사마광의 정통관을 수정하고, 자신의 도덕적 신념에 따른 해석을 추가하였다. 그는 왕망의 정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삼국 시대에는 촉나라를 정통으로 간주하였다.[1]2. 2. 강목체 서술 방식
강목체는 춘추의 '강(綱)'과 좌전의 '목(目)'을 본뜬 서술 방식이다. 대의명분을 강조하는 역사 서술 방식으로, 넓게 보면 편년체의 변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1] 주희가 강(綱) 부분을 완성하고, 그의 제자 조사연이 목(目) 부분을 이어받아 완성하였다.[1]2. 3. 비판
《자치통감강목》은 원사료의 문장을 지나치게 삭제하고 윤색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남송 시대의 왕응린(王應麟)은 "《강목》에서 '현이 감히 다시 말하지 못하고, 이에 장현에게 거듭 청하게 하였다(玄不敢復言,乃令張玄重請)'라는 두 구절을 빼버렸는데, 그러면 바둑 둔 것은 장현(張玄)이냐 사현(謝玄)이냐?"라며 비판하였다.[3] 청나라 장태염(章太炎)은 "《강목》은 《자치통감》을 모본으로 하고 있는데 회암(晦庵)이 직접 지은 것이 아니고 그 제자 조사연이 지은 것이다. 공자께서 《춘추》를 지으실 때에는 그 적을 것은 적으시고 뺄 것은 빼버리심에 자유, 자하가 감히 한 마디 보탤 수가 없었다. 회암은 곧 제자가 지은 것에 이름만 의탁한 셈이다. 당나라 보궐(補闕)이었던 교지지(喬知之)에게 벽옥(碧玉)이라는 계집종이 있어 노래를 잘하였는데, 지지는 그와 불혼하였다(不婚). 불혼하였다는 것은 아내로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강목》에서는 불(不) 자를 빼버리고 '지지가 이를 혼인하였다'고 해놓았다"고 비판하였다.[3]3. 명, 청 시대의 계승과 발전
남송 후기와 명나라 시대에 《자치통감강목》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널리 연구되었다. 명나라에서는 구우(瞿佑)가 영락제(永樂) 8년(1410년)에 윤기신(尹起莘)의 《발명(發明)》, 유우익(劉友益)의 《강목서법(綱目書法)》, 왕극관(汪克寬)의 《강목범례고이(綱目凡例考異)》를 교감하여 《자치통감강목집람전오》(資治通鑑綱目集覽鐫誤)라는 제목으로 간행하였다. 숭정제(崇禎) 3년(1630년)에는 진인석(陳仁錫)이 이 세 권의 책을 다시 합쳐 인쇄하면서 주희, 왕백(王柏), 문천상(文天祐) 등 많은 사람들의 서문을 함께 실었다.
그 밖에도 진제(陳濟)의 《강목집람정오》(綱目集覽正误), 풍지서(馮智舒)의 《강목질실》(綱目質實), 왕유학(王幼學)의 《자치통감강목집람》(資治通鑑綱目集覽) 59권 등 다양한 관련 서적이 편찬되었다. 원나라 시대의 진경수(陳桱修)가 지은 《통감속편》(通鑑續編) 24권, 진균(陳均)이 지은 《황조편년강목피요》(皇朝編年綱目被要) 30권과 《중흥양조강목비요(中興兩朝綱目備要)》18권, 그리고 저자가 확실하지 않은 《양조강목비요(兩朝綱目備要)》 16권도 있었다.
3. 1. 명나라의 증보 및 연구
명나라의 남헌(南軒)과 상로(商輅)는 각각 《자치통감강목》의 정편(正編)과 속편(續編)을 저술하였다.[2] 윤기신(尹起莘)의 《발명(發明)》, 유우익(劉友益)의 《강목서법(綱目書法)》, 왕극관(汪克寬)의 《강목범례고이(綱目凡例考異)》 등 《자치통감강목》을 연구한 다양한 저술들이 등장하였다.3. 2. 청나라의 편찬과 비판
청나라 강희제는 1707년(강희 46년)에 《자치통감강목》을 비판했고, 송락 등이 새로 편집한 《어비통감강목전서》(御批通鑑綱目全書, 190권)를 출간했다. 건륭제는 1746년(건륭 11년) 윤3월에 《어찬자치통감강목삼편》(御撰資治通鑒綱目三編, 20권)을 완성하여 주희의 《자치통감강목》 정편과 상로의 《속자치통감강목》을 계승한 명나라 편년사를 만들었다. 청나라 역사학자 소정채는 《자치통감》과 《강목》을 역사이자 경전으로 평가했다.4. 한국 전래와 영향
《자치통감강목》은 조선 시대에 전래되어 조선의 역사, 정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조선에서 간행된 《자치통감강목》은 서지학적 자료뿐만 아니라 조선 전기의 금속활자 인쇄술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4. 1. 조선의 수용과 간행
조선 세종은 《자치통감강목》을 애독하고 신하들에게도 읽기를 권장하였으며, 집현전 학자들에게 명하여 훈의(訓義)를 만들게 하였다.[1] 훈의가 완성되자 세종은 경자자를 사용하여 《자치통감강목》을 간행하였다.[1] 이때 중간 글자와 작은 글자는 갑인자를 사용하고 큰 글자는 병진자를 써서 1438년 《사정전훈의자치통감강목》을 찍어냈다.[1]세종 이후에도 《자치통감강목》은 여러 차례 간행되었다.[1] 성종 24년(1493년)에는 명나라 판본을 바탕으로 계축자를 써서 간행한 《자치통감강목》 4권 4책(권12, 27, 37, 42)이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2] 중종 때에는 금속활자인 병진자와 목활자인 방병진자(倣丙辰字)를 섞어 인쇄한 《자치통감강목》이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3]
4. 2. 한국의 판본과 문화재 지정
한국에는 다양한 《자치통감강목》 판본이 전해지며, 이들은 대한민국의 보물 및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전기에 간행된 《자치통감강목》은 서지학적 자료뿐만 아니라 당시 금속활자 인쇄술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가장 오래된 판본은 조선 세종 4년(1422년)에 간행된 경자자본(庚子字本)이다. 세종은 이 책을 즐겨 읽고 신하들에게도 읽기를 권했으며, 집현전 문신들에게 훈의(訓義)를 만들게 하였다. 훈의가 완성되자 세종은 대규모로 책을 간행했는데, 이때 중간 글자와 작은 글자는 갑인자를 사용하고 큰 글자는 병진자(丙辰字)를 써서 세종 20년(1438년) 《사정전훈의자치통감강목》(思政殿訓義資治通鑑綱目)을 찍어냈다. 병진자에 대한 기록은 《세종실록》과 류의손(柳義孫)의 서문에도 나타난다.
류성룡의 서재 옥연재(玉淵齋)에 소장되었던 옥연재본 《자치통감강목》은 현재 아단문고로 이관되었다. 이 판본은 총 139권 중 권19 하에 해당하는 것으로, 교정(校正) 및 옥연묵장(玉淵墨藏) 인기가 있다.
성종 24년(1493년)에는 명나라 판본을 바탕으로 계축자(癸丑字)를 써서 《자치통감강목》을 간행했다.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된 4권 4책(권12, 27, 37, 42)은 희귀한 계축자본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독해를 위한 구두(句讀) 표시와 사인사(舍人司) 인문, 교정 지시 등이 있어 가치가 높다.
중종 때에는 금속활자인 병진자와 목활자인 방병진자(倣丙辰字)를 섞어 《자치통감강목》을 인쇄했는데, 이는 인쇄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개인 소장본이 이에 해당하며, 고려대학교 도서관에도 1책이 소장되어 있다.
한국에 전해지는 《자치통감강목》은 대부분 일부만 남은 결본(缺本)이다.
판본 | 제작 연도 | 활자 | 특징 | 지정 | 소장처 |
---|---|---|---|---|---|
경자자본 | 1422년 (세종 4년) | 경자자, 갑인자(중간/작은 글자), 병진자(큰 글자) | 훈의 제작, 《사정전훈의자치통감강목》 간행 | 아단문고(옥연재본, 권19 하) | |
계축자본 | 1493년 (성종 24년) | 계축자 | 희귀, 보존 상태 양호, 구두/사인사 인문/교정 지시 | 대한민국의 보물 제1774호 | 서울역사박물관 (4권 4책: 권12, 27, 37, 42) |
병진자·방병진자 혼용본 | 중종 연간 | 병진자, 방병진자 | 인쇄사적 가치 | 부산광역시의 유형문화재 제137호 | 개인 소장 |
미상 | 미상 | 미상 | 충청북도의 유형문화재 제399호 | 청주고인쇄박물관(권25, 35, 42, 57) |
4. 2. 1. 경자자본 《자치통감강목》 전질 발견
2014년 12월 30일 한국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10월 16일부터 24일까지 중국 상하이 도서관과 푸단 대학 도서관에서 실시한 한국전적 조사과정에서 경자자본 《자치통감강목》 전질(59권 59책)을 발견했음을 보도하였다. 한국에 남은 것들과는 달리 전질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는 점에서 귀중한 가치가 있다.책에 찍힌 장서인을 통해 추정해본 책의 유입 경로를 보면, 11항 21자본의 해당 서적은 세종 때에 경자자로 인쇄되어 왕실 경연용 책으로 쓰이다가 안평대군이 소장하기도 했으며, 이후 성종의 모후 소혜왕후의 아버지 한확의 증손자 한숙창(韓叔昌, 1478년 ~ 1537년)과, 한숙창의 맏아들로 참판 한자의 사위이자 선조 때의 영의정을 지낸 홍섬(洪暹, 1504년 ~ 1585년) 등이 소장하던 것을 임진왜란 전후에 일본으로 유출되어 오와리번 초대 번주였던 도쿠가와 요시나오의 손에 들어가 비요문고(尾陽文庫)로써 편입되었다. 이후 일본에서 유학하던 중국의 장서가 쉬수(徐恕, 1890년~1959년)가 이 책을 손에 넣게 되었고, 10만 권에 달하는 책을 수집해 소장했던 쉬수는 사망 뒤에 대부분의 장서를 국가에 기증, 상하이 도서관에서 이 《자치통감강목》을 소장하게 된 것이다.
참조
[1]
서적
A Sung Bibliography
The Chinese University Press
[2]
서적
Histoire générale de la Chine, ou, Annales de cet Empire, traduit du Tong-kien-kang-mou
https://archive.org/[...]
1777–1783
[3]
웹사이트
Chinese Literature: Tongjian gangmu 通鑑綱目
http://www.chinaknow[...]
2007-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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