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쿠류 리키사부로
1. 개요
가쿠류 리키사부로는 1985년 몽골에서 태어난 전 스모 선수로, 2014년 요코즈나로 승진하여 통산 6번의 막내 최고 우승을 달성했다. 그는 원래 농구 선수를 꿈꿨으나, 스모 경기를 보고 14세에 스모 선수를 지망하여 이즈츠 방에 입문했다. 2001년 프로 데뷔 후, 2014년 요코즈나에 오르기까지 62번의 대회를 거쳤으며, 2015년 부상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2016년 11월 세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2021년 은퇴 후에는 일본 국적을 취득하고 오토와야마 방을 창설하여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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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망갈잘라빈 아난드 |
|---|---|
| 로마자 표기 | Mangaljalavyn Anand |
| 몽골어 표기 | Мангалжалавын Ананд |
| 별칭 | 아난다 |
| 출생일 | 1985년 8월 10일 |
| 출생지 | 몽골 수흐바타르 시 |
| 사망일 | (알 수 없음) |
| 신장 | 186cm |
| 체중 | 154kg |
| BMI | 43.94 |
| 소속 | 이즈츠 → 미치노쿠 |
| 은퇴일 | 2021년 3월 24일 |
| 최종 계급 | 은퇴 |
| 취미 | 스포츠 관람 |
| 최고 계급 | 요코즈나 (2014년 3월) |
|---|---|
| 생애 전적 | 785승 497패 231휴 (115장소) |
| 마쿠우치 전적 | 645승 394패 231휴 (85장소) |
| 우승 | 마쿠우치 최고 우승 6회, 산단메 우승 1회 |
| 수상 | 기량상 7회, 우수기술상 2회 |
| 금성 | (해당 정보 없음) |
| 첫 데뷔 | 2001년 11월 |
| 입막 | 2006년 11월 |
| 은퇴 | 2021년 3월 장소 |
| 특기 | 오른쪽 욧츠, 싯테나게, 모로자시, 츳파리 |
|---|
| 은퇴 후 직함 | 연로 오토와야마 |
|---|---|
| 비고 | 본명은 인도 승려 아난다에서 유래함 |
| 일본 국적 취득일 | 2020년 12월 10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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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스모 선수 -
하쿠호 쇼
하쿠호 쇼는 몽골 출신으로 일본으로 귀화한 전직 스모 선수이자 현재는 미야기노 방을 운영하는 오야카타로, 역대 최다인 45회의 마쿠우치 우승과 1187승의 통산 승리 기록을 보유한 69대 요코즈나이다. -
몽골에서 일본으로 이민간 사람 -
하쿠호 쇼
하쿠호 쇼는 몽골 출신으로 일본으로 귀화한 전직 스모 선수이자 현재는 미야기노 방을 운영하는 오야카타로, 역대 최다인 45회의 마쿠우치 우승과 1187승의 통산 승리 기록을 보유한 69대 요코즈나이다. -
요코즈나 -
다이호 고키
다이호 고키는 우크라이나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21세에 최연소 요코즈나에 등극, 마쿠우치 32회 우승 및 45연승 등의 압도적인 기록을 세우며 "쇼와 시대의 다이요코즈나" 칭호를 얻고 국민영예상을 추서받은 전설적인 스모 선수이다. -
요코즈나 -
아케보노 다로
아케보노 다로는 하와이 출신으로 일본 스모계에서 요코즈나에 등극하여 11차례 우승을 차지한 전 스모 선수이자, 은퇴 후에는 격투기 선수와 프로레슬러로 활동하며 여러 타이틀을 획득한 인물이다.
2. 생애
가쿠류 리키사부로는 1985년 8월 10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대학교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 테니스, 농구 등 다양한 스포츠를 즐겼고, 몽골 레슬링에도 매진하며 학업에도 힘쓰는 우등생이었다. 부유한 가정 환경 덕분에 집에서 NHK의 스모 중계를 보며 아사쇼류 등 몽골 출신 선수들을 동경하여 스모 선수를 꿈꾸게 되었다.
14세 때 텔레비전에서 교쿠텐호와 교쿠슈잔이 출전한 대회를 보고 스모에 전념하기로 결심, 자신의 소망을 담은 편지를 일본의 여러 스모 방(部屋)에 보냈다. 이즈츠 방의 오야카타는 이 편지에 감명을 받아 가쿠류를 일본으로 초청했다. 가쿠류는 몽골 레슬링 경험이 전혀 없었다.
2.1. 몽골 시대
가쿠류 리키사부로는 1985년 8월 10일 망갈잘라빈 아난드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대학교수였다. 그는 스모가 아닌 프로 농구 선수를 꿈꾸며 자랐다. 14세 때 텔레비전에서 몽골 출신 선수인 교쿠텐호와 교쿠슈잔이 출전한 대회를 보고 스모에 전념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자신의 소망을 담은 편지를 써서 친구에게 일본어로 번역하게 했다. 그런 다음 그 편지를 일본의 여러 스모 방(部屋)에 보냈다. 이즈츠 방의 오야카타는 감명을 받아 가쿠류를 일본으로 초청했다. 가쿠류의 가족은 몽골 레슬링과 아무런 연관이 없었으며, 그는 일본에 오기 전까지 레슬링 경험이 전혀 없었다.
대학 교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테니스, 농구 등 당시 서민의 자녀들에게는 접하기 어려웠던 스포츠를 즐겼고, 레슬링에도 매진했다. 부모의 영향으로 학업에도 힘쓰는 우등생이었다. 부유한 가정 환경 덕분에 자택에서 NHK의 스모 중계를 시청할 수 있었고, 당시 몽골에서 유행하던 "스모 붐"을 접하며 같은 고향 출신인 아사쇼류 등의 활약에 동경하여 씨름 선수를 지망했다. 하나가타키 방의 선발회에 참가했지만 한 번은 불합격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잡지 "그래프NHK"의 광고에서 스모 애호회(일본 스모 진흥회)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후 부친이 근무하는 대학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던 동료에게 부탁하여 자신의 결의문을 일본어로 번역하게 한 후, 이를 일본 스모 진흥회 회장 토키타 카즈히로에게 입문 희망 편지로 보냈다. 편지를 받은 토키타 회장은 동료인 스즈키 켄이치와 상담한 후, 15대 이즈츠 (세키와케·사카호코)에게 자문하여 이즈츠 방에 입문하게 하였고, 2001년 9월에 일본에 와서 같은 해 11월 장소에 첫 도효를 밟게 되었다.
입문 후 반년 동안 스승으로부터 외출 금지 명령을 받았다. 이는 밖에서 몽골 씨름 선수와 어울려 몽골어로 이야기하면 일본어를 배우기 어렵고, 씨름 방에 적응하지 못해 대성하지 못한 채 씨름계를 떠날 것을 우려한 조치였다. 한편, 향수병을 겪지 않도록 가족과의 연락은 허락되었고, 보통 씨름 방의 규칙상 3단 이상이 되어야 소지할 수 있는 휴대폰을 신참 시절부터 특별히 소지하게 하여 연락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또한, 동세대 다른 많은 몽골 씨름 선수들은 관객이 될 때까지 귀국이 허락되지 않았지만, 가쿠류는 연 1회의 귀성을 인정받았다.
젊은 시절 "본본(ボンボン, 금수저)", "부자"라고 불리는 것에 화가 났다고 하며, 후에 아사히 신문의 기사에서 "그쪽(몽골)에서 대학 선생님이라고 해도 봉급은 좋지 않다. 농구를 하고 있었는데, 바스켓 슈즈를 살 수 없었다"라고 반론했으며, 친가의 맨션도 1LDK로 자택은 없었다고 한다.
2.2. 스모 입문
가쿠류 리키사부로는 1985년 8월 10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대학교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에는 테니스, 농구 등 당시 몽골 서민의 자녀들이 접하기 어려웠던 스포츠를 즐겼고, 몽골 레슬링에도 매진하며 학업에도 힘쓰는 우등생이었다. 부유한 가정 환경 덕분에 집에서 NHK의 스모 중계를 볼 수 있었고, 몽골 내 스모 붐에 영향을 받아 아사쇼류 등의 활약에 동경하여 스모 선수를 꿈꾸게 되었다.
14세 때 텔레비전에서 교쿠텐호와 교쿠슈잔이 출전한 대회를 보고 스모에 전념하기로 결심, 자신의 소망을 담은 편지를 써서 친구에게 일본어로 번역하게 한 후, 일본의 여러 스모 방(部屋)에 보냈다. 이즈츠 방의 오야카타는 이 편지에 감명을 받아 가쿠류를 일본으로 초청했다. 가쿠류의 가족은 몽골 레슬링과 아무런 연관이 없었으며, 일본에 오기 전까지 레슬링 경험이 전혀 없었다.
하나가타키 방의 선발회에 참가했지만 한 번 불합격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잡지 "그래프NHK"의 광고에서 일본 스모 진흥회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부친이 근무하는 대학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던 동료에게 부탁하여 자신의 결의문을 일본어로 번역하게 한 후, 일본 스모 진흥회의 회장 토키타 카즈히로에게 입문 희망 편지를 보냈다. 토키타 회장은 동료인 스즈키 켄이치와 상담한 후, 15대 이즈츠 (세키와케·사카호코)에게 자문하여 이즈츠 방에 입문하게 하였고, 2001년 9월에 일본에 와서, 같은 해 11월 장소에 첫 토효를 밟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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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이즈츠 방에 입문했을 당시 65kg 밖에 나가지 않아, 15대 이즈츠는 처음에는 "머리를 깎게 할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3개월 만에 82kg까지 체중을 늘려 신입 검사에 합격했다. 입문 초기부터 기억력이 좋았고, 마와시를 매는 법을 한 번에 외웠으며, 일본어는 일본에 온 지 1년 만에 능숙해졌다고 한다. 또한 낫토도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등 일본 음식에도 처음부터 적응할 수 있었다.
2.3. 선수 경력
이후 2010년 7월 장소에서는 첫날부터 8연승을 거두었고, 중일에는 오제키 고토미쓰키를 꺾는 등 활약하여 11승 4패로 5번째 기량상을 수상했다. 2011년 5월 "기술 심사" 대회에서는 고무스비로 출전, 12승 3패로 두 번째 준우승과 함께 여섯 번째 기술상을 받았다. 7월 대회에서 세키와케로 승진, 세 오제키를 꺾고 10승 5패를 기록했다. 오제키 승진이 유력했지만, 다음 대회에서 3승 4패로 시작, 최종 9승 6패로는 승진에 실패했다.
2012년 1월, 요코즈나 하쿠호를 꺾고 첫 우수 선수상을 받았다. (27번 만의 요코즈나 상대 첫 승리) 그는 어린 시절 테니스, 농구 등 다양한 스포츠를 접했고, 레슬링에도 매진했다. 부모의 영향으로 학업에도 힘쓴 우등생이었다. NHK 스모 중계를 보며 아사쇼류 등 몽골 출신 선수들을 동경, 씨름 선수를 지망했다. 하나가타키 방 선발회에서 불합격했지만, 그래프NHK 광고를 보고 스모 애호회에 입문 희망 편지를 보내 이즈츠 방에 입문, 2001년 9월 일본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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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이즈츠 방 입문 당시 65kg에 불과했지만, 3개월 만에 82kg까지 늘려 신입 검사에 합격했다. 기억력이 좋고 일본어와 일본 음식에도 빠르게 적응했다.
가쿠류의 주요 선수 경력은 다음과 같다.
2.3.1. 2009년까지
가쿠류 리키사부로는 이즈츠 방에 입문했을 때 몸무게가 65kg에 불과했고, 그의 오야카타인 사카호코는 그가 씨름 선수보다는 방의 토코야마(머리 손질사)에 더 적합하다고 농담했을 정도였다. 2001년 11월 규슈 대상 스모 대회에서 프로 데뷔를 했을 당시에는 82kg이었다. 비교적 빠르게 네 번째로 높은 산단메 등급에 도달했지만, 고전하여 두 번이나 조니단으로 강등되었다. 17번의 대회를 거친 후, 2004년 7월에 7-0의 기록으로 산단메 우승을 차지하고 마쿠시타 등급으로 승진했다.
2005년 11월 주료 등급으로 승진하면서 처음으로 세키토리 지위를 얻었지만, 5-10으로 부진하여 다시 마쿠시타로 떨어졌다. 2006년 3월에 두 번째 등급으로 돌아왔고, 이전 대회에서 주료 1위의 성적으로 9승을 거둔 후 그해 11월에 최고 등급인 마쿠우치에 진출했다. 그는 교쿠슈잔, 교쿠텐호, 아사쇼류, 아세세키류, 하쿠호, 하루마후지, 토키텐쿠에 이어 8번째 몽골 출신 마쿠우치 진출 선수였다. 1994년 현재의 방주가 지휘권을 잡은 이후 최고 등급에 진출한 방의 첫 번째 (그리고 현재까지 유일한) 선수였다. 그 대회에서 마쿠우치로 승진한 7명의 선수 중 한 명이었던 그는, 1999년 3월 미야비야마가 마에가시라 7위로 시작한 이후 가장 높은 순위인 8위 마에가시라 랭크 중간 지점에서 데뷔하여 8-7의 기록을 세웠다.
2008년 1월에 11-4의 기록으로 기술 부문에서 첫 번째 산쇼를 획득한 후, 마에가시라 1위로 승진했다. 2008년 11월 대회에서 무릎 부상으로 기권해야 했고, 이는 그의 선수 경력에서 처음으로 경기에 불참한 사건이었다. 2009년 3월에는 마에가시라 1위 랭킹에서 10-5의 기록으로 세 명의 오제키를 꺾었다. 7일째 2-5로 시작한 후 마지막 8경기를 모두 승리하며 두 번째 기술상을 받았다. 2009년 5월 열린 다음 대회에서 코무스비 랭크로 산야쿠에 데뷔했다. 이전 대회와 마찬가지로 2-5로 뒤진 상황에서 마지막 8경기 중 7경기를 승리하며 다시 기술상을 받았다.
2009년 7월 가쿠류는 세키와케로 승진했다. 1989년 테라오 이후 자신의 방에서 이 지위에 오른 첫 번째 선수였다. 세키와케 데뷔전에서 5경기만 승리하고 마에가시라 랭크로 다시 떨어졌다. 11-4의 성적으로 응답하며 4번의 대회 중 3번째 기술상과 통산 4번째 기술상을 획득했다. 11월 대회에서 다시 세키와케 랭크로 복귀하여 7-8의 기록으로 산야쿠 랭크를 유지했다.
2.3.2. 2010년 ~ 2011년
2010년 7월, 가쿠류는 11승을 거두며 공동 준우승을 차지하고 다섯 번째 기술상을 받았다. 2010년 9월에는 코무스비로 복귀했고, 11월에는 세키와케로 승진했으나, 마지막 날 토치오잔에게 패하며 7승 8패를 기록했다.
2011년 5월 "기술 심사" 대회에서 코무스비로 출전한 가쿠류는 12승 3패로 두 번째 준우승과 함께 여섯 번째 기술상을 받았다. 7월 대회에서는 세키와케로 승진하여 세 명의 오제키를 꺾고 10승 5패를 기록했다. 오제키 승진 가능성이 제기되었으나, 다음 대회에서 3승 4패로 부진한 출발을 보였고, 최종 9승 6패로는 승진에 실패했다.
2.3.3. 2012년 ~ 2013년: 오제키 승진
2012년 1월 대회에서 가쿠류는 요코즈나 하쿠호를 꺾고 첫 번째 우수 선수상을 받았다. 이는 27번의 시도 만에 요코즈나를 상대로 거둔 첫 승리였다.
2012년 3월 오사카 대회에서 가쿠류는 9일째에 하쿠호를 2회 연속으로 꺾고, 8일째에 기세노사토에게 한 번 패한 것을 제외하고 13승 1패로 마지막 날에 진출하여 요코즈나보다 1승 앞섰다. 그러나 고에이도에게 패했고, 하쿠호가 바루토를 꺾으면서 두 몽골 선수 간의 플레이오프가 결정되었다. 하쿠호는 가쿠류에게 설욕하며 22번째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비록 첫 번째 우승을 놓쳤지만, 뛰어난 활약과 기술로 상을 받았다. 가쿠류는 하쿠호와의 플레이오프에서 경험 부족으로 졌으며, 대회 우승은 "나에게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 3개 대회에서 33승을 거두어 오제키로 승진하기에 충분했다. 이 승진으로 6명의 오제키가 동시에 활동하는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프로 데뷔 후 오제키가 되기까지 62번의 대회가 걸렸는데, 이는 스모 역사상 10번째로 느린 기록이자, 등급에 오른 9명의 외국인 선수 중 가장 느린 기록이었다. 2012년 3월 28일, 만장일치로 가쿠류의 오제키 승진이 결정되었다. 승진 전달식에서의 구두 연설은 "앞으로도 훈련에 정진하여, 고객님들이 기뻐하실 만한 스모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였다.
신 오제키가 된 5월 대회는 중일까지 1패였지만, 8승 7패로 끝났다. 7월 대회는 4연패를 기록했지만, 14일째에 고에이도의 휴장으로 부전승으로 승리를 결정했고, 마지막 날에 고토쇼기쿠를 시타나게로 꺾고 9승 6패로 마쳤다. 9월 대회는 12일째까지 2패를 유지했지만, 13일째에 하쿠호, 14일째에 하루마후지에게 연패하여 우승 경쟁에서 탈락했다. 마지막 날은 7연패 중이었던 기세노사토에게 승리하여 11승 4패, 오제키 승진 후 첫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었다.
2013년 1월 대회는 종반에 4연패하여 8승 7패로 끝났다. 2월의 일본 대 스모 토너먼트에서는 결승에서 도요노시마를 꺾고 첫 우승을 달성했다. 3월 대회는 8승 7패로, 3장소 연속 한 자릿수 승수로 끝났다. 5월 대회는 첫날부터 8연승으로 오제키 승진 후 첫 중일 승리를 결정했지만, 9일째에 고토쇼기쿠에게 패해 첫 패배를 기록했다. 그 후 요코즈나, 오제키 전에서 전패하여 10승 5패를 기록했다. 7월 대회는 10승 5패로 오제키 승진 후 첫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었다. 9월 대회는 7일째까지 6승 1패를 기록했지만, 중일 이후 연패가 이어져 9승 6패로 끝났다. 11월 대회는 2일째부터 연패하여, 그 후에는 11일째까지 2패였지만, 종반 4연패로 9승 6패로 끝났다.
2.3.4. 2014년 ~ 2021년: 요코즈나 승진과 은퇴
2013년에 6개 대회 모두 10승 이상을 거두지 못하며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2014년 1월에 14승 1패의 성적을 거두며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정규 경기에서 하쿠호를 꺾고 마지막 날 플레이오프에서 져서 타이틀을 놓쳤는데, 이는 그의 경력에서 4번째 준우승이었다. 이어서 2014년 3월에 14승 1패를 기록하며 춘계 토너먼트에서 하쿠호와 하루마후지를 모두 꺾고 우승했다. 이는 그의 첫 번째 최고 등급 유쇼였다. 두 번의 연속 우승 또는 "그에 상응하는" 최소 요건을 충족한 그는 요코즈나 심의회에서 3월 24일에 그의 진급을 만장일치로 권고했으며, 이는 3월 26일에 일본 스모 협회에 의해 확정되었다. 가쿠류는 2012년의 하루마후지 이후 처음이자, 네 번째 몽골 출신, 여섯 번째 외국 출신 요코즈나가 되었다. 요코즈나로서 그는 운류가타 스타일을 수행한다.
그의 첫 번째 요코즈나로서의 토너먼트는 4일째에 엔도에게 킨보시를 내주고, 마지막 3경기를 모두 져서 9승 6패로 마쳤다. 2014년에는 각 대회에서 최소 11승을 거두었고, 2014년 11월 토너먼트 우승을 다투었지만 마지막 경기에서 하쿠호에게 져서 다섯 번째 준우승을 기록했다.
가쿠류는 2015년 3월 토너먼트 직전에 왼쪽 어깨의 회전근개 파열로 기권해야 했다. 5월에도 부상이 완전히 치유되지 않아 불참했다. 7월 토너먼트에서 12승 3패를 기록하며 복귀했고, 9월 토너먼트에서는 오제키 테루노후지를 플레이오프에서 꺾고 두 번째 챔피언십이자 요코즈나 승격 이후 첫 번째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그러나 그는 토너먼트 동안 헨카를 사용한 것에 대해 비판을 받았다. 11월에는 마지막 날 하쿠호를 이긴 후 9승 6패로 마쳤다.
가쿠류는 2016년 1월과 3월에 각각 10승 5패, 5월에는 11승 4패를 기록했다. 2016년 7월에는 부상으로 기권했다. 9월에 복귀하여 10승을 기록했고, 11월 토너먼트에서는 고에이도를 이겨 세 번째 유쇼를 확보했다.
2017년은 가쿠류가 처음 10일 동안 5번의 패배를 겪으면서 실망스럽게 시작되었고, 오른쪽 다리 부상으로 인해 10일째 이후 토너먼트에서 기권했다. 3월에는 10승을 거두며 복귀했지만, 2017년 5월과 7월 토너먼트에서 부상으로 기권했다. 2017년 9월과 11월에도 부상으로 불참했다. 2017년 12월, 스모 협회는 몽골 레슬러 타카노이와가 하루마후지에게 부상을 입었을 때 행동하지 못한 것에 대해 2018년 1월 급여를 삭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요코즈나 심의회 위원장은 "하쿠호와 가쿠류는 사건이 일어나고 너무 심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책임은 가볍게 여겨져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가쿠류는 2018년 1월 토너먼트에서 복귀하여 11승 4패로 3위를 차지했다. 2018년 3월 토너먼트에서 13승 2패로 네 번째 챔피언십을 차지했고, 2018년 5월 토너먼트에서는 14승 1패로 2회 연속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그러나 7월 토너먼트에서 부상으로 기권했다. 9월에는 10승 5패로 마쳤고, 2018년 11월 토너먼트 준비 훈련을 거의 하지 못하고 기권했다. 2019년 1월 토너먼트에서도 부상으로 기권했다. 3월과 5월 토너먼트에서 각각 10승 5패와 11승 4패를 기록한 후, 가쿠류는 7월 토너먼트에서 14승 1패로 여섯 번째 최고 등급 챔피언십을 차지했다.
2019년 9월 토너먼트에서 그는 왼쪽 무릎 부상으로 인해 8일째에 기권했다. 그는 토너먼트 이후 미치노쿠 스태이블로 옮겼다. 11월 규슈 토너먼트와 2020년 1월 토너먼트에서도 부상으로 기권했다.
가쿠류는 2020년 3월 반즈케에서 요코즈나-오제키로 지정되었다. 그는 이 토너먼트에서 12승 3패로 여덟 번째 준우승을 차지했다.
가쿠류는 2020년 7월 토너먼트에서 팔꿈치 부상으로 2일째에 기권했다. 9월과 11월 토너먼트에도 불참했다. 2020년 11월 바쇼 이후, 가쿠류는 하쿠호와 함께 최근 스모 토너먼트 불참으로 인해 스모 협회의 요코즈나 심의회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이전에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가쿠류는 허리 부상으로 인해 2021년 1월 토너먼트에 불참했다. 3월에도 왼쪽 다리의 근육 염좌로 인해 불참했다.
요코즈나 심의 위원회의 추가 비난을 받을 가능성에 직면한 가쿠류는 2021년 3월 24일 일본 스모 협회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는 6개의 천황배를 획득했고, 645승 394패의 마쿠우치 기록을 남기고 은퇴했다.
가쿠류의 단파츠시키 (은퇴식)는 2023년 6월 3일 료고쿠 국기관에서 열렸다. 가쿠류는 그의 마지막 요코즈나 도효이리를 수행했다. 아사쇼류, 하루마후지 및 하쿠호를 포함하여 약 380명이 가쿠류의 오이초마게를 자르는 데 참여했다.
3. 은퇴 이후
가쿠류는 허리 부상으로 2021년 1월 토너먼트에 불참했다. 그의 스승 미치노쿠에 따르면, 가쿠류는 다음 토너먼트에서 선수 경력을 걸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4번 연속 토너먼트에 불참했고, 2021년 3월 24일 일본 스모 협회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는 6개의 천황배를 획득했으며, 마쿠우치 기록은 645승 394패이다. 은퇴 후 스모 원로가 되면서 자신의 시코나(선수 이름)을 유지했다. 가쿠류는 은퇴 결정으로 안도감과 자유로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가쿠류의 단파츠시키(은퇴식)는 2023년 6월 3일 료고쿠 국기관에서 열렸다. 전 오제키 쇼다이와 오제키 키리시마가 각각 츠유하라(이슬 청소부)와 타치모치(칼을 든 사람)를 맡아 그의 마지막 요코즈나 도효이리를 수행했다. 아사쇼류, 하루마후지, 하쿠호 등 약 380명이 가쿠류의 오이초마게를 자르는 데 참여했다.
은퇴 후에는 일본 스모 협회의 연예인 "토시요리", "쓰루류"로서 무쓰베야에서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NHK・ABEMA의 스모 중계 해설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2023년 6월 3일 은퇴 스모에서는 마지막 경기에서 장남과 대결하여 장남에게 패배했다. 단발식에는 6명의 요코즈나 경험자가 참여했으며, 전 아사쇼류는 가쿠류의 성실함을 칭찬했다.
2023년 12월 15일, 가쿠류는 장래에 독립하여 자신의 방을 세울 의향을 밝혔다. 2024년 4월 27일, 연예인 "오토와야마"를 습명하고 오토와야마베야를 창설했다.
4. 스모 스타일
가쿠류는 양 겨드랑이를 파고드는 기술과 곁들어 던지기를 주력으로 하는 스모에 능숙했으며, 오른쪽 샅바를 잡는 기술에도 강했다. 샅바 잡기뿐만 아니라 츠파리(상대를 밀어내는 기술)나 히키와자(상대를 낚아채는 기술)도 구사하여, 잡거나 떨어져서도 모두 좋은 올라운더였다. 특히 감아돌리기를 이용한 양 겨드랑이 파고 들기는 스승인 쓰루가네로부터 15대 이즈쓰를 거쳐 자신에게 전해진 전통 기술이었다. 츠파리는 현역 말기의 테라오 쓰네후미의 츠케비토(수행원)로 채용되어 테라오의 츠파리를 보고 배우고 익혔다고 한다. 요코즈나 시절에도 컨디션이 좋을 때는 입회(시작) 등에서 무게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히키구세(상대를 낚아채는 습관)는 요코즈나답지 않은 기술로 자주 지적받았으며, 지요호나 묘기류와 같이 히키와자에 강한 역사에게는 자멸하는 경우도 많았다. 15대 이즈쓰는 이를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와 같은, 다른 역사가 갖지 못한 스피드"라고 평가했다. 기동력 자체는 높이 평가받아, 2014년 3월 장소 전 좌담회에서 오자키 유키는 "도효(경기장)를 둥글게 사용하는 것이 발군으로 뛰어난 역사"라고 평했고, 다이시 노부유키도 "몸은 크지 않지만 저력을 느낍니다. 츠파리도 거칠군요"라고 평했다. 2016년 11월 장소 전 좌담회에서 15대 나루토는 "좌우 다리의 움직임이 빠르네요"라고 평가했다. 2018년 3월 장소 전에는 마이노우미에게 밀리거나 상체가 들리는 것에 대한 대처가 좋지 않다고 지적받았다.
정신면에 관해서는 요코즈나 시절에도 "자신감 없어 보인다", "너무 얌전하다"라는 지적이 있었고,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기술이 수비적으로 변했다", "장점인 츠파리를 볼 수 없다"라고 지적받기도 했다.
요코즈나로서는 휴장이 매우 잦았고, 2020년 7월 장소를 도중에 휴장했을 때 기타노후지는 "어이가 없다", "정말 잘 쉰다. 아마 휴장을 요코즈나의 특권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걸까"라고 혹평했다.
은퇴 시 18대 후지시마는 "몸은 그다지 혜택받지 못했지만 스모는 잘했다. ... 요코즈나로서는 이렇다 할 형식이 없었다. 그만큼 다양한 스모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압력도 있었다"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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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개인 생활
가쿠류는 조심스러운 성격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적고, 온화하고 예의 바르다. 곁에서 보좌하던 역도들은 입을 모아 "그렇게 상냥한 요코즈나는 없다."라고 말했다. 곁에서 보좌하던 역도가 주료로 승진했을 때 하카마를 보냈다. 곁에서 보좌했던 역도 중 4명이 세키토리로 승진했지만, 가쿠류는 "본인들의 노력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도키츠카제 방에 데게이코를 하러 갔을 때, 스승 15대 이즈츠가 가쿠류가 타고 온 차를 타고 돌아가 버렸을 때도 "어쩔 수 없지"라고 쓴웃음을 지으며 연습 차림 그대로 방으로 걸어갔다. 도요야마와 쇼다이 등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 저 요코즈나라서 다행이지", "화도 안 내네. 훌륭하네"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고 한다.
요코즈나 정도 되면 이동에 택시나 자동차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데, 도보나 자전거를 선호하여, 자택에서 방이나 국기관까지 통근했다.
승부욕이 강하고 성실하여 자신의 경기를 VTR로 보면서 반성할 점을 노트에 적어내고, 과제를 정해 연습에 임하고 있다.
2012년 3월 장소 최종일에 이기면 그 자리에서 우승이 되는 고에이도와의 경기에서 패했을 때는 직후 준비실에서 분함에 못 이겨 목욕탕에서 드물게 신음 소리를 냈다. 마음이 정돈되지 않은 채 임했던 하쿠호와의 우승 결정전에서도 패배하면서 평상심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한다. 2014년 1월 장소의 우승 결정전에서 하쿠호에게 패했을 때도 "이걸로 분하지 않다면 그만두는 게 낫다"라고 강하게 말했다. 2014년 9월 장소 13일째, 이번 장소의 신입 마쿠우치 역도인 이치노조에게 금성을 내줬을 때는, 입술을 떨 정도로 분노에 찬 표정으로 경기 후 인터뷰를 거부할 정도로 분해했다.
호각가로 알려진 아이돌 야마네 치카는 "평소에는 칠복신과 같은 상냥함으로 감싸져 있지만, 스모에서는 의외로 도발적인 면도 있어, 그 갭이 매력적입니다"라고 평했다.
작은 방 출신이기에, 세키토리로 승진한 후에도 한동안 찬코 담당이나 가사 등을 했다.
협회 내에서는 노래를 잘 부르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YouTube 협회 공식 채널에서는 My Way를 선보였다.
일본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가라오케를 통해 익혔다. 또한, 영어와 러시아어도 구사할 수 있다.
2021년 3월 24일, 일본 스모 협회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원로가 되면서 자신의 시코나 (선수 이름)을 유지했다. 그는 5년 동안 영구적인 지분을 얻을 때까지 전 요코즈나로서 이 권리를 가졌다. 가쿠류는 기자들에게 은퇴 결정으로 인해 안도감과 자유로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가쿠류의 단파츠시키 (은퇴식)는 2023년 6월 3일 료고쿠 국기관에서 열렸다. 가쿠류는 전 오제키 쇼다이와 새롭게 승진한 오제키 기리시마가 각각 쓰유하라이 (이슬 청소부)와 다치모치 (칼을 든 사람)를 맡아 그의 마지막 요코즈나 도효이리, 즉 링 입장 의식을 수행했다. 몽골 출신의 다른 세 명의 요코즈나인 아사쇼류, 하루마후지 및 하쿠호를 포함하여 약 380명이 가쿠류의 오이초마게를 자르는 데 참여했다.
2017년 11월, 하루마후지가 은퇴하면서 그 후임으로 역도회 회장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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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기록
가쿠류 리키사부로는 2001년 11월 규슈 대상 스모 대회에서 프로 데뷔했다. 비교적 빠르게 산단메 등급에 도달했지만, 두 번이나 조니단으로 강등되었다. 2004년 7월, 7-0의 기록으로 산단메 우승을 차지하고 마쿠시타 등급으로 승진했다.
2005년 11월 주료 등급으로 승진하여 세키토리 지위를 얻었으나, 5-10으로 부진하여 다시 마쿠시타로 강등되었다. 2006년 3월에 주료로 복귀, 11월에 마쿠우치에 진출했다. 1999년 3월 미야비야마 이후 가장 높은 순위인 마에가시라 8위로 데뷔, 8-7의 기록을 세웠다.
2008년 1월, 11-4의 기록으로 첫 산쇼(기술 부문)를 획득, 마에가시라 1위로 승진했다. 2008년 11월, 무릎 부상으로 선수 경력 처음으로 경기에 불참했다. 2009년 3월, 마에가시라 1위에서 10-5를 기록, 오제키 3명을 꺾고 두 번째 기술상을 받았다. 2009년 5월, 코무스비로 산야쿠에 데뷔, 2-5에서 마지막 8경기 중 7경기를 승리하며 다시 기술상을 받았다.
2009년 7월, 세키와케로 승진했다. 세키와케 데뷔전에서 5승에 그쳐 마에가시라로 강등되었으나, 11-4의 성적으로 네 번째 기술상을 획득했다. 2010년 7월, 11경기를 승리하며 공동 준우승 및 다섯 번째 기술상을 받았다. 2010년 9월 코무스비, 11월 세키와케로 승진했으나, 마지막 날 토치오잔에게 패하며 7-8로 마쳤다.
2011년 5월 "기술 심사" 대회에서 코무스비로 12-3을 기록, 두 번째 준우승과 여섯 번째 기술상을 받았다. 7월 대회에서 세키와케로 오제키 3명을 꺾고 10-5를 기록했다. 2012년 1월, 요코즈나 하쿠호를 꺾고 첫 번째 우수 선수상을 받았다.
2021년 1월, 허리 부상으로 불참했다. 3월, 왼쪽 다리 근육 염좌로 불참했다. 2021년 3월 24일, 일본 스모 협회에 사직서를 제출하며 은퇴했다. 통산 645승 394패(마쿠우치)를 기록했다.
가쿠류의 단파츠시키(은퇴식)는 2023년 6월 3일 료고쿠 국기관에서 열렸다. 약 380명이 가쿠류의 오이초마게를 자르는 데 참여했다.
2018년 1월, 히마후지에 의한 폭행 사건을 막지 못한 책임으로 급여 미지급 처분을 받았다. 1월 장소에서 11승 4패를 기록했다. 2월, 왼쪽 발목 내시경 수술을 받았다.
3월 장소에서 13승 2패로 4번째 마쿠우치 최고 우승을 달성했다. 5월 장소에서 하쿠호를 꺾고 2장소 연속 5번째 마쿠우치 최고 우승을 달성했다. 7월 장소는 오른쪽 팔꿈치 관절염으로 휴장했다. 9월 장소는 10승 5패를 기록했다. 11월 장소는 오른쪽 발목 부상으로 휴장했다.
최다 연승 기록은 16연승이다.
| 순위 | 연승수 | 기간 | 연승 중단 상대 | 비고 |
|---|---|---|---|---|
| 1 | 16 | 2014년 1월 장소 2일째 - 2014년 3월 장소 2일째 | 오키노우미 | |
| 2 | 14 | 2018년 5월 장소 5일째 - 2018년 7월 장소 3일째 | 쇼호잔 | |
| 3 | 13 | 2019년 5월 장소 천추락 - 2019년 7월 장소 12일째 | 토모카제 | |
| 4 | 12 | 2018년 1월 장소 천추락 - 2018년 3월 장소 11일째 | 토치노신 | |
| 5 | 10 | 2016년 11월 장소 첫날 - 2016년 11월 장소 10일째 | 키세노사토 | |
| 2018년 1월 장소 첫날 - 2018년 1월 장소 10일째 | 타마와시 |
| 구분 | 성적 |
|---|---|
| 통산 성적 | 785승 497패 231휴 (115장소) 승률 .612 |
| 마쿠우치 성적 | 645승 394패 231휴 (85장소) 승률 .621 |
| 요코즈나 성적 | 266승 117패 227휴 (41장소) 승률 .695 |
| 요코즈나-오제키 성적 | 12승 3패 (1장소) 승률 .800 (역대 3위) |
| 오제키 성적 | 119승 61패 (12장소) 승률 .661 |
| 세키와케 성적 | 71승 49패 (8장소) 승률 .592 |
| 코무스비 성적 | 45승 30패 (5장소) 승률 .600 |
| 마에가시라 성적 | 144승 137패 4휴 (19장소) 승률 .513 |
| 통산(막내) 연속 카치코시 | 24장소 (2011년 1월 장소 - 2015년 1월 장소) |
| 막내 연속 두 자릿수 승리 | 4장소 (2014년 7월 장소 - 2015년 1월 장소) |
| 킨보시 배급 | 33개 (역대 8위) |
| 요코즈나로서의 휴장 | 227일 (역대 2위) |
| 막내 재위 | 85장소 |
| 요코즈나 재위 | 41장소 (역대 10위) |
| 요코즈나·오제키 재위 | 1장소 (역대 6위) |
| 오제키 재위 | 12장소 |
| 산야쿠 재위 | 13장소 (세키와케 8장소, 코무스비 5장소) |
| 마에가시라 재위 | 19장소 |
| 주료 재위 | 5장소 |
| 막하 재위 | 8장소 |
| 산단메 재위 | 10장소 |
| 조니단 재위 | 5장소 |
| 조노쿠치 재위 | 1장소 |
| 마에즈모 | 1장소 |
| 마쿠우치 최고 우승 | 6회 |
| 산단메 우승 | 1회 (2004년 7월 장소) |
| 산쇼 | 9회 |
| 수훈상 | 2회 (2012년 1월 장소, 2012년 3월 장소) |
| 기능상 | 7회 (2008년 1월 장소, 2009년 3월 장소, 2009년 5월 장소, 2009년 9월 장소, 2010년 7월 장소, 2011년 5월 기량 심사 장소, 2012년 3월 장소) |
| 금성 | 없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