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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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간인류는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숙부인 후지와라노 긴스에에서 시작된 씨족이다. 간인은 후지와라노 후유쓰구의 저택이었으며, 헤이안 시대 말기부터 가마쿠라 시대 초기에 걸쳐 사토다이리로 사용되었다. 긴스에는 미치나가 정권을 지지하며 태정대신에 이르렀고, 그의 후손들은 대대로 천황의 외척으로 권세를 떨쳤다. 간인류는 산조, 사이온지, 도쿠다이지 가문과 같은 세이카 가문, 사가 가문, 산조니시 가문과 같은 대신 가문, 그리고 우린 가문 등 여러 가문으로 번영했다. 이 가문들은 공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가문의 당주들은 "공(公)"과 "실(實)"을 이름에 교대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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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인류 - 아네가코지 사토코
곤다이나곤 아네가코지 킨사토의 딸인 아네가코지 사토코는 고카쿠 천황의 텐지로 궁에 들어가 신텐지, 쇼부노코지노츠보네로 불리며 천황과의 사이에서 1남 2녀를 두었고 딸 중 한 명인 에이쥰 여왕은 다이쇼지로 출가했다. - 간인류 - 후지와라노 긴스에
후지와라노 긴스에는 헤이안 시대 고우시 내친왕의 아들이자 무라카미 천황의 총애를 받은 공경으로, 레이제이 천황 때 관직 생활을 시작하여 내대신을 20년간 역임하며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정권을 지탱했고, 그의 후손들은 칸인류의 시조가 되어 많은 공가 가문의 기원이 되었다.
간인류 | |
---|---|
가문 정보 | |
가문명 | 간인류 |
가문 문양 | 가문마다 다름. |
본성 | 후지와라노아손 |
가조 | 후지와라노 긴스에 |
종별 | 신별 (천신) |
출신지 | 야마시로국 |
근거지 | 야마시로국 외 |
주요 인물 및 분파 | |
분파 | 산조가 (공가) 사이온지가 (공가) 도쿠다이지가 (공가) |
2. 역사
간인류 후지와라씨는 산죠, 사이온지, 토쿠다이지 및 사이온지가 서류 기쿠테이가가 섭가에 버금가는 가격의 세이카가였다. 산죠가 서류인 사가가 (오기마치산조가) 및 산조니시가는 그를 뒤잇는 대신가였다. 그 밖에도 우림가에 19개의 가문이 있어 일문이 번영하였다. 일문제가의 당주는 일부를 제외하고 대대로 「킨(公)」과 「사네/자네(実)」를 번갈아 이름의 한 글자로 삼는 것을 규칙으로 삼았다. 또한, 「스에(季)」도 돌림자로 사용되었다.[1]
2. 1. 기원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숙부인 간인대신 후지와라노 킨스에가 시조이다. 간인은 원래 북가 번영의 기초를 닦은 후지와라노 후유츠구의 저택으로, 킨스에가 이를 물려받아 헤이안 말기부터 가마쿠라 초기에 걸쳐 사토다이리로도 사용되었다.킨스에는 입내시킨 딸이 황자녀를 낳지는 못했지만, 미치나가 집정 하에서 오랫동안 내대신 직을 맡아 미치나가 정권을 지탱하였고, 우대신을 거쳐 말년에는 태정대신에 이르렀다. 2대 사네나리는 미치나가의 4남 후지와라노 요시노부를 사위로 맞이했다.
3대 킨나리의 딸 모시/시게코가 요시노부의 양녀로 동궁 타카히토 친왕 (후의 고산조 천황)의 비가 되어 사다히토 친왕 (훗날의 시라카와 천황)을 낳은 순간부터 대대로 천황의 외척으로 권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4대 사네스에의 딸 이시/시게코는 도바 천황의 생모, 5대 킨자네의 딸 타마코/쇼시는 스토쿠 천황, 고시라카와 천황의 생모이다. 도바 즉위 때, 킨자네는 섭관가의 젊은 당주 타다자네를 얕잡아보며, 어린 천황의 외조부 지위에 있는 자신이야말로 섭정에 취임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5대 동안 보통 공경으로 섬긴 자가 지금 섭관을 원하다니"라고 시라카와인 별당 미나모토노 토시아키에게 일축되었다.[1] 킨자네의 자식 대에 이르러, 산죠, 사이온지, 토쿠다이지 등의 주요 3가로 나뉘었다.
2. 2. 번영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숙부인 간인대신 후지와라노 긴스에가 시조이다. 간인은 원래 북가 번영의 기초를 닦은 후지와라노 후유쓰구의 저택으로, 긴스에가 이를 물려받아 헤이안 말기부터 가마쿠라 초기에 걸쳐 사토다이리로도 사용되었다.긴스에는 입궁시킨 딸이 황자녀를 낳지는 못했지만, 미치나가 집정 하에서 오랫동안 내대신 직을 맡아 미치나가 정권을 지탱하였고, 우대신을 거쳐 말년에는 태정대신에 이르렀다. 2대 사네나리는 미치나가의 4남 후지와라노 요시노부를 사위로 맞이했다.
3대 긴나리의 딸 모시/시게코가 요시노부의 양녀로 동궁 타카히토 친왕 (후의 고산조 천황)의 비가 되어 사다히토 친왕 (훗날의 시라카와 천황)을 낳은 순간부터 대대로 천황의 외척으로 권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4대 사네스에의 딸 이시/시게코는 도바 천황의 생모, 5대 긴자네의 딸 타마코/쇼시는 스토쿠 천황, 고시라카와 천황의 생모이다. 도바 즉위 때, 긴자네는 섭관가의 젊은 당주 타다자네를 얕잡아보며, 어린 천황의 외조부 지위에 있는 자신이야말로 섭정에 취임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5대 동안 보통 공경으로 섬긴 자가 지금 섭관을 원하다니"라고 시라카와인 별당 미나모토노 토시아키에게 일축되었다.[1] 긴자네의 자식 대에 이르러, 산죠, 사이온지, 도쿠다이지 등의 주요 3가로 나뉘었다.
간인류 후지와라씨는 산죠, 사이온지, 도쿠다이지 및 사이온지가 서류 기쿠테이가가 섭가에 버금가는 가격의 세이카가, 산죠가 서류인 사가가 (오기마치산조가) 및 산조니시가가 그를 뒤잇는 대신가가 되어 공가 안에 중점을 두었으며, 그 밖에도 우림가에도 19개의 가문이 있어 일문이 번영하였다. 일문제가의 당주는 일부를 제외하고 대대로 「킨(公)」과 「사네/자네(実)」를 번갈아 이름의 한 글자로 삼는 것을 규칙으로 삼았다. 또한, 「스에(季)」도 돌림자로 사용되었다.
2. 3. 분가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숙부인 간인대신 후지와라노 킨스에가 시조이다. 간인은 원래 후지와라노 후유츠구가 소유했던 저택으로, 킨스에가 이를 물려받았다. 이 저택은 헤이안 말기부터 가마쿠라 초기까지 사토다이리로도 사용되었다.킨스에는 딸을 입궁시켰으나 황자녀를 낳지는 못했다. 하지만 미치나가 집권 하에서 오랫동안 내대신 직을 맡아 미치나가 정권을 지탱하였고, 우대신을 거쳐 말년에는 태정대신에 이르렀다. 2대 사네나리는 미치나가의 4남 후지와라노 요시노부를 사위로 맞이했다.
3대 킨나리의 딸 모시/시게코는 요시노부의 양녀로서 타카히토 친왕(고산조 천황)의 비가 되었고, 사다히토 친왕(시라카와 천황)을 낳았다. 이때부터 간인류는 대대로 천황의 외척으로서 권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4대 사네스에의 딸 이시/시게코는 도바 천황의 생모였고, 5대 킨자네의 딸 타마코/쇼시는 스토쿠 천황과 고시라카와 천황의 생모였다. 도바 즉위 당시, 킨자네는 섭관가의 젊은 당주 타다자네를 얕보며 자신이 섭정에 취임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시라카와인 별당 미나모토노 토시아키에게 "5대 동안 평범한 공경으로 섬긴 자가 지금 섭관을 원하다니"라며 일축당했다.[1] 킨자네의 자식 대에 이르러, 산죠, 사이온지, 토쿠다이지의 주요 3가로 분가하였다.
간인류 후지와라씨는 산죠, 사이온지, 토쿠다이지 및 사이온지가 서류 이마데가와가가 섭가에 버금가는 청화가였고, 산죠가 서류인 사가가 (오기마치산죠가) 및 산죠니시가는 그 다음가는 대신가였다. 이 외에도 우림가에 19개 가문이 있어 간인류 일문은 크게 번영하였다. 일문제가의 당주는 일부를 제외하고 대대로 「킨(公)」과 「사네/자네(実)」를 번갈아 이름의 한 글자로 삼았으며, 「스에(季)」도 돌림자로 사용되었다.
3. 주요 가문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숙부인 간인대신 후지와라노 킨스에를 시조로 하는 간인류는 북가 번영의 기초를 닦은 후지와라노 후유츠구의 저택인 간인을 물려받아 헤이안 말기부터 가마쿠라 초기에 걸쳐 사토다이리로도 사용되었다.
킨스에는 딸을 입내시켰으나 황자녀를 낳지 못했지만, 미치나가의 집정 하에서 오랫동안 내대신 직을 맡아 미치나가 정권을 지지했고, 우대신을 거쳐 만년에는 태정대신에 이르렀다. 2대 사네나리는 미치나가의 4남 후지와라노 요시노부를 사위로 맞이했다.
3대 킨나리의 딸 모시/시게코가 요시노부의 양녀로 동궁 타카히토 친왕의 비가 되어 사다히토 친왕을 낳으면서 대대로 천황의 외척으로 권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4대 사네스에의 딸 이시/시게코는 도바 천황의 생모, 5대 킨자네의 딸 타마코/쇼시는 스토쿠 천황ㆍ고시라카와 천황의 생모이다. 도바 천황 즉위 때, 킨자네는 섭관가의 젊은 당주 타다자네를 얕잡아보며 자신이 섭정에 취임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시라카와인 별당 미나모토노 토시아키에게 "5대 동안 보통 공경으로 섬긴 자가 지금 섭관을 원하다니"라고 일축되었다.[1]
킨자네의 자식 대에 이르러 산죠, 사이온지, 토쿠다이지 등의 주요 3가로 나뉘었다. 칸인류 후지와라씨는 이들 외에도 사이온지가 서류 이마데가와가가 섭가에 버금가는 청화가였고, 산죠가 서류인 사가가 (오기마치산죠가) 및 산죠니시가가 대신가가 되었으며, 우림가에도 19개의 가문이 있어 일문이 번영하였다. 일문제가의 당주는 일부를 제외하고 대대로 「킨(公)」과 「사네/자네(実)」를 번갈아 이름의 한 글자로 삼는 것을 규칙으로 삼았고, 「스에(季)」도 돌림자로 사용되었다.
3. 1. 산조가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숙부인 간인대신 후지와라노 킨스에가 시조이다. 간인은 원래 북가 번영의 기초를 닦은 후지와라노 후유츠구의 저택으로, 킨스에가 이를 전령하여, 헤이안 말기부터 가마쿠라 초기에 걸쳐 사토다이리로도 사용되었다.킨스에는 입내시킨 딸이 황자녀를 낳지는 못했지만, 미치나가 집정 하에서 오랫동안 내대신의 직으로 미치나가 정권을 지탱하였고, 우대신을 거쳐 말년에는 태정대신에 이르렀다. 2대인 사네나리는 미치나가의 4남 후지와라노 요시노부를 사위로 맞이했다.
3대 킨나리의 딸 모시/시게코가 요시노부의 양녀로 동궁 타카히토 친왕 (후의 고산조 천황)의 비가 되어 사다히토 친왕 (훗날의 시라카와 천황)을 낳은 순간부터 대대로 천황의 외척으로 권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4대 사네스에의 딸 이시/시게코는 도바 천황의 생모, 5대 킨자네의 딸 타마코/쇼시는 스토쿠 천황ㆍ고시라카와 천황의 생모이다. 도바 즉위 때, 킨자네는 섭관가의 젊은 당주 타다자네를 얕잡아보며, 어린 천황의 외조부 지위에 있는 자신이야 말로, 섭정에 취임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5대 동안 보통 공경으로 섬긴 자가 지금 섭관을 원하다니"라고 시라카와인 별당 미나모토노 토시아키에게 일축되었다.[1] 킨자네의 자식 대에 이르러, 산죠ㆍ사이온지ㆍ토쿠다이지 등의 주요 3가로 나뉘었다.
칸인류 후지와라씨는 산죠ㆍ사이온지ㆍ토쿠다이지 및 사이온지가 서류 이마데가와가가 섭가에 버금가는 가격의 청화가, 산죠가 서류인 사가가 (오기마치산죠가) 및 산죠니시가가 그를 뒤잇는 대신가가 되어 공가 안에 중점을 두었으며, 그 밖에도 우림가에도 19개의 가문이 있어 일문이 번영하였다. 일문제가의 당주는 일부를 제외하고 대대로 「킨(公)」과 「사네/자네(実)」를 번갈아 이름의 한 글자로 삼는 것을 규칙으로 삼았다. 또한, 「스에(季)」도 돌림자로 사용되었다.
3. 2. 사이온지가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숙부인 간인대신 후지와라노 긴스에가 시조이다. 간인은 원래 북가 번영의 기초를 닦은 후지와라노 후유쓰구의 저택으로, 긴스에가 이를 물려받아 헤이안 말기부터 가마쿠라 초기까지 사토다이리로도 사용되었다.긴스에는 딸을 입내시켰으나 황자녀를 낳지는 못했다. 하지만 미치나가의 집정 하에서 오랫동안 내대신으로 재직하며 미치나가 정권을 지지했고, 우대신을 거쳐 만년에는 태정대신에 이르렀다. 2대 사네나리는 미치나가의 넷째 아들 후지와라노 요시노부를 사위로 맞이했다.
3대 키미나리의 딸 시게코가 요시노부의 양녀로서 도고(東宮) 친왕(훗날의 고산조 천황)의 비가 되어 사다히토 친왕(훗날의 시라카와 천황)을 낳으면서, 대대로 천황의 외척으로서 권세를 떨치게 되었다. 4대 사네스에의 딸 이시는 도바 천황의 생모였고, 5대 키미자네의 딸 쇼시는 스토쿠 천황과 고시라카와 천황의 생모였다. 도바 천황 즉위 당시, 키미자네는 셋칸가의 젊은 당주 타다자네를 업신여기며, 어린 천황의 외조부인 자신이 섭정에 취임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시라카와인 별당 미나모토노 토시아키에게 "5대 동안 평범한 공경으로 섬긴 자가 지금 섭관을 바라다니"라며 일축당했다.[1] 이 키미자네의 아들 대에 이르러, 산조, 사이온지, 도쿠다이지의 주요 3가로 나뉘었다.
3. 3. 토쿠다이지가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숙부인 간인대신 후지와라노 킨스에가 시조이다. 간인은 원래 북가 번영의 기초를 닦은 후지와라노 후유츠구의 저택으로, 킨스에가 이를 전령하여, 헤이안 말기부터 가마쿠라 초기에 걸쳐 사토다이리로도 사용되었다.킨스에는 입내시킨 딸이 황자녀를 낳지는 못했지만, 미치나가 집정 하에서 오랫동안 내대신의 직으로 미치나가 정권을 지탱하였고, 우대신을 거쳐 말년에는 태정대신에 이르렀다. 2대 사네나리는 미치나가의 4남 후지와라노 요시노부를 사위로 맞이했다.
3대 킨나리의 딸 모시/시게코가 요시노부의 양녀로 동궁 타카히토 친왕 (후의 고산조 천황)의 비가 되어 사다히토 친왕 (훗날의 시라카와 천황)을 낳은 순간부터 대대로 천황의 외척으로 권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4대 사네스에의 딸 이시/시게코는 도바 천황의 생모, 5대 킨자네의 딸 타마코/쇼시는 스토쿠 천황ㆍ고시라카와 천황의 생모이다. 도바 즉위 때, 킨자네는 섭관가의 젊은 당주 타다자네를 얕잡아보며, 어린 천황의 외조부 지위에 있는 자신이야 말로, 섭정에 취임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5대 동안 보통 공경으로 섬긴 자가 지금 섭관을 원하다니"라고 시라카와인 별당 미나모토노 토시아키에게 일축되었다.[1] 이 킨자네의 자식 대에 이르러, 산죠ㆍ사이온지ㆍ토쿠다이지 등의 주요 3가로 나뉘었다.
3. 4. 그 외 가문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숙부인 간인대신 후지와라노 킨스에가 시조이다. 간인은 원래 북가 번영의 기초를 닦은 후지와라노 후유츠구의 저택으로, 킨스에가 이를 물려받아 헤이안 말기부터 가마쿠라 초기까지 사토다이리로도 사용되었다.킨스에는 딸을 입내시켰으나 황자녀를 낳지는 못했다. 하지만 미치나가의 집정 하에서 오랫동안 내대신 직을 맡아 미치나가 정권을 지탱하였고, 우대신을 거쳐 말년에는 태정대신에 이르렀다. 2대 사네나리는 미치나가의 4남 후지와라노 요시노부를 사위로 맞이했다.
3대 킨나리의 딸 모시/시게코가 요시노부의 양녀로서 동궁 타카히토 친왕(후의 고산조 천황)의 비가 되어 사다히토 친왕(훗날의 시라카와 천황)을 낳으면서 대대로 천황의 외척으로서 권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4대 사네스에의 딸 이시/시게코는 도바 천황의 생모였고, 5대 킨자네의 딸 타마코/쇼시는 스토쿠 천황ㆍ고시라카와 천황의 생모였다. 도바 천황 즉위 당시, 킨자네는 섭관가의 젊은 당주 타다자네를 얕잡아보고, 어린 천황의 외조부인 자신이 섭정에 취임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5대 동안 보통 공경으로 섬긴 자가 지금 섭관을 원하다니"라며 시라카와인 별당 미나모토노 토시아키에게 일축되었다.[1] 킨자네의 자식 대에 이르러 산죠, 사이온지, 토쿠다이지 등의 주요 3가로 나뉘었다.
칸인류 후지와라씨는 산죠, 사이온지, 토쿠다이지가 및 사이온지가 서류 이마데가와가가 섭가에 버금가는 가격인 청화가였고, 산죠가 서류인 사가가 (오기마치산죠가) 및 산죠니시가가 그를 뒤잇는 대신가가 되어 공가 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 밖에도 우림가에 19개의 가문이 있어 일문이 번영하였다. 일문제가의 당주는 일부를 제외하고 대대로 「킨(公)」과 「사네/자네(実)」를 번갈아 이름의 한 글자로 삼는 것을 규칙으로 삼았다. 또한, 「스에(季)」도 돌림자로 사용되었다.
4. 가문의 명명 규칙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숙부인 간인대신 후지와라노 킨스에를 시조로 한다. 간인류 후지와라씨는 산조, 사이온지, 토쿠다이지 및 사이온지가 서류 이마데가와가가 섭가에 버금가는 가격의 청화가였다. 산죠가 서류인 사가가 (오기마치산죠가) 및 산죠니시가는 그를 뒤잇는 대신가가 되어 공가 안에서 중점을 두었으며, 그 밖에도 우림가에 19개의 가문이 있어 일문이 번영하였다. 일문제가의 당주는 일부를 제외하고 대대로 「킨(公)」과 「사네/자네(実)」를 번갈아 이름의 한 글자로 삼는 것을 규칙으로 삼았다.[1] 「스에(季)」도 돌림자로 사용되었다.
5. 계보
'''실선은 부자관계, 점선(세로)는 양자, 점선(가로)는 혼인 관계'''
藤原師輔|후지와라노 모로스케일본어 |
藤原公成|후지와라노 킨나리일본어 |
藤原実兼|후지와라노 사네카네일본어 | 사네타카 | 三条実行|산죠 사네유키일본어 (*산죠가) | 藤原通季|후지와라노 미치스에일본어 (*사이온지가) | 徳大寺実能|토쿠다이지 사네요시일본어 (*토쿠다이지가) | 藤原季成|후지와라노 스에나리일본어 | 仁実|닌지츠일본어 | 藤原璋子|후지와라노 다마코/쇼시일본어[12] |
; 실선은 친자, 점선(세로)은 양자, 점선(가로)는 혼인 관계.
藤原師輔|후지와라노 모로스케일본어 |
藤原公成|후지와라노 기미나리일본어 |
藤原実兼|후지와라노 사네카네일본어 | 사네타카 | 三条実行|산조 사네유키일본어 (산조가) | 藤原通季|후지와라노 미치스에일본어 (사이온지가) | 徳大寺実能|토쿠다이지 사네요시일본어 (토쿠다이지가) | 藤原季成|후지와라노 스에나리일본어 | 仁実|닌지쓰일본어 | 藤原璋子|후지와라노 쇼시일본어[6] |
참조
[1]
서적
愚管抄
[2]
문서
후지와라노 모로스케
[3]
문서
뇨고
[4]
문서
고산조 천황
[5]
문서
호리카와 천황
[6]
문서
스토쿠 천황
[7]
문서
고시라카와 천황
[8]
문서
후지와라노 모로스케
[9]
문서
뇨고
[10]
문서
고산조 천황
[11]
문서
호리카와 천황
[12]
문서
스토쿠 천황
[13]
문서
나이시노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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